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2012. 2. 27. 07:4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딤전 4:13)

사역의 기본은 권면(exhortation/paraklesis)과 가르침(teaching/didaskalia)임을 요즘 많이 느낀다.
그런데 이 권면과 가르침의 전제 조건이 바로 읽기(Reading)이다.
읽기란 기본적으로 성경읽기를 의미한 것이었을 것이다.
성경읽기를 통해 얻어진 깨달음이 없는 권면과 가르침은 그 무게는 솜털처럼 가볍고 그 깊이는 세숫대야만큼의 깊이에도 이르지 못한다.

우리 장인 어르신이 그런 충고를 해준적 있다. "자네 심방할 때 했던 본문 또하고 재탕해먹지 말아!"라고...
심방하는 가정과 개인에 맞는 시기적절한 말씀을 주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읽기이다.

난 목회에 있어 읽기의 중요성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란 것을 사역의 경륜이 싸이면 쌓일수록 깨닫는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현실은 사역자에게 읽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아니 읽는 것을 사역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읽기가 없는 사역은 사상누각이요 기초없는 사역에 빠지기 쉽다.

바울은 읽는 것의 소중함을 알았던 사람인 것 같다. 사역의 핵심은 권면과 가르침인데, 그 권면과 가르침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읽기라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 같다.

나는 읽기가 천성적으로 약한 사람이었고 환경적으로 읽기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이는 내 사역에 있어 커다란 아킬레스 건이다. 나는 인정한다. 더 부단히 읽기에 열정을 쏟지 않는 이상 나는 주님이 원하시는 권면과 가르침의 사역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베드로의 말도 이러한 바울의 의견을 거드는 듯 하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사역의 콘텐츠, 권면의 내용물, 가르침의 건더기들은 모두 말씀으로부터 오며 읽기로 부터 온다.

읽기와 권면과 가르침에 힘쓰는 사역자가 되고 싶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2. 2. 23. 06:36
어제 문득 작년에 기도했던 기도제목이 떠올랐다.

그 기도가 응답된 걸까? 설레는 마음으로 네이버지도 어플을 실행했다.

기도제목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그냥 하나님께 소소한 바람을 아룄었다.

교회 사역을 정하든 선교지에 나가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약간 교회사역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때 마침 아내가 다니는 상도중앙교회에서 아내가 내년(2012)에 사역을 계속 해주길 바랐다.

'그렇담 상도중앙교회에서 10Km 반경 안에 있는 교회로 되게 해주세요! 아내가 고생 조금이라도 덜하게 말예요!'

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이 기도가 응답됐을까? 되게 궁금해졌다.

네이버 어플을 실행시킨 결과는 아래 사진에 첨부한다.

절묘하다. 보이는가? 9.8Km 푸하하하하하하

하나님도 정말 위트 있으시지... 10킬로 이내라니까 에누리 좀 주셔서 9.8킬로란다 ㅎㅎㅎ

한참을 웃었다. 하나님 사랑해요^^

 
Posted by speramus
설교문2012. 2. 20. 20:07

1.     여러 법률 조항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신명기 12장에서 26장은 십계명의 해설로서 신명기 법전이라고 불리웁니다. 새로운 약속의 땅에서 행해야할 지침을 법조항으로 정리해 놓은 신명기 법전입니다. 본문 25장은 그 법전의 거의 끝부분에 위치했고 다양한 법률들이 소개됩니다.

먼저
 1~3절의 조항은 엄중한 징벌 중에라도 자비를 베풀어라 고 합니다. 한 마디로 재판은 인권 존중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나라의 사법부를 보면 재판과정에 가기 전에 수사과정에서부터 갖가지 반 인권적인 것들(고문, 협박, 허위사실 유포 등)을 많이 보는데 이는 신명기의 자비로운 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이지요.

 

그 다음 4절에 등장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마라는 것은 모든 노동에는 생계유지라는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소일지라도 이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며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는 것이죠.

