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약, 약한 약>
철학이 약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풀어쓰자면, 진리가 인간의 내면의 깊은 병과 운명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궁극적인 치료약이 될 수 있는가 정도일 것이다.
보에티우스(AD. 475- 525)는 이미 멸망한 서로마 출신으로 동로마의 집정관의 지위에까지 올라선 철학자이며 정치가였다.
그는 콘스탄티노플과 로마교회의 수위권 논쟁에 휩싸여 모함을 받게 되고 결국 억울하게 투옥되어 처형당하게 된다.
사형 선고를 언도받고 죽음 앞에 놓인 보에티우스는 절망에 휩싸인 채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국가의 집정관의 위치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그였지만 스스로 인정할 수 없는 죄목으로 재판도 없이 사형 선고를 받는다.
죽음의 공포뿐만 아니라 불의에 대한 분노로 자기 상실에 빠져 있는 보에티우스가 이를 극복하고자 선택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가 평생 추구해 온 '철학'이었다.
그는 철학을 도피처로 삼아 철학의 여신과의 대화를 통해 불행해 보이는 자신의 운명에 맞서 인간이 어떻게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삶의 실천적인 지혜를 엮어내 <철학의 위안>라는 책을 완성해 낸다.
철학이 혼란에 빠져 있는 보에티우스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당분간 좀 약한 약을 너에게 쓰기로 한다. 이는 너에게 엄습한 불안과 동요로 비뚫게 굳어진 너의 마음이 더 강한 약을 받을 수 있도록 부드러워지게 하기 위해서다."
보에티우스는 죽음 앞에서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절망'에 빠진 환자였다.
그의 병은 삶을 직관하고, 삶의 참모습을 발견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 발견과 직결되어 있는, 철학적으로만 치유될 수 있는 '철학적 병'이었다.
철학은 무엇일까?
철학은 삶에 대해 묻는 것이다.
철학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철학은 삶의 참모습과 진정한 의미를 발경하기 위한 몸부림이기에 모든 인간은 철학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의 여신은 '철학'을 '강한 약'이라 말하며 굳어진 마음이 강한 약을 받을 수 있도록 약한 약을 처방해 준다.
약한 약은 '감정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약'이다.
상한 감정과 억눌린 감정의 치료가 있은 후에 궁극적인 약이며 강한 약인 '철학'을 투여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달리 풀어보면, 감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열매이고 증상이며, 내면의 깊은 곳에는 이성이 뿌리를 내려 작동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의 치유 없이 궁극적인 치유, 영적인 치유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다른 말로 감정적인 치유는 표면적인 치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궁극적인 치료는 '강한 약'을 통해서이다.
나는 이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에 나오는 강한 약과 약한 약의 개념을 우리 교회 현실에 적용해 보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며 나아갈 바에 대해 고민해 본다.
대학생 시절 'DTS'를 받은 적이 있다.
디티에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코스가 '치유(healing)'이다.
내가 지금 판단하기에 그 것들은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치유의 단계였던 것 같다.
그 치유의 과정 이후에 진리를 집어 넣는 코스들이 있다.
세계관이나 제자도같은 강의들이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약한 약을 통한 내면의 치료 이후에 강한 약을 통한 궁극적인 인생의 의미 발견과 진리 발견을 돕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 같다. (굳이 해석하자면...^^)
교회는 '약한 약'으로만 성도들을 치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설교와 교회 활동들이 감정의 치료와 감정의 처리에 관한 것을 돕는 것들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찬양이 전부가 아니다. 딱딱한 말씀을 먹어야 한다. 진리를 먹어야 한다.
교회는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약한 약으로 치료했다면,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였다면 한 발짝 더 나아가 강한 약으로 그의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도와야 하는 것이다.
우리 교인들이 겪는 대부분의 병은 철학적인 병이라 할 수 있다.
보에티우스처럼 운명 앞에서 죽음 앞에서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절망'에 빠진 환자들마냥 갈바를 모른 채 방황하는 교인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의 병은 삶을 직관하고, 삶의 참모습을 발견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 발견과 직결되어 있는, '철학적 병'이다.
교회는 그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어야 한다.
상처에 약만 발라 줄 것이 아니라 근육을 만들어 뛰게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구약학을 전공했지만 이제 강한약을 전공할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심어주고 자라게하며 달리게 하는 그런 강한 약 말이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