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13. 3. 4. 08:45

1. 은성수도원
은성수도원(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동로 402번길 83 / Tel : 031-532-9994)은
개신교인들을 위한 침묵기도와 향심기도 관상기도를 통해해 하나님을 만나며 참 자아를 발견하게 도와주는 기도처이다.
은성수도원을 처음 들었던 것은 광주제일교회 시절 (2003년) 백경홍 담임목사님께서 40일 금식기도하는 곳으로 익히 들어 알았었다.
그 후 장신대 신대원 1학년 때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경건훈련으로 2박 3일 머문 기억이 있다.
그 때 나를 찾아 떠나는 기도의 여정이 참 좋았고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7년이 지난 올해 다시 은성수도원을 찾았다.

은근히 성스럽다는 건가? 은밀한 곳에 거룩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인가?
어쨌든 일상의 모든 짐을 내려 놓고 잠잠히 머물기 위해 다시 찾았다.
7년 전 경건훈련때 내가 머물렀던 맨 위 꼭데기에 있던 기도처가 여전히 건재했다.
참고로 은성수도원은 개인기도실을 주고 거기서 머물게 한다.
단체 숙소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철저히 개인기도이며 그래서 개인기도처소에 머물며 기도한다.

다음 사진은 내가 이번에 머물렀던 영열루(靈悅樓),

영적인 기쁨을 충만히 느끼는 누각이란 뜻인가?
기쁠 열(悅)자가 맘에 든다.

내가 머문 숙소 영열루의 내부사진이다.
여기는 남자에게 배정되는 곳으로 메인 건물과 떨어져 있어
인적이 드물다. 그래서 스산하여 밤에는 등꼴이 오싹해지는 곳이다.
화장실에라도 갈라치면 200미터를 헤치고 가야하니 밤에는 그냥 꾹 참고 자야한다.

을씨년 스럽지 아니한가??

기도처 주위에 노상방료도 할 수 있지만 눈위에 흔적이 남을 것 같은 이유로 참았다^^
그래서 저 아래 (차로 10분을 나가야 세븐일레븐이 있다) 마을에 가서
커피 한 병을 사왔다.

이 병의 용도는 다름 아닌 요강이다. 헐^^
미안해 스벅 로고에 있는 처자^^




아직도 주변엔 눈이 녹지 않아 겨울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내 영혼은 이곳에서 새 봄을 맞이하고 돌아가리라.
기쁨에 겨워 어깨춤을 추며 이곳을 내려가리라~
은성수도원 곳곳의 풍광이다.

은성수도원의 위 아래를 이어주는 중앙 대로이다.

곳곳에는 이렇게 개인 기도처소가 있다.
자매들은 메인 건물에 딸린 곳에 그리고 그 주변에 머물지만
형제들은 요렇게 조금 떨어진 곳에 숙소를 배정 받을 수도 있다.

이 건물들은 오래된 기도처소이고
최근에 보수 공ㅇ사로 새롭게 지어진 건물들은
이렇다.



은성수도원에서 기도할 수 있는 곳은 자신의 숙소와 예배실 뿐이다.
개인 숙소에 기도의자를 하나 가지고 와서
추위와 외풍과 싸우며 기도하는 맛도 나쁘진 않다.



7년 전 예배실은 마루 바닥이었으나
공사를 새로 해서 이제 새 단장을 했다.

이곳에서 하루에 한 번 저녁 7시에서 8시까지 매일 예배가 있다
예배는 20분 향심기도, 15분 설교, 10분 성찬식으로 구성된다.
향심기도는 침묵으로 하나님만을 찾는 기도인데 개인적으로 이 기도를 이번에 처음 접했다.

요 향심기도는 다음에 따로 이야기 하도록 한다.
이곳에서는 성경책 넘기는 소리도 상대방에게 방해를 준다고 하여
오로지 기도만, 침묵기도만 하게 한다.
성경책을 읽거나 책을 읽으려면 자신의 방에 가서 읽어야 한다.
이곳은 철저히 자기를 죽이는 곳이다.

침묵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죽이지 않고는 되지 않는다.
이제 예배실 내부와 그 주위에 있는 조형물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수도원 입구에 이르면 은성이라는 큰 간판이 있다.

앞에 보이는 파란색 지붕의 가 건물이 예배처이며 식당이 있는 메인 건물이다.
이 간판 옆에 일편단심으로 나를 찾으면 만나리라는 현판이 있다.

이곳은 철저히 침묵을 강조한다.
침묵함으로 일편단심으로 주님을 찾는 곳이다.

부르짖는 기도에 익숙한 사람은 침묵이 정말 힘들수도 있다.
하지만 참으로 깊이 있는 깨달음과 계시는 침묵중에 임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한다.

