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과 작품들2011. 12. 12. 22:49


여호와께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도다.  (이사야 3장 14~15) 


가난한 사람들이 누구의 음식이 되는 건가? 지배층들의 음식.
가난한 사람들이 지배층의 음식이 되는거죠.
실제로 반성만찬이 일어난 거예요.
이 세계는 anti sacramentalism이야. 원래 성만찬은 뭐예요?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음식이 되어주는 거죠.
하나님이 자기 몸을 인간의 음식으로 주는 게 뭐예요? 이게 성만찬이죠. 그 다음에 인간의 몸을 신의 제물로 바치는 건 몰렉 제사죠.
이교도 제사의 특징은 뭐냐면, 이교도 제사는 인간의 몸을 신의 음료로 드리는 것이야.
그런데 신의 몸과 신의 피가 인간의 음료가 되는 거, 이 거대한 전치.
이교도 종교와 완전히 반대가 되는 이게, 종교의 완전한 전복, 이게 바로 성만찬이거든.
하나님께서 인간의 음식이 되는 것이 성만찬이란 말야.
그런데 이 세계는 반성만찬적이죠.
부자가 가난한 사람 얼굴을 맷돌질하니까.
순두부처럼 맷돌질하는거야 이렇게. 두부 만들려고.
그러니까 뭐냐면 이 세계의 구조가 너무 악한 건데, 시간 강사에게 시간당 3만원 주고 정교수가 월급 많이 받는 것도 결국 반성만찬적입니다.
현대 대기업 노조가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것도 반성만찬적이야.
이 세계의 구조 전체가.
부자는 세금을 낼 때 어떤 속죄와 대속의 의미가 있어요.
자기 죄를 대속, 속죄하는 의미가 있어 실제로 그 안에는.
거기에 축재의 과정에 정의롭지 못한 과정이 있어요 실제로.
왜 똑같은 노동을 하는데 시간 강사는 150만원 받고, 정교수는 300만원 받습니까? 물론 여기서 절대적인 자격이 있냐? 그건 아니거든.
예를 들어 시간 강사가 강의 평가 60점인데 정교수 90점 맞는다 그건 아니거든.
똑같다고 대개 박사과정들은. 오히려 젊은 사람이 더 강의를 잘하지 늙은 사람보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금을 내는 과정이나 이럴 때, 이 체제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불의한 재산이라는 말을 썼어 예수님이.
재산은 기본적으로 불의한 거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재산은 기본적으로 불의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재산 전부에 대해서 불의한 재산이라는 말을 썼어.
누가복음 16장에서 불의한 재산으로 친구를 사라. 이게 예수님께서 말한 현명한 자에 대한 거거든.
그래서 얼굴에 맷돌질한다. 이거 참 너무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다 실제로. 어떻게 이걸 극복할 수 있을까얼굴에 맷돌질 하는걸.

-김회권 교수님 수업시간에....-
 


Posted by speramus
일기2011. 12. 2. 23:28
요즘 석사 논문 마무리 하느라 이 곳에 통 흔적을 남기지 못하네요!!
2주 안에 끝날거 같습니다!

응원해주세요^^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speramus
설교문2011. 11. 26. 03:13

본문 : 사사기 6장 11-14절
제목 : 큰용사, 쫄지마


1.     기드온의 독백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300명의 사람으로 수 만 명의 미디안 사람들을 죽여 없앤 사람이랍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미디안이라는 나라에게서 백성들을 건져낸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답니다. 제가 왕년에 어마 어마 했거든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의 처음은 작은 겨자씨만 했고, 저는 누룩보다 못한 사람이었답니다. 저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도 므낫세라는 매우 작은 지파 사람이었구요. 그 지파 안에서도 우리 집은 그렇게 높은 지위도 아니고 영향력도 많지 않은 집안이었어요. 저희 집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미디안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어요. 추수 때마다 미디안 사람들은 낙타를 몰고 와서 우리의 곡식들을 다 노략해 갔어요. 미디안 사람들은 심지어 파종시기까지 쳐들어와 새싹을 다 뭉게버리고 우리의 삶의 터전을 완전히 초토화 시켜 버렸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속의 동굴에 들어가 살기도 하고 숨어 들어가기 시작했답니다.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하나님이란 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이 땅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죠. 근데 저는 믿기지가 않았어요. 그 사건이 벌어진 지가 벌써 300년이 지났을 뿐더러 그런 일이 왜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세대에는 벌어지지 않는지 늘 의심이 있었고, 그 불만은 극에 달했답니다. 이집트를 탈출시킨 하나님이 왜 미디안에게 시달리는 지금의 우리는 구해주지 않는단 말입니까? 출애굽 그거 다 뻥아니야?

 

그렇게 7년 정도 미디안에 시달리고 나니까 빡 돌겠더라구요.

큰 풍년이 들었던 어느 해의 화창한 날이었어요. 저는 깜깜한 밤에 후다닥 밀을 거둬들였어요. 그런데 문제는 밀을 타작하기 위해서는 높은 곳에 바람이 잘 부는 곳에서 타작을 해야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사람들에 들켜 곡식을 빼앗길게 뻔했죠. 결국 저는 포도즙을 짜기 위해 큰 돌을 사방으로 파서 만든 포도즙 틀에서  타작을 하기로 작정했죠. 한참을 타작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런데 뒤에 누가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돌아봤더니 아이구 깜짝이야” “당신은 누누누누구 십니까?”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다. 큰 장수 기드온아!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

뭐요? 다시 한 번 얘기 해보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구요? 언제부터 함께 했는대? 지금 나 완전히 어이 상실했거든아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라가 이 모냥 이 꼴이란 말이요? 듣기로는 몇 백년 전에 우리 조상들을 그 분이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이곳에까지 인도하셨다고 하는데, 그 모든 기적들이 지금은 다 어디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거 아닙니까? 안그러면 우리가 미디안의 손에 이리도 시달린단 말입니까? 입이 있으면 말 좀 해보쇼!!”

