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11. 11. 18. 22:05
2011. 11. 13. (주일)

마태복음 13:33 / 전부를 부풀게 하는 능력


1. 적은 양의 강력한 파워
오늘 본문은 2주전에 말씀 드렸던 겨자씨 비유와 한 통으로 읽을 수 있는 비유입니다. 겨자씨 비유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 두 비유는 적은 양의 시작이 크게 커져버린다는 것을 핵심적으로 나타낸다고 말씀 드렸었죠.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 그렇다는 거죠. 하나님 나라는 작게 시작하지만 그 성장이 급속도로 퍼져 나간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누룩이라고 하니까 조금 우리에게 안 다가 오죠? 이스트를 봐본 적 있으신가요? 이스느가 누룩인데요 누룩은 다른 말로 효모를 가리킵니다. 많은 밀가루에 이런 이스트 효모나 베이킹 파우더를 넣으면 빵이 부풀어 지고 쫄깃 쫄깃 해집니다. 이 누룩이란 것은 쉽게 얘기해서 곰팡이 입니다. 곰팡이는 고온 다습한 환경을 무척 좋아합니다. 물기가 있는 곳, 온도가 높은 곳에서 급속도로 번식합니다. 제가 지난 번 집에서 살 때 겨울에 외풍이 너무 심해서 창문에 비닐을 쳐서 바람을 차단했더니 벽에 곰팡이가 새까맣게 찌더군요. 인류의 3대 난치병으로 알려진 무좀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곰팡이 균의 엄청난 영향력과 번식력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이 균이 도져서 저를 괴롭힙니다. 아무리 카네스텐, 라미실, 무조날 이런 거 발라도 소용 없어요. 엄청난 번식력과 파괴력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 곰팡이 입니다. 누룩도 곰팡이의 일종이라는 거죠.

곰팡이 중에 좋은 곰팡이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버섯이죠. 그리고 바로 누룩이라 불리우는 효모입니다. 효모는 당과 결합하여 발효를 유발하여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을 만든다고 합니다. 바로 이 이산화탄소가 분비 돼면서 부풀림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발효되면서 분비된 에탄올에서 술냄새가 나는 거구요. 효모가 밀가루의 당분에 달라 붙어 밀가루를 발효시켜 부풀리게 만든다는 거죠. 빵에서 술냄새가 나는 것은 바로 이 효모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가루에 누룩을 넣었다고 했는데 분명 이 여자는 빵을 만들기 위해 서 말 가루에 누룩을 넣었던 거겠죠? 서 말은 36리터 정도의 양입니다. 서 말의 밀가루로는 예수님 당시 100명의 사람들이 먹을 빵을 만들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일반 가정집, 즉 사사로운 가정의 살림 규모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가루입니다. 예수님은 왜 서 말이라고 말씀하셨던 걸까요? 그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적은 양의 누룩이지만 엄청 많은 양의 가루에 붙어 가루 전체를 발효시키고 부풀리게 하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비록 작은 양의 누룩이지만 그 전파속도와 파급효과가 엄청난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라는 거죠. 하나님 나라는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나라가 미치는 파급력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2. 로마 통치 아래의 기독교
여러분 기독교는 아니 다른 말로 복음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통치 하에 기독교는 곰팡이 취급을 당했었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곰팡이 취급을 당했지만 기독교는, 복음은 급속하게 로마의 하부조직으로 퍼져 갔고 로마 제국을 잠식해 갔습니다. 그 영향력과 파급효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세상과 동떨어져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딱 달라 붙어서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효모가 당에 붙어 발효하여 새로운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을 만들 듯이. 복음은 세상에 달라붙어서 세상과 결합하여 세상 속에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새로워 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복음이며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비록 우리 고등부 공동체는 적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을까요? 저는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비록 가루 서 말이라 할지라도 잘 발효된 누룩만 있으면 가루 전체를 다 바꿔 놀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얘기해 주고 있어요.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가루가 부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아세요? 가루가 부풀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누룩이 온전한 누룩이 아니든지 , 둘째 누룩은 온전한데 누룩이 밀가루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든지 입니다.
첫째 누룩이 온전한 누룩이 아니면 밀가루 전체를 부풀게 할 수 없습니다. 누룩이 발효되어야 하는데 누룩이 아니면 누룩의 효능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겉모양은 누룩인데 밀가루가 썩은 것이라면 누룩의 효과를 낼 수 없는 것이죠. 썩은 밀가루는 다른 밀가루도 썩게 만들어 버립니다.
여러분 썩는 것 즉 부패하는 것과 발효는 비슷하면서도 결과는 매우 다릅니다. 발효되면 몸에 좋은 항생물질이 발산되어 더욱 맛나게 합니다. 하지만 부패하면 썩어버려 못쓰게 되는 거죠. 이 발효와 부패는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결과는 전혀 딴 판입니다. 우리 나라 음식에는 발효식품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습니다. 김치와 된장이 대표적인 발효식품이죠. 이 음식들은 썩지 않고 발효되어 우리 입맛을 돋굽니다. 젖갈을 보세요. 젖갈은 정말 신기합니다. 분명 생선의 시체인데 썩지 않고 발효되어 독특한 맛과 향내를 냅니다.

