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체스터의 봄이 흥미롭습니다. 기온이 오르락 내리락, 비가 왔다 눈이 왔다, 해가 비쳤다가 바람이 불고 참으로 다채로워 우리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참으로 많은 계절을 통과하게 됩니다. 많은 사랑과 격려를 받고 성장해야 하는 청소년기는 마치 인생의 여름날과도 같습니다. 중년에 접어들어가면 인생은 혹독한 겨울을 맞게 되는 같습니다. 사람들은중년의 위기라는 말을 통해 혹독한 계절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자녀들이 성장해가면서 생기는 자녀들과의 불협화음, 노년을 준비해야 하지만 정작 인생에 이룬 것이 없다고 생각될 오는 허탈함과 공허감이 중년들을 괴롭힙니다. 주변에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겪고 있는 친구들이나 명을 달리한 친구들의 이야기는 인생을 무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중년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를 바라십니다.  타울러라는 사람은 중년기의 관건이 되는 것은우리 자신을 하나님에 의해 비워지고 벗겨지게 하여 그분께서 우리에게 은총의 옷을 입혀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중년의 위기는 사람이 폐쇄된 존재로 자기 자신 안에 머무를 것이냐 아니면 자신을 하나님과 그분의 은총을 향해 개방할 것이냐가 결정되는 중요환 전환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공허감과 삭막함을 통해 영혼의 심연으로 인도될 있습니다. 진정한 나의 자와와 마주할 있는 기회가 중년의 위기에 누리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영혼의 심연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미지와 느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 나의 자아가 아니라 나의 모습과 마주할 있게 됩니다. 중년의 위기는 나의 심연 속에서 나의 모습과 마주할 있는 전환의 시기입니다. 인생의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아름다워질 있는지가 결정됩니다. 

  교회 옆의 길가를 따라 걷다보면 지난 달에 밑둥이 잘린 나무의 그루터기를 만나게 됩니다. 가까이 다가가 그루터기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나이테가 너무나 선명하고 진한 향기를 발하더군요. 겨울을 지나며 나무는 성장은 멈추지만 더욱 깊어져갑니다. 나이테의 진한 테두리들은 모두 겨울을 지나며 침잠하며 아로 새겨진 나무의 마음 무늬입니다. 겨울에는 이파리를 떨궈내고 자신이 심겨진 자리에 멀뚱이 서서 나무는 그렇게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깊은 침잠 속에서 그는 향기와 진한 빛깔을 얻는 것이겠죠. 사람인들 그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인생의 시련들은 혹독하게 여러분을 괴롭힐지 모르지만, 시련과 고난들은 나의 자아를 만날 있도록 도와줍니다. 나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총을 향해 개방할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한 위기 앞에서는 외부적인 것을 고치려하는 것보다 나의 내면을 만지고 내면을 살피는 것이 현명합니다. 우리가 통과하는 혹독한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깊어지고 향기로워질 거라고 그루터기의 나이테는 웅변해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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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따뜻한 날씨에 꼭꼭 숨겨두었던 여름 옷을 꺼내 입는 호사(?) 누렸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우린 의례적으로 입었던 지난 날의 옷을 모아 보관해 두고, 계절에 어울리는 옷을 꺼내 입게 됩니다. 새로운 계절이 새로운 옷을 입게 하듯, 예수 안에 새생명을 누리는 부활의 계절은 우리로 새옷을 입게 만드는 같습니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을 입으십시오(2:22-24).” 다하나 교회에 와서 지난 주일 처음으로 저는 세례를 행했습니다. 세례야 말로 부활절과 너무 어울리는 성례인 같습니다. 사람을 벗고 사람을 입는 갱생과 갱신의 언약식인 세례와 봄도 너무나 어울립니다. 

