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일과(Lectionary) 9

 

구약의 말씀 Exodus 20:1-17

1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2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4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5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6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7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9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10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나,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11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12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도록 살 것이다.

13   살인하지 못한다.

14   간음하지 못한다.

15   도둑질하지 못한다.

16   너희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지 못한다.

17   너희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너희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할 것 없이, 너희 이웃의 소유는 어떤 것도 탐내지 못한다."

 

1   God said to the people of Israel:

2   I am the LORD your God, the one who brought you out of Egypt where you were slaves.

3   Do not worship any god except me.

4   Do not make idols that look like anything in the sky or on earth or in the ocean under the earth.

5   Don't bow down and worship idols. I am the LORD your God, and I demand all your love. If you reject me, I will punish your families for three or four generations.

6   But if you love me and obey my laws, I will be kind to your families for thousands of generations.

7   Do not misuse my name.  I am the LORD your God, and I will punish anyone who misuses my name.

8   Remember that the Sabbath Day belongs to me.

9   You have six days when you can do your work,

10   but the seventh day of each week belongs to me, your God. No one is to work on that day--not you, your children, your slaves, your animals, or the foreigners who live in your towns.

11   In six days I made the sky, the earth, the oceans, and everything in them, but on the seventh day I rested. That's why I made the Sabbath a special day that belongs to me.

12   Respect your father and your mother, and you will live a long time in the land I am giving you.

13   Do not murder.

14   Be faithful in marriage.

15   Do not steal.

16   Do not tell lies about others.

17   Do not want anything that belongs to someone else. Don't want anyone's house, wife or husband, slaves, oxen, donkeys or anything else.

 

 

시편의 말씀 - Psalms 19:1-14

1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2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3   1)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4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 해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장막을 쳐 주시니,

5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처럼 기뻐하고, 제 길을 달리는 용사처럼 즐거워한다.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으로 돌아가니, 그 뜨거움을 피할 자 없다.

7   주님의 교훈은 완전하여서 사람에게 생기를 북돋우어 주고, 주님의 증거는 참되어서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 준다.

8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고, 주님의 계명은 순수하여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9   주님의 말씀은 티 없이 맑아서 영원토록 견고히 서 있으며, 주님의 법규는 참되어서 한결같이 바르다.

10   주님의 교훈은 금보다, 순금보다 더 탐스럽고, 꿀보다, 송이꿀보다 더 달콤하다.

11   그러므로 주님의 종이 그 교훈으로 경고를 받고, 그것을 지키면, 푸짐한 상을 받을 것이다.

12   그러나 어느 누가 자기 잘못을 낱낱이 알겠습니까? 미처 깨닫지 못한 죄까지도 깨끗하게 씻어 주십시오.

13   주님의 종이 죄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 주셔서 죄의 손아귀에 다시는 잡히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그 때에야 나는 온전하게 되어서, 모든 끔찍한 죄악을 벗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1   The heavens keep telling the wonders of God, and the skies declare what he has done.

2   Each day informs the following day; each night announces to the next.

3   They don't speak a word, and there is never the sound of a voice.

4   Yet their message reaches all the earth, and it travels around the world. In the heavens a tent is set up for the sun.

5   It rises like a bridegroom and gets ready like a hero eager to run a race.

6   It travels all the way across the sky. Nothing hides from its heat.

7   The Law of the LORD is perfect; it gives us new life. His teachings last forever, and they give wisdom to ordinary people.

8   The LORD's instruction is right; it makes our hearts glad. His commands shine brightly, and they give us light.

9   Worshiping the LORD is sacred; he will always be worshiped. All of his decisions are correct and fair.

10   They are worth more than the finest gold and are sweeter than honey from a honeycomb.

11   By your teachings, Lord, I am warned; by obeying them, I am greatly rewarded.

12   None of us know our faults. Forgive me when I sin without knowing it.

13   Don't let me do wrong on purpose, Lord, or let sin have control over my life. Then I will be innocent, and not guilty of some terrible fault.

14   Let my words and my thoughts be pleasing to you, LORD, because you are my mighty rock and my protector.

 

복음서 말씀 John 2:13-22

13   유대 사람의 유월절이 가까워져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14   그는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걷어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7   제자들은 3)'주님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18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4)표징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20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에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구요?"

21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 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13   Not long before the Jewish festival of Passover, Jesus went to Jerusalem.

14   There he found people selling cattle, sheep, and doves in the temple. He also saw moneychangers sitting at their tables.