 

5~10절은 죽은 형제에 대한 의무에 관한 법률인데요, 이 법률의 근본 의도는 형수나 제수의 삶에 대한 배려입니다. 과부가 되어 살아가는 여자에게 아들마저 없을 때 당하는 서러움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배려가 이 법에 녹아 있습니다. 룻기에서 룻은 이 법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지요. 가장 가까운 친척이 룻을 아내로 맞아 들이는 것을 포기하자 그는 그 벌로 신발을 벗겨지는 수치를 당하였고, 그 다음 차례의 의무자인 보아스가 룻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2.     정직한 도량형의 사용

    그 외에도 다양한 법률들이 이후에 등장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13~16절에 등장하는 정직한 저울의 사용에 관한 법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법의 핵심은 도량형을 속여 이윤을 내지 말라는 겁니다. 도량형을 속이는 것은 8계명을 어기는 것이지요. 남의 돈을 도둑질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울추를 가볍게 하여 이윤을 내고 어떤 사람은 됫박을 더 작게 만들어 이윤을 내는 데 이게 다 도둑질이라고 일러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다고 본문은 말합니까? 가증하다라고 합니다.

 

이 가증하다는 말은 신명기에 적잖게 등장하는 말입니다. 특별히 이방 종교에서 행해지는 종교 풍습에 대한 배척에 관해 말씀하실 때,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신명기 18 9~13절에 보면 이방 종교 풍습을 따라 아들이나 딸을 불가운데로 지나게 하거나 점쟁이나 무당에게 길흉을 묻거나 하는 행위들이 여호와께 가증한 행위이니 그런 사람들을 공동체에서 쫓아 내 버리라고 말합니다.

 

뭘 말합니까? 저울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는 용납이 되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방 종교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러한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약 백성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행위라는 거죠.

 

장사를 하시는 분들은 이득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이윤을 내는 것에 있어 상당한 유혹이 따릅니다. 정직하지 못한 방법들을 써서 이윤을 내고자 하는 유혹이죠. 예언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대에도 이러한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발견합니다. 아모스 8 5절에는 에바를 작게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는 행위가 얼마나 잘 못된지를 말해줍니다. 호세아 12 7절에도 손에 거짓 저울을 들고 속이는 자에 대해 꾸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인데 북이스라엘에 이러한 거짓 도량형을 사용하여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3.     미가서 6 8절 말씀

    미가 선지자는 아모스와 호세아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남유다의 선지자인데 남유다에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미가서 6 9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미가서는 이러한 부정한 저울을 사용한 자들에게 닥칠 재난에 대해 특별이 일러 주고 있기 때문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가서 6 14절 말씀입니다. “네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항상 속이 빌 것이며 네가 감추어도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 네가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 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여러분 무슨 말입니까?

이렇게 정직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헛수고라는 겁니다. 아무 수확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씨를 뿌려도 열매를 거두어 들이지 못합니다. 감람나무를 심었는데 기름을 짜낼 정도의 충분한 양의 열매가 거둬들여지지 못하고 포도도 아예 열리지 않기에 오히려 배고픈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돈을 벌긴 버는데 어디로 날아가는지 며칠 지나면 빈털터리가 되어버리는 형국입니다.

 

오늘 새벽기도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삶의 태도를 다짐하고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정직하게 살며, 깨끗하게 살아가자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자는 겁니다. 신명기 25 15절 말씀은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라고 약속하십니다. 정직한 저울을 사용하는 자, 즉 정직하고 공정한 상행위를 하는 자, 더 넓은 의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겁니다. 그 축복은 다름아닌 축복은 약속의 땅을 영속적으로 향유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곳에서 우리의 행위에 대해 보시고 은밀히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은밀히 행한 선생을 갚아주실 뿐만 아니라, 은밀히 행한 거짓에 대해서도 밝히 드러내십니다.

 

위에서 언급한 미가서 6 9절 앞에 나와 있는 8절 말씀을 읽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 미가서 6 8절 말씀이 부정직한 사람들에게 던지는 예언자의 메시지로 우리가 오늘 따라야할 말씀입니다. 저울추를 속이며 불의한 재물을 얻으려고 하는 부정한 자세를 버리고 어떠한 자세를 취하며 살아가야 할지 미가 선지자는 우리에게 명확하게 제시해 줍니다. 어떤 삶의 태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인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서 6장 8절)

Posted by speramus
설교문2012. 2. 20. 19:50

1.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예전 찬양 중에 이런 찬양이 있죠.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움켜 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위에 가득하네…. 이 찬양들 아시죠?

 

그런데 여러분은 이 찬양의 가사에 동의 하십니까? 정말 버리고 나눠주는데 풍성해질 수 있나요? 정말 그렇습니까? 여러분 경제 원리란게 뭡니까?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이윤을 내는 것이 바로 세상의 기본적인 경제 원리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러한 경제원리와 정반대의 주장을 펼칩니다. 더 많이 나눠 주고 더 많이 베푸는 것이 번성하는 법이라구요.

