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14. 12. 9. 14:52

<또봇이 소중하니, 또봇을 사주는 아빠가 소중하니?>

'진주'라는 책을 아들에게 읽어주었다.
비버 한 마리가 진주 조개를 발견했다가, 조개를 안은 채 꿈을 꾸게된다.
꿈 속에서 진주를 차고 나타난 비버를 시샘한 숲 속 친구들의 진주 쟁탈전이 시작된다.
결국 진주 하나로 숲 속은 난장판이 되고 친구들의 우정은 망가지고 만다.
꿈에서 깬 비버는 어렵사리 얻게된 진주 조개를 물 속으로 던져버리고 웃는 얼굴로 친구들을 맞이 한다.

"선율아 비버에게 진주가 소중할까 친구가 더 소중할까?"
"친구가 더 소중해."
"그럼 선율이는 또봇이 소중해 아빠가 소중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또봇!"
"그럼 또봇이 소중할까 또봇을 사주는 아빠가 소중할까?"
뭔가를 깨달았는지 녀석은 망설이더니 대답한다.
"아빠~"

우린 너무나 자주 소중한 것에 집중하느라 소중한 분을 놓친다.
소중한 것들을 늘 풍성히 공급해주시는 소중한 분, 하늘 아버지.
재물과 하나님 중 누가 더 소중한지 우리는 너무 잘 안다.
하지만 우리 삶은 그것을 증명해 내지 못한다.
소중한 것을 좇다 소중한 분을 놓치는 주객전도, 이것이 나의 일상이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4. 11. 22. 16:08

<강한 약, 약한 약>

철학이 약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풀어쓰자면, 진리가 인간의 내면의 깊은 병과 운명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궁극적인 치료약이 될 수 있는가 정도일 것이다.

보에티우스(AD. 475- 525)는 이미 멸망한 서로마 출신으로 동로마의 집정관의 지위에까지 올라선 철학자이며 정치가였다.
그는 콘스탄티노플과 로마교회의 수위권 논쟁에 휩싸여 모함을 받게 되고 결국 억울하게 투옥되어 처형당하게 된다.

사형 선고를 언도받고 죽음 앞에 놓인 보에티우스는 절망에 휩싸인 채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국가의 집정관의 위치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그였지만 스스로 인정할 수 없는 죄목으로 재판도 없이 사형 선고를 받는다.
죽음의 공포뿐만 아니라 불의에 대한 분노로 자기 상실에 빠져 있는 보에티우스가 이를 극복하고자 선택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가 평생 추구해 온 '철학'이었다.

그는 철학을 도피처로 삼아 철학의 여신과의 대화를 통해 불행해 보이는 자신의 운명에 맞서 인간이 어떻게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삶의 실천적인 지혜를 엮어내 <철학의 위안>라는 책을 완성해 낸다.

철학이 혼란에 빠져 있는 보에티우스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당분간 좀 약한 약을 너에게 쓰기로 한다. 이는 너에게 엄습한 불안과 동요로 비뚫게 굳어진 너의 마음이 더 강한 약을 받을 수 있도록 부드러워지게 하기 위해서다."

보에티우스는 죽음 앞에서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절망'에 빠진 환자였다.
그의 병은 삶을 직관하고, 삶의 참모습을 발견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 발견과 직결되어 있는, 철학적으로만 치유될 수 있는 '철학적 병'이었다.

철학은 무엇일까?
철학은 삶에 대해 묻는 것이다.
철학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철학은 삶의 참모습과 진정한 의미를 발경하기 위한 몸부림이기에 모든 인간은 철학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의 여신은 '철학'을 '강한 약'이라 말하며 굳어진 마음이 강한 약을 받을 수 있도록 약한 약을 처방해 준다.
약한 약은 '감정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약'이다.
상한 감정과 억눌린 감정의 치료가 있은 후에 궁극적인 약이며 강한 약인 '철학'을 투여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달리 풀어보면, 감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열매이고 증상이며, 내면의 깊은 곳에는 이성이 뿌리를 내려 작동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의 치유 없이 궁극적인 치유, 영적인 치유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다른 말로 감정적인 치유는 표면적인 치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궁극적인 치료는 '강한 약'을 통해서이다. 
나는 이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에 나오는 강한 약과 약한 약의 개념을 우리 교회 현실에 적용해 보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며 나아갈 바에 대해 고민해 본다.

