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2014. 1. 11. 18:30

<마태복음 11장 묵상 - 누가 큰 자입니까?>

11장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방문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이 보낸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의 핵심은 “우리가 기다렸던 분이 예수님 당신이십니까?”였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길을 예비하려고 분투한 사람들인데 우리가 한 일이 옳은 일입니까?”하는 질문으로 들립니다.
세례자 요한은 분명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그 분이라고 분명히 인식했는데,
왜 자신의 제자들을 다시 보내서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 판단으로 감옥에 갇힌 요한이 자신의 생의 최후를 깨닫고 자신이 걸어온 길이 옳은 길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신이 똑바로 살고 있는지 잘 살아 온것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건 아니었을까요?
우리 또한 이런 질문을 주님께 종종 드리곤 하죠.
“주님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입니까? 너무 바보처럼 사는 것은 아닙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귀신에 들려서(13절 참조) 그런 것이라 손가락질 하는데요?”
참 진리를 위해 살아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 때론 바보처럼 느껴지고 어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서 죽음을 감지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의 의미였고 목적이었던 그분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평가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가고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을 평가하기 시작합니다.(7절 이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세례 요한이 가장 큰 자라는 겁니다.
광야에서 낙타털옷을 입고 야생꿀을 먹으며 메뚜기를 잡아 먹고 사는 세례 요한이 가장 큰 자라니요?
‘큰 자’에 대한 예수님의 관점이 완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세상에서는 귀신들린 사람이라 평가를 받으며 미친 사람 취급 받지만 예수님에게서는 가장 큰 자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자’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예수님께서 판단하시는 ‘큰 자’ 소위 말하는 ‘영적 거인’은 말씀에 자신의 삶을 투신하는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며 자신의 삶의 부르심을 이뤄가는 사람이죠.

13절에 보면 '선지자와 율법’이라는 말이 나오죠. 
신약성경에서 ‘선지자와 율법’ 또는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이것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약 성경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눕니다. 선지서 율법서 시가서로 말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구분법이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는 말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장인 ‘말라기’ 마지막 장의 예언이 요한에 관한 예언이라는 뜻입니다.
말라기 4장 5절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이 말라기 말씀이 말하는 선지자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예수님이 확증해 주십니다.
요한은 이 말씀에 의해 자신의 삶의 목적을 발견한 사람이고 자신의 삶의 뜻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내어 던졌다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그가 큰 자라는 겁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이고 진리를 위해 자신의 삶을 다 헌신했던 사람이란 겁니다.

그런데 천국(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례 요한보다 큰 자들이 수두룩하다는 겁니다.(11절)
세례요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반응하며 움직이는 자들, 그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피리를 불면 그것에 맞춰 춤추고, 예수님이 슬피 울면 함께 우는 그 사람이 큰 자입니다. (17절)
예수님께 반응하는 사람이 큰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은 많은 희생과 피로를 감수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감내해야 하고 가까운 사람들의 조롱도 이겨내야 합니다. 미친 사람이라는 평가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진리를 위해 투신하는 삶, 말씀에 반응하는 삶에서 오는 누적된 피로도는 그 무엇으로도 풀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감옥 안에서 인생을 하직하기 직전 상당한 스트레스와 압박에 시달렸을 것이고 그 고단한 삶의 누적된 피로도로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런 세례자 요한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은 진리와 말씀에 자신의 삶을 투신한 ‘하나님 나라의 큰 자’들을 향한 위로의 말씀을 건내십니다.
11장의 마지막 세 절의 말씀은 꾸준히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고단한 영적 거인들을 향해 던지는 주님의 위로의 말씀인 것이지요.
바로 여러분과 저를 위한 말씀 아닐까요?
고단한 예언자 요한을 향해 던지신 마지막 위로의 말이 우리 심령에 울려 퍼집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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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콘티2014. 1. 8. 15:51

<신년 새벽기도 첫째날 (1월 6일) 콘티>

1. 내 평생 사는 동안 (D)

2.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E)
3. 좋으신 하나님 (E-F-G)

4.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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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새벽기도회 둘째날 (1월 7일) 찬양콘티>

1. 슬픈 마음 있는 사람 (F-어노인팅 버전)
2. 약할 때 강함 되시네 (F- 김경헌 버전)

3.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 (E)
4.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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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새벽기도회 셋째날 (1월 8일) 찬양콘티>

