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10. 2. 20. 20:21
어제 고등부 친구들에게 수련회 참여하라고 전화를 돌리는데

한 녀석이, 수련회 절대 참석 안하겠다는 거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그냥 끊을래요 하며 급구 대화를 거절한다.

교회는 잘 나오는 녀석인데, 기도제목을 보니 5억원의 여유자금이 생기도록, 아빠차 BMW 로 바꾸도록

우리집 강남으로 이사가도록.... 이런 기도제목이었다.

이게 무슨 고등학생의 기도제목이란 말인가?????

정말 앞이 깜깜하다. 이런 아이들에게 무슨 예수가 먹히겠는가

제자로 살아가라는 것이 씨알이나 먹힐지....

그냥 교회만 나오는 것도 감사할 따름 아닌가....



그런데 이런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 고등부를 봤을 때, 통계상으로 60% 이상이 예수님과 전혀 상관 없이 살아가는 것 같다.

교회에 나와 있지만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마음이 없어 보인다.

과연 나는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가?

소수의 헌신된 아이들 보고 사역하는 거지요. 라고 누군가는 조언한다.

그래도 난 욕심이 있다. 모두가 예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예수를 높이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고, 예수를 따르는 것이 삶의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우리 친구들을 복음으로 꼬그라뜨릴 수 있을까?

예수 안에서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바꿔 놓을 수 있을까?

풀리지 않는 숙제들을 부등켜 안고 오늘 밤에도 끙끙거리고 있다.....


Posted by speramus
좋은 글과 작품들2010. 2. 12. 11:09

조엘 오스틴의 팟케스트를 즐겨 듣습니다. 그 사람의 설교를 들으며
성경 본문에 관한 깊은 해석보다 교훈적인 설교, 주제 설교 위주로 간다는 아쉬움을 많이 느낍니다.
그리고 여러 번 들으니 주제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 세워주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데는 은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이 가르치는 은사가 있더라구요. 무엇보다 적절한 예화사용에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거 같아요.
그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존감에 관한 설교였는데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우리의 자존감은 우리의 주인(master), 우리의 창조주로부터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예화는 손수건이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손수건은 8$밖에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은 엘비스 프레스리가 가지고 있던 손수건이다.
아마도 800$은 훨씬 넘을 것이다.
이 손수건에 루비나 보석이 박혔기 때문인가? 아니다.
내 손수건과 차이가 무엇인가? 이 손수건에는 그의 땀이 묻어 있다.
누구의 땀이 있느냐에 따라 그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둘째 예화는 나무 예화였습니다.
첫째 나무는 리스닝이 잘 안되서 그냥 돌무화과 나무라 하죠. 둘째 나무는 참나무, 셋째 나무는 소나무였습니다.
이들 나무는 각자가 큰 꿈이 있었습니다. 크게 사용받고자 하는 꿈이었죠.
돌무화과나무는 보석상자가 되고 싶었어요.
세상에 소중한 보석들을 자신 안에 담아 두고 싶었죠.
그런데 나무꾼이 와서 그 나무를 베어 여물통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둘째 나무인 참나무는 큰 배가 되어 큰 바다를 항해하며 왕을 태우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하지만 나무꾼이 와서 그를 보잘 것 없는 물고기 잡는 데 사용되는 피싱보트로 만들어 버렸어요.
셋째 나무는 높은 언덕에 올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조각물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나무꾼은 소나무를 뗄감으로 쓰려고 베어 버렸어요.
몇 년이 흘렀죠.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 태어났어요. 예수님은 누우실 곳이 없었어요.
예수님의 부모는 돌무화과나무로 만든 여물통에 예수님을 뉘었어요.
그 돌무화과나무는 그 어느 보석보다 소중한 분을 그의 몸으로 품을 수 있었어요.
또 몇 년이 흘러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셔야 했어요.
예수님은 참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건너셨답니다.
참나무는 왕을 싣고 대서양을 건너는 대신 왕중의 왕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바다를 건널 수 있었어요.
또 몇 년이 흐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셔야 했어요.
로마 병사들은 뗄감으로 쓰려고 베어 둔 소나무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들었어요.
예수님은 그 소나무 십자가에 메달려 죽으셨고,
그 십자가는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답니다.

비록 초라한 우리이지만 질그릇같은 우리이지만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실 때
우리 삶이 너무나 가치가 있어진다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Posted by speramus
묵상2010. 2. 4. 08:40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언 11:24-25)



  요즘 저녁마다 우리 뱃속의 아들 조이에게 잠언 한 장씩 읽어 주고 있다.

아빠 태교라나 뭐라나? 이녀석 뱃속에서부터 양질의 양식을 먹으니 앞날이 기대가 된다 ㅎㅎ

어제는 잠언 11장을 읽다가 위의 말씀이 내 마음을 강하게 망치질 한다.

어제 염광여상 졸업식이 있어, 제자들 축하하느라 학교를 방문했다.

이 학교를 졸업하는 우리 교회 학생들만해도 10명이 훌쩍 넘는다.

아니 근데 기특하게도 2학년 남자애들이 누나들 축하해 준다고 여기까지 찾아왔다.

한 녀석은 학교 땡땡이 치면서 까지 왔단다....이런....

애들 다 모이니 열 댓명은 족히 넘는다.



