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10. 3. 1. 09:22

성경을 읽다 보면 뒤를 돌아 보는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예수님도 쟁기를 갈다 뒤돌아 보지 마라하시고

롯의 아내는 뒤돌아 보다 망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하지만 뒤 돌아 볼 것에 대해 말씀하기도 한다.

너희 조상들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삶의 흔적을 되짚어 보면 그 발자국 하나 하나에 깃들여진 주님의 인도하심과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가끔 내 삶을 되짚어 보는 걸 좋아 한다.

과거의 발자국을 되짚다 보면 현재 내가 여기 왜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나의 전공에 관한 이야기는 그 좋은 예이다.

나는 법학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세계사, 세계지리, 영어, 음악 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때부터 세계에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세계사는 시간에 관한 것이고 세계지리는 장소에 관한 것이고, 영어는 그 시간과 장소에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수단이니 말이다.

음악은??? 음악은 만국 공통어 아니겠는가?

흥미상으로 보면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나의 흥미와 관심분야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던듯 하다.

이것은 단순한 내 흥미에 지나지 않았고, 문제는 나의 꿈이었다.

나의 꿈은 소소했다.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중학교 때 영어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었는데 나를 많이 예뻐해주셨기 때문이다.

시골 중학교에 영어 사전을 찾아 보는 사람이 나 혼자뿐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중학교 1학년인데 사전도 찾을 줄 안다고 칭찬해 주었다.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비웃겠지만 그 당시 시골 중학생들의 수준이란게....쩝)

선생님이 좋았던 것보다 칭찬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나는 영어선생님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을 절감했다.

성적을보나 가정형편을 보나 서울의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무리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방 국립대다.

지방국립대에서 문과중 가장 높은 과는 단연 영어교육과다.

15명 정원에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다. 그들은 일이등급의 학교에서도 내로라하는 아이들이다.

경쟁이 되겠는가??

가족 모두는 안된다고 했다. 쓰면 무조건 떨어진다 했다.

그러나 나는 막연한 희망으로 나 자신을 고문하고 있었다.

배짱지원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조건이 붙었다.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떨어질지 모르니

2지망으로 가족들이 원하는 과에 넣라고 했다.

그 때 2지망을 영문과로 했어야 하는 건데, 법학과로 한 것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ㅠㅠ

가족들의 원대로 1지망 영어교육 2지망 법학과로 원서를 지원했다.

결과는 이미 뻔한 것이었다. 2지망 법학과 합격.

이런 ㅠㅠ

이 때부터 나의 삶의 방황이 찾아온다. 법학은 나에게 전혀 흥미가 없는 분야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수업을 빼먹기 일수였다.

흥미없는 과목들을 들으려 하니 재미도 없었다. 글루미 후레시맨~~

1학년 끝내고 군대를 갔다. 재대했는데도 법학에 대한 나의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최선은 아니더라도 수업만은 잘 듣자라는 생각으로 수업은 빼먹지 않았다.

성적은 시들시들했다.

내가 법학을 싫어하는 이유중 하는 법학도들의 허왕된 욕심 때문이다.

청운의 꿈이라는 명목하에 고시패스를 우상으로 섬기는 무리들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학내내 고민한 것은, "왜 하나님은 나를 법학과로 보내신 걸까?"

어떤 사람은 그건 니가 선택한거야 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은 내가 했어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이 질문은 계속 나를 자극했다.

대학졸업후에 어느 정도 그 질문에 답이 생긴 거 같다.

나는 정말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감정의 기복도 심하고 논리라는게 없는 사람이었다.

느낌가는대로 기분가는대로 움직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법학을 하면서 하나님은 그런 나를 훈련시키셨다.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따지는 훈련, 효력을 따지는 훈련 등이었다.

무엇보다 책을 싫어하는 나에게 법학전공서적은 고문거리였다.

시험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그 두꺼운 책을 읽어보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이 또한 나에게 엄청난 훈련이었다. 두꺼운 책을 읽고 정리하는 훈련.

또한 법학강의같이 딱딱한 강의 3시간을 연짱으로 소화하다보니

역사학과나 인류학과 등의 인문학 강의는 정말 식은죽 먹기 같았다.

강의에 대한 내성이랄까? 이것은 나중에 신학교에 와서도 도움이 됐다.

신학교의 딱딱한 3시간 강의도 그에 못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길지만 이런 훈련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준비시키셨다.

무엇을 위한 준비일까? 이것은 또다른 중요한 질문이다.

이질문 또한 뒤를 돌아보니 헤아릴 수 있었다.

법학에 취미는 없었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율법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전공자와 같을리는 없었다.

(이걸 전문용어로 리걸마인드(legal mind)라 하나?)

율법을 하나의 법체계로 생각한다면 율법의 효력은 무엇이며 그 사회안에서 율법의 위치는 어떤 것이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늘 있었다.

그래서 성경의 율법을 법학적인 시각을 가지고 연구해보는 것도 흥미롭겠구나 라는 생각만 조금 가지고 있었다.

그 땐 법학이 싫었기에 그런 생각만 했지 엄두를 못냈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지금 나는 장신대 일반대학원 구약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구약을 하면서 모세오경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모세오경은 모든 구약성경의 기초를 이루는 책이었고, 그 중요도는 상당해 보였다.

모세오경을 연구하면 구약전체가 잡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학원 논문의 주제를 모세오경중에서 율법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려고 한다.

일명 'torah' 토라라 불리우는 율법은 성경에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석사과정에서는 토라의 개념에 관한 연구를 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생각해본다.

박사과정은 좀 더 확장하여 이스라엘 법체계를 연구해보고 싶다.

성경에 보면 율법, 계명, 율례, 명령 등등 법률에 관한 용어들이 등장한다.

이런 용어들이 그냥 무의미하게 사용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법체계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체계는 고대근동의 다른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고대근동 문화와 언어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요구될 것 같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이스라엘 유학이었다.

이스라엘 유학을 통해 고대 근동언어를 포함해서 히브리어를 마스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스라엘에서의 그 언어적인 수단과 문화적인 경험들은 연구에 있어 좋은 백그라운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결국 뒤돌아 보니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모두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원망하면서 들었던 법학은 현재 나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나침반이 되었다.

현재 겪는 모든 것들 그것이 고난과 환란이라도 결코 무의미한 것은 없다.

가끔 뒤돌아 보자. 그리고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하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나의 과거는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풍성한 통찰력을 허락하리라 믿는다.

마무리 하면서 현재 나의 삶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리라고 다짐해본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