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2011. 8. 12. 06:42


  1.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1.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2.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3.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4.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5.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최근에 사역자로서 나의 사역의 방향을 어떻게 결정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주님이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여 주시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사도행전 19장을 읽으며 바울의 사역이 내 삶에 공명되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19장은 바울의 에베소 사역을 기술하고 있다.

위의 말씀을 보면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첫째, 세례를 베푸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포함된다.

둘째, 하나님 나라의 일을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며 가르쳤다.

넷째, 능력전도 (Power encounter)를 행했다.




사도행전의 메인 스트림이 하나님의 나라인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어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바울의 에베소 사역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 있었다.

그의 가르침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었다.

그의 관심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르침은 이론에서 멈추지 않았다.

실제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됨으로 마귀가 떠나가고 병고쳐지는 역사가 일어난다.

가르침을 통해 미티스트리를 통해 믿기로 작정한 자들에게는 세례가 베풀어졌다.





20살에 내가 선교사로 헌신하면서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말씀은

로마서 15:18~20의 말씀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결국 이 말씀을 통해 개척선교(frontier mission)을 내 삶의 큰 방향으로 잡았다.

선교사로 나아갈 제 2의 전환기를 맞으며 내 삶의 role model 이 되는 바울의 선교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의 에베소에서의 선교 사역은 그의 사역의 핵심이 잘 녹아진 곳이다.

이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선교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마태복음 28:19~20 절의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신 지상 명령(至上命令)과도 일맥상통한 본문의 말씀에 큰 도전을 받는다.

결국 나의 선교와 사역의 방향은 세례, 가르침, 하나님 나라, 능력 행함에 촛점이 맞춰 진행되어 질 것이다. 아니 진행 되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더 준비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철저히 준비해 나가야 한다. 


Posted by speramus
묵상2011. 8. 7. 17:14
영혼들은 진리를 갈망한다!
사제에게 바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길 간절히 원한다!
사제가 그 어느 것보다 말씀에 열정을 쏟아 부어야할 이유다!
난 설교단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위해 헐떡거리는 영혼들을 만난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난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기에 그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참 진리를 갈망합니다!

요즘 나의 설교를 듣고 은혜가 된다 좋아졌다는 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때마다 격려 받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 이렇게 부족한 말씀에도 은혜 받는 영혼들을 보며, 영혼들이 생각보다 심히 갈망하며 참 진리에 목말라 있다는 생각을 한다.

더 겸손히 말씀 앞에 머물며, 말씀을 연구해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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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eramus
묵상2011. 7. 28. 07:51
만 3년 채우고 드디어 다음 주 월요일에 이사를 한다.

이사를 준비하며 맘 고생 좀 했다.

집이 안나가고 주인 집은 돈을 줄 생각을 안했다.

시간이 닥치자 주인 집에서는 대출을 받아 주지만 이자는 반땅하잔다.

아니 8월이 계약 만료고 8월에 나가는데 무슨 이자를 반반하자는 건가?

처음엔 화가 많이 났다.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태도에 화가 난 것이다.



오늘 새벽 예배를 가려고 집앞을 나서는데 어두운 표정으로 우리 집앞을 지나가는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인사도 제대로 안하신다.

기도하는데 이삭이 갑자기 떠오르며

하나님께서 그냥 포기하라고 하신다.

니가 손해보더라도 그냥 이자 주고 가라신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다툼보다 손해를 택하게 하시는 하나님.

알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Posted by speramus
묵상2011. 7. 27. 08:37
어제 우연히 EBS 다큐프라임을 통해 남미대륙의 정복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남미대륙을 정복한 자들은 군대와 함께 늘 사제를 대동했다. 잉카의 마지막 왕을 처형했을 때도 그 죄목은 개종을 받아드리지 않았다는 명목이었으나 그것은 허울에 불과했다. 그들의 탐욕을 종교라는 껍데기로 가린 채 착취와 수탈을 일삼는다.

엔꼬미엔다 제도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제도이다. 인디오들을 개종시켜주는 대신에 그들의 노동력을 사용하겠다는 제도였다고 한다. 아니 개종대가로 노동력을 요구하는 그런 근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이것이 성경의 가치이고 기독교의 참 가르침이었는가?

한 편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극우 세력의 총격 테러를 바라보며 비슷한 느낌이든다.
노르웨이의 테러범인 그 극우 청년은 기독교인이었고, 보수적인 신앙과 정치색깔로 무장한 사람이었다. 타종교와 다른 정치 노선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과 배타심이 이런 참사를 불렀다.
그의 잘못된 종교적인 열심과 정치적 착오가 이런 무자비한 사테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사람들은 자신의 탐욕과 가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과 하나님을 끌여들인다. 정작 하나님은 없고 기독교의 최고의 가르침인 사랑은 없다. 종교적인 포장에 가려진 그들의 탐욕만 있을 뿐이다.

