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양목이라는 나무는 매우 볼품 없는 나무입니다. 한국의 학교나 관공서의 울타리로 주로 심겨진 나무가 회양목입니다. 회양목이 볼품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무리 크게 자란다고 해도 나무의 직경이 한 뼘을 채 넘기지 못하고 키도 짤막한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회양목이 한 뼘 정도의 직경으로 자라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10년? 50년? 아닙니다. 5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회양목에게는 느림보라는 별명이 붙어 있나 봅니다. 하지만 회양목은 더디게 자란 만큼 그 단단함과 내구성은 다른 나무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어떤 나무보다 단단한 회양목은 예부터 도장을 팔 때 사용된 나무여서 도장나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회양목 입장에서 볼품 없다는 자기에 대한 평이 못내 불만스럽기만 합니다. 자기보다 더 단단한 나무도 없기 때문이죠. 하늘 높이 자라고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좋아 보일지 몰라도 그 단단함음 보잘 것 없는 회양목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런 나무들은 성장하고 꽃피우는데 모든 것을 소진한 나머지 내실을 다질 여력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양목은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내실을 다지는데 집중합니다. 그래서 그의 성장은 수 백년이 걸리고 더딘 것이지요. 더딘 성장에도 불구하고 단단하기 그지 없는 회양목의 가치는 단연 나무중에 으뜸입니다.
회양목을 떠올리며 교회를 생각해 봅니다. 화려함을 좇아 가는 사람이나 교회는 내실을 다질 여력이 없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양적 성장에 집중하다보면 내실을 다질 여유를 잃어버립니다. 속도와 겉모습의 화려함에 결코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더디더라도 옳은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을 향해 묵묵히 흔들림 없이 정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회양목의 더딘 성장에 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더딘 이유는 인격의 성장속도에 맞추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격과 내면이 성장하는 만큼 하나님의 나라도 성장합니다. 참된 인간성의 회복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의 인격의 형성은 부단한 내면의 살핌과 성찰을 통해서만 이뤄집니다. 머무르며 성찰하고, 성찰한 것을 바탕으로 실천하고, 실천에 대해 또 성찰하는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지난한 훈련을 통해 인격은 만들어져 갑니다. 이런 인격형성과 인간성의 회복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장과는 더더욱 거리가 멉니다. 매일매일의 사랑의 실천과 성찰이 켜켜이 쌓여야 단단한 그리스도의 인격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 단단함은 어떤 시련과 환란이 와도 꺽이지 않는 내적인 힘을 제공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의 성숙과 교회의 성숙은 회양목과 같아야합니다.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고 성장이 더디다고 불평 말아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 머물러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 단단한 그리스도인의 내면이 형성됩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형성되어진 인격의 가치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