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릴적 바로 옆집이 교회였기 때문이었죠. 제가 태어나기 몇 년 전 부모님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면소재지로 이사를 해 오셨는데 그곳이 하필 교회 옆집이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의 이야기가 딱 이런 경우죠. 묵을 가까이 하면 자연스레 검어지듯 교회 가까이 있으니 자연스레 신앙에 젖어들어 가게 되었나봐요. 평일에도 교회에 가면 목사님과 사모님은 늘 저희를 환영하며 환대해주셨죠. 당시 사모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시는 도너츠를 비롯한 온갖 신기한 간식꺼리들이 넘쳐나니 교회는 제게 마냥 기쁨의 공간이었습니다. 주일학교 공과 공부시간에 대답 잘 한다고 칭찬 받는 것도 또 다른 기쁨이었죠. 그렇게 허기를 채우고 인정욕구를 채움받으며 시작된 교회 생활이 청년시절에는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바꼈습니다. 예배가 좋았고 교회를 통해 행해지는 선교활동에 동참하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교회는 저의 꿈과 비전을 실현하는 꿈의 공간으로 탈바꿈 했던 듯합니다. 그리고 선교지에서의 시련과 험난한 인생여정을 통과하며 하나님은 새로운 교회에 대한 꿈을 꾸게 하셨지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변화된 저의 교회관 속에서 다하나교회와 연결되게 됐죠. 지난 9주간 “다시 만나는 교회”라는 책을 통해 제가 꿈꾸고 바라는 교회에 대한 그림을 몇 몇 분들과 함께 나눴고, 이번 토요일에 아쉬운 마무리를 했습니다. 

  “나의 삶이 회복이 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이 다른 이들을 회복하는 삶으로 쓰임받게 된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어요. 그것이 God for us를 통과하고 God with us를 느끼면서 God through us의 삶으로 쓰임 받는 과정인 것 같아요.”, “쇼핑하듯 큰 교회 위주로 교회 생활을 해 왔었는데, 이제 교회 가족의 일부가 되고 섬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큰 기쁨이예요.”, “저는 저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현존을 확실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돌봄과 환영 받기에만 익숙했던 이들이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고 교육을 받고 섬김의 자리에 나아가면서 성장해 가는 것 같아요.” 모든 인용구절의 말씀들은 함께 공부했던 교우들의 고백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교회를 통해 우리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착한 일(to do good things in the world)을 행하게 하기 위해 부르십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며 우리의 부르심을 확인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이 땅 위에 이뤄가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교회인 우리를 통해 이뤄집니다. 우리가 교회이고 매일의 삶이 교회인 그 거룩한 부르심에 우리 모두는 초대받았습니다. 교회인 우리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흩어지며, 흩어지기 위해 모이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목적 때문에 교회를 찾아왔지만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꿈에 접속되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꿈꾸시는 교회, ‘다시 만나는 교회’이길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Posted by speramus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릴적 바로 옆집이 교회였기 때문이었죠. 제가 태어나기 몇 년 전 부모님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면소재지로 이사를 해 오셨는데 그곳이 하필 교회 옆집이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의 이야기가 딱 이런 경우죠. 묵을 가까이 하면 자연스레 검어지듯 교회 가까이 있으니 자연스레 신앙에 젖어들어 가게 되었나봐요. 평일에도 교회에 가면 목사님과 사모님은 늘 저희를 환영하며 환대해주셨죠. 당시 사모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시는 도너츠를 비롯한 온갖 신기한 간식꺼리들이 넘쳐나니 교회는 제게 마냥 기쁨의 공간이었습니다. 주일학교 공과 공부시간에 대답 잘 한다고 칭찬 받는 것도 또 다른 기쁨이었죠. 그렇게 허기를 채우고 인정욕구를 채움받으며 시작된 교회 생활이 청년시절에는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바꼈습니다. 예배가 좋았고 교회를 통해 행해지는 선교활동에 동참하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교회는 저의 꿈과 비전을 실현하는 꿈의 공간으로 탈바꿈 했던 듯합니다. 그리고 선교지에서의 시련과 험난한 인생여정을 통과하며 하나님은 새로운 교회에 대한 꿈을 꾸게 하셨지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변화된 저의 교회관 속에서 다하나교회와 연결되게 됐죠. 지난 9주간 “다시 만나는 교회”라는 책을 통해 제가 꿈꾸고 바라는 교회에 대한 그림을 몇 몇 분들과 함께 나눴고, 이번 토요일에 아쉬운 마무리를 했습니다. 

  “나의 삶이 회복이 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이 다른 이들을 회복하는 삶으로 쓰임받게 된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어요. 그것이 God for us를 통과하고 God with us를 느끼면서 God through us의 삶으로 쓰임 받는 과정인 것 같아요.”, “쇼핑하듯 큰 교회 위주로 교회 생활을 해 왔었는데, 이제 교회 가족의 일부가 되고 섬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큰 기쁨이예요.”, “저는 저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현존을 확실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돌봄과 환영 받기에만 익숙했던 이들이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고 교육을 받고 섬김의 자리에 나아가면서 성장해 가는 것 같아요.” 모든 인용구절의 말씀들은 함께 공부했던 교우들의 고백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교회를 통해 우리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착한 일(to do good things in the world)을 행하게 하기 위해 부르십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며 우리의 부르심을 확인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이 땅 위에 이뤄가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교회인 우리를 통해 이뤄집니다. 우리가 교회이고 매일의 삶이 교회인 그 거룩한 부르심에 우리 모두는 초대받았습니다. 교회인 우리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흩어지며, 흩어지기 위해 모이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목적 때문에 교회를 찾아왔지만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꿈에 접속되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꿈꾸시는 교회, ‘다시 만나는 교회’이길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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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121-8

제목: 사랑하니 깨뜨립니다.

 

1.

요즘 계절의 변화를 실감합니다. 며칠 새 대낮의 기온이 32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어떤 분에게 곧 봄이 오겠다고 말했더니 봄이 온 것이라 하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봄이 이미 온 것이 맞습니다. 옥수수 밭과 잔디를 덮고 있던 하얀 눈이 이제 거의 다 녹아갑니다. 꽃이 피어야 봄인 줄로만 알았는데 얼어붙었던 대지가 녹기 시작했으니 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가장 은혜 받았던 노래가 김명식 씨의 이라는 노래였습니다. “내가 염려했던 지난 날들과 영원히 계속 될 것 만 같았던 추운 겨울이 주님의 약속대로 흔적도 없고, 내 하나님 행하신 일 영원히 찬양하누나.” 이 가사의 노래를 들으며 고된 군생활을 달래던 기억이 봄과 함께 살아나네요. 인생의 겨울을 통과하시느라 몸도 맘도 지치셨던 모든 분들 위에 주님의 따스한 은총이 함께 하길 빕니다.

 

 예수님의 활동 근거지였던 팔레스틴 땅도 이 맘 때가 되면 새로운 계절을 맞습니다. 10월 말부터 우기가 시작되는데 이 때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합니다. 이 때부터 흐린 날이 많고, 일년의 강수량의 대부분이 10월 말부터 3월 초까지 몰아서 내립니다. 3월 초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하는데 이 때부터 건기가 시작됩니다. 3월의 늦은 비가 그치면 본격적인 추수의 때가 시작됩니다. 올리브와 보리, 포도의 추수가 시작됩니다. 이 시즌에 유대인들은 가장 중요한 명절을 맞게 되는데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그들이 이집트의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게 만든 출애굽을 기념하는 매우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어린 양을 희생시킨 하나님의 구원을 이야기하며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큰 명절인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돌아선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야 하는데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예수님이 들르신 곳이 베다니였습니다. 다음 주가 종려주일인데요, 종려주일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들어가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일어난 사건이 베다니에서의 만찬이니 이번주는 이 말씀을 통해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베다니를 들르시기 전에 어디에 계셨고 왜 그곳에 계셨어야 하는지 먼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039절을 보면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서 피하셨다.” 하며 예수님이 피신하며 다니신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는 나사로를 살리신 후 그때부터 예수의 대적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마음먹었다고 말해줍니다. 그들은 그 날로부터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대 사람들 가운데로 더 이상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에서 떠나, 광야에서 가까운 지방 에브라임이라는 마을로 가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다(11:53-54).”

 

예수님께서는 이적과 기사를 행하심으로 병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셨지만, 그의 대적들에게는 미움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심으로 대적들의 미움이 극에 달할 때 주님은 대적들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Hit and run 작전과 같아 보입니다. 베다니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적을 행하셨지만 그 소식이 예수님의 대적들에게 들어가자 예수를 죽이려 달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일을 하시며 많은 사람들을 자유케하시는 일을 했을 뿐인데 대적들의 미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치고 빠지신 것을 숨고르기를 하신 걸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 전에 한 숨 돌리시면서 마음을 새롭게 하셔야만 했을 겁니다.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버거운 그 고난의 잔을 마시기 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셨던 겁니다. 예루살렘에서 3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베다니를 들렀다 예루살렘으로 향하실 겁니다. 예수님이 다시 베다니 마을을 방문하실 때, 주님은 각오를 단단히 하신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결연한 각오로 베다니를 방문하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베다니 사람들은 기적을 행하신 예수가 그들의 마을을 재방문하자 잔치를 벌인 것입니다..

 

2.

감사와 기쁨의 축제의 열기 속에서 예수님의 감정의 흐름을 민감하게 캐취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마리아였습니다. 모두가 잔치 분위기에 들떠 있을 때 마리아만은 예수님의 마음을 읽어냈습니다. 예수께서 결연함으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당하실 고난을 생각하자 마리아는 가슴이 미어졌을 겁니다. 마리아는 무엇인가 주님에게 위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자의 흐릿한 직감이 남자의 또렷한 이성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제가 한 말입니다=). 흥에 한껏 취한 남성들 틈으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이 잔치가 예수님의 장례식 잔치의 리허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던 겁니다.

