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13. 12. 18. 16:18

<김회권목사님 "청년설교 3" 북토크 후기>

1. '북토크'라는 장르...
북토크라는 장르에 대해 먼저 얘기해야겠다.
이건 처음 경험하는 거였다.
따지고 보면 토크쇼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는 거다.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저자의 저술 배경뿐만 아니라 신상털이에 가까운 성장배경까지 알아보는 것도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물론 나는 김회권 교수님과 개인적인 시간들을 어느 정도 가져온 상태라
새로운 내용은 없었지만 북토크라는 일종의 쇼를 관망하며 보았다.
저자를 책으로만 만나는 사람들은 이런 북토크를 통해
저자를 직접 만나고 싸인회를 통해 저자와의 가벼운 스킨십을 가질 수 있으니
매력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 알지 못했던 저자의 사생활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분명 큰 끌림이다.
북토크의 콸러티를 좌우하는 것은 세 가지 정도로 여겨졌다.
우선은 양질의(?) 저자, 다음은 깔끔한 진행센스, 관객들의 질 높은 질문
뭐 이정도라 생각된다. 
어제 북토크는 이 세 가지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맛깔난 시간이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사생활에 대한 질문이 책에 대한 질문보다 더 많았던 점이다.
후반부에는 시간에 쫓겨 책에 관한 내용을 더 심도있게 나누지 못했다.

2. 훌륭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
인생에 있어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과 같은 지복(至福)이 있을까?
일단 우리는 예수를 스승 삼아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지 이것이 가장 큰 복일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음으로 양서(良書)만큼 좋은 스승이 있겠는가?
책에다가 '어지럽다'는 수식어를 붙힌게 양서다. 
어지러울 정도로 영향을 주지 않으면 양서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그 동안 김회권 교수님의 책은 훌륭한 스승이 되어주었다.
김회권 선생님의 책은 그 어휘의 선택과 구사에 있어 정말 어지러울 정도다.
또한 말씀에 대한 통찰력과 깊이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들어가기에 어지러울 정도다.
그 메시지의 무게감은 핵펀치급이니 서림(書林)의 고수라 칭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같이 김회권 선생님의 가르침을 가까이에서 받고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참 풍성했던 한 해다.
훌륭한 멘토이시며 스승이신 김회권 선생님을 만났을 뿐 아니라 누리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참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3. '나는 아직도 목이 마르다.'
히딩크의 말이 아니다. 
이순(耳順),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게 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하게 되는 나이에 근접해 가시는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다.
"나는 인생을 즐길만한 나이이며 즐길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목이 마릅니다."
그는 구도자였다.
목이 마르기에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피곤하지 않으시다고 하신다.
목이 마르기에 끊임 없이 자신을 쳐서 복종하며 불편한 것에 익숙해지는 삶을 선택한다고 하신다.
나도 저 나이에 저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지금도 자아도취에 빠져 나름 만족하며 살아가는 내 영적 허세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이 마르기에 읽고, 목이 마르기에 부르짖고, 목이 마르기에 새벽을 깨우며, 목이 마르기에 글을 쓰시는 교수님의 삶이 내 안의 도전과 구도자로서의 목마름을 격발시켰다.
목마르면 새벽에 일어나도 피곤하지도 않다니... 아~~

4. 모세를 연구하세요.
선생님은 모세의 삶에 대해 재조명해 주셨다.
모세란 인물은 예수님 다음으로 연구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 하셨다.
영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세의 삶에 나타난 그의 행동들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는 부분에 공감이 갔다.
모세 그처럼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이 있으며, 그 처럼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한 사람이 있으며, 그처럼 한 민족의 역사의 획을 그은 사람이 있겠는가?
또한 그처럼 온유함이 승하여 신의 성품에 다다른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기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취했던 행동거지 하나 하나는 모두다 영적인 의미와 영성 개발의 소스가 되는 것들이다.
신을 벗고, 돌판을 던지며, 40 주야를 엎디어 주의 얼굴을 구하고, 그를 대적하는 자들 앞에서 대응하는 그의 태도 하나 하나는 우리의 영성 개발의 좋은 롤모델이 되는 것이다.
모세~ 아~ 나도 모세를 더 주목해야겠구나~

