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과 작품들2010. 12. 26. 22:41

이재철 목사의 목회자 자기점검 수칙33

 

1.태초에 하나님은 목사를 만드시지 않고 사람을 만드셨다.그러므로 목사가 되려 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2.교인들은 목사가 안수받는 순간부터 목사를 인간 아무개가 아닌 목사로 본다.그러므로 목사는 죽을 때까지 목사답게 살아야 한다.

3.목사의 주요 역할은 교인들이 주님의 은혜를 입게끔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목사 자신이 누구보다도 성결해야 한다.

4.참된 목자가 되기 원한다면 우리 사회와 교계의 온갖 병리에 물든 눈을 미련없이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5.목사는 구도자다.구도자는 고독해야 한다. 고독은 진리를 위한 자발적인 자기 격리다.그래서 고독 속에서만 구도는 깊이를 더해 간다.

6.목사의 승부는 이 세상에서 나지 않는다. 목사의 승부는 코끝에서 호흡이 멎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난다.

7.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당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해 도로 흑이 되었다.설교는 흙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다시 생령으로 살게하는 숨길이다.

8.설교할 때 교인들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지 않으면 설교는 단순한 공기의 진동으로 사라져 버린다.

9.설교 원고를 보지 않고 교인들과 눈을 맞추며 설교하는 것은 교인에 대한 설교자의 예의다.

10.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하나뿐이다.설교자는 그 한 단어를 찾기 위해 밤을 지새울 수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언어와 단어를 만드신 로고스시기 때문이다.

11.자기 설교에 부족함을 느껴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라.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단 한 사람에게라도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었다면,그런 설교자의 부족함은 성령님께서 온전하게 메워 주신다.

 

12.설교의 원천은 성경과 설교자의 삶의 자리다.그러므로 삶의 자리가 다른 타인의 설교를 흉내 내려는 것은 금물이다.

13.교회를 개척하기 원한다면,또 하나의 교회를 개척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점검해야 한다.자기 야망이나 뜻을 구현하기 위함이라면 교인이 많을수록 종교 장사꾼이 될 뿐이지만,소명을 좇아 자신을 던지기 위함이라면 교인이 단 한명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성공한 목회자가 될 것이다.

 

14.많은 목사가 그렇게 하듯,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사람을 버리는 목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목사의 업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15.목사는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 모든 교인의 목사이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모든 교인에게 똑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위한 파벌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16.교인에 따라서는 더 정이 가고 더 사랑스러운 교인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스스로 그들과의 거리를 침범하지 않도록 절제하라.

 

17.때로는 거리끼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때에도 그 거리보다 멀어져서는 안 된다. 그 교인이 자기 목회자의 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으시고 그를 맡기셨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8.언제나 비판의 소리에 열린 귀를 가져야 한다.자신이 틀렸다고 생각될 때에는 지체 없이 사과하라.목사는 모든 교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지 않음을 망각하지 말라.

 

19.교구 목사가 자기 교구 교인의 이름을 모두 알지 못한다면 적어도 그 교구 교인 모두의 목사가 될 수는 없다.

 

20.목사는 예배를 비롯한 모든 행사를 인도하고 주관하고 책임지는 존재다.준비할 수 있는 것은 빠짐없이 준비하고 연습해야 할 것은몇 번이고 연습하라.

 

21.교인과 전화할 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상대를 전화로 연결하지 말라.목사는 교인을 섬기는 사람이지 기업체 사장이 아니다.자신보다 연장자가 사무실을 찾아왔다가 돌아갈 때에는 반드시 문밖까지 따라 나가 인사를 드리라.

 

22.심방예배를 드릴 때에도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듯 경건하게 인도하라.예배는 어디서나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예의임을 교인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23.자기 목회지에서 받는 봉급을 족하게 여기라.자신을 요를 족한 줄로 여기지 않는 목사의 섬김과 봉사는 결국 교인의 주머니를 노리는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24.목사의 재산은 결코 예금통장이 아니다.목사의 재산은 무엇이든 주님께서 주신 것을 교인과 더불어 나누느 공생심이다.

 

25.무엇보다도 항상 정결한 몸과 마음가짐으로 교인들을 대하라.교인들에 대해 그보다 더 바른 예의는 없다.

 

26.교역자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가 성경적으로 보이지 않을 때,담임목사나 장로등이 말씀에서 벗어나 있다고 여겨질 때,그들을 비판하는 일에 정열을 쏟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기 자신에 대해 더욱 엄격하라.