 

그녀가 이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읽어냈던 이유는 그녀가 예수님의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누가복음 1039절에 보면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고 묘사합니다. 사도행전 223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가말리엘의 발아래서 배웠다는 표현을 합니다.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제자였다는 관용적인 표현(idiom)이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간파했던 충실한 제자였다는 겁니다. 흥에 취한 남성들 사이로 갑자기 등장한 마리아는 자신이 준비한 퍼포먼스를 시작합니다. 마리아는 노동자의 1년치 품삯에 해당하는 고가의 나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나드는 식물에서 채취한 고급 향수인데 클레오파트라의 장례에 발랐다는 장례식용 향수이기도 했습니다. 왜 향유를 발에다 붓습니까? 예수님은 이곳 저곳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돌아다니셨습니다. 게다가 대적들을 피하여 빈들로 내 달리시기도 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발은 부르트고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마리아의 시선은 예수님의 발에 고정되었고 그 발에 향유를 붓습니다.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향수를 부었으면 어떤 감각이 먼저 자극되겠습니까? 후각이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이 집이 문둥병자 시몬의 집이었다고 부연 설명되어 있습니다. 문둥병자란 피부병에 걸린 사람이죠. 그러면 기본적으로 향기가 좋지 않았을 것 같아요. 성경은 문둥병자 시몬의 집에 갑자기 향유냄새가 가득찼다라고 말해줍니다. 마리아는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으면서 향유를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그의 스승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고 시뮬레이션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마리아와 대조를 이루는 캐릭터로 가룟(Iscariot) 출신의 유다라는 예수님의 제자가 나옵니다. 그는 이 여자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향유가 담긴 옥합(vessel)을 깨뜨린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깨뜨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저 비싼 향유를 왜 낭비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300데나리온이면 도대체 얼마나 큰 돈이냐 말입니까? 유다는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더 낫겠다고 말은 했지만 실은 그 돈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같은 제자인데 가룟 유다와 마리아의 온도차이는 사뭇 다릅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스승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있고, 또 다른 이는 너무나 차가운 이성으로 분석하고 따지려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7-8)." 마리아를 지지하고 계십니다. 마리아의 행위를 통해 예수님은 적잖은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큰 힘과 용기를 얻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이신지라 그 따뜻한 마음의 흐름을 감지했고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동안 도망다니는 삶이 고달프기도 하시고 배고프기도 하고 피로도가 극에 달해 계셨을겁니다.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사랑을 예수님은 읽을 수 있었습니다. 300데나리온을 가지고 구제활동을 하는 것은 절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유다의 한계는 예수님을 향해 가진 마리아의 사랑의 진실성을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따르고 사랑했다면 마리아의 이 거룩한 낭비는 전혀 불편한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돈주머니를 관리하는 자였고, 그 돈주머니에서 돈을 훔치던 도둑이었기에 그런 사랑을 읽어내기란 매우 어려웠고 그 자리가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3.

사랑하는 사람에게 낭비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퍼주고도 더 줄 것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여러분들이 연애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도 돈 없는 신학생 시절에 아내를 만났지만, 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물량공세를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돈 모아서 VIPS, Out Back 같은 레스토랑도 가고 에버랜드 같은 곳의 티켓도 아까워하지 않고 예약하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사귀자고 말할 때 광화문 교보문고 1층의 파스타 집에서 만났었습니다. 너무 기뻐 지하 1층에 있는 교보문고 hot tracks에 가서 아내에게 시계를 하나 사주었습니다. “너와 나의 사랑은 시간을 넘어선 영원에 속한 것이다.” 뭐 그런 의미였던 것 같아요. 사랑할 때는 더 주고 싶은 마음 뿐이지 절대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에는 낭비란 없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에는 이 사랑이 없었던 겁니다. 여러분 선행이 절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하지 않는 선행은 자기만족이나 자기 권력을 구축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선행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마음과 잇대어 있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300데나리온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어야지 했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선전도구일 뿐이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어떻게 이 세계 가운데 퍼져나갔다 사그러졌는지 한 번 보십시오. 그들의 구호는 너무나 훌륭했고 아름다웠습니다.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모두 다 같이 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리고 그들이 외친 구호는 이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죠지 오웰(George Orwell)동물농장(Animal Farm)은 스탈린 체제의 공산주의를 비판한 소설입니다. 동물 농장을 인간 주인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을 내 쫓고 동물 농장에 새 시대를 열겠다고 했던 돼지들이 어떻게 망가져가는지 소설은 자세히 묘사합니다. 권력을 잡은 돼지들은 인간들과 똑같이 동물들의 노동을 착취했고 모든 부를 자기들만 누렸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시작했지만 그 가난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자기 권력을 구축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예수님을 통과하지 않았을 때 자기 권력을 위해 오용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줍니다.

 

4.

마태복음 2613절에서는 온 세상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여인의 행위는 예수님이 죽으신 의미를 이해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자신의 가장 귀한 생명을 깨뜨리는 그 큰 사랑의 본질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나드를 깨뜨리고 발에 부은 것이 낭비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전부를 우리를 위해 깨뜨리실 사건에 대한 rehearsal이자 simulation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이 여인의 공통점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깨뜨릴 때 향기가 납니다.  향기는 가장 소중한 것을 깨뜨릴 때에만 발생합니다. 내 안에 온통 나(ego)로 가득한 사람이 깨뜨린 삶은 향기가 아니라 악취만 있을 뿐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자기 권력을 위해 깨뜨린 거짓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나를 부수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헌신과 다짐 없이 깨어진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와 희생의 의미를 이해하고 따르겠다는 사람은 자기를 온전히 부숩니다. 온전한 자기 부인과 함께 예수를 자신의 삶의 중심에 모십니다. 그는 예수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깨뜨린 삶을 이해하기에 예수를 따라 자신의 삶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은 예수를 그들의 삶의 중심에 모셔드리기는 커녕 그를 저 빈들로 내 몰았습니다. 왜냐면 예수는 그들의 삶의 기반을 무너뜨릴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을 그대로 두면 모두 그를 믿게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로마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땅과 민족을 약탈할 것입니다(11:48)." 로마 사람들은 이미 그들의 민족을 약탈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기득권을 누리고 사람들의 돈을 갈취할 수 있는 성전체제가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을 염려한 것입니다. 예수가 그들에게 방해꾼이자 눈에 가시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어떻게든 감추려하고 먼 들로 내어 쫓아버리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겁니다.

유다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유다 또한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를 따른다고 했으나 자기 명분을 위한 따름이었습니다. 예수 앞에 온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깨뜨리지 않았기에 여전히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권력자들과 손을 잡고 예수를 팔아버린 것이겠죠.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따르긴 했으나 그것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으니 예수를 폐기 처분해 버린 겁니다.

 

예루살렘의 종교당국자들과 예수의 관계, 그리고 유다와 예수의 관계를 옛날 이야기로만 봐서는 안됩니다. 우리 양심에 진동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예수님의 거룩한 시선으로 우리 양심을 비추는 일을 멈춘다면 우리 또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양심을 비추는 성경 읽기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기도의 삶에서 멀어져 있다면, 우리는 예수를 은닉하고 예수를 저 먼 들로 내쫓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따름의 핵심은 나를 온전히 부인하고 깨뜨리는 삶입니다. 자기 부인으로 비워진 내 삶의 중심에 예수로 가득 채워지는 감격을 누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처럼 주님께 항복할 의사가 전혀 없이 어떻게 주님을 따르겠습니까? 주님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마세요. 저는 너무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적당히 즐기면서 내 유익을 위해 그렇게 살고 싶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며 사는 삶은 좀 부담스러워요.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저 빈들로 몰아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께 내 삶의 우선권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 거짓된 양심을 비추는 사람만이 예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로 채워진 사람들이 자기 삶을 깨뜨릴 때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5.

교회는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깨뜨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예수의 향기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의 교회에서 악취가 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온전한 예수 따름 없이 내 이름을 내고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드리기 위해 보여주기식으로 나를 깨뜨리니 악취가 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여러 선행과 자비 프로그램은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 따름이 먼저 있고 예수의 마음과 잇대어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마음이 그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물이 아래로 흘러내려 가듯 예수님의 마음은 가난한 자들과 인간성의 모멸을 겪고 있는 비참한 인생들을 향해 흘러갑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과한 사랑과 선행만이 자기 권력을 구축하는 도구로 오용되지 않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아는 것, 예수의 마음을 읽는 것, 예수의 마음에 잇대어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베다니 마을 잔치에서 예수의 마음을 읽어낸 사람은 마리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녀가 깨뜨린 삶을 받으시고 큰 위로를 얻으신 것이죠.

 

저는 커피를 참 좋아합니다. 이곳에 와서 여러 이유로 커피를 끊을까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면서 갖는 행복이 커피를 안 마시면서 갖는 박탈감보다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향기 때문입니다. 좋은 커피를 들이킬 때 내 전 존재를 덮는 그 향내가 참 좋습니다. 커피가 자신의 몸의 수분을 없애 가며 자신을 태우고, 자신의 몸을 그라인더에 부수는 그 헌신이 있을 때 그는 향기를 발하게 됩니다. 삶을 깨뜨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삶을 깨뜨린다고 하면 너무 추상적입니다. 저는 삶의 향기는 인격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우리 삶이 향기롭다는 것은 우리의 인격이 흠모할만 하다는 것이겠죠. 우리가 깨뜨리는 삶은 우리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격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고농도의 추출물을 식물에서 짜낸 것이 향수가 되듯이, 인격도 부단한 노력과 훈련으로 장기간에 걸쳐 습득하는 것입니다. 인격은 훈련으로 습득된 삶이 농축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성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을 깨뜨린다는 것은 우리의 인격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각처에 그리스도의 인격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도 교회로 모인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바쳐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얘기했죠(고후 2:15). 향기가 가득찬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인격을 통해 공공연하게 표현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니 자연스럽게 삶에 향기가 나게 되는 것이구요. 예수 안에서 각처에 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니 교회는 얼마나 대단한 곳입니까.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향기로워지고, 여러분 때문에 직장이 향기로워지고, 동네가 향기로워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깨뜨리는 삶의 열매들로 온누리에 아름다운 주님의 사랑의 향기가 가득 채워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옛적 베다니 마을처럼 말입니다.

 

John 12:1-8

Title: I love you, so break it  / translated by Chungil Wi

 

1.

I feel the change of the seasons these days. Daytime temperatures have not dropped below 32 degrees for the past few days. When I told someone that spring would come soon, he said that spring had come. Come to think of it, it is true that spring has already arrived. The white snow covering the cornfields and grass is now mostly melting. I thought it was spring only when the flowers bloomed, but as the frozen ground began to melt, spring began. When I was in the military, the song I liked the most was Kim Myung-Sik's song 'Spring'. “The past days I was worried about and the cold winter that seemed to last forever, there is no trace as the Lord promised, and I praise what my God has done forever.” The memory of comforting the arduous military life by listening to the song with these lyrics comes back to life with spring. May the warm grace of the Lord be with all those who have been exhausted physically and mentally from going through the winter of life.

 

The land of Palestine, the base of Jesus' activities, also welcomes a new season at this time of year. The rainy season begins at the end of October, and the rain that falls during this time is called early rain. From this time on, there are many cloudy days, and most of the year's precipitation is concentrated from the end of October to the beginning of March. The rain that falls in early March is called the latter rain, and this is when the dry season begins. When the late rains in March stop, the harvest season begins in earnest. The harvest of olives, barley, and grapes begins. During this season, Jews celebrate the most important holiday, the Passover. The Passover was a very important feast to commemorate the Exodus, which made them free from slavery in Egypt. They remember and celebrate God's salvation by sacrificing a lamb to liberate them. It is significant that Jesus died on the cross on Passover, a major Jewish holiday. As the Lamb of God, Jesus had to bear the cross to save people who rebelled against God and turned away. To do so, Jesus had to go up to Jerusalem, and the place where Jesus stopped right before entering Jerusalem was Bethany. Next week is Palm Sunday, which commemorates Jesus riding a donkey into Jerusalem. Since the event that happened right before Jesus entered Jerusalem was the supper in Bethany, I want you to receive grace through this message today.

Before Jesus stopped by Bethany, we need to pay attention to where he was and why he should have been there. In John 10:39, “Again they tried to seize him, but he escaped their grasp.” And it says that Jesus went and fled. John 11 tells us that after raising Lazarus, Jesus' enemies from then on were determined to kill him. “So from that day on they plotted to take his life. Therefore Jesus no longer moved about publicly among the people of Judea. Instead, he withdrew to a region near the wilderness, to a village called Ephraim, where he stayed with his disciples. (John 11:53-54).”