둘째, 누룩이 가루 서말에 들어가지 않으면 밀가루는 그대로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들어가지 않으면 세상을 절대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전혀 확장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비록 작은 누룩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세상에 달라 붙어 있기만 해도 세상은 변할 수 있습니다. 세상 앞에서 우리는 두려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냥 크고 두려운 세상의 풍조에 순응하면서 튀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야지! 괜히 발효 됐다가는 사람들의 비호감만 사고 튀지 않고 대충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서 살아갈테야! 난 그냥 가루로 살아갈래!! 괜히 발효되며 살아가는 거 피곤해!

여러분 우리는 잘 썩어지기만 하면 세상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질문을 던지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목사님은 왜 맨날 세상을 변화시켜야 된다. 세상에서 썩어져야 한다. 세상에 들어가야 한다. 이런 말씀만 하세요? 좀 부담스러워요. 그냥 대충 안썩고 살아가면 안되나요? 공부 잘 하는 법, 처세 잘하는 법 뭐 이런 거 없나요? 하실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물고기는 어디서 살아야 합니까? 물에서 살아야해요.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은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입니다. 이 목적보다 더 큰 목적은 없어요. 우리는 이 세상 속의 빛과 소금입니다. 이 세상 속의 누룩이구요. 하나님나라는 이 세상 한 가운데서 확장되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기술적인 면만 가르쳐 주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너희가 이런 존재이고, 이런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니 이런 사람을 살아야해 라는 취지에서 여러분의 존재 여러분의 정체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누룩으로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퍼져가게 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의 누룩으로 영향력있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로마가 기독교로 장악되는데 3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죠. 로마에서 기독교는 마치 누룩처럼 로마를 갉아 먹어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완전히 발효시키는데 3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311년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인정하기 까지 말입니다.
저는 우리 나라가 기독교의 가치와 기독교 정신이 녹아지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데 적어도 300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고작 기독교가 들어온지 120년이 되었어요. 로마의 통치 하에서 믿음의 선배들은 폭도들의 잔악한 탄압에 시달렸습니다. 원형경기장의 사자의 밥이 되어 찢겨 가면서도 자신의 누룩이라는 것을 나타내다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누룩이기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어느 사이에 이 누룩의 영향력이 먹혀들어가게 됐고 300년 경 후 로마는 기독교에 완전히 잠식되게 되어 버린겁니다. 우리 나라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밀가루가 되어서는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킬 수 없습니다.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밀가루의 모습으로는 아무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 비록 적은 양이라도 여러분 마음에 이 그리스도의 썩어짐의 누룩이 있다면 여러분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한 줌의 누룩도 썩어지지 않으면 영향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세상 속으로 들어가 썩어지십시오. 세상 속의 밀가루들과 똑 같은 모습이 아니라 누룩의 정체성을 가지고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겁니다.
여러분 나비효과라는 말 아시죠. 저 대륙 건너편의 남미에서 나비가 날개짓을 했을 뿐인데 태평양 이 편에서는 태풍으로 커져서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저는 다른 말로 누룩 효과라 부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정직한 누룩의 몸부림은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입니다.