신명기 24장은 23장에 이어서 사회적인 약자들 경제적인 약자들에 대해 공동체 내에서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 지에 대한 법률 조항들이 쭉 나옵니다. 기본적으로 베풀며 살고 나누며 살아라라는 조항들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풀며 나눠주면 너희가 복을 누린다는 전혀 경제원리와 맞지 않는 주장들이 펼쳐집니다.

 

2.     신명기 24장에 대한 개요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신명기 24장이 신명기라는 책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지를 살펴 봅니다. 일단 신명기의 알맹이, 신명기의 핵심은 신명기 법전이라고 일컬어지는 12장부터 26장의 법률 조항입니다. 저번 설교에 제가 말씀 드렸듯이 신명기는 너희가 새로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새 땅에서 살아가야 할 가르침과 지침들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새로운 땅에서 이러한 법률을 따라야 하며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핵심 지침으로서 법률 모음이 바로 12장부터 26장입니다. 그런데 12~26장은 바로 십계명의 해설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 24장은 8계명에 해당하는 법률로서 다양한 법률 조항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법률들이 강조됩니다.

 

6절 말씀을 보세요. 전당 잡은 물건이 이웃의 생계와 연관된 것(특별히 맷돌)이라면 그의 생명을 전당 잡은 것이니 그런 행동을 피하라고 합니다. 혹시 이웃에게 맷돌 빌려 오신 분은 오늘 아침에 즉시 갖다 드리십시오~^^ 10절부터 13절가지를 보면 겉옷을 전당 잡지 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속옷보다 겉옷이 중요했다는 걸 아실 겁니다. 겉옷은 낮에는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기도 하고 저녁에는 이불 대용으로 추위를 막아주는 매우 유용한 생활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런 겉옷을 전당 잡아 버리면 이웃이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것이죠하나님의 너무나 세심한 배려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웃의 생계수단에 대한 보호를 위해 아예 법조항에 이런 항목들을 기제해 버린 것이죠.

 

14절에는 가난한 자의 품삯 즉 임금을 체불하지 말라고 합니다. 임금이 유일한 생계수단인데 그거 떼 먹지 말라는 것이죠. 이것 또한 하나님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법 조항입니다. 17장도 외국인과 고아에 대해 차별하지 말고 공평하게 대하라고 합니다. 19절부터는 추수할 때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들이 먹을 수 있게 어느 정도 남겨두고 추수하라고 일러 줍니다. 우리 나라에도 비록 사람에게는 아니지만 까치를 위해 감을 다 따지 않고 남겨두는 비슷한 풍습이 있긴 하죠.

 

저는 이러한 법 조항들을 보며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과 따뜻하심을 깊이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뜻하신 분이십니다.

 

3.     본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웃을 위한 나눔과 베풂이 곧 하나님에 대한 예배입니다.

24절의 법률 들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나누며 베풀며 살아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눔과 베풂이 예배라 정의 내릴 수 있다는 겁니다. 나눔과 베풂은 곧 이웃에 대한 봉사입니다. 봉사는 곧 섬김이지요. 나눔과 베풂 은 이웃을 섬기는 것이지요. 히브리어로 섬기다 라는 단어는 아바드라는 단어인데 예배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결국 섬김과 예배는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이웃의 생계와 번영을 위해 내 것을 나누고 베푸는 삶이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16절 말씀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주는 행위가 제사라는 것이죠.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라고 말해줍니다. 이웃과 나누고 베푸는 것, 가난한 사람의 살림을 돌보는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회적인 자비를 증가시키는 것이 경제적 번영의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나누고 베푸는 것이 잘 사는 지름길이란 말이죠.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던 찬양의 가사 그대로입니다. 나눔과 베품과 같은 사회적인 자비를 증가시킬 때 우리 가정과 우리 사회의 경제적 번영이 증가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돈을 주관하는 맘몬의 영과의 큰 영적 싸움입니다. 맘몬의 영은 우리에게 늘 요구합니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많이 움켜져야 니가 부해질 수 있으며 풍성해 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그러한 가치관과 싸워야 합니다. 베풀고 나눴더니 더 잘 살게 되더라는 이 놀랍고 거짓말 같은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6:38절 말씀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주었더니, 베풀었더니, 내것을 이웃을 위해 포기했더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기까지 하더라는 것이죠. 이 놀라운 진리의 말씀을 여러분의 삶가운데 실천해 보십시오.