대학생 시절 'DTS'를 받은 적이 있다.
디티에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코스가 '치유(healing)'이다.
내가 지금 판단하기에 그 것들은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치유의 단계였던 것 같다.
그 치유의 과정 이후에 진리를 집어 넣는 코스들이 있다.
세계관이나 제자도같은 강의들이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약한 약을 통한 내면의 치료 이후에 강한 약을 통한 궁극적인 인생의 의미 발견과 진리 발견을 돕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 같다. (굳이 해석하자면...^^)

교회는 '약한 약'으로만 성도들을 치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설교와 교회 활동들이 감정의 치료와 감정의 처리에 관한 것을 돕는 것들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찬양이 전부가 아니다. 딱딱한 말씀을 먹어야 한다. 진리를 먹어야 한다.
교회는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약한 약으로 치료했다면,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였다면 한 발짝 더 나아가 강한 약으로 그의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도와야 하는 것이다.

우리 교인들이 겪는 대부분의 병은 철학적인 병이라 할 수 있다.
보에티우스처럼 운명 앞에서 죽음 앞에서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절망'에 빠진 환자들마냥 갈바를 모른 채 방황하는 교인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의 병은 삶을 직관하고, 삶의 참모습을 발견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 발견과 직결되어 있는, '철학적 병'이다.
교회는 그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어야 한다.
상처에 약만 발라 줄 것이 아니라 근육을 만들어 뛰게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구약학을 전공했지만 이제 강한약을 전공할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심어주고 자라게하며 달리게 하는 그런 강한 약 말이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멘~

Posted by speramus
일기2014. 7. 25. 17:21

<공감과 연대...인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오늘 한 장로님 댁에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이분은 굴직한 건설회사의 이사까지 지내다 2년 전에 퇴직하신 분이십니다.
장로님께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시면서 자신은 퇴직하기 전까지 사회 하층민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었다고 고백하시더군요.
퇴직해 보니까 내가 공감하지 못했고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이 느껴지고 보이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퇴직하시고 1년 동안은 자가용 타고 다니셨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서서 기다리는 것도 뻘쭘하고 다른 사람이 볼 것 같아 도저히 탈 수 없으셨답니다.
그러다 버스를 타기 시작하셨고 지하철을 타기 시작하면서 차로 다닐 때 보지 못했던 이웃들의 모습이 보이더라는 겁니다.



장로님께서 이런 맥락에서 한 가지 더 말씀하신 것이 자신의 군대 이야기였습니다.
장교로 지원할 수도 있엇는데, 육군 예비역 병장으로 전역을 하셨답니다.
이유는 복무기간이 짧았기 때문이었답니다.
근데 막상 사병으로 근무해보니까 장교와 사병의 위치와 처신이 하늘과 땅차이라는 것을 느끼며 사병으로 온 것이 후회가 되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사병으로 오기를 잘 했다고 느낀 것이 민초들의 고충과 사회 하층민, 기층민들의 삶을 경험하게 됐다는 겁니다.
중졸자들의 회한과 눈물을 보았고 가난한 자들의 한숨을 듣게 되었다는 거죠.
참고로 이 분은 대학을 안암동의 K대(일명 스카이 명문)를 나오신 분이셨고 장교로 갔다면 본인은 그걸 경험하지 못하고 기고만장하여 사람들 위에 군림한 것만 배웠을 거라 소회를 말씀하시더군요.



다시 퇴직 이야기로 돌아와서 퇴직하시면서 가장 큰 변화가 눈물이 많아지셨다는 거랍니다.
아니 없던 눈물이 생기셨답니다.
퇴직 후 가난한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리어카 끌고 다니며 폐지 줍는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하셨답니다.
그러면서 그런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계시는지 공감이 가기 시작하셨답니다.
내가 어려워져 보니까 공감이 가고 그들의 자리에 서 볼 여유가 생긴 것이지요.



