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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5.31 조이 드디어 나오나???
- 2010.05.15 영광을 돌리는 것, response 하는 것.
- 2010.05.07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개나리를 심으리~~
- 2010.04.29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말하고 있습니까?
- 2010.04.28 내가 공부를 못할 수밖에 없는 이유
- 2010.04.28 옳은 것을 선택한 자 치열한 싸움이 있으리라!!
- 2010.04.09 다다익선(多多益善) 1
- 2010.04.07 그대를 사랑하기에
- 2010.04.05 죽은 사람도 그러는데.... 산 사람은.... 2
- 2010.03.24 작명 (作名) 3
일기2010. 5. 31. 07:42
묵상2010. 5. 15. 00:05
누가복음 17: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오늘 말씀에서는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는 것이라 합니다.
사람들은 이기적입니다.
예수님께 구할 때는 언제고, 자신이 구한 것을 들어준 후에는 예수님은 잊어버리기 일수 입니다.
이걸 잘 설명해주는 속담이 바로 '뒷간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오늘 말씀을 따라 도식화를 해 보겠습니다.
10명의 문둥병자들은 모두 간절했습니다. 율법에 따라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가까이도 가지 못하고
먼 발치에서 예수님께 간절히 구합니다. '깨끗케 해달라구요.'
그냥 민둥민둥 서서 구했을까요? 엎드렸겠죠?
그런 후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낫게 해주시지도 않고 율법에 따라 제사장에게 보이라 하십니다.
그 문둥병자들은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낫는다는 믿음이죠.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누구도 댓구를 달지 않고 문둥병 걸린 그 상태로 뒤돌아 제사장에게 향한 것이죠.
그리고 그들의 병은 도중에 나아 버립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예수님께 돌아와 반응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는 거죠.
기도 (엎드림) ---- 믿음 ---- 돌아와 반응(다시 엎드림)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기도만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나은이는 기도 후에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거기에서 끝나면 안됩니다. 자신이 기도한 것을 믿음으로 얻게 됐다면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문둥병 걸린 자가 처음 낫게 해달라고 엎드려 기도한 자리로 다시 나아가 또 다시 엎드렸던 것 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 엎드림은 구함의 엎드림이 아니라.... 예수님께 감사하는 감사의 엎드림이며 자신을 낮추는 엎드림입니다.
Response 즉 반응하는 것이죠.
신앙은 구하고 받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구하고 받은 후 반응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기도하고 믿고 받은 후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엎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 글을 쓰고 보니 너무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ㅠㅠ
일기2010. 5. 7. 14:09
어버이날이 주말에 걸려 있어서 어린이 날에 미리 양평의 장인 장모님을 뵈러 왔습니다.
장인 어르신은 교회 수양관 관리 장로님으로 2년 전부터 양평에 살고 계십니다.
이곳은 전남 함평의 저희 집보다 산골에 있는 마을입니다.
차소리 기계음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참 자연 속에 파 묻힐 수 있는 곳이죠.
저는 이곳을 참 좋아합니다. 고향에 온 것 같기 때문이겠지요.
새벽에 빗소리에 눈을 뜹니다.
대지를 적시는 이 시원한 소리가 제 마음까지 적시고 있습니다.
우산을 하나 집어 들고 산쪽으로 향하는데....
부지런하신 아버님이 산 밑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다.
처음엔 풀을 뽑으시나 싶었는데, 가까이 가 보니 한 움큼 쥐고 계시 나뭇가지를 땅에 심고 계시는 거였습니다.
개나리를 어디서 꺽어 오셨는지 수양관 곳곳에 심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아버님 하시는 말 "이 개나리가 5년 후에는 꽤나 커서 볼만 할거야"
"철쭉도 5만원어치 사 와서 수양관 곳곳에 심어 놨네"
사비를 터셔서 수양관 곳곳에 철쭉을 심으시고 개나리는 다른 곳에서 꺽어 오셔서 심으셨군요.
아버님은 3년 뒤 이곳에서 은퇴하시면 개나리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못 보시겠죠.
그래도 아버님은 오늘 개나리를 심으십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수고와 씨뿌림을 그냥 누릴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기쁨을 위해 씨뿌리거나 심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 열매를 내가 따먹지 못한다면 늘 망설입니다.
나 자신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님을 늘 고백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뿌린 씨앗, 내가 심은 나무의 열매를 나 혼자 따먹겠다고 하면 그것이 무슨 영향력이 있을까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따먹을 것을 생각하며 나는 오늘 사과 나무를 심겠습니다.
아버님을 통해 내 삶의 부르심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하는 아침입니다.