  농군의 아들로 자라온 저는 교회 주변을 걸으며 항상 들녘의 밭을 주목하여 보곤합니다. 눈이 쌓였을 때는 밭의 눈은 언제 녹을까 궁금했고, 눈이 조금씩 녹으며 까만 흙이 속살을 드러낼 때는 작은 감격이 안에 꿈뜰대는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완연한 봄을 맞았기에 농부들은 밭을 언제나 갈아 엎고 씨를 뿌릴까 기다려졌습니다. 이번 금요일에 교회 건너편의 주인이 드디어 밭을 갈아 엎기 위해 트렉터를 몰고 밭을 누비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씨가 뿌려지겠구나. 생명이 움트며 밭도 이제 푸르른 생명의 빛깔로 변모하겠구나. 밭도 의례적으로 푸르른 옷을 입으며 계절을 기념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들떳습니다. 어릴적 4 말경에는 항상 벼의 싹을 틔우기 위해 통에 볍씨를 붓고 물을 채워 싹을 틔우던 기억이 납니다. 농사에 있어 시즌은 정말 중요한 계절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부활의 계절에 우리가 뿌려야할 씨앗은 무엇일까요?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가 뿌려야할 씨앗이 정의라고 말합니다.  정의(쩨데크) 뿌리고 사랑(헤세드) 열매를 거두어라. 지금은 너희가 주를 찾을 때이다. 묵은 땅을 갈아 엎어라. 주가 너희에게 가서 정의(쩨데크) 비처럼 내려 주겠다(호세아 10:12).” 새로운 계절, 묵은 땅을 기경하여 우리가 뿌릴 씨앗은 정의, 쩨데크입니다. 정의(쩨데크) 심었더니 사랑(헤세드) 열매 맺더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합니다. 정의는 사랑의 다른 이름인 것이죠. 쩨데크는 회복적 정의라 말씀드린 있습니다. 공동체 내의 가난한 자들이 불행해 지지 않도록 잉여 생산물들이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그래서 정의라 쓰고 사랑이라 읽는 것이죠. 주님이 새로운 계절에 정의를 비처럼 내려 주시길 기도합니다. 곳곳마다 사랑 없다 탄식하는 메마른 위에 정의의 단비가 내리길 기도합니다. 사랑이 열매 맺는 곳마다 나눔의 풍성한 잔치가 벌어질 것이기에 정의의 단비를 사모합니다. 새로운 계절에 우리가 입어야할 옷은 정의의 빛깔을 내고 사랑의 향기를 내는 푸르른 마음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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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풀리니 여러 모로 좋습니다. 무엇보다 겨우내 추위 때문에 꺼려졌던 산보를 하니 좋습니다. 교회 주변의 길을 따라 가다보면 속으로 있는 길이 있습니다. 햇살을 맞으며 눈을 감고 걷노라면 소리들이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다양한 종류의 새소리인데 모두들 봄이 와서 신났다고 재잘거리는 같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걸으면 해결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로제 드루아라는 사람은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있었던 이유는 걷기를 통한 사색의 힘에 있었다.”라고 말하며 걷기가 인간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말했습니다. 참으로 그렇다는 생각을 걸으면서 많이 합니다. 걸을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걷기를 통해 많은 유익을 얻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걷기와 기도의 상관 관계는 매우 깊어 보입니다. 제가 가장 선호하는 기도 방법, 그러니까 하나님과 대화하는 방법은 걸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속이나 숲속 아니면 잔디밭을 걸을 하나님과 깊이 접속하게 됩니다. 얼마 3 17일이 자신의 성일이었던 아일랜드의 성자, 페트릭(St. Patrick) 숲을 무척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주기적으로 숲을 방문하여 며칠이고 안에 머물다 오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페트릭을 상징하는 색깔이 초록색이 되었다고 하죠. 페트릭을 존경하는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새깔도 초록색이 되었구요. 속을 걸으며 회복하고 충만해지는 것은 단지 저뿐만은 아니었던 같습니다. 제가 아는 분은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걷기와 영성형성 관한 것입니다. 걷는 것이 우리 영성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주는 것인지 사람은 이해할 겁니다.

  오늘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걷고 있다는 것은 내가 주저앉지 않다는 것이겠구나.” 주저앉거나 좌절한 사람은 걸을 없습니다. 있다는 , 걷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고 희망 가운데 있다는 증거일 겁니다. LA 있는 Getty Center라는 미술관을 방문했을 Giacometti “Standing Woman”이라는 조소 작품을 감상한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Walking Man” 만들기 년전 그는 있는 여인을 먼저 만듭니다. 중국에서 추방당한 달이 되었고 어떨결에 미국까지 흘러온 상태에 있던 제게 있는 여인의 상은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바를 알지 못하고 있어보이지만 그는 주저 앉아 있진 않았습니다. 걸을 준비를 하며 재기를 노린거겠죠. 직립, 그것은 사명을 달려가기전 숨고르기 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부활(復活)이라는 헤라어아나스타시스 라틴어’resurrection’ 모두다시 일어선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은 다른 아니라 주저 앉았던 자리를 털고 일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만물이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봄에 주님의 부활을 맞이한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다시 일어나 걸으시겠어요? 걸으면 해결될 겁니다.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며 함께 걸으시는 주님 계시니 다시 일어나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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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노회참석차 시카고 오고가는 하늘 길에서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소설 1권과 2권을 읽었습니다. 제목부터 편의점이 편의를 주지 못하고 불편을 주다니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소설은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에 위치한 작은 편의점을 배경으로 합니다.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염영숙은 동네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70 초반에 역사선생님으로 은퇴한 노파입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영숙은 Always라는 편의점을 경영해 오고 있습니다. 적자로 운영난을 겪으면서도 그녀가 편의점을 접지 못한 이유는 편의점 알바를 하며 재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였고, 애당초 그녀는 그런 목적으로 편의점을 시작했던 겁니다. 영숙은 부산으로 가던 기차 안에서 자신의 지갑이 파우치를 분실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통의 전화를 받는데 자신의 파우치를 서울역에서 습득한 사람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그는 서울역을 근거로 힘겹게 살아가는 노숙자였고, 영숙은 그를 자신의 편의점까지 데리고가 편의점 도시락으로 그의 허기를 달래줍니다. 이렇게 시작된 영숙과 독고라는 50 초반의 다른 주인공을 통해 소설은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독고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알코올 중독에 의해 기억을 잃어버리고 오랜 노숙자 생활에 말을 더듬기까지 했으니 사람들이 그를 부담스러워하고 불편해 하는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야간 알바를 하는 편의점 또한 불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서울 중심부이지만 개발되지 않은 청파동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편의점을 통해 독고라는 남자와 연결이 되고, 독고는 그의 외모와 딴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소설은 독고를 통해 갱생되고 제기하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결국 독고는 잃어버렸던 자신의 삶을 되찾는다는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영숙씨의 작은 호의와 신뢰가 어떻게 나비효과가 되어 많은 이들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지 소설에서는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독고는 불편한 편의점에 기대어 추위를 피하고 폐기 상품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보잘 없는 인생이었지만 그는 영숙에게 받은 호의와 신뢰를 편의점에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그대로 흘러보내 줍니다. 편의점을 이용하는 청파동의 가난한 인생들은 독고의 친절과 조언을 통해 그들 또한 재기를 꿈꾸고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며 교회가 이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여러 모로 부족하고 불편한 것들도 많지만, 교회는 기댈 없는 사람들이 와서 쉼을 누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서로의 친절과 호의를 통해 격려 받고 살아갈 용기를 얻어야 하는 곳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삶에 베풀어주신 크신 은총과 자비를 경험한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베푸는 호의와 자비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갈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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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사회성이 없다고 평가 받는 노인이 있다.  그는 사브만 타왔고 볼보나 독일차를 타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는 흑백으로 이뤄진 남자다. 그의 아내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그는 숫자를 좋아했고 수학만 좋아했다. 그의 어머니는 화학공장에서 일한 것이 원인이었는지 그가 여덟 즘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말이 없는 분이셨는데 그의 어머니가 그나마 남아 있는 아버지의 단어들을 가져가 버렸는지 말이 더욱 없어졌다. 그가 고등학생일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이 흑백일 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는 무뚝뚝했다. 어느날 기차를 기다리며 만난 그녀는 그의 삶에 위로였다. 남자는 40 동안 그의 삶을 채색했던 아내가 죽자 삶의 의미를 잃고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삶에 짓궂은 이웃들이 끼어들며 그의 계획은 엉망이 되어 간다. 전혀 계획이 없이 이웃들과 엮이면서 그의 삶은 다른 색깔로 채워진다. 무뚝뚝하고 인간미가 전혀 없어 보이는 따뜻한 남자는 오베라는 남자이다. 

