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11. 5. 7. 19:52
첫 어버이날이다.

내가 아빠가 된 후 맞는 첫 어버이 날이란 얘기다.
물론 선율이는 이 날이 어버이 날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한 돌도 안된 녀석이다.
하지만 부모로서 이 날을 기념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한다.
아가를 키운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얼마나 많은 수고로 나와 형제들을 키웠을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선율이를 키운 1년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많은 시간과 재정을 이 아이를 위해 쏟아 붓고 희생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희생하기로 결정한다는 것인거 같다.
부모란 말에는 희생이 99% 첨가 되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처음 맞는 어버이날을 기념하기에는 내 어버이로부터 받아 누린 것들이 너무나 많다.
다 갚을 수 없는 그 은혜를 주신 부모님의 그 큰 희생에 감사하며 나 또한 그 깊은 사랑을 내 아이에게 쏟아붓기를 작정해 본다.
그 희생에 대한 다짐이 이번 첫 어버이 날의 가장 큰 기념품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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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11. 5. 5. 10:22
어린이날이다!!

어린이 날, 아내는 목사고시보러 갔고, 나는 집에서 울 선율이랑 함께 뒹굴고 있다.

선율이를 재우려고 아가를 업고 집주위를 거닐다 문득 옛적 초등학교시절 어린이 날이 떠올랐다.

어린이 날은 불평하는 날이었다.

쉬는 날이니 부모님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우리 형제들을 모두 데리고 밭으로 나가셨다.

어린이 날에 이게 뭐하는 거냐고 밭 한 가운데서 돌파매질 하며 불평을 쏟아 부었다.

아이스크림 하나 없었던 어린이 날이 어린 나에게는 너무 슬픈 날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면, 농협 상무 아들이었던 아무개는 아빠랑 야구장에 갔다왔다고 자랑하고

식당집 아무개는 광주의 사직 공원에 있는 동물원에 갔다왔다고 자랑한다.

나느? 할말 없다. 그냥 씁쓸했다.

5월은 왜 이리 쉬는 날이 많냐며 불평하던 옛적

그 시절이 그리운건 왜 일까?

그 부모님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겠지?

사흘 후인 어버이 날, 아무것도 해드린 것 없는 부끄러운 어린 시절의 어버이날.

올해는 부끄럽지 않게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지...

어린이날 회상이 어버이날 다짐으로 마무리 되는구나 ㅎㅎ

Posted by speramus
카테고리 없음2011. 4. 28. 17:46



지난 주 종욱이 형과 함께 남양주 조안면에 있는 카페 고당에 다녀왔습니다.

고풍스러운 조선풍의 가옥에 커피전문점을 만들어 놓았더군요.

주차장도 마당식으로 넓직하게 돼있고...

무엇보다 커피향이 정말 좋더군요.

바리스타 선생님이 수준급이신가봐요.



입구에 들어가면 오늘의 추천커피가 있습니다.

바리스타가 며칠 걸려 만들어 놓은 향기 좋은 커피가 오늘의 추천 커피로 올라온다는군요.

우리가 갈 때는 브라질이란 커피더군요.



마당에 이렇게 야외 객석도 마련 돼 있죠.



처마 사진 한 컷^^



따로 홀이 없고 각자 각자에게 이런 방 하나가 주어집니다.



정감 넘치죠?? 스터디도 가능하고 낮잠도 누워서 자기도 하고...

주말에는 3시간으로 제한을 둔다고 하더군요.



인증샷^^

서울에서 차로 삼사십분만 가면 있는 향기로운 커피 한 잔으로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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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2011. 4. 25. 08:15
어제 같은 교회 계시는 유현숙 전도사님을 통해 애니어 그램 테스트를 했다.

전도사님은 상담전공을 하셨고 매우 뛰어나신 분이시다.

예전에 얼핏 9가지 유형에 대해 어떤 교수님께 강의를 듣긴했지만 내가 몇 번 유형인지 파악이 안됐었다.

검사결과 나는 7번 유형에 6번 날개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판명됐다.