15   So he took some rope and made a whip. Then he chased everyone out of the temple, together with their sheep and cattle. He turned over the tables of the moneychangers and scattered their coins.

16   Jesus said to the people who had been selling doves, "Get those doves out of here! Don't make my Father's house a marketplace."

17   The disciples then remembered that the Scriptures say, "My love for your house burns in me like a fire."

18   The Jewish leaders asked Jesus, "What miracle j) will you work to show us why you have done this?"

19   "Destroy this temple," Jesus answered, "and in three days I will build it again!"

20   The leaders replied, "It took forty-six years to build this temple. What makes you think you can rebuild it in three days?"

21   But Jesus was talking about his body as a temple.

22   And when he was raised from death, his disciples remembered what he had told them. Then they believed the Scriptures and the words of Jesus.

 

신약의 말씀 1 Corinthians 1: 18-25

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9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20   현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21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22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24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18   The message about the cross doesn't make any sense to lost people. But for those of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God's power at work.

19   As God says in the Scriptures, "I will destroy the wisdom of all who claim to be wise. I will confuse those who think they know so much."

20   What happened to those wise people? What happened to those experts in the Scriptures? What happened to the ones who think they have all the answers? Didn't God show that the wisdom of this world is foolish?

21   God was wise and decided not to let the people of this world use their wisdom to learn about him.

Instead, God chose to save only those who believe the foolish message we preach.

22   Jews ask for miracles, and Greeks want something that sounds wise.

23   But we preach that Christ was nailed to a cross. Most Jews have problems with this, and most Gentiles think it is foolish.

24   Our message is God's power and wisdom for the Jews and the Greeks that he has chosen.

25   Even when God is foolish, he is wiser than everyone else, and even when God is weak, he is stronger than everyone else.

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23. 11. 13. 02:30

겨울 기도

                                 마종기

 

하느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겨울에 살게 하소서.
여름의 열기 후에 낙엽으로 날리는
한정 없는 미련을 잠재우시고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긴 뜻을 알게 하소서. 

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22. 12. 23. 12:12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Posted by speramus

나는 2015년부터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다.중국, 미국 서부, 이제는 미국 중부에 거주하며 고향을 떠난 이민자의 삶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나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경계선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했다. 중심부에 서 있는 사람들은 경계선에 서 있고 marginalized된 이들의 고충을 절대 모른다.나는 자이니치 조센진(在日朝鮮人)으로서 작가였던 서경식의 글을 좋아했다. 그의 글에는 경계선에 선 자로서 갖는 디아스포라의 관점이 있었고  우울하지만 애수에 찬 삶을 향한 동경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하게 마지널라이즈드 되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자신의 삶의 실존적 경험을 통해 예술을 해석했고 작품들을 해석했다. 그의 글을 통해 나는 디아스포라의 관점을 갖게 되었고 경계선에 선 자로서의 시선을 장착할 수 있었다. 

이민진의  파친코는 이민자, 나그네, 순례자, 디아스포라와 같은 비슷한 단어들에 많은 노출을 한 내 삶을 끌어 당기기에 매력있는 소설이 분명했다. 왜냐면 일본 사회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한국 사회에서 조차 일본인으로 취급되는 자이니치 조센진들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가 경계선에 선 자들의 삶을 어떻게 해석해 내고 독자들에게 전달해내는 지 그 방법과 분위기가 사뭇 궁금했다. 

