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10. 6. 28. 11:33

제가 요즘 감당하고 있는 역할들입니다.

 

조금 힘에 부치긴 하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 감당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더 큰 도움을 구하며 간단히 저의 삶을 오픈합니다.

 

 

 

 

1. 가장  (아내 남편 선율이 아빠)

  가장으로서 주 역할은 힘이 필요한 노동. (설거지, 가끔 요리, 청소, 빨래 넣기, 아가 트림시키기 등등)

  그리고 피곤할 때 가장 힘든 것, 아내랑 대화하기 (그냥 자고 싶은데..... 시시콜콜한 것까지 듣고 싶어하는 아내 ㅠㅠ)

 

2. 고등부 전도사

  설교준비, 잃은 양 및 장기 결석자 연락하기, 선생님들 챙기기

  고등부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작년과 비해 늘어난 빈 자리를 볼 때 가슴 아프다. 역시 난 사역체질이 아닌가?? ㅠㅠ

 

3. 대학원 학생

  나에게 있어 공부 또한 중요한 것 중 하나다. 선교지에서 가르치는 일 하려면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데

  부담이 많다. 내년 진학을 위해 올 여름 8월까지 Toefl 100점을 향해  Go Go !! 잘 할 수 있을까?

  다음 학기까지 논문 쓰기 위해 여름에 주제 잡고 리딩을 다 맞춰야 한다..... (정말 쩜쩜쩜이다.)

 역시 난 공부체질도 아닌가???? 더 성실히 책읽기에 주력하자^^

 

4. 샬롬 찬양단.

  매주 콘티짜고, 청년부 찬양인도, 일본 선교 준비( 일본어 알파벳 외우기, 일본어 회화 가끔 짬내서 연습하기)

 샬롬 찬양대원들과 더 깊은 교재와 양육을 해 줘야 하는데, 참 미안한 부분이다.

 

이것 외에도 여러가지 있겠지만 주요 사역이네요.

하나님의 큰 은혜가 삶의 모든 영역가운데 있었음 좋겠네요^^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6. 18. 11:16

예수전도단 간사 후에 선교지에 나갈 것을 잠시 보류했다.

머리가 비어 있었다.

선교지에서 교회 개척, 양육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학대학원에 왔다.

그리고 고등부 사역을 하며 3년 간 설교와 양육을 하고 있다.

예전 예수전도단 간사 시절에 느꼈던 그 한계를 요즘 다시 느낀다.

학문적인 기반이나 인문학적인 기반이 너무나 모자란 내 모습을 본다.

영적인 부분은 어떤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

아~ 이것이 나의 한계인가?



한계 상황에 직면 하면 항상 하나님은 나를 또 다른 영역으로 인도하셨다.

나는 이것을 '타이어를 갈아 끼우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한다.

비행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타이어를 갈아 끼운다.

원활한 이륙을 위해서다.

요즘 그런 기운을 조금 감지하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새로운 차원의 훈련으로 인도하시겠구나.

타이어를 갈아끼우시려고 하시는구나. 라는 것을 깨닫는다.

준비하고 있어야지. 하나님이 어디로 보내시든지.... 가겠습니다.

그리고 훈련하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단련시키시고, 준비시켜 주세요.




그나~ 지금 겪는 사역적인 한계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과부하가 걸린 듯한 이 느낌. 쓴물만 내 뱉는 듯한 이 느낌....

이런 상태로 양떼들의 삶을 풍성하게 할 수 있을까?

나의 요즘 고민이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5. 31. 07:42
어떻게 정확하게 예정일에 이렇게 신호가 오나?

조이 엄마가 5시부터 배가 아프단다. 뭔가 신호가 오는 거 같다.

7시에 샤워하고 병원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5. 7. 14:09
어버이날이 주말에 걸려 있어서 어린이 날에 미리 양평의 장인 장모님을 뵈러 왔습니다.
 
장인 어르신은 교회 수양관 관리 장로님으로 2년 전부터 양평에 살고 계십니다.
 
이곳은 전남 함평의 저희 집보다 산골에 있는 마을입니다.
 