저는 이 장로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과 연대'라는 단어를 떠올려 봤습니다.
장로님의 변화는 인간스러움의 회복에 있다고 봅니다.
인간스러움이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아픔에 동참하는 공감이 아닐까요?
어려운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에 손 내밀 줄 아는 연대감이 있는 것이 지극이 인간다운 모습이죠.
공감과 연대는 바로 리더가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공신력을 잃어 버린 것이 바로 이 시대의 레미제라블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지 못한 이기적인 동아리로 축소되어버린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성경은 반대로 비참한 진창과 수렁에 빠진 사람의 운명에 동참할 수 있는 동정심이 바로 하나님과 영적으로 소통하는 지점이라고 피력합니다. 
레미제라블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자비와 동정이 바로 공신력을 되찾을 수 있는 좌표인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불쌍하고 가난한 이웃의 삶에 가슴 깊이 공명할 수 있는 그런 감수성, 공감과 연대감을 갖는 것이 우리네 교회의 가장 큰 숙제인 것이지요.
이런 감수성이 이 시대의 리더가 갖출 가장 중요한 능력이요 자질이라 믿습니다.



이회창씨가 연속으로 두 번이나 대선에서 물먹은 이유를 아는 선생님께서 이렇게 분석을 하시더군요.
이회창씨는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사법고시를 통과하며 이시대의 엘리트 코스란 것을 다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회 기층민들의 삶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능력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목포상고 출신에게 밀리고, 부산상고 출신에게 밀린 거라는 거죠.
상고 출신은 인생의 바닥을 경험했던 사람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런 사람들의 삶을 간접 경험하고 이해할 줄 알았을 거라는 거죠.
빗나간 말이지만, 동작을 나경원 후보는 너무나 엘리트 코스만 밟아 왔습니다.
그 분이 흑석동 산동네 판자촌의 휴지줍는 꼬부랑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며 공감할 능력이 있을까요?
글쎄요~~??
적어도 오늘 만난 장로님의 고백에 의하면 당신이 퇴직하시고 바닥에 내려오기 전까지 그런 삶을 이해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그러시더군요.



다시 돌아와서... (몇 번 돌아오는건가?? 이제 그만 돌아가자 ㅎㅎ)
이 모든 맥락에서 저에게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염산교회와 성북구 종암동에 있는 종암교회에서의 사역은 큰 특권이라 생각됩니다.
이 시대 레미제라블들의 삶을 가장 근접하여 경험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곳에서의 사역경험에서 싹트는 공감과 연대의 능력은 나의 삶과 사역의 자양분이 되어 나를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려서 살 소망이 끊어진 사람들의 아우성을 대변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죽어서 갈 천당만 생각하는 영적 이기주의자들의 동아리로 축소 되어어서는 안됩니다. 
벼랑끝에 내 몰린 사람들의 삶에 깊이 공감하며 그들의 삶에 연대해야 합니다.
또한 그런 공감과 연대의 감수성을 가진 젊은 지도자들을 길러 내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들은 강남의 8학군이 아닌 염리동의 숭문 고등학교나 북아현동의 중앙여고에서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시대는 공감과 연대의 감수성을 지닌 지도자를 원합니다.
지극히 인간다운 지도자 말입니다.
이웃의 희노애락에 깊이 공명하며 울줄 알며 울릴 줄 아는 인간다운 사람,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그립습니다.
공감과 연대에 대한 글을 여기서 마무리 하려 합니다. 바이 짜이찌엔 ~ 긴 글 읽어 주어 감사합니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4. 6. 27. 16:51


리 염산국제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캄보디아 부부이다.
지난 4월 말에 딸을 출산하고 이름을 은혜(grace)로 지었다고 한다.
이들이 우리 교회에 온 것에서 시작해서 지난 주에 아이를 출산하고 다시 나오기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회고하며 잠시 나누고자 한다.