 

지난 주에 <오베라는 남자>라는 스웨덴 작가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감동과 눈물을 책은 오랜만입니다. 먼저 항상 외국 소설을 읽을 저의 흥미를 끄는 점은 그들도 우리 사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입니다. 미네소타의 이주민 중에 스웨덴 같은 북유럽인들이 많다보니 흥미를 갖고 봤는데 한국 사람들의 희노애락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이웃에 사는 코카시안들도 내가 갖는 기쁨과 절망, 환희, 슬픔 등의 감정 가운데 살아가고 있겠구나라는 이해가 훨씬 깊어진 듯합니다. 두번째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이웃로컬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웃을 주셨고 이웃들이 우리 삶에 어떤 환희와 기쁨을 선물해 있는지 우리는 망각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아니 애써이웃 우리 사전에서 지우려하고골칫덩어리 고쳐 읽으려는 경향까지 있습니다. 곁가지일 있지만 저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두리안입니다. 두리안은 겉에 딱딱한 갑옷이 쌓여 있는 과일입니다. 갑옷에다 가시까지 겉면을 싸고 있어서 여간 부담스러운 겉모양이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겉면을 벗기면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하는 사차원의 향기는 과일을 더욱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과육을 사람은 과일의 진가를 압니다. 오베라는 남자가 두리안같은 이웃이었습니다. 그의 이웃들에게 딱딱하고 가시 돋은 말을 하는 그였지만 그는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웃들은 그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와 어울리기를 기뻐합니다. 우리네 삶에도 이런 이웃 사랑의 기쁨이 회복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봅니다. 두리안 처럼 부담스럽고 다가가기 힘든 존재가 이웃이지만, 그들은 무미건조한 우리 삶에 색과 맛을 줄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네에도 다른 오베가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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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221-12

제목: 신실하신 하나님

 

1.

한국에서 초등학생들의 엉뚱한 시험 답안이란 것이 유행한적 있습니다. 학교 시험 문제를 초등학생들이 달아 놓은 답들인데 엉뚱해서 엄청 웃깁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제입니다. “불행한 일이 거듭하여 일어난다.”라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는 무엇인가? 답은 설상가상이잖아요? 답안지에는 OO”이라 나옵니다. 초등학생의 답은 설사가또였습니다. “엄마 아빠로 사행시를 지으시오.” 답은 , 엄마는 마,마덜 아,아빠는 빠, 빠덜”. 하나만 더 하면요. “술에 취해서 거리에서 큰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사자성어로 무엇이라고 하는가?” 정답은 고성방가인데 제시어는 끝말 만 주어집니다. “OOO아이의 답은 아빠인가?” 그에 대한 선생님의 코멘트도 인상적입니다. “아빠가 힘드신가 보다. 위로해 드려!” 어린이들의 엉뚱하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답들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시험 기간을 좋아했습니다. 왜냐면 시험보고 학교가 빨리 끝나고 놀 시간이 많으니 좋더라구요. 그리고 시험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서는 시험을 보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들긴 했지만 앞의 이유 때문에 시험기간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시험을 힘들어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시험을 좋아하시는 분 계세요? 시험이라면 운전면허 시험도 지긋지긋하신 분이 계실 겁니다. 어린이들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시험을 자주 봅니다. 학교에서는 왜 시험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았을까요? 두 가지 이유일 겁니다. 첫째는 시험 준비하면서 리마인드도 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그럽니다. 둘째는 자신이 어느 정도 실력인지 평가해 보라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아이들의  성적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등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성적표에는 몇 명중에 몇 등이 꼭 들어가잖아요. 등수가 없으니 그냥 내 실력만 볼 수 있고 비교하지 않게 되어 좋은 것 같아요. 나 자신만 평가하는 거니 좋은 것이죠.