소설을 읽기 전, 애플티비를 통해 드라마 "파친코"를 본 것은 실수였다. 소설부터 보았어야 했다. 왜냐면 드라마는 이민진 작가의 의도를 많이 왜곡했고 많은 각색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드라마를 보지 않고 소설만 읽었어도 좋았을 뻔 했다. 드라마에는 없고 소설에는 있는 이야기 중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노아"라는 인물의 이야기다. 드라마에는 노아의 어린 시절이 나온 후 그의 삶이 통째로 삭제 되었다. 파친코 소설에 있어서 노아의 비중은 참으로 크다고 생각되는데 그의 존재감이 없는 드라마는 주제면에서 많은 부분을 왜곡시켜야만 했을 것이다. 작가는 노아를 통해 자이니치 조센진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을 건드리고 싶었다. 노아는 선자가 한수의 씨를 받아 생긴 아들이지만, 30년 넘게 자신의 아버지가 이삭으로 알고 자라온 인텔리 청년이다. 인텔리면 뭐하나? 그는 자신의 신분적인 배경 때문에 일본 사회의 주류에 낄 수 없는 한계를 어린 시절부터 직시한다. 그의 그러한 민족적인 정체성을 심화시키고 갈등을 증폭시킨 것은 그의 삶에 조용히 드리운 한수의 그림자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마저 부정하며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나가노라는 제 3의 장소를 찾았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뿌리로부터 뽑혀 살 수 없는 식물과도 같았다. 16년을 숨어 살아온 그에게 어머니 선자가 나타나자 그는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자신의 생을 통째로 도려 내버린다. 이부분에서 나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란 것, 인생의 으미라는 것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있지 않고, 결국 정체성이 인생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 선자가 이삭의 묘지에 갔을 때 묘지 관리인으로부터 노아가 나가노에 있을 당시에도 이삭의 묘를 정기적으로 방문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다. 결국 노아는 자신의 정체성의 근본을 향한 목마름에 시달렸던 연약한 존재였다.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든 그랬을 것이다. 결국 정체성, 뿌리, 근본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는 것이다. 이민자들의 삶에 이 정체성이란 것은 호흡과도 같은 소중한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에 60-80년대에 이민와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한국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주류사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어만 하기에도 벅찼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어를 교육시키는 것은 너무나 큰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기도 했다. 외국에서 자녀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시켜 본 이들은 이 고충이 얼마나 큰지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 속으로 들어갔을 때 미국 주류 사회는 아무리 그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하더라도 그들을 끼워주지 않았다. 그들은 한국인과 미국인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었다. 나그네들에게 정체성이란 호흡과 같다는 것을 새삼스레 소설을 통해 깨닫는다.

작가는 파친코라는 직업을 통해 이민자들의 삶의 현실을 조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파친코는 질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업종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니까 야쿠자이거나 야쿠자와 연결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파친코였다. 하지만 해방과 함께 일본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조선인들에게 그런 시선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파친코이면 어떤가 돈만 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왜냐면 일본사회에 편입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돈으로 인식됐기 때문이었다. 돈은 신적 유사성을 가진 물건이다. 돈이 있으면 신이 가지고 있는 전능성을 발휘할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조선인으로서 일본인들이 갖지 못한 돈을 소유하고 거부가 된다면 그들은 그 사회 속으로 편입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일본사회는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민감한 사회였다. 백이삭 목사의 아들 모자수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파친코 사업에 뛰어든다. 그는 정직하게(?) 파친코 사업을 해가며 부를 축적했다. 그의 삶의 목표는 유일했다. 그의 아들 솔로몬이 자기와는 다른 고상한 직업을 갖고 일본의 상류사회로 진입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미국 유학까지 마친 아들 솔로몬도 결국엔 자신의 사업을 이어받을 지경에까지 이른다. 조선인으로서 일본사회의 높은 벽을 통감한 것이다. 모자수가 그렇게 존경하고 따랐던 그의 형 노아도 와세다 대학까지 나온 수제였지만 그 또한  파친코 사업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세탁하고자 했고 그를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구원이 되어주었다. 작가는 파친코라는 직업을 통해 조선인들이 꿈꿔 왔던 야망과 열망 그리고 욕망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파친코를 통해 일본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미국의 한인 이세 삼세들도 이와 비슷한 한계를 경험한다고 익히 들어왔다. 유색인종으로서 이 사회 상류까지 진출하는 데 느끼는 한계가 많이 있다고 들었다. 이민진 작가는 본인 스스로가 7살에 한국에서 뉴욕으로 이민와서 살아온 경계인으로서 느낀 것이 많았을 것이다. 그녀는 파친코를 통해 재일 조선인들의 애환을 조명했지만 그 깊은 동기에서는 미국내에서 살아가는 한인 이민자들의 삶을 빗대어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파친코를 단숨에 읽으며 가장  충격이 됐던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노아의 자살이었다. 그리고 노아가 그의 아버지 이삭의 묘지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부분을 읽으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 지금도 방황하고 있을 이민 이세 이민 삼세들의 삶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아들들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배타적인 일본사회 그리고 일본인들이 더 싫어지는 것은 나의 잘못만은 아니겠지? 일본사회가 조금은 더 따뜻하고 열린 사회가 되길 바라는 것은 나의 헛된 기대이자 바람일까? 소설 파친코는 경계선에 서 있는 순례자로서의 나의 삶을 더 선명하게 인식하게 만들어 준 작품이다. 

