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81-9

제목: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1.

지난 주 월요일 저녁 아이들을 재울 시간이었습니다. 아내가 아무개 자매가 알려준 거라며 그날 저녁 10시에 로체스터 주변에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겁니다. 생전 오로라를 본적이 없었던 터라 자고 있는 막내만 남겨두고 아들 둘을 데리고 무작정 밤하늘을 보러 나갔습니다. 이쪽 저쪽 사방팔방 두리번 거리며 걸어보았지만 오로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로라는 보지 못했지만 북두칠성과 수 없이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았습니다. 북두칠성이며 다른 별자리를 아이들에게 알려주며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죠.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이렇게 별을 감상한 것이 작년 여름 이후 처음인듯 했습니다. 다음날 아내를 통해 그 자매님네는 차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 오로라를 감상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북극의 얼음에 태양 빛이 반사되어 오로라의 아름다운 빛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오로라와 같은 자연현상들을 보면 우리는 신비감에 빠져듭니다.  누군가는 이 대자연은 하나의 경전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대자연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읽어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21년 전20026월에 혼자서 중국의 티베트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 칭하이(Qinghai)성 꺼얼무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거기서부터 23일 침대버스를 타고 티벳의 수도 라싸(Lasa)까지 이동하는 여정이었죠. 해발 6000미터가 넘는 탕굴라(Tanggula) 산맥을 넘어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해가 지면 45도 기울여진 침대 버스에 꾸부정하게 누어 극심한 두통과 호흡곤란과 싸우며 잠을 청해보지만 잠은 잘 오지 않았습니다. 광활한 티벳 고원 한 복판에서 버스가 멈추고 기사님은 승객들에게 화장실 갈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남자는 버스의 왼쪽으로 여자는 버스의 오른쪽으로 흩어져서 일사분란하게 일을 봅니다. 일을 마치고 하늘을 바라볼 때 저는 아름다운 별들로 수놓아진 광경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별이 쏟아진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았습니다. 은하수를 그렇게 선명하게 본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산골 마을에서 자랐던 저였지만 세상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너무나 맑고 아름다운 은하의 세계와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황홀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놀라운 풍경이었죠. 산소부족 때문에 찾아온 두통과 호흡곤란이 황홀한 별들의 잔치 앞에서 현기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늘이 총총하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적어도 별이 2천개 정도가 눈에 들어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의 숫자가 그 정도로 느껴지는 것이지 하늘의 별의 숫자는 그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천문학자들은 하늘의 별의 숫자가 7곱하기 1022승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7뒤에 22개의 0을 붙인 숫자라는 거죠. 감이 안 오시죠? 지구 위의 강가와 바닷가 그리고 사막의 모래의 갯수를 합친 것의 10배 이상의 별이 하늘에 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별빛들은 여러분들과 만나기 위해 8만 광년, 10만 광년 전에 출발한 빛입니다. 그러니까 그 별빛들은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구석시 시대를 지나 신석기 시대를 한참 흘러 청동기 시대 철기시대를 그렇게 열심히 달려 여러분의 눈에 와 닿은 겁니다. 이렇게도 광대한 우주에 우리는 한 개의 점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작은 인간이 생명을 가지고 자기의 인생을 생각하며 영혼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신비한 것입니다. 대자연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신비함과 경외감일 겁니다.

 

2.

이 자연 가운데 발 딛고 사는 우리 인생 또한 신비한 것들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보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모든 만물을 보시고 좋았다고 말씀하셨지만, 인간을 만드시고는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시면서 몇 배의 기쁨을 표현하셨었죠. 그러면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이 온 우주 만물을 보여주시면서 이 모든 것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이 우주 만물, 삼라만상을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지구 위의 생명체들의 활동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연결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신비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이 생명체들을 통해 우리 인생이 신비로 가득 찬  것임을 알게 됩니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1,669 Km/H라고 합니다. 한 시간에 1천마일을 가는 속도로 지구가 지금도 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100마일의 속도로 자동차를 달리더라도 그 속도감은 엄청납니다. 그런데 지구가 1000 MPH의 속도로 움직이는데도 우리는 소음 하나 느낄 수 없고 그 속도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대자연의 신비입니다.

