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10. 3. 17. 18:31
학기가 시작되면서 발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영어 발제인데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안하려고 하니 내가 하자 하고 신청을 했답니다.

다른 수업시간에 들어갔는데 공교롭게 제가 또 발제를 맞게 되었어요.

나 이거~ 시간도 정말 없는데.... 완전 몰아치기네요.

토요일은 동해안 답사, 주일에는 오후 찬양예배 설교구....

너무 무리한 스케쥴이네요.

은혜가 필요합니다. 기도 좀 해주세요.

승리하도록^^

봄눈이 내리네요. 겨울비와 함께 정말 계절에 어울리지 않지만

이 눈이 끝이 라는 생각에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네요.

다들 행복하세요^^
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10. 3. 12. 22:54


아내와 함께 "인빅터스"라는 영화를 봤다.

인빅터스란 지지 않는, 꺽이지 않는 이란 뜻의 라틴어다.

25년동안 감옥 살이 후에 남아공의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는 어떻게 흑과 백을 통합할까를 고심한다.

많은 흑인들은 그들이 당해 온 질고의 시간들을 복수할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만델라는 햇빛정책, 포용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정부의 요직에 백인들을 배치시키고 백인들이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들을 그대로 유지 시킨다.

그 대표적인 것이 럭비였다.

럭비는 백인들이 좋아하며 즐겨왔던 운동이었고, 축구는 흑인들의 운동이었다.

그런데 흑인정권이 들어서자 체육위원회를 흑인들이 장악하고 럭비팀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려고 한다.

백인들이 부르던 "스프링복스"라는 럭비팀의 이름을 바꿔버리고

전통적인 녹색 유니폼 색깔을 바꿔버리려 한다.

그것을 만델라는 온몸으로 막아선다.

그것을 빼앗기면 자신의 나라의 절반의 동지인 백인들을 잃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1년 후 남아공에서 있을 럭비월드컵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남아공에서 럭비는 스포츠 이상의 것이었다. 바로 흑과 백을 연결시키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만델라(모건프리먼 분)와 럭비 국가대표팀의 주장인 프랑소와(맷 데이먼 분)  와의 대화였다.

프랑소와를 직접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그를 격려하며 만델라는 그에게 묻는다.

"리더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리더는 영감을 끓어 내는 사람이다.

영감은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수단이다.

영감을 불어 넣을 때,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것 까지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독방에서 있었을 때, 자신을 쓰러지지 않게 지켜 주었던 것을 이야기 한다.

그것은 과거의 지혜자들로 부터 왔던 주옥같은 싯귀였다.

그 영감어린 싯귀들을 통해 그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 건내 주었던 시가 감방에서 썼던 "인빅터스"라는 시였다.

거기서 영감을 받은 프랑소와는 팀을 결승까지 이끌고 결국 자신들의 능력이상의 결과를 얻게 된다.




리더란 영감을 불어 넣는 사람이다. 영감은 사람의 잠재력을 끓어 내어 놀라운 것들을 하게 만든다.

리더가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영감어린 싯귀 속으로 빠져들어가 본다.

설교도 마찬가지다. 설교는 영감을 불어 넣는 작업이다.

설교를 준비하며 설교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야 한다. (반드시)

그리고 그 영감은 설교의 딜리버리를 통해 회중들에게 전달 되어야 한다.

영감을 불어 넣는 설교자가 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의 잠재력 이상의 것을 끌어 내어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영감어린 설교자 말이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3. 11. 06:13

사역이란 무엇인가?

나는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 생각한다.

영적, 정신적, 정서적, 육체적으로 아파 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비전을 발견하게 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끔 세우는 일이 사역이라 생각한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직후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신다.

나사렛 회당에 가셔서 자신의 사역의 방향가 성격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신다.

나는 사역의 성경적인 기반을 이 말씀에서 찾는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역의 성공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회복되고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했느냐 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 현실은 사역의 성공의 기준을 거기에 두지 않는다.

단지 숫자는 말하고 있다. 그 사역자의 능력을....