1. 세상의 유혹 시험이(G)
2. 예수님 찬양(G)
3. 찬양하라 내 영혼아(G)
4. 내눈 주의 영광을 보네(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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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새벽기도회 넷째날 (1월 9일) 찬양콘티>

1.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C)
2.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C)
3.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G)
4. 주 음성 외에는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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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새벽기도회 셋째날 (1월 10일) 찬양콘티>

1. 예수 우라 왕이여 (G)
2.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G)
3. 난 예수가 좋다오 (G)
4.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D)
5. 오직 주의 사랑에 메여(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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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2014. 1. 4. 20:58

선율이에게 팥죽할멈과 호랑이 책 읽어주다가

선율이의 급작스런 팥죽 주문에 만들어 보게 된 새알죽 입니다.

첫 시도입니다.

동지에만 먹는 줄로 아시겠지만 아이가 원하면 아빠는 언제든 새알 죽을 만들어야 합니다^^




1. 팥 삶기

팥은 종이컵 한 컵이 2인분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두 컵정도로 4인분을 준비했습니다.



씻어서 압력밭솥에 30분 정도 끓여줍니다.

압력밭솥에 끓일 때 물은 밥할 때의 2배 정도를 넣어 줍니다. 충분히 많이 넣어야 합니다.

물이 다 쫄아들거든요.


2. 팥 으깨기

팥이 잘 쌂아졌으면 이제 팥을 으깨주어야 합니다.

채에다 삶아진 팥을 놓고 물을 4컵 정도 준비합니다.

물을 부으며 팥을 으깨며 채로 밭아 냅니다.




3. 찹쌀 반죽하기

새알죽의 핵심은 새알이 얼마나 모양이 잘 살아 있느냐입니다.

얼마전 저희 교회 외국인 공동체에서 팥죽을 쒀 먹었는데 새 알이 다 문드러져 치즈죽을 먹는 느낌이었습니다.

자 여기서 새알 모양 살려내는 반죽의 비결을 알려드립니다.

포인트 1. 팔팔 끓는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반죽을 합니다.

팔팔 끓는 물로 해야 새알이 퍼지지 않습니다.

포인트 2. 반죽에 설탕을 적당량 섞어줍니다.

정말 신기하게 새알의 모양이 살아 있습니다.

포인트 3. 반죽은 묽지 않고 되게 하라.

반죽을 되게하려면 쌀 가루 여분을 넉넉히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묽은 반죽에 쌀 가루를 계속 추가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반죽을 한 것으로 새알을 만들면 됩니다.


 새 알은 조금 작게 만들어 줍니다.

삶으면 삼분의 일 크기로 커지거든요.

요렇게 만들어 봅니다.


제가 만든 이 크기도 좀 큰 편입니다. 

이 새 알을 아까 밭아 놓은 팥물에 넣는 것입니다.


4. 걸러 놓은 팥물 끓이기.

이제 밭아 놓은 팥물을 끓이는데요. 

저희 누나는 밭아 놓은 것 중에 앙금이 갈아 앉은 후 위에 있는 물을 먼저 끓인 후 새알을 넣는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렇게 해 봅니다. 윗물 그러니까 덜 텁텁한 묽은 물을 끓이다 끓기 시작하면 새알을 넣습니다.



 

새알은 익기 시작하면 떠오르게 돼 있습니다.

자 떠오르기 시작하면 걸러 놓았던 앙금을 함께 넣어 한 소끔 끓입니다.




소금을 적당량 넣어서 간을 맞춘 후 불을 끄면 새알 죽 완성^^



제법 먹을만 하죠? ㅎㅎ
팥죽 할먼과 호랑이에서 시작된 팥죽이 이렇게 완성되네요.

언제든 저희집에 팥만 들고 오시면 팥죽 끓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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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2014. 1. 4. 16:16

추억의 파래김 볶음을 오늘 만들어 봅니다.

도시락 반찬으로 어린 시절 최고의 반찬이었죠.

색깔이 파랗지도 않은데 왜 파래김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거 참 맛나죠^^


준비물 : 파래김 뭉탱이로 파는 것, 소금, 설탕, 통깨, 참기름, 식용유


1. 파래김을 쫙쫙 찢어 줍니다. 


2. 찢어준 파래김을 보울에 넣고 적당량의 기름으로 섞어 줍니다. 기름은 식용유 반 참기름 반의 비율로 섞은 것으로 합니다.