 

본문 시편 8편은 지난 9월에 창조절기에 설교한 본문이지만,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이번 주에 이 말씀을 가지고 한 번 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시를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3000년 전의 시인도 이 대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노래했다는 것입니다.영화 아바타에 보면 아바타가 자신의 몸의 일부에서 나온 촉수를 거대한 나무의 촉수에 연결하여 신비한 세계와 연결되는 걸 봅니다. 우리들도 대자연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되고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창조주를 느끼고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우리의 존재의 목적을 깨닫게 되는 출발점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 분이 만드신 피조물로서 나의 존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우리는 이 땅에서의 우리 삶의 목적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더 큰 세계 그리고 더 크신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겨버릴 때 삶은 혼란스러워지고 평화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땅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은 안식을 찾게 되고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낯선 곳을 운전해 갈 때, 네비게이션을 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GPS 위성과 접속되었을 때 GPS는 위에서 보는 큰 그림 가운데서 우리의 정확한 위치와 갈 바를 알려주는 거잖아요? 더 큰 세계와 그것을 꿰뚫어 보시는 분과 연결되었을 때에만 우리에게 참 안식과 평화가 주어지는 이유입니다.  

 

3.

시편 8편은 깃딧이라는 독특한 리듬이나 가락에 맞춰 부른 다윗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시는 대자연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노래하는 유명한 시입니다. 이 시는 주 우리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라는 구절이 시작 절과 끝절에서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수미상관(Inclusio)라는 문학기법입니다. 그러니까 이 구절이 시작과 끝에 배치되고, 사이에 끼워진 구절들은 이 주제를 해석하고 설명하는 기능을 하게 되는 거죠. 히브리 말로는 야웨 아도네누 마 아디르 메카 베콜 하아레츠, (יְהוָ֥ה אֲדֹנֵ֑ינוּ מָֽה־ אַדִּ֥יר מְךָ֗ בְּכָל־ הָאָֽרֶץ)”인데 한 단어도 바뀜 없이 첫절과 끝절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직역하면, “야웨 우리 하나님이여 당신의 이름이 모든 땅위에서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가요?” 입니다. 이름은 소유물을 상징하거나 관계를 나타내거나 정체성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것이죠. 제 어린 시절 모든 집 앞에는 그 집 주인의 이름이 달린 명패가 대문 옆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 소유의 집이라는 거죠. 온 땅 위에 당신의 이름이 위대하다는 것은, “온 땅이 하나님 당신의 소유입니다.” 또는 온 땅의 아름다움을 보니 이것을 만드신 당신의 이름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겠어요.” 이런 뜻인 거죠.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게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것은 피조물들의 당연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원수와 복수하는 자들은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이죠.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력입니다. 원래 2절을 직역하면, “하나님은 원수와 복수하는 무리를 꺽으실 요새를 만드시기 위해라는 목적절이 분명하게 제시됩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린이와 젖먹이들의 입술에서 나온는 것을 사용하신다라는 조건절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적하는 세력들을 물리치는 비결이 나와 있습니다. 그 비결은 어린이와 젖먹이들도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자신의 창조주의 위대하심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것이 얼마나 파워풀한 것인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지치고 힘드실 때, 찬양하십시오. 유튜브의 지니 자매의 찬양이나 어노인팅, 마커스 같은 팀들의 찬양이라도 들어보십시오. 뭔가 확실히 전환되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찬양이 주는 힘입니다.

 

이제 시인은 자연계를 통해 보여지는 현상들을 통해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하늘에 펼쳐진 저 큰 세계를 통해 하나님의 세계와 연결된다는 고백입니다. 그 세계의 중심부에 자신이 친히 만드신 인간을 두신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며 시인은 자신의 노래를 이어갑니다. 그 노래의 중심에는 인간의 존귀함에 대한 깨달음과 감격이 있습니다. 이 모든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경탄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노래의 중심에는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사람을 나타내는 히브리 단어 에노쉬Eonsh와 아담이 쓰이고 있습니다. 에노쉬가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아담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에노쉬는 보통 성경에서 사람의 연약함과 한계를 나타낼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욥기 1514절이 그 대표적인 예이죠. 인생(에노쉬)이 무엇이기에 깨끗하다고 할 수 있겠으며,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이쉬)이 무엇이기에 의롭다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담은 흙이나 땅이라는 뜻의 아다마에서 나온 명사입니다. 성경에서는 땅이란 뜻으로 보통 쓰이죠. 아담은 아다마에서 나왔습니다(2:7 – 아다마의 흙으로 아담을 만드셨다). 에노쉬와 아담 모두 피조물로서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연약함을 나타내는 단어들입니다. 인간이 아무것도 아닌데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시고 보살펴 주신다고 시인은 감탄하고 있습니다.