종암 교회는 내가 처음 교회 사역을 시작한 곳이다.

이제 3년 째 고등부를 섬기고 있다.

처음에 교회에 갔을 때, 고등부 숫자가 30-40명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내가 사역을 시작한 그해 75명까지 예배를 드린 적이 있으니 그야말로 큰 양적 성작이 있었다.

1년 후 전임 사역지를 찾아 교회를 떠난 다는 것을 부장님은 전도사님 놓치면 안된다고 장로님들을 설득시켜 남게 된다. (사실이다^^)

그 다음 해는 그해만은 못했지만 여전히 고등부 예배 출석 인원은 60명에 육박했다.

은근히 내 안에 그 전 전도사님과 비교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은 그 전 전도사님의 설교는 잘 안들어 왔는데 전도사님의 설교는 잘 들어오고 재밌다고 했다.

'그래 내가 이렇게 잘 하니까 숫자가 느는 거야 우후~'

나는 겸손하지 못했다.

그리고 3년 째 되는 올해 첫 주 인원은 충격적이었다. 39명...쩜쩜쩜

그리고 지금도 40명을 채우지 못하고 30명 즈음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내 안에 자괴감과 실패감이 몰려 왔다.

물론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고3 인원이 스무명 넘게 빠져 나갔는데 중3친구들은 9명 밖에 안왔으니까....

그러나 나는 이 사태를 맞으며  내 안에 근본적인 교만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역이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 내가 잘해서 잘 된 거라는 생각.

무엇보다 잘 못된 생각은 다름아닌 예수님의 사역기준으로 내 사역을 바라 보지 않고

사람들의 기준 그러니까 숫자의 기준으로 내 사역을 판단하려 했던 것이다.

그동안 나의 힘으로 하려했던 사역의 주도권을 다 내려 놓는다.

하나님이 하시게 해야 한다.

양적인 성장은 차치하고, 영적 성장을 꽤해야 한다.

영적인 치유와 영적인 터치, 영적인 갱신이 우리 공동체 안에 일어나길 위해 기도한다.

사역이 나를 겸손케 한다.

오늘 겸손히 무릎 꿇고 주님의 얼굴을 구해 본다.

"주여 기름부어 주소서~ 기름부으심이 내 사역에 넘쳐 흐르게 하소서

가난한 자 억눌린 자, 포로된 자, 병든자들을 나를 사용하시어 고치소서

겸손히 주님을 구하며 동행하는 사역되게 도와 주소서"

사역이 나를 겸손케 한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3. 9. 18:36

사람이 욕심이 생기면 염치도 눈치도 없어진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갖고자 하여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요즘 내 맘에 올라오는 욕심 죽이기에 지쳐 있다.

이건 뭐 두더지 잡기도 아니고

무슨 욕심들이 이리 자연스럽게 내 맘을 지배해버리는지....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낫게 된다.

새롭게 생긴 이이팟과 노트북의 주변기기들을 둘러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놀랜다.

예전에 이런 거에 전혀 관심 없던 녀석이 뭐가 씌어서 이러니???

그냥 포기하면서 살아라~~~




한 가지 긍정적인 현상이 있다.

작년에 매일 야구에 빠져 살았는데.... 거의 병적이었다.

기아가 V10을 이루고 나서 결심했었다. 이제 야구에 빠지지 않기로....

올해는 긍정적이다. 시범경기 시작했는데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아예 스포츠면으로 눈길이 가지 않는다.

주님이 도와주시고 있는 것 같다.

욕심을 억제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지 못하리....

나의 작은 승리에 스스로를 칭찬해준다.

그리고 그 외의 영역에 대한 모든 욕심을 제어하고....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리라~~

Posted by speramus
묵상2010. 3. 5. 06:48
  1.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2.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3. 또 네  설주와 바깥 에 기록하라
 
 
  1.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의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
  3.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
  4.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에서부터 서해까지라
  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밟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모세의 노파심일까?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하라고 하신 명령과 말들을 잊어버리지 말 것을 당부한다.