차소리 기계음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참 자연 속에 파 묻힐 수 있는 곳이죠.
 
저는 이곳을 참 좋아합니다. 고향에 온 것 같기 때문이겠지요.
 
새벽에 빗소리에 눈을 뜹니다.
 
대지를 적시는 이 시원한 소리가 제 마음까지 적시고 있습니다.
 
우산을 하나 집어 들고 산쪽으로 향하는데....
 
부지런하신 아버님이 산 밑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다.
 
처음엔 풀을 뽑으시나 싶었는데, 가까이 가 보니 한 움큼 쥐고 계시 나뭇가지를 땅에 심고 계시는 거였습니다.
 
개나리를 어디서 꺽어 오셨는지 수양관 곳곳에 심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아버님 하시는 말 "이 개나리가 5년 후에는 꽤나 커서 볼만 할거야"
 
"철쭉도 5만원어치 사 와서 수양관 곳곳에 심어 놨네"
 
사비를 터셔서 수양관 곳곳에 철쭉을 심으시고 개나리는 다른 곳에서 꺽어 오셔서 심으셨군요.
 
아버님은 3년 뒤 이곳에서 은퇴하시면 개나리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못 보시겠죠.
 
그래도 아버님은 오늘 개나리를 심으십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수고와 씨뿌림을 그냥 누릴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기쁨을 위해 씨뿌리거나 심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 열매를 내가 따먹지 못한다면 늘 망설입니다.
 
나 자신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님을 늘 고백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뿌린 씨앗, 내가 심은 나무의 열매를 나 혼자 따먹겠다고 하면 그것이 무슨 영향력이 있을까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따먹을 것을 생각하며 나는 오늘 사과 나무를 심겠습니다.
 
아버님을 통해 내 삶의 부르심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하는 아침입니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4. 28. 21:30
1. 산만하다.

2. 생각이 많다.

3. 호기심이 많다.

4. 엉덩이가 가볍다.

5. 책을 부담스러워 한다. (책에 블랙홀이 있다. 책 읽다 이상한 세계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 절망)

6. 사고를 싫어한다. (이거 고치려고 무지 노력하고 있음)

7. 유혹을 이길 힘이 부족하다. (의지력 박약이라는 표현과 같겠군)

8. 사람에 관심이 많다. (도서관에서도 두리번 두리번)

9. 집중력이 부족하다. (산만하다와 같겠군)

10. 여러 가지 일을 벌여 놓는다. (이거 했다 저거 했다.)

11. 기도하며 공부하지 않는다. (니 힘으로 할려고 하니 되냐??)

12. 지가 공부 잘하는 줄 안다. 

13. 공부 잘하는 사람은 자기가 공부 잘하는 지 못하는 지에도 관심이 없다. 그냥 공부가 좋은 거다.
     난 아니다. 내가 어느 정도 그레이드인지 항상 궁금해 한다.

14. 파고 들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15. 목표 없이 공부하는 경향이 많다.




대충 내가 공부 못하는 이유를 생각나는대로 적어 본다.

이것들 해결 못하는 한, 나는 공부를 내려 놔야 할듯....ㅎㅎㅎ 쓴 웃음만 나온다.

나도 공부 잘하고 싶다. ^^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4. 9. 06:34

이번 천안함 사건을 보면서 우리 고등부를 보게 됩니다.

'구조선의 사람은 많을 수록 좋다'입니다. 한 마디로 다다익선이죠.
배가 조난 되어 물속에 빠져가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구조선에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것이겠죠.
우리 고등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솔직히 고백하지만 저는 그냥 있는 숫자 그대로 만족했었습니다.
많은 고등부 친구들을 구조선에 올라 태웠는데, 어느새 많은 친구들이 구조선에서 깊은 바다로 뛰어 들어가 있더군요.
그런데도 저는 그 친구들은 한 번 구조선에 탄 경험이 있으니 알아서 다시 올라 타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아니 우리가 다시 손 내밀지 않으면 다시 올라타지 않더군요.
자기가 깊은 물속에 다시 빠져 들어간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 망망대해에 버려진 우리 친구들입니다.