 

저는 막 따지듯이 쏟아 부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 같은 분이 나타나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하더군요.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 저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니 아까는 큰 장수야 어쩌고 하더니 이번에는 저의 힘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구하라구요?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안돼!! ~~~ 나 탑 남자 농부라고 이런 것 못해!” 여러분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겠어요! 정말 당황하지 않겠어요? 내가 큰 용사라니요. 제가요? ?

 

2.     중요한 건, 하나님이 나를 누구로 보느냐?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것이 있다면하나님이 기드온을 보는 눈과 기드온이 자신을 보는 눈이 다르다는 거죠. 기드온은 자신을 정말 누룩 한 줌 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기드온을 큰 용사, 강한 군사로 보십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그런 말을 듣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겠죠. 안그래요? 미디안 병사들이 언제 쳐들어올 지 몰라 쫄아가지고 포도즙을 짜는 틀에서 타작을 하는 소심맨 기드온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기드온은 말 그대로 보잘 것 없고, 매우 작아 보이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 펼쳐질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한 구원 스토리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기드온 이 녀석이 비록 쫄고 있고, 따지고 대들고 있지만 기드온을 통해 이뤄질 이스라엘의 구원을 가슴 뛰는 마음으로 바라 보고 계시는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바라보는 눈과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볼 때, 정말 어떤 말로 표현해야 잘 표현할까요? 한 마디로 허접하잖아요. 다른 말로 찌질하잖아^^ 나 같은 것이 뭘 할 수 있겠어요? 생긴 거라도 좀 잘 생겼으면 모르겠는데키라도 좀 누구 같이 컸으면 모르겠는데….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모르겠는데뭐 하나 만족스러운 것이 없는 것 같잖아요. 이러한 증상을 기드온 콤플렉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제가 만든 말입니다.^^

 

기드온 콤플렉스란 한 마디로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실은 잘 할 수 있는데 정말 큰 사람인데작다고 생각하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느냐 입니다. 싸움은 거기서 결정이 나는 거예요. 기드온이 앞으로 수행할 게릴라 작전은 세계 어떤 전쟁 백과에도 볼 수 없었던 정말 짜릿한 승리였습니다. 이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이 기드온을 부르실 때 이미 승패가 정해졌습니다. 왜요? 기드온의 뒤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그랬기에 기드온은 큰 장수였고, 기드온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 모습이 어떠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지난 주 <뿌리 깊은 나무 14>에서 나왔던 장면을 잠시 영상으로 보시죠.

 

이 영상에서 강채윤이 말합니다. 당나귀 이빨빠지는 소리하지 말고 그런거 하나도 안 중요해!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냐는 거거든. 내가 누구냐면 허 내가 한지골 떨복이거든…” 여러분 저는 이것을 조금 바꿔서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그런 것은 하나도 안중요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누구라고 보냐는 거거든. 내가 누구냐면 하나님의 강한 용사!! Mighty Warrior 거든이것이 진리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렇게 부인한 후에 갈릴리 호수 근처에서 고기나 잡자면서 밤새 이마를 찍어가면서 후회하며 자신을 한탄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와서 하신 말이 무엇입니까? “니가 나를 사랑하니? 내 양을 먹여라예수님은 베드로를 양을 먹이는 목자로 본 것이죠. 예수님이 나를 누구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3.     행복의 조건

    여러분 다음 도표를 봐 보시죠. 어제 교사 경건회에서 강사님이 보여준 도표입니다.


이 도표는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라는 주제로 미국의 한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겁니다.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절반은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느냐는 거라고 하네요. 부모에게 어떤 사랑과 관심을 받았느냐가 그 사람의 행복을 결정하는 데 50%를 좌우 한데요. 부모님이 집에서 맨날 싸우는 집의 아이들이 행복하겠습니까? 부모님이 공부하라고만 하고 공부 잘하면 인정해주는 그런 분위기에서 정말 행복할까요? 부모님에게 따뜻한 허깅한 번 못받아 본 사람이 정말 행복할까요? 우리의 행복은 이미 태교 때부터 절반이 결정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중에 스트레스 많이 안 받고 남 눈치 안보고 그냥 싱글 벙글인 사람들 있죠.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아마도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을 확률이 높습니다. 예를 들면 김병철 선생님? 그리고 목사님? ㅋㅋ

 

나머지 60퍼센트 중 10퍼센트가 환경이 좌우한다고 합니다. 내가 안 좋은 가정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그러니까 유전적으로 타고 난 것으로 이미 절반이 다른 사람보다 뒤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환경을 바꿔 보려고 무진장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죽어라 공부하는 것도 바로 이 10%밖에 좌우 하지 않는 환경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이죠. 대부분의 삶들은 이 10%에 자신의 모든 것을 겁니다. 우리 고등학생들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죠. 좋은 대학 가면 행복해 질거라 생각해요. 아니 착각하죠. 저는 감히 착각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여기 있는 친구들의 99%가 아마도 그런 생각 할걸요? 좋은 대학 가면 행복해져!! 내 환경만 바꾸면 난 행복해 질 수 있어. 이쁜 아내를 얻으면 난 행복해질거야. 착각하지 마세요. 이쁜 애들이 더 까다로워! 그거 아니? 이쁜 애들이랑 살기 힘들어! 불행의 지름길이야^^

 

