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12. 11. 8. 07:37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서 8:28)


1.     수능 기도회 목적에 대한 재고

우리는 수능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우리 아이들, 특별히 수능 시험을 치르고 있는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입시사교육 바로세우기 기독교운동이라는 단체에서 수능기도회 실태 조사를 해서 발표를 했습니다. 한국교회 교회학교 담당자들이 생각하는 수능기도회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교회 학교 담당자들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조사했습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면요,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회학교 담당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수능 기도회가 아무래도 기복적이며 출세지향적인 모임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능 기도회가 좀더 성경적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회가 되기를 바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수능 기도회가 내 아이의 수능 성적이 잘 나오기 위해 기도하고 부르짖는 통로에만 그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죠.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 납니다. 뿌린대로 거둬드립니다. 이것은 성경의 원리이기도 하고 일반적인 자연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죄송하지만 여러분 자녀들의 시험의 결과는 얼마나 뿌렸느냐 그리고 어떤 씨앗을 뿌렸느냐에 따라 이미 판가름 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목사님 은혜라는 것이 있잖습니까? 받지 못할 것을 받는 것이 은혜잖습니까?  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어찌 보면 도박입니다. 내 아이가 90을 하고 10을 기대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합리적이라 할 수 있지만 10을 해놓고 나머지 90은 기도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염산교회 성도님들은 그런 생각은 안하시겠죠. 우리가 수능기도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분명 90을 얻기 위해 여기에 와 있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 아이들이 최선을 다 한만큼 점수를 받았으면 좋겠고, 행여나 작용할 실수나 예기치 못한 사고들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켜 주시도록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우리 기도의 수준이 머문다면 우리 기도도 대학교 정문에 엿을 붙여 놓고 기도하는 여타 학부모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여기 와 계신 분들은 분명 우리 자녀들이나 손주 손녀의 앞날이 잘 되는 것을 바라서 와 계신 분들입니다.  맞지요? 어떻게 되는 것이 진정 우리 아이들이 잘 되는 길일까요? 이왕 모인 김에 우리 아이들이 진짜 잘 되기를 위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짧은 생각으로 수능 한 번 잘 봐서 좋은 대학 가면 인생이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수능이 그만큼 인생에 끼치는 영향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저는 수능을 보는 고등학생 친구들에게 늘 말합니다. 수능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마라구요. 무슨 말이냐구요? 아이들이 수능 한 번 못보면 마치 인생을 실패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건 이 사회와 우리 어른 들이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죠.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은 성적과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 좋은 수능 성적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요. 거기서 오는 아이들의 중압감이 얼마나 심하면 수능 전날에 잠을 설치기 까지 합니다. 제가 그랬었거든요. 저는 수능 전날에 3시간 동안이나 잠을 못 이뤘습니다. 너무 긴장이 되더라구요. 결국 선 잠을 자고 수능을 망친 기억이 납니다. 수능이란 시험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해버리니까 이런 부작용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수능 한 번에 인생의 모든 결론이 난다는 생각은 유치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 유치한 생각을 우리 아이들은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 부모들이 더 심하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 압박감에 시달리며 지금도 어떤 아이는 시험지 앞에서 떨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기도회의 목적을 다시 새롭게 하자는 말을 하며 저는 지금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회가 단순히 아이들이 수능 한 번 잘 보게 해주십시오 라는 간구를 드리는 자리에 멈추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이 진정으로 잘되고 진정으로 행복한 길이 무엇인지 우리 어른들이 고민하고 하나님 앞에서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진짜 우리 아이들이 잘 되길 위해 기도하자는 겁니다.

 

2.     잘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 잘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다른 말로 성공한 인생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돈 많이 벌며 떵떵거리며 사는 것일까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떳떳한 직장 있고 집 한 채 정도 있으면 성공한 인생일까요? 저는 성공한 인생이란 목적에 맞게 살아가는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이 땅에 살아가게 하시는 목적이 있으십니다.  목적이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그 목적을 이루는 사람, 그 사람이 정말 행복한 사람이지 않을까요?

낙타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아기 낙타가 엄마낙타에게 물었다.

B : 엄마 우리 발톱은 이렇게 거죠?

M : 그건 넓은 사막을 횡단하기 편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거야

 

B : 엄마 그럼 눈썹은 이렇게 거예요.

M : 그것도 사막을 횡단할 햇볕을 가려주기 위해 그런 거란다.

 

B : 엄마 우리 등에 붙은 커다란 혹은 뭐하라고 있는 거예요?

M : 그것 또한 사막을 횡단하는 먹을 물을 저장하려고 만들어 주신거야.

 

아기 낙타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을 건낸다.

 

B : 근데 엄마 우리는 왜 동물원 안에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 각자 각자에게 맞는 발톱과 눈썹 그리고 혹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이지요. 재능일 수도 있고 사명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명과 목적을 깨닫고 이뤄나가는 삶이 정말 행복한 삶이고 값진 삶입니다. 돈만 많이 버는 그런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죠.

 

그런데 감사한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목적을 알고 계시다는 겁니다. 알고 계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목적대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삶을 이끌어 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28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을 원어 그대로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선을 향하여 함께 일한다는 것을.”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을 받은 자들과 그 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두 부류의 삶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부름 받은 사람,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된다구요? 모든 일들이 선을 향하여 함께 작용해 간다고 합니다. 달리 얘기하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연결되어 가며 함께 일해 간다는 것입니다.

 

때론 우리 눈으로 실패한 듯이 보이는 일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목적대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실패가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그 실패와 절망이 합하여 선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수능 한 번 실패하면 우리 아이의 삶이 정말 실패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실패 또한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데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결론은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혹여 이번 수능에서 우리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모든 일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선을 향하여 함께 역사하고 있다. 수능의 결과와 상관 없이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대로 따라 가기만 한다면 우리 아이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선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수능에 실패한 대표적인 케이스였습니다. 저는 수능을 최초로 본 학번이었습니다. 수능은 제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발표 됐고 3년 동안 모의 고사를 통해 익히게 한 후 94년 대학 입시부터 실시된 시험이었습니다. 바로 첫 시험 케이스가 저희 또래들이었습니다. 10년 동안 학력고사에 맞춰져 길들여져 왔는데 3년만에 수능 시험이라는 희귀한 시험에 맞춰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1등급이었던 친구는 수능에 적응을 못해 결국 200점 만점에 130점을 맞고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었죠. 저도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전날 그렇게 긴장하고 잠을 설쳤으니 잘 볼리가 만무합니다. 결국 보란 듯이 첫해에 떨어졌습니다. 재수를 했죠.

 

둘째 해에도 잘 보지 못했습니다. 학원 다니면서 공부는 열심히 안했습니다. 뿌린 것이 없으니 거둬 드리는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지방대에 지원을 했습니다. 과는 제가 어려서부터 되고 싶었던 영어선생님이 되기 위해 영어 교육과를 집어 넣었습니다. 지방대 영어교육과는 정원도 15명이고 학교에서 일 이등 하는 여학생들이 쓰는 곳입니다. 결국 저는 영어교육과에 떨어지고 제가 원하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원했던 2지망 법학과를 들어가게 됐습니다. 말 그대로 절망이었습니다. 법학은 제가 원하지 않는 학문이었습니다. 법학이 너무 싫었습니다. 결국 대학 성적은 바닥을 기고 있었죠. 그 때 유일한 낙은 바로 성경공부였습니다. 전공공부 대신에 전도하러 다니고 성경공부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훨신 재밌었습니다. 결국 성적이 시들시들 해지는 만큼 저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반비례하여 불타 올랐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내가 만약 영어 교육과에 들어 갔으면 내가 원하는 공부하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능에 비록 실패하여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결국 나의 삶의 모든 것을 꿰 맞추시고 연결하여 선을 이뤄가고 있으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왜 내가 법학을 하게 됐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논리적이지 못한 나를 하나님은 그나마 법학을 통해 조금은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니가 정말 교사를 원하니 내가 너 교사 시켜줄게 "선교사" 어떠니? 라고 위트있게 말씀하시더군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3.     아이들을 위한 기도