요렇게요.

여기에 소금 조금, 설탕 조금 뿌려서 섞어 줍니다.

양은 정확하게 기재하지 못합니다. 그냥 대충 넣으세요. 파래김이 기본적으로 간이 되어 있으니 소금은 설탕보다 적게 넣으세요.



3. 프라이팬에 볶기

이제 보울에 기름과 소금 설탕에 섞은 파래김을 달군 후라이팬에 볶습니다.

2-3분 정도 볶다 통깨를 살살 뿌려 볶아주면 파래김 볶음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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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콘티2014. 1. 3. 08:15

2014년 1월 3일 금요기도회 콘티


주제 : 은혜, 평강, 사랑으로 채우소서


1.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G-A)

2. 은혜로다 (A)


3.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 (E)


4. 주의 자비가 내려와 내려와 (D)

5.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D)


6. 내가 믿고 또 의지 함은 (아 하나님의 은혜로-D)

7.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D)

8. 오직 주의 사랑에 메여 (D)




새해 첫 금요기도회 콘티입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는 어제 밤 꿈 속에 너무나 강력하게 저를 움직였던 곡이라 첫곡으로 실었습니다.

저 곡이 꿈 속에서 완전히 저를 압도해서 꿈에서도 제 심령을 울리는 겁니다.

그 은혜가 너무 큰 나머지 눈을 떴다는 사실, 믿거나 말거나한 얘기지만 사실입니다.

원래는 2번 곡인 "은혜로다" 즉 시작됐네 를 1번 곡으로 넣으려 했지만 바꿨습니다.

같은 A키 곡이라 두 곡을 연이어서 부르려 합니다. 물론 박자가 서로 달라서 1번 곡 후 통성기도를 넣어서

기도가 마무리 되면 자연스럽게 2번 곡으로 갈려고 합니다.


3번 곡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라는 곡은 올해 우리 교회 교제송으로 띄우려고 새해 벽두부터 부르려고 합니다.

우리는 성도간의 교제를 통해 주님의 귀한 것들을 채우기도 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지만 종종 무시되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해 첫 예배 때부터 집어 넣었습니다.


이후에는 주님의 사랑으로 채움받는 주제의 곡들을 배열시켰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연료 공급받아 활활타오르는 한해 되길 원합니다.

Consume our life for God with His love :D

Posted by speramus
묵상2014. 1. 2. 08:19

#묵상문자

<마태복음 2장 - 나사렛에 오신 예수>


본문 마태복음 2장은 예수님의 탄생과 성장에 대한 짧은 언급이 있는 장입니다. 이 장에 나오는 지명(地名)에 대해 주목해 봅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은 집이라는 뜻의 '베트'와 떡이라는 '레헴'의 결합으로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이 떡집에서 태어났으니 말되죠? 하나님의 위트인 듯합니다.


헤롯의 박해를 피해 예수님 가족은 이주노동자로서 이집트에서의 삶을 사시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나그네 삶의 애환을 이해하고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은 나중에 예수님의 성장기에 마리아와 요셉을 통해 상기됐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땅의 나그네 삶을 살아가는 고단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의 삶을 예표하는 일이었다 할 수 있을까요?


그 다음 나오는 지명이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입니다.

오늘 묵상은 나사렛이라는 지명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갈길리는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호수의 이름입니다.

그 호수를 타고 흐르는 강이 요단강이기도 하죠.

성지순례를 가면 느끼는 것이지만 갈릴리는 너무나 매력적인 땅입니다.

풍부한 물의 공급으로 농사도 잘 되고 고기도 잡을 수 있으며 정서적으로 매우 안정을 줄 수 있는 환경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환경에서 30세가 되기까지 성장하십니다.

예수님의 자연관찰에서 나온 비유들을 보면( 예를 들면 농사와 어업에 관련된 비유들과 다양한 자연과 관련된 비유들)

모르긴 몰라도 예수님의  EQ 지수는 상당했을 것이고 그것은 나사렛에서의 성장 배경에서 나온것이라 이해됩니다.


그러나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의 성장은 예수님이 공생애(공적인 활동)를 펼치시는 데 상당한 장애물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 출신인지를 가지고 갑론을박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의 나다나엘 같은 경우에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는 멀까지 하는 것을 보죠.

