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2013. 7. 13. 06:44

하나님은 말씀으로 확인시키신다.

어제 아침 아내와 비전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어제 저녁 금요기도회 말씀을 통해 바로 확인해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말씀하심에 깜짝 놀란다.

설교들으며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김종익 목사님의 설교 메모한 내용을 나눠본다.


본문: 출애굽기 4장 18~31

제목 : 비전을 위한 여정

설교자 : 김종익 목사님


1. 비전 여행은 작별 여행이다. 

비전을 품은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작별이 있다. 

예)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좇았다. 

작별을 잘 못하니 축복 있는 비전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 

하루끼  에세이에 나온 내용, 여행가서 버릴 옷을 가져 가서 하나씩 버린다. 

짐도 가벼워지고 뭔가 새로워지는 느낌이 들더라.

작별이 돼야 여행이 된다. 

인생은 끝없는 달리기 경주와도 같다.

짐을 줄여야 달릴 수 있다.

욕심도 걱정도 반으로 줄여야 비전을 향하여 달릴 수 있다. 


2. 비전여행은 말씀을 따르는 길이다. 

여행을 잘하는 사람들은 일단 간다. 

여행을 못가는 사람들은 뭔가 약점이 극복된 후 떠나려 한다.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서 망설인다. 

하지만 그걸 극복하면 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성경의 인문들은 모두 약점 투성이였다.

예)모세는 비전이 꺽였던 사람이었고 입이 어눌했다.

다윗은 10계명의 5-10계명까지 범함

아브라함은 아내를 버림

이들이 어떻게 비전을 성취하게 하는가??

말씀을 따랐을 뿐인데 채워주시고 인도하셨다. 

하나님께서 앞세워 놓은 것이 말씀이다. 

말씀대로만 순종하는 길이 비전여행이다. 

"하나님 끝까지 갑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말씀이 무엇이라 했던가??'에 집중하라.


3. 비전 여행의 목표는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에 있다. 

모세는 부르심의 자리에 가는 여정에서 할례를 행하였다. 

성경의 난해 부분이다. 할례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상징이다. 

중대한 일을 행하실 때 하나님은 할례를 명령하실 때가 있었다. 

'성별한 개인이 되어라. '는 의미이다. 

자식들이 할례를 안 받아서 포피를 베었다. 

이것은 비전과 상관없는 삶, 믿음과 상관 없는 삶을 산 것을 의미한다.

비전을 위해 쓸만한 사람으로 서지 못한 것은 오염된 것이다. 

아멘 하고 따를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더러워 진 것이다. 

신앙인으로 먼저 세우시기 원하신다. 

디도서 2장 14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선한 일애 열심을 내는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은 깨끗케 하시는 것이었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느냐보다 그것을 청산했느냐가 문제다. 

정결하길 원하신다. 

할례 받으란 것이다. 

비전은 사라지고 우리가 남기는 것이 무엇인가? 

때로는 가족을 버려야 할 때도 있다. 

가족과 함께 이루길 바라실 수도 있다. 

모리아 산의 시험은 아브라함만의 시험뿐만 아니라 이삭의 시험이기도 했다. 

비전을 위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성취했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과 성취의 여부를 따지면 모세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약속의 땅을 밟아 보지도 못했고, 평탄한 삶을 살지도 못했다.

하지만 모세는 비전을 위해 산 사람이다. 

성공 실패가 비전의 판단기준이 아니다. 순종이다. 

순종이 목표다. 순종이 비전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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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에서 느낀 점>

1. 비전을 위해서 떠나야 한다.

가족과도 이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부분은 비전을 위해 떠나는 사람에게 가장 힘든 부분이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 장인 장모님, 모두 우리가 떠나는 것을 반기지 않으신다.

그러나 떠나야 할 때가 올 것이다.


2. 비전을 위해 가족이 함께 시험을 당할 수도 있다.

모리아 산의 아브라함 가족은 아브라함 혼자 받는 시험이 아니었다.

그들을 보낸 사라, 이삭 모두가 시험을 받고 있었다.

가족 전체가 이 시험을 잘 통과해야 한다.


3. 비전의 목표는 성취가 아니라 순종이다.

이 부분은 정말 주옥같지 않은가? 성취가 아니라 순종이다. 

그 비전을 이뤘는가? 성공과 실패로 판단하는데, 어리석은 것이다.

비전의 성공여부는 순종에 있다.

주님 말씀하시면 따라가는 것이다.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밟지 못했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1. 7. 25. 07:27
여름수련회가 지난 토요일부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수련회는 종암교회 전체 교회학교가 연합하여 드린 연합수련회였다.

내가 맡은 역할은 찬양인도와 새벽예배 말씀 선포였다.

96년부터 시작한 찬양인도이니 이제 15년이 되어간다. 찬양인도에 은사가 있는 것은 수 없이 많은 찬양인도를 통하여 증명이 된 것 같다. 이번에도 찬양시간이 너무 은혜가 됐다는 평가를 곳곳에서 많이 듣는다. (이건 자만은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또 다른 하나의 임무였던 말씀 선포를 통해 깨닫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영혼들이 참 진리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사람들은 변화받는다.
말씀 선포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나는 말씀 선포를 통해 사람들이 성경적인 가치관을 갖게 되고, 삶의 열매들이 맺혀가는 것을 볼 때, 너무나 행복하다.

하나님의 말씀, 참 진리의 말씀, 갈급한 영혼들의 마음을 터치해줄 수 있는 진정한 말씀 선포자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아직 말씀 선포자로서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말씀을 전할 때 참 보람을 느낀다. 오히려 설교자인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다.

말씀의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예레미야같은 선지자가 되고 싶다.
참 말씀의 사람이 되도록 주님의 은사와 성령의 기름부음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11. 7. 7. 13:28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결코, 단 한순간도 인간 사유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말씀을 가지고 와서 자기 앞에 둘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말씀이 주체입니다. 말씀이 구원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

목사들도 말씀 앞에서 두려워해야 합니다. 목사의 선포에서 놀라운 감동이 일어난다면, 이는 전적으로 말씀의 능력입니다. 선포자의 능력이 아닙니다. 목사든 전도사든, 모든 선포자들은 말씀 앞에서 겸손해 져야 합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설교를 잘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위험해집니다. 내가 말씀을 재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김동건,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 대한기독교서회, 56-57쪽> 



하나님의 말씀이 주체가 돼야한다는 말에 큰 공감이 간다.
설교자가 재단을 하여 설교자의 느낌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다.
해석학의 등장으로 말씀은 객체가 되고 해석의 주체인 인간이 주체가 되어 말씀을 재단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는 정말로 위험한 발상이다.
말씀은 해석의 객체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말씀앞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

나의 교만을 본다.
나는 설교를 잘한다는 말을 은근히 좋아했고, 그 말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결코 말씀이 주체가 되어 말씀앞에 서지 않는 태도이다.
말씀이 우리를 주장하게 해야 한다. 말씀의 능력 앞에 콘트롤 되어야 한다.
말씀이 나를 사로잡아 굴복시키도록 나를 말씀의 권위에 내어드려야 한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