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13. 12. 18. 16:18

<김회권목사님 "청년설교 3" 북토크 후기>

1. '북토크'라는 장르...
북토크라는 장르에 대해 먼저 얘기해야겠다.
이건 처음 경험하는 거였다.
따지고 보면 토크쇼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는 거다.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저자의 저술 배경뿐만 아니라 신상털이에 가까운 성장배경까지 알아보는 것도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물론 나는 김회권 교수님과 개인적인 시간들을 어느 정도 가져온 상태라
새로운 내용은 없었지만 북토크라는 일종의 쇼를 관망하며 보았다.
저자를 책으로만 만나는 사람들은 이런 북토크를 통해
저자를 직접 만나고 싸인회를 통해 저자와의 가벼운 스킨십을 가질 수 있으니
매력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 알지 못했던 저자의 사생활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분명 큰 끌림이다.
북토크의 콸러티를 좌우하는 것은 세 가지 정도로 여겨졌다.
우선은 양질의(?) 저자, 다음은 깔끔한 진행센스, 관객들의 질 높은 질문
뭐 이정도라 생각된다. 
어제 북토크는 이 세 가지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맛깔난 시간이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사생활에 대한 질문이 책에 대한 질문보다 더 많았던 점이다.
후반부에는 시간에 쫓겨 책에 관한 내용을 더 심도있게 나누지 못했다.

2. 훌륭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
인생에 있어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과 같은 지복(至福)이 있을까?
일단 우리는 예수를 스승 삼아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지 이것이 가장 큰 복일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음으로 양서(良書)만큼 좋은 스승이 있겠는가?
책에다가 '어지럽다'는 수식어를 붙힌게 양서다. 
어지러울 정도로 영향을 주지 않으면 양서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그 동안 김회권 교수님의 책은 훌륭한 스승이 되어주었다.
김회권 선생님의 책은 그 어휘의 선택과 구사에 있어 정말 어지러울 정도다.
또한 말씀에 대한 통찰력과 깊이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들어가기에 어지러울 정도다.
그 메시지의 무게감은 핵펀치급이니 서림(書林)의 고수라 칭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같이 김회권 선생님의 가르침을 가까이에서 받고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참 풍성했던 한 해다.
훌륭한 멘토이시며 스승이신 김회권 선생님을 만났을 뿐 아니라 누리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참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3. '나는 아직도 목이 마르다.'
히딩크의 말이 아니다. 
이순(耳順),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게 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하게 되는 나이에 근접해 가시는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다.
"나는 인생을 즐길만한 나이이며 즐길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목이 마릅니다."
그는 구도자였다.
목이 마르기에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피곤하지 않으시다고 하신다.
목이 마르기에 끊임 없이 자신을 쳐서 복종하며 불편한 것에 익숙해지는 삶을 선택한다고 하신다.
나도 저 나이에 저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지금도 자아도취에 빠져 나름 만족하며 살아가는 내 영적 허세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이 마르기에 읽고, 목이 마르기에 부르짖고, 목이 마르기에 새벽을 깨우며, 목이 마르기에 글을 쓰시는 교수님의 삶이 내 안의 도전과 구도자로서의 목마름을 격발시켰다.
목마르면 새벽에 일어나도 피곤하지도 않다니... 아~~

4. 모세를 연구하세요.
선생님은 모세의 삶에 대해 재조명해 주셨다.
모세란 인물은 예수님 다음으로 연구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 하셨다.
영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세의 삶에 나타난 그의 행동들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는 부분에 공감이 갔다.
모세 그처럼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이 있으며, 그 처럼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한 사람이 있으며, 그처럼 한 민족의 역사의 획을 그은 사람이 있겠는가?
또한 그처럼 온유함이 승하여 신의 성품에 다다른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기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취했던 행동거지 하나 하나는 모두다 영적인 의미와 영성 개발의 소스가 되는 것들이다.
신을 벗고, 돌판을 던지며, 40 주야를 엎디어 주의 얼굴을 구하고, 그를 대적하는 자들 앞에서 대응하는 그의 태도 하나 하나는 우리의 영성 개발의 좋은 롤모델이 되는 것이다.
모세~ 아~ 나도 모세를 더 주목해야겠구나~

5. 문학과 목회와의 관계.
한 질문자의 질문이었다.
문학을 강조하시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문학과 목회는 무슨 관계가 있느냐?
우선 선생님은 성경주석 작업이 문학적인 작업이라 말씀하셨다.(교수님이 하신 표현을 정확히 옮겨 적지 못했지만 이런 의미였다.)
또한 문학은 언어의 예술성을 다루는 영역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무미 건조한 선교에 문학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넣음으로 
극적인 효과를 높일 뿐만 아니라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다고 하셨다.
설교라는 것이 언어의 전달이기에 본인은 가장 아름답고 적절한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씀하신다.
교수님의 표현을 빌자면 "동종 업종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시를 읽고 소설을 읽으며, 아름다운 표현들을 메모한다"고 하신다.
내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구나.
어쨌든 다독과 다작이 언어 훈련의 정도가 아니겠는가?
동종 업종에서 살아남으려면 부단히 노력해야겠구나.

글이 너무 길어졌다. 헐^^
이제 그만 줄여야지.
끝~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