Posted by speramus

한병철 선생님의 투명사회 164페이지의 내용을 복기 합니다.

---------------------------------

"디지털"이라는 단어는 본래 손가락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digitus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는(Zaehlen) 손가락이다. 디지털 문화는 세는 손가락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역사는 이야기Erzaehlung이다. 역사는 세지 않는다. 셈은 포스트역사적 범주다.

트윗도 정보도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지 않는다. 타임라인도 삶의 역사 또는 전기를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타임라인은 서사적이기보다 가산적이다. 티지털 인간은 끊임없이 세고 계산한다는 의미에서도 손가락질하는 인간이다.

디지털은 수와 셈을 절대화 한다. 페이수북 친구들도 무엇보다 숫자로 세어진다.

하지만 우정은 이야기다. 디지털 시대에는 가산적인 것, 셈하기, 셀 수 있는 것이 전부가 된다.

심지어 애착과 호감도 '좋아요'의 형식으로 세어진다. 서사적인 것은 급격히 의미를 상실한다.

오늘날 모든 것이 셀 수 있게 가공된다. 그래야만 성과와 효율성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셀 수 없는 것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

좋아요의 갯수로 인기가 가늠되고 그 인기가 인격인 것 마냥 살아가는 사람들, 디지털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허상이다.

한병철 선생님의 투명사회 26쪽에서는 '좋아요'에 대한 철학적 비평을 이렇게 늘어 놓고 있다.

"긍정사회에서 일반화된 판정의 형식은 '좋아요'이다. 페이스북이 '싫어요'버튼을 도입하는 데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것은 주보할 만하다.

긍정사회는 모든 종류의 부정성을 피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부정성은 커뮤니케이션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대량화는 경제적 가치의 증가로도 이어진다. 

그런데 부정적인 판정은 커뮤니케이션을 손상시킨다. '좋아요'가 '싫어요'보다 더 빠르게 후속 커뮤니케이션을 유발하는 것이다.

거부에 담긴 부정성은 무엇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효용성이 없다. 

투명성과 진리는 같은 것이 아니다. 진리는 다른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립하고 관철한다. 그점에서 진리는 부정성이다. "

 

5년전부터 페이스북을 하고 있지 않지만, 페이스북을 하더라도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 이유를 이글에서 발견한다.

모든 것을 샘과 계산으로 바꿔버리는 디지털화된 소비주의 사회를 거스르는 삶의 방식이라 할까??

Posted by speramus

<천로역정>

  1. 요약

    존 번연(John Bunyan)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단말인가?”라는 물음 앞에 놓인 ‘크리스챤’이라 불리는 한 사나이의 구원의 여정을 “천로역정 – The Pilgrim’s Progress”라는 책으로 그려냈다. 천로역정이란 구원의 문제에 발버둥 치고 죄의 짐에 눌려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었던 한 연약한 인간이 어떻게 그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영광스러운 하늘 나라에 도달하게 되는지 여러 비유들과 서사를 통해 그려낸 책이다. 크리스챤의 하늘 나라를 향한 여정을 존 번연은 ‘Pilgrim-순례자’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하려 했다. 순례란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하며 참배하다”라는 사전적인 의미가 있는 단어다. 순례란 진리를 좇아 떠나는 목적과 함께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맡기며 걷는 여행을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본서에서 크리스챤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무작정 자신이 살고 있던 ‘멸망의 도시’ 빠져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그를 그 도시로부터 이끌었다. 도시를 빠져 나왔음에도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라는 탄식은 충분히 해결되지 못한 그의 불안한 마음을 나타내며, 그의 순례의 길은 그렇게 무작정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순례의 여정에서 그를 천국으로 이끄는 여러 돕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무작정 도시를 탈출한 그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선지자는 ‘전도자(Evangelist)’였다. 전도자의 길안내를 통해 그는 앞으로 자신이 가야할 순례의 길을 명확하게 깨닫고 말씀과 예언자적인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그 순례를 마칠 수 있으리라 믿게 된다. 계속해서 뷰티플 저택에서 만나는 신중, 경건, 분별, 자선과 같은 자들도 있어고 해석자 목자들 같은 사람들이 그의 여정에 많은 통찰력과 위로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그의 앞에 돕는 돕는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를 넘어뜨리려서 어떻게 해서든 그가 가는 길을 막아서고 돌이키게 하려는 방해 세력들이 넘쳐 났다. 그들은 모두 하늘의 악한 영들과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의 뀀에 넘어 간 사람들이거나 마귀의 세력들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크리스챤의 천국을 향한 소망을 흐려 놓거나 방향을 상실하게 만들거나 현재에 안주하게 만들어 버리는 데에 있었다. 크리스챤은 캄캄한 골짜기에서 아보루온이라하는 악의 화신과의 전투를 치뤄야 하기도 했고 마귀들과의 혈투를 벌여야 하기도 했다. 허망시장이라는 도시에서는 옥에 처해지기도 했고 데마라는 자는 은광을 통해 돈으로 그를 유혹하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명확한 목적지와 지향점 그리고 말씀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절망 거인의 집에 갇힌 신세가 되기도 하지만 언약이라는 열쇠를 통해 빠져 나오기도 한다. 