남편 씽허와 부인 쏘우마는 일본을 거쳐 한국에 유학을 온 유학생 부부이다.
결혼 한지 6년 차에 접어드는 학생 부부이다.
두 사람이 작년 이맘 때 우리 교회에 처음 나왔다. 
당시 조경제 형제의 전도로 교회라는 곳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고 다행히 우리 염산국제교회로 안내되었다.
참고로 염산국제교회는 염산교회 안의 외국인 나그네들의 공동체다.
나는 이 공동체에서 창세기 설교를 해 오고 있다.
작년에 이들이 올 당시 아브라함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었다.
아브라함 부부의 불임과 믿음에 의한 출산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의 마음이 동함을 느꼈다.
당시 두 사람이 올해 안에 임신하면 좋겠다고 축복해주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두 사람은 거짓말같이 임신을 했다.
두 사람의 교회 생활과 함께 시작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의 시발탄이었다.

아내의 출산과 남편의 서강대 대학원 논문 마무리 때문에 두 사람은 올 초부터 교회에 잘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산부인과로 찾아가 이들을 심방했고 기회가 되면 교회에 나오라 권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두 달이 지났다.
한 참 야곱이 20년 만에 벧엘을 다시 방문하여 재단을 쌓은 설교를 하고 있는 도중에 이들이 들어 왔다.
설교의 핵심은 처음 구원의 경험, 은혜의 경험을 한 곳(벧엘)을 다시 찾아 신앙을 회복한다는 이야기였다.
공교롭게 이들의 방문은 설교 내용과 오버랩되었다.
두 사람이 처음 방문했던 곳이었던 우리 국제교회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 왔다는 것이 놀랍기만할 따름이었다.
닭살이 확 돋아 올랐다.
실은 이들이 나오기 며칠 전 이대쪽에 차를 타고 가면서 쏘우마(부인)가 유모차를 끌고 가는 것을 유연히 보게 되었다.
내려서 인사할 겨를은 없었고 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저들이 다시 우리 공동체를 기억하고 나오면 좋겠네요"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 기도가 드려진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증명되었다.

그들이 무슨 뜻으로 딸의 이름을 "은혜(grace)"로 지었는지 아직 물어 보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삶 자체가 내가 보기에는 은혜이다.
우연찮은 만남을 통해 교회를 소개 받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다시 그 은혜의 경험을 하였던 첫 장소로 찾아온 이들의 걸음이 은혜 아니고 그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겠는가?
꼭 한국에서 신앙이 깊어져서 캄보디아 돌아가 교수활동하며 많은 대학생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주면 참 좋겠다.
이렇게 은혜는 내 사역과 나의 온 존재를 물들이며 적시며 진행중이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4. 6. 24. 08:21

<가사노동과 영성훈련의 상관관계>


대딩시절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연습 (두란노)"이라는 책을 읽었었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지은이가 수도원의 설거지 같은 잡일(chores)을 하면서도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나누는 것이었다.

과연 가사노동으로 대표되는 집안의 잡일과 영성훈련과 상관 관계가 있나?라는 의문을 오랜 시간동안 품고 온 나이다. 

오늘 그 중간 점검 결과를 되세겨 보고자 한다.


먼저 이 땅의 많은 로렌스 자매들이 가사노동과 영성훈련의 상관관계를 증명해주고 있다. 

그 로렌스 자매들은 가족을 위해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며 깊은 영성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이 땅의 대표적인 로렌스 자매인 어머니들 그들이 신앙이 깊은 이유가 어디 있나를 따져봤을 때, 개인적인 결론은 가사노동을 묵묵히 수행해온 결과라 믿는다. (교회의 대다수의 구성원은 여성^^)


가사노동에는 많은 인내심과 희생이 필요하다.

가사노동은 말 그대로 집안에 널부러진 것들을 정리하고 질서를 잡아가는 과정이다.

청소를 생각해보라. 이것은 마치 천지창조를 방불케 한다.

천지창조가 무엇인가? 그것은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혼돈과 흑암 속에 있는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고 생기를 불어 넣는 일이 바로 천지창조이다.

청소는 흑암과 혼돈가운데 널부러져 있는 집안에 질서를 부여하고 생기를 불어 넣는 거룩한 창조의 작업이다.

이 창조의 작업을 수행하며 영성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음식을 만드는 행위 이것 또한 창조의 모방이다.