   우리 아이들을 하나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을 깨닫게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여 보내면 거기서 끝이 아니라 이후에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며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 수능 기도회가 그런 의미에서 당장에 수능 시험에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그런 기도 모임을 넘어서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나님께 수능의 결과를 맡겨 드립시다. 수능 성적이 잘 나오든 못 나오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아이들을 사용하시길 원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우리 아이들에게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결과와 상관 없이 하나님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이끌어 가실 겁니다. 그것을 신뢰하므로 하나님께 맡겨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을 입은 자들의 삶의 모든 것, 단 하나의 예외도 없는 모든 것이 합하여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룹니다. 우리 아이들의 삶은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뜻을 향하여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 드리길 원합니다. 이후의 삶에도 하나님이 신실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Posted by speramus
설교문2012. 10. 28. 09:56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익숙함의 반대말이 무엇일까요? 제 생각엔 익숙함의 반대말은 변화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익숙해짐을 경계할 때 보통 드는 예가 바로 냄비 안에 든 개구리 이야기입니다. 냄비 안에 개구리를 넣고 불을 떼면, 개구리는 물이 서서히 데워짐에도 그걸 느끼지 못하고 결국 뜨거운 물에서 죽어가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익숙해지는 것, 그것은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익숙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교역자들과 사제들이 아마 하나님께 가장 익숙한 사람들일 겁니다. 예배에도 익숙하고, 기도에도 익숙하고, 말씀에도 익숙하고… 그러다보면 그 익숙함 때문에 망할 수도 있습니다. 익숙함이 반복되다 보면 전혀 감동이 없어집니다. 무뎌지게 되는 것이죠. 예배가 형식이 되어 버리고, 찬양이 형식이 되어버리고, 경건한 삶은 메너리즘에 빠져 버리기 쉽고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온데 간데 없어지게 됩니다.

중세시대의 교황을 비롯한 카톨릭 사제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가장 익숙했고 예배에 가장 익숙했던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익숙함 때문에 무뎌지게 되고 썩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변화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 익숙함을 깨뜨리고 새롭게 변화됨을 외치며 개혁과 변화를 시도했던 사람들이 바로 종교개혁자들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과 익숙해지지 마시고 하나님과 친밀해지십시오. 익숙함을 깨뜨리고 변화하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영적 더듬이를 더욱 날카롭게 세우십시오.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나를 변화시키는 영적인 민감함이 우리 안에 회복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이번 주는 종교개혁 주간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그 마음이 우리 안에 있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익숙함과 타성의 관성을 깨고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 나아갔던 개혁자들의 영성이 우리에게 회복되어지기 원합니다. 익숙함을 깨뜨리고 친밀함으로 나아갑시다!! 날마다 새롭게함으로 변화를 받기 원합니다!!

Posted by speramus
설교문2012. 10. 20. 07:07

오늘 염산교회 외국인 공동체인 YIC(Yumsan International Church)에서 가을 맞이 Healing Camp 를 갑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공동체죠. 국내에 이주 노동자로서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과 국제결혼으로 쉽지 않은 결혼생활을 해가고 계신 형제 자매님들을 위한 작은 오아시스 같은 모임이지요. 저는 저녁 집회와 세족식을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녁 말씀 원고를이곳에서 함께 공유해 봅니다! 읽으시거나 훑어 보신 분들이라도 저와 외국인 형제 자매님들을 위해서 꼭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안에 깊이 잠기는 시간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올해 봄에 있었던 힐링캠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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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집회 설교문>


  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What man live by /人们为什么写作)


시몬과 미하일의 만남

구두장이 시몬은 어느 농부집에 세들어 살고 있었어요. 시몬은 구두를 만들 양피(양가죽)를 사러 갔다 오는길에 그동안 구두를 수선해준 농부에게 외상값을 받으러 갔어요. 하지만 한 푼도 받지 못하자 홧김에 술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한 채 집에 가던 길이었어요. 그런데 길 모퉁이 교회앞에서 벌거벗은 채 길가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보았어요. 너그러운 시몬은 얼어죽을 것이 분명한 남자를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외투를 입히고 집으로 같이 돌아갔어요. 시몬의 아내 마트료나는 그런 시몬에게 화가 나서 온갖 욕설을 퍼었어요. 그러다 시몬이 '마트료나, 당신의 마음에는 하느님도 없소?"하는 말에, 마음이 누그러져 잠자리를 제공하고 입을 옷도 내주었어요. 하느님께 벌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그 남자의 이름은 미하일이었어요.

신사와의 만남

시몬은 미하일에게 "자네가 우리와 같이 살려면 일을 해야 하네."라고 말했어요. 미하일은 "예. 어떤 일이든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구두수선일을 배웠답니다.  놀랍게도 초보자 미하일이 숙련된 시몬보다 더 일을 잘했어요. 머리가 영리해서 시범을 보이기만 했는데도 따라하는 것이었어요. 미하일의 소문이 퍼지자 시몬은 많은 돈을 벌게 되고 형편은 나아졌죠. 어느날 신사 한 명이 오만한 말투로 일년을 신어도 터지지 않는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명령했어요. 시몬이 비싼 가죽을 보면서 혹시 일이 잘못 되면 어쩌나 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미하일은 주문을 받았어요. 미하일은 구두 대신 슬리퍼를 만들었어요. 시몬이 화가나서 “왜 구두 대신 슬리퍼를 만들어?” 라며 따지려는데 신사의 하인이 들어왔어요. 주인 어른이 집에 가던 중 마차에서 죽었다며 장례식을 위해 슬리퍼를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두 아이와의 만남

세월이 흘러 6년의 시간이 흐르고 미하일은 변함없이 세몽의 가게에서 일을 했죠. 어느날 어느 부인이 두 쌍둥이 여자아이들의 구두를 주문했어요. 시몬이 부인에게 이 아이들은 어떤 아이냐고 묻자 여인이 대답합니다. “6년전 두 아이의 부모가,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죽고 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답니다. 나는 이 아이들의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태어난 지 8개월 된 아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임시로 그 두 아이들을 맡아 길렀다. 그런데 내 아들이 일찍 죽고 말았어요. 방앗간 사업이 잘 되어 나는 이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사랑하며 소중히 지금까지 키워오고 있답니다. 이 말을 들은 마트료나는 "부모없이는 살아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천사 미하일

그 순간 방 안이 밝아지며 미하일이 천사가 되었어요. 그 모습을 본 세몽은 두려우면서도 "자네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세 번 웃었는데 왜 웃었는지, 하느님이 왜 자네에게 벌을 주셨는지 말해주게"라고 말했어요. 미하일은 “6년전 하나님이 한 영혼을 데려 오라고 명령하셔서 세상에 내려왔어요. 아이들이 죽게 될거라며 아이 엄마가 애원하자 저는 마음이 약해졌어요. 저는 그냥 하나님께 돌아갔고 명령을 지킬 수 없다고 했죠. 그러자 하나님은 미하일에게 "아기 엄마의 영혼을 데려오면, 세 가지 질문을 알 수 있을 거라 하셨어요.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 세가지의 질문의 뜻을 알게 될 것"이라며 답을 찾을 때 까지 사람들에게 가 있으라 명령하셨지요. 그래서 땅으로 내려온 저는 알몸뚱이로 차가운 길바닥에서 웅크리고 있고, 시몬 당신이나를 발견했지요. 시몬과 마트료나가 저를 대접하는 것을 보고,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깨달았죠. 멋진 신사가 일년을 신어도 끄떡없는 구두를 주문했지만 그가 곧 죽을 것을 저는 자신은 알았어요. 그렇게 해서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것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엄마를 잃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사람을 보고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모든 사람은 그들 자신의 행복을 위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사람에게 존재하는 사랑때문에 사는 거예요. 비록 그들이 자신을 위한 걱정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이 사랑에 의해서만 산다는 것을 이제 이해했어요. 사랑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그 사람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지요. 

그 말을 마치고 미하일은 하늘로 돌아갔어요.


