좋은 글과 작품들2013. 11. 24. 19:26

모짜르트 바쑨 콘체르토를 들으며 

김회권 교수님의 <청년 설교3>을 읽는데 

공교롭게 클레식 음악에 관한 부분을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네요.

딱 이거다 싶어 아래에 인용합니다. 특히 청년들이 주목하여 볼 부분입니다.


"특히 저녁 산책이나 아침 산책 다음에 매일 클래식 음악을 40분씩 듣는 것도 좋은 훈련이 됩니다. 

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클래식 음악을 한 시간씩 조용히 듣고 즐기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눈을 감고 음악의 선율을 따라 정신을 유영시키면 고결한 상상력이 자랍니다. 

한 악장에 15분 정도 걸리는 음악 세 악장을 듣는 데 40-50분이 걸립니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동안은 우리의 야생마 같은 생각도 침묵과 경청 모드로 들어갑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 집중되고 초점 잡힌 수동적 수용 모드가 이런 음악을 들으면 잘 형성됩니다. 

클래식 음악을 듣기 위해서 요청되는 수동적 수용 모드가 기도할 때에도 도움이 됩니다. 

물론 훌륭한 음악 감상이 주는 영혼 고양적인 감정의 방출은 그 자체가 귀한 것입니다만 말이 없는 기악곡을 오랫동안 듣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는 훈련에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일단 대중가요보다 클래식 기악곡을 듣고 즐기는 데는 추상적 사고가 요청됩니다. 

추상적 사고를 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잘 이해가 안됩니다. 

추상적 사고가 발달한 범게르만족들 사이에 클래식 음악이 발전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은 논리학과 수학과 철학을 잘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요? 아무 메시지가 없는 음악을 계속 듣고 즐기는 것은 추상적 사고로 단련된 사람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격이 굉장히 급하고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15분짜리 기악곡 3악장 음악을 매일 들어야 합니다. 

이런 것도 훈련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그런 음악 듣는 것을 훈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전부 다 영어 단어 외우기나 미적분 푸는 데 처년의 가장 고귀한 순간이 탕진되고 있지 않습니까? "


김회권, <청년설교 3>, 20쪽 인용

Posted by speramus
묵상2013. 11. 23. 13:01

#묵상문자
<갈라디아서 6장 묵상-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

"9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10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갈라디아서 5장 9-10절)"

계속 선한 일, 좋은 일을 하라는 권면입니다. 그 선한일의 결과로 선한 열매를 거두게 되지만 그 수확이 더디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 선한 일을 하라 권합니다. 
때가 이르면(제 때가 되면) 거두게 된다 합니다. 

아침에 창세기 15장에 아브람 이야기를 묵상한 내용과 오버랩이 됩니다. 
자녀와 땅에 대한 약속을 받은지 10년이 지났는데 감감 무소식입니다. 
"나 떨고 있니?" 불안에 떠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전광석화처럼 말씀으로 그의 폐부를 찌르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reward)이라. (창세기 15장 1절)"라고 말을 걸어 오시면서 10년 전 약속을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아브람은 10년동안 약속을 믿고 계속 선한 일에 투신했었죠. 롯을 위해 재물과 소유권까지 포기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 걸고 전쟁에 참여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일관된 선함에도 하나님의 수확의 때는 묘연했습니다. 
아브람은 두려웠고 불안해졌습니다. 
그 때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확증 받고 다시 달려갈 용기를 얻은 것이 창세기 15장의 내용입니다. 

내게 아직 열매가 없고 결과물이 없다고 낙심마십시오. 때가 이르면, 자기의 때에 수확하여 거두게 될것입니다. 선한 일을 계속하되 낙심치 마십시오. 
선한 은행의 잔고에 선한 생각과 착한 행실들을 저축해 놓면 어떨까요?? 때가 되면 와르르 하나님의 보상(reward)이 꾸러미로 쏟아져 돌아 올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싯귀 하나를 소개합니다. 