7번
낙천적이고 명랑하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유형이다. 자기도취적인 면이 다소 있으며 언제나 쾌락과 재미를 추구한다. 무언가에 도전하기를 좋아해서 남다른 재능이 많다. 아이디어가 많지만 그 아이디어의 질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의 근본적인 두려움은 고통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신이 고통받지 않고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어떤 일에서든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낙천가', 혹은 '만능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7번 유형의 장점 : 항상 남들을 즐겁게 해 준다. 자신감과 자주성이 강하다. 상상력과 호기심이 많다. 건설적이고 변화를 추구한다. 다재다능하다.


7번 유형의 단점 : 지나치게 자기도취적이고 충동적이다. 한가지에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 낙관주의가 과장되어 있다. 깊은 인간관계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열광적인 상태에 빠진다. 고통에 대한 공포가 지나치게 심하다. 
 


정확한 거 같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해피( happy)를 위해 고통을 회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냥 피상적인 즐거움만 찾아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궁극적인 즐거움이나 행복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유형은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고 관계에 있어서도 어려운 상대들은 회피하려는 특징이 있다.

어려움들과 고통을 직면(confrontation)해야 한다고 한다.

또 한가지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한 가지에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는 특징이다.

그래서 이것 저것 일을 벌여 놓는다. 끝마무리를 잘 짖지 못한다.

이건 ENFP의 특징과 흡사한 특징이구나.

역시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어떻게 이렇게 나를 잘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신기하다.

놀라운 것은 어제 이 검사가 끝난 후 오늘 아침 묵상 말씀이다.


<야고보서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회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7번유형에게 있어 인내란 중요한 훈련요소중 하나인 거 같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묵상에 하나님이 이걸 나에게 들이미시는 것이다. 꽈당!!!!

일례로 논문의 예를 들어 보자.

요즘 나는 논문때문에 죽을 맛이다.

논문을 쓰는 것을 버거워하고 있고, 가만히 앉아서 연구하는 것을 너무나 힘들어 한다.

여러 사람들 만나고, 여러 가지 벌여 논 일들을 처리하고.... 그러면서 정작 논문에는 집중하지 못한다.

7번 유형은 고통에 대한 공포가 너무 강해서 염려가 깊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요즘은 내가 이 논문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을까? 걱정에 걱정, 염려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고 극복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주님께서 이런 나에게 야고보서 1장 5절의 이어지는 말씀을 주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시리라"

아멘 하나님의 지혜로 논문 뿐만 아니라 더 어려운 시험들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 삶에 신실하고 세밀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의 유형이 무엇인지 나는 도저희 파악이 안된다는 것이다.

아직 내가 아내를 잘 모르나 보다. 

이건 좀 그렇다.

우리 아내가 독특해서인가? 아니면 내가 무관심하고 성찰이 없어서인가?

7번 유형의 약점 중 하나가 내면 성찰이 없다는 것이라는데.... ㅎㅎ









Posted by speramus
일기2011. 4. 22. 11:23
내 삶을 향한 모든 주권을 다시 한 번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내 놓습니다.

내가 그렸던 내 삶을 향한 모든 청사진을 다 내려 놓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얀 도화지 한 장을 하나님께 내밉니다.

제 삶을 하나님 뜻에 따라 그리십시오.

하나님 쓰시고 싶으신대로 쓰십시오.

저의 모든 의지, 저의 모든 생각, 저의 모든 계획을 다 아버지 앞에 내려 놓습니다!

주님 뜻을 구하며 나아갑니다.

주님이 지시기를 원하시는 십자가, 그것이 무엇이든 지고 가겠습니다!!

주님 나를 다스려 주십시오.

오직 성령에 매여 살기를 원합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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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eramus
묵상2011. 4. 22. 08:47
더욱이 (집) 관리자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충성된 사람으로(faithfu)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고전 4:2)

집을 맡은 사람(oikonomos-집관리인, 청지기로 번역) 에게 요구 되어지는 것은 신실함입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충성으로 번역되어 있죠.

헬라어 성경에서는 pistos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피스토스는 믿음이지요. 믿음직해야 하며 변함없이 꾸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직자의 길을 가는 저에게 하나님이 오늘 아침에 주신 말씀입니다.