너희는 왜 다른 거야? 라는 핀잔을 들어도 좋습니다. 적당히 살아가라는 타협을 들어도 좋습니다. 우리만은 다르게 살아 봅시다. 소심한 누룩이어도 좋습니다. 모두가 옳지 않은 방법을 택할지라도 우리만은 올곧은 누룩이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작은 누룩 한 줌만 있다면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엄청나게 크게 확장되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 썩어지시겠습니까? 아니면 발효되시겠습니까? 그냥 밀가루로 남아계시겠습니까? 작게나마 누룩으로 남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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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eramus
설교문2011. 11. 18. 22:02
마 13: 31 ~ 33 / 작지만, 보이진 않지만 대단한 것.


1. 작아서 좋은 것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큰 것을 좋아합니다. 키도 작은 것보다 컸으면 하구요. 눈도 작지 않고 저처럼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웃은 사람들 에잇 머리만 더 커라!! 보유 자산도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배기량이 아주 큰 차를 타고 싶어 하죠. 그런 사람들에게 레미콘 트럭이나 타이탄 트럭 같은 배기량이 큰 차들도 좋을 거 같아요. 과일은 어떻습니까? 전 수박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수박도 큰 것은 맛있고, 무척 비쌉니다. 집은 어떻습니까? 집도 매우 큰 평수에서 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제가 8평 집에서 살다가 이번에 15평, 거의 두 배 되는 집으로 이사 갔는데 정말 운동장을 방불케 하는 거실이 있어서 좋습니다. 일단 긍정적이고 좋은 것들은 크거나 많으면 좋습니다. 용기, 자신감, 믿음, 소망, 사랑…. 이런 보이지 않은 것들 중에도 크면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작거나 적으면 좋은 것들은 뭐가 있나요? 나이? 나이가 작으면 좋나요? 그런 사람들 에잇! 다시 유치원에 들어가라!! 머리숫 적으면 좋습니다. 저처럼 빛이 나거든요! 일단 부정적인 것들은 적거나 작으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 미움, 다툼, 불평, 불만, 욕심, 피해의식 기타 등등 좋지 않은 것들은 작거나 적으면 좋은 것이죠. 특별히 시험이 10일 앞으로 다가온 우리 고3 친구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지금 매우 작아져 있겠죠? 시험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성적표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이리 작아지는가? 엄마 앞에만 서면 내 가슴은 무너져 내리는가? 여러분 마음은 짐작건데 지금 새 가슴이 되어 무척이나 초라해져 있겠죠? 그렇지 않으면 참으로 다행이구요! 자신감 또한 바닥을 치고 있겠죠? 불안, 초조함, 스트레스, 좌절 등의 수치는 현재 나타난 게이지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자~ 여기 이 자리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여러분의 내면이 새로워 지길 바랍니다^^

2. 천국은 마치 작은 겨자씨와 같다.
마태복음 13장은 비유장입니다. 13장 전체가 예수님의 비유로 가득합니다. 그 중에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매우 비슷한 비유로 앞 뒤에 놓여 있습니다. 두 비유의 공통점은 아주 작은 시작이 그리고 아주 작은 원인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매우 큰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천국을 가리켜 말하고 있는 것이구요. 천국은 마치 이와 같다는 것이죠.