"<언젠가 많은 것을....
Wer viel einst zu verkünden hat...>
(프리즈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언젠가 많은 것을 일러야 할 이는 
많은 것을 가슴 속에 말 없이 쌓는다.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이는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

이쯤되면 시라기보다 잠언에 가까운 듯합니다^^
언제인가 번개에 불을 켜기 위해 구름이 되어야 한다니, 참 기발한 표현이죠. 
무엇보다 오랫동안이란 말이 가슴을 후벼 파네요. 
우리는 번개를 준비하기 위해 오랜시간 계속 선한 수증기를 모으는 구름인가 봅니다.
오랫동안 뜬 구름처럼 외로움과 그늘의 시간을 견뎌야 할지 모르지만 때가 이르면(제 때가 되면) 한 줄기 벼락 되어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오랜 구름의 시간들 잘 견뎌 내소서~


Posted by speramus
묵상2013. 11. 23. 13:00

#묵상문자 <갈라디아서 5장 묵상 - 우리를 이땅에 심은 뜻>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잣더니,
내 심은 탓인지 봉황은 아니오고
밤중에 일편명월만 빈 가지에 걸렸어라."

황진이의 싯귀입니다. 
벽오동(푸른오동나무)을 심은 것은 100년에 한 번씩 나타나 벽오동에 앉았다가 날아간다는 길조 중의 길조인 봉황새를 보자는 뜻이란 거죠.
그런데 부족한 내가 심어서 인지 봉황은 안오고 휘영청 밝은 달만 걸렸다는 한숨 섞인 시입니다.

누가복음 13장 6-9절에
"6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세 해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열매를 본 적이 없다. 찍어 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십시오.'

무화과 나무가 심겨진 뜻은 열매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포도원 주인은 나무를 찍어버리라 하십니다.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3년 째 되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때 가서 찍어버리자고 말합니다.
3년의 유예를 받은 무화과 나무는 물을 먹고 걸음을 먹고 이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5장의 핵심적인 구절은 21-24절입니다.
"21.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2.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23.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24.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성령의 열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이 세상의 벽오동으로 심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뜻은 바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9가지 입니다.
사랑(love), 기쁨(joy), 화평(peace), 인내(patience), 친절(kindness), 선함(goodness), 신실(faithfulness), 온유(gentleness), 절제(self-control)
이 아홉 가지입니다.
놀라운 인격의 열매들입니다. 
성령은 인격적이신 분이시고 고매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시기에 이런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열매를 맺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을 23절에는 육체라고 합니다.
육신의 일은 성령의 열매맺게 하는 일을 거스른다고 합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17절)"
육신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은 적대관계에 놓여져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즉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육신의 생각을 제어하고 성령님을 온전히 따르는 길 뿐입니다.
이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님을 온전히 구해야 하며 성령님을 온전히 따라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꽃피우게 되고 결국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의해 뿌려지고 자란 씨앗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고
내가 뿌린 씨앗은 육신의 열매가 되는 것이지요.
성령이 뿌리면 벽오동이 되는 것이고 내 육신적인 생각으로 뿌린 씨앗은 육신의 열매를 맺는 볼품 없는 오동이 되는 것이죠.

성령의 열매는 인격의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우리 이웃들이 우리 인격의 열매를 따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따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심겨진 하나님의 무화과 나무들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위에 앉게 하기 위해 심겨진 하나님의 벽오동입니다.
그 뜻을 기억하시고 온전히 성령님 따라가는 하루 보내소서~^^

Posted by speramus
찬양콘티2013. 11. 22. 10:47
주제: 죄사함을 입은 자로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1. 나는 용서 받았네 (E)

2.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G)
3.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4. 강물 같은 주의 은혜(E)
5. 내 마음을 가득 채운

6.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E--F)
7. 내가 원하는 한 가지(F)
8.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F)