변함없이 신실해야한다. 충성스러워야 한다.

직분을 주신다는 것은 사명을 주신다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사명이 있기에 직분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집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집과 식솔들을 주시듯....

성직의 길을 걷는 저에게는 수많은 양떼 들을 맡겨주실것이며 주님의 몸인 교회를 맡기시겠지요.

저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신실함이며 꾸준함이라 믿습니다.

충성은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 안에 이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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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과 작품들2011. 4. 19. 20:32
인터넷 기사를 읽다 잠시 눈물나게 하는 기사가 있어 스크랩 해 옵니다.
원문은 아래에 긁어 왔고, 링크주소는 다음과 같죠^^
http://m.kyeongin.com/articleView.html?idxno=521242

▲ 김이환 (이영미술관장) [경인일보=]벌써 한 해의 허리에 접어드는 초여름이 다가들고 있다. 유난히 변덕이 심한 날씨여서 개나리, 벚꽃, 목련이 앞뒤 없이 피고지더니 어느새 모란도 꽃잎을 뚝뚝 떨어뜨렸다. 고개들어 미술관 주변 산을 둘러보면 온 산자락에 흰 아카시아 꽃잎이 눈송이처럼 날리고 있다. 봄이 떠난 것이다. 이런 초여름 아침 나절 몸에 밴 습관대로 일주일치 신문을 정리하다가 '法情에 울어버린 소녀犯'이란 5월17일자 ㅈ신문의 기사가 눈에 띄어 단숨에 읽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건 이런 것일까? 아카시아꽃 향기를 먹먹한 가슴 깊숙이 들여마셔 보았다. 그날 따라 아카시아 향기에는 전에 없이 신선함이 가득했다.

내 심금을 울린 그 기사를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 4월초 서초동 법원 청사 소년 법정은 감동의 눈물에 젖었다. 서울 도심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 등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피고인석에 앉은 A(16)양에게 서울가정법원 김귀옥(47) 부장판사가 내린 특별한 처분 때문이었다. 김 판사는 법적으로는 아무 처분을 하지않는 불처분 결정을 내리는 한편 피고로 하여금 '법정에서 일어나 외치기'라는 특별한 처분을 내렸다고 한다. A양은 작년 가을부터 14건의 절도 폭행을 저질러 이미 한 차례 소년법정에 섰던 전력조차 있었다. 법대로라면 소년보호시설 감호 위탁같은 무거운 보호 처분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김 판사가 과감히 불처분 결정을 내린 연유는 무엇일까? A양은 작년 초까지만 해도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면서 간호사를 꿈꾸던 발랄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남학생 여러 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면서 삶이 바뀌었다. 그 후유증으로 병원 치료도 받았고 죄책감에 시달려 학교에서 겉돌면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말했다.

"이 아이는 가해자로 재판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쉽사리 말하겠어요? 아이의 잘못이 있다면 자존감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려야지요." 그러면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렴. 자, 날 따라서 힘차게 외쳐 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A양에게 따뜻하게 말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A양이 나직하게 "나는 세상에서…"라며 입을 뗐다. 그리고 판사를 따라 점점 더 크게 외쳤다. A양은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고 외칠 때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법정에 있던 A양의 어머니도 울었고 재판 진행을 돕던 참여관도, 법정 경위의 눈시울도 젖었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얼마 전 이 '금요산책'란에도 소개했던 미국의 라과디아 판사가 떠올랐다. 대공황으로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1930년대 뉴욕의 치안법정에서 라과디아 판사가 빵을 훔친 한 가난한 할머니에게 내렸던 감동적인 판결을 기억하시는지?

"법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죄를 지었으면 벌금을 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가난으로 굶주리는 어린 손녀들을 먹이기 위해 늙은 할머니가 빵을 훔쳐야 하는 이 비정한 도시의 시민에게도 죄가 있습니다. 그동안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온 저에게 벌금 10달러를 선고합니다. 할머니의 벌금을 대신 내겠습니다. 그리고 이 법정의 뉴욕 시민 여러분에게도 각기 50센트씩을 선고합니다."