잘 못된 방향으로 진행되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은 반드시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사랑이 없으면 그 어떤 종교적인 열심과 노력은 울리는 꽹가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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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eramus
묵상2011. 7. 27. 08:22
노르웨이 테러 속에서 살아돌아온 한 소녀가 미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만약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증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랑은 얼마나 클지 상상해 보세요"

에너지를 발산하는 두 가지 큰 원천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증오와 사랑이다.
이 둘은 사람에게 엄청난 열정과 폭발력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방향은 너무나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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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2011. 7. 9. 14:40


갈망
아빠의 품을 갈망하는 저 눈 빛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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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2011. 7. 7. 14:38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 도다.
(에스겔 13:19)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하신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 배부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외곡한다.
두어 움큼의 보리와 떡을 위하여 하나님을 팔아 먹는다.
자기 배부르기만을 위하는 오늘 날의 목회자 상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배를 채우는 것이다.
성직을 돈으로 사고, 돈을 위해 성직을 이용하는 자들이다.
성직자는 자기 안위와 돈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는 자들이며 실천하는 자들이다.

더 나은 연봉과 더 좋은 대우를 주는 교회를 선호하고자 하는 내 마음의 작은 씨앗마저 잘라버리자!!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며,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 권위 앞에 순종하며 전파하는 청빈한 목회자의 길을 계속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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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2011. 7. 6. 07:23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시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시편 40:1-2)



아침에 시편 40편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차를 정립회관에 댔는데 공교롭게 차가 하수구 수령에 빠진겁니다.
하수구위를 덮어 두었던 쇠덮개가 바퀴 두 개 들어갈 정도로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죠.
주위를 찾다 맥가이버 정신이 갑자기 발동하면서
통나무를 주어와 바퀴 밑에다 대고는 그 구멍에서 겨우 나올 수 있었습니다.
역시 나는 천재성이 있어 움하하하^^ 


밤에 하루를 반추하며 아침 묵상말씀과 차바퀴가 수렁에 빠졌다 나온게 오버랩되면서.... 하나님이 말씀과 상황으로 말씀하심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부르짖어 온 제목들에 응답하시고 깊은 좌절감과 실패감의 수렁에서 나를 건져주실 하나님. 그 분께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건지시는 분이시고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나를 견고하게 세워가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나님^^ 

제가 기도했던 제목중 큼지막한 것은
1. 적당한 세입자가 들어와 집이 빨리 나가는 것.
2. 진로가 잘 결정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곳에 서는 것

뭐 이정도입니다! 
Posted by speramus
묵상2011. 7. 6. 07:13

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신명기 20:5)



신명기 말씀 중 본문은 전쟁에 나갈때 제외시켜야할 대상을 언급하며 등장하는 구절이다.
새 집을 지어 놓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사람
여자와 약혼하고 결혼하지 못한 사람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사람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자
이런 사람들은 전쟁터로 보내지 마라는 것이다.
새 집을 즐기고, 포도원의 소실을 즐기고, 새 아내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내 진로를 결정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루트는 많다.
그 중 하나는 환경을 통해 상황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내 솔직한 심정은 내년에 한국을 떠나는 것이다.
어떤 선교지든 빨리 나가서 정착하고 적응하고 싶은 것이다.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다.
어떤 것을 결정할까를 고민하던 중
문득 이 말씀을 보았다.

이번 달 아니면 다음 달에 우리 집은 새로운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된다. 오래된 집이면 모르는데 처음 지은 새집니다.
내년 초에 나가면 새 집에서 1년도 못살고 그냥 나가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집을 주신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대해석일지는 모르지만 1년 넘게 새 집과 여러 환경을 즐기라는 하나님의 뜻이지 않나 싶다.
이 집을 주심으로 한국에서 내가 해야할 훈련이나 업무가 더 있다는 것을 말씀하려는 뜻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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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2011. 7. 6. 07:04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에스겔 2:7)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말을 상대방이 경청하기를 원한다.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한 존중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부르시며 그에게 신신당부하신다.
"너는 패역한 족속들에게 가서 내 말을 전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을 그들에게 고하라."

주일에 한 선생님이 오시지 않아서 2학년 한 반을 맡아서 공과시간을 가졌다. 설교내용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세 친구중 한 명도 대답하는 친구가 없고, 그냥 관심 없으니 빨리 끝내라는 태도다.
실망이 컸다. 내 설교가 어려운건가? 이들에게 흥미를 줄 수 없는 설교라서 그런가? 그들이 관심있는 꺼리들 주제들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여러 생각이 들면서 자괴감마저 들었다.

오늘 주님께서 이 말씀으로 격려하신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을 전하라.
듣는 사람도 있고 안 듣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에스겔같은 훌륭한 선지자가 말을 전해도 그렇다는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주님 주님 주신 마음 그들에게 잘 전할게요^^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