콘티를 짜며 힐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임재를 미리 경험하는 것이지요.
예배인도자는 콘티 짤 때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 드려지는 예배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물론 콘티 짜기 전에 충분한 기도와 실천의 삶이 있을 때 콘티짜며 받는 은혜의 시간은 그만큼 단축이 되죠.
어떤 날은 콘티가 짜지지 않아 한 시간을 고민하며 없는 머리털을 쥐어 짤 때도 있습니다.
삶이 뒤따라 주지 않을 때죠.
그런면에서 예배 인도자의 삶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배는 기술이나 음악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speramus
묵상2013. 11. 21. 09:40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들과 돈이 많음을 자랑하는 자들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리오. 7 아무리 대단한 부자라 하여도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속량하지 못하는 법, 하나님께 속전을 지불하고 생명을 속량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8 생명을 속량하는 값은 값으로 매길 수 없이 비싼 것이어서, 아무리 벌어도 마련할 수 없다. 9 죽음을 피하고 영원히 살 생각도 하지 말아라. (시편 49편 6-9)

시편 49편은 죽음의 실상에 대해 낱낱이 고발하는 시편입니다.
빈부귀천을 묻지 않고 죽음은 모든 사람이 맞이하게 될 것이지요.
이 시에서 흥미로운 것은 사람의 생명을 값으로 매기고 있다는 겁니다.
7절에 자기의 생명의 값을 지불할(속량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8절은 이어서 생명의 값은 매길 수 없이 비싼 것이어서 아무리 벌어도 마련할 수 없고 모자라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으로 우리의 생명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모자라도 한 참 모자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6절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과 재산과 돈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재물과 돈을 모으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큰 목적 중에 하나는 재물을 모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 
부자가 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재물을 모은 자에 대한 경고입니다. 
중요한 것은 영혼을 돌보는 것이지 재물을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영혼의 값은 그 어떤 것으로도 지불할 수 없습니다. 그 의미는 영혼과 생명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영혼이 있기에 생명이 있기에 우리의 가치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귀한 생명을 우리 육체에 담고 있는 것 자체로 우리 삶은 존귀하고 가치있는 것입니다.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지 맙시다.
죽음 앞에서 그 돈은 쇳덩이 종이쪼가리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하나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정말 소중하고 귀한 것을 위해 우리의 삶을 드려야 합니다. 

다음의 두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가 어딜 향해 가는지를 고민하시고, 누가 우리를 건지시고 구원할 분이신지에 진지하게 묵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여 제 이름으로 등기를 해 두었어도 그들의 영원한 집, 그들이 영원히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다.(11절)"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내 목숨을 건져 주시며, 스올의 세력에서 나를 건져 주실 것이다.(15절)"
생명의 주인이시요 죽음에서 우리를 건질 자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하루 보내세요~
Posted by speramus
묵상2013. 11. 20. 18:22

<시편 49편 사역- 김경헌>

1. 모든 백성들아 이것을 들으라. 세상에 머물러 사는 모든 이들은 귀를 기울여라.

2. 사람(아담)의 아들이든 남자(이쉬)의 아들이든, 넉넉한 사람이든 부족한 사람이든 함께 (들으라)

3. 내 입이 지혜(호크마)를 말하겠고, 내 마음에서 지식을 음미할 것이다.

4. 내가 비유(잠언)에 귀를 기울이고 비파 소리를 들으며 어려운 문제를 풀리라.

5. 죄악이 나를 쫓아 와 에워싸는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리?

6. 자신의 재물을 믿으며 자신의 부를 자랑하는 자들 (그들을 두려워하리?)

7. 사람이 절대 형제를 구원할 수 없고(값을 치를 수 없다) 하나님께 그의 몸값(생명의 가격)을 지불할 수 없도다.

8. 그 영혼의 값은 너무나 비싸서 영원히 감당하지 못합니다.

9. 그가 영원히 살아서 무덤(죽음)을 보지 않겠는가?

10. 정녕 그는 볼 것이다. 지혜있는 자도 어리석은 자도 미련한 자도 모두 죽는 것과 그들의 제산을 뒤에 남겨두고 가는 것을

11. 그들 맘 속으로 자기 집이 영원하며 자기의 머물 곳이 계속된다 하고, 그들의 땅을 그들의 이름으로 부를지라도

12. 사람은 영화(영광) 속에서 밤을 넘기지 못하고 도살되는(머리가 잘리는) 짐승과 같다네.