 

2.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갖게 되면 시작되는 것이 Test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시험을 만나게 되고, 신앙이 성장할 수록 시험의 강도도 높아집니다. 시험에는 세 가지 시험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오는 시험입니다. 엄마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선택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그 거짓말 때문에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고 계속 일이 꼬여가게 됩니다. 마음이 괴로워져요. 이것은 누구 잘못입니까?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오는 시험이예요. 둘째 시험은 사탄이 인간을 넘어뜨리기 위해 시험해(temptation) 오는 것이예요. 예수님도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잖아요. 세번째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테스트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테스트하신다고? ? 이해가 잘 안 가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를 테스트하세요.

 

본문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시험(test)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시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나고 30년이 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이 익숙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깜짝 놀랄 쇼킹한 명령을 내립니다. “너의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쳐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번제(burnt offering)는 제물을 전부다 태워서 바치는 제사예요. 아들을 죽여서 전부 태워서 하나님께 바치라는 명령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해가 되시나요? 하나님은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었잖아요. 사라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대를 잇게 될 거야. 그 아들이 또 다른 아들을 낳고 너는 큰 민족의 조상이 될거야 라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이삭이 어떻게 낳은 자식입니까. 아브라함의 나이 100, 그리고 사라의 나이 90살에 낳은 너무나 귀한 아들이잖아요. 그 아들을 죽여서 제사를 드리라구요? 지금까지 진행해온 하나님의 계획을 전부 지워버리는 이해할 수 없는 계획입니다. 만약에 이삭이 없어진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브라함의 반응입니다. 다음 날 아침 아브라함은 두 종과 아들 이삭과 함께 넷이서 모리아산을 향해 떠납니다. 모리아산은 지금의 예루살렘이 있는 곳이었어요. 아브라함은 삼 일이 걸리는 길을 걸어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여러분이 아브라함이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겠어요.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은 것이 맞을까? 하나님 너무하시는 거 아니야? 아니 주실 때는 언제고, 이렇게 다시 가져가는 게 말이 돼? 하나님도 가나안의 다른 신들이랑 다를 게 없구만.” 이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겠죠? 하지만 오늘 말씀에 나와 있는 아브라함의 태도를 보면 놀랍습니다. 그는 순순히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 도착하자 종들에게 말합니다. “이제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지금부터는 나랑 이삭만 올라간다. 우리는 저 위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고 올거야.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 기다려라.” 여기 쓰인 모든 동사들의 주어가 우리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이겠죠. “우리가 갔다가 올게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이러 올라가지만 이삭과 함께 돌아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요? 그 깊은 마음까지는 잘 모르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이삭은 제사에 태울 장작을 등에 지고, 아버지는 불과 칼을 가지고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뒤따라 가던 이삭이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부지~ 불과 칼만 가지고 가시네요.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에 있어요?” 아브라함은 당황하면서도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을 겁니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해 주실거야. 걱정하지마(8).”  아브라함이 이렇게 하나님을 완전히 믿고 따라가듯이, 이삭도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완전히 믿고 따라갑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이야기의 주제가 믿음과 신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버지가 여러분을 데리고 이렇게 산을 올라간다면 도망가시겠어요 아니면 계속 따라가시겠어요? 아버지가 좋은 분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는 어린이라면 아버지를 따라가겠죠.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선한 분이고 하나님의 명령에는 이유가 있을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가보기로 한 겁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론을 너무나 잘 압니다. 아브라함이 장작을 모두 세팅하고 아들 이삭을 도망가지 못하게 끈으로 묶습니다. 그리고 장작 위에 올려 놓습니다. 칼을 높이 들어 이삭에게 내리치려는 그 때, 하늘에서 천사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천사가 얼마나 급했으면 아브라함의 이름을 두 번 연속 부릅니다. 당장 멈추라는 거죠.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이제 됐어 아무것도 하지마. 너의 외아들까지도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여기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 어려운 시험을 하신 이유를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싶으셨던 겁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해 어린 양을 미리 준비해 두었어요. 이삭을 죽일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시험은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됩니다.

 

3.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처음에는 Tester였다가 마지막에는 Provider로 바뀝니다. 그래서 14절 말씀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Yahweh Jireh)”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원래 이레는 보다(See)”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풋노트에는 주님의 산에서 준비되어진다라는 것이 주님의 산에서 보여진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나오는 겁니다. Provide는 라틴어 Pro(before, previous)video(see)가 합쳐진 말입니다. ‘미리 보고(pro-video)’ 준비하시는 것이 ‘provide’인 겁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한 분인지를 말해주는 단어예요. “divine guidance or care”라는 뜻을 가진 providence(섭리)라는 단어도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보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고 오해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러셔도 되?’라며 막 따지기도 하죠. 하지만 잊지 말아야할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미리 보시고(pro-video) 미리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provide)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시험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섭리가 있답니다.