 

5절에는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밖에 되지 않는 인간에게 엘로힘들보다 조금 더 못하게 하셨고 영화로운 관을 씌워주셨다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하이저라는 구약학자는 신들 또는 하나님이라 번역된 히브리 말 엘로힘을 하나님과 함께한 천상의 존재들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에 하나님과 함께 했고 하나님의 다스림에 동참하는 천상의 존재들입니다. 그들과 맞먹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감격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들에게 이 세상을 대신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왜냐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예전 고대 근동에서 왕이 자신의 나라 국경 지대에 자신의 얼굴을 본 뜬 이미지 또는 동상을 배치했다고 하죠. 이곳은 나의 통치가 미치는 곳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거기에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인간 안에 두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인간이 있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들이 계신 그곳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습니다. 왜냐면 여러분들이 하나님 안에 하나님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가 지어졌다는 것은 왕이신 하나님의 부왕(副王)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왕같은 존재라는 거죠. 여러분이 그리고 여러분의 옆에 앉아 계신 분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인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왕입니다요. :)”

 

4.

본문의 시편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연결된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일깨워주는 시인데, 우리는 이 시를 통해 경탄의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경탄이야 말로 무기력해진 우리 인생에 활력을 주는 힘입니다. 우리가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더 큰 세계를 일깨워주는 힘이 경탄에서 나옵니다. 고난과 환란 그리고 시험 속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감사와 감격의 힘을 우리는 대자연 속에서 다시 찾을 수가 있다고 시인은 우리에게 충고해 주는 듯합니다. 시험과 환란 속에서는 모든 것이 귀찮고 우리의 감각 또한 무뎌지기 십상입니다. 쉽게 피곤해지고 쉽게 지치고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그럴 때 일수록 우리는 우리 인생이 신비로 가득하다는 그 감각을 되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의 시인도 원수와 복수하는 자들 그리고 요새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짐작해 보게 됩니다. 그의 대적은 그를 쫓아오고 있고 그는 도망자 신세인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가 하늘의 달과 별을 노래하면서도 해를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의 현실은 어둠에 쌓여 있고 암울하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현실 속에서도 낭만을 잃지 않습니다. 그를 만드시고 그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대자연 속에서 읽어내며 새로운 상상력 가운데 있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일깨워주는 것들은 공중의 나는 새요, 들에 피는 작은 들 풀이요, 들꽃입니다. 전쟁 한 가운데서 갖는 이러한 여유와 낭만이 없이 우리는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쉽게 탈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 크신 존재와 그분이 다스리시는 더 큰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 없이 우리는 쉽게 좌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네잎 클로버의 행운과 나폴레옹을 연결한 에피소드를 들어 보신적 있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 한 가운데서 네 잎 클로버에 감동하여 허리를 숙인 나폴레옹 위로 총알이 빗겨 갔다는 에피소드입니다. 이런 게 전쟁터 한 가운데 누리는 여유이자 낭만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경전인 대자연과 연결되는 기술이자 비법이 있는 데 그것은 멈추어 서는 것 또는 천천히 걷는 것입니다. 시편 8편의 시인도 달리면서 하늘을 보진 않았겠죠? 멈춰 서서 하늘을 가만히 응시할 때 이런 감격적인 시상이 떠올랐을 겁니다. 저는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 작품 앞에서 오랜 시간 서 있으며 감상하는 걸 즐깁니다. 걸작일수록 오랜 시간 머물러 있어야 그 작품이 건내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죠. 집안과 사무실에만 갇혀 지내지 마시고 하나님의 걸작품인 자연 속으로 나와 걸어보십시오. 천천히 걷다가 멈춰서 보십시오. 하나님의 걸작품들도 멈춰서서 감상해야 제맛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권면하신 적이 있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 Look at the birds on the air.” 그리고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See how the lilies of the field grow.” 맥락이 있는 말이긴 하지만, 단순하게 순종해 보면 어떨까요? 밖에 나가서 새를 한 번 관찰해 보십시오. 그리고 들풀을 한 번 유심히 살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감각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실 겁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어떤 미물이라도 오래 보고 있으면 말을 걸어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미물은 우리에게 자신의 창조주인 하나님과 연결시켜줍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천천히 걸을 때에만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70마일의 차속에서 1미터의 꽃길은 한 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번 주에도 저는 어김 없이 교회 주변 신작로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큰 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이름 모를 조그만 새가 지저귀고 있더라구요. 그 새를 한참 동한 유심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가며 나무에 아직 매달려 있는 가을 동안 맺힌 씨앗들을 쪼아 먹는 것 같더라구요. 저 새에게도 저렇게 먹을 것을 주시고 보금자리를 주시는데, 우리 교우들의 삶 또한 하나님께서 잘 이끌어 주시고 보호해 주시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 가에 최근에 밑둥이 잘린 그루터기들이 서 너 개 듬성 듬성 펼쳐 있더라구요. 가까이 가서 나이테를 유심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쉰 다섯개의 진한 색 테두리가 있는 것을 보니 이 나무는 적어도 50년은 더 되는 나무였구나 짐작이 됐습니다. 그런데 밝은 색 부분은 훨씬 두꺼운데 진한 색 부분은 훨씬 얇더군요. 진한 색 테두리는 겨울을 잘 견뎌낸 나무의 흔적일 겁니다. 생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겨울에도 나무는 이렇게 자랐구나.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은 훨씬 단단하구나.”, “겨울을 통과하는 우리 성도들의 내면도 단단하게 자라고 있겠구나.” 라는 위로가 제 마음 속에 가득해 지더군요.