13. 이것이 어리석의 자들과 그들의 말을 믿고 따르는 자들, 그들에게 주어진 길이다.

14. 양들처럼 스올(지하세계)에 놓여져 죽음이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아침에는 정직한 자들이 그들을 다스리고, 그들의 아름다운은 사라지고 스올에서 머물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취하셔서, 스올의 손아귀로부터 내 목숨(영혼)을 구원하실 것이다.(속량하실 것이다.)

16. 어떤 이가 부자가 되고 그 집의 영광이 많아지더라도 두려워 하지 말라.

17. 그가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

18. 그의 목숨이 살아 있는 동안 그가 스스로 스스로 높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가 그의 조상들에게 가서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20. 사람은 영화(영광) 속에 있으면서 깨닫지 못한다면, 도살되는(머리가 잘리는) 짐승과 같다네.

 

<가톨릭성경>

1 모든 백성들아, 이것을 들어라. 세상에 사는 모든 이들아, 귀여겨들어라. 2 천한 사람도 귀한 사람도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다 함께 들어라. 3 내 입이 지혜를 말하리니 내 마음의 생각은 슬기롭다. 4 나는 잠언에 귀 기울이고 비파 타며 수수께끼를 풀리라. 5 나를 뒤쫓는 자들의 악행이 나를 에워쌀 때 그 불행의 날에 내가 왜 두려워하랴? 6 자기 재산을 믿으며 재물이 많음을 자랑하는 그들. 7 사람이 사람을 결코 구원할 수 없으며 하느님께 제 몸값을 치를 수도 없다. 8 그 영혼의 값이 너무나 비싸 언제나 모자란다, 9 그가 영원히 살기에는 구렁을 아니 보기에는. 10 정녕 그는 본다, 지혜로운 이들의 죽음을, 어리석은 자도 미욱한 자도 함께 사라짐을, 그들의 재산을 남들에게 남겨 둔 채로! 11 그들이 속으로는 자기 집이 영원하고 자기 거처가 대대로 이어지리라 생각하며 땅을 제 이름 따라 부르지만 12 사람은 영화 속에 오래가지 못하여 도살되는 짐승과 같다. 13 이것이 자신을 믿는 어리석은 자들과 그들을 따르며 그 말을 좋아하는 자들의 운명이다. 14 그들은 양들처럼 저승에 버려져 죽음이 그들의 목자 되리라. 아침에는 올곧은 이들이 그들 위에 군림하고 그들은 저마다 자기 처소에서 멀리 떨어진 채 그 모습이 썩어 저승으로 사라지리라. 1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영혼을 구원하시고 저승의 손에서 나를 기어이 빼내시리라. 16 누가 부자가 된다 하여도, 제집의 영광을 드높인다 하여도 불안해하지 마라. 17 죽을 때 그 모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으며 그의 영광도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18 그가 비록 생전에 스스로에게 " 네가 잘한다고 사람들이 널 칭찬한다." 말할지라도 19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모인 데로 가서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라. 20 영화 속에 있으면서도 지각없는 사람은 도살되는 짐승과 같다.

 

 