요 물건의 이름을 모르겠다.
이건 일종의 종인데, 더 깊은 기도를 위해 '띵' 치는 것이다.
예배시간에 사용되는 것이다.

세족식의 이 그림을 보며 많은 감동을 받았다. 예배실 복도에 있는 그림이다.




은성수도원의 자랑 아닌 자랑은 식사다.
은성수도원의 식사는 일품이다.
음식 맛도 맛있고, 시골밥상을 추구하기에 몸에도 좋다.
은성수도원의 식사시간에서 특이한 것은
식사시간에도 아무도 얘기를 하지 않고 밥만 먹는 침묵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녹음한 테이프가 그 침묵을 깬다.
그 테잎의 음성은 침묵을 깰 뿐만 아니라, 마음을 깨운다.
책으로 읽을 때 잠만오던 것이 육성으로 마음에 울리니 깨달음이 되었다.

이 밥상이 심플하지만
맛은 끝내준다^^


은성수도원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또 다른 여정은 등산을 통해서다.
모세가 시내산을 오르는 심정으로 산을 올랐다.
그러나 눈길에 산행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직은 앙상한 가지뿐이지만

지팡이 하나 손에 들고 오르기 시작한다.

저 햇빛은
내 영혼을 향해 비추시는 하나님의 사랑인가?

보리빵 하나에 허기를 채워본다.

마지막으로 침묵에 대한 금언을 모아 놓은
글귀를 붙여 본다.
이 글귀는 내 책상 머리에 붙여 놓을 생각이다.
침묵 안에 이렇게 큰 의미가 있는 줄은 몰랐다.




예수원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침묵이 강조되고, 개인기도가 강조되는 곳이 은성수도원이다.
일상의 소란함을 벗어나 나를 찾고, 하나님을 찾기 위해
이곳을 찾아 보길 권해본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3. 3. 3. 22:40

나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가끔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묵상하곤 한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 같은 특별이벤트로 기쁨을 드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과 시간을 보내고, 

수다를 떨고 함께 걷기도 하고, 함께 눕기도 하고, 함께 기대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부관계도 일상의 행복감이 이벤트에서의 행복감에 우선한다.


이벤트의 행복감은 일상의 행복감을 주지 못함에 대한 보상과 회개의 차원이지,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일주일에 한 번, 주일에 드리는 예배 한 번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큰 오산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아내와의 친밀함, 이 두가지를 모두 놓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이 두가지는 비례관계인지도 모른다. 아니 정말 그렇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3. 1. 21. 13:28

<영화 "건축학개론" 감상 소감>

1. 네이버 마일리지 포인트 이건 뭐지?
네이버 마일리지 포인트는 어떻게 생기는 지 모르지만
4000포인트가 쌓여있다. 
이걸로 뭐 살수 있다길래
네이버영화에서 "건축학개론"을 2000원에 샀다.
뭔가 횡재한 느낌~~ 으흐흐^^
선율이 태어나면서부터 극장에서 영화보는 일은 거의 없다.
이렇게 집에서라도 영화봄에 감격하는 양육남.

2. 김선율 미안하다~ 오늘은 어린이집으로~
선율이는 원래 월요일에 어린이집으로 보내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과 기회가 있는데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 아내와 나는 육아에 지쳐 있다.
무엇이 가치있는 것인지 알지만, 그 가치도 육체피로 앞에선
설 자리가 없다. 미안~ 선율아 오늘은 월요일, 그래도 어린이집 잘 가라~

3. 전람회의 재발견!!
나는 영화를 보면 항상 OST를 눈여겨(?) 듣는다.
건축학 개론의 메인 테마송은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었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다.
요즘 애들 이 느낌과 이 감정 못 살린다.
역시 예술은 김O률 들이 이끌어 간다.
김선율, 김하율 이놈들 커서 동률이 형처럼 훌륭한 예술인 되거라^^

4. 사랑은 고백되어져야 한다.
기억의 습작의 가사 중 이런 내용이 있다.
"너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만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둘이 서로 상대를 좋아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고백하지도 않고 헤어졌던 남녀가 10년 후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인데...
역시 사랑은 고백되어지고 전해지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고백하는 것이다.
사랑은 들려져야 하며 느껴져야 한다.

5. 클래식 이후 인상적인 멜로물
20대에 한국 멜로 영화중 단연 내 기억에 남는 영화는 클래식.
그 이후, 참 괜찮은 멜로물을 보았다.
월요일 오전이 이렇게 흐뭇하게 지나가는구나!!
곧 선율이 데리러 가야할 시간이구나...
전쟁전의 짬 휴식, 꿀맛같구나^^

Posted by speramus
일기2013. 1. 19. 20:48



<Kairos 선교훈련 review>

지난 월~금 5일동안 인텐시브로 카이로스 선교훈련이 끝났다.
카이로스 마지막 시간에 훈련을 돌아보며
카이로스 훈련이후 어떻게 선교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그림으로 그리는 미션이 주어졌다.
못 그리는 그림 솜씨로 이렇게 그려 보았다.
이제부터 그림 설명 들어갑니다.