여러분 우리 고등부를 이제 구조선이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이 구조선에 친구들이 더 많이 올라탈수록 좋은 것입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 그리고 이 구조선에 한 번도 올라 타보지 못했던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세요.
우리는 5월 16일 1회성의 친구초청잔치를 경계해야합니다.
한 번 탄 친구들은 절대로 이 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관심 갖고 잘 돌봐야 합니다.

이 구조선에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좋습니다.
작년 우리고등부에는 항상 60명가량의 인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출석 통계를 보면 40명대입니다. 저는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단지 숫자가 줄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더 많은 생명들을 구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안타까움입니다.
여러분~ 이제 새 학기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시죠. 그렇다면 주위를 둘러 보세요.
물속에 빠져가는 친구가 누구인지요. 그리고 그 친구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어 보지 않으실래요?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3. 17. 18:31
학기가 시작되면서 발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영어 발제인데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안하려고 하니 내가 하자 하고 신청을 했답니다.

다른 수업시간에 들어갔는데 공교롭게 제가 또 발제를 맞게 되었어요.

나 이거~ 시간도 정말 없는데.... 완전 몰아치기네요.

토요일은 동해안 답사, 주일에는 오후 찬양예배 설교구....

너무 무리한 스케쥴이네요.

은혜가 필요합니다. 기도 좀 해주세요.

승리하도록^^

봄눈이 내리네요. 겨울비와 함께 정말 계절에 어울리지 않지만

이 눈이 끝이 라는 생각에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네요.

다들 행복하세요^^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3. 11. 06:13

사역이란 무엇인가?

나는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 생각한다.

영적, 정신적, 정서적, 육체적으로 아파 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비전을 발견하게 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끔 세우는 일이 사역이라 생각한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직후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신다.

나사렛 회당에 가셔서 자신의 사역의 방향가 성격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신다.

나는 사역의 성경적인 기반을 이 말씀에서 찾는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역의 성공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회복되고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했느냐 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 현실은 사역의 성공의 기준을 거기에 두지 않는다.

단지 숫자는 말하고 있다. 그 사역자의 능력을....




종암 교회는 내가 처음 교회 사역을 시작한 곳이다.

이제 3년 째 고등부를 섬기고 있다.

처음에 교회에 갔을 때, 고등부 숫자가 30-40명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내가 사역을 시작한 그해 75명까지 예배를 드린 적이 있으니 그야말로 큰 양적 성작이 있었다.

1년 후 전임 사역지를 찾아 교회를 떠난 다는 것을 부장님은 전도사님 놓치면 안된다고 장로님들을 설득시켜 남게 된다. (사실이다^^)

그 다음 해는 그해만은 못했지만 여전히 고등부 예배 출석 인원은 60명에 육박했다.

은근히 내 안에 그 전 전도사님과 비교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은 그 전 전도사님의 설교는 잘 안들어 왔는데 전도사님의 설교는 잘 들어오고 재밌다고 했다.

'그래 내가 이렇게 잘 하니까 숫자가 느는 거야 우후~'

나는 겸손하지 못했다.

그리고 3년 째 되는 올해 첫 주 인원은 충격적이었다. 39명...쩜쩜쩜

그리고 지금도 40명을 채우지 못하고 30명 즈음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내 안에 자괴감과 실패감이 몰려 왔다.

물론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고3 인원이 스무명 넘게 빠져 나갔는데 중3친구들은 9명 밖에 안왔으니까....

그러나 나는 이 사태를 맞으며  내 안에 근본적인 교만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역이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 내가 잘해서 잘 된 거라는 생각.

무엇보다 잘 못된 생각은 다름아닌 예수님의 사역기준으로 내 사역을 바라 보지 않고

사람들의 기준 그러니까 숫자의 기준으로 내 사역을 판단하려 했던 것이다.

그동안 나의 힘으로 하려했던 사역의 주도권을 다 내려 놓는다.

하나님이 하시게 해야 한다.

양적인 성장은 차치하고, 영적 성장을 꽤해야 한다.

영적인 치유와 영적인 터치, 영적인 갱신이 우리 공동체 안에 일어나길 위해 기도한다.