5. 문학과 목회와의 관계.
한 질문자의 질문이었다.
문학을 강조하시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문학과 목회는 무슨 관계가 있느냐?
우선 선생님은 성경주석 작업이 문학적인 작업이라 말씀하셨다.(교수님이 하신 표현을 정확히 옮겨 적지 못했지만 이런 의미였다.)
또한 문학은 언어의 예술성을 다루는 영역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무미 건조한 선교에 문학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넣음으로 
극적인 효과를 높일 뿐만 아니라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다고 하셨다.
설교라는 것이 언어의 전달이기에 본인은 가장 아름답고 적절한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씀하신다.
교수님의 표현을 빌자면 "동종 업종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시를 읽고 소설을 읽으며, 아름다운 표현들을 메모한다"고 하신다.
내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구나.
어쨌든 다독과 다작이 언어 훈련의 정도가 아니겠는가?
동종 업종에서 살아남으려면 부단히 노력해야겠구나.

글이 너무 길어졌다. 헐^^
이제 그만 줄여야지.
끝~

Posted by speramus
일기2013. 12. 16. 23:27

<죄와 벌, 인문학 강의 후기>

김응교 시인이 (숙명여대 국문과 교수) 진행하는 인문학 교실에 다녀왔다.
이번 달과 다음 달은 도스또예프스키의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에 대해 연구한다.
일종의 죄와 벌 강독 시간이라 보면 될 듯하다.

문학이란게 문학 자체의 영역으로 덩그러니 섬처럼 떠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에는 철학과 사상과 시대상이 녹아 있다.
그러기에 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사상과 시대적 배경 등의 선 이해가 있어야 한다.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도스또예프스키의 사상의 맥을 짚었고 그의 작품에 나타난 기독교 사상들에 대해 들었다.
참 흥미로워 시간가는 줄 몰랐다.
김응교 교수님은 SNS로 많이 접해서 실제로 어떤 분일까 되게 궁금했는데...
털털한 교회 형님 같은 이미지에 유쾌함이 강의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역시 문학하는 사람들은 위트를 안다. 

글을 잘 쓰는 비결은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걸로만 알았는데
김응교 선생님이 제안하는 비결은
매일 글을 길게 쓰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의 친구 공지영 작가도 제안하는 방법이란다.
한 사물을 매일 정해 놓고 그것을 길게 묘사하다보면 글이 늘게 돼 있단다.
음~ 일리가 있는 듯하다.
글을 읽는 것과 직접 쓰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깔?
반반 일듯하다.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그에 못지 않다. 
내가 지금 주저리 주저리 쓰는 것도 다 글 쓰기 연습이다^^

고전이란 것이 옛날의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 이야기로 느껴지게 만들기에 고전이라고 한다.
죄와 벌에서 극변하는 시대 가운데 느껴지는 빈부차이에서 고뇌하는 청년 라스꼴리니꼬프는 지금 이새대를 살아가는 88만원 세대의 한 청년의 고뇌, 딱 그것인 것이다.
그래서 고전은 시대를 초월해서 읽혀지는 것이다.
해아래 새 것이 없듯, 인간의 내면과 무의식의 세계는 
그 시대상만 달리 했을 뿐 반복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고전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깨달으며 나아가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선생님이 교재를 읽어보라고도 시키고 관심을 보여주셨다.
목사라고 하니
"목사님처럼 목사님같이 안보이시는 분이 참 좋더라"라고 말씀하신다.
기분이 좋았다. 목사같이 안보이는 목사라~
권위의식으로 똘똘 뭉쳐 목이 곧은 뻣뻣한 목사상이 아니란 말로 이해해야지^^

끝으로 신촌 언저리에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강의들이 신촌 주위 대학가들을 끼고 많이 열리고 있다.
신촌 언저리에 살고 있는 나로선 참으로 좋은 기회다.
있을 때 잘 배우고 누려야겠다.
이제 문학을 누리고 인문학을 누려보자~
누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3. 12. 14. 09:12

어제 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대가 인생의 8할을 좌우한다.'
대부분의 문학 예술 심지어 유행가의 대상자들은 20대들이다.
30대가 부르는 사랑 노래는 웬지 어색하다.
전공 선택, 직업 선택, 배우자 선택 등 대부분의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이
20대에 몰려 있다.