  1.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가 1884년에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의 소설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산다구요? 사랑으로 삽니다. 요한 1서 4장 7-8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亲爱的弟兄阿,我们应当彼此相爱。因为爱是从神来的。凡有爱心的,都是由神而生,并且认识神。没有爱心的,就不认识神。因为神就是爱  / Dear friends,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comes from God. Everyone who loves has been born of God and knows God.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사랑받기 위해 오셨고, 사랑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옆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오시고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 주십니다. 여러분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적극적으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사랑을 표현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요한1서 4장 16절 말씀입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n him. /住在爱里面的,就住在神里面,神也住在他里面

우리가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라는 찬양을 부르면서 우리가 서로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10분 동안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허깅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1. 세족식(洗足式 Maundy)


이제 우리가 서로 서로의 발을 씻겨 주며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이 세족 의식은 우리 주님이 친히 본을 보여주시며 우리가 서로 이 의식을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요한복음 13장14). 예수님의 세족식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한다는 표현이었33습니다(요 13:1). 선생님과 주인이 제자와 종의 발을 씻겨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우리 주님은 선생과 주인이시면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에게 행하라고 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서로 서로의 발을 씻으며 우리의 사랑을 고백합시다. 

Posted by speramus
설교문2012. 9. 25. 10:56

 

1.    레위기 개괄

 

    성경을 보실 때는 숲과 나무를 동시에 잘 봐야 합니다. 우리는 레위기라는 숲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그 숲의 특징은 무엇이고 그 숲이 무엇을 말하는 지를 알아야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숲을 거닐면서 숲 안에 어떤 나무와 생물들이 있는지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레위기 17장의 말씀여행을 떠나려고 하는데요, 레위기 17장은 레위기 숲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부터 알아야겠죠?

 

레위기를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하나님의 몸부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레위기를 딱딱한 율법, 읽으면 바로 잠들게 하는 수면제, 지금은 지키기도 힘든 넘사벽의 규율들 뭐 이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레위기는 그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배기훈 목사님께서 레위기의 히브리어 제목이 바이크라 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을 붙일 때 그 책의 맨 먼저 등장하는 단어를 따서 이름을 붙입니다. 레위기는 바이크라로 시작하기 때문에 바이크라라는 이름을 가졌죠. 무슨 뜻이냐면요. “그러나 부르셨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말로 하면 그러나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야웨께서 모세를 부르셨다그러나 라는 접속사는 역접접속사라하여 앞 문장과 반대되는 문장이 뒤에 올 때 사용하는 접속사입니다.

 

그러나 앞에 어떤 상황이 전제돼 있냐면요? 인간이 범죄하였으나,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혔으나, 인간이 범죄하여 모든 희망이 사라졌으나,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레위기는 바로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의 삶에 다가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몸부림을 그대로 기록한 책이 레위기라는 책입니다.

 

레위기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첫째, 제사와 예물을 통해, 다른 말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둘째, 거룩한 삶, 성결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입니다. 예배와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거죠. 레위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가까이가다, 접근하다라는 뜻을 가진 카라브라는 말입니다. 이 카라브라는 동사에서 제물을 뜻하는 고르반이 파생됐습니다. 제물인 고르반을 하나님께 드릴 때 인간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으며, 거룩한 삶의 제물, 삶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레위기입니다.

 

그래서 1장부터 16장까지는 어떻게 제사하며 예배할 것인가?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17장부터는 27장까지는 어떻게 성결한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17장부터 27장을 일컬어 성결법전이라고 합니다. 이러이러한 조항들을 너희가 지킬 때 거룩해질 수 있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성결법전이 말하는 것입니다.

 

2.    먹고 사는 것은 또 다른 예배이다.

 

이제 레위기의 숲에서 돋보기를 가지고 17장 나무들을 살펴볼까요? 17장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가축을 잡을 때는 다른 곳에서 잡아서 회막에 가져오든지 아니면 회막에 와서 가져오든지 하라! 는 겁니다. 둘째는 피를 먹지 말라, 피는 육체의 생명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죠.

 

성결법전의 처음 조항이 가축을 잡고 먹는 것에 관한 것이고, 그 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의미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만하겠죠? 시간관계상 오늘은 특별히 회막에서 가축을 잡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먹고 사는 것은 우리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인사중에도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런 말도 있잖습니까? 이 말이 진짜 잘 먹고 잘 사란 말인지는 모르지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배고프면 살아가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6.25를 겪으시고 격동의 50~60년대를 겪으신 어른들은 보릿고개를 아시고 배고픔을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먹고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어르신들이 얼마나 노력하셨습니까? 어르신들의 수고와 땀방울로 지금의 우리나라가 이렇게 먹고 살만한 것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이번 주일 설교에 담임목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 대한민국의 교회의 성장도 먹고 사는 문제와 매우 긴밀하게 연관을 맺고 성장했습니다. 교회 나오고 예수님 믿으면 복받고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다~ 이런 기복신앙이 사람들에게 먹히면서 교회는 큰 성장을 이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들에게 먹고 배부른 삶은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심으로 그들을 배불리우신 것을 경험하고 사람들은 이 사람을 임금으로 세우면 우리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 없겠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기 위해 엄청난 군중들이 따라 붙었었죠. 배부른 삶, 잘 먹고 잘 사는 삶은 우리 인간에게 핵심적인 문제임에 틀림 없습니다.

 

성결법전의 가장 먼저 등장하는 율법조항이 바로 고기를 먹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것, 하면 우리는 거창한 율법 조항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 생각은 우리와 다른 듯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소소한 삶 가운데서 거룩함을 나타내기 원하십니다. 성결하고 거룩한 삶은 예배당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먹고 살아가는 곳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의 삶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회막 또는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만을 거룩하게 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고, 회막 이외의 일상의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잡은 고기를 회막에 가져와 화목제물을 드리거나, 회막에 와서 가축을 잡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가요?

 

예부터 고기를 먹는 것은 일반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우리 어르신도 어려운 시절에 쌀밥 먹고 소고기 먹고 사는 삶을 동경하셨잖습니까? 저도 어릴 적 소고기 먹기가 그렇게 힘들었습니다. 소고기는 설에 떡국에 조금 들어 있는 그런 고기였죠.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 가운데도 고기를 먹는 것은 큰 기쁨이었을 겁니다. 광야를 수 십년 이동해야 하는 공동체 가운데 가축을 기르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축을 아무데서나 잡아 먹는 것을 원천 봉쇄하신 듯합니다. 잡아 먹더라도 제사장의 입회하에 필요없는 부위는 제사로 드리고 화목제물로 서로 나눠먹으라는 겁니다. 혼자 몰래 얍쌉하게 먹지 말고 잡아서 함께 나눠먹으라는 하나님의 신적 자비가 녹아있는 법률 조항인 것이죠.

 

화목제는 자기 이웃들을 초청하여 제사를 드린 고기를 서로 나눠 먹는 제사방법입니다. 이웃들과 고기를 먹고 나눔으로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라는 목적이 첫째 목적입니다. 화목제의 다른 목적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 먹고 살기 힘든 이웃들이 화목제를 통해 고기맛을 보기를 원하시는 가난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가 의도된 제사방법입니다.

 

아까 어릴적 소고기 먹는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요. 어린 시절 동네에서 소잡는 날을 추억해 보면요, 한동네에서 누구네 집 소잡는다더라 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집에 모여듭니다. 거기서 직거래가 이뤄지죠. 개똥이네 천엽 한 근, 길동이네는 간, 순이네는 소꼬리, 영희네는 소가죽 이래 저래 필요한 만큼 소고기를 사갑니다. 그리고 즉석에서 생고기로 육회파티가 벌어집니다. 기름장에 찍어서 먹는 맛은 일품이죠. 군침들 삼키시는 것 같은데 제가 잘 못봤나요? 소잡는 날은 동네 잔치고 축제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누구네 집이 오늘 화목제 드린다더라 하면 잔치가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3.    함께 나눔으로 거룩함을 나타내어라.