묵상2010. 4. 29. 08:37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역대하 18장 13절)
아합과 여호사밧은 동맹을 맺고 아람 정벌의 맹약을 맺는다.
아합과 여호사밧은 뭔가 찜찜한 게 있었는지
400명의 선지자들을 불러 이 전쟁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400명 모두는 한결같이 하나님이 정하신 싸움이니 올라가 승리를 취하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안했는지 아합은 미가야라는 선지자에게 최종확인을 받고자 한다.
미가야는 아합에게 늘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던 선지자이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확인하려 한다.
이런 맥락에서 미가야는 한 나라의 왕에게 위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예언자라면 선지자라면, 오늘날로 말해서 설교자라면 이 미가야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말해야 한다.
비록 그가 왕일지라도 대통령일지라도 상관없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전하는 것이 예언자이며설교자이다.
얼마나 많은 설교들이 목사 개인의 뜻, 자기의 생각, 교훈을 전하기 일색인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만 말하는 것, 그것이 예언자의 영성이다.
주님 오늘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소서~~
주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깨달은 바대로, 말씀하신 바 대로 전하게 하소서.
그 말씀이 쓴 말씀이든 단 말씀이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곤고한 자들이 도움을 얻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일기2010. 4. 28. 21:30
1. 산만하다.
2. 생각이 많다.
3. 호기심이 많다.
4. 엉덩이가 가볍다.
5. 책을 부담스러워 한다. (책에 블랙홀이 있다. 책 읽다 이상한 세계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 절망)
6. 사고를 싫어한다. (이거 고치려고 무지 노력하고 있음)
7. 유혹을 이길 힘이 부족하다. (의지력 박약이라는 표현과 같겠군)
8. 사람에 관심이 많다. (도서관에서도 두리번 두리번)
9. 집중력이 부족하다. (산만하다와 같겠군)
10. 여러 가지 일을 벌여 놓는다. (이거 했다 저거 했다.)
11. 기도하며 공부하지 않는다. (니 힘으로 할려고 하니 되냐??)
12. 지가 공부 잘하는 줄 안다.
13. 공부 잘하는 사람은 자기가 공부 잘하는 지 못하는 지에도 관심이 없다. 그냥 공부가 좋은 거다.
난 아니다. 내가 어느 정도 그레이드인지 항상 궁금해 한다.
14. 파고 들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15. 목표 없이 공부하는 경향이 많다.
대충 내가 공부 못하는 이유를 생각나는대로 적어 본다.
이것들 해결 못하는 한, 나는 공부를 내려 놔야 할듯....ㅎㅎㅎ 쓴 웃음만 나온다.
나도 공부 잘하고 싶다. ^^
묵상2010. 4. 28. 14:28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12:51-52, 56-57)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12:51-52, 56-57)
예수님께서는 이미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상태였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이 받으실 세례가 아직 더 있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그 세례가 이루어지기까지 매우 답답한 상태에 있다고 고백하신다.
무엇때문에 답답해 하시는 걸까?
예수님은 날씨는 분간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계절(메시지성경)은 분간을 못하는 사람에 대해
답답해 하신 것 같다.
그러한 사람들을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자라 말씀하신다.
분명히 주님 보시기에는 옳은 것이고 진리인데, 그 것을 분별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시며
답답해 하셨음에 틀림없다.
예수님의 세례는 옳은 것, 진리를 따라가는 길의 종착점에 있는 고난의 세례였다.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 분은 옳은 것을 분간하실 수 있었다.
비록 그 옳은 것을 선택함으로 화평이 깨어지고, 분쟁이 발생하고, 가시밭길을 걷게 되더라도....
주님은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셨고 선택하셨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옳은 것을 선택할 것인가? 편하고 평화로운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분명 다르다.
옳은 것을 선택할 경우 화평이 깨질 수 있고, 분쟁이 올 수도 있으며 치열한 싸움가운데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옳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날씨는 분별하면서 시대를 분별하지 못해서는 안된다.
주님 오늘도 나에게 지혜를 주셔서 옳은 것, 즉 진리를 따를 분별할 수 있게 하시고
그것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일기2010. 4. 9. 06:34
이번 천안함 사건을 보면서 우리 고등부를 보게 됩니다.
'구조선의 사람은 많을 수록 좋다'입니다. 한 마디로 다다익선이죠.
배가 조난 되어 물속에 빠져가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구조선에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것이겠죠.
우리 고등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솔직히 고백하지만 저는 그냥 있는 숫자 그대로 만족했었습니다.