영성도 마찬가지다.
20대는 영성의 베이스를 다지는 시간이다.
기초를 잘 잡아 놓지 않으면 50대에 감당해야할 인생의 하중과
권력의 하중, 재물의 하중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나 20대는 너무 괴롭다.
그들을 괴롭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학문의 전당 대학은 직업훈련소로 전락해 버렸고
더 좋은 직장을 위해 우정은 짖이겨 지고
무한경쟁 속의 경쟁자들만 캠퍼스에 가득하다.

응답하라 1994, 우리네 풋풋했던 20대 초반을 향한 향수를 담은 드라마다.
인생은 20대를 그리워한다.
20대인 그대 지금 그대의 인생을 무엇을 향해 정조준하고 있나?
기회를 아껴라~
20년 후 2033년에 응답하라 2013이라 말하기 전에
지금 당장 응답하라.
그대의 창조주께 응답하라.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응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전도서 12장 1절)

Posted by speramus
일기2013. 12. 10. 22:14


오늘밤 또봇에 관련된 선율이 에피소드

에피스도1. 아빠가 사줘야지...
요즘 또봇 로보트를 무지 갖고 싶어하는 선율이는 안달이 난 상태다.
크리스마스 되면 산타할아버지가 또봇 선물 가져오실거라 하니 선율이 하는 말...
"아빠가 사줘야지..." 헐 ㅡ,.ㅡ
"선율이는 산타할아버지가 안 좋아?"
"아빠가 더 좋아~" 엥???
벌써 산타의 실체를 파악한 것인가? 
아님 진정 아빠를 사랑하는 건가?

에피소드2. 돈 두 개 있잖아...
이제는 또봇 로보트 두 개를 사달라고 조른다. 
"아빠 돈이 없어 선율아" 그랬더니
"괜찮아~ 나한테 돈 두 개 있어~ 이걸로 두 개 사면 되지~"
헐~ 동 전 두 개 있으면 또봇 두 개 살 수 있다니..
아이들 나라는 아직 물가가 정말 싸나보다 ㅎㅎ

에피소드3. 기분이 좋아...
한참을 옥신 각신 하다.
아빠가 묻는다.
"선율아 또봇 로보트 사면 뭐가 좋은데?"
선율이 말에 빵터진 아빠...
"기분이 좋아..." 
^^ 푸하하하하
기분이 좋대~

Posted by speramus
일기2013. 11. 14. 22:22

<불혹 즈음의 도토리, 꿈을 꾸다...>

아내랑 텔레비전을 같이 보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보더라도 서로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예능 프로에 무관심하다.
별로 건질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가 연예가 중계나 드라마 같은 거 보고 
웃고 우는 모습이 이해가 안될 때가 많았다.
반대로 아내는 내가 야구를 보거나 개그콘서트 보고 웃는 것이 이해가 안된단다.
따지고 보니 개콘도 예능인데 개콘은 재밌어 하는구나.

