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에 대한 불편한 진실>
성경에서 요한계시록 처럼
읽기 꺼려지고 오해가 많고 해석이 다양한 책도 없다.
계시록을 보는 우리의 불편한 진실은 대충 이렇다.
1. 맨 마지막 책이기에 종말론에 있어서는 가장 권위있다?
이것이 계시록에 관한 가장 큰 오해다.
일단 계시록은 무조건 종말론이란 공식을 갖다 댄다.
종말이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벌어지는 일이다.
책의 배치로 그 무게를 가늠하는 것은 유치하다.
그렇다면 창세기가 맨 먼저 나오기에 가장 중요한 책이란 말인가?
2. 다른 성경의 계시와 예언을 삼켜 버리려는가?
계시록 외에도 종말이나 계시적인 책들이 있다.
계시록으로 모든 예언과 계시와 묵시를 다 싸잡아 버리려는(wrap up) 위험하다.
3.계시록은 미래에 관한 시나리오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다?
계시록을 마치 미래에 반드시 그렇게 일어날 사건들을 묘사한 책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계시, 정확히 말해서 묵시를 오해한 것이다.
묵시란 박해와 핍박의 상황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임할 구원에 대한 소망을 암호적인 문장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글이다.
암호적이란 말이 중요한 것 같다.
예를 들면 그 로마의 박해 당시 666 하면 짐승의 숫자로 특정인을 가리킨다라는 것을 아마도 성도들은 알았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스냅사진의 한 장면으로 오해해서는 안될 부분이다.
계시록을 사진체의 사실주의로 읽지 말라!
4. 교리로 끌어 내기엔 위험한 책이 아닌가?
3번 내용과 이어지는 내용으로 계시록은 함축적이고 시적이면서 간단한 문체(Simple sentence)로 기록되었기에 이 책으로부터 교리를 끌어 내는 것은 위험하다.
이 또한 묵시라는 특정한 장르 때문이기도 하다.
5. 재림 예수께 모든 악의 처리를 맡겨 버리는 것 아닌가?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세상의 악의 문제 고통의 문제는 끝이 난다.
그 날을 간절히 소망하자는 식의 태도 안에는
우리가 감당해야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재림은 반드시 있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저 피안의 세계에서 가현적으로 도래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고 맛보지 못하면서
종말에 그것을 갈망하는 것은 책임회피이다.
하나님 나라는 공의(법적인 정의)와 정의(신적인 친절)과 사랑의 가치가 다스리는 나라다. 가현적인 나라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가치가 다스려지는 곳,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다.
이를 위해 악의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악의 문제를 처리하고 공평과 정의 사랑이 실현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가 감당해야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책임이요 의무인 것이다.
재림 예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는 정말 나쁜 짓이다.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개인의 영혼 구원에 구원의 포커스가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뤄가는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