31절~32절 말씀을 함께 읽어 봅시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어떤 젊은 남자가 허니 머스타드 소스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통통한 닭가슴 살에 빵가루를 입혀 튀기고 그것을 각종 야채 위에 올려 놓은 후 허니 머스타드 소스를 뿌려 먹을 생각을 하니 군침이 슬슬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머스타드가 겨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종자를 파는 사람에게 갔어요. “저기 제가 겨자가 필요해서 그러는데 겨자씨 하나만 구할 수 있을까요?” 주인장은 겨자씨 하나라는 말을 듣고는 어이 없다는 듯이 그 사람을 쳐다봤어요. “여보시오! 겨자씨 하나요? 하나? 하나? 겨자씨 하나가 얼마나 작은 지 알고 하는 말이오?” 주인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장난 삼아 정말 겨자씨 하나를 주었어요. 겨자씨 하나를 받아든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는 그 작은 씨를 조심이 손에 담아 밭 한 귀퉁이에 심었어요. 그 겨자씨는 며칠 지나자 작은 새순을 돋기 시작했어요. 점점 커지기 시작한 겨자씨는 한 철이 지나자 3미터 크기까지 자랐답니다. 제법 나뭇가지도 무성해지자 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하고 그 그늘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쉬었다 가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는 허니머스타드 소스로 맛있는 치킨셀러드를 만들어 먹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3. 작지만 강력한 하나님 나라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 줄 아시나요? 저희 집은 어려서 담배 농사를 지었었어요. 봄이 되면 아버지께서 엽연초 조합에 가셔서 담배씨를 받아 오셨었죠. 그런데 그 씨가 어찌나 작던지 한 번 엎어 뜨리기라도 하면 주어 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어요. 이 담배씨와 겨자시는 매우 비슷하게 생겼어요. 크기도 비슷하죠. 씨앗으로는 분간이 안가죠. 새 순이 막 터올 때까지도 구분이 안갑니다. 하지만 싹이 점점 커져갈수록 둘은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씨앗은 작지만 그 씨앗을 통해 엄청난 크기의 나무가 생기고 그 나무에서 수없이 많은 열매들을 거둬 드리게 되죠.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매우 작아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는 일단 심겨지기만 하면 자라기 시작합니다. 점점 자라나 결국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즉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전에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착각하시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으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 나라는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은 모두 하나님 나라인 겁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하나님이 정말 다스리시나 할 정도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죠.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커지고 있고 점점 영향력을 더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면 안되요.

다니엘서 4장에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란 왕이 꿈을 꾸는데 그의 꿈속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나무였습니다.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 새들이 몰려 오는데 그 나무 밑둥이 잘려나가는 꿈을 느부갓네살 왕이 꿨었죠. 나무는 바로 느부갓네살 왕을 상징했었죠. 느부갓네살 왕이 다스리는 바벨론 나라가 멸망한다는 것을 나무가 잘려 나가는 것을 통해 말해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13장 31절 말씀에서도 나무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은 점점 더 왕성하게 우리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4. 작은 것이 오히려 아름답습니다.
성경은 작은 것이 오히려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의 적은 염도가 짠맛을 내게 합니다. 적은 소금으로 세상의 부패를 막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빛도 마찬가지로 매우 작은 빛이라도 어둠 가운데 비춰지기만 하면 어둠을 몰아 내버립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매우 작은 마을에서 자라셨고 활동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는 매우 초라한 삶을 살다 갔고, 그 삶보다 더 초라한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길러낸 제자들도 정말 초라한 사람들이었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한 명의 배신한 제자를 제외하면 11명의 제자만을 남겨두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도대체 11명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그냥 가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명을 부르시며 너의 후손이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 질거라고 말합니다. 75세의 기력이 다 쇠해 버린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 나라는 매우 역설적인 나라입니다. 지금은 비록 보이지 않고 정말 미미해 보이고 작아 보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나라, 아니 다른 말로 하나님의 다스림은 여전히 내 삶 가운데 있으며, 그 다스림은 점점 더 커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11명의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것을 말해줍니다. 처음 예수님 한 분으로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세계의 수 십억 사람들이 그 예수님의 영향력과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마치 작은 겨자씨 하나가 엄청난 가지치기를 하며 자라듯 말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이 오히려 아름답고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이 있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작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지금 모습만 보니까 작다고 느끼실 것입니다. 아니 내가 이 성적표로 도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내가 갈 수 있는 이 대학으로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난 완전 망했어. 이제 끝장이라구!! 이러고들 있지?? 지금 너희 모습이 겨자씨 같이 초라하고 작아보이더라도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니까? 너희는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니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다스림은 점점 커져 갈 것입니다. 좋은 대학 못 간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수능 잘 못 볼거라 벌써부터 낙담하며 포기하지 말란 말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십시오. 나는 비록 초라하지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은 크십니다. 나를 통해 이뤄 나갈 하나님의 나라는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여러분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용기를 내세요. 다 같이 따라 해 봅시다. “난 결코 작지 않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크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바로 나를 통해 여러분을 통해서 이죠.
여러분들의 10년 후가 저는 정말 기대 됩니다. 오 헨리의 소설에서 처럼 우리 모두 10년 후에 그 가로등 아래서 한 번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말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저는 기대됩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큰 나무가 되어 있을 겁니다. 지금은 비록 초라한 겨자씨 한알에 불과 하지만, 여러분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여러분을 자라게 하실 겁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결코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기대하십시오. 여러분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아니 작기에 오히려 더 소중한 것이죠. 성경은 정말 작은 것들이 가치 있다고 말하고 있다니까요? 자기가 작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가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바로 작은 자에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면 여러분은 이제 곧 큰 나무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안에서 큰 나무를 봅니다. 지금은 비록 겨자씨 같은 작고 초라한 삶일지 모르지만 큰 나무가 될 것이라는 소망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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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eramus
일기2011. 7. 25. 07:27
여름수련회가 지난 토요일부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수련회는 종암교회 전체 교회학교가 연합하여 드린 연합수련회였다.