제목 : 10년 후...
메인테마 : 둥그런 지구 위에 사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 
세계를 누비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는 나.
크게 네 개의 액티비티를 그리고 그 동작들을 돋보기로 확대하여 더 자세한 그림을 그 옆에 그린 것이다.

이 그림에서 아래쪽에 있는 두 가지 활동은 나의 선교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두 가지 베이스다. 그것은 말씀연구와 기도다.
요건 선교를 하든 어떤 사역을 하든 기본이 되는 것이지만
특별히 선교사로서 필요한 영성이다. 기도와 말씀의 두 축이다.

1. 오른쪽 하단 그림
말씀 연구는 성경번역이라 볼 수도 있다.
아마도 난 10년 후 어떤 형태든지 어떤 민족의 성경번역에 몸담아 도움을 주고 있지 않을까?
책상위에 성경과 사전들이 널려 있다. 
머리띠를 띠고 땀방울을 흘리며 낑낑대며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2. 왼쪽 하단 그림
이 그림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내 모습을 그린 것이다.
내 옆에 건물 하나가 있는데, Mission Abbey (선교 수도원)이라 적어져 있다.
예수원에서 큰 영감을 얻었던 나는 예전부터 선교지에 가면 이런 수도원을 하나 만들고 싶었다.
이번 카이로스 훈련가운데 역사적인 관점을 배우면서
또 다시 확인한 것은, 기독교 선교의 역사에 있어 수도원이 차지한 역할이 어마어마 하다는 것이다.
도미니크 수도회, 프란체스코 수도회, 예수회 등 카톨릭의 선교를 이끌었던 단체들은 모두 수도원이었다.
한 가지 더, 아일랜드의 성자 페트릭역시 아일랜드에서 돼지를 치는 노예로 살다
프랑스의 수도원으로 도망가 거기서 다시 아일랜드 선교사로 파송 받는다.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은 말씀연구와 기도 그리고 노동을 생활화 했으며
그러한 삶은 선교적 열정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선교의 진원지는 바로 기도와 말씀으로 불타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국내든 선교지든 이런 선교지향적인 수도원을 이끌어 보고 싶다.

3. 왼쪽 상단
한 손엔 성경을 한 손엔 여권을??? ㅎㅎㅎ
나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성경을 나누고 싶다.
특별히 선교지에는 지도자를 키워야 하는 큰 과업이 있다.
선교지의 교회지도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일생을 보내고 싶다.

4. 오른쪽 상단
이 그림은 무리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프래카드에는 OOSTA 라고 적어져 있다.
KOSTA, JASTA 등의 여러 청년 유학생 말씀 집회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요런 모임에서 말씀을 전하며 선교동원가로 (missions mobilizer)로 살아가고 싶다.
이 꿈은 대학생 시절부터 가져왔던 꿈이다.
청년들을 모든 열방으로 보내는 동원가로서 삶을 마무리 하고 싶다.
요건 10년 후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의 먼 미래를 향한 내 그림이다.

물론 이대로 될지 안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나님이 국내에서 사역하게 하시면 국내에서 사역해야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이끄실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는대로 열어주시는대로 따라갈 뿐이다.

하나님은 지도(road map)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침반(compass)를 주신다고 한다. 명확하게 넌 이 그림이야라고 우리 미래를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direction을 제시해 주실 뿐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미래를 보여주세, 비젼을 보여주세요.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방향을 제시하신 후 우리의 이성과 경험과 재능과 선호를 따를 결정하기를 바라신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내 길과 하나님의 방향을 생각하며
이런 그림을 그려보았다.
나의 10년 후의 삶이 기대된다.
국내든 국외든 선교적인 삶에로의 부르심 하나는 변함 없을 것이다.

이것으로 카이로스 선교훈련의 되돌아보기를 마친다~
끝~~~

Posted by speramus
일기2012. 12. 20. 10:52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온 이후

계속 마음 한 켠이 아려 온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거대한 골리앗 앞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다.

거대한 탁류에 휩쓸려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새벽기도를 통해 하박국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어찌하여 악인이 번성하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선한 자 의로운 자들이 외면당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 좀 해 보십시오.

그러면서 이 슬픈 현실이 나의 마음을 옥죄 온다.

아~ 정의는 공의는 이 땅과 어울리지 않는 과분한 것이란 말인가?



이런 현실에 그냥 녹다운 될 수 없다.