갈릴리 지방이 이스라엘 전체 안에서 소외된 지역이었을 뿐 아니라 나사렛이란 동네는 갈릴리에서조차 소외되고 차별 받는 곳이엇습니다.

그러기에 나사렛 출신 예수는 그의 출신에 따라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사렛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예수님의 십자가 명폐에까지 따라가 붙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명폐에 이런 타이틀이 붙습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 유대인들의 왕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당시 이스라엘의 식민통치국이었던 로마인들의 눈에 보여진 예수도 나사렛 사람이었습니다.

천하디 천한 동네요 가장 소외된 땅이었던 나사렛에서 예수님은 성장하였습니다.

그분의 탄생이 베들레헴 마굿간이라는 최고의 겸손한(humble) 장소였을 뿐 아니라 성장 또한 가장 낮고 천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낮고 천한 곳에서의 삶이었던 것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를 닮아가는 삶이고, 예수적이어야 한다면…

우리의 관심과 눈길이 머물러야 할 곳이 바로 나사렛적인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올 한 해 우리 삶이 나사렛을 향하기 원합니다.

소외된 곳, 불평등과 편견 때문에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나사렛 말입니다.


예수님이 서울에서 자라신다면 어느 동네에서 자라실까 짖꿎은 상상을 해 봅니다.

아마도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인 '염리동'이 아닐까요?

이곳이 서울에서 가장 낮고 천한 곳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이죠.

사역지로 처음 염리동에 머물게 되었을 때, '이곳이 서울인가? 이것이 21세기의 서울인가?'하는 의구심을 가졌었습니다.

열악한 주변환경과 주거환경 탓에 도시 소외 계층들이 몰려들었고 이주노동자들의 안식처가 되어가는 염리동.

이곳은 참 나사렛 스러운 동네였습니다.

이제는 이곳에서 사역하는 것에 자부심까지 갖게 됩니다.

예수님이 머무실 법한 곳이기 때문이죠.

'올 한 해 더 낮은 자리에 머물길 원합니다. 더 소외된 이웃들의 삶에 동참하게 하소서.

더 차별받는 이들의 벗이 되게 하소서.'

이것이 나사렛 사람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서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Posted by speramus
묵상2013. 12. 31. 10:52

<창세기 18장 묵상 - 내년 이맘 때 다시 오겠다.>

"12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늙어 버린 나에게 무슨 육정이 일어나랴? 내 주인도 이미 늙은 몸인데.' 13그러자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사라는 웃으면서, '내가 이미 늙었는데, 정말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랴?' 하느냐? 14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내가 내년 이맘때에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15사라가 두려운 나머지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하면서 부인하자, 그분께서 "아니다. 너는 웃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창세기 18장 12-15절)"

2013년의 마지막 날의 아침 묵상입니다.
창세기 18장은 아브라함이 99세요 사라가 90세에 하나님과 나눈 대화의 내용입니다.
사라는 폐경을 넘어 죽음을 준비해야 나이가 아닌가요?
아브라함도 기력이 남아 있지 않고 희망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있는 것이라곤 하나님의 약속 뿐이었습니다.
이제 자포자기로 넋을 잃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다시 찾아 오십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약속을 재확인 시켜주십니다. 
내년 이맘 때에 너에게 돌아올 것인데 그 때에는 사라 너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어버립니다.
어떤 의미에서 비웃음이죠.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겁니다.

하나님은 참 유머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사라와 아브라함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의 이름이 사라의 웃음에서 유래가 됩니다.
둘에게서 태어날 아이의 이름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라고 웃어버리며 반응하는 사라에게 하나님은 웃음으로 반응해 주신것이지요. 하나님이 과연 나를 위하시는가 하는 우리의 비웃음과 조롱에도 웃음으로 반응해 주시는 하나님, 참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저에게 다가왔던 부분은 "내년 이맘 때 내가 다시오겠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내년 이맘 때 내가 다시 올 때 너의 품에는 나의 약속의 열매가 안겨있을 것이다.
아멘

올해가 다 갔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날 아침에
빈 바구니로...
올해 이루지 못한 나의 목표와 열매때문에 한숨이 나오기도 하며 자책해 보기도 합니다.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존재인가? 겨우 이것 이루려고 이 발버둥을 쳤는가? 참 후회스런 아침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은 '내년 이맘 때 니가 바라는 그 열매를 너는 맺고 있을 것이다.'
한숨은 희망으로 바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약속이 다시 샘 솟듯 제 맘에 넘쳐 흐릅니다.