마음과 뜻에 세기는 것가지고는 모자라니 손목에도 감고 이마에도 붙여서 표를 삼으라고 한다.

(뜻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네페쉬로서 사람의 온 인격과 전 존재를 말한다. 즉 말씀이 개인의 인격과 삶 전체에 녹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디가든 그 명령이 눈에 보이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것가지고도 모자라니 길을 가든지 누워 있든지 집에 있든지 장소를 막론하고 그 명령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한다.

말씀이 개인의 삶과 인격에 머무를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명령이 행해지기를 바라는

모세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아이팟을 2달 전부터 쓰고 있다.

아이팟을 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단어는 동기화이다.(syncronize)

아이팟과 pc를 연결해주는 아이튠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팟의 자료를 컴의 자료와 똑같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pc는 인터넷을 통해 무궁한 자료들을 보관할 수 있고 그 자료들은 다시 아이팟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자료들을 나는 버스안에서든 길을 걸어갈 때든 누워있을 때든 즐길 수 있다.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면서 동기화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 삶이 어디 있든 어떤 모양이든 하나님의 말씀(좁게는 성경, 넓게는 하나님의 음성)에 동기화를 하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 수없이 많은 보물들과 하나님의 마음들이 나의 마음과 인격에 들어오게 된다.

나는 어디 서든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하여 하나님 그분과 연결되어 동기화될 수 있다.

그분의 놀라운 것들이 모두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 성화의 교리를 설명할 때, imitation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더라.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은 후,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살아가려고 그 분을 따라하다보면 그분의 인격을 닮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늘 싱크(동기화)되고 하나님의 좋은 것들을 내 안에 담아갈 때, 이 또한 이미테이션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하나님과 동기화되는 삶 살아가게 도와주세요~ 아멘



Posted by speramus
묵상2010. 3. 4. 07:03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위에 있느니라
 네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신명기 11:10-14)

모세는 애굽땅과 가나안땅을 서로 대조하며 땅의 모티브로 백성들을 권면하고 있다.

애굽땅은 어떤가?

일반적으로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힘을 쓰고 손을 써야 하는데, 발로 물을 댈 정도로 물이 풍부함을 표현한 것 같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별로 필요 없어 보였던 땅이다.

그런데 새로운 약속의 땅 가나안은 어떤가?

비가 잘 내리지 않을 뿐더러 내린 비도 잘 빨아드려 버리는 악조건의 땅이다.

실제로 성지순례를 가보니 이 말씀이 이해가 됐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세밀한 역사하심이 없이는 버티기 힘든 땅이다.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어려움이 많다는 것은 유혹거리도 많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닌 다른 신들 섬기고자 하는 유혹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모세는 강력하게 권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그러나 다른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벌은

땅이 소산을 내지 않고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16절)

포인트는 간단하다 모든 공급이 풍성해 보이지만 정작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여러 유혹꺼리도 있고 갈등거리도 있는 척박한 땅이지만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가 있고 익사이팅한 채우심이 있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척박한 땅, 많은 것이 부족한 땅에 사는 나와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하면서 살 것인지 잘 알려주는 말씀이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만 사랑하면 살 것인가? 아니면 다른 신을 섬기며 의지하며 살 것인가?

오늘 아침 주님이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니? 라고 물어 오신다.

새벽에 일어나서 세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무릎꿇고 기도를 시작할 것인가?

성경을 펴고 묵상을 시작할 것인가?

아이팟을 눌러 트위터를 확인 할 것인가? (또는 새로산 컴을 켜서 만져 볼 것인가?)

오늘은 다행히 말씀을 선택했다. 기도는 학교 침묵기도실에서 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컴과 아이팟이란 놈은 나의 삶에 있어 새로운 시험거리다.

애굽의 소산물이라 할까?

보기만 해도 풍성해 보인다. 하지만 그 것에 빠져 있는 동안 하나님은 없다.

정말 그렇다.