사역이 나를 겸손케 한다.

오늘 겸손히 무릎 꿇고 주님의 얼굴을 구해 본다.

"주여 기름부어 주소서~ 기름부으심이 내 사역에 넘쳐 흐르게 하소서

가난한 자 억눌린 자, 포로된 자, 병든자들을 나를 사용하시어 고치소서

겸손히 주님을 구하며 동행하는 사역되게 도와 주소서"

사역이 나를 겸손케 한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3. 9. 18:36

사람이 욕심이 생기면 염치도 눈치도 없어진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갖고자 하여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요즘 내 맘에 올라오는 욕심 죽이기에 지쳐 있다.

이건 뭐 두더지 잡기도 아니고

무슨 욕심들이 이리 자연스럽게 내 맘을 지배해버리는지....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낫게 된다.

새롭게 생긴 이이팟과 노트북의 주변기기들을 둘러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놀랜다.

예전에 이런 거에 전혀 관심 없던 녀석이 뭐가 씌어서 이러니???

그냥 포기하면서 살아라~~~




한 가지 긍정적인 현상이 있다.

작년에 매일 야구에 빠져 살았는데.... 거의 병적이었다.

기아가 V10을 이루고 나서 결심했었다. 이제 야구에 빠지지 않기로....

올해는 긍정적이다. 시범경기 시작했는데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아예 스포츠면으로 눈길이 가지 않는다.

주님이 도와주시고 있는 것 같다.

욕심을 억제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지 못하리....

나의 작은 승리에 스스로를 칭찬해준다.

그리고 그 외의 영역에 대한 모든 욕심을 제어하고....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리라~~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3. 1. 09:22

성경을 읽다 보면 뒤를 돌아 보는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예수님도 쟁기를 갈다 뒤돌아 보지 마라하시고

롯의 아내는 뒤돌아 보다 망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하지만 뒤 돌아 볼 것에 대해 말씀하기도 한다.

너희 조상들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삶의 흔적을 되짚어 보면 그 발자국 하나 하나에 깃들여진 주님의 인도하심과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가끔 내 삶을 되짚어 보는 걸 좋아 한다.

과거의 발자국을 되짚다 보면 현재 내가 여기 왜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나의 전공에 관한 이야기는 그 좋은 예이다.

나는 법학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세계사, 세계지리, 영어, 음악 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때부터 세계에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세계사는 시간에 관한 것이고 세계지리는 장소에 관한 것이고, 영어는 그 시간과 장소에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수단이니 말이다.

음악은??? 음악은 만국 공통어 아니겠는가?

흥미상으로 보면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나의 흥미와 관심분야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던듯 하다.

이것은 단순한 내 흥미에 지나지 않았고, 문제는 나의 꿈이었다.

나의 꿈은 소소했다.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중학교 때 영어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었는데 나를 많이 예뻐해주셨기 때문이다.

시골 중학교에 영어 사전을 찾아 보는 사람이 나 혼자뿐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중학교 1학년인데 사전도 찾을 줄 안다고 칭찬해 주었다.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비웃겠지만 그 당시 시골 중학생들의 수준이란게....쩝)

선생님이 좋았던 것보다 칭찬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나는 영어선생님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을 절감했다.

성적을보나 가정형편을 보나 서울의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무리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방 국립대다.

지방국립대에서 문과중 가장 높은 과는 단연 영어교육과다.

15명 정원에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다. 그들은 일이등급의 학교에서도 내로라하는 아이들이다.

경쟁이 되겠는가??

가족 모두는 안된다고 했다. 쓰면 무조건 떨어진다 했다.

그러나 나는 막연한 희망으로 나 자신을 고문하고 있었다.

배짱지원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조건이 붙었다.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떨어질지 모르니

2지망으로 가족들이 원하는 과에 넣라고 했다.

그 때 2지망을 영문과로 했어야 하는 건데, 법학과로 한 것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ㅠㅠ

가족들의 원대로 1지망 영어교육 2지망 법학과로 원서를 지원했다.

결과는 이미 뻔한 것이었다. 2지망 법학과 합격.