Jesus gifted new life to the sick by performing signs and wonders, but he was hated by his enemies. When the hatred of the enemies reached its peak as Jesus performed miracles, the Lord went to a lonely place to avoid the enemies. It looks like a hit-and-run operation. He performed the miracle of raising Lazarus from the dead in Bethany, but when the news reached Jesus' enemies, he rushed to kill Jesus. Jesus did good and set many people free, but the hatred of the enemies grew like a snowball. It would be good to understand that Jesus hit and run like this as he took a breather. Now, before going up to Jerusalem in earnest, he would have had to take a breath and refresh his mind. He needed to prepare his mind before drinking the cup of suffering that was too heavy for him to handle. After stopping at Bethany, which was only three kilometers away from Jerusalem, he will be heading to Jerusalem. When Jesus visited the village of Bethany again, the Lord was determined. Jesus must have visited Bethany with determination. But, unaware of this, the people of Bethany held a feast when Jesus, who performed miracles, returned to their village.

 

2.

There was a woman who sensitively caught the flow of Jesus' emotions in the heat of the festival of gratitude and joy. She was Mary. While everyone was excited about the party, only Mary read Jesus' mind. She had a hunch that Jesus was accepting his own death with his resoluteness. When she thought of His hardships when He went to Jerusalem, Mary must have lost her heart. She wanted to comfort the Lord with what Mary had. There was a saying, “A woman's hazy intuition is better than a man's clear reasoning.” (This is what I said). A woman appears in the gap between the men who are drunk to the fullest. She had a hunch that this feast should be a rehearsal for Jesus' funeral banquet.

The reason she read the heart of Jesus like this is that she was a disciple of Jesus. Because Luke 10:39 describes it as “She had a sister called Mary, who sat at the Lord’s feet listening to what he said.” In Acts 22:3, Paul expresses that he “learned at the feet of Gamaliel.” To sit at one’s feet and listen to one’s words was an idiom for being one’s disciple. In other words, she was a faithful disciple who understood the meaning of Jesus' entry into Jerusalem. Mary, who suddenly appears among the men who are drunk with their excitement, starts a performance she has prepared. Mary pours expensive nard perfume on Jesus' feet, equivalent to a year's wages for a laborer. Nard is a high-quality perfume collected from plants, and it was also a funeral perfume that was used at Cleopatra's funeral. Why does she pour perfume on his feet? Jesus went about preaching the gospel from place to place. Besides, he had to run to empty fields to avoid his enemies. Jesus' feet were swollen and imperfect. Mary's gaze is fixed on her feet of Jesus and she pours perfume on them. She wanted to comfort Jesus.

What senses will be stimulated first when you pour perfume? It's the smell. In the Gospels of Matthew and Mark, it is further explained that this house was the house of Simon the leper. A leper is a person with a skin disease. Then, basically, I think the scent would not have been good. The Bible tells us that Simon the leper's house was suddenly filled with the smell of perfume. Mary did not stop by pouring her perfume on Jesus' feet but began to dry her perfume by wiping it with her own hair. In this way, she is preparing and simulating the funeral of her master.

Here, as a character in contrast to Mary, a disciple of Jesus named Judas from Iscariot appears. He did not understand what this woman was doing. She didn't just break the vessel of perfumed oil, he thought, she was breaking the mood. Above all, he couldn't understand why she was wasting such expensive fragrance oil. How much money are 300 denarii? Judas said that it would be better if he sold it and gave it to the poor, but actually, the money was too precious to him. Although they are the same disciple, the feeling temperature between Judas Iscariot and Mary is quite different. One person has hot love and devotion towards her teacher, and the other person analyzes and argues with too cold a reason.

 

What is Jesus' reaction? “Leave her alone,” Jesus replied. “It was intended that she should save this perfume for the day of my burial. You will always have the poor among you, but you will not always have me. (John 12: 7-8).” he supports Mary. Through Mary's actions, Jesus received considerable comfort. No, he rather gained great strength and courage. Jesus was also a human being, so he sensed the warm flow of his heart and was moved. He must have been tired of running away, hungry, and exhausted. Jesus could read the love that was deep in her heart. It is absolutely not a bad thing to do charity work with 300 denarii. But Judas' limit was that he did not know the sincerity of Mary's love for Jesus. If he had truly followed and loved Jesus, Mary's holy waste would not have been uncomfortable at all. However, he was the person who managed the money bag, and he was a thief who stole money from the money bag, so it was very difficult to read such love and the position was uncomfortable.

 

3.

Nothing is wasted on loved ones. It is a characteristic of people who love to be sorry that they have nothing more to give even after giving everything away. Think about when you were dating. I met my wife when I was a theological student without enough money, but I did not want to stop giving everything the woman I love. I remember saving money, going to restaurants like VIPS and Out Back, and making reservations for tickets to places like Everland. When I first asked her to date, we met at a pasta shop on the 1st floor of Kyobo Book Center in Gwanghwamun. I was so happy that I went to the Hot Tracks of the Kyobo Bookstore on the B1 floor and bought her a watch for her. “My love for you is beyond time and belongs to eternity.” I guess that was my intention. When you love, you just want to give more, but it's never a waste. Because nothing is wasted in a loving heart.

 

Judas Iscariot did not have this love in his heart. Your good deeds are never bad. But good works outside of Jesus are nothing more than a means to build up their self-satisfaction or self-power. Love for the Lord comes first, followed by good deeds. Judas Iscariot was not connected with Jesus' heart, and he did not love Jesus. He should have helped the poor man with 300 denarii, but it was just a political propaganda tool. Just look at how communism has spread and faded in the world. Their reliefs were so wonderful and beautiful. A beautiful world where everyone prospers through fair distribution of wealth was the value they pursued. But we know all too well how they fell and that the slogans they chanted were nothing more than ideals. George Orwell's "Animal Farm" is a novel that criticizes Stalin's communism. Animal farms were run by human owners. The novel describes in detail how the pigs, who said they would kick out humans and open a new era in animal farms, are ruined. The pigs who came to power exploited the labor of animals just like humans and enjoyed all the wealth for themselves. It started for the poor, but the love for the poor was used as a tool to build self-power. Loving the poor is not a bad thing, but history tells us that it can only be misused for self-power if it has not passed through Jesus.

 

4.

In Matthew 26:13, “Truly I tell you, wherever this gospel is preached throughout th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said Jesus. Why? It is because this woman's act was an act of understanding the meaning of Jesus' death. It is because Jesus now went up to Jerusalem and understood the essence of the great love that destroyed his most precious life. This woman breaking her nard and pouring it on her feet seems like a waste, but this is a rehearsal and simulation of an event where Jesus will break all of himself for us. What Jesus and this woman have in common is that they broke what was most precious to them. A person smells when they break something that is most precious to them. The scent comes only when you break the most precious thing. The life broken by a person who is full of me (ego) is not a fragrance, but only a stench. Because it is nothing more than a false performance broken for self-power. A broken life is meaningless without the dedication and resolution to completely break oneself and follow the Lord. Those who understand and follow the meaning of Jesus' death and sacrifice completely destroy themselves. With his total self-denial, they put Jesus at the center of their lives. They can follow Jesus and break their lives because they understand that Jesus broke his life on the cross.

 

However, the powerful in Jerusalem drove Jesus to those empty places instead of bringing him to the center of their lives. Because Jesus is a dangerous existence that will break the foundation of their lives. “If we let him go on like this, everyone will believe in him, and then the Romans will come and take away both our temple and our nation (John 11:48).” The Romans are already plundering their people. What does this mean? They were concerned about a situation in which the temple system, where they could enjoy vested interests and extort people's money, could be seriously shaken. Jesus is only seen as a hindrance to them and a thorn in their eyes. It led to the act of kicking him out.

Judas is not much different from them. Judas, too, was not free from his self-centeredness. He said he was following Jesus, but he was following for his own sake. Because he did not fully deny and break himself in front of Jesus, he still could not escape from his self-centeredness. So he must have sold Jesus by joining hands with the powerful in Jerusalem. He followed Jesus to achieve his purpose, but it seemed that it would not come true, so he discarded Jesus.

The relationship between Jesus and the religious authorities in Jerusalem, and between Judas and Jesus, should not be seen as an old story. If we close our ears to the word of God that causes vibrations in our conscience and stop illuminating our conscience with the holy gaze of Jesus, we are no different from them. If we are far from reading the Bible that illuminates our conscience with the Word of God and praying to hear the voice of God, we are hiding Jesus and driving him out into the distance. The core of following Jesus is a life that completely denies and breaks me. The first priority is to enjoy the thrill of being filled with Jesus at the center of my life, which has been emptied by self-denial. How can you follow the Lord without any intention of surrendering to Him like the powerful men in Jerusalem? Lord don't come close to me, I don't want to live too tired, I want to live for my own benefit while enjoying myself in moderation, The life of listening to and obeying the Lord's words is a bit burdensome…. These people are driving Jesus into those voids. Loving Jesus is giving Jesus a priority in my life. Only those who reflect their false conscience on the word of God can love Jesus. When those who deny themselves and are filled with Jesus break up their lives, the fragrance comes out.

 

5.

The church is a gathering of people who have broken their lives for Jesus. Therefore, it is only natural that the church smells of Jesus. But why does a modern church stink? It stinks because I break myself in a show way to make a name for myself and attract people to the church without following the perfect Jesus. Many good works and mercy programs in the church should not be the goal. Following Jesus comes first, and connecting with the heart of Jesus comes first. If you love Jesus, you cannot help but love the poor. Because the heart of Jesus flows naturally to those poor people. As water flows down, the heart of Jesus flows towards the poor and the wretched human beings who suffer the contempt of humanity. Therefore, those who truly love Jesus have no choice but to love the poor. Only love and good works that have passed through Jesus are not misused as tools for building self-power.

Knowing the heart of Jesus, reading the heart of Jesus, and connecting with the heart of Jesus are the first priority. At the feast in Bethany, Mary was the only one who read Jesus' mind. And Jesus gave her great comfort by accepting her broken life.

 

I really like coffee. I came here and thought about giving up coffee for various reasons. However, I felt that the happiness of drinking coffee is greater than the deprivation of not drinking coffee. The reason I like coffee is because of its aroma. I love the scent that covers my entire being when I drink good coffee. When coffee burns him as it drains his body of moisture, and when he has that dedication to crushing his body into the grinder, he gives off a scent. What does it mean to break a life? If you say you break life, it's too abstract. I believe that the fragrance of life comes from character. If our lives are fragrant, it means that our characters are worthy of admiration. The life we break must become our character. But character is not just created. Just as high-concentration extracts squeezed from plants become perfume, the character is acquired over a long period of time through constant effort and training. Good character can be said to be the character of Christ in which the life acquired through training is concentrated. In that sense, to break life is to break our character. Christians are people who spread the fragrance of the character of Christ everywhere.