 

(Job)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큰 시험을 받은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는 자녀들도 많고 엄청난 부자였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어요. 그리고 몸에는 심각한 피부병이 생겨 깨진 그릇 조각으로 자기 몸을 긁어야만 했죠.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어요. “나는 엄마 뱃속에서 알몸으로 태어났어요. 이 땅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죠. 하나님이 주셨으니 하나님이 가져가실 수도 있어요. 오직 하나님이 찬송을 받길 원해요(욥기 121).”

아브라함도 딱 욥과 같은 상황입니다. “주실 때는 언제고 가져가려고 하십니까?”라고 원망할 수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아브라함과 욥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거둬가시는 것(take away)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믿음과 신뢰는 하루 아침에 하고 생기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30년 넘는 시간 동안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훈련을 해 왔기 때문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던 거예요. 어린이 여러분들도 지금부터 훈련해 보세요. 하나님을 따라가는 훈련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해 보세요. 이삭처럼 아버지는 그럴 분이 아니야. 아버지는 좋으신 분이야. 난 아버지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거야.’ 하는 태도를 훈련해보세요. 여러분이 아버지께 하는 태도가 하나님께 하는 태도로 발전을 할 겁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4.

저는 본문의 말씀을 구약성경에서 경험하는 부활로 해석해 보고 싶어요. 예수님이 오시기 전 아브라함과 이삭은 이미 부활을 경험한 겁니다. 죽음의 자리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났잖습니까? 하나님이 공급해주신 어린양을 보며 그들은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뒤에 예비되었던 어린 양은 하나님의 어린 양인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어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번제물로 희생할 계획을 이미 세워 놓고 계셨던 겁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구약에서 힌트들을 조금씩 조금씩 보여주셨던 거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우리는 죽음의 자리까지 내려갈 정도로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다 보면 일이 잘 안 풀려서 괴로울 수도 있구요, 병이 들어서 힘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고통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고 계시고 건져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말아야 해요. 하나님이 지금은 나에게 Tester일지 모르지만 마지막에는 Provider로 다시 일으켜 주실 거야라는 믿음을 놓지 말아야해요. 결국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신실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이 아니예요. 오히려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지(faithful) 말해주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죽이시기로 하셨어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어린 양으로 준비해주신(provide) 겁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때로는 다시 가져가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때도 신실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향해 우리도 신실한 삶으로 보답해 드리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든 순종하고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면 좋겠어요. 순종은 즉시, 온전히, 기쁘게 드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죠. 사순절은 우리에게 그렇게 신실하셨던 주님에게 우리도 신실함을 표현하는 시간입니다. 금식과 기도로, 말씀을 묵상함으로, 선행과 나눔으로 주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013절 말씀을 읽고 마무리합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우리도 신실하게 따라가길 소망합니다.

 

Scripture: Genesis 22:1-12

Sermon: God Is Faithful

Translated by Ji-Han Park

1.

In Korea, it has become popular for elementary school students to put wrong answers on tests, especially ones that are ridiculous and funny. For example, this question. “What is the four-character idiom that means ‘unfortunate things happen over and over again?’” The answer is ‘to make matters worse’, right? In Korean “Seol Sang Ga Sang”. But on the answer sheet, the elementary school student's answer was “diarrhea.” Another question is “what is the lion's name for shouting or singing in the street while drunk?" The correct answer is “Goseongbangga,” but the child’s answer is “Is that my day?” These are the children's wacky yet witty answers.

I loved exam week as a kid. I liked it because after the exams ended school ended early and I had a lot of time to play. And it was also because I was looking forward to seeing how the test scores turned out. After becoming a high school student, it was burdensome and difficult to take exams, but I used to wait for the exam period because of the above reasons. But in general, people have a hard time with exams. Do any of you here like tests? Even tests such as the driver’s license exam are a hassle. Children take more tests as they get older. Why do schools make tests? It could be for two reasons. The first is to remind students of the importance of studying, as they get ready for an exam. The second is to evaluate how good you are. What struck me odd about children's report cards in the US was the lack of rankings. In Korean report cards, students’ rankings out of the total student body were included. But I think it's good that there are no ranks in the US because it allows you to evaluate yourself and your own skills, and not have to worry about comparing yourself to someone else.

 

2.

 When we believe in Jesus, we also face tests. No one is an exception. Everyone faces tests, and as our faith grows, the intensity and difficulty of these tests increase. There are three tests in the test. The first is the test that comes because you make the wrong choice. Let's say you choose to lie to your mom. Then, because of that lie, you will tell another lie, and things will continue to get twisted. Your heart aches. Whose fault is this? It's a test that comes because you made the wrong choice. The second test is when Satan comes to tempt people to fall. Even Jesus was tested by Satan in the wilderness. The third test is God testing us. Is God testing us? Why? Some of you may not understand. But it's true. God tests us sometimes.

The main story of this sermon is the story of Abraham's test. One day Abraham heard God calling him. He must have been familiar with God’s voice, as he heard it for the last 30 years now. But God gave him a shocking order. “Offer your son Isaac as a burnt offering.” A burnt offering is an offering made by burning the entire offering. Abraham is commanded to kill his son and burn him as an offering to God. Does this make sense? God had made a promise to Abraham. “The son who will be born from Sarah's body will succeed you. That son will give birth to another son and you will become the ancestor of a great nation.” And how was Isaac born? He is a very precious son born when Abraham was 100 years old and Sarah was 90 years old. God wants Abraham to kill his precious son that he gave him? It is an incomprehensible plan that erases all of God's plans that have been carried out so far. If Isaac were to die, what would happen to God's promise?

