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감으로 곶감을 만들지는 않는다.
단감으로 홍시를 만들지 않는다.
곶감과 홍시의 단 맛은 단감의 단맛과는 그 맛의 깊이에서 차이가 있다.
떫은 감을 먹는 사람은 없다.
떫은 감은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처절한 자기변혁(?)을 시도한다.
부드러운 홍시든 쭈글 쭈글 말라버린 곶감이든,
딱딱하고 떫은 자기 전 존재를 변화시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과감한 자기 변혁이며 피 말리는 자기 성찰과 연단의 결과이다.
딱딱한 상태 그대로 있으면 감은 결코 떫은 맛을 버릴 수 없다.
자기 몸을 유연하고 부드럽게 만든 대가로 그의 삶에 단맛이 보상되어진다.
찬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은 떫은 감의 자기 변혁에 있어 필수조건이다.
찬 바람이 불어지면 떫은 감은 자연스레 주홍빛으로 성숙되어진다.
말려지든 진홍색의 홍시로 변하든 따스한 햇살은 그의 온전한 변화를 돕는다.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내 안에 있는 떫은 맛 때문에 나 자신이 너무 싫어 질 때가 많았다.
특히 결혼하고 나의 떫은 맛은 종종 아내를 울상이 되게 만들었다.
이 떫은 맛을 어찌하리~
난 떫은 감으로 태어났으니 내가 싫으면 뱉으라 말할 수 없다.
나의 존재는 떫은 맛 투성이지만 나의 존재의 부르심 자체는 타자에게 단맛을 흘러 보내는 것이다.(창 12:1~3)
나는 하나님의 신성한 단맛에 참여하는 자로 변화되어갈 부름이 있다. (벧후 1:4)
나는 끊임없이 내 안의 떫은 맛을 담고 있는 딱딱함과 싸워야 한다.
딱딱함을 제하고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터득할 때
나는 스위트한 존재로 변혁되어 갈 것이다.
치열한 자기성찰과 자기변혁 없이는 이뤄질 수 없음을 떫은 감을 묵상하며 깨닫는다.
나는 오늘도 나의 딱딱한 내면과 직면(confrontation)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숨결(루아흐, 프뉴마)이시며 하나님의 바람이신 성령님의 터치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한 여름의 태양보다 더 뜨겁고 따사로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온전히 나를 내어 맡긴다.
성령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떫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변혁시킬 수 있는 필수조건인 것이다.
나의 딱딱함은 오늘도 그분의 따사로운 사랑으로 부드러워지고 있다~
나는 그분의 유연함과 포용을 통해 그분의 달디단 성품을 본받고 그 성품에 참여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나의 선생이신 곶감 하나를 입에 물고 한 참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