 

제물을 돈을 예배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시겠습니까? 재물을 예배하는 자들은 더 움켜쥐고 더 나누지 않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은 재물을 통해 이웃을 섬기고 베풀며 나누는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베품과 나눔을 통해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이 더욱 번창해 가기를 축복합니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2. 2. 16. 07:37
어제 친구 사역자가 "뭐 신나는 것 없을까? 사역이 재미가 없지?"라고 얘기를 했다. 난 선교지에 있을 때 가장 신나더라라고 말하긴 했다... 그렇담 일상을 선교지처럼 보내면 신나겠네? ㅎㅎ 난 왜 선교지에 있으면 신날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선교가 큰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
일상을 떠나서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일상을 떠나는게 그냥 신나서 그렇다면 문제가 좀 있는 것이겠지?
일상 안에서 신바람이 생기면 좋겠다.
신바람아 사방에서 불어와 나와 내 친구들의 삶을 휘감아 돌아라!!
라고 부르짖어 본다.

하루 하루가 신바람으로 가득한 삶은 다름아닌
부르심을 따라가는 삶이 아닐까?
내가 선교지에 가면 신바람이 나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내 부르심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부르심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신바람이 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상으로 부르신다.
오늘 하루도 일상의 삶에 의미를 발견하며 신바람 나는 삶을 살길 축복한다!! 
Posted by speramus
묵상2012. 2. 16. 06:40
<기도란....>

기도를 전화에 비유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기도는 119전화이다.
급한 일, 내가 건짐이 필요할 때 부르짖는 그런 전화.
하지만 119 전화는 일샐에 단 한 번도 걸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전화에 기능이 수없이 많이 첨가 됐다지만
전화의 가장 큰 기능은 소통이다.
연예 필수품은 영화티켓도 아니고 꽃다발도 아니고 향수도 아니다.
바로 전화다.
연예시절 1시간의 통화는 기본이다. 2~3시간이 기본일 수도...
개인적인 경험으로 봐도 전화는 우리 부부를 참 가깝게 해주었던 수단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 소통이다.
기도는 부르짖음이나 '소원을 말해봐'가 핵심이 아니라
사귐이 갑인 것이다. 
당신의 전화는 119번호로 고정해 놓고 계속 재다이얼만 누르고 있지는 않은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은 친말함의 단계로 나아가길 축복합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나오는 음악땜에 기도에 집중 못하고 
잠시 기도에 대한 소회를 그적거리고 갑니다^^
Posted by speramus
2012. 2. 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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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2012. 1. 18. 07:16
<천국은 삶이다>

"바꿔야 할 것은, 너희 겉가죽이 아니라 너희 삶이다...
내가 이 강에서 세례를 주는 것은, 너희의 옛 삶을 바꾸어 천국의 삶을 준비시키려는 것이다. (마 3:8-11, 메시지성경)"

세례 요한의 선포 중 일부다.
요한은 하나님 나라가 여기 있다고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한다.
회개란 겉 가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것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면서 대조되는 두 삶을 제시한다.
바로 옛 삶과 천국의 삶이다.

삶은 점이 아니라 선이다. 
천국은 죽음과 함께 열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참 회개와 함께 시작되며 열리는 삶이다.
천국을 멀리 있다 생각하지 말라.
천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당신이 서 있는 그곳에 말이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참 회개의 사람이 살아내는 삶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의 단절을 거부한다.
이 땅에서 삶이 선이듯이... 
하나님 나라의 삶도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연결되는 삶의 연속인 것이다.
당신은 오늘 어떤 삶으로 천국의 삶을 구현할 것인가?
오늘이 당신의 삶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천국이기를 축복합니다.

"진짜는 이제부터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너희 안에 천국의 삶을, 너희 안에 불을, 너희 안에 성령을 발화시켜, 너희를 완전히 바꾸어 놓으실 것이다. (마 3:12, 메시지성경)
Posted by speramus
일기2011. 12. 29. 23:22
나는 아이패드를 2년 동안 기다려 왔다. 실은 작년 이맘 때 아이패드 1이 나의 품에 안길 뻔 했었다.
꼬깃 꼬깃 모아 뒀던 60만원의 재정으로 중고나라에 올라온 아이패드를 선결제로 사고 물건을 기다렸으나...
사기를 당했었다.
심한 절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낸지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나는 아이패드를 잊지 못하고 있다.
아이패드를 향한 나의 로망은 새로운 아이패드가 등장하는 시기가 다가올 수록 더해 간다.