 

27.목사가 먼저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으면 세상은 반드시 달라질 것이다.'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라는 샤를르 푸코의 말은 교인 이전에 먼저 목사가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다.

 

28.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설교하는 것이 목회의 전부가 아니다.목회는 주님 안에서 교인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그러므로 목사는 성장 과정의 상처가 주님의 사랑으로 치유받은 사람이어야 한다.치유받지 못한 상처는 더불어 사는 사람에게 무서운 흉기가  되기 때문이다.

 

29.현재 자신이 좋은 남편(아내)인지,좋은 아버지(어머니)와 좋은자식인지 점검하라.목사의 가정은 교인들이 들여다보는 진열장이다.

 

30.목사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열등감을 지니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이 타인도 존중하는 법이다.

 

31.목사는 산 속에 유리된 고립인이 아니라 세상에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속의 구도자이기에 이 세상 누구보다 앞장서서 법을 지켜야 한다.

 

32.자신이 꿈꾸던 예배당 건축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자신의 설교에 은혜 받았다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갈 때,사람들이 자신을 예수님 대하듯 할 때,그때 자신이 영적 패륜의 문턱 위에 서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33.목사도 때가 되면 예외없이 죽음으로 퇴장한다. 그러나 죽음의 퇴장은 새로운 등장이다. 자신이 살아생전 야망의 노예였는지 아니면 진리의 사람이었는지 죽음의 퇴장과 동시에 밝혀지기 마련이므로,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죽음의 퇴장을 준비하라.  

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10. 12. 7. 10:14
1. <Old Testament Theolgy: its history and development> - John H. Hayes, Fredrick C. Prussner
<구약성서신학사> - 프루스너
 
2.< Old Testament Theology: basic issues in the current debate> - Hasel, Gerhard F. <구약신학: 현대논쟁의 기본 이슈들> 김정우 역
 
3.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 Walter Eichrodt
    <구약 성서 신학> - 아히히로트
 
4. <Old Testament Theology 1, 2> - G. von Rad
   <구약성서 신학> - 폰라트
 
5.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testimony, dispute, advocacy> - Walter Brueggemann
   
 
 
더불어 참고할 책으로는,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
 
<성경 왜곡의 역사>, 바트 어만


제가 덧 붙이기로는 이 두 권도 추가 하면 좋을 것 같네요.

슈미트의 <구약성서 입문>

버나드 엔더슨의 <구약성서 이해>


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10. 4. 7. 15:31

그대를 사랑하기에 (Weil Ich bin Dich Liebe)   - 헤르만 헤세 (Herman Hesse)



그대를 사랑하기에, 나는 밤에,
그다지 설레며 그대에게 가서 속삭였습니다.
그대가 나를 못 잊도록
그대 마음을 따 왔습니다.


좋거나 싫거나 그대 마음은
나와 함께 있으니 오로지 내 것입니다.
설레고 타오르는 내 사랑에서
그 어느 천사도 그대를 구하지 못합니다.
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10. 3. 12. 22:54


아내와 함께 "인빅터스"라는 영화를 봤다.

인빅터스란 지지 않는, 꺽이지 않는 이란 뜻의 라틴어다.

25년동안 감옥 살이 후에 남아공의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는 어떻게 흑과 백을 통합할까를 고심한다.

많은 흑인들은 그들이 당해 온 질고의 시간들을 복수할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만델라는 햇빛정책, 포용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정부의 요직에 백인들을 배치시키고 백인들이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들을 그대로 유지 시킨다.

그 대표적인 것이 럭비였다.

럭비는 백인들이 좋아하며 즐겨왔던 운동이었고, 축구는 흑인들의 운동이었다.

그런데 흑인정권이 들어서자 체육위원회를 흑인들이 장악하고 럭비팀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려고 한다.

백인들이 부르던 "스프링복스"라는 럭비팀의 이름을 바꿔버리고

전통적인 녹색 유니폼 색깔을 바꿔버리려 한다.

그것을 만델라는 온몸으로 막아선다.

그것을 빼앗기면 자신의 나라의 절반의 동지인 백인들을 잃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1년 후 남아공에서 있을 럭비월드컵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남아공에서 럭비는 스포츠 이상의 것이었다. 바로 흑과 백을 연결시키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만델라(모건프리먼 분)와 럭비 국가대표팀의 주장인 프랑소와(맷 데이먼 분)  와의 대화였다.