 

자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레위기의 전반부 16장까지가 어떻게 믿을까의 문제라면 17장부터 27장까지의 성결법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규정해 놓았습니다. 어떻게 살아갈 때 거룩해 질 수 있는지를 규명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는 첫 규율이 가축을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곳에서 잡아 먹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막과 성전에서의 거룩한 예배를 통해 거룩함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먹고 사는 영역 즉 우리의 일상의 영역 안에서도 거룩함이 이뤄지기를 원하십니다. 혼자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가축 한 마리를 잡더라도 함께 나눠먹고 이웃을 보살피라는 하나님의 신적 자비 정신이 이 율법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인 것이죠. 사랑을 실천하고 나누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누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와 나눔을 실천할 때에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신다는 것이 오늘 이 법률조항의 핵심적인 의미인 것이지요.

 

여러분 일생을 하나님께 드리기는 쉽지만 일상을 하나님께 드리기란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거룩한 삶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이제 내일 모레면 민족의 대명절 추석입니다. 추석에 나의 것을 나누고 베풀만한 이웃이 누구인지 살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냄으로 큰 기쁨 누리는 추석명절을 보내시기를 주님께서는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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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2012. 8. 26. 10:21

#이 설교문은 2012. 08. 26일에 염산교회 국제교회 예배 때 했던 설교문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요구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뜬금없이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일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네 저만 궁금하군요 ㅎㅎ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 주인이라는 단어를 간단히 살펴보죠~ 주인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바알입니다. 바알이라는 단어는 여러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번째 뜻으로 신의 이름을 가리킵니다. 팔레스틴의 유명한 신 바알이 바로 이 바알입니다. 둘째 남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셋째 주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결혼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남편이 주인이고 주인이 남편아니겠습니까? 부인이 주인이 되려고 할 때 가정은 피곤해 집니다.

 

예수님이 너의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신 말은, 너의 주인을 불러와라 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말합니다. 저에겐 지금 주인이 없어요~ 전에 주인이 다섯 명 정도 있었지만 다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했죠. 지금 있는 주인도 만족스럽지 않기는 마찬가지랍니다!!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는 우리 삶에 절대적인 문제입니다. 요즘 강아지들이 매우 호강하는 시대입니다. 참고로 저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매우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가 강아지를 좋아할 거란 착각이 있는 듯해요. 어쨌든 어떤 강아지는 좋은 주인 만나서 예쁜 옷도 입고 소고기 말린 것 같은 좋은 밥먹으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떤 개는 주인 잘 못 만나, 뜨거운 여름날 한 그릇의 보신탕으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주인이 누구인지 잘 모르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면 누가 여러분의 주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 돈이 되어서 돈 많이 벌어서 호강하는데에만 관심이 있으신가요? 그러면 여러분은 돈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자녀들에게만 있어서 어떻게 하면 자녀들을 잘 키워볼까에 관심이 있다면 여러분의 주인은 자녀일 것입니다. 아니면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 삶의 주인인지도 모릅니다. 오로지 나의 목표, 나의 만족, 나의 것에만 관심있다면 주인은 내가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다른 말로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예배하고 있습니까? 누구를 예배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여인의 대화의 주제가 남편에서 예배로 넘어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죠. 너의 주인을 데려와라~ 니가 예배하는 대상을 데려와라~ 그 거짓 주인은 너를 만족시켜주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참 주인을 만나고, 그 주인을 예배하라~ 그 주인이 너의 삶을 만족시켜 줄 것이다.

 

여러분이 예배하는 주인은 누구입니까? 그 주인을 바꿔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따르는 사람을 찾으신다는 말씀입니다. 헛된 주인을 예배하며 공허한 삶을 살아가지 마시고, 참 주인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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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2012. 7. 28. 22:14
초등학교 4학년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작은 개울 가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했습니다. 움푹 파인 곳이 있었는데 그 곳은 상당히 깊었습니다. 그 깊은 곳을 헤엄쳐서 건너자는 내기였습니다. 저는 수영을 잘 못하는데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헤엄쳐 가는데 발이 쑥 빠져들어 갔습니다. 한참을 내려 갔는데 땅바닥이 닷더군요. 있는 힘껏 발로 찼습니다. 고개가 물속으로 다시 쑥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곳 다리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그 다리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야단 맞을 까봐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어요. 그리고 다시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죠. 다시 힘껏 바닥을 찼습니다. 살려주세요 라고 외치는데 누가 제 손을 낚아 챘습니다. 아버지였을까요? 아버지였다면 진짜 영화 같은 이야기겠죠? 친구였습니다. 친구가 저를 구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죄에 빠져 죄의 늪에 깊이 빠져 가는 인간들을 바라만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그 죄의 바다로 뛰어들어 사랑하는 그의 자녀들을 구하기로 하셨지요. 하나님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왜 직접 뛰어 들으셔야 했습니까? 그것은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니까요. 제가 만약 어린 시절 빠져들어가며…. 아버지~ 라고 외쳤다면 아버지는 자전거를 내 팽개치고 다리에서 뛰어 내리셨을 겁니다. 저는 아버지를 부르지 못 했었죠.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죄인이라 아버지를 부르지 못한 것이죠. 하지만 내가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물 속에 빠져들어가는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뛰어 내리셨을 겁니다. 아버지니까요. 사랑하니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누구든지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손을 내미시겠습니까? 죄의 늪으로 깊이 빠져가는 나의 삶을 건져 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영원한 생명이 있는 저 언덕위로 안전하게 옮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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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2012. 7. 23. 19:25

마태복음 6 26-30

제목 : 우리가 누구? 빛나는 녀석들, 짭짤한 녀석들.


Intro.

 

  사랑하는 염산 소년부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목사님이예요르레이~~ 여러분 반갑습니다람쥐~~여러분들에게 목사님이 고백할 것이 있어요구르트~ 영언데 매우 어려운 영어인데 여러분이 알아 먹으실 있을지 모르겠네요~~ 고백은 다름 아닌 "I love 유가람, 유가람, 유가람" 유가람이 누구냐구요? 아주 이쁘고 잘생기고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유찬이 엄마예요 홍홍홍^^ 오해하지 마라~ 마음만은 ~~쭉하신 분이시다^^

 

여러분 소개를 안했군요. 이름은 김도진라고 해요~ 어때요 신사의 품격 좔좔좔 흐르지 않아요? 목사님이 생긴건 이렇게 생겼어도. 마음만은 장동건이다~~ 실제 이름은 김경헌이예요. 누규?? 누규?? 김경헌 목사님이예요.

 

여러분 저를 보면 신체 부위의 어디가 가장 눈에 띕니까? 맞아요 이마예요. 빛이 반짝 반짝 나지요? 이번 여름 수련회의 주제 뭔가요? 세상의 소금과 ? 세상의 소금과 ?? 그래요 빛이예요. 제가 강사로 여러분에게 이유가 바로 빛나기 때문이예요. 목사님하고 용감한 녀석들을 따라해보고자 합니다. 목사님이 "우리가 누구"하면 여러분은 "빛나는 녀석들"하는 거예요. 있죠? "우리가 누구?" "빛나는 녀석들" "우리가 누구?" "빛나는 녀석들"

 

그래요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세요. 너희가 가서 썩어져 가는 세상을 썩지 않게 해주고, 정말 맛나는 그런 세상으로 만들어라~ 말씀하시구요. 너희가 세상의 빛이 되어 어두워져 가는 세상을 비춰주고 몰라하는 친구들에게 빛이 되어 주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Episode 1. 마태복음 6 26-30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너무나 어두워요~ 너무 많이 썩었어요. 얼마전 7 3일에 강원도 원주에서 초등학교 4학년 친구가 자살을 해서 목숨을 끊었어요. 자살을 이유가 뭔줄아세요? 살기 힘들다는 이유였어요. 이유라면 여기 있는 모든 친구들이 자살해야 같은데 너무 안타까워요. 살기 힘들지 않은 친구들이 어디있겠어요. 아빠는 지방에 가서 돈을 버시고, 엄마도 뒷바라지 하느라 야간 근무를 하시는 직장을 다녔대요. 친구가 삶이 너무나 고달프고 힘들었는지 유서를 남기고, 친한 친구들에게 편지 통씩 남기고 아파트 11층에서 뛰어 내려 숨졌어요. 여러분은 친구를 이해할 있으세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요? 그래도 여러분 자살만은 선택하지 마세요. 우리 초딩들의 삶이 고달프긴 고달픈 사실입니다. 요즘 초딩들도 저녁 10시가 되어야 학원에서 돌아오잖아요. 학교별로 시험 성적으로 경쟁 붙이고 정말 힘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힘들게 공부해야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유는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예요. 누군가를 밟지 않으면 올라설 없다 생각하기 때문이죠. 여러분은 무한 경쟁 사회의 희생양 되어 있는 겁니다.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것이지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줄여서 스카이라고 해요. 스카이 나와야 출세할 있고, 성공할 있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습니다. 여기 계신 선생님들 중에 스카이 나오신 들어보세요. 정말 나셨군요. 대한민국의 1%만이 스카이를 갑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99% 실패자 루저인가요? 쓰레기인가요? 좋은 대학 나오면 성공할 없는 건가요? 좋은 대학 못나오면 예쁜 여자랑 결혼 못하는 건가요? NO, no, no 