아이패드를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흡사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급한 바람 처럼 스쳐간다.
말세가 가까워 오면 올 수록 하나님 나라에 대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열망은 더해 가고 있다.

나는 오늘도 아이패드용 유료 어플을 몇 개 구입했다.
아이패드 껍데기도 없는 사람이 내용물을 사는 것이 우습기까지 하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아이패드 본체가 나에게로 올 것을 믿기에 그 내용물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간 오겠지? 몇 년이 걸리더라도? ㅎㅎ

돈 몇 푼 있으면 아이패드를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돈 몇푼을 모으기가 참으로 빠듯하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예수님 핏값이면, 하늘나라? 오케이!!
예수 이름으로 하늘 나라 무료 입장.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껍데기만 있고 내용물은 없다.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아이패드를 살 수 있다. 하지만 아이패드를 누리는 사람은 그 내용물을 준비한 사람이다. 아이패드 기계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이패드로 아이패드 되게 하는 것은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응용프로그램들이다. 그것을 위해 나는 오늘도 응용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천국은 예수 이름 한 번 불러 갈 수 있는 그런 간단한 곳이 아니다. 너무나 놀랍고 위대한 곳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다. 누구든지 예수로 주여 주여 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맞는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닐까?
예수를 믿는 것은 기본이며 그 예수의 행동양식, 가치관, 성품, 인격을 닮은 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하늘 나라 아니겠는가?
껍데기는 필요 없다. 그 하늘나라를 움직이는 내용물이 핵심인 것이다.
나는 그러기에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에 어울리는 그런 삶을 살아낼 것이다.
하나님나라와 상관없이 이 땅에서 일평생을 살다. 죽음 후에 예수 이름 한 번 신용카드 긁듯이 사용하여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는 뭔가 어색하다.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내용물들로 내 삶을 채워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요 목적이다.

하나님 나라는 피안의 세계 너머 우주 저편에 있지 않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진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의해 확장되어진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은 하나님 나라에 걸맞는 품위와 인격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나님 나라의 응요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성품이요 성령의 열매인 것이다.
나는 이 아홉가지 필수 아이템을 오늘도 준비하고 있다.
이 열매들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하나님 나라의 응용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자들에 의해 실행되며 돌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이 땅위에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길 간절히 소망하신다.

난 오늘도 그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한 땀 한 땀 응용프로그램들을 익히며 준비해 가고 있다. 아멘 주 예수요 우릴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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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11. 12. 24. 13:49
어제 녹화 예약 해 두고 잔 <울지마 톤즈>가 잘 못되어
35분 밖에 녹화되지 않았습니다.
35분 동안 영화의 끝 부분을 보는 내내 울었습니다.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사제의 길을 걸으신 분.
전쟁으로 폐허된 수단의 어린 영혼들의 친구로 아름다운 꽃으로
다가가 주신 고 이태석 신부님의 아름다운 향기가 저를 흠뻑 젖게 하는군요.

말과 허울 뿐인 선교사였던 제 삶에 공명되는 바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
나는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사역자로 목사로 살아가는 지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광주의 살레시오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돈보스코 회의 신부님들이 오버랩 됐습니다.
그 때의 기억들은 나로 하여금 
수단에서 성 돈보스코의 사랑을 본 받아 
헌신 하셨을 이태석 신부님의 진정성을 짐작할 수 있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총자루를 녹여 트럼펫과 트롬본으로 바꾼 브라스밴드 사역은
참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영혼을 녹이는 사역, 나중에 한 번 해보고 싶은 사역입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이사야 2:4절 중)"
전쟁의 참혹한 땅에 음악이 흐르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헌신하다 가신 고인의 귀한 사랑이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 눈물을 잃어 버린 아이들...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친구요 꽃이었던 이태석 신부를 향한
눈물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본격적인 전임 사역을 앞 두고 
저 또한 다짐합니다.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고, 
아직도 피어내지 못한 꽃망울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사역자 되겠노라구요...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을 따라 작은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그런 사역자가 되겠노라구요... 
Hope for the flowers!!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