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과 작품들2011. 7. 7. 07:52
<퍼온 글입니다.>
성경본문이 한 편의 설교가 되기 위해서는 주석(exegesis)과 해석(interpretation)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서 주석은 본문이 말하는 의미를 끌어내는 것이고, 해석은 그것을 오늘 우리를 위한 메시지가 되게 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 우리와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다른 문제들과 씨름하던 사람들을 위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문제에 직답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 오늘 우리의 질문에 답하게 하는 해석 과정이 필요하다.

 

성경과 우리의 간격은 복음서에서 더욱 크다. 복음서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가르쳐주지만, 청중은 그보다 예수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매 주일 누가복음을 강해하고 있는데, 주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청중의 필요에 부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주석을 통해 나온 의미가 오늘의 청중에게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그것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 지 난감한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설교자들이 주석을 사실상 포기하고 어휘나 개념 하나만 잡은 후 바로 해석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같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아직 초보자임을 기억한다. 초보자일수록 결과('은혜로운' 설교)에 집착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그 기본이란 설교를 성경 본문의 토대 위에 세우는 것이다. 본문이 청중의 필요로부터 멀리 있을지라도, 주석을 포기하거나 거리가 없는 듯 본문을 왜곡하여 성급히 선포로 넘어가지 않고, 그 간격을 인식하며 해석의 씨름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런 씨름 속에서 나는 설교가 신학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재확인한다.


Posted by speramus
묵상2011. 7. 6. 07:23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시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시편 40:1-2)



아침에 시편 40편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차를 정립회관에 댔는데 공교롭게 차가 하수구 수령에 빠진겁니다.
하수구위를 덮어 두었던 쇠덮개가 바퀴 두 개 들어갈 정도로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죠.
주위를 찾다 맥가이버 정신이 갑자기 발동하면서
통나무를 주어와 바퀴 밑에다 대고는 그 구멍에서 겨우 나올 수 있었습니다.
역시 나는 천재성이 있어 움하하하^^ 


밤에 하루를 반추하며 아침 묵상말씀과 차바퀴가 수렁에 빠졌다 나온게 오버랩되면서.... 하나님이 말씀과 상황으로 말씀하심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부르짖어 온 제목들에 응답하시고 깊은 좌절감과 실패감의 수렁에서 나를 건져주실 하나님. 그 분께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건지시는 분이시고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나를 견고하게 세워가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나님^^ 

제가 기도했던 제목중 큼지막한 것은
1. 적당한 세입자가 들어와 집이 빨리 나가는 것.
2. 진로가 잘 결정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곳에 서는 것

뭐 이정도입니다! 
Posted by speramus
묵상2011. 7. 6. 07:13

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신명기 20:5)



신명기 말씀 중 본문은 전쟁에 나갈때 제외시켜야할 대상을 언급하며 등장하는 구절이다.
새 집을 지어 놓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사람
여자와 약혼하고 결혼하지 못한 사람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사람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자
이런 사람들은 전쟁터로 보내지 마라는 것이다.
새 집을 즐기고, 포도원의 소실을 즐기고, 새 아내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내 진로를 결정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루트는 많다.
그 중 하나는 환경을 통해 상황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내 솔직한 심정은 내년에 한국을 떠나는 것이다.
어떤 선교지든 빨리 나가서 정착하고 적응하고 싶은 것이다.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다.
어떤 것을 결정할까를 고민하던 중
문득 이 말씀을 보았다.

이번 달 아니면 다음 달에 우리 집은 새로운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된다. 오래된 집이면 모르는데 처음 지은 새집니다.
내년 초에 나가면 새 집에서 1년도 못살고 그냥 나가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집을 주신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대해석일지는 모르지만 1년 넘게 새 집과 여러 환경을 즐기라는 하나님의 뜻이지 않나 싶다.
이 집을 주심으로 한국에서 내가 해야할 훈련이나 업무가 더 있다는 것을 말씀하려는 뜻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기다린다.



Posted by speramus
묵상2011. 7. 6. 07:04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에스겔 2:7)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말을 상대방이 경청하기를 원한다.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한 존중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부르시며 그에게 신신당부하신다.
"너는 패역한 족속들에게 가서 내 말을 전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을 그들에게 고하라."

주일에 한 선생님이 오시지 않아서 2학년 한 반을 맡아서 공과시간을 가졌다. 설교내용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세 친구중 한 명도 대답하는 친구가 없고, 그냥 관심 없으니 빨리 끝내라는 태도다.
실망이 컸다. 내 설교가 어려운건가? 이들에게 흥미를 줄 수 없는 설교라서 그런가? 그들이 관심있는 꺼리들 주제들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여러 생각이 들면서 자괴감마저 들었다.

오늘 주님께서 이 말씀으로 격려하신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을 전하라.
듣는 사람도 있고 안 듣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에스겔같은 훌륭한 선지자가 말을 전해도 그렇다는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주님 주님 주신 마음 그들에게 잘 전할게요^^




Posted by speramus
카테고리 없음2011. 7. 5. 16:29
2011. 07. 04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에 있는 "도시너머"

우리 가족들이 간 근교의 분위기 좋은 식당. 도시너머를 소개합니다.
서울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있구요. 중곡동 저희 집에서는 40분 정도 걸리더군요.



입구는 요렇게 생겼구요!



나무가 많고 우거져 있어 들어가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야외에서 식사할 수 있는 공간도 있구요!!



산채 비빔빕과 황태구이를 먹었는데 반찬도 잘 나오고 맛도 있는 편입니다. 가격은 1만원 후덜덜^^



아!! 행복하다 ^^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11. 7. 4. 21:56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1. 6. 30. 17:16
성주와는 2001년부터 알아온 사이다.
시립대를 다녔던 성주는 제대 후에 전대 예수전도단 예배에 나오면서 나와 친분이 생겼다.
지적이고, 구도자로서 늘 진리에 갈급해 하는 성주와의 만남은 늘 나를 신선하게 만든다.

