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딤전 4:13)
사역의 기본은 권면(exhortation/paraklesis)과 가르침(teaching/didaskalia)임을 요즘 많이 느낀다.
그런데 이 권면과 가르침의 전제 조건이 바로 읽기(Reading)이다.
읽기란 기본적으로 성경읽기를 의미한 것이었을 것이다.
성경읽기를 통해 얻어진 깨달음이 없는 권면과 가르침은 그 무게는 솜털처럼 가볍고 그 깊이는 세숫대야만큼의 깊이에도 이르지 못한다.
우리 장인 어르신이 그런 충고를 해준적 있다. "자네 심방할 때 했던 본문 또하고 재탕해먹지 말아!"라고...
심방하는 가정과 개인에 맞는 시기적절한 말씀을 주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읽기이다.
난 목회에 있어 읽기의 중요성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란 것을 사역의 경륜이 싸이면 쌓일수록 깨닫는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현실은 사역자에게 읽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아니 읽는 것을 사역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읽기가 없는 사역은 사상누각이요 기초없는 사역에 빠지기 쉽다.
바울은 읽는 것의 소중함을 알았던 사람인 것 같다. 사역의 핵심은 권면과 가르침인데, 그 권면과 가르침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읽기라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 같다.
나는 읽기가 천성적으로 약한 사람이었고 환경적으로 읽기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이는 내 사역에 있어 커다란 아킬레스 건이다. 나는 인정한다. 더 부단히 읽기에 열정을 쏟지 않는 이상 나는 주님이 원하시는 권면과 가르침의 사역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베드로의 말도 이러한 바울의 의견을 거드는 듯 하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사역의 콘텐츠, 권면의 내용물, 가르침의 건더기들은 모두 말씀으로부터 오며 읽기로 부터 온다.
읽기와 권면과 가르침에 힘쓰는 사역자가 되고 싶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사역의 기본은 권면(exhortation/paraklesis)과 가르침(teaching/didaskalia)임을 요즘 많이 느낀다.
그런데 이 권면과 가르침의 전제 조건이 바로 읽기(Reading)이다.
읽기란 기본적으로 성경읽기를 의미한 것이었을 것이다.
성경읽기를 통해 얻어진 깨달음이 없는 권면과 가르침은 그 무게는 솜털처럼 가볍고 그 깊이는 세숫대야만큼의 깊이에도 이르지 못한다.
우리 장인 어르신이 그런 충고를 해준적 있다. "자네 심방할 때 했던 본문 또하고 재탕해먹지 말아!"라고...
심방하는 가정과 개인에 맞는 시기적절한 말씀을 주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읽기이다.
난 목회에 있어 읽기의 중요성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란 것을 사역의 경륜이 싸이면 쌓일수록 깨닫는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현실은 사역자에게 읽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아니 읽는 것을 사역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읽기가 없는 사역은 사상누각이요 기초없는 사역에 빠지기 쉽다.
바울은 읽는 것의 소중함을 알았던 사람인 것 같다. 사역의 핵심은 권면과 가르침인데, 그 권면과 가르침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읽기라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 같다.
나는 읽기가 천성적으로 약한 사람이었고 환경적으로 읽기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이는 내 사역에 있어 커다란 아킬레스 건이다. 나는 인정한다. 더 부단히 읽기에 열정을 쏟지 않는 이상 나는 주님이 원하시는 권면과 가르침의 사역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베드로의 말도 이러한 바울의 의견을 거드는 듯 하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사역의 콘텐츠, 권면의 내용물, 가르침의 건더기들은 모두 말씀으로부터 오며 읽기로 부터 온다.
읽기와 권면과 가르침에 힘쓰는 사역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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