내년 이맘 때 , 그러니까 내년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우리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올 한 해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을 기대하며 묵은 것을 보내고 새로운 하나님의 약속을 맞아 봅니다.
내년 이맘 때 다시 만나게 될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2013년의 마지막 날

김경헌 목사 올림

Posted by speramus
찬양콘티2013. 12. 26. 11:13

* 콘티 짜기에서 많은 곡을 어떻게 짤 것인가? 몇 가지 팁.


콘티짜기란 쉽지 않다.
흐름이 있어야 하고 앞 뒤의 연관성이 있어야 하기에 쉽지 않다.
특별히 금요기도회 같이 30-40분 되는 모임의 콘티는 더 많은 곡을 요구하기에 더 쉽지 않다.
보통 나는 1곡에 평균 런닝타임 6-7분분 정도로 잡는다.
40분이면 6곡 에서 7곡 정도로 짠다.
8곡을 정하고도 8곡을 다 끝낸 적은 드문것 같다.
40분에 7곡이면 충분하다. 내 스타일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다. 
개인마다 인도하는 방식이 다르니 곡수도 다르리라 본다.
곡의 갯수와 상관 없이 콘티를 짤 때는 흐름을 염두에 두고 곡을 배열해야 한다.

많은 곡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 간단한 팁이다.

1. 두 세개의 그룹을 나누라.
전체를 짜기 힘들면 두 세 개의 뭉탱이 그룹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처음엔 감사 곡 2곡, 그 다음은 회개곡 2, 그 다음은 찬양곡 2, 그 다음은 경배곡 1곡 그 다음은 헌신 1곡
이런 식으로 그룹을 지어서 짜면 조금 수월하다.
나는 크게 두 개 또는 세 개의 그룹을 짓는다.
전반부에 찬양 후반부에 경배와 헌신, 이것이 기본 흐름이다. 

2. 한 곡부터 시작하라.
콘티 짤 때, 꽃히는 한 곡이 있다.
그 곡을 잡고 늘어져야 한다. 
그 곡에서 시작하여 앞 뒤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면 이번 주 콘티에서 나는 5번 곡 지존하신 주님 이름 앞에가 계속 생각 났고
그 곡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앉았다.
그리고 앞뒤로 곡들을 배열하면서 콘티의 짜임새를 만들어 갔다.

오늘은 이정도로 정리하고자 한다.
늘 강조하지만 잘 짜여진 콘티는 깊은 예배의 시작이다.


Posted by speramus
찬양콘티2013. 12. 26. 11:11
<2013년 12월 27일 금요기도회 찬양 콘티>

주제 : 한 해 동안의 변함 없는 사랑에 대한 감사 그리고 주인 되신 주님을 향한 헌신의 다짐.

1. 거룩하신 하나님 (E키로 낮춰서 부름)
2. 감사와 찬양드리며(E)

3.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G)
4. 내가 매일 기쁘게 (G)

5. 지존하신 주님 이름 앞에 (G)
6. 약할 때 강함 되시네 (G)
7. 주 임재 안에서 (G키로 낮춰 부름)
8. 내가 주인 삼은 (G)

-------
* 콘티 짜기의 한 가지 팁.

콘티짜기란 쉽지 않다.
흐름이 있어야 하고 앞 뒤의 연관성이 있어야 하기에 쉽지 않다.
특별히 금요기도회 같이 30-40분 되는 모임의 콘티는 더 많은 곡을 요구하기에 더 쉽지 않다.
보통 나는 1곡에 평균 런닝타임 6-7분분 정도로 잡는다.
40분이면 6곡 에서 7곡 정도로 짠다.
8곡을 정하고도 8곡을 다 끝낸 적은 드문것 같다.
40분에 7곡이면 충분하다. 내 스타일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다. 
개인마다 인도하는 방식이 다르니 곡수도 다르리라 본다.
곡의 갯수와 상관 없이 콘티를 짤 때는 흐름을 염두에 두고 곡을 배열해야 한다.