우리가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도 바꾸기 힘들고 환경도 바꾸기 힘들지 모르지만 나머지 40%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의도적인 활동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그냥 크게 웃는 것, 그러면 행복해 져요^^ 그리고 운동하는 것, 감사의 제목을 적어 보는 것. 이런 의도적인 행동들을 통해 우리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60%의 부분을 바라보시며 기드온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습니까? 강남구 도곡동 대치동이 아니라 종암동에 태어나고 산다는 것, 이거 정말 찌질한 것일지 모르겠어요. 거기다 잘 난 것도 없어 보여! 우울해지죠!! 근데 중요한 것은 세상 학자들은 40% 의도적인 활동이라 표현했지만 우리는 다르게 표현합니다. 신앙의 사람들의 말로, 하나님이 나의 운명을 바꿔 놓실 수 있대두(부장님 버전으로). 하나님 편에 서느냐가 승리의 열쇄라는 것을 잊으면 안되요. 어려서부터 인생을 알아야해요.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대로 나를 바라보면 행복해 집니다. 괜히 세상 잣대 갖다 대면서 불행해 지지말아요!!  괜히 수능 못봤다고 자살하거나 좋은 대학 못갔다고 우울해 하며 인생 다 포기하지 말라구요. 오히려 그 실패가 여러분을 더 멋지게 만들겁니다. 세상 앞에서 쫄지마세요. 당당해 지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큰 용사라 부르시지 찌질이라 부르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통해 큰 일 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1. 11. 19. 15:06

하나님은 참 유머 있으시다! 재밌으신 분이시다.

여름부터 나의 다음 스텝, 다음 진로를 놓고 많이 고민했었다.

봄에 치렀던 토플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아 유학의 길이 막히게 되면서 나의 고민은 시작됐었다.

유학이 아닌가 생각이 들면서, 여름 휴가 때 광주의 모교회 목사님을 만나 진로를 상담하게 되었다.

목사님은 유학을 가고 박사과정까지 가는 것은 신학자의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게 되면 아마 선교사의 길과는 멀어지는 선택일 수도 있다고 조언해 주셨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뭔가 갈림길에 서 있었던 것이다. 학문의 길, 사역(선교사)의 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맘이 들었다.

그 다음 이어진 고민은 선교지에 언제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신대원에 들어갈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목사 안수를 받으면 선교지에 바로 나가겠다고....

그래서 그런 결심을 실행하려고 시도를 했는데 가족들의 동의에 부딪혔다. 나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고, 나 혼자 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또한 파송의 문제는 또 하나의 큰 산이었다. 내년에 나간다면 당장 나를 파송해 줄 교회는 있을까? 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파송교회가 없더라도 하나님이 보내셨으면 하나님이 책임지지 않겠느냐는 믿음이 있었지만 그것을 가족들에게 강요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냥 순리에 맡기기로 하며, 찾았던 해결책은 한국에서 사역을 좀 더 하는 것이었다.

이 때쯤 교회 집사님으로부터 양복을 해주시겠다는 호의를 받았다.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는 양복으로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느꼈다.

양복을 입고 선교지와 유학을 위해 나갈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양복을 통해 한국에서 사역을 좀 더 하기를 원하신다는 메시지를 나에게 던지고 싶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하심의 다양성과 위트에 정말 한 참을 웃었다.

한 달 후 집사님이 양복을 건내면서 나에게 건내는 말 "목사님 새로운 임지에서도 사역 잘 하세요!" 이었다. 두 번 확인해 주시는 것이다. 새로운 임지로 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 말을 통해 하나님의 명확한 뜻을 깨닫는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하나님께서 종암교회에서의 4년 사역을 참 잘 했다고 격려하신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은 정말 재밌고 위트있는 방법으로 말씀하시고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구나.

아직은 어느 곳으로 갈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양복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이 적당하고 좋은 장소로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할렐루야.

내 삶의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speramus
설교문2011. 11. 18. 22:05
2011. 11. 13. (주일)

마태복음 13:33 / 전부를 부풀게 하는 능력


1. 적은 양의 강력한 파워
오늘 본문은 2주전에 말씀 드렸던 겨자씨 비유와 한 통으로 읽을 수 있는 비유입니다. 겨자씨 비유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 두 비유는 적은 양의 시작이 크게 커져버린다는 것을 핵심적으로 나타낸다고 말씀 드렸었죠.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 그렇다는 거죠. 하나님 나라는 작게 시작하지만 그 성장이 급속도로 퍼져 나간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누룩이라고 하니까 조금 우리에게 안 다가 오죠? 이스트를 봐본 적 있으신가요? 이스느가 누룩인데요 누룩은 다른 말로 효모를 가리킵니다. 많은 밀가루에 이런 이스트 효모나 베이킹 파우더를 넣으면 빵이 부풀어 지고 쫄깃 쫄깃 해집니다. 이 누룩이란 것은 쉽게 얘기해서 곰팡이 입니다. 곰팡이는 고온 다습한 환경을 무척 좋아합니다. 물기가 있는 곳, 온도가 높은 곳에서 급속도로 번식합니다. 제가 지난 번 집에서 살 때 겨울에 외풍이 너무 심해서 창문에 비닐을 쳐서 바람을 차단했더니 벽에 곰팡이가 새까맣게 찌더군요. 인류의 3대 난치병으로 알려진 무좀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곰팡이 균의 엄청난 영향력과 번식력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이 균이 도져서 저를 괴롭힙니다. 아무리 카네스텐, 라미실, 무조날 이런 거 발라도 소용 없어요. 엄청난 번식력과 파괴력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 곰팡이 입니다. 누룩도 곰팡이의 일종이라는 거죠.