다시 일어서야 한다.

깨어나야 한다. 

깨어 있는 자여 이제 다시 일어나자~

다시 광야로 가자~

메뚜기와 석청의 거친 음식과 고된 삶이 우릴 기다릴지라도,

우리는 외치고 또 외쳐야 한다.

평화의 나라, 정의의 나라, 공의의 나라를 준비하라고....

깨어 있는 자가 외치지 않으면 그 누가 외치겠는가?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Posted by speramus
일기2012. 12. 19. 06:56

<누가 우리를 위하는가?>


기독교인들 중 상당 수가 대통령 후보를 선택할 때

'누가 우리 기독교를 위하는가?'를 고민한다.

어떤 후보가 친기독교 정책들을 펴가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다음 문자 메시지는 어제 밤 10시에

광주에 있는 대학교때 선교단체의 후배에게 받은 문자메시지다.

'어떤 인물이 되면 기독교 학교의 신앙교육을 ㅂ 후보는 장려하지만

ㅁ 후보는 못하게 한다... 중간생략

다른 것 볼필요없이 ㅁ후보가 대통령되면 기독교 ㅇㅊㅅ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중하고 결탁하여 기독교 억제 정책을 쓸 것이다'


여러분은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며 기독교인으로서 어떤 위기감을 느끼는가?

우리 기독교가 신앙을 지켜가기 힘들어지고 전도하기 힘들어진다고 느끼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 

기독교가 이익집단으로 변질되어가는 위기감을 금할 수 없다.

기독교의 안위와 번영을 보장해주는 당과 후보와 결탁하여

어마어마한 정치적인 집단으로 변질해 버리지 않는가?


그동안 기독교인들이 순진하게 '장로'라는 이유로 뽑아주었던

대통령들이 우리 백성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하지 않았던가?

무늬만 기독교인이지 그들이 폈던 정책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것이 많았다.

경쟁을 조장하는 세상을 만들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지 않고

집없는 철거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선량한 시민들에게 물을 뿌려대고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과 조화하고 공생하지 않고

오염시키고 파괴하는데 앞장서지 않았던가?



기독교인으로서

'누가 우리를 위하는가?' 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누가 백성을 위하는가? 누가 국민을 위하는가? 누가 가난한 자를 위하는가?

누가 억눌린 자를 위하는가? 누가 갇힌 자를 위하는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예수님이 누가복음 4장의 가버나움 회당에서 하신 설교를 기억한다.

주님은 이사야서를 인용하시며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것,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는 것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

주의 은혜의 해를 

(희년 공동체의 기쁨, 즉 희년에 나눔을 통해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기쁨)

전파하는 것" 이라고 분명히 밝히셨다.

한마디로 '십자가' 이다.

십자가는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타자를 위한 삶이며 인류를 위한 삶이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당신의 이익을 위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

그분은 힘있고 권력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이 땅에 오지 않으셨다.

가난하고, 포로되고, 병들고, 억눌리고, 갇히고,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씨름하는 자들을 위해 오셨다.


나의 대통령 후보를 판단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누구의 삶이 예수님의 삶의 궤적과 근접한가?" 이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그의 인격과 삶을 결정한다.

그가 십자가를 통과하는 삶을 살았냐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그의 삶의 궤적이 예수님과 유사하다면 나는 그를 선택할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나의 집단의 이익이 아닌

백성과 국민의 이익과 잘됨을 위한 살아 줄수 있느냐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다 기독교적이지 않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다.


누가 기독교를 위하는가? 보다

누가 가난하고 억눌리고 소외된 자들을 위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누가 예수님의 삶의 궤적에 가장 근접했는가? 이다.


교회는 정부의 보호를 먹고 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는 고난과 박해를 먹고 성장해 왔다.

로마의 박해 가운데서 초기 기독교는 그들의 신앙을 순수하게 지켰으나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의 공인된 종교로 인정되면서부터

교회는 타락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교회에 적대적인 당과 후보를 무턱대고 찍으라는 말로 오해하지 말라.

'누가 교회를 위하는가?'가 우선적인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교회의 지도자인 총회장을 뽑는 선거가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을 돌보고 나라 살림을 책임져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 나라의 지도자다.

그러기에 누가 교회를 위하고 기독교를 위하느냐보다

누가 나라를 위하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누가 교회의 설탕으로 우리 기독교를 달콤하게 해주느냐가 아니라

누가 세상과 백성의 소금으로 반드시 필요한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Posted by speramus
일기2012. 12. 15. 00:14

<아이폰 5 사용후기-What makes me to use iPhone?>


지인들 중에 아이폰 5 사용후기를 올리라는 분의 권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쓰는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1. 나는 왜 아이폰을 쓰는가?(the reason that I adhere to iPhone?^^)

제가 처음 애플 제품을 접한 건 2009년 말 아이팟 터치 3세대를 사면서부터 입니다.