처음이니 적응하기 까지 시간을 많이 투자해도 되지뭐.... 하면서 위로도 해 보지만

그건 아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절대적인 시간과, 삶을 반추하는 시간을 이 녀석들이 완전 많이 갈아 먹었다. (근 몇 주동안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표현으로 팟과 맥의 사용시간을 절대적으로 줄인다.

주님 제 마음 아시죠?

척박한 땅에서도 하나님 바라며 살아가는 인생 되게 도와주세요

-아멘-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3. 1. 09:22

성경을 읽다 보면 뒤를 돌아 보는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예수님도 쟁기를 갈다 뒤돌아 보지 마라하시고

롯의 아내는 뒤돌아 보다 망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하지만 뒤 돌아 볼 것에 대해 말씀하기도 한다.

너희 조상들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삶의 흔적을 되짚어 보면 그 발자국 하나 하나에 깃들여진 주님의 인도하심과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가끔 내 삶을 되짚어 보는 걸 좋아 한다.

과거의 발자국을 되짚다 보면 현재 내가 여기 왜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나의 전공에 관한 이야기는 그 좋은 예이다.

나는 법학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세계사, 세계지리, 영어, 음악 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때부터 세계에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세계사는 시간에 관한 것이고 세계지리는 장소에 관한 것이고, 영어는 그 시간과 장소에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수단이니 말이다.

음악은??? 음악은 만국 공통어 아니겠는가?

흥미상으로 보면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나의 흥미와 관심분야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던듯 하다.

이것은 단순한 내 흥미에 지나지 않았고, 문제는 나의 꿈이었다.

나의 꿈은 소소했다.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중학교 때 영어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었는데 나를 많이 예뻐해주셨기 때문이다.

시골 중학교에 영어 사전을 찾아 보는 사람이 나 혼자뿐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중학교 1학년인데 사전도 찾을 줄 안다고 칭찬해 주었다.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비웃겠지만 그 당시 시골 중학생들의 수준이란게....쩝)

선생님이 좋았던 것보다 칭찬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나는 영어선생님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을 절감했다.

성적을보나 가정형편을 보나 서울의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무리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방 국립대다.

지방국립대에서 문과중 가장 높은 과는 단연 영어교육과다.

15명 정원에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다. 그들은 일이등급의 학교에서도 내로라하는 아이들이다.

경쟁이 되겠는가??

가족 모두는 안된다고 했다. 쓰면 무조건 떨어진다 했다.

그러나 나는 막연한 희망으로 나 자신을 고문하고 있었다.

배짱지원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조건이 붙었다.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떨어질지 모르니

2지망으로 가족들이 원하는 과에 넣라고 했다.

그 때 2지망을 영문과로 했어야 하는 건데, 법학과로 한 것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ㅠㅠ

가족들의 원대로 1지망 영어교육 2지망 법학과로 원서를 지원했다.

결과는 이미 뻔한 것이었다. 2지망 법학과 합격.

이런 ㅠㅠ

이 때부터 나의 삶의 방황이 찾아온다. 법학은 나에게 전혀 흥미가 없는 분야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수업을 빼먹기 일수였다.

흥미없는 과목들을 들으려 하니 재미도 없었다. 글루미 후레시맨~~

1학년 끝내고 군대를 갔다. 재대했는데도 법학에 대한 나의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최선은 아니더라도 수업만은 잘 듣자라는 생각으로 수업은 빼먹지 않았다.

성적은 시들시들했다.

내가 법학을 싫어하는 이유중 하는 법학도들의 허왕된 욕심 때문이다.

청운의 꿈이라는 명목하에 고시패스를 우상으로 섬기는 무리들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학내내 고민한 것은, "왜 하나님은 나를 법학과로 보내신 걸까?"

어떤 사람은 그건 니가 선택한거야 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은 내가 했어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이 질문은 계속 나를 자극했다.

대학졸업후에 어느 정도 그 질문에 답이 생긴 거 같다.

나는 정말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감정의 기복도 심하고 논리라는게 없는 사람이었다.

느낌가는대로 기분가는대로 움직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법학을 하면서 하나님은 그런 나를 훈련시키셨다.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따지는 훈련, 효력을 따지는 훈련 등이었다.

