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문자
<마태복음 2장 - 나사렛에 오신 예수>
본문 마태복음 2장은 예수님의 탄생과 성장에 대한 짧은 언급이 있는 장입니다. 이 장에 나오는 지명(地名)에 대해 주목해 봅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은 집이라는 뜻의 '베트'와 떡이라는 '레헴'의 결합으로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이 떡집에서 태어났으니 말되죠? 하나님의 위트인 듯합니다.
헤롯의 박해를 피해 예수님 가족은 이주노동자로서 이집트에서의 삶을 사시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나그네 삶의 애환을 이해하고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은 나중에 예수님의 성장기에 마리아와 요셉을 통해 상기됐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땅의 나그네 삶을 살아가는 고단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의 삶을 예표하는 일이었다 할 수 있을까요?
그 다음 나오는 지명이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입니다.
오늘 묵상은 나사렛이라는 지명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갈길리는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호수의 이름입니다.
그 호수를 타고 흐르는 강이 요단강이기도 하죠.
성지순례를 가면 느끼는 것이지만 갈릴리는 너무나 매력적인 땅입니다.
풍부한 물의 공급으로 농사도 잘 되고 고기도 잡을 수 있으며 정서적으로 매우 안정을 줄 수 있는 환경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환경에서 30세가 되기까지 성장하십니다.
예수님의 자연관찰에서 나온 비유들을 보면( 예를 들면 농사와 어업에 관련된 비유들과 다양한 자연과 관련된 비유들)
모르긴 몰라도 예수님의 EQ 지수는 상당했을 것이고 그것은 나사렛에서의 성장 배경에서 나온것이라 이해됩니다.
그러나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의 성장은 예수님이 공생애(공적인 활동)를 펼치시는 데 상당한 장애물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 출신인지를 가지고 갑론을박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의 나다나엘 같은 경우에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는 멀까지 하는 것을 보죠.
갈릴리 지방이 이스라엘 전체 안에서 소외된 지역이었을 뿐 아니라 나사렛이란 동네는 갈릴리에서조차 소외되고 차별 받는 곳이엇습니다.
그러기에 나사렛 출신 예수는 그의 출신에 따라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사렛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예수님의 십자가 명폐에까지 따라가 붙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명폐에 이런 타이틀이 붙습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 유대인들의 왕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당시 이스라엘의 식민통치국이었던 로마인들의 눈에 보여진 예수도 나사렛 사람이었습니다.
천하디 천한 동네요 가장 소외된 땅이었던 나사렛에서 예수님은 성장하였습니다.
그분의 탄생이 베들레헴 마굿간이라는 최고의 겸손한(humble) 장소였을 뿐 아니라 성장 또한 가장 낮고 천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낮고 천한 곳에서의 삶이었던 것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를 닮아가는 삶이고, 예수적이어야 한다면…
우리의 관심과 눈길이 머물러야 할 곳이 바로 나사렛적인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올 한 해 우리 삶이 나사렛을 향하기 원합니다.
소외된 곳, 불평등과 편견 때문에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나사렛 말입니다.
예수님이 서울에서 자라신다면 어느 동네에서 자라실까 짖꿎은 상상을 해 봅니다.
아마도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인 '염리동'이 아닐까요?
이곳이 서울에서 가장 낮고 천한 곳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이죠.
사역지로 처음 염리동에 머물게 되었을 때, '이곳이 서울인가? 이것이 21세기의 서울인가?'하는 의구심을 가졌었습니다.
열악한 주변환경과 주거환경 탓에 도시 소외 계층들이 몰려들었고 이주노동자들의 안식처가 되어가는 염리동.
이곳은 참 나사렛 스러운 동네였습니다.
이제는 이곳에서 사역하는 것에 자부심까지 갖게 됩니다.
예수님이 머무실 법한 곳이기 때문이죠.
'올 한 해 더 낮은 자리에 머물길 원합니다. 더 소외된 이웃들의 삶에 동참하게 하소서.
더 차별받는 이들의 벗이 되게 하소서.'
이것이 나사렛 사람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서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