Paul also said that all of us who have gathered in the church are the fragrance of Christ offered to God (2 Corinthians 2:15). Being full of fragrance means that love for the Lord is openly expressed through character. If you love Christ, you will become like Christ. As you become like Christ, you will naturally have a fragrance in your life. What a wonderful place the church is when people who give off the fragrance of Jesus gather in the church! I hope that the home becomes fragrant because of you, the workplace becomes fragrant because of you, and the neighborhood becomes fragrant because of you. It would be great if the fruit of life we break would fill the whole world with the beautiful fragrance of the Lord's love. Like the old town of Bethany.

 

 

 

 

Posted by speramus

<불편한 편의점>

노회참석차 시카고 오고가는 하늘 길에서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소설 1권과 2권을 읽었습니다. 제목부터 편의점이 편의를 주지 못하고 불편을 주다니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소설은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에 위치한 작은 편의점을 배경으로 합니다.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염영숙은 동네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70 초반에 역사선생님으로 은퇴한 노파입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영숙은 Always라는 편의점을 경영해 오고 있습니다. 적자로 운영난을 겪으면서도 그녀가 편의점을 접지 못한 이유는 편의점 알바를 하며 재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였고, 애당초 그녀는 그런 목적으로 편의점을 시작했던 겁니다. 영숙은 부산으로 가던 기차 안에서 자신의 지갑이 파우치를 분실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통의 전화를 받는데 자신의 파우치를 서울역에서 습득한 사람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그는 서울역을 근거로 힘겹게 살아가는 노숙자였고, 영숙은 그를 자신의 편의점까지 데리고가 편의점 도시락으로 그의 허기를 달래줍니다. 이렇게 시작된 영숙과 독고라는 50 초반의 다른 주인공을 통해 소설은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독고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알코올 중독에 의해 기억을 잃어버리고 오랜 노숙자 생활에 말을 더듬기까지 했으니 사람들이 그를 부담스러워하고 불편해 하는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야간 알바를 하는 편의점 또한 불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서울 중심부이지만 개발되지 않은 청파동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편의점을 통해 독고라는 남자와 연결이 되고, 독고는 그의 외모와 딴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소설은 독고를 통해 갱생되고 제기하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결국 독고는 잃어버렸던 자신의 삶을 되찾는다는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영숙씨의 작은 호의와 신뢰가 어떻게 나비효과가 되어 많은 이들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지 소설에서는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독고는 불편한 편의점에 기대어 추위를 피하고 폐기 상품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보잘 없는 인생이었지만 그는 영숙에게 받은 호의와 신뢰를 편의점에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그대로 흘러보내 줍니다. 편의점을 이용하는 청파동의 가난한 인생들은 독고의 친절과 조언을 통해 그들 또한 재기를 꿈꾸고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며 교회가 이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여러 모로 부족하고 불편한 것들도 많지만, 교회는 기댈 없는 사람들이 와서 쉼을 누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서로의 친절과 호의를 통해 격려 받고 살아갈 용기를 얻어야 하는 곳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삶에 베풀어주신 크신 은총과 자비를 경험한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베푸는 호의와 자비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갈 있으리라 믿습니다. 

Posted by speramus

본문: 창세기 1816-19

제목: 의와 공도의 하나님 나라

 

1.

오늘은 교회 켈린더로는 산상변모주일(Transfiguration of Jesus)인데 사순절 직전에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산상 변모(Transfiguration on the mountain)란 예수님께서 수난을 받으시기 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기도를 하러 산에 가셨을 때 변화된 사건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그의 얼굴의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하얗게 빛이 났었죠(9:29). 베드로와 두 제자는 기도 안하고 졸고 있다가 깨어나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유난히 빛난 모습으로 구약의 유명한 인물 두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죠. 그 두 사람은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교회력에서 산상변모 주일이 사순절 바로 앞에 있는 이유는 변화산 사건을 기점으로 예수님이 수난 받으실 거라는 걸 말하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 앞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을까요? 모세와 엘리야는 당시에 구약 성경으로 이해되던 모세오경과 예언서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주 말씀 드렸던 모세오경인 토라(Torah), 그리고 예언서인 느비임(Neviim) 을 대표하는 사람 둘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성경 속에서 모세나 엘리야 같은 사람에 의해 그렇게 에코잉 되던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모세가 이끌었던 출애굽과 예언자들이 노력했던 출애굽 사건의 재현이 이제 예수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죠.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되기 전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음성이 들려진 겁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할 때 이미 하늘에서 이와 동일한 음성이 들렸었죠. 이제 예수님이 모세와 예언자들이 예언한 그 구원의 사건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시기 직전에 하나님은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계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가복음 931절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31절은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나눈 대화의 주제가 나옵니다.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개역성경에서는 떠나가심별세로 번역했고, 영어성경에서도departure 또는 decease’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Exodus’에 대해 말하였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완성해야 할 일이 exodus, 그러니까 출애굽이라는 말입니다. 모세 시절 출애굽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누구의 희생 덕이었습니까? 출애굽 당시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지고 저주가 넘어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를 면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집트로부터 이끌림을 받아 새로운 언약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이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완성하실 일이 십자가 희생인데 그것은 그의 언약백성들을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희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9절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고백했죠.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구요. 예수님은 십자가 희생을 통해 빛의 자녀들을 세계 만민을 위한 제사장 역할을 위하여 이끌어 낼 것임을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많은 이들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게 되는 겁니다. 이 놀라운 진실을 구약성경의 대표적인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증명해 주고 있는 겁니다.

 

2.

여러분 예수님은 뜬금없이 이 세상에 등장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여러 이야기들 속에서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진행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계속 반복되어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의지가 마침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것입니다.

구약에서 계속 echoing 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를 도려 내버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큰 산봉우리에서 아브라함이 소리를 지르니까 저 멀리 있는 모세에게서 똑같은 소리가 울렸습니다(Echoing). 그 모세의 소리가 이스라엘에게 울리고 세례 요한에게 울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모든 에코를 합하여 그분의 소리를 내십니다. 쉽게 말해서 구약성경에서 누적되어 왔던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와 이야기들에 대한 이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을 읽어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구원과 복음을 이해하는 깊이가 달라지니까요. 예를 들어, 소설 레 미제라블이총 다섯 권인데, 4권부터 읽는다 하면 장발장이란 인물이 원래 이렇게 착한 인물이었던 걸로 착각할 수 있겠죠? 은촛대와 은접시들을 훔친 장발장을 미리엘 주교가 무한한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안은 이야기를 빼 먹으면 안됩니다. 장발장이 어떻게 사랑의 힘으로 극적으로 회심했는지를 1권에서 읽어야만 나머지 책에서 펼쳐지는 그의 선행의 의미들이 이해 되어지는 겁니다.

 

3.

아브라함에게 울려 퍼졌던 구원의 메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오늘 본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이야기 중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앞으로 구약 성경에서 반복되어 에코잉될 하나님이 만들어 가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통해 만들어 가실 하나님 나라의 실체와 본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이 외침이 예수님에게서 동일하게 에코잉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어떤 세 명의 사람의 방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세 사람은 실은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소돔이라는 도시에서 들려지는 부르짖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실사하기 위해 왔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들을 정성스럽게 대접합니다. 대접을 잘 받은 그들은 사라가 내년 이맘 때 남자 아이를 출산하게 될 것이라고 축복해 줍니다. 24년 동안 약속을 받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터러 사라는 그 말을 듣고 비웃어 버립니다. 이미 그들은 자신들의 종으로부터 사내아이를 낳아 대를 잇고자 노력했지만, 하나님은 사라의 태로부터 후손이 나올 것을 거듭 확인해 주셨었죠.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번 약속을 확인 받았지만 그들에겐 세월이 하나님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사라의 잉태에 대한 기쁜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세 사람을 배웅합니다. 그들을 배웅하는 길에 하나님의 음성이 그들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전달되는데 그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18절의 말씀은 창세기 121-3절의 반복처럼 보입니다. 핵심은 아브라함을 선택하고 그의 후손을 선택하신 이유는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전제되는 복이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순종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개역개정 성경의 번역을 인용하겠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명령을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신다는 겁니다. 그 명령을 여호와의 도라고 표현하고 있구요. ‘라고 번역된 히브리말 데레크derek’는 길을 뜻하는 말입니다. 지난 주 설교했던 인생의 두 가지 길 중에 의인의 길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아브라함과 그들의 후손이 지켜야할 길을 두 가지 단어로 압축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의와 공도로 번역했죠. 새번역에서는 옳고 바른 일’, NIV에서는 ‘right and justice’ KJV에서는 ‘justice and judgement’라고 번역합니다.

 

이 두 단어는 히브리 말로 쯔다카(צְדָקָה)’미쉬파트(מִשְׁפָּט)’입니다. 의로 번역된 쯔다카는 회복적 정의’를 일컫는 말로 자선 혹은 구제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어떤 사회든 사람들의 공동생활에서 발생한 잉여를 분배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이는 부유해지고 또 어떤 이는 가난해집니다. 성경은 형편이 좋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함으로써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자들의 의무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옳은 삶이란 거죠.

공도나 정의로 번역된 미쉬파트는 사법적인(juridical) 정의입니다. 재판관이 법에 따라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정의는 힘이 있는 사람들을 편들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라 하여 불법을 묵인하거나 두둔하지 않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연루되었다 하여 있는 죄를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없는 죄를 만들어 벌을 주지도 않습니다. 사법적 정의가 바로 설 때 사람들은 공권력을 신뢰하게 되죠. 그러니까 사람의 신분이나 빈부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전제하는 겁니다.

쯔다카와 미쉬파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에 대한 존귀함으로부터 시작되는 개념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동등하게 부를 나누고 소유하는 그런 자율 시민적인 가치가 바로 쯔다카와 미쉬파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두 가지 큰 기둥입니다.

 

시편 971-2절은 이 말씀을 에코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온 땅아, 뛰듯이 기뻐하여라. 많은 섬들아, 즐거워하여라.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러쌌다. 정의와 공평이 그 왕좌의 기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나라의 왕좌에 두 개의 큰 기둥이 있는데 그것이 정의와 공평이라는 겁니다. 창세기 1819절에서 쓰인 쯔다카미쉬파트가 똑같이 쌍으로 쓰이고 있는데 한글 성경에서는 정의와 공평으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죠.

 

중요한 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다스림의 핵심에는 이 두 가지 본질이 담겨 있다는 겁니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해 앞으로 실험되고 실천될 나라는 쯔다카미쉬파트가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정의와 공평이 실현되는 나라를 아브라함은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의 조카 롯이 추구한 도시 문화의 본질은 이와 정 반대로 나아가는 나라였습니다. 성 안에 머물며 안전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의 이웃을 물어 뜯는 야수들의 사회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천사들은 아브라함의 나라와 소돔을 대조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내가 너에게 숨길 것이 뭐가 있겠어? 너의 나라는 저 소돔처럼 되면 안돼? 알지?”이런 뉘앙스인 겁니다. 소돔과는 대조되는 대안적인 나라를 만들어갈 숙제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4.