 

 

여러분 무한 경쟁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것은 비교하는 거예요. 너 째보다 공부 더 잘해? 너 째보다 더 잘 생겼어? 너 째보다 학벌 좋아? 너 한서 초등학교냐? 나 용강 초등학교야? 어디서 한서 초등학교 주제에 까불고 있어? 초등학교도 학벌이냐? 서로 서로를 비교하게 만들어서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 무한경쟁입니다.

 

 

Q1.여기서 질문 들어갑니다. 나는 내가 정말 자랑스럽다. 내가 너무 멋지다고 생각해. 어디가도 꿀리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소년부 친구들 손들어 보세요. 여기 찌질이들만 모였구나. 염산교회 소년부는 모두 찌질이들인가보죠?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찌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예요. 왜냐하면 여러분은 어려서부터 그런 말만 들어왔거든요. 집에 가면 엄마가 하는 . "그럴 줄 알았어~ 그것 밖에 못해? 그렇게 공부 못해서 커서 뭐가 될래? 이 바모야~ 멍충아! 심지어 이 병신아~ 뭐하러 태어났냐? " 이런 말을 서스름 없이 해댑니다. 계속 이런 말만 듣다 보니까 여러분들의 무의식 속에 ~ 나는 정말 쓸모 없는 존재구나 라는 생각이 심어져 버린겁니다.

 

목사님의 용감함을 보여주지~ "어머니~ 지금 듣고 있나요? 그런 어머니는 공부를 얼마나 잘하셨나요? 어머니는 얼마나 예쁘신대요? 엄마 어릴적 성적표 까봐요 나랑 비교해 보게!" 워워워~ 속시원합니까? 그럼에도 여러분 마음에 가시지 않는 앙금, 그리고 나를 따라다니는 표딱지 " 못생겼어, 허접해, 못해, 실패자야" 이런 표딱지들이죠. 여러분이 이런 생각을 갖게 이유를 목사님이 설명해 줄게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들어온 자신에 대한 평가는 거의 대부분이 거짓말이었습니다. 어려운 말로 거짓 메시지였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거짓 메시지가 진짜인 알고 받아 들여 왔어요. 정말 없는 존재구나~~ 공부도 못하고, 얼굴도 못생겼고 아무짝에도 없는 존재야~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더이상 거짓 메시지를 듣지 마세요. 이제 진짜 메시지만을 받아들이세요. 말만 받아 들이시라는 겁니다. 더이상 남과 비교하여 자신의 가치를 매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Q2. 질문 가지 , 목사님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생겼다고 생각해요? 그럴 알았어요. 여러분 생각에는 내가 생겨 보이겠지. 우리 아내도 나를 못생겼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목사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보다 생긴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 여기 있는 남자들 나오고 이래라 ㅎㅎ 여러분 저는 제가 얼마나 많은 거짓 메시지에 속아 왔는지 알게 되었어요. 저는 어릴 여러분만 여러 사람들 앞에 나가서 말도 못하는 그런 아이였어요. 한마디로 찌질이였어요.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두려웠어요. 제들이 나를 뭐라 생각할까? 자신에 대해 너무나 자신이 없었어요. 저는 계속 거짓 메시지들을 진짜인 알고 받아 들여 왔었어요. 다리 밑에서 주어 아이야~ 정말 제가 무가치 알았어요. 하지만 메시지, 좋은 소식을 듣기 시작하면서 저는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여기서 당당히 설교까지 있는 거예요. 오늘부터 목사님이랑 약속해요. 거짓메시지를 듣지 않고 메시지만 듣겠다.

 

 

<PPT1> 사진 장을 보여드릴게요. 아주 아름다운 자매입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목사님의 아내예요. 목사님은 스카이도 안나왔어요. 지방대 나왔어요. 여러분 생각하기에 정말 못생겼어요. 물론 여러분 생각이지만요. 하지만 이렇게 예쁜 자매를 만나서 결혼했어요. 여러분 공부 하고, 생겨야 예쁜 여자 만나는 아니예요. 내가 아름다운 만큼, 아름다운 사람을 만날 있어요. 저는 아내랑 소개팅 하고, 꿀리지 않았어요. 당신이 나를 차는 순간,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을 것이오. 나를 포기하면 내가 손해가 아니라 당신이 손해야~ 어디 볼테면 보라지~~ 이렇게 나갔어요.

 

아까 여러분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소수의 학생밖에 손을 들지 않았어요. 그만큼 여러분은 거짓 메시지에 완전히 지배를 받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비교하면 불행해 집니다. 저랑 장동건을 비교하지 마세요. 장동건이 불행하잖아요. 장동건은 장동건 나름대로 생겼고, 저는 나름대로 생긴거예요. 비교하는 만큼 어리석은 없는 겁니다.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 하면 누가 이겨요? . 육지에서 경주를 하면 토끼가 이기구요, 바다에서 경주를 하면 거북이가 이기는 겁니다. 각자 각자가 타고난 재능과 기질이 다른 거예요. 정민이는 정민이 나름대로 아름답구요, 경훈이는 경훈이 나름대로 생긴 겁니다. 경훈이가 목사님과 비교하는 순간 인생이 비참해 지는 거예요. ~ 목사님은 저렇게 생겼는데 나는 뭐지? 하면서 머리를 벽에 찢고 그러지 말라구. 여러분은 여러분 나름대로 가치 있게 하나님이 만드셨어요. 이것이 진리입니다. 이것이 말이예요.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공주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아라~ 이것들이 솔로몬이 입었던 아름다운 옷보다 훨씬 귀하단다. 여러분이 걸어가는데 하얀 똥을 찍찍 싸는 공중의 , 그리고 한서 초등학교 화단에 이름 모르는 들꽃, 이것들이 솔로몬이 입었던 옷보다 훨씬 귀하대요. 생각해 보세요. 솔로몬은 당시 세계에서 최고로 사는 부자였어요. 사람이 그냥 보통 옷을 입었겠어요? 당시 최고의 디자이너가 옷을 만들었을 겁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루이비똥, 페레가모 같은 디자이너들이 옷을 만들었다구요. 그런데 솔로몬이 입은 옷보다 마리가 귀하대요, 제비꽃 송이가 훨씬 아름답대요.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근데 말이돼~~ 그런줄 아세요? 누가 만들었느냐 때문이예요. 솔로몬이 만든 옷은 사람이 만들었지만 공중의 새와 들의 꽃은 하나님이 만드셨거든요.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귀한 거예요. 따라해 보세요. 하나님이 만드셔서 귀하다.

 

여러분이 존귀한 이유가 무엇인줄 아세요? 여러분을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이예요. 그냥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들었어요. 저는 여러분을 보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왜냐면 여러분은 하나님 닮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해봐요.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루이비똥이나 구찌 바바리 이런 옷이나 가방이 비싸요?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들었기 때문이라구요. 여러분이 존귀한 이유는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를 잘해서, 다른 친구들보다 이뻐서가 아니예요. 여러분을 하나님 만드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귀한 겁니다.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따라해보세요.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누가 하나님의 걸작품한테 못생겼다 못났다 하는거야? 가만 안나둔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걸작품이고,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존귀한 거랍니다. 절대 비교하지 마세요.