프랑소와를 직접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그를 격려하며 만델라는 그에게 묻는다.

"리더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리더는 영감을 끓어 내는 사람이다.

영감은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수단이다.

영감을 불어 넣을 때,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것 까지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독방에서 있었을 때, 자신을 쓰러지지 않게 지켜 주었던 것을 이야기 한다.

그것은 과거의 지혜자들로 부터 왔던 주옥같은 싯귀였다.

그 영감어린 싯귀들을 통해 그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 건내 주었던 시가 감방에서 썼던 "인빅터스"라는 시였다.

거기서 영감을 받은 프랑소와는 팀을 결승까지 이끌고 결국 자신들의 능력이상의 결과를 얻게 된다.




리더란 영감을 불어 넣는 사람이다. 영감은 사람의 잠재력을 끓어 내어 놀라운 것들을 하게 만든다.

리더가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영감어린 싯귀 속으로 빠져들어가 본다.

설교도 마찬가지다. 설교는 영감을 불어 넣는 작업이다.

설교를 준비하며 설교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야 한다. (반드시)

그리고 그 영감은 설교의 딜리버리를 통해 회중들에게 전달 되어야 한다.

영감을 불어 넣는 설교자가 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의 잠재력 이상의 것을 끌어 내어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영감어린 설교자 말이다.

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10. 2. 24. 16:26

하나님의 모략 - 달라스 윌라드
세계는 평평하다. - 토마스 프리드만
설득의 심리학 - 로버트 차알디니
구약학 개관 - 버나드 엔더슨
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10. 2. 12. 11:09

조엘 오스틴의 팟케스트를 즐겨 듣습니다. 그 사람의 설교를 들으며
성경 본문에 관한 깊은 해석보다 교훈적인 설교, 주제 설교 위주로 간다는 아쉬움을 많이 느낍니다.
그리고 여러 번 들으니 주제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 세워주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데는 은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이 가르치는 은사가 있더라구요. 무엇보다 적절한 예화사용에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거 같아요.
그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존감에 관한 설교였는데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우리의 자존감은 우리의 주인(master), 우리의 창조주로부터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예화는 손수건이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손수건은 8$밖에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은 엘비스 프레스리가 가지고 있던 손수건이다.
아마도 800$은 훨씬 넘을 것이다.
이 손수건에 루비나 보석이 박혔기 때문인가? 아니다.
내 손수건과 차이가 무엇인가? 이 손수건에는 그의 땀이 묻어 있다.
누구의 땀이 있느냐에 따라 그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둘째 예화는 나무 예화였습니다.
첫째 나무는 리스닝이 잘 안되서 그냥 돌무화과 나무라 하죠. 둘째 나무는 참나무, 셋째 나무는 소나무였습니다.
이들 나무는 각자가 큰 꿈이 있었습니다. 크게 사용받고자 하는 꿈이었죠.
돌무화과나무는 보석상자가 되고 싶었어요.
세상에 소중한 보석들을 자신 안에 담아 두고 싶었죠.
그런데 나무꾼이 와서 그 나무를 베어 여물통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둘째 나무인 참나무는 큰 배가 되어 큰 바다를 항해하며 왕을 태우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하지만 나무꾼이 와서 그를 보잘 것 없는 물고기 잡는 데 사용되는 피싱보트로 만들어 버렸어요.
셋째 나무는 높은 언덕에 올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조각물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나무꾼은 소나무를 뗄감으로 쓰려고 베어 버렸어요.
몇 년이 흘렀죠.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 태어났어요. 예수님은 누우실 곳이 없었어요.
예수님의 부모는 돌무화과나무로 만든 여물통에 예수님을 뉘었어요.
그 돌무화과나무는 그 어느 보석보다 소중한 분을 그의 몸으로 품을 수 있었어요.
또 몇 년이 흘러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셔야 했어요.
예수님은 참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건너셨답니다.
참나무는 왕을 싣고 대서양을 건너는 대신 왕중의 왕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바다를 건널 수 있었어요.
또 몇 년이 흐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셔야 했어요.
로마 병사들은 뗄감으로 쓰려고 베어 둔 소나무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들었어요.
예수님은 그 소나무 십자가에 메달려 죽으셨고,
그 십자가는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답니다.

비록 초라한 우리이지만 질그릇같은 우리이지만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실 때
우리 삶이 너무나 가치가 있어진다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