But what I don't understand more is Abraham's reaction. The next morning, Abraham, his two servants, and his son Isaac set off for Mount Moriah. Mount Moriah was where Jerusalem is today. What did Abraham think as he walked the three-day road? If you were Abraham, what would you think? “Is it true that I have properly heard God’s voice? Isn't God doing too much? At times he provides, but now he is taking away from me? God is no different from the other gods of Canaan.” You must have felt this way naturally, right? However, it is surprising to see Abraham's attitude in the scripture. He is willing to obey the will of God. When Abraham arrives at Mount Moriah, he tells his servants. “You guys wait here. From now on only Isaac and I will go up. We'll go up there and worship and come back. Wait here until we return.” The subject of all the verbs used here is “we”. We must be Abraham and Isaac. ′′We'll go and come back.′′ Abraham goes up to kill Isaac, but did he already know that he would come back with Isaac? I don't know the depth of his thoughts, but I think it's clear that Abraham trusted God.

 Isaac carries firewood on his back, while his father carries fire and a knife. However, Isaac, who was following his father, begins to be curious. “Daddy, you’re only taking fire and a knife. Where is the lamb for the burnt offering?” Abraham was taken aback, but his heart must have been torn apart. “My son, God himself will provide the lamb for the burnt offering. Don't worry (verse 8).” Just as Abraham completely believed in and followed God, Isaac also completely believed in and followed his father, Abraham. We can see here that the theme of this story is faith and trust. Children, if your father were to take you up the mountain like this, would you run away or would you keep following? A child who truly believes that his father is a good man will follow him. I don't think Abraham had any doubt that God was good and that God's commands had a reason. So, he decided to follow God to the end.

We know all too well the conclusion of this story. Abraham sets up the firewood and ties his son Isaac up with ropes to keep him from escaping. And puts him on the firewood. Just as he raised his sword high and was about to strike Isaac, he heard an angel's voice from heaven. “Abraham, Abraham,” the angel called Abraham’s name twice in a row. “Stop right now. Don't touch the child. That's it. Don't do anything. Now I know that you fear God because you have not withheld even your only son.” Here we learn why God gave Abraham this difficult test. God wanted to know if Abraham trusted God and feared God. God prepared a lamb for Abraham in advance. There was no need to kill Isaac. Abraham's test ends with a happy ending.

3.

 In this story, God is first a Tester and finally a Provider. So, in verse 14, the name of God is called “Yahweh Jireh.” Originally, Jireh means “to see”. So, in the footnote, “to be prepared in the mountain of the Lord” can also be interpreted as “to be seen in the mountain of the Lord.” Provide is a combination of the Latin words pro (before, previous) and video (see). Preparing for a ‘pro-video’ is ‘provide’. It's a word that tells you how faithful God is. The word providence, which means “divine guidance or care,” also comes from here.

When we are tested, we misunderstand that God is not looking at us and is turning away. They argue, saying, ‘How can God do this to me?’ But one thing we must not forget is that “God is faithful.” God sees our lives in advance (pro-video) and knows in advance. And He is a faithful God who provides what we need in our lives. There is a clear providence of God in the trials we face.

A man named Job is known as the man who received the greatest test from God. He had many children and was extremely wealthy, but he lost everything overnight. He also had a serious skin disease on his body and had to scratch himself with pieces of broken dishes. He confessed this before God. “I was born naked in my mother’s belly. When I was born on this earth, I had nothing. God gave it, so God can take it. But God wants to be praised (Job 1:21).” Abraham was in the same situation as Job. It's a situation where you can resent, "When do you give, when do you want to take away?" However, in the hearts of Abraham and Job, there was a heart to trust God. “It is God who gives, so it is God who takes away.”

This kind of faith and trust doesn’t come out of anywhere overnight. Abraham was able to completely obey because he had been training to believe in and follow God for over 30 years. Children, please train from now on. It is training to follow God. It is training to obey God. If you can't see God well, practice listening to the words of your parents that God has given you. Like Isaac, “My father is not like that. My father is a good man. If my father tells me to die, I will pretend to die.” Try to train this type of behavior. The attitude you have toward your father will develop into the attitude you have toward God. Start by obeying your parents.

4.

 I want to interpret the words of the text as the resurrection experienced in the Old Testament. Before Jesus came, Abraham and Isaac had already experienced the resurrection. Didn't they go to the place of death and come back to life? Seeing the lamb God provided, they were able to deeply experience the fact that God is preparing them. The lamb prepared behind Abraham symbolized Jesus, the “Lamb of God.” God had already planned to sacrifice his own son as a burnt offering, not Abraham's son. Before Jesus came, He showed hints little by little in the Old Testament.

 When we obey God, there are times when we suffer enough to go down to the place of death. If you follow God, you may feel distressed because things are not going well, or you may be sick. However, I must not let go of the faith that God is looking at me in the place of suffering and will deliver me. I may be tested for now, but I must not let go of the faith that God will raise me up again as a provider in the end. After all, today's text is not trying to tell us that Abraham and Isaac are faithful. Rather, I am trying to tell you how faithful God is. God is faithful.