 

나의 가치는 공부에서 나오지 않아요. 나의 가치는 외모에서 나오지 않아요. 나의 가치는 가문에서 나오지 않아요. 그럼 누구로부터 나와요? 하나님으로부터~

<교구1> 여기 지폐가 있어요. 지폐가 이렇게 구겨졌다고 해서 지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가요? 아니예요. 지폐에 똥이 묻든, 물이 묻든 구겨졌든 지폐는 만원이란 가치가 변하지 않는 거예요.

 

 

Episode 2. 어떤 관점으로 바라 볼 것인가?

 

어떤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느냐는 매우 중요해요. 자신을 세상의 눈으로 세상의 가치로 바라보면 불행한 겁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가치로 평가하면 행복해집니다.

 

<PPT2> 제가 그림을 하나 보여드릴게요. 아가씨가 보이나요? 아니면 할머니가 보이나요? 아가씨가 보이기도 하고 할머니가 보이기도 하죠.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림이 달라 보이는 겁니다.

<PPT3> 다음 그림에서 남자의 모습이 보이나요? 아니면 모습이 보이나요? 그림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 보이죠. 여러분들을 바라볼 세상의 잣대로 그러니까 공부 잘하느냐? 생겼느냐? 학벌이 좋냐? 집안이 좋냐? 따지면 불행해 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행복해지는 겁니다.

 

이제 거짓 메시지들을 차단하세요. 듣지 마세요. 거짓 메시지는 계속 다른 관점을 여러분에게 집어 넣을 겁니다. 거절하세요. ~~ 너희들이 뭐라 말해도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 멋진 사람이고,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당당하게 말하세요.

 

다른 사람의 평가에 따라 여러분을 평가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누구라고 하느냐가 중요하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절대 중요하지 않는 거예요.

 

<PPT4> 다음 그림을 보죠. 그림에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남자는 우리가 불행해 보이는데 그는 너무나 행복해 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거든요. 자기 자신을 발레리나로 바라 보고 있어요.

<PPT5> 다음 그림을 보시죠. 세상 사람들은 모양으로 여러분을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을 평가하실 , 모양이 아니라 중심을 보세요. 내면을 보시지요. 다윗을 보세요. 다윗의 일곱 형들은 모두가 내로라 하는 미남에 훈남에 몸짱에 정말 사람들이었어요. 다윗은 보잘 없는 양치기에 불과했구요.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외모가 아니라 다윗의 중심을 보셨어요. 그리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겁니다. 여러분 외적인 조건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외적인 조건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 거짓 말이야. 속지마~~제발.

Episode 3. 너는 특별하단다.

 

이제 여러분에게 동화를 들려 드릴거예요. 들어보세요.

 

#1

옛날 어느 작은 마을에 나무로 만든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요. 그들은 모두 앨리라는 목수아저씨가 만든 사람들이었지요

#2

나무로 만든 사람들은 서로에게 별표와 점표를 붙여주는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3

나무로 만든 사람들은 서로에게 별표와 점표를 붙여주는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4

나무사람들 중에서 검은 점표만 온몸에 붙인 펀치멜로란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별표를 받기위해 재주넘기도 해보고 매일 밤마다 깨끗이 목욕도 해보았지만 언제나 사람들의 웃음 거리밖에 되었어요

#5

“아무래도 좋은 나무사람이 아닌가바” 외톨이가 펀치멜로는 하루하루 한숨을 쉬었습니다

#6

그러던 어느날 펀치멜로는 예쁜 점표도 보기싫은 점표도 붙어있지 않은 루시아라는 나무소녀를 만났어요.

“왜 너의 몸에는 별표도 점표도 없는거지? 나도 너처럼 아무것도 붙이고 싶지 않아”

#7

“방법을 알고 싶으면 우리를 만들어준 앨리 아저씨를 찾아가 보세요” 라고 말하며 언덕위에 커다란 통나무 집을 가르켰어요

#8

펀치멜로는 앨리 아저씨를 만나기를 기도하며 잠이 들었어요

#9

다음날 아침, 펀치멜로는 앨리아저씨를 찾아갔습니다.

통나무 안에는 어마어마하게 책상에서 털복숭이 할아버지가 뚝딱뚝딱 일을 하고 있었어요.

#10

할아버지는 작은 펀치멜로를 발견했어요. 그를 번쩍 들어올렸습니다.

“펀치멜로야 만나서 반갑구나! 내가 너를 만든 앨리아저씨란다. 아저씨는 펀치멜로의 몸의 덕지덕지 붙은 검은점표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넌 나쁜 점표를 많이 받았구나”

저도 남들처럼 예쁜 별표를 많이 받으려고 노력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어요

#11

앨리아저씨는 펀치멜로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어요.

“펀치멜로야 너는 다른 나무사람처럼 아주 정성스럽게 만든 소중한 존재란다

“그런데 다른 나무사람들은 항상 검은 점표만 붙여주나요?

#12

“그 검고 보기싫은 표들은 니가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니가 나의 사랑을 깊게 신뢰하면 할수록 표들은 소용없는 것들이 될꺼야. 이제 날마다 나를 찾아오렴. 내가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게 될거란다”

#13

펀치멜로는 앨리아저씨의 햇살같은 밝은 웃음을 뒤로 하고 통나무 집을 나왔습니다.“그래 맞아. 앨리 아저씨가 정성스럽게 만든 소중한 존재야 ”바로 그때 펀치멜로의 점표하나가 떨어졌습니다. 머리에 붙어있던 점표도 얼굴을 가리고 있던 점표도 하나둘씩 펀치멜로의 몸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판치넬로라는 찌질이가 어떻게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도 당당히 자신있게 살아갈 있었나요? 그를 만드신 엘리 할아버지를 만나면서부터였어요.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알아야해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너무나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세요. 여러분들의 마음이 어두워져 있으면 빛을 비추고 싶어도 비출 없어요. 여러분의 마음이 병들어 있으면 소금맛을 내고 싶어도 썩은 물만 흘러갈 밖에 없어요.


<기도1> 회개 기도 ( 찬양 우리 이제 성령님을)

 

가.   친구들에게 헤꼬지 하고, 친구들에게 못생겼다하고, 욕하고 했던 것 하나님이 슬퍼하세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걸작품에게 우리가 어떻게 욕을 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의 그 말 한 마디로 그 친구는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 줄 아세요? 여러분의 그 거짓메시지 한 마디로 그 친구는 그 아픔을 평생 안고 가야할 수도 있어요. 그것을 하나님은 너무나 슬퍼하셔요.

 

나.   야동 보고, 나쁜 그림 보고, 자살하려고 생각했던 것, 도둑질했던 죄, 모두 하나님 앞에 이시간 쏟아 놓으세요. 하나님은 죄를 고백하는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시지만 고백하지 않으면 그 죄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었던 죄를 이 시간 회개합시다. 울면서 기도하세요. 내 이 죄 때문에 주님 얼마나 슬퍼하시는 줄 아세요? 오늘 모두 다 고백하고 깨끗하게 씻음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기도 2> 용서와  화해의 기도 ( 찬양 - 사랑한다 아들아)

 

가.   나에게 해꼬지 하고, 나에게 안 좋은 말하고, 나를 깍아 내리고,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용서하는 기도를 드렸으면 해요. 엄마 아빠를 용서하세요. 용서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마음이 병이 나요. 용서는 놀라운 힘이 있어요. 엄마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듣고 자라서 여러분들에게 의도하지 않게 그런 말을 했던 거예요. 엄마 아빠의 진심이 담긴 말은 아닐 겁니다. 용서합시다. 나에게 안 좋은 말을 했던 친구들, 담임 선생님, 삼촌 등등 예수님 내가 용서하기 원합니다. 도와주세요. 라고 말씀드려 보세요.

 

<기도 3> 자존감을 세워주는 기도 (찬양- 사랑한다 아들아)

 

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존귀한 사람인 줄 아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죄를 씻고 여러분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의 사랑하는 아들까지 십자가에서 죽이셨던 분이셔요.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하는 지 아세요? 오히려 하나님이 여러분을 너무나 필요로 하세요. 하나님은 여러분 없인 못 살아요. 여러분은 너무나 존귀한 사람입니다.

