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1. 요약

    존 번연(John Bunyan)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단말인가?”라는 물음 앞에 놓인 ‘크리스챤’이라 불리는 한 사나이의 구원의 여정을 “천로역정 – The Pilgrim’s Progress”라는 책으로 그려냈다. 천로역정이란 구원의 문제에 발버둥 치고 죄의 짐에 눌려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었던 한 연약한 인간이 어떻게 그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영광스러운 하늘 나라에 도달하게 되는지 여러 비유들과 서사를 통해 그려낸 책이다. 크리스챤의 하늘 나라를 향한 여정을 존 번연은 ‘Pilgrim-순례자’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하려 했다. 순례란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하며 참배하다”라는 사전적인 의미가 있는 단어다. 순례란 진리를 좇아 떠나는 목적과 함께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맡기며 걷는 여행을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본서에서 크리스챤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무작정 자신이 살고 있던 ‘멸망의 도시’ 빠져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그를 그 도시로부터 이끌었다. 도시를 빠져 나왔음에도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라는 탄식은 충분히 해결되지 못한 그의 불안한 마음을 나타내며, 그의 순례의 길은 그렇게 무작정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순례의 여정에서 그를 천국으로 이끄는 여러 돕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무작정 도시를 탈출한 그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선지자는 ‘전도자(Evangelist)’였다. 전도자의 길안내를 통해 그는 앞으로 자신이 가야할 순례의 길을 명확하게 깨닫고 말씀과 예언자적인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그 순례를 마칠 수 있으리라 믿게 된다. 계속해서 뷰티플 저택에서 만나는 신중, 경건, 분별, 자선과 같은 자들도 있어고 해석자 목자들 같은 사람들이 그의 여정에 많은 통찰력과 위로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그의 앞에 돕는 돕는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를 넘어뜨리려서 어떻게 해서든 그가 가는 길을 막아서고 돌이키게 하려는 방해 세력들이 넘쳐 났다. 그들은 모두 하늘의 악한 영들과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의 뀀에 넘어 간 사람들이거나 마귀의 세력들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크리스챤의 천국을 향한 소망을 흐려 놓거나 방향을 상실하게 만들거나 현재에 안주하게 만들어 버리는 데에 있었다. 크리스챤은 캄캄한 골짜기에서 아보루온이라하는 악의 화신과의 전투를 치뤄야 하기도 했고 마귀들과의 혈투를 벌여야 하기도 했다. 허망시장이라는 도시에서는 옥에 처해지기도 했고 데마라는 자는 은광을 통해 돈으로 그를 유혹하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명확한 목적지와 지향점 그리고 말씀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절망 거인의 집에 갇힌 신세가 되기도 하지만 언약이라는 열쇠를 통해 빠져 나오기도 한다. 

크리스챤은 그의 여정에서 신실과 소망이라는 동반자를 통해 많은 위로와 힘을 얻는다. 신실과 소망은 함께 천국의 여정을 가는 믿음의 동지들이자 기대고 의지할 친구였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여정에 허락하신 믿음의 친구들을 통해 크리스챤은 마침내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여 그의 구원의 여정을 마치게 된다. 신실과 소망으로 대표되는 크리스챤의 순례의 동반자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의 또 다른 매개물이었다. 신실은 안타깝게 허망시장에서 먼저 순교를 당하여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였지만, 크리스챤의 믿음과 인내도 칭찬받기에 충분했다.

 

2. 독서비평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의 집에는 그림으로 된 천로역정이 비치돼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천로역정은 늘 나의 가까이에 있던 책이다. 지금도 그림책 안의 크리스챤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를 위협했던 사자의 포효도 섬뜩하게 뇌리를 스쳐간다. 그가 짐을 지고 절벽을 넘는 그림과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 기뻐하며 주님을 맞는 환희에 찬 그림도 기억에 또렷이 박혀 있다. 천로역정은 나로하여금 늘 천국을 향한 소망을 새겨주는 책이었다. 믿음의 여정이 순탄하지만 않지만 견디고 이겨내는 자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선물이 반드시 있음을 마음 깊은 곳에 품게 만들었던 것이다. 작년 여름 개봉한 영화 “천로역정”을 본 후 읽은 책이어서 더욱 생생하게 읽혀졌다.

우리 구원의 여정에 있어 십자가를 통해 죄짐을 벗고 구원의 확신을 갇게 되지만 그 이후에 믿음의 여정은 계속된다 오히려 십자가를 통해 그 순례의 길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크리스챤의 순례의 여정은 우리네 인생 전체를 묘사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됨을 볼 수 있다. 선과 악의 대결, 그리고 대항자들과 조력자들과의 만남을 통한 승리의 여정이 그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우리의 삶에 있어 악의 세력과의 조우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현대 사회는 ‘죄’라는 실체를 증상, 병리현상, 결핍, 결여 등의 단어로 약하게 희석시켜 놓는 경향이 있다. 죄의 실체를 깨닫고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으려는 것이 현대 교회의 특징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대항자인 사단의 거대한 전략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죄의 실체를 알고 그 죄와 싸워야 하고 그 죄에 빠뜨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단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우리의 큰 과제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대항세력으로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허락하셨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유기적이고 생명력 있는 공동체로 책의 신실과 소망과 같이 동행하며 격려하며 일으켜 주는 하나님의 지체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크리스챤이 중간중간 만난 예언자들처럼 우리가 어떻게 걸어야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목회자는 그런 의미에 있어 크리스챤과 같은 믿음의 순례길을 걷는 하나님의 백성을 돕는 예언자요 목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천로역정은 한 평생 설교자요 목회자로 살아 온 존 번연의 목회서신이기도 하다. 그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목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참 길을 제시하고 싶었다. 죄의 문제와 구원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또 다른 크리스챤을 생각하며 온 마음을 다해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로서 자신의 신학을 이야기로 만들 줄 알고 그 이야기를 통해 성도들에게 쉽게 풀어 설명하며 해석해 줄 수 있는 존 번연 같은 목자가 되길 간절히 꿈꿔 본다.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과연 구원의 여정이 우리의 현실을 벗어나 피안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여정뿐일까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게 된다. 현실 속에 뿌리내린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갈망과 그 안에서 이뤄가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몸부림은 이제 우리 시대의 몫으로 남겨 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또 다른 존 번연이 나와 마지막 날에 이르게 될 예루살렘 성이 아닌 현 세계에서 만들어 나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서 천로역정 속편이 만들어 지길 기대해 본다. 아니 내가 맡게 될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한 단락 한 단락 그것을 만들어 가리라.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