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장 묵상 - 누가 큰 자입니까?>
11장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방문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이 보낸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의 핵심은 “우리가 기다렸던 분이 예수님 당신이십니까?”였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길을 예비하려고 분투한 사람들인데 우리가 한 일이 옳은 일입니까?”하는 질문으로 들립니다.
세례자 요한은 분명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그 분이라고 분명히 인식했는데,
왜 자신의 제자들을 다시 보내서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 판단으로 감옥에 갇힌 요한이 자신의 생의 최후를 깨닫고 자신이 걸어온 길이 옳은 길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신이 똑바로 살고 있는지 잘 살아 온것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건 아니었을까요?
우리 또한 이런 질문을 주님께 종종 드리곤 하죠.
“주님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입니까? 너무 바보처럼 사는 것은 아닙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귀신에 들려서(13절 참조) 그런 것이라 손가락질 하는데요?”
참 진리를 위해 살아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 때론 바보처럼 느껴지고 어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서 죽음을 감지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의 의미였고 목적이었던 그분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평가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가고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을 평가하기 시작합니다.(7절 이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세례 요한이 가장 큰 자라는 겁니다.
광야에서 낙타털옷을 입고 야생꿀을 먹으며 메뚜기를 잡아 먹고 사는 세례 요한이 가장 큰 자라니요?
‘큰 자’에 대한 예수님의 관점이 완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세상에서는 귀신들린 사람이라 평가를 받으며 미친 사람 취급 받지만 예수님에게서는 가장 큰 자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자’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예수님께서 판단하시는 ‘큰 자’ 소위 말하는 ‘영적 거인’은 말씀에 자신의 삶을 투신하는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며 자신의 삶의 부르심을 이뤄가는 사람이죠.
13절에 보면 '선지자와 율법’이라는 말이 나오죠.
신약성경에서 ‘선지자와 율법’ 또는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이것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약 성경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눕니다. 선지서 율법서 시가서로 말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구분법이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는 말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장인 ‘말라기’ 마지막 장의 예언이 요한에 관한 예언이라는 뜻입니다.
말라기 4장 5절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이 말라기 말씀이 말하는 선지자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예수님이 확증해 주십니다.
요한은 이 말씀에 의해 자신의 삶의 목적을 발견한 사람이고 자신의 삶의 뜻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내어 던졌다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그가 큰 자라는 겁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이고 진리를 위해 자신의 삶을 다 헌신했던 사람이란 겁니다.
그런데 천국(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례 요한보다 큰 자들이 수두룩하다는 겁니다.(11절)
세례요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반응하며 움직이는 자들, 그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피리를 불면 그것에 맞춰 춤추고, 예수님이 슬피 울면 함께 우는 그 사람이 큰 자입니다. (17절)
예수님께 반응하는 사람이 큰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은 많은 희생과 피로를 감수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감내해야 하고 가까운 사람들의 조롱도 이겨내야 합니다. 미친 사람이라는 평가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진리를 위해 투신하는 삶, 말씀에 반응하는 삶에서 오는 누적된 피로도는 그 무엇으로도 풀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감옥 안에서 인생을 하직하기 직전 상당한 스트레스와 압박에 시달렸을 것이고 그 고단한 삶의 누적된 피로도로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런 세례자 요한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은 진리와 말씀에 자신의 삶을 투신한 ‘하나님 나라의 큰 자’들을 향한 위로의 말씀을 건내십니다.
11장의 마지막 세 절의 말씀은 꾸준히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고단한 영적 거인들을 향해 던지는 주님의 위로의 말씀인 것이지요.
바로 여러분과 저를 위한 말씀 아닐까요?
고단한 예언자 요한을 향해 던지신 마지막 위로의 말이 우리 심령에 울려 퍼집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묵상2014. 1. 11. 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