아이팟은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제 라이프 스타일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으리만큼 새로웠습니다.

한 마디로 혁신(renovation)이었죠.

무선공유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인터넷이 접속되었죠.

그 당시 일반 폰에서 SK의 네이트나 KT의 쇼같은 것을 통해 인터넷을 접속하는 것은

엄청난 요금과 시간이 소요되는 때였습니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접속한다는 개념 자체가 사치스러울 시점에

만난 아이팟은 그야 말로 혁신이었죠.

전화가 아닌데도 문자가 되고, 메일도 확인되고, 연락처도 볼 수 있고

설교, 동영상, 음악 등의 다양한 자료들을 담아서 볼 수도 있고

그야 말로 멀티플레이어였습니다.

하지만 아이팟과 일반 핸드폰을 둘 다 들고 다녀야하는 불편함 때문에

아이팟을 버리고 아이폰으로 넘어오게 됐죠.


2. 혁신renovation의 실체는 무엇인가?

아이팟 터치를 쓰면서 혁신을 경험했다고 말했는데...

혁신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유비쿼터스(ubiquitous)와 멀티펑셔널한(multifunctional) 기능 때문이였습니다.

유비쿼터스는 라틴어로 Ubiquaque(모장소에서, 사방에서)에서 나온 단어죠.

그 동안 컴퓨터에서 할 수 있었던 기능들을

손안의 작은 핸드폰 안에서 모두 그리고 언제든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스마트폰  자체는 혁신 그 자체였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나의 정보와 자료들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알라딘의 요술 램프의 지니를 만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죠.


3. 왜 하필 아이폰이냐? (what different?)

그런 유비쿼터스와 멀티펑션은 아이폰만 가지고 있는 특성은 아니었죠.

소위 안드로이드 군으로 분류되는 핸드폰에서도 그런 기능들을 모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3년전) 그 퀄러티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나 보였습니다.

삼성은 높은 사양의 하드웨어로 승부를 걸었지만

애플의 운영체제(Operating System - OS)를 따라오지 못했죠.

솔직히 지금도 안드로이드는 애플의 OS를 추격해 오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안드로이드의 높은 스펙과 싼 가격의 스마트폰으로 넘어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아이폰의 OS의 편리함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애플 OS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여러가지가 있겠죠. 


    a) 먼저 보안성입니다. (security and stability reason)

안드로이드 폰을 쓰는 사람들의 핸드폰에 바이러스 제거 프로그램인

V3가 깔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바이러스와 버그로 고통당하는 안드로이드 별의 백성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었죠.

애플의 폐쇄성은 문제가 되지만 그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철저한 보안성과 안정성이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b) 다음으로 앱의 퀄러티겠죠. (quality of applications)

같은 앱을 돌리더라도 아이폰은 뭔가 간지가 나고 아름다웠습니다.

안드로이드 앱은 확실히 퀄리티가 떨어졌습니다.

앱의 디자인이나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도 애플의 앱들은 훨씬 뛰어났죠.


   c) 다음으로 터치감을 들 수 있겠죠.(sensibility of touch)

확실히 아이폰의 터치감은 최고입니다.

다른 폰을 쓸 때에 이게 가장 차이가 많이 나더군요.


   d) 이건 정말 제가 아이폰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인데요. (using iCloud)

바로 아이클라우드(iCloud)입니다. 

아이클라우드도 혁신이란 말을 붙이기가 아깝지 않았죠.

아이폰 뿐만 아니라 아이패드 맥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와 자료들이 연동이 되는 써비스가 바로 아이클라우드인데

애플의 제품을 쓰는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 중 하나죠.

예를 들면

제가 아이폰에서 찍은 사진이 제 아이패드와 맥캔토시에 자동적으로(automatical)

저장이 돼 있다는 거죠. 

아이폰에 메모를 하나 써도 그것이 그대로 다른 애플 기기에 저장이 되죠.

캘린더의 일정도 마찬가지구요.

핸드폰의 연락처가 날아갈 염려는 이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일이 되어버렸죠.

이 아이클라우드를 잘 활용하면 정말 스마트하게 살 수 있습니다.


  e) 디스플레이와 사진 (retina display & photograph)

     애플의 레티나 디스플레이(Retina Display)는 정말 자연스러운 색상을 제공해 줍니다.

그리고 그 선명함에 놀라죠. 

사진 또한 레티나 디스플레이와 함께 아이폰을 빛나게 해주는 장점입니다.

그 외에도 다른 장점들이 많이 있겠지만 이정도 해두죠~!


   f) 인문학과 공학의 그 절묘한 조화? (technique for human)

   인문학은 사람을 위한 학문이며 사람의 학문입니다.