곰팡이 중에 좋은 곰팡이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버섯이죠. 그리고 바로 누룩이라 불리우는 효모입니다. 효모는 당과 결합하여 발효를 유발하여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을 만든다고 합니다. 바로 이 이산화탄소가 분비 돼면서 부풀림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발효되면서 분비된 에탄올에서 술냄새가 나는 거구요. 효모가 밀가루의 당분에 달라 붙어 밀가루를 발효시켜 부풀리게 만든다는 거죠. 빵에서 술냄새가 나는 것은 바로 이 효모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가루에 누룩을 넣었다고 했는데 분명 이 여자는 빵을 만들기 위해 서 말 가루에 누룩을 넣었던 거겠죠? 서 말은 36리터 정도의 양입니다. 서 말의 밀가루로는 예수님 당시 100명의 사람들이 먹을 빵을 만들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일반 가정집, 즉 사사로운 가정의 살림 규모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가루입니다. 예수님은 왜 서 말이라고 말씀하셨던 걸까요? 그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적은 양의 누룩이지만 엄청 많은 양의 가루에 붙어 가루 전체를 발효시키고 부풀리게 하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비록 작은 양의 누룩이지만 그 전파속도와 파급효과가 엄청난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라는 거죠. 하나님 나라는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나라가 미치는 파급력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2. 로마 통치 아래의 기독교
여러분 기독교는 아니 다른 말로 복음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통치 하에 기독교는 곰팡이 취급을 당했었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곰팡이 취급을 당했지만 기독교는, 복음은 급속하게 로마의 하부조직으로 퍼져 갔고 로마 제국을 잠식해 갔습니다. 그 영향력과 파급효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세상과 동떨어져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딱 달라 붙어서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효모가 당에 붙어 발효하여 새로운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을 만들 듯이. 복음은 세상에 달라붙어서 세상과 결합하여 세상 속에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새로워 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복음이며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비록 우리 고등부 공동체는 적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을까요? 저는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비록 가루 서 말이라 할지라도 잘 발효된 누룩만 있으면 가루 전체를 다 바꿔 놀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얘기해 주고 있어요.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가루가 부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아세요? 가루가 부풀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누룩이 온전한 누룩이 아니든지 , 둘째 누룩은 온전한데 누룩이 밀가루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든지 입니다.
첫째 누룩이 온전한 누룩이 아니면 밀가루 전체를 부풀게 할 수 없습니다. 누룩이 발효되어야 하는데 누룩이 아니면 누룩의 효능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겉모양은 누룩인데 밀가루가 썩은 것이라면 누룩의 효과를 낼 수 없는 것이죠. 썩은 밀가루는 다른 밀가루도 썩게 만들어 버립니다.
여러분 썩는 것 즉 부패하는 것과 발효는 비슷하면서도 결과는 매우 다릅니다. 발효되면 몸에 좋은 항생물질이 발산되어 더욱 맛나게 합니다. 하지만 부패하면 썩어버려 못쓰게 되는 거죠. 이 발효와 부패는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결과는 전혀 딴 판입니다. 우리 나라 음식에는 발효식품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습니다. 김치와 된장이 대표적인 발효식품이죠. 이 음식들은 썩지 않고 발효되어 우리 입맛을 돋굽니다. 젖갈을 보세요. 젖갈은 정말 신기합니다. 분명 생선의 시체인데 썩지 않고 발효되어 독특한 맛과 향내를 냅니다.

둘째, 누룩이 가루 서말에 들어가지 않으면 밀가루는 그대로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들어가지 않으면 세상을 절대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전혀 확장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비록 작은 누룩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세상에 달라 붙어 있기만 해도 세상은 변할 수 있습니다. 세상 앞에서 우리는 두려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냥 크고 두려운 세상의 풍조에 순응하면서 튀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야지! 괜히 발효 됐다가는 사람들의 비호감만 사고 튀지 않고 대충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서 살아갈테야! 난 그냥 가루로 살아갈래!! 괜히 발효되며 살아가는 거 피곤해!

여러분 우리는 잘 썩어지기만 하면 세상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질문을 던지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목사님은 왜 맨날 세상을 변화시켜야 된다. 세상에서 썩어져야 한다. 세상에 들어가야 한다. 이런 말씀만 하세요? 좀 부담스러워요. 그냥 대충 안썩고 살아가면 안되나요? 공부 잘 하는 법, 처세 잘하는 법 뭐 이런 거 없나요? 하실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물고기는 어디서 살아야 합니까? 물에서 살아야해요.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은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입니다. 이 목적보다 더 큰 목적은 없어요. 우리는 이 세상 속의 빛과 소금입니다. 이 세상 속의 누룩이구요. 하나님나라는 이 세상 한 가운데서 확장되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기술적인 면만 가르쳐 주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너희가 이런 존재이고, 이런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니 이런 사람을 살아야해 라는 취지에서 여러분의 존재 여러분의 정체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누룩으로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퍼져가게 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의 누룩으로 영향력있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로마가 기독교로 장악되는데 3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죠. 로마에서 기독교는 마치 누룩처럼 로마를 갉아 먹어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완전히 발효시키는데 3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311년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인정하기 까지 말입니다.
저는 우리 나라가 기독교의 가치와 기독교 정신이 녹아지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데 적어도 300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고작 기독교가 들어온지 120년이 되었어요. 로마의 통치 하에서 믿음의 선배들은 폭도들의 잔악한 탄압에 시달렸습니다. 원형경기장의 사자의 밥이 되어 찢겨 가면서도 자신의 누룩이라는 것을 나타내다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누룩이기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어느 사이에 이 누룩의 영향력이 먹혀들어가게 됐고 300년 경 후 로마는 기독교에 완전히 잠식되게 되어 버린겁니다. 우리 나라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밀가루가 되어서는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킬 수 없습니다.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밀가루의 모습으로는 아무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 비록 적은 양이라도 여러분 마음에 이 그리스도의 썩어짐의 누룩이 있다면 여러분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한 줌의 누룩도 썩어지지 않으면 영향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세상 속으로 들어가 썩어지십시오. 세상 속의 밀가루들과 똑 같은 모습이 아니라 누룩의 정체성을 가지고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겁니다.
여러분 나비효과라는 말 아시죠. 저 대륙 건너편의 남미에서 나비가 날개짓을 했을 뿐인데 태평양 이 편에서는 태풍으로 커져서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저는 다른 말로 누룩 효과라 부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정직한 누룩의 몸부림은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입니다.