 

5.

이토록 대자연 속에서 천천히 걷는 삶은 우리 속에 잃어버린 경탄할 수 있는 감각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겨울처럼 혹독한 시련들은 우리 삶을 우리 내면 속에 가둬 두게 하기 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나의 삶의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하나님과 연결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은 GPS 위성보다 더 세밀하고 정확하게 우리 삶을 이끄시고 보살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연 속에서 경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쟁의 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감각하며 이겨낼 힘을 얻는다.’ 제가 생각하는 시편 8편의 주제입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나님이 에덴 동산을 일구시고 사람을 그 동산에 둡니다(8). 그리고 사람에게 그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시죠(15).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여자를 만드신 걸로 아는데 아닙니다. 그에 앞서 하나님은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사람에게 이끌고 오십니다. 그리고 아담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줍니까? 이름을 붙여주죠.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은 그 모든 존재들에게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 아담과 동물들이 관계로 연결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김춘수 시인의 시인 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아담은 자기 앞에 온 자연계에 경탄하며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습니다. 영국의 유대인 랍비이자 신학자인 조너선 색스 (Jonathan Sacks)는 창세기 주석에서 이부분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동물들을 인간에게 끌고 오신 이유는 함께 경탄하기 위해서다.” 너무 멋진 표현입니다. 자신이 만든 피조세계를 함께 경탄하는 자리에 아담을 초청하신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또한 그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이 많이 바쁘시고 지쳐 있으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어떤 이는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집 밖에 못나가겠다고 말하더라구요. 천천히 걷고 멈춰서서 자연의 경전을 읽는 데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드는지 십분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 방법보다 하나님을 쉽게 만나는 방법도 없습니다. 제가 무릎 꿇고 골방에서 기도하여 하나님의 임재앞으로 깊이 나아가는데 적어도 10분에서 15분 정도 씨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꽃을 바라보고 새로 돋아난 싹눈을 바라보면 1분도 안되어 깊은 감동과 감격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됩니다. 자연 속에서 경탄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가장 쉽게 만나는 방법이라는 이 말은 저의 임상 실험이 있는 결과물입니다.

 

외로움과 결핍 그리고 무기력함에 쌓여 있는 자기의 형상으로 빚어진 사람에게 함께 경탄하자고 하나님은 이 대자연을 펼쳐 주셨습니다. 만물이 소성하는 이 봄이야 말로 우리의 창조주 되신 우리 주 하나님의 위엄과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최적의 계절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자연 속에서 여러분들에게 말을 걸어오고 계십니다. “주 우리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저 하늘 높이까지 주님의 위엄 가득합니다.” 이 놀라운 찬양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Text: Psalm 8:1-9

Title: How majestic is the name of the Lord! / translated by Chungil Wi

 

1.