 <새번역>

1[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고라 자손의 시] 만민들아, 이 말을 들어라. 이 세상에 사는 만백성아 모두 귀를 기울여라. 2 낮은 자도 높은 자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모두 귀를 기울여라. 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고, 내 마음은 명철을 생각한다. 4 내가 비유에 귀를 기울이고, 수금을 타면서 내 수수께끼를 풀 것이다. 5 나를 비방하는 자들이 나를 에워싸는 그 재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리오.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들과 돈이 많음을 자랑하는 자들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리오. 7 아무리 대단한 부자라 하여도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속량하지 못하는 법, 하나님께 속전을 지불하고 생명을 속량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8 생명을 속량하는 값은 값으로 매길 수 없이 비싼 것이어서, 아무리 벌어도 마련할 수 없다. 9 죽음을 피하고 영원히 살 생각도 하지 말아라. 10 누구나 볼 수 있다. 지혜 있는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자나 우둔한 자도 모두 다 죽는 것을! 평생 모은 재산마저 남에게 모두 주고 떠나가지 않는가! 11 a사람들이 땅을 차지하여 제 이름으로 등기를 해 두었어도 그들의 영원한 집, 그들이 영원히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다. (a 칠십인역과 시리아어역을 따름. , '그들 생각에는 그들의 집이 영원하고 그들의 거처가 세세토록 있을 것이라고 하여 땅에다가 그들의 이름을 새겨 두었다') 12b사람이 제아무리 영화를 누린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 미련한 짐승과 같다. (b 칠십인역과 시리아어역에는 12절과 20절이 같음) 13이것이 자신을 믿는 어리석은 자들과 그들의 말을 기뻐하며 따르는 자들의 운명이다. 14그들은 양처럼 스올로 끌려가고, '죽음'이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아침이 오면 정직한 사람은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시들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될 것이다. 15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내 목숨을 건져 주시며, 스올의 세력에서 나를 건져 주실 것이다. (셀라)16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더라도, 그 집의 재산이 늘어나더라도, 너는 스스로 초라해지지 말아라. 17그도 죽을 때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며, 그의 재산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 18비록 사람이 이 세상에서 흡족하게 살고 성공하여 칭송을 받는다 하여도, 19그도 마침내 자기 조상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영원히 빛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고 만다. 20c사람이 제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 미련한 짐승과 같다. (c 칠십인역과 시리아어역을 따름. , '사람이 제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깨달음이 없으니, 멸망할 짐승과 같다')

 

Posted by speramus
묵상2013. 11. 16. 20:01

얼마전 어떤 형과의 만남에서 나눈 대화가 계속 잔향(殘響)이 남아 귀속을 맴돈다.
내가 좋은 교회에 만나 좋은 목사님 아래서 잘 배우고 있다니 형이 하는 말이,
"나는 누구에게 배우는 것을 내려 놨다. 나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간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삶이 어찌 되는지 한 번 보고 싶다."
아~ 찐하다. 이 말의 향기가....
예수의 가르침을 몸소 행하며 살아볼란다.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봐볼란다. 라는 말인데...

나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가 나의 푯대이며 레알 주인이신가?
진리를 찾고 찾는 구도자의 자세와 태도가 여전히 내겐 남아 있는가?
아~ 혼란스러워진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예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인가?
날 가르치소서 주여~ 내게 가르치소서 주님의 길을 주님의 푯대를...

Posted by speramus
일기2013. 11. 14. 22:22

<불혹 즈음의 도토리, 꿈을 꾸다...>

아내랑 텔레비전을 같이 보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보더라도 서로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예능 프로에 무관심하다.
별로 건질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가 연예가 중계나 드라마 같은 거 보고 
웃고 우는 모습이 이해가 안될 때가 많았다.
반대로 아내는 내가 야구를 보거나 개그콘서트 보고 웃는 것이 이해가 안된단다.
따지고 보니 개콘도 예능인데 개콘은 재밌어 하는구나.