많은 곡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 간단한 팁이다.
1. 두 세개의 그룹을 나누라.
전체를 짜기 힘들면 두 세 개의 뭉탱이 그룹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처음엔 감사 곡 2곡, 그 다음은 회개곡 2, 그 다음은 찬양곡 2, 그 다음은 경배곡 1곡 그 다음은 헌신 1곡
이런 식으로 그룹을 지어서 짜면 조금 수월하다.
나는 크게 두 개 또는 세 개의 그룹을 짓는다.
전반부에 찬양 후반부에 경배와 헌신, 이것이 기본 흐름이다. 

2. 한 곡부터 시작하라.
콘티 짤 때, 꽃히는 한 곡이 있다.
그 곡을 잡고 늘어져야 한다. 
그 곡에서 시작하여 앞 뒤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면 이번 주 콘티에서 나는 5번 곡 지존하신 주님 이름 앞에가 계속 생각 났고
그 곡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앉았다.
그리고 앞뒤로 곡들을 배열하면서 콘티의 짜임새를 만들어 갔다.

오늘은 이정도로 정리하고자 한다.
늘 강조하지만 잘 짜여진 콘티는 깊은 예배의 시작이다.
Posted by speramus
묵상2013. 12. 25. 11:13
‪#‎묵상문자‬
<누가복음 2장 1-14절>

두 명의 왕이 등장합니다.한 명은 로마의 황제 가이사이고 다른 한 분은 평화의 왕 예수님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추구한 평화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과 권력을 사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평화를 추구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우고 자기를 부인하며 발생되는 평화를 추구했죠.

로마의 황제는 가난한 식민지 백성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 본적지로 돌아가 호적을 하도록 강요합니다.
온 세계는 로마의 힘에 눌려 있었기에 가이사의 명령은 세계 만민이 복종해야할 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나사렛이라는 작은 동네의 아낙네였던 마라아에게 까지 그 명령은 미치게 됩니다.
로마황제의 말은 질서요 평화를 의미했습니다.
로마제국이 힘으로 다른 여러 나라 백성들을 침묵시키고 이뤄낸 평화를 로마식 평화라 하여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부릅니다.
이런 로마의 평화는 다른 사람을 억누른 결과로 얻는 평화이고 폭력으로 이뤄낸 평화이지요.
예수님은 이런 폭압적인 상황 가운데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목동들은 로마황제가 주는 평화와 전혀 다른 평화를 맛본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화와 기쁨의 소식을 맨 먼저 전해 들은 사람들은 폭력과 억압의 삶 맨 가장 자리에 놓여진 사람들이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목동은 사회의 부랑자들이나 무지렁이들에게 남겨진 천하고 천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도시의 가장 자리 변두리에서 외롭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참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이 맨 먼저 전해졌습니다.
고달픈 순례의 인생길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평화가 필요했던 것이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정상인들의 사회에서 따돌림받은 비천한 목동을 선택하여 첫 성탄의 기쁜 소식을 맡깁니다.
정상인들의 경우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보고 "구세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왜냐면 그 아기는 너무 연약하고 무력해 보이기에 그들을 구해줄 메시야가 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강보에 싸여 있는 가난하고 연약한 아기가 바로 온 세상의 주요, 그리스도요, 구세주라는 목동들의 믿음은 우리가 가져야할 성탄 신앙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가이사의 평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평화입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자기를 부인한 사람들이 주는 평화가 바로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알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평화라고 하지요. 폭력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강요당하는 평화가 아니라 자기를 비우고 부인하여 주는 평화입니다. 가장이 자기의 혈기를 부인하면 가정의 평화를 선물로 줍니다.
사장님이 혈기를 죽이고 자기 이기심을 십자가에 못박으면 회사의 가장 말단 직원까지 평화를 누립니다.
대통령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버리고 자기 사람 챙기기를 버리고 공공선에 투신하면 그 나라의 모든 백성들은 평화를 누립니다.

우리 예수님은 세상의 평화, 즉 가이사의 평화가 아닌 어린 아기들 안에 발견되는 자기 비움의 평화를 우리에게 선사하셨습니다.
그 평화는 인생의 가장 고단한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먼저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대와 나 그 평화를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지요.
고단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평화의 왕으로 우리 주님이 오셨습니다.
참 평화를 전하십니다.
우리 또한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주님의 방식으로 평화를 끼치는 사람이 되어 세상을 더 밝게 만들었음 좋겠습니다.

성탄 아침에 참 평화 샬롬을 전합니다.
평화의 왕이신 주님의 기쁜 소식을 맡은 자요 여러분의 목자인 김경헌 목사 올림^^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