 

<기도 4>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

가.   문을 열고 예수님을 맞아 들여 보세요.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셔보세요. 이제 내 맘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하세요.

 

<기도 5> 각 반 선생님과 친구들을 위한 기도 (찬양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가.   각 반 선생님을 가운데 모시고 여러분들이 주위를 삥 둘러 보세요. 선생님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여러분 교회 선생님들만큼 사랑을 줄 수 있는 선생님 계시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그 선생님에게 얼마나 사랑을 고백하셨나요?

나.   서로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고백해 주세요. 찬양 부르며 서로 고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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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2012. 7. 8. 09:06

한국엔 각 지역마다 잔치에 빠지지 말아야할 음식이 있다

전라도에선 홍어 경상도에선 문어 등 

이스라엘에서는 포도주가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오랜 시간 포도주 없이 잔치는 진행됐다

사람들은 포도주를 간절히 원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오랜 기다림과 목마름을 채워 주신 것이다.



이사야서 25 6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포도주로 잔치를 여실 것이라 약속하셨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예수님까지 1500년동안 이 포도주를 기다려 왔다

드디어 1500년 동안 깊이 숙성된 포도주가 등장했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 오랜 기다림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말한다.

" 이렇게 좋고 맛난 분을 왜 지금까지 몰랐단 말입니까??"

" 왜 이제야 이런 분을 알려 주시는 겁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오랜 목마름을 아신다.

예수님을 마셔 보라. 그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 근본적인 목마름이 해갈된다. ( 7:37)

 

가나 혼인잔치의 이적은 예수님의 첫번째 이적이었다

예수님의 앞으로의 사역의 방향을 나타내주는 매우 중요한 이적이다

핵심은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새로운 창조물로의 변화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옮겨 지며

육에 속한 삶이 영에 속한 삶으로 변화 되는 것이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완전한 변화인 것이다.

말그대로 완전한 변화이다. New Creation 이 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 17절 말씀이다

17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오랜 목마름을 해갈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완전한 새로운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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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2012. 5. 19. 05:46

본문 : 삼하 13장 전체

제목 : 가면을 벗고 직면하라.


13장은 본격적으로 다윗 왕가에 찾아 든 칼의 역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다윗 왕가에 내려진 하나님의 징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징계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허락하시는 불가피한 방법입니다. 히브리서 12장 7-8절 말씀입니다. 어찌 아버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친히 징계를 허락하십니다. 다윗 왕가에 내려진 징계는 하나님의 채찍질이며 다윗 왕가가 정신 차리고 하나님 앞에서 더 신실하게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지요. 그런데 징계를 받느냐 안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징계를 어떤 태도로 받아드리고 어떻게 사후 처리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다윗과 다윗의 아들들은 성숙한 태도로 임하지 못했습니다.


    본문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누이인 다말을 짝사랑하여 상사병까지 이르게 됩니다. 못된 친구 요나답의 계책을 듣고 암논은 옳지 않은 방법으로 여동생을 소유하려 했습니다. 결국 그 누이 동생을 강간하고 차버리죠. 이것에 대해 다말의 친 오빠인 압살롬이 개입하여 다말의 입을 막고 복수의 칼을 갑니다. 2년 후 잔인한 피의 복수가 벌어져 압살롬이 도망간다는 줄거리입니다. 


13장 1절 말씀은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다윗의 범죄 후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죠.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표현이지요. 다윗의 성범죄가 있은 후에 그리고 다윗의 살인 범죄가 있은 후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죠. 이러한 일은 다른 말로 다윗이 저지른 범죄가 동일하게 대물림 되어 일어났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윗이 저지른 성범죄가 암논의 성범죄로, 그리고 살인죄가 압살롬의 살인범죄로 그대로 대물림 되어 다윗을 괴롭히고 있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들을 보면 부모의 것이 그대로 자녀에게 대물림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생김새는 말 할 것도 없구요 습관이나 성품도 대물림됩니다. 아빠가 술주정을 하면 아들이 그것을 그대로 닮구요. 아빠가 책을 좋아하면 아들도 책을 좋아하구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대로 대물림이 되죠. 제가 집에서 개미를 손으로 짖이겨 죽였더니 제 아들이 개미만 보면 손으로 막 누릅니다. 살생의 대물림이죠^^ 암논과 압살롬의 범죄는 다름 아닌 다윗의 범죄라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죄를 저지르는 동기나 죄의 결과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좋지 않은 모습이 보여집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뭐뭐하는 척하는 자세였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가리우고 표현하지 않고, 대화로 풀지 않고 쌓아 둔 채, 폭력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바로 좋지 않은 태도입니다. 


 먼저 암논을 보십시오. 그의 마음 가운데 자신의 이복누이를 연모하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을 표현하고 고민을 알리는 방법을 취했어야 하는데, 암논은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고 차단한 후 자신 안에 숨겨진 짐승스러운 욕정을 사랑으로 믿으며 폭력적으로 삐뚤어진 사랑을 표현합니다. 병든 채 하다는 말이 5절 6절에 두 번이나 등장하죠. 병든 척하지만 병들지 않았고, 사랑한 척 하지만 사랑하지 않은 진실되지 못한 모습입니다.


압살롬은 어떻습니까? 그 누이의 마음을 그가 조금이나마 헤아린다면 그렇게 반응하면 안됐습니다. "너 가만 있어, 뚝!!! " 그렇게 한다고 다말의 상한 감정이 치유가 됩니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정(이나영분)이 엄마를 거의 증오하며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유정이 중학교 시절에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울며 엄마에게 찾아 왔는데 엄마는 되려 이나영을 나무라고 뚝 그치라고 다그칩니다. 니가 어떻게 처신했으면 이것이 사건을 해결하는 지혜로운 방법입니까? 상한 감정을 다 토해 내어 울게 하고 들어주고 아파하는 누이를 안아 주지 못할 망정 뚝 그쳐, 내가 처리할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다말의 감정이 처리가 됩니까? 20절에 다말이 그 이후에 어떻게 지내는 지 보십시오. 쓸쓸하게 외롭게 처량하게 지냈다는 겁니다. 아무에게도 자신의 고민을 나누지 못하고 자신의 상한 감정을 토해 내지 못하고 쓸쓸하게 외롭게 지냈다는 겁니다.


다윗 또한 암논과 다말의 사건을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암논을 정말 사랑했다면 그는 암논에게 죄에 합당한 징계를 내렸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그냥 분노하고 맙니다. 암논에게 꾸지람을 했다는 말조차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의 가문에 등장한 치욕적인 간음 사건을 은폐하고 덮어 넘어가려 한 것이지요. 이것은 압살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압살롬의 분노는 암논을 향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 아버지 다윗을 향한 분노이기도 했습니다. 압살롬 또한 복수의 칼날을 가슴 깊이 숨긴 채, 감춘 채 괜찮은 척 했습니다. 암논과 아버지 다윗에게 가서 누이의 사건을 직면하며 풀어보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압살롬의 분노는 다윗과 암논을 정조준하며 자라기 시작한 것이지요. 


오늘 주인공들 모두다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괜찮은 척, 다 해결된 척, 아프지 않은 척, 문제 없는 척하며 지냅니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습니다. 가면을 벗고 직면하라!! 가면대신에 직면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서운하지 않은 척, 마음이 상하지 않은 척 하다 뒤에서 온갖 호박씨는 다 까대고, 증오의 칼을 가는 모습을 종종 우리 모습에서 보게 됩니다. 무슨 척 하는 모습은 건강한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드러내는 것이 건강합니다. 상처 받았으면 하나님 앞에서 상처 받았다고 아뢰고 빛 가운데로 나오는 것이 필요 합니다. 관계가 틀어졌으면 그 사람과 직면하여 내가 어떤 부분에서 아프고 괴로운지 말하고 풀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지혜롭게 풀어가야겠지요. 잘 못하다가는 더 악화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서운하지 않은 척 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만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면을 벗고 문제와 직면하십시오. 가면을 벗고 하나님과 직면하십시오. 가면을 벗고 상한 감정과 직면하십시오. 가면을 벗고 자신의 아픔과 직면하십시오. 오늘 성령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 저에게 어떤 상한 마음이 있는지 보여 주십시오. 제가 그것에 직면하여 그것을 이 아침에 해결하고 싶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제가 해결해야할 죄악이 무엇입니까? 그 죄와 직면하여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게 하십시오. 제가 해결해야할 묶인 관계가 누구와 있습니까? 그것에 직면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가면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직면을 선택하시겠습니까? 



