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문자 <갈라디아서 5장 묵상 - 우리를 이땅에 심은 뜻>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잣더니,
내 심은 탓인지 봉황은 아니오고
밤중에 일편명월만 빈 가지에 걸렸어라."
황진이의 싯귀입니다.
벽오동(푸른오동나무)을 심은 것은 100년에 한 번씩 나타나 벽오동에 앉았다가 날아간다는 길조 중의 길조인 봉황새를 보자는 뜻이란 거죠.
그런데 부족한 내가 심어서 인지 봉황은 안오고 휘영청 밝은 달만 걸렸다는 한숨 섞인 시입니다.
누가복음 13장 6-9절에
"6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세 해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열매를 본 적이 없다. 찍어 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십시오.'
무화과 나무가 심겨진 뜻은 열매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포도원 주인은 나무를 찍어버리라 하십니다.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3년 째 되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때 가서 찍어버리자고 말합니다.
3년의 유예를 받은 무화과 나무는 물을 먹고 걸음을 먹고 이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5장의 핵심적인 구절은 21-24절입니다.
"21.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2.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23.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24.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성령의 열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이 세상의 벽오동으로 심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뜻은 바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9가지 입니다.
사랑(love), 기쁨(joy), 화평(peace), 인내(patience), 친절(kindness), 선함(goodness), 신실(faithfulness), 온유(gentleness), 절제(self-control)
이 아홉 가지입니다.
놀라운 인격의 열매들입니다.
성령은 인격적이신 분이시고 고매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시기에 이런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열매를 맺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을 23절에는 육체라고 합니다.
육신의 일은 성령의 열매맺게 하는 일을 거스른다고 합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17절)"
육신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은 적대관계에 놓여져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즉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육신의 생각을 제어하고 성령님을 온전히 따르는 길 뿐입니다.
이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님을 온전히 구해야 하며 성령님을 온전히 따라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꽃피우게 되고 결국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의해 뿌려지고 자란 씨앗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고
내가 뿌린 씨앗은 육신의 열매가 되는 것이지요.
성령이 뿌리면 벽오동이 되는 것이고 내 육신적인 생각으로 뿌린 씨앗은 육신의 열매를 맺는 볼품 없는 오동이 되는 것이죠.
성령의 열매는 인격의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우리 이웃들이 우리 인격의 열매를 따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따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심겨진 하나님의 무화과 나무들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위에 앉게 하기 위해 심겨진 하나님의 벽오동입니다.
그 뜻을 기억하시고 온전히 성령님 따라가는 하루 보내소서~^^
묵상2013. 11. 23.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