너희는 왜 다른 거야? 라는 핀잔을 들어도 좋습니다. 적당히 살아가라는 타협을 들어도 좋습니다. 우리만은 다르게 살아 봅시다. 소심한 누룩이어도 좋습니다. 모두가 옳지 않은 방법을 택할지라도 우리만은 올곧은 누룩이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작은 누룩 한 줌만 있다면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엄청나게 크게 확장되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 썩어지시겠습니까? 아니면 발효되시겠습니까? 그냥 밀가루로 남아계시겠습니까? 작게나마 누룩으로 남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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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2011. 11. 18. 22:02
마 13: 31 ~ 33 / 작지만, 보이진 않지만 대단한 것.


1. 작아서 좋은 것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큰 것을 좋아합니다. 키도 작은 것보다 컸으면 하구요. 눈도 작지 않고 저처럼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웃은 사람들 에잇 머리만 더 커라!! 보유 자산도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배기량이 아주 큰 차를 타고 싶어 하죠. 그런 사람들에게 레미콘 트럭이나 타이탄 트럭 같은 배기량이 큰 차들도 좋을 거 같아요. 과일은 어떻습니까? 전 수박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수박도 큰 것은 맛있고, 무척 비쌉니다. 집은 어떻습니까? 집도 매우 큰 평수에서 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제가 8평 집에서 살다가 이번에 15평, 거의 두 배 되는 집으로 이사 갔는데 정말 운동장을 방불케 하는 거실이 있어서 좋습니다. 일단 긍정적이고 좋은 것들은 크거나 많으면 좋습니다. 용기, 자신감, 믿음, 소망, 사랑…. 이런 보이지 않은 것들 중에도 크면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작거나 적으면 좋은 것들은 뭐가 있나요? 나이? 나이가 작으면 좋나요? 그런 사람들 에잇! 다시 유치원에 들어가라!! 머리숫 적으면 좋습니다. 저처럼 빛이 나거든요! 일단 부정적인 것들은 적거나 작으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 미움, 다툼, 불평, 불만, 욕심, 피해의식 기타 등등 좋지 않은 것들은 작거나 적으면 좋은 것이죠. 특별히 시험이 10일 앞으로 다가온 우리 고3 친구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지금 매우 작아져 있겠죠? 시험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성적표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이리 작아지는가? 엄마 앞에만 서면 내 가슴은 무너져 내리는가? 여러분 마음은 짐작건데 지금 새 가슴이 되어 무척이나 초라해져 있겠죠? 그렇지 않으면 참으로 다행이구요! 자신감 또한 바닥을 치고 있겠죠? 불안, 초조함, 스트레스, 좌절 등의 수치는 현재 나타난 게이지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자~ 여기 이 자리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여러분의 내면이 새로워 지길 바랍니다^^

2. 천국은 마치 작은 겨자씨와 같다.
마태복음 13장은 비유장입니다. 13장 전체가 예수님의 비유로 가득합니다. 그 중에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매우 비슷한 비유로 앞 뒤에 놓여 있습니다. 두 비유의 공통점은 아주 작은 시작이 그리고 아주 작은 원인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매우 큰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천국을 가리켜 말하고 있는 것이구요. 천국은 마치 이와 같다는 것이죠.

31절~32절 말씀을 함께 읽어 봅시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어떤 젊은 남자가 허니 머스타드 소스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통통한 닭가슴 살에 빵가루를 입혀 튀기고 그것을 각종 야채 위에 올려 놓은 후 허니 머스타드 소스를 뿌려 먹을 생각을 하니 군침이 슬슬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머스타드가 겨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종자를 파는 사람에게 갔어요. “저기 제가 겨자가 필요해서 그러는데 겨자씨 하나만 구할 수 있을까요?” 주인장은 겨자씨 하나라는 말을 듣고는 어이 없다는 듯이 그 사람을 쳐다봤어요. “여보시오! 겨자씨 하나요? 하나? 하나? 겨자씨 하나가 얼마나 작은 지 알고 하는 말이오?” 주인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장난 삼아 정말 겨자씨 하나를 주었어요. 겨자씨 하나를 받아든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는 그 작은 씨를 조심이 손에 담아 밭 한 귀퉁이에 심었어요. 그 겨자씨는 며칠 지나자 작은 새순을 돋기 시작했어요. 점점 커지기 시작한 겨자씨는 한 철이 지나자 3미터 크기까지 자랐답니다. 제법 나뭇가지도 무성해지자 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하고 그 그늘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쉬었다 가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는 허니머스타드 소스로 맛있는 치킨셀러드를 만들어 먹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3. 작지만 강력한 하나님 나라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 줄 아시나요? 저희 집은 어려서 담배 농사를 지었었어요. 봄이 되면 아버지께서 엽연초 조합에 가셔서 담배씨를 받아 오셨었죠. 그런데 그 씨가 어찌나 작던지 한 번 엎어 뜨리기라도 하면 주어 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어요. 이 담배씨와 겨자시는 매우 비슷하게 생겼어요. 크기도 비슷하죠. 씨앗으로는 분간이 안가죠. 새 순이 막 터올 때까지도 구분이 안갑니다. 하지만 싹이 점점 커져갈수록 둘은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씨앗은 작지만 그 씨앗을 통해 엄청난 크기의 나무가 생기고 그 나무에서 수없이 많은 열매들을 거둬 드리게 되죠.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매우 작아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는 일단 심겨지기만 하면 자라기 시작합니다. 점점 자라나 결국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즉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전에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착각하시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으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 나라는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은 모두 하나님 나라인 겁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하나님이 정말 다스리시나 할 정도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죠.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커지고 있고 점점 영향력을 더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면 안되요.