많은 고등부 친구들을 구조선에 올라 태웠는데, 어느새 많은 친구들이 구조선에서 깊은 바다로 뛰어 들어가 있더군요.
그런데도 저는 그 친구들은 한 번 구조선에 탄 경험이 있으니 알아서 다시 올라 타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아니 우리가 다시 손 내밀지 않으면 다시 올라타지 않더군요.
자기가 깊은 물속에 다시 빠져 들어간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 망망대해에 버려진 우리 친구들입니다.
여러분 우리 고등부를 이제 구조선이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이 구조선에 친구들이 더 많이 올라탈수록 좋은 것입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 그리고 이 구조선에 한 번도 올라 타보지 못했던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세요.
우리는 5월 16일 1회성의 친구초청잔치를 경계해야합니다.
한 번 탄 친구들은 절대로 이 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관심 갖고 잘 돌봐야 합니다.
이 구조선에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좋습니다.
작년 우리고등부에는 항상 60명가량의 인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출석 통계를 보면 40명대입니다. 저는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단지 숫자가 줄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더 많은 생명들을 구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안타까움입니다.
여러분~ 이제 새 학기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시죠. 그렇다면 주위를 둘러 보세요.
물속에 빠져가는 친구가 누구인지요. 그리고 그 친구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어 보지 않으실래요?
좋은 글과 작품들2010. 4. 7. 15:31
묵상2010. 4. 5. 22:15
천안함 사태를 바라보며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어 잠깐....
살아 있을지 모를 사람들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시신이라도 찾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 고등부 친구들을 생각할 때, 저는 그런 마음이 정말 부족했습니다.
한 번 나오고 안나오는 친구들....
학원 때문에 몇 달 째 쉬고 있는 친구들...
아무 연락도 없이 소식이 두절된 고등부 친구들.....
이들이 보고싶어 집니다.
이들을 양으로 붙여 주셨는데.... 나는 그들을 찾고 찾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죽은 사람도 찾아 헤매는데...
살아있는 사람을 찾지 않는 나는 정말 나쁜 목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시면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려고" 오셨다고 했는데....
잃어 버린 우리 친구들을 더 간절히 찾고 찾고 또 찾아 나서야 겠습니다.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어 잠깐....
살아 있을지 모를 사람들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시신이라도 찾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 고등부 친구들을 생각할 때, 저는 그런 마음이 정말 부족했습니다.
한 번 나오고 안나오는 친구들....
학원 때문에 몇 달 째 쉬고 있는 친구들...
아무 연락도 없이 소식이 두절된 고등부 친구들.....
이들이 보고싶어 집니다.
이들을 양으로 붙여 주셨는데.... 나는 그들을 찾고 찾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죽은 사람도 찾아 헤매는데...
살아있는 사람을 찾지 않는 나는 정말 나쁜 목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시면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려고" 오셨다고 했는데....
잃어 버린 우리 친구들을 더 간절히 찾고 찾고 또 찾아 나서야 겠습니다.
묵상2010. 3. 24. 14:08
사람의 이름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는 아기에 대한 소망을 그 이름에 담습니다.
아무 의미 없이 만들어진 이름은 없습니다.
제 이름은 김경헌입니다.
쇠금 (金) 서울경(京) 법헌(憲) 입니다.
서울대 법대 가라고 지어 놓은 이름인지 모르지만 아버지도 정확하게 모르겠답니다.
작명가에게 가서 지어 놓았다고 하네요. 이런 ㅠㅠ
그래서 제 나름대로 제 이름에 대한 해석을 했습니다.
일단 한글로는 "경건과 헌신" 입니다. 경건한 삶의 태도와 헌신이라는 삶의 열매 또는 적용을 나타내는 삶이죠.
한자로는 율법의 서울 이랄까? 그래서 예루살렘에 갈까 합니다. (이런 억지가 어딨어? 라고 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율법 학교에 있습니다^^ (장신대 대학원 구약학)
제 이름은 그렇다 치고 저희 아들이름이 문제입니다.
아들의 잉태를 안지 이제 7개월이 되어갑니다. 출산이 2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름 짓기가 막막합니다.
맘에 드는 이름이 없습니다.
지난 주에 아내와 얘기하며 좋은 이름 있는지 서로 나눈 적이 있습니다.
아내도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래서 둘은 서로 기도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데 하나님이 그 부분에 대해 언급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탄생 전에 이미 예수님의 이름을 천사가 그 부모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분을 읽는데, 옳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부부에게 미리 알려주실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이 말씀으로 확신을 주시네요.
우리 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훨신 가볍습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신대로 들으면 되니까요^^
기대하시라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