Last Monday evening it was time to put the kids to bed. My wife said a sister so-and-so told her that she would be able to see the aurora around Rochester that evening at 10pm. Since I had never seen an aurora in my life, I took my two sons and went out to see the night sky. We walked from one side to the other and in all directions, but didn't see the aurora. We didn't see an aurora, but did see the Big Dipper and countless bright stars in the night sky. It was an opportunity to tell the children about the Big Dipper and the other constellations and appreciate the night sky. It was a beautiful night. It was the first time I had seen the stars like this since last summer. The next day, I heard from my wife that the sister had taken a ride out of the city to see the aurora. It was amazing to be able to see the aurora here too. It is said that the beautiful light of the aurora is created when the sun's light is reflected off the arctic ice. When we see natural phenomena such as the aurora, we fall into a sense of mystery. Some have even said that Mother Nature is a holy scripture. It is because we meet God and read God in Mother Nature.

 

21 years ago, in June 2002, I traveled alone to Tibet, China. It was a journey to take a train to Geermu, Qinghai, China, and from there take a sleeper bus for 2 nights and 3 days to Lasa, the capital of Tibet. It was an arduous journey, having to cross the Tanggula Mountains, which are over 6000 meters above sea level. When the sun goes down, I lied hunched over on a 45-degree sleeper bus, fighting excruciating headaches and shortness of breath, trying to sleep, but I couldn't sleep well. In the middle of the vast Tibetan Plateau, the bus stopped and the driver gave the passengers time to go to the bathroom. Then, the men scatter to the left side of the bus and the women to the right side of the bus, and they work in perfect order. When I looked up at the sky after work, I couldn't help but be mesmerized by the sight. The expression of pouring stars seemed to fit perfectly. Because I've never seen the Milky Way so clearly. Even though I grew up in a mountain village, I was able to connect to a very clear and beautiful galaxy world that I could not see anywhere else in the world. It was an amazing landscape that cannot be described as ecstatic. It was the moment when headaches and shortness of breath due to lack of oxygen turned into dizziness in front of the enchanting feast of stars.

 

It is said that people need to see at least 2,000 stars in order to feel that the sky is full of stars. However, the number of stars we can see is what we feel, and the number of stars in the sky is far greater than that. Astronomers say that the number of stars in the sky is 7 times 10 to the 22nd power. So it's a number with 7 followed by 22 zeros. Don't you feel it? There are more than 10 times more stars floating in the sky than the number of sands on the beach of river, sea, and desert on Earth combined. And the starlight is the light that departed 80,000 light years or 100,000 light years ago to meet you. So, in order to meet you, those starlight passed through the Paleolithic Age, passed through the Neolithic Age, and ran through the Bronze Age and the Iron Age so hard that they reached your eyes. We are but a single point in such a vast universe. It is a mystery that such a small human has a life, thinks of his life, and thinks of his soul. The emotions we feel in front of Mother Nature are mysterious and awe.

 

2.

Our lives, which live in the midst of this nature, are also full of mysterious things. God made the world and said it was good to see. He saw all things in the world and said that they were good, but after making human beings, he expressed his joy many times over by saying that they were very good. At the same time, God showed us humans all things in the universe and told us to rule them all. In other words, we experience God's reign through all things in the universe and all things. We connect with God by looking at the activities of life on this planet. It is to realize the mysteries of our life. Through these creatures, we know that our life is full of mysteries. The Earth's rotational speed is said to be 1,669 Km/H. The Earth is still spinning at the speed of 1,000 miles an hour. Even if we drive a car at 100 mph, the feeling of speed is tremendous. However, even though the earth moves at a speed of 1000 MPH, we cannot feel any noise or feel the speed. It is the mystery of Mother Nature created by God.

 

Psalm 8 is the text I preached during the Creation Sunday last September, but since God moved me, I would like to share the grace with this word once more this week. What we realize through this poem is that the poet 3,000 years ago also discovered God and sang about God through this Mother Nature. In the movie Avatar, the avatar connects the tentacles from a part of its body to the tentacles of a giant tree to connect to the mysterious world. We also connect with God the Creator through Mother Nature and realize what kind of existence we are. Why is it important to feel the Creator and discover who I am? It is because the starting point for realizing the purpose of our existence is there. It is because from the awareness of who God is and the awareness of my existence as a creature He made, we realize the purpose of our lives on this earth.