소돔은 미쉬파트와 쯔다카를 행하는 사람인 의인 10명이 없어 망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다음 장인 19장에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두 명의 메신저가 롯의 집에 들어갔는데 그 도시의 남자들이 롯의 집으로 쳐들어 오려고 합니다. 남자 손님 둘을 겁탈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도시의 도덕적인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말해 줍니다.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죄악을 저지르는 겁니까? 왜냐면 상대방이 나랑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귀하게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죠. 사람을 자기의 욕망을 위한 물건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인격체로 존중하거나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필요대로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이죠. 구약 성경은 이런 의롭지 않기 때문에 죄라고 말합니다. 쯔다카와 미쉬파트가 결여된 상태입니다.  

 

중국에 살며 경헌한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거리에서 누가 맞고 있어도 관여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랑 상관 없는 사람이고 괜히 관여했다가 나만 골치아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중국에 아직도 문이 없는 화장실들이 많습니다. 그 합리적인 이유 중 하나가 사람이 하도 많아서 화장실에서 마주친 사람을 다시 볼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로 생각하면 우리는 타인에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아니 함부로 하기까지 하죠. 반대로 내 이웃이 하나님의 지극한 관심을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 생각되면 그에게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왜 가난하고 병들고 죄인 취급 당하는 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거친 대우로 말미암아 일그러져 있는 그들 안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다가가신 겁니다. 쯔다카와 미쉬파트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내 이웃을 향한 존중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연결된 존재이고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는 눈이 열리게 되면 우리의 태도가 바뀌게 됩니다. 상대방이 나의 이웃이요 나의 형제 자매라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존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죠.

 

지구 저 반대편에서 일어난 튀르키에와 시리아의 지진이 나와는 아무 상관 없어 보이지만 그들을 돕고 싶어지죠. 왜냐면 그들이 우리의 형제 자매요 우리의 이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주고자 우리의 지갑을 여는 것이 아깝지 않게 됩니다.

 

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꿈꾸셨던 나라는 의롭고 공정한 나라였습니다.  정의와 공평은 하나님의 통치 방식인데 사랑에 뿌리를 둡니다. 로마서 1310절에서는 사랑은 이웃들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로 결정하면 예수님은 그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그를 자유케 합니다. 이제 그의 삶의 주도권을 성령님이 쥐고 다스리게 되죠. 그런데 성령의 법은 사랑을 따라 움직이고 다스리는 법입니다. 성령님에게 온전한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중앙집권적인 국가는 필요 없어지게 됩니다. 왜냐면 정의와 공평이 온전하게 행해짐으로 말미암아 국가가 필요 없을 정도의 자율 통치가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민(文民)통치란 직업군인이 아닌 일반 국민이 다스리는 나라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에 의한 문민 통치가 이뤄집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가 자율적으로 사랑에 의해 움직이니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것이죠. 그 성령의 문민통치를 맛보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천국을 미리 맛보는(foretaste) 곳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예수 믿고 성령의 다스림에 들어온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사랑을 공유하는 공동체입니다. 세금 거두는 사람이 없는데도 좋은 옷 입고 와서 자발적으로 세금을 냅니다. 그리고 그 재정으로 주변의 불우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돕고자 합니다. 모든 교회가 자기가 속한 동네나 커뮤니티의 복지를 교회 스스로 책임진다면 국가는 필요 없어지게 될 겁니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이렇게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을 더 많아지는 세상입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율적인 사람들이 많아질 때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위에 더 힘있게 세워져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말씀을 정리해 볼까요?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시기 전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확인합니다. 구약의 길고 긴 역사와 서사 속에서 실현하려 했던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희생은 언약 백성을 만민에게 복을 주기 위해 새로운 출애굽을 만들어 가실 겁니다. 그 출애굽은 어린양의 희생으로 열리게 되는 데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참 길과 생명을 열어주실 겁니다. 예수님이 가실 길은 구약의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이미 제시된 길이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계속 반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코잉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만들어가실 나라는 정의와 공평이 기반이 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통치되어질 사랑의 나라인 것이죠.

 

하나님의 나라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 어디에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하나님은 이 땅 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지는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기를 바라십니다. 그 나라를 만들어 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초가 바로 쯔다카와 미쉬파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두 기둥 위에 세워지는 것이죠. 이런 정의와 공평은 성령의 온전한 통치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통치를 받는 이들은 나의 이웃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로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그를 사랑하는 삶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바라시는 삶이라는 것을 너무나 깊이 이해하기에 이웃을 아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 땅에 사법적인 정의가 실천되지 않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사법적인 정의가 무너져 있고 부의 공정한 분배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세상에 가득하면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어지게 됩니다(이사야11:9). 우리를 통해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지기 소망합니다. 인간미 없는 소돔과 같은 세상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서로 책임지는 정의와 공평이로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 위에서 미리 맛보기를 소망합니다.  

Text: Genesis 18:16-19

Title: A Kingdom built on the foundation of righteousness and justice

Translated by Wi Chung-Il

 

1.

Today is the Transfiguration of Jesus on the Mountain by a church calendar, which is celebrated just before Lent. The Transfiguration on the Mountain refers to the transfiguration of Jesus when he went to the mountain to pray with Peter, James, and John before he suffered. When Jesus prayed, the appearance of his face transformed, and his clothes shone dazzlingly white (Luke 9:29). Peter and the two disciples dozed off without praying and woke up to see an amazing scene. Jesus' face changed and his clothes were exceptionally shining. They also found Jesus talking with two famous Old Testament figures. Those two were Moses and Elijah. After talking with them, Jesus heard his Father's voice from heaven. The reason why the Transfiguration on the Mountain Sunday is right before Lent in the church calendar is because Jesus began to say that He would suffer from the Transfiguration on the Mountain.

 

Why did Moses and Elijah appear before Jesus? Moses and Elijah represent the Pentateuch and the Prophets, which were understood as the Old Testament at the time. These are the two people who represent the Torah, the Pentateuch of Moses, and the Neviim, the prophetic book, which I mentioned last week. In other words, the promise of God echoed in the Bible by people like Moses and Elijah is Jesus. It means that the Exodus led by Moses and the reenactment of the Exodus event that the prophets worked hard for will now be accomplished through Jesus. So now, before the Passion of Jesus began in earnest, a voice was heard from heaven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At the beginning of Jesus' public ministry, the same voice had already been heard from heaven. Now, right before Jesus begins the event of salvation prophesied by Moses and the prophets in Jerusalem, God is expressing his sincere thanks to Jesus.

 

In that sense, Luke 9:31 is very important. Verse 31 is the subject of a conversation Jesus had with Moses and Elijah. “(Two men, Moses and Elijah, appeared in glorious splendor, talking with Jesus.) They spoke about his departure, which he was about to bring to fulfillment at Jerusalem.” In the Revised Bible, ‘departure’ is translated as ‘death’, and in the English Bible, it is translated as ‘departure’ or ‘decease’. By the way, the Greek Bible says, “The Exodus of Jesus was spoken of in glory.” The work Jesus had to complete in Jerusalem was Exodus. Whose sacrifice was it that made the Exodus possible in the days of Moses? At the time of the Exodus, the blood of the lamb was applied to the doorposts, and the curse passed over, so the Israelites escaped the curse. And they were led from Egypt and were reborn as a new covenant people. What Jesus will complete in Jerusalem is the sacrifice of the cross, which will be a sacrifice to lead his covenant people to the new land of promise. So, in John 1:29, John saw Jesus and confessed like this. “Behold,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Jesus is saying that through the sacrifice of the cross, he will lead the children of light to serve as priests for all peoples of the world. Jesus died in Jerusalem in order to bring many people out of Egypt. Moses and Elijah, the representative figures of the Old Testament, appear and prove this amazing truth.

 

2.

Jesus did not appear in this world out of the blue. In many stories of the Old Testament, God has been working on the history of salvation. And God's will to save, which has been repeatedly revealed, will finally be completed through Jesus Christ.

You can't understand the cross of Jesus with cutting out the story of God's salvation that keeps echoing in the Old Testament. When Abraham shouted at the great mountain peak, the same voice echoed from Moses far away (Echoing). The voice of Moses echoed through Israel and echoed through John the Baptist. And Jesus puts all those echoes together to make His voice. Simply put, it is impossible to understand the salvation and gospel of Jesus Christ more deeply without understanding the will and stories of God's salvation that have been accumulated in the Old Testament. That's why you have to read the Old Testament. It is because the depth of understanding of the salvation of Jesus and the gospel is different. For example, if you read the novel “Les Misérables” in total of five volumes, starting with the fourth volume, you might mistakenly think that Jean Valjean was originally such a kind person, right? We must not miss the story of how Bishop Myriel embraced Jean Valjean, who stole the silver candlesticks and silver plates, with infinite forgiveness and love. Only when we read how Jean Valjean was dramatically converted by the power of love in volume 1 can we understand the meaning of his good deeds in the rest of the book.

 

3.

Let's take a look at today's text to find out what the echo of salvation resounded to Abraham. The text occupies a very important part of the story of Abraham. This is because the blueprint for the kingdom of God that God would create will be repeated and echoed in the Old Testament in the future. So, the reality and essence of the kingdom of God, which will be created through Abraham and his descendants, is being presented. This is important because this message will echo in the same way in Jesus. The main text begins with the visit of some three people. These three people were actually angels sent by God. They received God's command and came to investigate the reality of the cry being heard in the city of Sodom. Abraham and Sarah treat them with great hospitality. Well received, they bless Sarah that she will give birth to a baby boy this time next year. After receiving the promise and nothing happened for 24 years, Sarah laughed at the words. They had already tried to give birth to a male child from their servant to succeed the generation, but God repeatedly confirmed that descendants would come from Sarah's womb. They had been confirmed by God many times, but it seemed to them that time had more impact than God. Anyway, after hearing the good news of Sarah's pregnancy, Abraham sees the three of them off. On the way to see them off, God's voice was delivered to Abraham through them, and that is today's text.

 

” Verse 18 seems like a repetition of Genesis 12:1-3. The point is that the reason Abraham and his descendants were chosen was to bless all nations. However, this promise is a blessing premised on Abraham's obedience. What was the content of obedience given to Abraham? “For I have chosen him, so that he will direct his children and his household after him to keep the way of the Lord by doing what is right and just, so that the Lord will bring about for Abraham what he has promised him.”

To put it simply, God gives certain commands to Abraham and his descendants. The command is expressed as ‘the way of the Lord’. The Hebrew word 'derek' means the way. Of the two paths of life that I preached last week, it must mean the path of the righteous. The path that Abraham and his descendants must keep is compressed into two words. It was translated as righteousness and justice in the Revised Version of the Bible. In the New Translation, it translates as ‘right and just thing’, ‘right and justice’ in NIV, and ‘justice and judgment’ in KJV.

 

These two words are 'Tsudaka (צְדָקָה)' and 'Mishpat (מִשְׁפָּט)' in Hebrew. Tsudaka, translated as righteousness, is a word that refers to 'restorative justice' and implies charity or relief. In any society, some become rich and others poor through the process of distributing the surplus of people's common lives. The Bible teaches that it is the obligation of the rich to care for those less fortunate so that they can enjoy a decent life. That is the right life.

Mishpat, translated as justice, is juridical justice. I think it would be better to translate it as righteousness. It refers to the fairness of judges in accordance with the law. Justice does not take sides with the powerful, and it does not condone lawlessness because of the poor. Just because a large number of people are involved doesn't mean they're not guilty. There is no punishment for making a crime that is not there. When judicial justice is right, people trust public authority. That is, it assumes that a person's status or wealth cannot affect the judgment.