크리스챤은 그의 여정에서 신실과 소망이라는 동반자를 통해 많은 위로와 힘을 얻는다. 신실과 소망은 함께 천국의 여정을 가는 믿음의 동지들이자 기대고 의지할 친구였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여정에 허락하신 믿음의 친구들을 통해 크리스챤은 마침내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여 그의 구원의 여정을 마치게 된다. 신실과 소망으로 대표되는 크리스챤의 순례의 동반자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의 또 다른 매개물이었다. 신실은 안타깝게 허망시장에서 먼저 순교를 당하여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였지만, 크리스챤의 믿음과 인내도 칭찬받기에 충분했다.

 

2. 독서비평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의 집에는 그림으로 된 천로역정이 비치돼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천로역정은 늘 나의 가까이에 있던 책이다. 지금도 그림책 안의 크리스챤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를 위협했던 사자의 포효도 섬뜩하게 뇌리를 스쳐간다. 그가 짐을 지고 절벽을 넘는 그림과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 기뻐하며 주님을 맞는 환희에 찬 그림도 기억에 또렷이 박혀 있다. 천로역정은 나로하여금 늘 천국을 향한 소망을 새겨주는 책이었다. 믿음의 여정이 순탄하지만 않지만 견디고 이겨내는 자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선물이 반드시 있음을 마음 깊은 곳에 품게 만들었던 것이다. 작년 여름 개봉한 영화 “천로역정”을 본 후 읽은 책이어서 더욱 생생하게 읽혀졌다.

우리 구원의 여정에 있어 십자가를 통해 죄짐을 벗고 구원의 확신을 갇게 되지만 그 이후에 믿음의 여정은 계속된다 오히려 십자가를 통해 그 순례의 길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크리스챤의 순례의 여정은 우리네 인생 전체를 묘사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됨을 볼 수 있다. 선과 악의 대결, 그리고 대항자들과 조력자들과의 만남을 통한 승리의 여정이 그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우리의 삶에 있어 악의 세력과의 조우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현대 사회는 ‘죄’라는 실체를 증상, 병리현상, 결핍, 결여 등의 단어로 약하게 희석시켜 놓는 경향이 있다. 죄의 실체를 깨닫고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으려는 것이 현대 교회의 특징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대항자인 사단의 거대한 전략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죄의 실체를 알고 그 죄와 싸워야 하고 그 죄에 빠뜨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단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우리의 큰 과제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대항세력으로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허락하셨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유기적이고 생명력 있는 공동체로 책의 신실과 소망과 같이 동행하며 격려하며 일으켜 주는 하나님의 지체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크리스챤이 중간중간 만난 예언자들처럼 우리가 어떻게 걸어야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목회자는 그런 의미에 있어 크리스챤과 같은 믿음의 순례길을 걷는 하나님의 백성을 돕는 예언자요 목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천로역정은 한 평생 설교자요 목회자로 살아 온 존 번연의 목회서신이기도 하다. 그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목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참 길을 제시하고 싶었다. 죄의 문제와 구원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또 다른 크리스챤을 생각하며 온 마음을 다해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로서 자신의 신학을 이야기로 만들 줄 알고 그 이야기를 통해 성도들에게 쉽게 풀어 설명하며 해석해 줄 수 있는 존 번연 같은 목자가 되길 간절히 꿈꿔 본다.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과연 구원의 여정이 우리의 현실을 벗어나 피안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여정뿐일까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게 된다. 현실 속에 뿌리내린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갈망과 그 안에서 이뤄가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몸부림은 이제 우리 시대의 몫으로 남겨 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또 다른 존 번연이 나와 마지막 날에 이르게 될 예루살렘 성이 아닌 현 세계에서 만들어 나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서 천로역정 속편이 만들어 지길 기대해 본다. 아니 내가 맡게 될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한 단락 한 단락 그것을 만들어 가리라.