김귀옥 부장판사의 '대처분'과 라과디아 판사의 판결은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깊고 크다. 법과 법조인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더할 수 없이 깊은 우리 사회에 이런 명판결이 더 많이, 더 자주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러려면 법을 다루는 분들의 사람에 대한 애정과 고뇌가 더 깊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부디 A양이 모성의 판결을 한 김 부장판사의 '대처분'대로 자존감을 회복하여 건실한 숙녀로 성장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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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eramus
묵상2011. 4. 18. 15:39
<사도행전 20:22-24>
그런데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투옥과 환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주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나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어제 고등부 교사 선생님들과 함께 메시지 성경읽기 시간에 읽었던 본문 말씀입니다.

성령께 사로잡혀 그의 앞길을 인도함을 받은 바울을 봅니다.

나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가는 비결은 성령님께 사로잡히는 것 뿐입니다.

사로잡히다는 헬라어 동사 deomai 는 "묶다. 달라붙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수동태로 쓰여 있다.

성령님에 의해 묶여 있는 상태, 성령님께 달라 붙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성령님은 그에게 예루살렘에 가야할 것을 수 차례 얘기 하신 것 같다.

여러 고을에서 그에게 일러주셨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한다. 거기서 바울이 핍박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주예수께 받은 사명(diakonos-직무, 섬김, 사역, 써비스)의 소중함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 사명을 이루는 과정을 경주(race)로 비유한다.

사명의 경주를 마치기 위해서는 나의 목숨도 아까워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 말씀을 읽으며 나의 심장 또한 뛴다.

나는 예루살렘에 대해 몇 해 전부터 기도해 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예루살렘에서 공부를 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올해 들어 하나님께서 단순히 예루살렘에서 공부만을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나를 부르신다는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선교사로 그 땅을 밟고 싶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통해 나의 그런 생각들을 지지해 주신다는 확신이 든다.

아전인수 격의 해석이라면 하나님이 고쳐주시리라 기도한다.

계속해서 말씀으로 나의 달려갈 길을 인도해주시길 주님께 기도한다.

오늘도 나는 성령님께 사로잡힌 바 되도록, 그분께 붙어 있기를 위해 노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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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과 작품들2011. 4. 16. 00:21



샤갈의 그림 "하얀 십자가 " 이다.

아기를 안고 도망가는 여인, 불타는 집들, 군인들에게 쫓기는 자들, 배를 타고 피신하는 사람들

모두가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들이다.

그 한 가운데 십자가는 묵묵히 서 있다.

십자가의 세로 막대는 하늘을 향해 열려 있고,

야곱의 사닥다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늘로 연결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결백한 하얀 죽음을 통해

하늘을 향하는 문이 활짝 열린것이다.

절망 가운데 유일한 희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다리,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다.

십자가, 십자가, 그 그늘 아래 내 소망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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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2011. 4. 15. 08:24
<신명기 18:22> 히브리성경 직역

예언자가 야웨의 이름으로 말을 하였지만 그 일이 되어지지 않거나 일어나지 않으면 야웨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 예언자가 추측하여 말한 것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참 목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표지는 무엇인가?

오늘 말씀에서는 예언자가 말한 그 일이 일어나는지 안 일어나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고 일러주고 있다.

목사나 전도사가 설교한 내용, 조언한 내용이 양무리들의 삶가운데 일어나지 않거나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라면 그는 참 목자, 참 선지자가 아닌 것이다.

자신의 추측대로 임의로 말하는 것을 절대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대로 대언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거야! 아마 그렇게 될걸' 이런 식의 전달 또한 문제가 된다

참 선지자는 확신 가운데 전해야 한다.

"~입니다. ~게 됩니다. 확신하십시오" 강한 어조와 확신 가운데 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들은 일어나야 한다.

아니 그 말씀이 하나님 입으로부터 온 말씀이라면 일어나는 게 상식이다.

요컨대 참 선지자는 자신의 추측이 아닌 하나님 음성에 귀 기울이고 들은 내용을 확신가운데 전하는 것이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