Tsudaka and Mishpat are concepts that begin with the respect for human beings, who are made in the image of God. Tsudaka and Mishpat are autonomous civic values in which everyone is equal in the community and everyone equally shares and owns wealth. These are the two great pillars of the kingdom of God.

 

Psalm 97:1-2 echoes these words. “The Lord reigns, let the earth be glad; let the distant shores rejoice. Clouds and thick darkness surround him; righteousness and justice are the foundation of his throne.” It describes a country ruled by God. However, there are two big pillars on the throne of the kingdom of God, and they are righteousness and justice. ‘Tsudaka’ and ‘Mishpat’ in Genesis 18:19 are used as a pair, but the Korean Bible translates them differently as ‘justice and fairness’.

 

What's important? The kingdom of God, that is, the core of God's reign contains these two essences. The country that will be experimented and practiced in the future through Abraham and his descendants is the country where ‘Tsudaka’ and ‘Mishpat’ are realized. Abraham must create a country where righteousness and justice are realized. However, the essence of the city culture pursued by his nephew Lot was a country that went in the opposite direction. It seems safe to stay in the castle, but in reality it is like a society of beasts that bite their neighbors. So these angels are telling Abraham to contrast his country with Sodom. “What can I hide from you? Your country can’t become like that Sodom, you know?” This is the nuance. Abraham was given the task of creating an alternative country that contrasted with Sodom.

 

4.

Sodom was destroyed because there were no 10 righteous people who practiced Mishpat and Tsudaka. In chapter 19, the next chapter of the main text, two messengers sent by God entered Lot's house, and the men of the city tried to invade Lot's house. It was to rape two male guests. It tells how dire the moral situation of the city was. Why do people commit sins to the detriment of others? Because they think the other person has nothing to do with themselves. It's because they don't look at the other person in the image of God. It is because they treat people as objects for their own desires. Because they don't respect or acknowledge it as a person, they use the other person for my needs. The Old Testament says that these are sins and unrighteousness. Tsudaka and Mishpat are missing.

 

This is what I experience while living in China. The Chinese tend not to get involved when someone is being beaten on the street. It's because he's a person who has nothing to do with me, and I can only get into trouble if I get involved. It may be a different story, but there are still many doorless toilets in China. One of the rationale for this is that there are so many people that you are unlikely to see the person you bumped into in the bathroom again. We don't care about others if we think of them as people who have nothing to do with us. They even do it recklessly. On the contrary, if you think that your neighbor is a person who receives God's utmost attention and is a person made in God's image, you can show greater interest and love to him.

 

Why did Jesus reach out to those who were poor, sick, and treated as sinners? Because Jesus acknowledged them as person. He came to restore the image of God in people who have been distorted by their rough treatment. Tsudaka and Mishpat are based on the premise of respect for my neighbors who are created in the image of God. Our attitude changes when we open our eyes that everyone around us is connected to us and has meaning to us. If you think of the other person as your neighbor or your brother or sister, you will respect and value them.

 

Earthquakes in Turkey and Syria on the other side of the world don't seem to have anything to do with us, but we want to help them. Because we see them as our brothers and sisters and as our neighbors. It is not a waste to open our wallets to help them live a minimum human life by being created in the image of God.

 

5.

The country that God dreamed of through Abraham was a kingdom with right and justice. Righteousness and justice, God's way of ruling, are rooted in love. In Romans 13:10, it says “Love does no harm to a neighbor. Therefore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When we accept Jesus Christ as Lord and choose to live according to His teachings, Jesus gives them the gift of the Holy Spirit. Then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sets them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Now, the Holy Spirit takes the initiative in their lives and rules them. However, the law of the Holy Spirit is the law that moves and governs according to love. When there are many people who are fully ruled by the Holy Spirit, there is no need for a centralized state. This is because righteousness and justice can be fully exercised so that self-government can be achieved to the extent that the state is not needed.

Republic refers to a country governed by ordinary citizens, not professional soldiers. However, the kingdom of God is governed by the people by the Holy Spirit. People who have been moved by the Holy Spirit are all autonomous and move by love, so it becomes a beautiful world. The church is the place where you can taste the reign of the people by the Holy Spirit. The church is said to be a foretaste of heaven. The church is a community where people who believe in Jesus and come under the rule of the Holy Spirit autonomously share love. Even though no one collects taxes, they come dressed in nice clothes and pay their taxes voluntarily. And with that finance, we want to help the underprivileged and marginalized around us. If every church took responsibility for the welfare of its neighborhood or community, the state would become unnecessary. What we dream of is a world where more people are ruled by the Holy Spirit. It is because when there are many autonomous people who are ruled by the Holy Spirit, the kingdom of God can be established more powerfully on this earth.

 

6.

Shall we summarize the message? Before Jesus suffers, he confirms the path he is walking through Moses and Elijah. Jesus came to this earth to practice God's will of salvation, which was to be realized in the long history and narrative of the Old Testament. And the sacrifice of Jesus will make a new exodus to bless the covenant people to all peoples. The Exodus will be opened by the sacrifice of the lamb, and Jesus himself will become the Lamb of God and open the true way and life to many people. The way Jesus would go was also the way already presented through many stories in the Old Testament. It has been echoed by the Israelites over and over again since the time of Abraham. The country that God will create through the people of Israel is a country based on righteousness and justice. It is a nation of love that will be autonomously governed by God's covenant people.

 

The kingdom of God is not that far off in Andromeda. God wants to create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on this earth. God wants the will of God to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Tsudaka and Mishpat are the most necessary foundations to build that country. The kingdom of God is built upon these two pillars. This kind of justice and fairness is naturally given to those who obey the whole reign of the Holy Spirit. It is because those who are ruled by the Holy Spirit open their eyes to see their neighbors as noble beings created in the image of God. They are people who care for their neighbors because they understand so deeply that a life that does not harm them and loves them is what God wants them to be. Such a person feels sad to see that judicial justice is not practiced on this land. We live in a world where judicial justice is still broken and there are still many people who do not want a fair distribution of wealth. In the midst of such a world, we must create a nation that God desires. When the knowledge of the Lord fills the earth as the waters cover the sea, there will be no harm or damage (Isaiah 11:9). We hope that such a beautiful world will be created through us. It is not a world like Sodom without humanity, but I hope to taste the kingdom of God built on righteousness and justice in which we love each other and take responsibility for each other in advance on this world.

 

Posted by speramus

본문 : 시편 113:1-3 / 삼상 30:17-25

제목 : 한 식구(食口) “one family”

 

1.

좋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교우 여러분들과 함께 하길 빕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는데 추석들 잘 보내셨나요? 저는 미국에 온지 3년 정도 밖에 안 돼서 그런지 추석이 되면 고향집도 생각나고, 송편도 먹고 싶고 가족들이 많이 보고싶더라구요. 같이 한 밥상에 둘러 먹고 슬픔과 기쁨을 나누었던 식구들이 추석같은 명절이 되면 더 보고싶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교회 공동체가 있어서 우리에게는 이역만리 타향살이에 큰 위로를 받습니다.  교회를 사교단체라 하지 않고 가족과 같은 공동체라합니다. 여러 모로 교회는 가족 공동체를 닮았기 때문이죠.

시편 133편은 지난 주에 말씀드렸듯 형제가 하나되는 공동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공동체라는 말씀을 드렸었죠. 오늘은 133편의 타이틀인 “다윗의 시”라는 대목이 있는 것을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133편은 다윗의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다윗은 어떤 삶의 스토리와 경험 안에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라고 고백했을까요? 사무엘상 30장의 스토리를 통해 시편 133편을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2.

하나님은 한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이루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과 언약을 맺고 그들을 언약 공동체로 세우셨죠. 언약 공동체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복을 약속하셨고, 이스라엘은 그 복을 받는 대신 하나님의 복을 모든 민족에게 흘러 보내겠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약백성으로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델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이 부르심을 너무나 잘 이해했던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목동으로 들에 있을 때부터 그를 주목했고 왕으로 미리 기름부으셨습니다. 그는 사울을 대신해서 자신이 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스라엘을 통치해야 할 지 꿈궜습니다. 그러나 그의 꿈과 소망과 정 반대로 사울에 의해 광야로 내 몰려 쫓겨 다니는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이 때 부터 오히려 하나님은 도망자 다윗에게 광야에서 공동체를 이끌어 보는 훈련을 시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광야들을 떠돌아다니며 공동체를 이끌면서 하나님이 주인 되는 나라를 실험합니다. 사무엘상 22장을 보면 아둘람 동굴에 피신해 있는 다윗에게 사람들이 몰려든 장면이 나옵니다. 

“1   다윗은 거기에서 떠나, 아둘람 굴 속으로 몸을 피하였다. 그러자 형들과 온 집안이 그 소식을 듣고, 그 곳으로 내려가, 그에게 이르렀다.

2   그들뿐만이 아니라,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모두 다윗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사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삼무엘상22:1-2)

 

자기 자신도 쫓겨 다니는 도망자인데 사백여 명의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다윗의 부담감은 엄청났을 겁니다. 그리고 그를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빚 때문에 파산을 당한 사람들, 억울한 재판을 받아서 원망이 가득한 사람들, 사람들에게 차별을 받아 왕따가 된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들었죠. 여러분 이런 상처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해 적대적이고 공격적입니다. 남을 자꾸 찌릅니다. 이런 거친 사람들을 이끌며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또한 400명의 식솔들의 배를 채우는 일도 만만찮았겠죠. 몇 년이 지난 이야기인 사무엘상 30장에는 싸움에 나갈 수 있는 병사들만 600명이 나오는 것 보니 그 사이에 다윗의 공동체는 몇 배로 사람이 늘어났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공동체가 매력적이었다는 증거라 생각합니다. 다윗은 그들을 데리고 사울을 피해 도망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다윗은 아예 성읍을 하나 잡아서 정착을 하기로 마음 먹죠.  

 

5   다윗이 아기스에게 간청하였다. "임금님이 나를 좋게 보신다면, 지방 성읍들 가운데서 하나를 나에게 주셔서, 내가 그 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종이 어떻게 감히 임금님과 함께, 임금님이 계시는 도성에 살 수가 있겠습니까?"

6   그러자 아기스는 그 날 당장 시글락을 다윗에게 주었다. 그래서 시글락이 이 날까지 유다 왕들의 소유가 되었다. (사무엘상 27장 5-6절)

 

다윗은 블레셋 땅인 가드의 아기스 왕에게 피신을 합니다. 그리고 아기스 왕에게 성읍을 하나 달라고 부탁을 하죠. 블레셋이 어떤 민족입니까? 다윗에 의해 죽은 골리앗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과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에 찾아 들어간 다윗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기스 왕은 다윗과 그의 수백명의 식솔들을 받아 줍니다. 이렇게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었던 다윗 공동체는 정착하여 살게 됩니다. 하지만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터지면서 다윗의 입장이 난처하게 됩니다. 다윗은 살아남기 위해 블레셋을 도와 동족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겠다고 자원합니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것이지 블레셋의 장군들은 다윗이 원수인데 그를 데리고 전쟁에 나갈 수 없다고 아기스 왕을 압박합니다. 결국 다윗의 군대는 툇자를 맞고 시글락성으로 사흘길을 달려 돌아왔습니다.