오늘 성주와의 만남을 통해 깨달은 것은....

1. carrier를 버려라
이건 성주의 꿈에 나온 내용인데 성주가 꿈에서 자기가 케리어에 무엇을 잔뜩 실고 가고 있는데 캐리어를 잃어 버렸단다 다시 타고 있던 차를 타려고 하니 케리어가 없이는 탈 수 없었단다.
그 캐리어는 다른 의미로 경력도 될 수 있다. 경력을 포기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단다.
자신의 지식을 위해 더 배우고 쌓으려했던 모든 지식을 포기할 때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었다는 깨달음이었단다.
나에게도 그 깨달음이 온다.
더 배우고 더 알고, 더 가추려는 마음은 아마 나의 욕심일 수도 있다.

2. 중립적인 입장에서 결정하고 선택하라.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 그것을 갖지 않고, 그것을 포기해도 된다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중립적인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중립적인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객관적인 결정을 할 수 없게된다.


예를 들면 선교사로 가는 것과, 공부를 하여 선생님이 되는 것 둘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둘을 모두 선택하지 않고 안하게 되더라도 평안할 수 있어야 객관적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나의 마음은 여러가지를 선택하는데서 오는 혼란스러움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모든 것을 선택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잘 되어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초월의 마음이 올바른 서낵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삶에 깊이 적용해 봐야 겠다.



끝으로 사랑하는 성주의 사진을 올려 봅니다.

 흰 머리가 많이 늘었네 ....
좋은 사람 만나서 잘 결혼 하길 바란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1. 6. 27. 23:53

평택이와 베드로형의 주선으로 2011년 6월 27일 박동현 선생님과의 만남이 성사됐다.
-시간 : 오후 5시
-장소 : 세븐스프링스 광나루점
-인원 : 박동현 선생님, 오평택, 오베드로, 김경헌

느낀 바들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1. 아내와 함께 나아갈 바를 상의하라.

결혼 하기 전에는 자기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갔을지 모르나 결혼하면 그렇지 않다. 둘 중에 누군가의 비전은 희생당해야 한다. 특히 신학교 출신끼리 만나면 둘 다 포기하기 싫어 한다. 서로 맞추기가 힘들다. 그래서 둘이서 함께 상의하고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2. 사역자는 소명의 자리에 있어야 하며, 양들을 돌보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사역자는 부르심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사역과 원하는 야망을 위해 교회와 성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양들이 있기에 목자가 필요한 것이지, 목자를 위해 양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양들을 위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양들의 상태를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3. 설교에 감동을 받는 것은 설교자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때 가능한 것이다.

교수님께서 가장 감동된 설교는 공고출신의 전도사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마음으로 전달한 설교였다. 설교학적으로 잘 짜여지고, 잘 갖춰진 설교가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다. 설교자의 삶을 향한 회중들의 신뢰가 있을 때, 설교는 은혜가 된다. 팥으로 매주를 쑨다해도 믿을 정도로 설교자의 삶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4. 한 사람만이라도 제대로된 제자를 길러내면 된다.

사역자들이 너무나 많은 열매를 단기간에 보려고 한다.
허드슨 테일러는 그당시 실패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를 통해 중국 선교의 문이 열리고 그 이후에 믿음선교의 영향력이 전해졌다.
예수님께서도 여러 사람을 길러낸 것이 아니다. 11사람이었다. 그들을 통해 복음은 멀티플라이 된 것이다.
고등부 사역에 실패했다는 실패감이 든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를 통해 한 명이라도 제대로 세워진 아이가 길러진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칭찬 받을 일인 것이다.

5. 열정이란 내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이다.

안수받는다는 것은 내 뜻을 내려 놓고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것이다. 내가 억제할 수 없는 인도하심으로 이끌림을 받는 것이다. 나는 하려고 하지 않는데 어쩔 수 없는 이끄심에 끌려 가는 것이다.

내 열심이 아니라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부르심에응답하는 것이다.
나는 안할려고 하는데 하게 되는 것이 소명이다
내 안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렘20:2
바깥에서 들어온 열심이다.
눅24장
이 또한 바깥에서 들어온 열심이다.
소명이란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이다.
이 사람이 아니고서는 안될 것이 소명이다.
신대원을 했다고 목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확한 이끄심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가야할 길인가?? 주님은 나를 목사로 부르는 것인가?

7. 공부로 삶을 소진하지 말고 일을 하는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30대는 일해야할 나이다. 일해야할 때, 공부로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가족들은 많은 희생을 요구당한다.
공부보다 일할 수 있는 곳 사역할 수 있는 곳에 있기를 바란다.
특히 이 부분이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내가 공부하려고 하는 이 모든 것이 나의 욕심은 아닌가?
공부는 여기까지가 적당한 것이 아닌가?


오늘 교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대화를 통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했던 그 경험을 한 것 같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위로받고, 세움 받고, 다시 달려갈 힘을 얻게 되었다. 또한 사명자로 살아가는 것은 철저히 자신을 죽이고 예수그리스도만 나타나도록 살아가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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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eramus
2011. 6. 2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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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2011. 6. 23. 22:34
하나님의 나라가 추구하는 원리는 풍요와 번영보다는 공평과 정의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공평과 정의보다 풍요와 번영을 외칩니다.
 

나만 풍요롭고 번영할 때 누군가는 나의 풍요와 번영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부와 기회와 가치는 공평하게 나눠져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정의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교회가 추구해야할 바일 것이구요.
 

성경의 가치는 더 가지라가 아니라 더 나누라입니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