다니엘서 4장에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란 왕이 꿈을 꾸는데 그의 꿈속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나무였습니다.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 새들이 몰려 오는데 그 나무 밑둥이 잘려나가는 꿈을 느부갓네살 왕이 꿨었죠. 나무는 바로 느부갓네살 왕을 상징했었죠. 느부갓네살 왕이 다스리는 바벨론 나라가 멸망한다는 것을 나무가 잘려 나가는 것을 통해 말해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13장 31절 말씀에서도 나무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은 점점 더 왕성하게 우리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4. 작은 것이 오히려 아름답습니다.
성경은 작은 것이 오히려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의 적은 염도가 짠맛을 내게 합니다. 적은 소금으로 세상의 부패를 막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빛도 마찬가지로 매우 작은 빛이라도 어둠 가운데 비춰지기만 하면 어둠을 몰아 내버립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매우 작은 마을에서 자라셨고 활동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는 매우 초라한 삶을 살다 갔고, 그 삶보다 더 초라한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길러낸 제자들도 정말 초라한 사람들이었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한 명의 배신한 제자를 제외하면 11명의 제자만을 남겨두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도대체 11명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그냥 가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명을 부르시며 너의 후손이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 질거라고 말합니다. 75세의 기력이 다 쇠해 버린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 나라는 매우 역설적인 나라입니다. 지금은 비록 보이지 않고 정말 미미해 보이고 작아 보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나라, 아니 다른 말로 하나님의 다스림은 여전히 내 삶 가운데 있으며, 그 다스림은 점점 더 커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11명의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것을 말해줍니다. 처음 예수님 한 분으로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세계의 수 십억 사람들이 그 예수님의 영향력과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마치 작은 겨자씨 하나가 엄청난 가지치기를 하며 자라듯 말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이 오히려 아름답고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이 있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작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지금 모습만 보니까 작다고 느끼실 것입니다. 아니 내가 이 성적표로 도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내가 갈 수 있는 이 대학으로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난 완전 망했어. 이제 끝장이라구!! 이러고들 있지?? 지금 너희 모습이 겨자씨 같이 초라하고 작아보이더라도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니까? 너희는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니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다스림은 점점 커져 갈 것입니다. 좋은 대학 못 간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수능 잘 못 볼거라 벌써부터 낙담하며 포기하지 말란 말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십시오. 나는 비록 초라하지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은 크십니다. 나를 통해 이뤄 나갈 하나님의 나라는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여러분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용기를 내세요. 다 같이 따라 해 봅시다. “난 결코 작지 않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크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바로 나를 통해 여러분을 통해서 이죠.
여러분들의 10년 후가 저는 정말 기대 됩니다. 오 헨리의 소설에서 처럼 우리 모두 10년 후에 그 가로등 아래서 한 번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말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저는 기대됩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큰 나무가 되어 있을 겁니다. 지금은 비록 초라한 겨자씨 한알에 불과 하지만, 여러분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여러분을 자라게 하실 겁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결코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기대하십시오. 여러분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아니 작기에 오히려 더 소중한 것이죠. 성경은 정말 작은 것들이 가치 있다고 말하고 있다니까요? 자기가 작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가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바로 작은 자에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면 여러분은 이제 곧 큰 나무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안에서 큰 나무를 봅니다. 지금은 비록 겨자씨 같은 작고 초라한 삶일지 모르지만 큰 나무가 될 것이라는 소망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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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2011. 11. 18. 06:30
<요한계시록에 대한 불편한 진실>

성경에서 요한계시록 처럼 
읽기 꺼려지고 오해가 많고 해석이 다양한 책도 없다.
계시록을 보는 우리의 불편한 진실은 대충 이렇다.

1. 맨 마지막 책이기에 종말론에 있어서는 가장 권위있다?
이것이 계시록에 관한 가장 큰 오해다. 
일단 계시록은 무조건 종말론이란 공식을 갖다 댄다.
종말이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벌어지는 일이다.
책의 배치로 그 무게를 가늠하는 것은 유치하다.
그렇다면 창세기가 맨 먼저 나오기에 가장 중요한 책이란 말인가?

2. 다른 성경의 계시와 예언을 삼켜 버리려는가?
계시록 외에도 종말이나 계시적인 책들이 있다.
계시록으로 모든 예언과 계시와 묵시를 다 싸잡아 버리려는(wrap up) 위험하다.

3.계시록은 미래에 관한 시나리오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다?
계시록을 마치 미래에 반드시 그렇게 일어날 사건들을 묘사한 책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계시, 정확히 말해서 묵시를 오해한 것이다.
묵시란 박해와 핍박의 상황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임할 구원에 대한 소망을 암호적인 문장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글이다.
암호적이란 말이 중요한 것 같다.
예를 들면 그 로마의 박해 당시 666 하면 짐승의 숫자로 특정인을 가리킨다라는 것을 아마도 성도들은 알았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스냅사진의 한 장면으로 오해해서는 안될 부분이다.
계시록을 사진체의 사실주의로 읽지 말라!