서로 다른 재료들 섞고 열을 가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그것에 맛을 내고 모양을 내는 행위는 거룩한 창조적 예술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영성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무색무취의 신앙에 맛과 색깔을 입히는 과정이라 본다. 

형의상학적이고 관념적인 믿음이 표현되고 새깔을 내며 행해지는 것 그것이 영성이다.

그러기에 음식을 만드는 작업은 맛과 샊갈이 없는 재료들을 버무려 만들어내는 거룩한 창조의 행위인 것이다. 

자연스레 이 조리과정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의 성품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설거지, 이것은 남편들이 도울 수 있는 가정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사노동이다.

설거지란 다름 아닌 죄씻음의 상징적인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이 숭고한 작업을 통해 내면의 정화가 일어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남자들은 이 죄씻음의 행동을 통해 마치 집안의 모든 가사활동을 하였고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다 씻은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설거지가 뭐 별거라고 그거 하나 했다고 잰체 하고 그러지들 마시오들^^


가사노동은 인내심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실례로 아침에 빨래 개기를 했다.

무슨 빨래가 이렇게도 많은지 빨래 개기 시작하며 틀어놨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번 1악장(런닝타임 20분)이 끝날 때까지 나는 작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3악장에 들어갈 때서야 끝을 냈다.

빨래 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가족들 옷을 그들의 서랍장에 넣는 정리까지 인내심 없이는 정신착란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이 과정을 묵묵히 이겨낸 자는 반드시 깊은 영성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결혼한 남녀들의 진정한 영성의 훈련장은 가정이다.

가정의 일상다반사와 잡일 가운데서 의미를 발견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묵묵히 수행하는 것, 그것은 도를 닦는 행위에 비견된다.

결론적으로 가사노동과 영성훈련의 상관관계는 매우 높다는 것이다.

우리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가정에서 행해지는 영성이기에 영성훈련 중 가정에서 행해지는 영성훈련은 가장 중요하면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고까지 본다.

매일 벌어지는 가사노동을 감사함으로 또한 인내함으로 기쁨으로 감당해가다보면 내가 곧 로렌스가 돼 있을 것이며 내가 곧 바울이 돼 있을 것이다.


참고로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음악과 함께 행해지는 가사노동은 영성훈련을 하는 데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우리의 뇌 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정서를 순화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음악을 틀어 놓고 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개다 보면 자연스레 기도와 깊은 묵상의 결과물들이 나오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시답잖은 주장과 글을 여기까지 읽어 오느라 애쓰셨고, 감사합니다^^

한 가지 이런 주장에 맞지 않는 딜레마는 가사노동은 정말 하기 싫다. 

집에 오면 그냥 푹 쉬었으면 좋겠다^^ 끝~ 


Posted by speramus
일기2014. 6. 15. 13:18

<친정아버지 목회>

 

2년 전부터 교구사역을 시작하며 어르신(노인)사역을 새롭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청년과 청소년들과만 어울리다 어른들을 섬겨야 하니 낯설기 그지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메시지의 변화가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비전과 미래를 언급했던 설교의 내용은 어른들에게는 개발의 편자인듯 했습니다.

더욱이 아버지 뻘, 이모 뻘 되시는 분들의 목자로 지도자로 섬겨야하는 입장이 어색할 때가 가끔 있었습니다. 저분들의 한숨과 저 어르신들의 주름을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회의감마저 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주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한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이분은 상주 지역의 천석꾼은 아니어도 오백석꾼의 아들 정도는 될만큼 꾀나 부잣집에서 자라오신 분이셨습니다. 한국전쟁 발발당시 그 시골에서 서울로 대학을 올 정도로 탄탄한 집안이었고 잘 배우신 덕망있으신 분이시죠.

그런데 이 어르신이 10년 전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지신 후 병을 고치기 위해 재산을 모두 처분해야하는 상황이 되셨습니다.

서울에 있던 한옥집을 처분하고 염리동의 단 칸방으로 옮겨 오시면서부터 교회를 다니시기 시작했고 염산교회 교인이 되셨다고 합니다.