개그 콘서트를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가끔 한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으면 재밌는 아이디어 많이 내 놓고 웃길 수 있었을텐데...
조금 마음이 순수하신 분들을 그런 말을 나에게 가끔한다.
"목사님은 개그맨 했으면 잘 했을거 같아요"
나도 그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개그맨 했으면 못하진 않았을거다. 그래도 길게 가진 못했을 거 같다.
워낙에 수줍음이 많은지라...
내가 이런 말 하면 꼭 콧방귀 끼는 사람들 있더라.
저 수줍음 많은 남자예요.
어쨌든... 내가 지금 개그맨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은
개그맨이 될 꿈을 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누군가 나에게 개그맨이 되면 좋겠구나 라고 일깨워 주기만 했더라도...
나는 아마도 개그맨이 돼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자신도 나의 끼를 인지를 못했고 주위 사람들도 감히 그런 생각을 못했다.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너는 이거 하면 잘 할거야~'라는 말 자체를 들어 보지 못한 거 같다.
나는 너무 자신감이 없는 아이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스무살 무렵 나는 익숙치 않은 꿈이란 것을 꾸기 시작했다. 
홍성건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선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이 생겼다.
그거 하면 정말 인생이 아깝지 않을 거 같았다.
보람될 거 같았다.
그 후 거의 20년을 달려 왔다.
아무것도 의심않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무뎌질대로 무뎌지고 호기심도 살아져 버리는 나이 불혹에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내와 함께 같이 보는 유일한 두 가지 프로가 있다.
국가대표 축구경기와 (후반 15분만, 90분 다 보면 시간이 아까워서^^)
최근엔 힐링캠프다.
요즘 포털에 신경숙 힐링캠프가 하도 뜨길래 
오늘 애들 빨리 재우고 아내와 함께 보았다.
나는 우리 누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아니 더 엄밀히 얘기하면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
(꿈은 이뤄진다. 라는 것이 신작가 편의 주제문구였다.)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고 한 것은
그가 겪었던 어린 시절의 시골의 어려운 환경에서 겪었던 경험이 딱 그것이었다.
농사와 자연 속에 파묻혀 그것을 먹고 자란 감성은 그의 풍부한 자산이었다.
다만 나와 다른 것이 있다면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 뿐이다.(치명적인 차이다 어쩌지?ㅎㅎ)
고등학교 보낼 돈이 없어서 서울 공단에 와서 돈을 벌면서 밤에 학교를 다닌 이야기는 우리네 누나들의 이야기이며 친구들의 이야기 아닌가?
작가는 너무 부끄러워 그 마음 속에 있는 작가의 꿈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단다.
그런데 반성문을 본 선생님이 그에게 "소설가가 되어 보지 그러니?"라고 말했고,
그 말은 감춰왔던 마음 속의 작가의 꿈을 터뜨릴 수 있게한 도화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안에 이미 신경숙 작가가 지니고 있는, 가난을 먹고 자란 순박한 감성과 자연속에서 길러진 풍성한 감수성이 내 안에도 내재 돼 있다고 본다. 나의 큰 자산이다.
다만 나에게 도화선이 없었고, 거기에 불을 붙여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불혹의 나이에 꿈을 꾼다.
나도 이 자리에 부끄럽게 살포시 적어봅니다.
"나도 글쟁이가 되고 싶다^^"

고등부 전도사로 4년을 섬기며 아이들에게 그렇게 꿈 이야기 많이 했다.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거 하라고, 정말 그거 할 때 심장이 뛰고 행복한 거 하라고.
그러나 나는 이제 나에게 질문한다. 
너 정말 니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냐? 정말 그거 하면 참 행복한 거 하고 사냐?
더 궁극적으로 "너에게는 꿈이 아직 있냐?"고 묻는다.
글쟁이의 꿈, 꼭 키워가고 싶다.

나는 거대한 참나무를 품고 있는 하나의 작은 도토리이다.
도토리의 꿈은 이제 아장아장 꿈틀거리고 있다.
어떤 글,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글이란 녀석은 참 매력이 있다.
자꾸 쓰다보면 늘 것이고, 좋은 글 읽다보면 글 쓰는 감각도 늘겠지.
너무 막연한가? ㅎㅎㅎ
더 구체화 되겠지^^ 
염산교회 고등부 친구 중에 글쟁이가 되고 싶은 한 녀석을 만났다.
지윤이란 친군데... 이 친구랑 요즘 얘기를 많이 나누고 있다.
같은 꿈 꾸는 동지로 우린 20년의 나이차를 넘어 많은 영감을 주고 받고 있다^^

힐링캠프 신경숙도 처음부터 잘 쓰진 않았겠지.
좋은 글 읽다보면 어느새 좋은 글이 나오지 않겠는가?
불혹 즈음에 무뎌지고 함몰된 꿈을 꿈틀꿈틀 깨우려니 설렌다.
여러분 15년 후에 뵙겠습니다^^
좋은 작품으로 우리 만납시다!!
도토리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도토리도 꽃피우는 재주가 있다.
도토리도 참나무가 되는 재주가 있다. 암 그렇고 말고^^

