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서 구렁으로 떨어지는 내 목숨을 구하시어 내 생명이 빛을 즐거이 바라보네.
자, 이 모두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 사람에게 두 번 세 번 그렇게 해 주시니
그의 목숨을 구렁에서 되돌리시고 그를 생명의 빛으로 비추시려는 것입니다.
(욥기 33장 228-30, 가톨릭 성경버전)
구렁에서 건져주시고, 흑암에서 빛을 비추시는 주님을 생각하니
아침에 울컥해 지는군요.
위의 말씀으로 새벽기도 설교를 했습니다.
1. 가톨릭 성경
저는 설교준비하거나 묵상을 할 때, 다양한 번역본들을 참고 합니다.
그 중 가톨릭 성경은 제가 선호하는 성경 번역본 중 하나이지요.
보수적인 교단에서 성장한 저는 가톨릭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고등학교를 가톨릭 학교로 가게 됐습니다. (광주 사레지오 고)
고등학교 당시 종교 수업도 있었고, 많은 미사들도 억지로 참석해야 했고
수사님들과 신부님들과의 만남도 많았었습니다.
그 덕에 가톨릭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허물어졌던 것 같습니다.
분명 가톨릭은 부인 할 수 없는 개신교의 형제라 생각하고 그들 안에 잘 못된 교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풍성한 진리들을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우리의 벗이라 생각합니다.
이 가톨릭에서 몇 년 전에 성경을 번역했는데 그 번역본이 상당히 잘 된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늘 참고 합니다.
2. 욥기 설교는 쉽지 않다.
요즘 새벽기도 본문이 계속 욥기로 나가고 있습니다.
교역자들이 돌아가면서 새벽 설교를 하지만 내용은 거의 비슷합니다.
욥과 친구들의 논쟁, 뭐 여기서 크게 벗어 날 수 없는거죠.
10년 전 캠퍼스 선교단체 활동을 할 때, 광주 지부 지부장님은
자신은 욥기의 친구들의 말은 전혀 쓸모 없는 말이기에 욥기는 아예 설교도 않고 들여 보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하던 것이 기억나네요.
욥의 친구들의 말이 정말 쓸모 없는 말일까? 지금까지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욥의 친구들의 말은 욥을 기록한 저자가 나타내려 하는
주제를 부각시키는 문학적인 장치로따지더라도 큰 기능을 하는
부분이라 생각이 되어집니다.
아무튼 욥기 설교는 쉽지 않습니다.
3. 고통과 악의 문제를 욥기를 통해 풀어 가다.
고통과 악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저버리며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통과 악의 문제에 대한 나름의 답과 신학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욥 같이 훌륭한 사람도 그 답을 잘 알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욥의 친구들과 같이고통과 고난의 원인을 찾으려 하지 말고
고통과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찾아라고 권면했습니다.
결국 욥기 마지막에 하나님이 나타나심으로 상황이 종료 되지 않습니까?
고통과 고난의 이유를 불문하고 하나님은 그 고통과 고난에 함께 신음하시는 분이시며 말씀하시기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악의 문제에 대한 답을 욥기를 통해 더 고민하고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4. 혹시 고구마 필요하신 분?
여러군데에서 고구마를 주시는 분들이 많네요.
올해 고구마 풍년인가요?
그래서 그런데 고구마가 필요하신 분은 살짝 저에게 귀띔해주세요^^
군 고구마의 계절이 돌아왔네요.
어릴 적 고구마를 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고구마가 잘 영글고 캐내야 될 때를 분간하는 법이 있습니다.
고구마 이랑이 쫙쫙 갈라져 있으면 그 고구마는 캘 때가 된 것입니다.
고구마 부피만큼 땅이 갈라지나 봅니다.
갈라진 틈을 열심히 호미로 파서 고구마 군락을 긁어 담습니다.
긁어 모은다는 표현이 아마 고구마 수확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수확한 고구마는 방 구석의 찬 바람이 들어오는 곳에 쟁여 놓습니다.
그리고 겨우 내 이 고구마는 간식거리로 요긴하게 이용되지요.
생으로 깍아 먹기도 하고, 궈 먹기도 합니다.
아궁이에 군불을 떼고 나면 항상 고구마를 숯불 속에 감싸서 궈먹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고구마는 동치미와 궁합이 딱이죠.
못 먹던 시절(?) 중요한 간식거리였던 그 고구마가 지금 남아 도는군요~
필요하신 분 저에게 와서 가져가세요^^
아침에 주저리 주저리 간단히 삶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