인문학은 사람의 감정과 희노애락에 공감하는 학문입니다.

그 인문학적인 감성과 세밀함이 즉 사람을 위한 기술들이 애플의 기기들에는 녹아 있습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애플의 기능들이 차별화 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face time(애플 기기간의 무료 영상써비스) 같은 것이죠.

영상통화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그것에 대한 요금을 전혀 묻지 않는 애플의 정신, 높이 사줄만합니다.

이런 애플의 인문학과 공학의 조화가 저는 참 좋았습니다.^^



4. 그렇다면 iPhone 5만의 장점은 무엇인가? 

주위에서 아이폰 5와 겔노트2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솔직히 겔럭시가 거의 공짜폰으로 헐값에 팔리면서

넘어간 사람들이 많이 있죠. 

사람들은 자신이 편하고 익숙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기에

그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싸게 나온 겔3나 겔노트로 넘어가지 않고 아이폰을 고수할까요?

이걸 궁금해 하고 이 후기를 통해 자신의 폰을 무얼로 바꿀지 힌트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에게 조언하는 것은 그냥 자신이 편하게 생각하는 폰으로 가라는 겁니다.

넓은 화면이 좋으면 겔노트로 가는 것이고,

텔레비젼 보기를 원하면 겔3로 가는 것이고,

펜이 꽂아져 있어 쓰는 걸로 메모를 하는 것을 원하면 겔노트로 가는 것입니다.

아이폰은 왜 그렇게 화면이 좁냐 펜이 안달려있고 DMB가 안되느냐?

이렇게 따질 필요 없이 그냥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자~ 이 글의 알맹이 입니다~ 사용후기랄까요? ㅎ

아이폰 5만의 장점은 뭘까요?

사람들이 가장 큰 단점이라고 말하는 작은 화면 그것이 가장 큰 장점 아닐까 합니다.

핸드폰은 자고로 무거우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큰 전화쓰려고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집전화를 들고 다니지 뭐하러 전화기를 휴대하고 다니나요?

5의 장점은 작고 얇고 가볍고 휴대하기 편하고 움켜 잡기 편하다는 것입니다.

가볍고 휴대하기 편하고 쥐기 편한 것이 5의 장점이라는 거죠.

이건 무슨 거지같은 멘트냐구요? ㅎㅎ

어차피 동영상 차이나 봤자 크기가 1인치 차이지만 아이패드나 컴터에 비하면

도토리 키재기 입니다.

화면의 크기는 그닥 중요한 조건이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며 오히려 작은게 좋다는 것이죠.


그다음 장점은 바로 속도입니다.

LTE 속도를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솔직히 와이파이보다 빠르더군요.

와이파이를 켤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폰 4s와 확실히 차이가 난다. 동영상이나 사진을 문자나 카톡으로 보내보세요.

그러면 그 속도차이가 2~3배는 나 보입니다.

겔럭시와 비교를 안해봐서 언급은 못하겠습니다만

이 속도라면 결코 뒤지지 않을 거 같네요.


다른 아이폰과 비교해서 5가 갖는 특징은 뭘가요?

세로로 길어진 화면덕에 더 많은 앱을 배열할 수 있다는 것이죠.

기존에 4줄이었던 것이 5줄로 한 화면에 더 많은 앱들을 배치할 수 있게 됐습니다.

폴더 안에도 12개가 멕시멈이었지만 이제 16개까지 앱을 넣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흠이라면 밧데리가 생각보다 빨리 단다는 것이죠.

속도가 LTE니 만큼 밧데리속도도 엘티이로 단다고 할까? ㅎ

하지만 사무실이나 차 안에 항상 충전기가 있으니 이것도 별 문제 없어 보입니다.


5. 결론 및 평가

아이폰의 장점만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아이폰의 단점도 많습니다. (검색해 보세요^^)

단점은 굳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아이폰의 스펙이나 하드웨어에 끌려서 이 폰을 쓰지 않습니다.

나는 그 기능과 OS의 장점, 그리고 다른 애플 기기들과의 호환과 연동의 편리함 때문에 아이폰을 씁니다.

이런 것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굳이 아이폰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가장 안정적이고 사용자 중심의 OS는 아이폰의 OS 임을

자부합니다.

또한 아이폰의 혁신은 멈추지 않을 것을 기대하기에 

아이폰을 당분간은 계속 쓰려고 합니다.



ps.

이 글을 읽고 댓글에 애플빠라고 쓰려고 하시는 그대^^

그렇게 써도 괜찮아요~ 

사실이니까^^

Posted by speramus
일기2012. 12. 12. 06:59

 

단감으로 곶감을 만들지는 않는다.