Posted by speramus
일기2013. 8. 28. 10:06

프뢰벨테마 동화가 좋다는 건 몇 년 전부터 들어왔다.
새책 가격을 보니 5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몇년 째 사고 싶지만 비싸서 못사는 위시목록에 있는
TDOT, ABD, 등등의 사전류 가격과 맞먹는 거라 감히 넘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봄에 교회 집사님께서 초등학생 책 정리한다고
책 열 댓권을 주셨는데 그 안에 프뢰벨테마 동화 50권 중 두 권이 딸려 왔다.
"털끝 하나도 까딱하면 안되기" 와 "당나귀 실베스타와 요술조약돌"
이 두권을 읽으며 내가 큰 감동을 받았다.
신세계였다. 아이들 책에도 이런 감동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아~ 이래서 프뢰벨 프뢰벨 하는구나 했다.
그 때부터 프뢰벨 테마동화 전질을 갖고자 하는 소망이 더해갔다.

드디어 엊그제 중고장터에서 싼 가격에 매입했다.
파시는 엄마가 너덜너덜한 것 다시 가져오면 권당 팔천원에 AS 까지 맡겨 주신단다.
그 마음이 참 감사하다. 
집에와서 확인해 보니 너덜너덜한 책이 적지 않다.
얼마나 많이 읽혔으면^^

이 동화전집의 장점은 테마별로 이야기가 정말 다양하다는 거다.
상상력을 키워주는 이야기, 자연과 친해지는 이야기, 가족사랑 이야기 등등
테마별로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으니 
아이가 흥미진진해 한다.
선율이는 아빠가 읽어주면 대 여섯권은 기본으로 집중하여 본다.
이 녀석은 아빠의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정말 훨씬 낫다.
아빠의 만족함을 위한 구매가 아니었음을 나는 굳이 이렇게 표현하고 싶은 거다^^

프뢰벨 테마동화같은 책들이라면 내 위시목록을 포기하면서라도
사주고 싶다. 
그리고 많이 많이 읽혀줘야지~
무엇보다 내가 읽어주면서 동심으로 촉촉히 젹셔진다.
나도 이런 동화들으며 컸더라면 좋았겠다.
아이들 때문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많지만, 벌어들이는 수확은 상상 이상이다.
그래서 아이 키워보지 않고 어른이라 하지 말라 했나보다.
나도 이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동심어린 어른^^

Posted by speramus
일기2013. 7. 23. 09:52

물을 길어 나르고 있다. 장마시즌에 말이다.

예상치 않은 사고로 집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

지난 겨울 동파로 한 주 동안 물이 안나온 적 있지만

여름의 단수는 그 무게감이 몇 배는 되어 보인다.

이북 사람들이 몰려 살았다는 염리동에서

나도 옛날을 추억하며 교회에서 열심히 물을 길어 나른다.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입니다. 주여 기갈을 보소서^^


물을 뿜어대지 못하는 수돗꼭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유통을 멈춘 막힌 수도관이 꼭 내 꼴은 아닌지 돌아본다.

잠궈져 있는 벨브처럼 

하나님께 잇대어 있지 않고 내 뜻대로 살아가는

어리석은 수도관은 아닌가?

물을 가둘 수 없고 흘러 보낼 수 없는 관처럼

깨어지고 상한 마음 그대로 다른 이들에게 상처 주는 사람은 아닌가?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예레미야 2장 13절 말씀)"


생수의 근원에 잇대는 몸부림이 필요하며,

스스로의 생각과 사고에 갖혀 주님의 큰 뜻을 품지 못하고

저장해 두지 못했던 깨진 마음을 치료해야 한다.


콸콸콸콸 흘러넘치는 생수 유통업자로 쓰임 받고 싶다.

생수의 근원으로 올라가자~ 그곳으로 ad fontes~

Posted by speramus
일기2013. 7. 22. 23:09

설교란 하나님의 현존을 매개하는 것이다. 

내가 설교에 "하나님"이라 말했는데

회중들이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고 가리운다면

나는 설교를 당장 그만 둬야한다.


하나님의 현존을 매개하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맑은 순종과 소통이다.

하나님을 향한 맑은 순종으로 증명되지 않는 설교는 모두 거짓이다.