개그 콘서트를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가끔 한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으면 재밌는 아이디어 많이 내 놓고 웃길 수 있었을텐데...
조금 마음이 순수하신 분들을 그런 말을 나에게 가끔한다.
"목사님은 개그맨 했으면 잘 했을거 같아요"
나도 그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개그맨 했으면 못하진 않았을거다. 그래도 길게 가진 못했을 거 같다.
워낙에 수줍음이 많은지라...
내가 이런 말 하면 꼭 콧방귀 끼는 사람들 있더라.
저 수줍음 많은 남자예요.
어쨌든... 내가 지금 개그맨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은
개그맨이 될 꿈을 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누군가 나에게 개그맨이 되면 좋겠구나 라고 일깨워 주기만 했더라도...
나는 아마도 개그맨이 돼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자신도 나의 끼를 인지를 못했고 주위 사람들도 감히 그런 생각을 못했다.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너는 이거 하면 잘 할거야~'라는 말 자체를 들어 보지 못한 거 같다.
나는 너무 자신감이 없는 아이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스무살 무렵 나는 익숙치 않은 꿈이란 것을 꾸기 시작했다. 
홍성건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선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이 생겼다.
그거 하면 정말 인생이 아깝지 않을 거 같았다.
보람될 거 같았다.
그 후 거의 20년을 달려 왔다.
아무것도 의심않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무뎌질대로 무뎌지고 호기심도 살아져 버리는 나이 불혹에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내와 함께 같이 보는 유일한 두 가지 프로가 있다.
국가대표 축구경기와 (후반 15분만, 90분 다 보면 시간이 아까워서^^)
최근엔 힐링캠프다.
요즘 포털에 신경숙 힐링캠프가 하도 뜨길래 
오늘 애들 빨리 재우고 아내와 함께 보았다.
나는 우리 누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아니 더 엄밀히 얘기하면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
(꿈은 이뤄진다. 라는 것이 신작가 편의 주제문구였다.)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고 한 것은
그가 겪었던 어린 시절의 시골의 어려운 환경에서 겪었던 경험이 딱 그것이었다.
농사와 자연 속에 파묻혀 그것을 먹고 자란 감성은 그의 풍부한 자산이었다.
다만 나와 다른 것이 있다면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 뿐이다.(치명적인 차이다 어쩌지?ㅎㅎ)
고등학교 보낼 돈이 없어서 서울 공단에 와서 돈을 벌면서 밤에 학교를 다닌 이야기는 우리네 누나들의 이야기이며 친구들의 이야기 아닌가?
작가는 너무 부끄러워 그 마음 속에 있는 작가의 꿈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단다.
그런데 반성문을 본 선생님이 그에게 "소설가가 되어 보지 그러니?"라고 말했고,
그 말은 감춰왔던 마음 속의 작가의 꿈을 터뜨릴 수 있게한 도화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안에 이미 신경숙 작가가 지니고 있는, 가난을 먹고 자란 순박한 감성과 자연속에서 길러진 풍성한 감수성이 내 안에도 내재 돼 있다고 본다. 나의 큰 자산이다.
다만 나에게 도화선이 없었고, 거기에 불을 붙여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불혹의 나이에 꿈을 꾼다.
나도 이 자리에 부끄럽게 살포시 적어봅니다.
"나도 글쟁이가 되고 싶다^^"

고등부 전도사로 4년을 섬기며 아이들에게 그렇게 꿈 이야기 많이 했다.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거 하라고, 정말 그거 할 때 심장이 뛰고 행복한 거 하라고.
그러나 나는 이제 나에게 질문한다. 
너 정말 니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냐? 정말 그거 하면 참 행복한 거 하고 사냐?
더 궁극적으로 "너에게는 꿈이 아직 있냐?"고 묻는다.
글쟁이의 꿈, 꼭 키워가고 싶다.

나는 거대한 참나무를 품고 있는 하나의 작은 도토리이다.
도토리의 꿈은 이제 아장아장 꿈틀거리고 있다.
어떤 글,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글이란 녀석은 참 매력이 있다.
자꾸 쓰다보면 늘 것이고, 좋은 글 읽다보면 글 쓰는 감각도 늘겠지.
너무 막연한가? ㅎㅎㅎ
더 구체화 되겠지^^ 
염산교회 고등부 친구 중에 글쟁이가 되고 싶은 한 녀석을 만났다.
지윤이란 친군데... 이 친구랑 요즘 얘기를 많이 나누고 있다.
같은 꿈 꾸는 동지로 우린 20년의 나이차를 넘어 많은 영감을 주고 받고 있다^^

힐링캠프 신경숙도 처음부터 잘 쓰진 않았겠지.
좋은 글 읽다보면 어느새 좋은 글이 나오지 않겠는가?
불혹 즈음에 무뎌지고 함몰된 꿈을 꿈틀꿈틀 깨우려니 설렌다.
여러분 15년 후에 뵙겠습니다^^
좋은 작품으로 우리 만납시다!!
도토리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도토리도 꽃피우는 재주가 있다.
도토리도 참나무가 되는 재주가 있다. 암 그렇고 말고^^