단감으로 홍시를 만들지 않는다.

곶감과 홍시의 단 맛은 단감의 단맛과는 그 맛의 깊이에서 차이가 있다.

떫은 감을 먹는 사람은 없다.

떫은 감은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처절한 자기변혁(?)을 시도한다.

부드러운 홍시든 쭈글 쭈글 말라버린 곶감이든,

딱딱하고 떫은 자기 전 존재를 변화시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과감한 자기 변혁이며 피 말리는 자기 성찰과 연단의 결과이다.

딱딱한 상태 그대로 있으면 감은 결코 떫은 맛을 버릴 수 없다.

자기 몸을 유연하고 부드럽게 만든 대가로 그의 삶에 단맛이 보상되어진다.

찬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은 떫은 감의 자기 변혁에 있어 필수조건이다.

찬 바람이 불어지면 떫은 감은 자연스레 주홍빛으로 성숙되어진다.

말려지든 진홍색의 홍시로 변하든 따스한 햇살은 그의 온전한 변화를 돕는다.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내 안에 있는 떫은 맛 때문에 나 자신이 너무 싫어 질 때가 많았다.

특히 결혼하고 나의 떫은 맛은 종종 아내를 울상이 되게 만들었다.

이 떫은 맛을 어찌하리~

난 떫은 감으로 태어났으니 내가 싫으면 뱉으라 말할 수 없다.

나의 존재는 떫은 맛 투성이지만 나의 존재의 부르심 자체는 타자에게 단맛을 흘러 보내는 것이다.( 12:1~3)

나는 하나님의 신성한 단맛에 참여하는 자로 변화되어갈 부름이 있다. (벧후 1:4)

나는 끊임없이 내 안의 떫은 맛을 담고 있는 딱딱함과 싸워야 한다.

딱딱함을 제하고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터득할 때

나는 스위트한 존재로 변혁되어 갈 것이다.

치열한 자기성찰과 자기변혁 없이는 이뤄질 수 없음을 떫은 감을 묵상하며 깨닫는다.

나는 오늘도 나의 딱딱한 내면과 직면(confrontation)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숨결(루아흐, 프뉴마)이시며 하나님의 바람이신 성령님의 터치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한 여름의 태양보다 더 뜨겁고 따사로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온전히 나를 내어 맡긴다.

성령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떫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변혁시킬 수 있는 필수조건인 것이다.

나의 딱딱함은 오늘도 그분의 따사로운 사랑으로 부드러워지고 있다~

나는 그분의 유연함과 포용을 통해 그분의 달디단 성품을 본받고 그 성품에 참여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나의 선생이신 곶감 하나를 입에 물고 한 참을 생각해 본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2. 11. 30. 23:28

1. 선교 그 참을 수 없는 즐거움.
오늘 담임목사님과 내년에 있을 선교훈련과 파송선교사님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심장이 심하게 요동하는 것을 감지했다.
선교라는 말만 들으면 왜 심장은 터보엔진을 달고 뛰는 걸까?

2. 성서와 선교의 상관관계?!!!

나의 삶은 성경에서 동력을 얻어 선교를 향해 발사된 로켓과 같다.
그것은 나로호와는 전혀 다르다.
전혀 지체함 없이 날아간다.
발사대는 교회이며 그 엔진의 연료는 사랑이며
엄청난 열을 뿜어대며 목적지인 열방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심장이 내 삶에 공명이 되어 나를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3. 아들 이름도 선교로???
솔직히 둘째 이름을 선교(宣交)라고 짓고 싶다.
첫째는 말씀을 전하라는 의미에서 선율(宣律)이었고
둘째는 하나님과의 사귐(交)을 전하라는 의미에서 선교(宣敎)의 동음이의어인
선교로 하고 싶은데... 아내가 허락해 줄지 미지수다.
어쨌든 선교는 나의 삶의 목적이며 이유이다.
나뿐만 아니라 교회의 그것이기도 하다.

4. 선교에 있어 가장 큰 아킬레스 건, E 녀석!!
그런데 선교만 생각하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나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영어다.
선교와 영어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것.
하지만 나는 영어를 완전정복하지 못했다.
영어는 나의 아킬레스 건이다.
난 이 영어란 녀석을 그냥 말 없이 고이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사뿐이 즈려 밟고 가지 않으련다.
널 뽀개고 말 것이다.
너를 잘게 잘게 뽀개고 쟈근쟈근 씹어 소화하지 않으면
내 성이 차지 않는다.
난 소통을 위해 너를 가만 놔두지 않으련다.
넌 소통을 위한 도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5. 30대가 저물기 전에...
영어 뽀개기 1단계 작전으로
이 책 한 권을 샀습니다.
Understanding and Using English Grammar
유명한 책이라는데... 우리 나라의 Man to man 정도 되나보죠?
한 번도 영문법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해 보지 않은 저는
이제 이 책을 통해 영문법을 마스터 해보려 합니다.
저의 작은 몸부림은 계속됩니다.
40줄을 바라보지만 영어, 이녀석만은 제가 뽀개보려 합니다.
주여~ 지혜를 주옵소서!!
선교를 위한 나의 바벨탑 무너뜨리기 프로젝트는 무빙중이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2. 11. 20. 10:53

 

1.     탈모가 진행되는 청년 한밤 중에 나를 찾아오다.

