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월 말의 예상치 못한 눈과 추위에 적잖이 당황하셨을텐데, 그 이후 온화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햇빛이 비추는 날엔 늦가을인지 봄인지 착각할 정도로 그 따스함이 고맙기만 합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추운 겨울을 맞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감사합니다. 봄은 우리를 포함한 뭇 생명들에게 큰 희망입니다. 아무리 거친 눈보라가 몰아치고 차가운 날들이 계속 된대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어김 없이 봄은 온다는 희망 때문일 것입니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봄 이야기를 꺼내니 어색할 수 있지만 봄이란 말이 주는 따스함이 너무 좋아 그렇습니다. 옛날 중국의 당나라 현종이 다스리던 시절 송경(宋璟)이라는 재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빼어난 인품에서 흘러나오는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과 근검절약하는 삶의 태도는 백성들의 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별명을 지어준 것이 “다리가 있는 따뜻한 봄볕”이라는 뜻의 유각양춘(有脚陽春)이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훌륭한 별명이구나 싶습니다. 그가 있는 곳마다 봄이고,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봄을 만난듯 살아나는 것이니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나요. 저같은 장삼이사들이야 호(號)같은 것이 있기 만무하지만 혹시나 짓는다면 봄볕이라는 뜻의 ‘양춘(陽春)’이라고 지으면 좋겠다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삶이 모두 봄날과 같은 삶이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 봅니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에 죽어 있던 뭇 생명들이 깨어나고 고개를 드는 것을 우리는 매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바로 봄날같은 삶이셨습니다. 그분이 가는 곳마다 사람대접 받지 못하던 고개숙인 자들이 고개를 들게 되었죠. 사람들의 냉대에 변두리로 밀려났던 외로운 인생들이 그분이 내미시는 따스한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마다 꽃피게 되고 푸르르게 되었죠. 예수님은 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계신 그곳이 천국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도 예수님과 같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 마다 봄이였으면 좋겠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봄볕에 얼음 녹듯 마음이 녹아지고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물인지를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만 지나가면 찬바람 쌩쌩불고 얼어붙어 버린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따르는 삶을 산다는 것은 걸어다니는 봄볕으로의 삶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이 나의 인격이 되도록 부단히 우리를 연단하고 훈련해 가는 지난한 여정입니다. 그것은 마치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과 같이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의 신성을 우리 육신에 덧입히는 역순의 과정이지요.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모두가 그분처럼 봄볕과 같은 인생으로 살 수 있음을 직접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일상의 작은 몸짓들 속에 따스함이 묻어 나오길 소망해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있는 곳이 우리 때문에 봄날이요 천국이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