4. 교리로 끌어 내기엔 위험한 책이 아닌가?
 3번 내용과 이어지는 내용으로 계시록은 함축적이고 시적이면서 간단한 문체(Simple sentence)로 기록되었기에 이 책으로부터 교리를 끌어 내는 것은 위험하다.
이 또한 묵시라는 특정한 장르 때문이기도 하다.

5. 재림 예수께 모든 악의 처리를 맡겨 버리는 것 아닌가?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세상의 악의 문제 고통의 문제는 끝이 난다. 
그 날을 간절히 소망하자는 식의 태도 안에는 
우리가 감당해야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재림은 반드시 있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저 피안의 세계에서 가현적으로 도래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고 맛보지 못하면서
종말에 그것을 갈망하는 것은 책임회피이다.
하나님 나라는 공의(법적인 정의)와 정의(신적인 친절)과 사랑의 가치가 다스리는 나라다. 가현적인 나라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가치가 다스려지는 곳,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다.
이를 위해 악의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악의 문제를 처리하고 공평과 정의 사랑이 실현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가 감당해야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책임이요 의무인 것이다.
재림 예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는 정말 나쁜 짓이다.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개인의 영혼 구원에 구원의 포커스가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뤄가는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Posted by speramus
묵상2011. 11. 9. 21:42
<롬 8:28 직역>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선을 향하여 함께 작용한다는 것을.

하나님은 그분이 가지고 계신 목적대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인간편에서는 그 목적을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때론 절망에 부닥치기도 하죠. 내가 원하는 길로 가지 못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원대로 되지 않을 때 점검해야 하는 것은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나는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이끌림 받고 있다는 것을 신뢰하는가?
이 두가지 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all-헬 panta) 선을 향하여 함께 작용합니다. (Work together)
하나도 예외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것이 선을 향하여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Posted by speramus
설교문2011. 11. 6. 12:39
여러분 좋은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뿌잉뿌잉! 우리 종암유치원 고딩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고딩 여러분의 진학상담선생님 김수능이예요. 우리 고딩 여러분 좋은 대학 가는 거 어렵지 않아요~~ !!! 좋은 대학에 가려면 일단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면 되요. 집은 강남의 대치동 근처나 노원의 중계동 또는 목동 근처에 있으면 더 좋아요. 종암동에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하냐구요? 걱정하지 말아요. 할아버지가 돈이 많으시면 되요. 그리고 아빠는 여러분의 공부에 무관심하면 되구요. 엄마는 정보에 무지하게 빠르신 분이면 되요. 그리고 어머니는 좋은 학원이면 어디든 날 데려다 줄 수 있는 그런 한가한 분이면 되요. 이 모든 것이 갖춰지지 않았다구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런 친구들은 노는 시간을 줄이면 되요. PC 방이나 노래방 놀이공원 등은 사전에서 아예 지우시면 되요. 학교 도서관 화장실 학교 도서관 화장실 이렇게 3년만 죽어라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어요. 그렇게 했는데도 성적이 안 올랐다구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건 여러분 탓이 아니예요. 여러분 부모님이 안 좋은 머리를 물려주셨기 때문이예요. 이런 친구들은 수능 한 방을 노리면 되요. 오엠알 카드 밀려 쓰는 법에 대해서는 민병준 친구의 노하우를 전수받으면 되요. 밀려 써서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는 대단한 학생이거든요.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능은 어려운 시험이 아니예요.
이 모든 것에도 자신이 없다구요? 걱정하지 말아요. 시간적인 여유만 있으면 되요. 올해 안되면 내년에 잘 보면 되구요. 내년에 못 보면 그 다음해에 잘 보면 되요. 그렇게 20년만 수능을 보잖아요? 20년 후에는 아마 수능이 사라지고 경로우대로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을 거니까요. 어때요. 좋은 대학 가는 것 어렵지 않죠? 이렇게 수능 잘 봐서 모두 모두 좋은 대학 가봐요!!