 God decided to sacrifice his only son to save us. He provided his Son as a lamb for us. God loved us like this. Sometimes God takes back what He has given, but God is faithful even then. I hope we can repay the faithful God with a faithful life. I hope you will obey and follow whatever God says. There is a saying that obedience is giving immediately, fully, and joyfully. Lent is a time to express our faithfulness to the Lord who has been so faithful to us. Express your love for the Lord by fasting and prayer, meditating on the Word, and doing good deeds and sharing. Finally, we conclude by reading 1 Corinthians 10:13. “You have never been subjected to trials other than those common to man. God is faithful. God will not allow you to go through more trials than you can handle. God provides a way out of the trials along with them so that you can get through them.” We hope that we will faithfully follow God who is faith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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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의 순환 속에서 살아갑니다. 모든 시간은 중립적이지만 어떤 시간들에 대해서 우리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생일은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시간에 불과하지만 생일을 맞는 이에게는 1년에 주기적으로 찾아 오는 특별한 시간이기에 그날을 기념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7일째의 시간을 거룩한 시간으로 특별한 의미를 두셨습니다. 그날을 안식일로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시면서 다른 새보다 무게를 갖게 하신 겁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의 시작을 해질녘으로 이해했고 금요일 저녁부터 다음날 토요일 저녁까지를 안식일로 거룩하게 지켜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또한 1년의 순환 속에서 중요한 절기들을 정하여 기념하였습니다. 각각의 절기들에는 절기를 기념하는 활동과 음식들을 통해 절기의 의미들을 되새기게 됩니다. 절기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중요한 의례이기 때문이었죠. 이스라엘의 삼대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칠칠절), 초막절(장막절) 입니다. 

  특별히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왜냐면 그들 민족의 역사에서 출애굽(Exodus) 차지하는 의미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보금자리가 없이 방황하며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은 약속의 땅으로의 탈출을 위한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을 경험하게 됩니다.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의 신분으로 전환되는 의미있는 역사적인 경험이었기 때문에 유월절은 자자손손 이어지게 중요한 절기로 자리잡았죠. 특히 유월절이라는 의미를 가져다 어린양의 피와 희생은 이절기에서 중요하게 기억되어야할 내용이 되었죠. 

  유월절은 신약시대로 넘어오면서 부활절로 새롭게 거듭납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의미있게 지키기 위해 유월절 전에 금식하며 경건하게 유월절을 준비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전통을 계승하여 부활절 40일간의 시간을 부활을 준비하는 절기로 지키게 되었죠. 40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숫자였습니다. 출애굽 이후 40 동안 그들은 광야 생활을 했고,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시작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신 광야에서 40일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40일의 영혼의 갱생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이 맞는 부활절은 감격스러울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십자가 없이 부활은 없다.”라는 중요한 명제의 실천을 위해 사순절이 행해진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은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고난의 길을 묵상하고 따르며 나를 온전히 십자가에 못박는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와 온전한 연합과 함께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은 사람만이 부활의 감격을 맛볼 있기 때문에 사순절은 의미를 갖는 절기가 되었습니다. 사순절 순례의 여정을 통해 탐욕과 욕망으로 가득한 우리 자아를 온전히 비움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살아내는 기쁨을 맛보기를 소망해 봅니다. 사순절을 통해 예수 따름이로서 우리 정체성을 확인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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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드리는 그리고 예배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기에 그분은 우리와 사귐을 원하십니다. 예배란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사귐과 교제라 있습니다. 사귐의 예배는 항상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오심으로 시작됩니다. 예배를 통해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중심에 모시고 소원해졌던 그분과의 관계를 다시 돈독하게 합니다. 모든 사귐과 교제에는 상대가 누군지에 대한 인식이 전제됩니다. 상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이를 위한 필수적인 행위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그는 우리에게로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로 나아가며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누군가를 높이고 찾을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며 아담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셨듯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주님이 먼저 우리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성소로서 에덴동산의 제사장이었던 아담은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자신을 경배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대체자로서 아브람을 지명하실 그에게 성전은 유동적이었습니다. 그는 옮겨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창세기 12 8절에서는아브람은 거기에서도 제단을 쌓아서, 주님(야웨) 바치고, 주님(야웨)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라며 아브람의 예배 행위를 묘사합니다. 아브람의 예배 행위에 있어 중심이 되는 것은 제단을 쌓은 것과 야웨의 이름을 부르는 가지입니다.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특정한 장소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뜻이겠죠. 야웨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에게 약속을 주기로 하신 분을 기억하여 소환했다는 뜻일 겁니다. 그와 맺은 언약관계에 서명을 당사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찾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대항적인 신앙의 결단입니다. 다른 신을 따르지 않고 야웨만을 따르겠다는 신앙적 결단인 것이죠. 이름은 이름을 가진 이가 어떤 인격인지를 나타내주는 상징입니다. 야웨라는 이름 안에 하나님의 인격이 담겨 있습니다. 아브람에게 야웨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열정적인 찬미일 아니라 간구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나의 신앙을 조율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잘못 경배 드렸던 대상을 수정하고 나의 경배 대상은 오로지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신앙의 조율 행위인 것이죠.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나의 엉클어지고 혼란스런 삶을 향한 그분의 개입을 촉구하는 행위입니다. 오늘의 예배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다양한 이름을 찬미하고 높입니다. 예배는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의 대상을 향한 찬미를 드리며, 우리 삶을 향한 그분의 개입을 바라며 기도합니다. 우리의 찬미와 간구와 삶을 받을 대상이 누군지에 대한 명확한 좌표 설정과 조율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행위가 갖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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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갖는 의미는 다양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사건을 재현하여 기념하는 것으로서의 의미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오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구원의 사건은 출애굽이었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편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오신 구원행위였죠. 예배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사건에 대한 재현이자 증거이며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항상 인간보다 먼저 예배를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이 다가오시며 은총의 도구들을 통해 자기를 나타내실 인간은 그것에 반응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기념하는 것이 예배인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의 순환 가운데 어떤 시간들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그들의 조상들 가운데 행하셨던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들을 기념하곤 했습니다. 유월절, 초막절, 칠칠절은 이스라엘의 가장 삼대 절기인데 모두 그들의 조상들 가운데 행하셨던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들은 이런 절기에 성례전적 행동과 행위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구체적으로 자신들의 가운데 재현하고 실행했습니다. 예를들어 유월절에는 쓴나물과 누룩이 없는 빵을 먹으며 식사를 했고, 장막절에는 텐트를 치고 생활하면서 조상들의 광야 생활을 재현하기도 했죠. 이스라엘의 예배 의식에서 식사가 차지하는 역할은 상당했습니다. 특히 제사중에 화목제사는 공동체가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도록 고안된 특별한 제사였습니다. 감사와 서원의 제목을 가진 사람이 드린 가축 제물의 먹지 못하는 장기들을 태우고 남은 고기를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제사 방식이 화목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이 바로 화목제물로 드려진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오늘의 예배에도 이런 구원 행위들에 대한 기념은 여러 성례전적인 예식들을 통해 재현되고 있습니다.  성만찬이 대표적인 예이죠. 성만찬은 화목제물로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재현하는 은총의 도구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식사를 통해 예수님의 희생을 기념하고 성도간의 화목한 교제를 추구합니다. 1세기 교회 성도들의 예배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고 교회됨을 확인하는 있어 식사가 차지하는 부분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집에서 가장 공적인 공간이었던 식당이나 아트리움()에서 모였고  모일 때마다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빵과 포도주의 나눔을 통해 기념하였죠. 식탁교제야말로 기독교 예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랬고 초기교회 성도들이 그랬듯이 우리는 거룩한 식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구원을 재현하며 기념하게 됩니다. 거룩한 식사(성만찬) 우리의 믿음 생활의 귀한 양식임에 틀림없습니다.