Posted by speramus
설교문2013. 11. 10. 06:50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우리 인생은 B D사이의 C의 연속이다. B는 태어나다는 뜻의 birth이구요 D는 죽는다는 뜻의 death입니다. 태어남과 죽음의 사이에 있는 C choose입니다. 선택하다는 뜻이지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택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오늘 아침도 교회에 갈까 말까를 고민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이곳에 오신 것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람의 선택이 나옵니다. 창세기 12장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땅과 자손과 이름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그 약속이 실현되어 갑니다. 아브라함은 새로 이사온 땅에서 재산도 많아지게 되고 유명해지기 시작했죠. 그런데 문제는 함께 가나안땅으로 이주해 온 조카 롯과의 갈등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목민들에게 재산은 가축이었습니다. 가축들이 많아지자 양과 소들을 기를 땅(목초지)이 부족했습니다. 서로 좋은 땅을 차지하여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롯과 아브람의  종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집니다. 아브람은 뭔가 결정을 해야했고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여러분 너무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돈이 많아지면 다툼도 많아지고 더 죄짓기 쉽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을 선택합니다. 더 부자가 되는 쪽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의 선택의 기준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갈등과 다툼을 피하는 쪽이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이었습니다. 하지만 롯의 선택의 기준은 달랐습니다. 롯은 더 편안하고 부한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문명이 발달된 도시쪽을 선택했고, 기름져 보이는 땅을 선택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롯은 잘못된 선택을 하여 가정이 파탄이 나 버리게 됩니다. 롯은 돈이, 재물이, 부가 자신에게 구원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부자가 되려고 노력했고 더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점점 불행해졌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달랐어요. 아브람은 하나님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믿었어요. 그에게 재물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는 평화를 위해 더 안 좋은 땅을 선택했습니다. 더 좁은 길을 선택한 것이지요. 하나님은 롯과 아브람 중에 어떤 사람의 선택을 기뻐하셨나요? 아브람입니다. 아브람은 롯의 삼촌이었고 연장자였습니다. 관례상 그가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삼촌이 아니라 종의 모습으로 롯을 대합니다. 먼저 좋은 것을 선택해라. 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더 편한 삶, 더 가지려하는 삶을 선택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고 내가 손해 보는 선택을 하면 어떨까요? 거창고라는 고등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에 십계명이 있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해 드리죠.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 자리로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롯의 선택인가요? 아브람의 선택인가요?

 

Posted by speramus
찬양콘티2013. 11. 8. 06:06

2013년 11월 8일 금요기도회 콘티

주제 :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선포하고, 십자가를 지는 순종의 삶을 고백하기.


1.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주 향한 (E- 마커스 버전)

2. 이 날은 주가 지으신 날(E)

3. 우리 함께 기뻐해(E)


4. 문들아 머리 들어라(G)


5. 예수 우리 왕이여(A)

6. 고개들어 주를 맞이해(A)

7. 주 임재 안에서(A)

8.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A- 찬송가)


원래 제가 선호하는 패턴(?)은 첫 찬양에 잠잠하게 하나님 앞에 반응하고 찬양할 수 있는 곡을 위치시키는데

오늘은 밝고 경쾌한 노래로 시작합니다.

성령님이 그걸 바라시면 그렇게 하는 거죠 제 선호도와 상관 없이?^^

첫곡은 늘 중요합니다. 

세상에 찌들리다 예배의 자리로 온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 첫문을 여는 것이기에

첫 찬양에서 마음을 활짝 연다면 이후의 찬양에는 더욱 마음을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보통 금요기도회의 평균 연령이 50대 이상이기에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노래들을 잘 안 넣었는데

이제 생각을 조금 바꿨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젊은 사람들을 더 못오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좀 더 영하고 젊은 분위기로 콘티를 짜려 노력해 볼까 합니다^^

물론 할머니들은 힘들어 하시겠지만 말입니다.

그 분들도 이해하실 겁니다 ㅎㅎ

그래서 마지막 곡은 찬송가를 넣어주는 배려(?)를 했습니다.

너무 오랜 만에 콘티 올리네요.

좋은 날 되세요^^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