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14. 7. 25. 17:21

<공감과 연대...인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오늘 한 장로님 댁에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이분은 굴직한 건설회사의 이사까지 지내다 2년 전에 퇴직하신 분이십니다.
장로님께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시면서 자신은 퇴직하기 전까지 사회 하층민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었다고 고백하시더군요.
퇴직해 보니까 내가 공감하지 못했고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이 느껴지고 보이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퇴직하시고 1년 동안은 자가용 타고 다니셨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서서 기다리는 것도 뻘쭘하고 다른 사람이 볼 것 같아 도저히 탈 수 없으셨답니다.
그러다 버스를 타기 시작하셨고 지하철을 타기 시작하면서 차로 다닐 때 보지 못했던 이웃들의 모습이 보이더라는 겁니다.



장로님께서 이런 맥락에서 한 가지 더 말씀하신 것이 자신의 군대 이야기였습니다.
장교로 지원할 수도 있엇는데, 육군 예비역 병장으로 전역을 하셨답니다.
이유는 복무기간이 짧았기 때문이었답니다.
근데 막상 사병으로 근무해보니까 장교와 사병의 위치와 처신이 하늘과 땅차이라는 것을 느끼며 사병으로 온 것이 후회가 되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사병으로 오기를 잘 했다고 느낀 것이 민초들의 고충과 사회 하층민, 기층민들의 삶을 경험하게 됐다는 겁니다.
중졸자들의 회한과 눈물을 보았고 가난한 자들의 한숨을 듣게 되었다는 거죠.
참고로 이 분은 대학을 안암동의 K대(일명 스카이 명문)를 나오신 분이셨고 장교로 갔다면 본인은 그걸 경험하지 못하고 기고만장하여 사람들 위에 군림한 것만 배웠을 거라 소회를 말씀하시더군요.



다시 퇴직 이야기로 돌아와서 퇴직하시면서 가장 큰 변화가 눈물이 많아지셨다는 거랍니다.
아니 없던 눈물이 생기셨답니다.
퇴직 후 가난한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리어카 끌고 다니며 폐지 줍는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하셨답니다.
그러면서 그런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계시는지 공감이 가기 시작하셨답니다.
내가 어려워져 보니까 공감이 가고 그들의 자리에 서 볼 여유가 생긴 것이지요.



저는 이 장로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과 연대'라는 단어를 떠올려 봤습니다.
장로님의 변화는 인간스러움의 회복에 있다고 봅니다.
인간스러움이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아픔에 동참하는 공감이 아닐까요?
어려운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에 손 내밀 줄 아는 연대감이 있는 것이 지극이 인간다운 모습이죠.
공감과 연대는 바로 리더가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공신력을 잃어 버린 것이 바로 이 시대의 레미제라블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지 못한 이기적인 동아리로 축소되어버린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성경은 반대로 비참한 진창과 수렁에 빠진 사람의 운명에 동참할 수 있는 동정심이 바로 하나님과 영적으로 소통하는 지점이라고 피력합니다. 
레미제라블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자비와 동정이 바로 공신력을 되찾을 수 있는 좌표인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불쌍하고 가난한 이웃의 삶에 가슴 깊이 공명할 수 있는 그런 감수성, 공감과 연대감을 갖는 것이 우리네 교회의 가장 큰 숙제인 것이지요.
이런 감수성이 이 시대의 리더가 갖출 가장 중요한 능력이요 자질이라 믿습니다.



이회창씨가 연속으로 두 번이나 대선에서 물먹은 이유를 아는 선생님께서 이렇게 분석을 하시더군요.
이회창씨는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사법고시를 통과하며 이시대의 엘리트 코스란 것을 다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회 기층민들의 삶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능력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목포상고 출신에게 밀리고, 부산상고 출신에게 밀린 거라는 거죠.
상고 출신은 인생의 바닥을 경험했던 사람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런 사람들의 삶을 간접 경험하고 이해할 줄 알았을 거라는 거죠.
빗나간 말이지만, 동작을 나경원 후보는 너무나 엘리트 코스만 밟아 왔습니다.
그 분이 흑석동 산동네 판자촌의 휴지줍는 꼬부랑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며 공감할 능력이 있을까요?
글쎄요~~??
적어도 오늘 만난 장로님의 고백에 의하면 당신이 퇴직하시고 바닥에 내려오기 전까지 그런 삶을 이해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그러시더군요.



다시 돌아와서... (몇 번 돌아오는건가?? 이제 그만 돌아가자 ㅎㅎ)
이 모든 맥락에서 저에게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염산교회와 성북구 종암동에 있는 종암교회에서의 사역은 큰 특권이라 생각됩니다.
이 시대 레미제라블들의 삶을 가장 근접하여 경험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곳에서의 사역경험에서 싹트는 공감과 연대의 능력은 나의 삶과 사역의 자양분이 되어 나를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려서 살 소망이 끊어진 사람들의 아우성을 대변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죽어서 갈 천당만 생각하는 영적 이기주의자들의 동아리로 축소 되어어서는 안됩니다. 
벼랑끝에 내 몰린 사람들의 삶에 깊이 공감하며 그들의 삶에 연대해야 합니다.
또한 그런 공감과 연대의 감수성을 가진 젊은 지도자들을 길러 내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들은 강남의 8학군이 아닌 염리동의 숭문 고등학교나 북아현동의 중앙여고에서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시대는 공감과 연대의 감수성을 지닌 지도자를 원합니다.
지극히 인간다운 지도자 말입니다.
이웃의 희노애락에 깊이 공명하며 울줄 알며 울릴 줄 아는 인간다운 사람,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그립습니다.
공감과 연대에 대한 글을 여기서 마무리 하려 합니다. 바이 짜이찌엔 ~ 긴 글 읽어 주어 감사합니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