2. 하나님의 약속
이스라엘은 원래 사람의 이름인데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주셨어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이예요. 야곱은 천성적으로 좀 꼼수가 많은 사람이예요.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먼저 태어날라고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난 사람이죠. 야곱이라는 뜻은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장성해서는 형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으로 사버리기도 한 인물이죠. 결정적으로 장자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에서로 변장하여 자신의 아버지에게 받아낸 매우 치밀하면서도 꼼수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이 축복을 가로챈 사건으로 에서는 화가 폭발하고 동생을 잡아 죽이려 하였어요. 이것을 안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피신시키기에 이릅니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자신의 오빠가 있는 하란땅으로 가 있으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야곱이 자신의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며 하란으로 가는 노중에 생긴 일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길가에서 잠을 청하다 꿈을 꿉니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요. 아니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들었던 약속과 똑 같은 약속이었습니다. 14절 말씀이 바로 그 조상들에게 동일하게 했던 약속입니다. 14절 말씀을 읽어 볼까요?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결국 야곱을 통해 수없이 많은 자손들과 후손들이 나올 것이고 그 후손들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얻는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약속에 덧붙여서 한 가지를 더 약속합니다. 왜냐면 지금 야곱이 너무 떨고 있거든요. 야곱은 지금 형 에서가 언제라도 쫓아와 자기를 덮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쌓여 있구요. 자신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었어요. 마치 수능을 앞두고 있는 고3 친구들과 같은 상태라면 이해하기 쉬울까요? 불안에 떨고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에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형의 위협이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 이런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과연 나를 지지해 주고 계실까 였습니다. 내가 형을 속여 축복을 받아 내고 쫓기는 신세가 됐는데 과연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보실까? 안좋게 보시는 건 아닐까?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확실한 약속을 확증해 주십니다. 니가 비록 지금 쫓기는 신세지만 너를 통해 수없이 많은 자손이 생겨날거야. 즉 너는 살아서 결혼도 하고 잘 될거야 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니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지켜줄께~~ 그리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해줄게 라고 재차 약속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야곱은 꿈에서 깨어나 고백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이 분명히 여기 계시는데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3. 고3 쫄지마!!
고 3 친구 여러분 아까도 말했지만 야곱의 심정은 여러분들의 심정과 매우 흡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곧 시작될 전쟁터 앞에 포진돼 있는 병사들의 마음 갖겠죠. 두근 두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와야 할텐데 걱정에 걱정으로 가득차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심리상태를 좀 더 세밀하게 돋보기로 살펴볼까요? 여러분이 진짜 떠는 이유는 이 수능에 나의 인생이 달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수능 한 번 잘 보면 진짜 대박나는 거고. 수능 한 번 망치면 인생 쪽박 차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요? 쉽게 얘기해서 수능에 너무 큰 의미 부여를 한다는 것이죠. “아니 이것이 고등부를 지도하는 목사님이 하실 말씀이란 말입니까?” 지금 3년 동안 이 시험 한 번 잘보려고 준비해 온 저희 앞에서 수능에 너무 큰 의미를 두냐는 말이 뭔 말이랍니까?”

맞습니다. 수능 시험 정말 중요한 시험이죠. 하지만 수능 한 번에 인생이 아작나거나 그러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수능 한 번에 인생이 평탄해지는 것도 아니구요. 어찌 보면 수능시험이 우상이 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수능을 숭배하죠. 수능신이시여 나에게 강림하여 대박나게 해주세요. 이 엿 먹고 나좀 붙여주소서! 수능의 결과는 두 가지가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마음의 안정의 정도 플러스 둘째 나의 노력의 정도입니다. 후자의 것 즉 노력의 정도는 지금 남아 있는 3일동안에 어떻게 바꿔보기 힘듭니다. 지금 현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전자 즉 마음의 안정의 정도입니다. 얼마나 여유있게 시험지를 대하고 차분히 풀어내느냐가 관건인거죠. 이것은 닦달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수능 시험이 내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무거운 부담감이 나를 짖 눌러 버리고 마음의 평안을 잃어 버리죠. 오히려 수능시험도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오신 하나님이 이후 내 인생을 인도해 가시는 하나의 작은 도구이자 과정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확신이 여러분의 마음을 가볍게 하며, 그로 인해 지금까지 공부하고 살아왔던 모든 경험들을 수능 시험 가운데 충분히 표현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수능이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겠죠? 수능을 잘보고 못보고의 결과와 상관 없이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선하게 이끄신다는 겁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내가 너를 축복할게… 너를 통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축복을 받게 될거야. 너는 축복의 통로가 될거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잊지 말아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지켜줄거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수능의 결과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마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십시오.

여러분들은 수능이라는 문을 일단 통과하시고 나면 그 문을 통해 열리는 사회라는 곳에 발을 딛게 될 것입니다. 고등학교와 비교 안되는 더 치열한 무한 경쟁으로 뛰어들게 되는 겁니다. 그 무한경쟁의 본격적인 라운드가 시작되는 출발선상에 있는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던지는 하나님의 약속 없이는 도저히 그곳에서 살아 남기 힘듭니다. 오늘 혼자서 들판에 내동댕이쳐진 야곱의 상황과 너무 흡사하죠. 자신 앞에 어떤 삶이 펼쳐질지 너무나 두려워하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겁니다.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 바로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약속입니다. 내가 너를 축복한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을거야. “아~~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는구나” 야곱처럼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달으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수능 시험장에도 함께 하실거구요.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모든 삶 가운데 떠나지 않고 여러분과 동행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실 겁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고3 친구들. 쫄지마!!!

참고로 저는 수능을 세 번 망쳐본 사람입니다. 제가 수능 1세대인데요. 수능 첫해에는 여름과 가을 두 번 봤습니다. 두 번 다 망쳤어요. 그리고 재수를 했죠. 재수때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원 없이 놀았어요. 세번째 수능도 결과는 안 좋았어요. 정말 절망했어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더라구요. 지금 이렇게 여러분 앞에 당당히 있잖아요.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마세요. 우리 인생에서 한 큐라는 것은 없습니다. 한 큐 한 큐, 한 점 한 점이 모아져서 모자이크를 만들고 그 모자이크가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돼 가는 거랍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확실하게 약속해 주십니다. 내가 나의 뜻을 이룰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뜻은 수능 한 번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능은 하나의 도구요 과정이라는 생각에 너무 큰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수능을 통과하는 그 과정가운데에도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하시고 지켜주신다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에 임하십시오. 그리고 이제 깨달으십시오. 하나님이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기도하겠습니다.


“ 하나님 수능 시험을 앞 둔 고 3 수험생을 위해 특별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을 신실하게 인도해 오셨던 것 처럼 앞으로도 나의 삶을 떠나지 않고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게 도와주세요. 목요일에 있을 수능성적에 평안한 마음으로 안정감을 가지고 임하게 하시고 지금까지 준비하고 쌓아온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이 지금 이곳 뿐만 아니라 시험보는 수험장소에도 함께 하시며 이후에 내가 어딜 가든지 함께 동행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을 주님 손에 위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speramus
2011. 10. 2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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