보통 졸업식이면 부모님들과 식사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녀석들은 부모님 다 보내고 후배들이랑 논다고 남았다.

점심을 해결해야하는데 갑자기 숙제가 하나 생긴 느낌....

짜장면 집에 데리고 갔다.

가면서 이레 저레 고민했다. 탕수육까지 시키면 재정이 엄청날텐데 나 혼자 어떻게 감당하지?

그냥 재학생 녀석들 한테 낼 수 있는 만큼 내라고 걷을까?

아냐 그건 사역자로서 품위에 손상이 가는 것이야.

그냥 짜장면만 먹자고 하자~~

결국 짜장면만 먹었다. 15명분 토탈 가격은....

배달은 3500원인데 현장방문은 500원 깍아 준단다... 할렐루야.

도합 45,000원~

내가 왜 이렇게 변했나? 예전에는 이런거 아까워 하지 않았는데

가정이 생기고 가계가 빠듯해지자 변한건가??



이런 일이 낮에 있었던 터라

위의 말씀을 읽는데 매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더 풍성하게 아이들 섬겼어야 하는 건데

정말 애들 섬기면서도 아까워 하는 나를 보면서

사역자로서 아직 멀었다라는 생각이 든다.

흩어 구제해도 거덜나거나 바닥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인데...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 6:38)

주님 제 마음을 더 부요하게 하셔서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고 구제하고 부요케 하는 자 되게 하소서~

재물을 사랑하거나 쥐려는 마음을 없애 주옵소서.

재물보다 하나님, 재물보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주소서~~
아멘!!!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1. 27. 18:49

오늘 아침 교회에 와보니 봉급 명세서가 놓여 있다.

얼마나 인상됐을까? 내심 궁금해 하며 열어 보았다.

6만원 인상~~ 아니 이게 웬 횡재인가???

다른 직장들은 다 동결인데.....

기분이 좋아서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흘렀다.




월급이 오른 것이 나에게 축복인가?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모두 힘들게 힘겹게 살아가는데.... 나만 봉급 올랐다고 좋아하고 있으니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픔에 동참하지 못할 망정.... 난 박한 사역자인가?

그리고 그동안 내가 사역한 내용에 비하면 이건 과분한 인상이다.

깍였으면 깍였어야 하는건데.... 교회와 목사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부담이 몰려 온다.

이제 더 잘 해야 하는데....받은 만큼 더 잘해야 하는데....

예수전도단 시절이 그리워진다. 보수 없이 열심히 하고 정말 최선을 다했던 그 때~~

우리 교육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 삯군 목자라도 되십시외"

처음에 뭔말인지 몰랐는데....

봉급 받은 만치라도 하는 사역자 되라는 말이었다.

정말 공감이 가는 말이다. 봉급 받은 만큼이라도 하는 삯군목자라도 되고 싶다.

Posted by speramus
일기2010. 1. 27. 18:43

내가 사역자로 있었던 시기를 크게 구분하면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YWAM 대학부 간사, 둘째, 안디옥 교회 개척 멤버, 셋째, 종암교회 고등부 전도사 이다.

예수전도단 대학부 간사일 때는 사역 초자로서 상당한 실패감을 맛봤을 때다.
정말 부푼 기대감을 안고 사역을 시작했는데
사역이라는 세계가 정말 녹녹치 않구나!! 정말 성과와 결과가 중요한 바닥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때가 가장 풍성하고 부요했던 시기였다.
예수전도단 기본정신인 무보수 (어려운 말로 faith mission)로 일하면서
정말 프라이드 하나는 대단했다. 보수 안받고 사역한다는 그 프라이드....

안디옥 선교교회 시절에도 어느 정도 자부심이 있었다.
다른 전도사들은 모두 좋은 교회 보수 많은 데를 찾아 나가기 정신없는 때,
나는 안디옥 교회 개척멤버로서 일했다.
마치 많은 권리라도 포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당시 많은 형제 자매들이 신학교 다닌다고 많이 섬겨주었고,
하나님의 다양한 공급도 있었기에 부족함 없이 생활했다.

신대원 3학년에 들어가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계속 제도권 밖에서 사역할 것인가? 아니면 제도권 안에서 어느 정도 보장 받으면서
사역할 것인가?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하나님이 여기 장신대를 오게 하신 이유가 있었을 거다.
그래 제도권 안에서 훈련받는 것도 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랬다. 제도권 안의 교회안에 있으면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어두운 구석들을 볼 수 있었다.
대신 보수는 그 어느때보다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보수를 많이 받으면 받을 수록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줄어들어 가는 것이었다.
무보수일 당시에 느꼈던 사역자로서의 프라이드도 온데 간데 없었다.
재정이 많은 것이 축복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이 때 많이 절감했다.
사역자의 봉급은 행복과 만족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Posted by speramus
묵상2010. 1. 23. 22:22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그것을 더욱 잘 섬길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산책을 하며 들에 핀 꽃을 봅니다.
그 꽃을 통해 창조주의 손길을 느끼게 되고 주님을 찬양하는 마음이 생겼다면
그것은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먹고 마실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라고 합니다.
먹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방해된다면
그것은 버려야 하는 것이죠.
모든 순간 순간에 하나님을 더욱 느끼고 그분의 임재가운데 거할 수만 있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죠.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