내가 맡은 역할은 찬양인도와 새벽예배 말씀 선포였다.

96년부터 시작한 찬양인도이니 이제 15년이 되어간다. 찬양인도에 은사가 있는 것은 수 없이 많은 찬양인도를 통하여 증명이 된 것 같다. 이번에도 찬양시간이 너무 은혜가 됐다는 평가를 곳곳에서 많이 듣는다. (이건 자만은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또 다른 하나의 임무였던 말씀 선포를 통해 깨닫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영혼들이 참 진리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사람들은 변화받는다.
말씀 선포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나는 말씀 선포를 통해 사람들이 성경적인 가치관을 갖게 되고, 삶의 열매들이 맺혀가는 것을 볼 때, 너무나 행복하다.

하나님의 말씀, 참 진리의 말씀, 갈급한 영혼들의 마음을 터치해줄 수 있는 진정한 말씀 선포자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아직 말씀 선포자로서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말씀을 전할 때 참 보람을 느낀다. 오히려 설교자인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다.

말씀의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예레미야같은 선지자가 되고 싶다.
참 말씀의 사람이 되도록 주님의 은사와 성령의 기름부음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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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eramus
묵상2011. 6. 22. 15:45
"그러니 그 "누룩"을 제거하십시오. 우리의 참된 정체성은 한결같고 순수해야지, 나쁜 성분 때문에 부풀려져서는 안됩니다...... 누룩을 넣지 않은 납작한 빵, 곧 단순하고 참되고 꾸밈없는 빵으로 유월절에 참여해야 합니다.(고린도전서 5:6-8절 / 메시지 성경)

우리 삶에 첨가 되지 말아야할 거시 바로 누룩이다. 누룩은 우리의 참된 정체성, 순수한 우리됨을 왜곡시켜 놓는다.
단순하고(simple), 참되고(genuine), 꾸밈이 없는 삶(unpretentious)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이다.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뭔가 첨가물이 들어갈 때, 그 사람의 삶은 뻥튀기 되어진다.
마치 누룩을 너어 부풀어진 빵처럼.
나쁜 성분 때문에 우리의 삶이 부풀려져서는 안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부풀려 지기를 바란다.
자신이 가진것, 자신의 됨됨이, 자신의 본질보다 부풀리게 보여지기를 바란다.
유월절에 먹어지는 빵은 부풀려진 빵이 아닌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빵이다.
예수님의 삶이 누룩없는 삶이셨다.
그분은 단순하셨고, 참되셨고, 꾸밈이 없으셨다.

내 속에서 누룩은 제거 되어져야 한다. 누룩은 매우 적은 양이더라도 반죽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적은 누룩을 경계해야 한다.
오늘도 내 속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누룩을 경계하며 단순하고 참되고 꾸밈없는 존재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부풀려지지 않아도 좋다. 납작한들 어떠하겠는가? 그 납작한 빵은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빵이며, 볼품 없는 빵을 통해 예수님의 맛이 전해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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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