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행복하십니까? 불행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자신이 왜 불행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자신이 왜 불행할까에 대해서 생각도 안해보고 불행하면 진짜 불행한겁니다! 내가
왜 불행한지 알고 불행해야하지 않겠어요? 전도사님이 고등부 전도사를 맡지 않았다면 고등학교를 회상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 고등부를 맡다 보니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많이 떠 올리곤 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저는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어두웠고, 가장 행복하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정말
가치 있는 사람이란 걸 몰랐던 것이었어요. 아무도 저에게 너는 가치 있는 사람이고 너는 정말 특별하고
멋져. 이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집에서도 그랬고, 교회에서도 그랬고 학교는 더더욱 그랬죠. 어딜 가나 비교와 경쟁이 있을 뿐이었죠.
비교는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사람을 한 없이 가치 없게 만들어 버리죠.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거예요. 토끼는 토끼끼리
경주해야지 거북이와 왜 경주를 하는 겁니까?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나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여러분 나름대로 너무나 유니크하고 가치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큰 비교 항목은 뭡니까? 성적이죠. 특히 이 잣대는 선생님들이 잘 꺼내드시죠. 성적 나쁜 놈들은 개패듯이
맞았습니다. 가치 없는 쓰레기 취급 당하죠. 고 2때 담임샘, 지난 번 시험과 비교해서 점수가 떨어지면 그날 복도에
일렬로 엎드려 받쳐였습니다. 아직도 복도에 길게 늘어 섰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생생합니다. 선생님은 도미노인 줄 알고 일렬로 엎드려 받쳐 있는 우리를 발로 차시죠. 이유는
하나입니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우리는 암암리에 성적이 정말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사람의 가치가 거기서 나온다고 세뇌를 받습니다. 성적 좋은 놈들 죄송합니다
감히 놈이라는 호칭을 붙였어요. 걔네들은 정말 가치 있고 필요한 존재들로 취급받습니다.
두 번째 큰 비교항목은
아마 외모일겁니다. 특별히 남자 친구들은 주일마다 전도사님의 수려한 외모를 보면서 좌절하리라 생각하는데
그러지 마세요. 외모 또한 서로가 비교할 꺼리가 못됩니다.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윤아, 누구 뭐 이런 애들이랑 비교를 합니까? 박지선, 신봉선, 오나미 같은 사람과 비교하면 행복해지 잖아. 농담이구요. 일단 비교하기 시작하면 인생은 불행해집니다.
비교하다라는 영어 단어는 Compare 입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 comparo에서 왔습니다. 원래는 ‘짝지어주다, 대등하게 하다’라는
뜻이예요. 원래는 대등하게 하려고 그 옆에 놓았고, 짝지어
주기 위해 옆에 놓았고, 친구가 되라고 옆에 놓았는데 인간의 습성상 비교가 자연스럽게 일어난거죠. 그래서 비교하다로 뜻으로 발전한거죠. Comparo의 끝의 O를 빼면 Compar가 되는데 친구라는 뜻이 됩니다. 재밌죠? 비교하다라는 말에서 o를
뺐더니 친구가 되버린겁니다. 이 O가 뭘까요? Others 다른 사람입니다. 다른사람과 나를 견주는 것을 빼버리니 그가 나에게 친구가 되버리는 것이죠.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를
진흙으로 비유하고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토기장이는 진흙으로 어떤 그릇을
만들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계획에 맞게 그릇을 빚습니다.
