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체스터의 봄이 참 흥미롭습니다. 기온이 오르락 내리락, 비가 왔다 눈이 왔다, 해가 비쳤다가 바람이 불고 참으로 다채로워 우리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참으로 많은 계절을 통과하게 됩니다. 많은 사랑과 격려를 받고 성장해야 하는 청소년기는 마치 인생의 여름날과도 같습니다. 중년에 접어들어가면 인생은 혹독한 겨울을 맞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중년의 위기’라는 말을 통해 이 혹독한 계절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자녀들이 성장해가면서 생기는 자녀들과의 불협화음, 노년을 준비해야 하지만 정작 인생에 이룬 것이 없다고 생각될 때 오는 허탈함과 공허감이 중년들을 괴롭힙니다. 주변에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겪고 있는 친구들이나 명을 달리한 친구들의 이야기는 인생을 더 무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중년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를 바라십니다. 타울러라는 사람은 중년기의 관건이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에 의해 비워지고 벗겨지게 하여 그분께서 우리에게 은총의 새 옷을 입혀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중년의 위기는 사람이 폐쇄된 존재로 자기 자신 안에 머무를 것이냐 아니면 자신을 하나님과 그분의 은총을 향해 개방할 것이냐가 결정되는 중요환 전환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공허감과 삭막함을 통해 영혼의 심연으로 인도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나의 자와와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중년의 위기에 누리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영혼의 심연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미지와 느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 나의 자아가 아니라 참 나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중년의 위기는 나의 심연 속에서 나의 참 모습과 마주할 수 있는 전환의 시기입니다. 인생의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가 결정됩니다.
교회 옆의 길가를 따라 걷다보면 지난 달에 밑둥이 잘린 나무의 그루터기를 만나게 됩니다. 가까이 다가가 그루터기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나이테가 너무나 선명하고 진한 향기를 발하더군요. 겨울을 지나며 나무는 성장은 멈추지만 더욱 깊어져갑니다. 나이테의 진한 테두리들은 모두 겨울을 지나며 침잠하며 아로 새겨진 나무의 마음 무늬입니다. 겨울에는 이파리를 다 떨궈내고 자신이 심겨진 그 자리에 멀뚱이 서서 나무는 그렇게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 깊은 침잠 속에서 그는 향기와 진한 빛깔을 얻는 것이겠죠. 사람인들 그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인생의 시련들은 혹독하게 여러분을 괴롭힐지 모르지만, 그 시련과 고난들은 나의 참 자아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나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총을 향해 개방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한 위기 앞에서는 외부적인 것을 고치려하는 것보다 나의 내면을 만지고 내면을 살피는 것이 현명합니다. 우리가 통과하는 혹독한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더 깊어지고 더 향기로워질 거라고 그루터기의 나이테는 웅변해주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