 

3. 

오늘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윗과 600명의 군인들이 시글락 성에 돌아온 후부터 입니다. 블레셋과 다른 민족인 아말렉이라는 민족이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약탈하여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윗과 군인들이 북쪽에 참전해 있는 틈을 타서 시글락성을 공격합니다. 성을 침입하여 불을 지르고 여자와 아이, 그리고 노인까지 모두 포로로 잡아 끌고 가버렸습니다. 다윗이 돌아와서 불타 없어진 시글락 성을 보고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성경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목놓아 함께 울었는데 더 이상 울 힘이 없이 지칠 때까지 울었다고 말해 줍니다. 삼상 30장 6절은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다고 합니다.  

 6절- “군인들이 저마다 아들딸들을 잃고 마음이 아파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말할 정도였으니, 다윗은 큰 곤경에 빠졌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믿는 주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였다.” 

 

솔직히 다윗이 뭔 잘못입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떤 사고가 발생하면 속죄양(scapegoat)을 찾아 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윗은 이 곤경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이겨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고 하나님은 아말렉군대를 쫓아가라고 하십니다. 다윗의 공동체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은 철저히 그의 공동체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그들의 가족들은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보호하셨기 때문이죠. 다윗은 이틀 동안 아말렉 군인들을 모두 물리치고 가족들과 전리품들을 가지고 시글락성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있기 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말렉을 뒤쫓기 위해 600명의 군인들이 함께 갔었는데 그들은 이미 먼 길을 이동해 온 상태였고 또 이동하여 싸우려니 낙오자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200명의 군인들이 낙오해 버립니다. 도저히 못 가겠으니 당신들이 가서 우리 대신 싸우고 오라고 합니다. 다윗의 군대의 수준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죽더라도 함께 죽자라는 기세로 달려들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힘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200명은 브솔 시냇가에서 나머지 400명의 군인들이 싸움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그렇게 쉬고 있었습니다. 이틀이 지나고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을 모두 물리치고 가족들을 구하여 돌아오는 것을 브솔시내의 낙오자들은 볼 수 있었죠. 그들은 너무나 기뻐하며 다윗과 동료 군인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싸우고 돌아온 400명들의 눈에 200명의 낙오자들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밉상이죠. 자기네들은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이틀 동안 싸우고 지칠 대로 지쳐있는데 웃으면서 달려오는 그들이 꼴 보기 싫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그들과 달리 지도자 다윗은 낙오자들에게 따뜻하게 문안을 하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전리품까지 그들과 동등하게 나누자고 합니다.

 

출전했던 400명의 군인들 중에 악하고 야비한 사람 몇이 다윗을 따로 부릅니다. “대장님 저 사람들 한 게 하나도 없는데 설마 저 인간들에게 전리품들을 나눠줄 생각이십니까?”, “설마 그럴 생각은 아니신 거죠? 그냥 아내와 자식들만 데려가게 하고 저희들이 싸워서 얻어온 전리품은 저런 인간들에게 주시면 안됩니다. 아시겠어요?”라고 했겠죠. 이것보다 더 우락부락 달려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여기서 그의 나라에서 세워질 놀라운 원칙을 세웁니다. 그것은 모두가 함께 나누며 누리자는 법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승리도 전리품도 주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선물로 준 것을 우리가 그렇게 처리해서 되겠나? 전쟁에 나간 사람의 몫이나, 남아서 물건을 지킨 사람의 몫이나, 똑같아야 한다네. 모두 똑같은 몫으로 나누여야 하는 거야.” 다윗 이후에 이스라엘에서는 이것은 중요한 법률 규정이 되어 내려왔습니다. 다윗 왕국은 세상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주님의 통치 아래 평등하고 태평성대를 누리는 꿈이었습니다. 

 

4.

다윗은 그가 다스릴 나라가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되길 바랐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가치들이 드러나는 곳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습니다. 나눔과 받아들임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사실을 다윗은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보여준 공동체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교회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요? 다윗이 말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삶”은 뜬구름 잡는 허황된 꿈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받아들임과 나눔을 통해 언약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유대사회의 구석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형제로 받아들였고, 그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용납과 나눔은 하나되는 방법이자 사랑하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사건만 보더라도 다윗은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은혜란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받는 것이라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알죠. 다윗은 전쟁의 승리도 전리품도 모두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거저 받았기에 거저 받은 것을 나누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죠. 다윗은 그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탕으로 받아들임과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그 받아들임과 나눔을 통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다윗은 체험했고 즐거워했습니다. 

 

받아들임을 생각할 때 숙명여대 국문학과 교수이신 김응교 시인께서 ‘깍두기’에 대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옛날 동네에서 편을 갈라 놀이를 하면 자기와 실력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가위 바위 보를 합니다. 아이들이 홀수 숫자일 때 편을 가르고 나면 꼭 한 명이 남습니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의 아이는 그 중에 가장 실력이 떨어진 친구였습니다. 어렸을 때 저도 매번 깍두기였습니다. 그러면 그 친구를 “깍두기”라고 해서 더 못하는 팀에서 데려갑니다. 김응교 시인께서 하시는 말이 이 깍두기는 승리의 기쁨은 함께 나누지만 패배의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깍두기, 니가 못해서 우리가 졌다고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각박한 세상이 되어버렸고 깍두기를 “왕따”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릅니다. 세상에서 왕따로 살아가는 인생들이 교회에서라도 깍두기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와 호의(favor)가 교회에 온 모든 사람들에게 흘러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기본적인 공기는 받아들임과 나눔이어야 합니다. 

 

5.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교회를 ’식구’로 부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족은 씨족사회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말입니다. 같은 성씨를 갖고 한 피 받아 살아가는 의미를 강조하는 말이 가족입니다. 그런데 식구는 조금 더 넓은 개념입니다. 식구를 한자로 쓰면 밥식(食)에 입구(口)자를 씁니다. 함께 밥상을 나누는 사이라는 거죠. 공동체라는 말의 Community와 성찬 떡과 포도 뜻하는 Communion은 거의 비슷한 단어이죠. 성찬을 함께 떼는 사이,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나눠 먹는 사이를 우리는 Community라 부릅니다. 한 밥상 아래 모인 사람들이라는 거죠. 우리는 같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눠 먹는 사이이기 때문에 한 형제이자 한 식구입니다. 우리는 또한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를 드립니다. 주기도의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나의 아버지가 아니죠. ‘우리’의 아버지라 부릅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 아래 자녀된 공동체입니다. 아버지가 같으니 자연스레 우리는 형제요 자매인 것입니다.

 

어릴 적 둥근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희 가족은 12식구가 상 두개에 나눠 밥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다보면 꼭 동네 어떤 어르신이 놀러 오십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식사하셨어요?”, “얼른 오셔서 밥 한 술 뜨세요”라고 말하며 어떤 이든 밥상으로 초대하곤 하셨습니다. 그를 손님이 아니라 식구로 생각하셨던 것이지요. 둥그런 밥상에 앉아 있노라면 어떤 이도 식구가 되어집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차려 주신 그리스도의 몸인 성찬을 나누는 밥상 공동체입니다. 여기 오는 누구든 환영 받아야 합니다. 여기 오는 누구든 우리의 형제요 자매로 존중 받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온지 한 달이 됐든 몇 년이 됐든 모두가 한 식구이긴 매 한가지 입니다. 다하나 교회에 새로 온 목사인 저는 여러분의 형제인가요? 이 교회에 나온지 한 두 달 또는 1년이 채 안된 새 가족들은 여러분의 형제이자 자매인가요? 

 

다윗의 광야 공동체처럼 우리 모두는 광야같은 세상 속 한 가운데서 공동체로 모입니다. 광야란 누구에게도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고독한 곳을 말합니다. 광야란 끈 떨어진 연처럼 외로운 삶입니다. 우리는 그런 광야 같은 세상 한 가운데서 한 식구로 모이고 있습니다. 다윗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의 공동체를 광야에서부터 실험하고 실천하였듯이 우리도 먼 미래에 이뤄질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며 이 땅 위에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먼저 은혜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도록 나눔과 받아들임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6.

여러분에게 교회란 어떤 곳입니까? 교회에서 만나는 형제 자매들은 여러분들의 삶에 어떤 의미입니까? 한 피 받아 한 몸이룬 형제이고 성찬을 함께 나누는 한 식구인가? 그가 만약 나에게 형제와 자매이자 한 식구라면 그를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닌가요? 왜 그렇게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이 너무 이상해서 일까요 아니면 내가 그를 받아들이기에 너무 약해서 그럴까요?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뀐 후에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라고 말씀하시나요? 혹시 나에게 은혜가 부족해서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솔직히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은혜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숨쉬고 움직이고 지금 이곳에 있는 것 자체도 은혜입니다. 저의 큰 아들은 기도하라고 하면 꼭 이런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살아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들 모두 오래 오래 살게 해주세요.” 너무 웃기잖습니까? 이녀석 6살에 아빠가 암수술을 받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경험을 하고 나서 이 아이에게 생명이란 매우 실존적인 문제가 되어버린겁니다. 그에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죽음 앞에 서본 사람은 이 살아 있음이 얼마나 놀랍고 은혜로운 것인지 알겁니다.

 

우리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옆에 있는 형제 때문에 내가 혼자가 아니란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가 있음으로 나는 하나님을 더듬어 알아가고 찾을 수 있습니다. 그가 있음으로 나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지난 주에 말씀드렸잖아요. 매주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한 가족으로, 한 식구로 이곳에 모여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리터지를 반복할 겁니다. 매주 만남을 통해 한 식구가 되도록 시도해 보는 겁니다. 목장 모임도 그런 의미에서 반복적인 리터지가 되어야 합니다. 정기적인 목장 모임은 우리에게 한 식구로 형성되어 가도록 돕는 리터지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나 혼자 살아가는 이기적인 사람에서 우리로 살아가는 리터지 속으로 우리를 집어 넣는 거죠. 우리는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받아들임과 용납 그리고 나눔의 실천은 은혜 받은 자가 마땅히 취해야할 삶의 태도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러한 나눔과 용납이 교회의 공기가 되어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오면 숨통이 트이고 살아갈 맛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하나교회가 그런 교회였으면 좋겠습니다.  

Scripture: Psalm 113:1-3 / 1 Samuel 30:17-25
Title: One Family

번역: 박지한 군

1.
May the grace and peace of our good Father God be with you all. Have you been at peace over
the past week? Did you have a good Chuseok? There is a saying, “No more, no less, just like
Chuseok.” It's only been about 3 years since I've been to the US, so on Chuseok, I think of my
hometown. I want to eat Korean rice cake, and I miss my family a lot. I miss seeing my family
members, eating around the same table and sharing sorrow and joy on holidays like Chuseok.