Posted by speramus
설교문2012. 3. 11. 06:30

1.     Intro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가나는 아프리카의 가나라는 나라가 아닌건 아시죠? 썰렁하네요^^ 갈릴리 호수 근처에 위치한 작은 시골 동네 가나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첫 시작이 사흘째 되던 날이라고 시작합니다. 이 말은 본문이 앞의 사건과 연결이 됐다는 말입니다. 바로 앞 장인 요한복음 1 50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요한복음을 쓴 요한은 요한 복음 1장에서 제자를 부르는 사건을 소개합니다. 50절 말씀은 특별히 그 제자중 나다나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한 후 곧바로 큰 일, 즉 큰 표적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죠. 가나의 혼인 잔치는 무화과 나무 아래 있는 것을 알아본 것보다 더 큰 일이라는 겁니다. 내가 너를 제자로 부른 후 너는 이 보다 더 큰 일을 볼거라는 암시죠. 이 암시 바로 뒤에 물이 포도주가 되는 사건으로 예수님은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것이지요. 

 

여러분들 표정을 보니까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아요~" 라는 표정인데요. 솔직히 우리 힘으로는 물로 얼음을 만드는 것도 어렵잖습니까? 물 한 대접 받아 놓고 입김을 아무리 불어 넣어 보십시오. 물이 얼음이 되나? 아니 물이 1도도 안 올라 갈 겁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다는 겁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은 요한 복음에서만 유일하게 등장하는 사건입니다. 그것은 가나 혼인잔치에 대해 요한이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기록했다는 걸 말해줍니다. 첫 번째 표적이면서 유일하게 요한복음에만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요한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가나의 혼인잔치를 기록하였을까요? 다른 말로 가나의 혼인잔치의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오늘은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제자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놀라운 표적

첫 번째로 본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본문의 가나 혼인잔치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표적이었을까요? 4지선다로 문제를 낼테니 맞춰보세요^^ 1번 예수님의 어머니 2번 결혼식 하객 3번 예수님의 제자 4번 답 없음. 문제가 어렵나요?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시고 그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야시며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세요. 1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모으셨습니다. 3일 후에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갈릴리에서 이적을 한 번도 행하시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이죠. 아마도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예수님을 초청해 달라고 부탁했을 것 같아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더욱 그 자리에 초대됐을리 만무합니다. 분명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들도 함께 가게 해달라고 말하지 않았겠어요? 예수님이 이 포도주 표적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신 것이라는 것을 뒷받침 해주는 구절이 11절에도 등장하죠?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우리는 이 표적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를 생각하기 전에 이 표적이 제자들을 위해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을 위해 기적과 이사를 나타내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위해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실 겁니다. 무엇 때문에요? 자신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죠.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하나님은 놀라운 표적을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타내실 겁니다. 세상에서 어떤 크고 기묘한 일을 경험하셨습니까? 우리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 그보다 더 큰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표적이란 증거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증거가 내 삶에 놀랍게 일어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는 겁니다. 단순히 4대 성인 중 한명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초월적인 능력까지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과학을 뛰어 넘어 역사하시는 초월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3.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본문을 통해 얻어지는 교훈은 혼인잔치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 주어집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첫 이적이 혼인잔치에서 이뤄졌다라고 말해줍니다. 혼인이 뭡니까? 결혼해 보신 분은 아시죠? 혼인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전의 나의 삶을 버리고 새 짝을 만나 또 다른 한 몸을 이루는 놀라운 일입니다. 결혼해보니 근심 걱정만 쌓이고 애물단지들만 늘어나더라는 표정이신대요 ^^ 부부가 하나되는 신비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혼인잔치에서 그 분의 첫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결혼을 통해서 얻어지는 그 놀라운 비밀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죠.

 

로마서 7장에는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한 여인이 사별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에 비유를 합니다. 남편이 죽으면 그 전 남편의 법에서 해방되어 다른 남편에게 가도 음녀라 칭함을 받지 않는다는 비유가 나옵니다. 그 전 남편은 율법이고 새로운 남편은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진 생명의 성령의 법을 말합니다.

분명 가나의 혼인잔치를 통해 예수님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의 비결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율법이 지배하던 그런 삶에서 이제 새로운 남편을 만나 결혼하는 새로운 삶, 은혜의 삶으로의 변화가 일어 날 것이라는 것을 가나 혼인잔치를 통해 말씀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호세아서 2 19-20절은 이 비밀을 이렇게 말해 줍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에게 시집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내 생활과 사고 방식을 모두 다 죽이고 남편 되신 예수님께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놀라운 삶의 경험이 여러분 삶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4.     포도주로 변화되는 것은 삶의 완전한 변화이다.

    마지막 세 번째, 본문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교훈은 혼인잔치의 핵심인 포도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이야기 꺼리는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는 겁니다. 전라도 잔칫상에 홍어가 빠지면 욕먹습니다. 경상도 잔칫상엔 문어가 빠지면 욕먹죠. 충청도, 강원도, 이북에서는 뭔가요? 이스라엘의 결혼잔치에서 포도주가 빠지면 욕 먹는 겁니다. 그런데 이 결혼식에 예상보다 손님이 많이 와버렸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이 좀 나서서 뭘 좀 해 보시라고 부추겼습니다. 믿음이 참 많은 여인이죠? 예수님은 아직 내 때가 아니잖습니까? 하면서 한 번 튕기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하인들을 데리고 오죠. 그리고 하인들에게 명령합니다. 예수님이 시키는 것은 잔 소리 말고 뭐든 다 하라구요.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시킨 것이 무엇입니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아귀까지 물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졸린 것 같아 성경퀴즈 나갑니다. 성경책 보시지 마시고 항아리는 몇 개가 놓여 있었나요? 여섯 개가 있었습니다. 이 항아리의 용도는 뭡니까? 뭐에 쓰는 물건인고? 요강이었나요? 된장 담궈 놓은 항아리였나요? 아니죠? 유대인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하는 법이 있었어요. 바리새인들이 이 전통과 나름의 법을 엄하게 따르죠. 그들은 성경보다 이 전통과 법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따랐어요. 정결하게 손을 씻기 위해 준비됐던 항아리, 그 항아리는 바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따르던 옛 신랑인 율법이었으며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 항아리 안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꿔 버리는 표적을 나타내신 겁니다.

 

물이 포도주가 됐다는 것은 단순한 화학적인 변화 이상을 의미합니다. 완전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죠. 완전한 변화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완전히 변해 버리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냥 착한 사람이 됐다 뭐 이 정도의 변화 이상입니다.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It's a New creation!!!

 

성경에서 물은 보통 무엇을 상징합니까? 성령을 상징하죠. 정결례로 대표되는 율법을 상징하는 항아리에 성령을 상징하는 물이 채워지자 완전히 새로운 존재인 포도주가 만들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옛 사람이 변하여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 돼버립니다. 우리 옛 사람에 성령님이 부어지면 우리는 새로운 포도주로 변화 되어 버립니다. 고린도후서 5 17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겁니다.

 

5.     맺는 말

우리는 오늘 가나의 혼인잔치의 물이 포도주가 된 표적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살펴 보았습니다. 첫째, 제자들의 삶 가운데 이적과 기사가 넘칩니다.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신 중요한 목적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죠. 둘째,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이 혼인잔치라는 것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삶이 바로 예수님과 결혼하여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 결혼 잔치의 핵심적인 물건인 포도주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인데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우리는 옛 사람이 변하여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제자이십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과 결혼하셨습니까? 여러분은 물과 피로서 거듭난 존재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완전히 새로운 전제로 거듭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