    어제 밤에 탈모로 고민하는 20대 초반의 한 청년이 저에게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마치 니고데모가 한 밤 중에 예수님을 찾는 느낌이랄까요?

간절함과 절박함이 그의 대화에 묻어져 나오더군요.

그 청년은 키도 180이 넘어 호리호리하고 외모적으로 뒤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탈모가 진행되자 멘붕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자신감도 떨어지게 되고,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더군요.

~ 인간의 삶에 있어 머리털은 이리도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죠.

항암 치료를 받고 계시는 여집사님께서도 자신의 탈모된 모습을 보이기 싫으셔서

급구 병원심방을 거절하십니다.

머리털 하나에 사람의 마음이 이리도 어려워 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2.     인간의 자존감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 형제님과 대화에서 그가 인정하더군요. “저는 외모지상주의에 빠졌었고, 외모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정말 솔직한 대답입니다.

좋은 외모를 갖고 있으면 좋은 외모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

정말 그럴싸한 명제이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외모나 비줠을 갖춘 사람을 흠모하며 부러워합니다.

그런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과감히 자신의 얼굴에 칼을 대기로 마음 먹기도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기쁨을 성형외과에서 누리고 있는 현실이랄까요?

자신의 자존감과 가치를 외모에서 찾기에 그러는 것이겠지요.

그 형제도 외모를 너무 소중하게 생각해 왔고, 스타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머리카락의 유실은 자신의 존재감의 유실로 이어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큰 스트레스 때문에 요즘 잠이 안 온다고까지 했습니다.

과연 인간의 가치와 자존감은 외모에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3.     외모지상주의로부터의 과감한 이별

    저는 외모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아내를 얻으신 분들을 주위에서 종종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 또한 그런 류의 사람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저는 급구 부인합니다.

아니 나같이 매력있는 사람이 매력있는 여자를 만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라고 반문합니다.

그들은 저를 정말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봅니다.

그런 류(?)의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정말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고 자존감이 높은 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 대한 매력에 자신이 도취돼 있습니다.

그의 삶에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고 활기로 가득 차 보입니다.

그가 지니고 있는 외모와 전혀 상관 없이 말입니다.

사람의 아름다움과 매력은 외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그 형제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외모지상주의로부터 과감한 이별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외모가 딸리니까 예쁜 여자를 만나기 힘들다는 말은 마귀가 주는 말이라 했습니다.

이미 그 말에는 외모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외모가 예쁜 여자가 아름다운 여자라는 판단은 외모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는데서 오는 결론입니다.

매력과 아름다움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이미 결혼한 입장에서 얼굴 예쁜 여자와 살래? 아니면 마음이 예쁜 여자와 살래?”라고 묻는 다면 저는 후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결혼에서 살아보니 외모가 두 사람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극히 적더군요.

그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갈등상황을 여유롭게 받아들이고 헤쳐갈 수 있느냐?

상대의 연약함을 얼마나 용납하고 인정할 수 있느냐의 정도, 즉 내면의 성숙이 중요하더라구요.

그러기에 젊은 청년들에게 제안 합니다.

외모지상주의와의 과감한 이별을 통보하십시오.

 

4.     약점과 고난은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사명이다.

    저는 머리털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대머리인 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약점으로 생각해 본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제 밤에 찾아온 청년 같은 사람들에게 저는 좋은 롤 모델인가 봅니다.

목사님은 정말 자신이 넘쳐 보이고, 매력이 넘쳐요라는 말을 합니다.

머리털이 없는데도 이렇게 멋지게 살 수 있는가?

그 약점을 극복하고, 아픔을 극복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종일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아픔은 그와 동종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사명으로 승화되며 치환될 수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현재 가지고 있는 약점 그것을 극복하시고 이겨낸다면

오히려 그 약점이 여러분의 매력의 한 포인트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5.     약한데서 발휘되는 하나님의 능력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데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 합니다.” (고후 12 9)

여러분의 약점, 약한 것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약점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머리털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오히려 그 부족함으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걸요.

오늘도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물 수 있게 만드는 나의 약점들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시도록 기도합니다!! 약한 것을 자랑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