이 어르신은 묵상문자를 보내드리면 늘 답장을 하시며 감사표현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의 가르침에 너무 감사하며 계속 배움에 정진하겠습니다.”하시면서 겸손을 표현하십니다. 실제로 문자를 바탕으로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신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이런 문자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항상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많은 고통과 시련을 목사님의 참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고 교회에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OOO 올림

 

나이를 불문하고 말씀을 향한 갈망이 성도들에게는 있구나 라는 깨달음이 있었고, 나이와 상관 없이 양무리들은 의지할 대상을 찾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할머니가 계십니다. 이분은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아 절뚝거리시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분이십니다. 작년부터 무릎수술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작년 가을에 수술을 하기로 하셨었는데 재정부담과 두려움 때문에 수술을 못하셨더군요.

봄 대심방 때 수술하라고 격려해드리면서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지지난 주에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하셔서 병실을 찾아 갔습니다.

같이 간 심방대원들에게 수술을 결단하게 된 배경을 말씀하시면서

목사님이 심방 중에 기도를 해주시는데 힘이 불끈 솟아 올랐어요. 그래서 든든한 마음이 들었고 수술을 결정하게 됐습니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덧붙여 이런 말씀까지 하시는 겁니다.
수술 후에 목사님이 병실로 들어오시는데 친정아버지 보듯이 반가운 거예요.”

친정아버지를 보는 느낌이란 어떤 걸까? 평생 느낄 수 없는 감정이지만 적잖은 충격이 되었습니다.

어르신 마음이 얼마나 쇠약해지시고 위로가 필요하셨으면 자기 손주뻘 되는 목사를 보며 친정아버지를 보는 것 같다 하시겠는가?

 

이 두 사건을 지난 주에 겪으면서 어르신 목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비록 어르신들이 인생 경험과 연륜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들이시지만 그들의 마음 또한 기댈 곳이 필요하며 돌봄이 필요한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에게 오히려 친정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1983년으로 기억됩니다. 우리 오형제중 가장 맞이었던 큰 누나를 서울로 시집을 보내신 부모님은  처음으로 시집간 큰 딸에게서 편지를 받으셨습니다. 그 편지를 읽으시던 아버지는 진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을 그 때 처음 보았습니다.

~ 아버지도 우는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친정아버지의 마음이었던 듯 합니다.

먼 곳에 시집보내시며 미안한 마음과 딸의 시집살이에 공감하며 함께 울어주는 마음아니겠습니까?

남자는 강하나 친정아버지는 한없이 부드러웠습니다.

저의 목회도 어르신을 만나든 젊은이를 만나든 친정아버지 목회가 되리라 다짐해 봅니다.

 

Posted by speramus
2014. 4. 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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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14. 3. 5. 07:39

겨울왕국의 여왕 안나는 추위(the cold)에 대한 타고난 내성으로 그 추위를 극복하는 것 같더군요.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나는 추위에 어떤 모양으로든 괴로워해 본적이 없어)"라고 노래하기까지 하죠.


저는 다른 노래를 부르고 싶네요.

"The cold never bother me any more (추위는 나를 더이상 괴롭히지 못할거야)"

추위에 대한 내성에 의한 극복이 아닌 산들산들 봄바람으로 극복해 갈 것이기 때문이죠.

사랑의 훈풍(熏風)은 모든 얼어붙은 마음과 세계를 녹인다는 것이 영화의 주제였던 걸로 기억되는데, 바로 이것입니다.

그것이 연인의 사랑이든, 가족의 사랑이든 사랑은 훈풍입니다.

사랑은 봄바람입니다.

사랑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며 만져줍니다.


나는 이제 노래하고 싶습니다.

"The Love makes me soft anyway (사랑은 나를 어떻게든 부드럽게 녹여줄거야^^)"


Posted by speramus
일기2014. 3. 2. 10:19

<서로의 짐들을 지십시오 (Bear one anther's burdens)>

오늘 담임목사님 설교 도중 갈라디아서 6장 2절의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라는 구절이 나왔다.