설교자 그의 삶이 오히려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그 설교는 거짓이며 설교를 당장 멈춰야 한다.

하나님과 소통을 통해 하나님은 내 설교 안에 현존하신다.

소통을 위해서 설교자는 무릎 꿇어야 한다.


설교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나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결코.

설교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실제로 나타내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대한 지식이나 성경지식을 전달하는 수업과 성경공부와는 구별된다.

그러기에 설교는 어려운 것이다.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현존이 나타나야 하기에

설교자는 더욱 겸손해야하며, 설교자는 더욱 순종해야 하며,

설교자는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지 말해야 하며, 그 하나님이 실재로 드러나야 하기에

설교는 고귀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사역자의 짐인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는가?


-김회권 교수님과의 대화 중에 깨닫고 알게 된 바를 정리해 본다. -

Posted by speramus
일기2013. 6. 20. 07:00




<공부하는 삶>

1.공부하는 삶.
새벽기도 끝나고 교회 로비의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익는 재미도 여름 한 때 맛보는 쏠쏠한 즐거움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 [공부하는 삶]이다.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이긴 하지만 힐링 수준이다.
조금은 내가 선택해야할 다음 스텝에 대한 길라잡이가 되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배우고 익히는 삶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일러주는 것은 기본이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방해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언급한다.

2. 일상을 단순하게 만들어라.
이 책의 3장은 공부하는 삶을 살기 위해 삶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
그 첫번째 챕터가 "일상을 단순하게 만들어라"이다.
나는 이 챕터를 읽으며,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내 삶을 회상했다.
내가 왜 그렇게 책과 공부와 담을 쌓아 왔는지 결론을 내 주었다.
공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일상을 단순화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 사교활동은 공부에 치명적이다.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 사교활동은 공부에 치명적이다. 과시욕과 방탕한 정신은 사유를 파멸시키는 적이다.
... 시간과 사유, 자원, 역량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일과의 그물에 뒤엉키지 마라.
... 소명은 집중을 뜻한다. 지성인은 성별된 존재이므로 헛된 일을 하느라 자신을 낭비해서는 안된다.(74쪽)"
내 기질은 선천적으로 사교에 최적화 되어 있었다.
MBTI는 ENFP, 애니어 그램은 7번에 6번 날개.
집중이란 눈꼽만치도 없는 산만함과 방대함 소란스러움의 극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교와 산만함(집중의 반대),
이것을 다루지 못하면 나는 고만고만한 인간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위기감 마져 든다.
내 기질과 체질을 바꿔 서라도 단순한 삶과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나는 짐짓 비장하기까지 하다^^

4. 단순함의 미덕.
이제 좀 삶의 속도를 늦추어 보려 한다.
인위적인 삶의 복잡한 의식들과 도구들로부터 잠시 아니 잠정적인 이별을 고해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일상을 단순화하자!
소명은 집중을 뜻한다.
이제 삶의 모든 자원은 영감의 불꽃을 지피는데 쓰여져야 한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3. 4. 20. 08:31

살아가며 사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도 하면서 넓어지기도 함을 느낀다.
고딩시절엔 짝사랑이 전부인 줄 알았다.
대딩시절엔 주고받는 사랑이 전부인 줄 알았다.
결혼 초기엔 서로 섬기는 사랑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리고 인내하며 기다려주고 용납해 주는 사랑을 배웠다.

요즘에 배우는 사랑은 '내리 사랑'이란 것이다.
이런 사랑은 참 낯설면서도 설렌다.
아이를 보고 돌아서면 이 아이가 눈에 밟히고
보고 싶어지고 또 보고 싶어진다.
남녀간의 사랑에서 느끼는 짜릿함은 없지만
내 마음은 불타고 있다.
아이가 아프고 슬플 때 이 사랑은 격정적으로 발동함을 느낀다.
내 안에 이런 사랑의 엔진이 탑제돼 있음을 예전엔 몰랐다.

그리고 이런 '내리 사랑'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그나마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나마 말이다...
사랑을 배워가고 사랑을 알아가며 사랑을 행하는 것만큼
큰 기쁨도 없구나~ 행복하다~ 
내가 사랑하고 사랑해야할 녀석들이 있어서 행복한 아침이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