이런 ㅠㅠ

이 때부터 나의 삶의 방황이 찾아온다. 법학은 나에게 전혀 흥미가 없는 분야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수업을 빼먹기 일수였다.

흥미없는 과목들을 들으려 하니 재미도 없었다. 글루미 후레시맨~~

1학년 끝내고 군대를 갔다. 재대했는데도 법학에 대한 나의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최선은 아니더라도 수업만은 잘 듣자라는 생각으로 수업은 빼먹지 않았다.

성적은 시들시들했다.

내가 법학을 싫어하는 이유중 하는 법학도들의 허왕된 욕심 때문이다.

청운의 꿈이라는 명목하에 고시패스를 우상으로 섬기는 무리들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학내내 고민한 것은, "왜 하나님은 나를 법학과로 보내신 걸까?"

어떤 사람은 그건 니가 선택한거야 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은 내가 했어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이 질문은 계속 나를 자극했다.

대학졸업후에 어느 정도 그 질문에 답이 생긴 거 같다.

나는 정말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감정의 기복도 심하고 논리라는게 없는 사람이었다.

느낌가는대로 기분가는대로 움직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법학을 하면서 하나님은 그런 나를 훈련시키셨다.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따지는 훈련, 효력을 따지는 훈련 등이었다.

무엇보다 책을 싫어하는 나에게 법학전공서적은 고문거리였다.

시험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그 두꺼운 책을 읽어보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이 또한 나에게 엄청난 훈련이었다. 두꺼운 책을 읽고 정리하는 훈련.

또한 법학강의같이 딱딱한 강의 3시간을 연짱으로 소화하다보니

역사학과나 인류학과 등의 인문학 강의는 정말 식은죽 먹기 같았다.

강의에 대한 내성이랄까? 이것은 나중에 신학교에 와서도 도움이 됐다.

신학교의 딱딱한 3시간 강의도 그에 못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길지만 이런 훈련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준비시키셨다.

무엇을 위한 준비일까? 이것은 또다른 중요한 질문이다.

이질문 또한 뒤를 돌아보니 헤아릴 수 있었다.

법학에 취미는 없었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율법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전공자와 같을리는 없었다.

(이걸 전문용어로 리걸마인드(legal mind)라 하나?)

율법을 하나의 법체계로 생각한다면 율법의 효력은 무엇이며 그 사회안에서 율법의 위치는 어떤 것이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늘 있었다.

그래서 성경의 율법을 법학적인 시각을 가지고 연구해보는 것도 흥미롭겠구나 라는 생각만 조금 가지고 있었다.

그 땐 법학이 싫었기에 그런 생각만 했지 엄두를 못냈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지금 나는 장신대 일반대학원 구약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구약을 하면서 모세오경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모세오경은 모든 구약성경의 기초를 이루는 책이었고, 그 중요도는 상당해 보였다.

모세오경을 연구하면 구약전체가 잡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학원 논문의 주제를 모세오경중에서 율법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려고 한다.

일명 'torah' 토라라 불리우는 율법은 성경에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석사과정에서는 토라의 개념에 관한 연구를 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생각해본다.

박사과정은 좀 더 확장하여 이스라엘 법체계를 연구해보고 싶다.

성경에 보면 율법, 계명, 율례, 명령 등등 법률에 관한 용어들이 등장한다.

이런 용어들이 그냥 무의미하게 사용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법체계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체계는 고대근동의 다른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고대근동 문화와 언어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요구될 것 같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이스라엘 유학이었다.

이스라엘 유학을 통해 고대 근동언어를 포함해서 히브리어를 마스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스라엘에서의 그 언어적인 수단과 문화적인 경험들은 연구에 있어 좋은 백그라운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결국 뒤돌아 보니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모두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원망하면서 들었던 법학은 현재 나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나침반이 되었다.

현재 겪는 모든 것들 그것이 고난과 환란이라도 결코 무의미한 것은 없다.

가끔 뒤돌아 보자. 그리고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하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나의 과거는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풍성한 통찰력을 허락하리라 믿는다.

마무리 하면서 현재 나의 삶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리라고 다짐해본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