이사야 45:9절에 보면 이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대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라고 말하고 있어요.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말입니다! 생각하기를 우리가 서로 서로 비교하는
것이 이런 격일 것 같아요. 나의 외모를 보고 비교하는 것은 나를 만드신 분에게 “당신은 지금 무엇을 만드신 거죠?” “이것이 최선입니까?”라고 묻는 격이라는 거죠.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책을
좋아하고, 사색을 좋아하게 만드셨고, 어떤 사람은 놀기를
좋아하게 만드셨어요.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노는 것을 잘 개발해 보세요. 분명 여러분이 쓰임 받을 곳이 있을 겁니다. 각자 각자가 다른 용도와
다른 기능으로 만들어 졌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마스터 피쓰 즉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겁니다. 피카소가 그린 그림은 그것이 대생이 됐든 정물화가 됐든 추상화가 됐든 피카소의 작품이 되어
무한한 가치가 생겨버리는 겁니다. 우리의 가치는 성적이나 외모에서 나오지 않아요. 속지 마세요. 우리의 가치와 아름다움은 바로 우리를 지으신 분에게서
나온다는 겁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손가락질 하고 놀린대도, 신경쓰지 마세요. 여러분의 가치가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 고등학생들에게 있어
친구들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훨씬 영향력이 크다는 거 압니다. 여자 친구들 중에 영향력 있는 친구
한 명이 “야 쩨 저런 얘야 놀지마” 이 한 마디 하면 그
때부터 여러분은 왕 따 되는 거잖아요. 친구가 여러분에게 “야
너 못생겼어”이러면 여러분은 못생긴 사람이 되버리잖아요. 속지
마세요. 여러분의 가치는 친구의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도 한 고등학생 어머니가
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터놓으시더군요. 딸이 수학여행을 가지 않은 사이,
모든 친구들이 자신의 딸에게 험담하면서 딸이 그동안 친구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 꼬발리며 이간질을 했나봐요. 수학여행 후 친구들 열 명 정도가 이 친구를 둘러싸고 “니가 어떻게
나한테 글런 말을 할 수 있어” 하면서 이 친구를 몰아 세웠고. 이
따님은 그 이후에 학교를 못나가겠다고 하더라는 겁니다. 여자 여러분 왜 그러는 겁니까? 친구들의 말에 자신의 인생이 좌지 우지
되는 고등학생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나봐요. 여러분 우리들의 가치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결코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도종환 “모두가 장미일 필요는 없다”라는 글을 이제 읽어 드리겠습니다.
장미꽃은
누가 뭐래도 아름답다. 붉고 매끄러운 장미의 살결, 은은하게
적셔 오는 달디단 향기, 겉꽃잎과 속꽃잎이 서로 겹치면서 만들어 내는 매혹적인 자태. 장미는 가장 많이 사랑받는 꽃이면서도 제 스스로 지키는 기품이 있다.
그러나 모든 꽃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모든 꽃이 장미처럼 되려고 애를 쓰거나 장미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실망해서도 안 된다. 나는 내 빛깔과 향기와 내 모습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나는 장미로 태어나지 않고 코스모스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면 가녀린 내 꽃대에 어울리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장점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욕심부리지 않는 순한 내 빛깔을 개성으로 삼는 일이 먼저여야 한다. 남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내 모습, 내 연한 심성을 기다리며 찾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장미는 해마다 수없이 많은 꽃을 피우는데 나는 몇 해가 지나야 겨우 한 번 꽃을 피울까말까 하는 난초로 태어났을까 하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장미처럼 화사한 꽃을 지니지 못하지만 장미처럼 쉽게 지고 마는 꽃이 아니지 않는가. 나는 장미처럼 나를 지킬 가시 같은 것도 지니지 못했지만 연약하게 휘어지는 잎과 그 잎의 담백한 빛깔로 나를
지키지 않는가. 화려함은 없어도 변치 않는 마음이 있어 더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고 있지 않는가.
나는 도시의 사무실 세련된 탁자 위에 찬탄의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는 장미가 아니라 어느 산골 초라한 집 뜨락에서 봉숭아가 되어 비바람을
맞으며 피어 있을까 하고 자학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장미처럼 붉고 짙으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빛깔을 갖고 태어나지 못하고 별로 내세울 것 없는 붉은빛이나 연보랏빛의 촌스러운 얼굴빛을 갖고 태어났을까 하고 원망할 필요가 없다.
봉숭아인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빛깔을 자기 몸 속에 함께 지니고 싶어 내 꽃잎을 자기 손가락에 붉게 물들여 지니려 하지 않는가. 자기 손가락을 내 빛깔로 물들여 놓고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할 만큼 장미는 사랑받고 있을까. 장미의 빛깔은 아름다우나 바라보기에 좋은 아름다움이지 봉숭아처럼 꽃과 내가 하나 되도록 품어 주는 아름다움은
아니지 않는가.
장미는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시기심도 생기고 그가 장미처럼 태어났다는 걸 생각하면
은근히 질투심도 생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나는
나대로, 내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산국화이어도 좋고 나리꽃이어도 좋은 것이다. 아니 달맞이꽃이면 또 어떤가.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그 흔하디 흔한 말을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아니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는 정말 가치있는 사람이야” 우리
옆에 있는 친구에게 고백해 줍시다. “넌 정말 가치있는 사람이야” “너의
가치는 성적이나 외모에 있지 않아!”라고 얘기해주세요.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나름대로 너무나 가치있는 사람입니다. 진흙 같은 우리를 세상의 최고의 작가이신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