무엇보다 책을 싫어하는 나에게 법학전공서적은 고문거리였다.

시험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그 두꺼운 책을 읽어보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이 또한 나에게 엄청난 훈련이었다. 두꺼운 책을 읽고 정리하는 훈련.

또한 법학강의같이 딱딱한 강의 3시간을 연짱으로 소화하다보니

역사학과나 인류학과 등의 인문학 강의는 정말 식은죽 먹기 같았다.

강의에 대한 내성이랄까? 이것은 나중에 신학교에 와서도 도움이 됐다.

신학교의 딱딱한 3시간 강의도 그에 못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길지만 이런 훈련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준비시키셨다.

무엇을 위한 준비일까? 이것은 또다른 중요한 질문이다.

이질문 또한 뒤를 돌아보니 헤아릴 수 있었다.

법학에 취미는 없었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율법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전공자와 같을리는 없었다.

(이걸 전문용어로 리걸마인드(legal mind)라 하나?)

율법을 하나의 법체계로 생각한다면 율법의 효력은 무엇이며 그 사회안에서 율법의 위치는 어떤 것이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늘 있었다.

그래서 성경의 율법을 법학적인 시각을 가지고 연구해보는 것도 흥미롭겠구나 라는 생각만 조금 가지고 있었다.

그 땐 법학이 싫었기에 그런 생각만 했지 엄두를 못냈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지금 나는 장신대 일반대학원 구약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구약을 하면서 모세오경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모세오경은 모든 구약성경의 기초를 이루는 책이었고, 그 중요도는 상당해 보였다.

모세오경을 연구하면 구약전체가 잡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학원 논문의 주제를 모세오경중에서 율법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려고 한다.

일명 'torah' 토라라 불리우는 율법은 성경에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석사과정에서는 토라의 개념에 관한 연구를 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생각해본다.

박사과정은 좀 더 확장하여 이스라엘 법체계를 연구해보고 싶다.

성경에 보면 율법, 계명, 율례, 명령 등등 법률에 관한 용어들이 등장한다.

이런 용어들이 그냥 무의미하게 사용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법체계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체계는 고대근동의 다른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고대근동 문화와 언어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요구될 것 같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이스라엘 유학이었다.

이스라엘 유학을 통해 고대 근동언어를 포함해서 히브리어를 마스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스라엘에서의 그 언어적인 수단과 문화적인 경험들은 연구에 있어 좋은 백그라운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결국 뒤돌아 보니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모두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원망하면서 들었던 법학은 현재 나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나침반이 되었다.

현재 겪는 모든 것들 그것이 고난과 환란이라도 결코 무의미한 것은 없다.

가끔 뒤돌아 보자. 그리고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하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나의 과거는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풍성한 통찰력을 허락하리라 믿는다.

마무리 하면서 현재 나의 삶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리라고 다짐해본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3. 1. 08:22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겨야 겠다고 주말에 몇개의 테마를 생각해 두었었다.

주일 사역 준비로 주말에 하도 바빠서 글쓸 시간이 없어 나중으로 미뤘는데

월요일 아침이 되니 머리가 하해졌다. 이런....

역시 흐릿한 잉크가 또렷한 기억보다 오래간다는 말이 맞구나.

메모 습관 기르기....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2. 26. 23:30

금요일만 되면 설교의 압박감에 시달리기까지는 아니지만 부담이 팍팍 된다.

설교가 술술 잘 풀리면 좋지만

그럴 땐 별로 없다.

수많은 고뇌와 묵상과 수정과 고민을 통해 한 편의 설교가 나오지만

100% 만족스러운 설교는 없다.

오늘 설교도 앞 뒤 가닥이 잘 연결이 안된다.

이럴 땐 뭐해야 한다구? 기도해야지....

설교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내 편에서는 부담을 안 가져도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뭘 말씀하시는지만 잘 듣고 잘 전하면 된다.

설교 준비에 있어 내 힘을 빼고, 내 욕심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
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10. 2. 2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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