목사님은 이 구절을 설명하시면서
사모님과 나누셨던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치매에 걸리면 사모님을 알아볼 때까지는 돌보다가
알아보지 못하면 목을 꼭 눌러서 짐을 덜어버리라고 하셨단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으시고 다시 맘을 고쳐먹으시고
서로에게 그렇게 고백했단다.
똥칠하더라도 끝까지 서로의 짐을 져주자고...

늘 실수투성이이고, 계획 없는 난봉꾼으로 아내의 삶에 끼어든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아내에게 큰 짐인 것이 분명하고 아내는 어느정도 감내하며
나를 지기도 하고 끌기도하고 업기도 하면서 짐을 지고 가고 있다.
반면 나는 아내의 짐을 져주고 있나? 돌아볼 일이다. 

이런 저런 반성을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어르신이 눈물을 훔치는 것 같았다.
그 분이 누구신지 알기에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그 어르신은 중도실명으로 맹인이 되신 아내분을 돌보는 어르신이었다.
매일 새벽기도에 아내를 모시고 와서 기도를 하는 분이셨다.
아내의 눈과 길이 되어 주시는 어르신이
서로의 짐을 져주는 것이 율법을 성취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큰 울림이 있으셨나 보다.
그 어르신이 아내분의 짐을 지시며 걸어오셨던 사랑의 길을 상상하며...
먹먹해졌고, 나 또한 주님과 아내에게 뒤늦게 죄스러운 생각이 가슴을 채웠다.

결혼이란 것, 부부가 된다는 것, 사랑을 한다는 것,
그것은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이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짐이 되는 것이다.
다른 이의 눈이 되어 주는 것이고, 다른 이의 길이 되어주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정수, 십자가가 그것을 웅변하고 있잖는가?
상대의 짐을 지는 것, 그것보다 큰 사랑이 있을까?
이러한 희생과 섬김의 사랑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관능적인 사랑에 의해 세찬 조롱과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 아닌가?

오늘 그 어르신 옆에서 예배 드린 것이 얼마나 큰 복이었나?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주십시오."
이 외마디 말이, 마디마디가 돌맹이가 되어 내 굳어지고 얼어버린 가슴을 쳐 깨뜨리고 있다. 
내 얼어 붙은 가슴에도 이제 봄이 찾아오려나보다. 
이 봄에는 사랑을 하려나보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4. 2. 20. 08:02

실리콘으로 만든 안경 코 받침이 하나 떨어져 나갔다.
다리 한 쪽이 잘려나간 것 마냥 그렇게 내 안경은 외다리로 2주일을 버텼다.
무심한 주인 잘 못 만나 외다리로 버틴 녀석이 대견하면서도
처음 느꼈던 불편함이 익숙함으로 변해버린 것에 대한 씁씁함이 교차했다.
불편함 그것도 익숙해지니 문제가 되지 않더라.
그럼에도 문득 문득 느껴지는 한쪽 코에 가해지는 중압감이 나를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숨길 수 없는 장애 안경 소유자였다.
불편함과 장애 그리고 결핍 더 나아가 죄를 지은 후 가해지는 중압감 그것은 초기 진화가 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불편함 그것은 몸부림이다. 익숙해지는 순간 굳어지는 것이며 몸부림은 사라지고 만다.
불편함과 죄로부터 오는 불안감 그것은 더 나은 상태를 향한 내 안의 몸부림임을 깨닫는다.

한 집사님과 함께 병원을 가게 됐다.
그 분은 무릎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함이었고 나는 손목의 치료를 위함이었다.
충격파 치료라는 익숙치 않은 치료가 가해졌다.
음파를 압축하여 피부나 인대 및 근육 조직에 손상을 주어 치료물질을 분비하게 하여 치료하는 방법이란다.
문제는 견딜 수 없이 아프다는 것이다.
근데 더 큰 문제는 그 집사님은 그 아픔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픔이 있어야 불편함을 느끼고 치료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아픈 것도, 고통을 느끼는 것도 복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의 부족함, 외다리임을 인정하고 불편을 느끼는 순간 
나는 치유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오늘 코 받침대를 구해 내 안경에 걸어 본다.
온전함 가운데 오는 그 만족감과 안정감을 느껴보려한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