Still, there is a church community, so we receive great comfort from living abroad. The church is
not a social organization, but a family-like community. Because in many ways the church
resembles a family community.
As I said last week in Psalm 133, a community in which brothers and sisters are united is a
community that God is pleased with and wants. Today, we would like to pay attention to the
fact that there is a passage called “The Psalms of David,” which is the title of the 133th volume.
Psalm 133 is the story of David's life. In what life story and experience did David confess, “How
good and beautiful it is for brothers to live together in unity”? Let's dive into the story of David.

2.
God wanted to establish the kingdom of God on this earth through a community, not just one
person. So, he made a covenant with the nation of Israel and established them as a covenant
community. Covenant community means a nation that has made a covenant with God. God
promised blessings to Israel, and Israel promised to send God's blessings to all nations in

exchange for receiving those blessings. As a covenant people, Israel had to show the world a
beautiful model of the community.

David was a leader who understood this calling all too well. He has loved God since he was a
shepherd tending sheep in the empty fields. God paid attention to David from the time he was
in the field as a shepherd and anointed him as king. He dreamed of how to rule Israel in God's
name when he ascended to the throne in Saul's place. However, contrary to his dreams and
hopes, he is driven into the wilderness by his son-in-law and is driven away as a fugitive.
God trains the fugitive David to lead the community in the wilderness. He wanders through the
wilderness of Israel, leading a community, experimenting with the kingdom of God. In 1 Samuel
22, there is a scene where people flock to David, who is taking refuge in the cave of Adullam.
“David left Gath and escaped to the cave of Adullam. When his brothers and his father’s
household heard about it, they went down to him there.

2 All those who were in distress or in
debt or discontented gathered around him, and he became their commander. About four
hundred men were with him.” (1 Samuel 22:1-2)

David himself was a fugitive, and the burden of taking care of four hundred people must have
been enormous. And the people who came to him were not all normal people. They were
people who had gone bankrupt because of debt, people who were full of resentment because
of unfair trials, and people who had been discriminated against and bullied by people flocked to
David. People who have such scars and pain are generally hostile and aggressive towards
others. They continually hurt others. It would not have been an easy task to lead these rough
people and create a community.

Also, it must have been difficult to fill the stomachs of 400 people. In 1 Samuel 30, a story a few
years later, there are 600 soldiers who can go out for battle, meaning that the number of
people in David’s community grew significantly. This wouldn’t have happened unless the
community seemed very appealing. It must not have been easy for David to take them and live
as a fugitive from Saul. So David decides to find a town and settle down.

5 Then David said to Achish, “If I have found favor in your eyes, let a place be assigned to me in
one of the country towns, that I may live there. Why should your servant live in the royal city
with you?”
6 So on that day Achish gave him Ziklag, and it has belonged to the kings of Judah ever since.

David flees to King Achish of Gath, the land of the Philistines. Then he asks King Achish to give
him a city. But who are the Philistines? Their warrior, Goliath, was killed by David. So we can
see how urgent David's situation was when he went to the Philistines, who were Israel’s
enemies.

But strangely, King Achish accepts David and his hundreds of people, so the Davidic community
settle down and live there. However, as a war breaks out between the Philistines and Israel,
David's position becomes complicated. David volunteers to help the Philistines in war against
their fellow Israelites in order to survive. It was only then that the Philistine generals came to
their senses and pressured King Achish, saying that David cannot go to war. In the end, David's
army returned after three days' journey, back to Ziklag.

3.
Today's main story begins after David and the 600 soldiers returned to Ziklag. The Amalekites,
another group of people, were looting and roaming the southern part of Israel. They attack the
city of Ziklag, taking advantage of David and his soldiers still returning from the north. They
broke into the castle and set fire to it, and captured women, children, and even the elderly.
How did David feel when he saw the burned down city of Ziklag? The Bible tells us that David
and his men wept together and wept until they had no more strength to weep. 1 Samuel 30:6
says that David's men rushed to kill him, blaming him for the deaths.

6 "
”David was greatly distressed because the men were talking of stoning him; each one was
bitter in spirit because of his sons and daughters. But David found strength in the LORD his God.”

But did David really do anything wrong? Still, people tend to seek out a scapegoat. David
overcomes this predicament by relying on God. David asks God what to do, and God tells him to
follow the Amalekites. As a God-centered community, the Davidic community follows David
into battle, and they defeat the Amalekites in two days and return to Ziklag with all their family
and loot. Not a single person was hurt because God protected them, and they found out that
the more they depended on God, the more he provided and protected for their community.

But before this victory, there was an incident. 600 soldiers pursued the Amalek, but only 400
went into battle. 200 were left behind as they had already come a long way and were
exhausted. They said to the others to go and fight for us, as we can’t travel any more. Here we
see the level of David’s army. Even if they rushed in with a “if we die, we die together”
mentality, their odds of victory are slim. Leaving 200 soldiers behind weakens their chances

even more. Regardless, 200 men rested by the brook of Besor, waiting for the other 400
soldiers to return from the battle. After two days, David defeated all the Amalekites, rescued
his family, and returned to the resting soldiers at the brook of Besor, who were overjoyed and
welcome David and his soldiers.

But what did the 200 resting soldiers look like in the eyes of the 400 who returned from
fighting? They despised them. They had risked their lives to fight the last two days, coming back
exhausted only to see the resting soldiers running to them and laughing. However, unlike them,
their leader David warmly greeted those who have fallen behind, even declaring to share the
loot equally with them.

Of the 400 men who fought, some wicked and mean men called David aside. “Leader, these
people haven’t done anything, you aren’t possibly planning on sharing our loot with them? Just
let them take their wives and children, and don't give them the loot we got from our fights,”
the men probably said. David establishes here a marvelous principle that will be established in
his kingdom. It was a law for everyone to share and enjoy. David makes this confession. “The
victories and spoils of war are the gifts the Lord has given us. The share of those who went to
war and the share of those who remained and protected things; it should be the same.
Everyone must share it equally.” In Israel after David, this has been an important legal
regulation. The kingdom of David had a different calling from the rest of the world. It was a
dream for all to enjoy equality and live in peace under the Lord's rule.

4.
David hoped that the kingdom he would rule would be a kingdom governed by God's statutes
and ordinances. He knew that where God's disposition and values are revered, God's rule is
there. Where there is sharing and acceptance, God’s kingdom will come.

What kind of church can we imagine through David's story of community? David's "life in which
brothers live together in unity" was not a dream that was floating around. He actually created a
covenant community through acceptance and sharing. He accepted those who were driven into
the corners of Jewish society as brothers, and practiced a life of sharing with them. Acceptance
and sharing were the way to become one and the way to love.

Looking at today's events, David was a man who knew what grace was. We know all too well
that grace is something that even those who don’t deserve, receive. David acknowledged that
both the victory and the spoils of war were God's free grace. Because he received it for free, he
did not hesitate to share. David practiced acceptance and sharing based on the grace of God
that he received. And through that acceptance and sharing, David experienced and rejoiced
how great the joy was of having brothers live together in unity.

When I think of acceptance, the words of Poet Kim Eung-gyo, professor of Korean literature at
Sookmyung Women's University, come to mind. When we were young, we split up sides to play
a game, with children with similar skills playing rock, paper, scissors. When there are an odd
number of children after splitting the sides, there is always one left. The last child left was the
least skilled of them all. When I was young, I was always the kkakdugi (the odd one out). The
“Kakdugi” would go on the worse team. Poet Kim Eung-kyo says that this kkakdugi shares the

joy of victory, but does not take responsibility for defeat. It means that even if we lost, you can
never blame the Kkadugi. However, the world we live in has become a harsh, and we’ve
changed the name of kkakdugi to “being bullied”. We need to create a warm community so
that people who live with bullying in the world can live as a kkakdugi at church. We should
strive to ensure that the grace and favor we have received flows to all who come to church.
The atmosphere of the church, the body of Christ, must be accepting and sharing.

5.
In that sense, I like to call the church a “family”. Kin is a word that emphasizes the meaning of
living with the same surname and blood. However, family is a slightly broader concept. If you
write “family (sik-ku)” in Chinese characters, it spells “meal (sik)” and “mouth (ku).” It means
sharing a meal together. The words “community” and “communion” are almost identical. The
time we partake in communion, sharing the body of Christ together, is called Community. We
are people brought together by one meal. All of us gathered in the church are brothers and
sisters. We pray the Lord’s Prayer. The first verse begins like this: “Our Father in heaven.” Not
my father, He is called ‘our father’. We are a community of children under one father. Since we
have the same father, we are naturally brothers and sisters.

It reminds me of when I was young, sitting around a round table and eating. As a family of 12,
we all shared a meal on two tables. While eating, an old man from the neighborhood always
stops by. Then my mother would say, “Have you eaten?” and “Come and eat,” inviting anyone
else that stopped by. She thought of them as a family member, not a guest. Anyone who sat at
the round table became a member of the family.

The church is a “table community” where we share communion, prepared by God. Anyone who
comes here should be welcome. Anyone who comes here should be respected as a brother or
sister. Whether it's been a month or a few years since joining the church, we are all a part of
the same family. As a new pastor to Dahana Church, am I your brother? Are the new members
of this church, whether it’s been less than a month or almost a year, your brothers and sisters?

Like David's community in the wilderness, we all gather as a community in the middle of a
wilderness world . The wilderness is a lonely place where no one can help. The wilderness is a
lonely life like a kite that has fallen off a string. We are gathering as one family in the middle of
such a wilderness world. Just as David experimented and practiced his community in the
wilderness before he ascended to the throne, we are also building the kingdom of God on this
earth through the church in anticipation of the kingdom of God to be established in the distant
future. First, as those who received grace, we are practicing sharing and accepting so that God's
love and grace can flow through us to others.

However, sharing and accepting is not so easy. For it is essential to deny oneself in order to
accept the other. It is not easy for strong people to accept others. The Chinese character for “I
(我)” is a combination of “hand (手)” and sword (戈). The character “I” looks like and represents
an image of a hand holding a sword, protecting oneself. A strong ego refers to the standard one

has, in other words, a person with strong self-righteousness. The Pharisees were so self-
righteous that it was difficult for them to accept others. On the contrary, Jesus accepted

everyone without imposing his standards on them. When people to Jesus, they felt accepted
and at ease.

If we are to accept others, we must not impose our standards on others. I owe 10,000 talents. I
have been forgiven of all that debt, and I am a person who has received grace. That is why I can
tolerate and accept a brother who owes me only 1 denarius. The church, the body of Christ,
must be loved equally by all under grace. Any sinner or any kind of person who comes here
should be accepted and welcomed. Everyone is a brother and sister here, regardless of his
status, background, or merit. Jesus Christ embraced everyone, despite being mocked as a friend
of sinners and tax collectors. He was also nicknamed a drunkard and still tried to accept
everyone. Wherever Jesus was, a table community was formed. He created a miracle from 2
fish and 5 breads, feeding thousands of people on an empty field, and even after he died on the
cross, he went to Galilee to prepare breakfast for his disciples. Jesus accepted anyone as a
member of the family and wanted to share with everyone.

We hope that Dahana Church will become a friend to many lonely people in Rochester as a
family that shares the body of Jesus. We hope that we will be filled with the grace that God
pours out, and that grace will flow through us and flow to those who need love. Like David's
community, where many people came to enjoy a rest in the wilderness, I hope that Dahana
Church will become a community of love and sharing.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