Posted by speramus

-다음의 내용은 Wheaton College의 Tom Schwanda 교수님의 "청교도와 초기 복음주의자들의 영성" 수업에서 들은 내용으로 교수님이 보내주신 핸드아웃의 내용임을 밝힙니다.

 

루터의 이발사였던 Peter가 루터에게 편지를 쓴다.

"루터박사님 어떻게 기도할 수 있나요??"

루터는 그에게 편지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가슴이 따뜻해지도록 하십시오. 그래야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을 읽으십시오. 짧은 기도를 하십시오. 또한 성경본문을 취해서 네 가지의 표상(Strands)를 통하여 기도해 보십시오."라고 대답했다.

(1) 이 귀절이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teaching of the phrase) - 본문 뒤의 지시사항은 무엇인가? 본문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를 관찰하세요.

(2) 이를 통해 나로 하여금 감사로 어떻게 나아가게 합니까? (thanksgiving that it inspires,

(3) 본문이 나를 통해 고백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confession that is required)

(4) 어떻게 기도하고 삶에 적용할 것인가? (prayer to lived it out more fully)

 

십계명이나 주기도문 중의 한 구절을 가지고 직접 실습을 해 보십시오.

예를 들면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구절을 가지고 이 구절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의미를 파악하고, 어떠한 감사를 내 삶에 이끌어 내는지 묵상하고, 또한 그 귀절이 나에게 어떤 감사를 하기 원하는지 묵상하며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내 삶에 어떻게 온전히 실천할지를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루터는 자신의 이발사인 피터에게 이 방법으로 기도해 보라고 권해 보았습니다.

저도 실제로 수업시간에 이 방법을 통해 십계명 의 4계명으로 기도해 보았는데 받은 은혜가 컸습니다. 제가 드린 기도의 예를 적어봅니다.

- "안식일을 기념하라"는 계명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것 : 현재의 선교사 안식년을 누리라, 일하려고 하지 말아라. Take a break 해라. 더 쉬어라

- 이 계명을 통해 감사할 수 있는 것 : 안식년 동안 끊임 없이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다. 굶지 않고 통장 잔고가 비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다. 

- 이 계명이 나로 하여금 고백하게 하는 것 : 주님 저는 안식년으로 미국에 와서 쉼이 없었습니다. 다른 이도 못 쉬게 했습니다. 특별히 가족들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주님 불안한 미래에 끊임 없이 두려워 했고 쉬는 것에 대해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더 온전히 쉼과 안식을 누리라고 말씀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 내 모든 삶을 맡기며 더 깊은 안식과 감사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아멘

- 이 계명을 내 삶에 적용해 본다면 : 8시간 자도록 노력하자. 잠이 많지 않으니 피로로 인해 불평과 불만이 늘어나는 것 같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삶을 즐기자. 안식년 동안 가족들과 좋은 곳에 여행을 많이 가도록 하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핸드아웃의 내용을 아래에 붙입니다. 

 

Luther’s Garland of Four Strands.  Luther wrote a letter to Peter his barber offering this method for praying.  I “make a garland of 4 strands.”  (1) teaching of the phrase, (2) thanksgiving that it inspires, (3) confession that is required, and (4) prayer to lived it out more fully (letter to his barber in instructing him to prayer). 

 

Expanded Method for Praying Scripture with Martin Luther:

 

. What does this verse intend to teach or how does it have meaning for me?  What does it require of me (Instruction)?

 

. For what can I give thanks in relation to this verse or phrase (Thanksgiving)?

 

. How have I failed to believe this or to live up to the teaching of this verse (Confession)?

 

. How can I seek to live out this truth in my life (Prayer/Petition)?

 

 

Posted by speramus

May I know you more clearly
May I love you dearly
May I follow you nearly
Day by day.

-13세기 영국-

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15. 1. 28. 05:14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 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장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Posted by speramus
부~~자富者 되세요~!!
돈 부자 말구요.
그대가 참 부자(富者)가 되고 싶다면 세속에는 가난한 사람(pauper saeculo)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fides)의 부자,
자비(misericordia)의 부자,
단순함(simplicitas)의 부자,
지혜(sapientis)의 부자,
슬기(scientia)의 부자가
하나님이 보시는 참 부자 올시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