Posted by speramus

 

겨울이깊어가고있습니다.그럼에도해가점점길어져감을보며이겨울 의끝을상상하게됩니다.다음주에예고된한파도견디다보면지나가겠 죠.또한파가여러번오겠지만그것또한지나갈것입니다.삭풍에움츠 려들면서도봄을상상할수있는여유가있어서다행입니다.창너머겨울 나무를물끄러미바라보곤하는데그럴땐어김없이어린시절좋아했던 겨울나무라는 동요가 떠오릅니다.

나무야나무야겨울나무야눈쌓인응달에외로이서서.아무도찾지않 는추운겨울에바람따라휘파람만불고있느냐.” 겨울나무는자기가자리잡은그곳에뿌리를깊이내리고긴겨울을그냥 버티고 있는 것이겠죠? 바람이 불어 닥치면 그 바람으로 오히려 휘파람을 불어가는 여유를 부리며 그렇게 버티고 있는 것이겠죠? 겨울나무가 바람 에흔들리는모습을보며여러분도잘버티고잘견디라고응원하는것같 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긴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에게 에너지를 만 들어 주던 파란 이파리들을 다 떨궈내고 그렇게 겸손하게 인생을 버텨가 는겨울나무를바라보는것이큰기쁨입니다.긴긴겨울을보내고나면나 무에게는 상급처럼 딱딱하고 진한 나이테가 주어지겠죠. 그 혹한에도 나 무는 자라고 있었다는 증거이자 보상일 겁니다.

인생의 혹한기를 지나고 계시는 형제 자매님들이 계실텐데 겨울나무처 럼 잘 버텨내시길 기도드립니다. 도망가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에서 버티 다보면봄날은찾아올것입니다.지금은납작엎드려겸허히기다려야하 는시간일지모릅니다. 이기나긴겨울이끝이없어보이지만변하지않 는사실은봄이저만치멀리서라도오고있다는겁니다.따뜻한봄을상상 할수있는자격은모두에게있습니다.끝이있다는것,그것은큰희망입 니다.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순환을 보며 우리는 창조주의 신비를 경험하 곤합니다.계절의변화를통해창조주를만나고느낄수있다는것은큰 복입니다. 모든 시즌에는 그 시즌 마다 매력이 있습니다. 시인이자 가수인 라드 맥쿠언은 계절의 변화와 그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했죠.
“And to each season something is special

Lilac, red rose or the white willow.

Young men of fortune old men forgotten Green buds renewing
The brown leaves dead and gone...”

우리모두가다른계절을지나고있고다른형편이지만각자에게가장최 선의 시즌을 보내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음을 믿고 나아갔으 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삭풍에 흔들리는 모든 겨울나무들이여 잘 버티 시고 이겨내십시오. 마음을 담아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