Conversely, when we are disconnected from the greater world and the greater God, life becomes chaotic and it is easy to lose peace. When we realize that there is a God who is greater than the earth we are stepping on and the purpose He sent us to this earth, we find rest in our lives and enjoy peace. Why do we turn on the GPS when we are driving somewhere unfamiliar? When connected to GPS satellites, GPS tells us our exact location and where we are going in the big picture from above, right? This is why true rest and peace are given to us only when we are connected to the larger world and the One who sees through it.

 

3.

Psalm 8 has a subtitle called “The Song of David,” sung to a unique rhythm or tune called “Gittith.” This is a famous poem that sings the glory and majesty of God in the midst of Mother Nature. The verse “Lord our Go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is repeated in the opening and closing verses. It is a literary technique called Inclusio. So, these verses are placed at the beginning and end, and the intervening verses function to interpret and explain this theme. In Hebrew, “Yahweh Adonenu Ma Adir Meqa Be-qol Ha-Arez (יְהוָ֥ה אֲדֹנֵ֑ינוּ מָֽה־ אַדִּ֥יר מְךָ֗ בְּכָל־ הָאָֽרֶץ)”, which is repeated in the first and last verses without changing a single word. Literally, “Yahweh our God, how is your name so great in all the earth?”. Names are used to symbolize possessions, relationships, or identity. In my childhood, every house had a nameplate with the owner's name next to the gate. It's the person's house. The greatness of your name over all the earth means, “All the earth is yours, God.” Or “I see the beauty of all the earth and I know how great is your name who made it.” That's what it means.

 

Giving glory and praise to the Creator who made them is the natural behavior of the creatures. But enemies and avengers are those who reject it. It is a force that denies God. Originally, the literal translation of verse 2 clearly presents the purpose clause, “For God to make a fortress against enemies and avengers.” To achieve this purpose, the conditional clause “uses what comes from the lips of children and infants.”

Here are the secrets to defeating the opposing forces. The secret is that even children and infants know it. It is exalting and praising the greatness of one's Creator. We can only imagine how powerful it is to praise and exalt God. Praise when life is weary and hard. Listen to the praises of Sister Gina on YouTube, or even the praises of teams like Anointing and Markers. You will definitely feel something shifting. This is the power of praise.

 

Now, the poet sings of God through the phenomena seen through the natural world. At the center of the song is the dignity and value of human beings. It is a confession that we are connected to the world of God through that great world spread out in the sky. The poet continues his song as he discovers God's purpose in placing the human beings he created at the center of the world.

At the center of the poet's song, there seems to be an awareness of people. In the text, the Hebrew words Enosh and Adam are used to indicate a person. “What is Enosh, that the Lord thinks so much of, and what is the son of Adam, that the Lord cares for so much?” Enosh is a word usually used in the Bible to indicate a person's weakness and limitations. Job 15:14 is a prime example of this. “What are mortals (Enosh), that they could be pure, or those born of woman, that they could be righteous?” Adam is a noun derived from ‘Adamah’, which means soil or earth. In the Bible, it is usually used to mean land. Adam came from Adamah (Genesis 2:7 - Then the Lord God formed a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Both Enosh and Adam are words that represent the weakness of humans who have limitations as creatures. The poet admires that humans are nothing, but God the Creator loves and cares for them extremely.

 

He is admiring that God made humans, who are only beings made of clay, a little lower than the Elohim and crowned them with a glorious crown. An Old Testament scholar named Michael Heizer interprets Elohim as celestial beings with God. They are heavenly beings who were with God when he created the world and who participate in God's reign. It expresses the thrill of the existence of human beings who are worthy enough to be equal to them. God gave such people to rule this world instead. Because human beings are made in the image of God. What does it mean to say that man is made in the image of God? It is said that in the ancient Near East, kings placed images or statues of their faces on the borders of their countries. It means that this is the place where my reign extends, so I put my image there. To represent the reign of God, God placed His own image in man. So, the place where there are human beings who have a relationship with God is the place where God's rule is. Where you are, there is God's reign. Because you have the image of God. Being made in the image of God means that we have the status as viceroys of God the King. In a word, we are like kings. Did you know that you and the person sitting next to you are so amazing? Could you tell the person next to you this? “You are the king. :)”

 

4.

The psalm in the main text is a poem that awakens deep insight into human beings who are connected to God the Creator's purpose of creation. We can think about the power of wonder through this poem. I've said it before, but admiration is the power that gives vitality to our lethargic lives. The power to remind us of a larger world that we have forgotten in our busy daily lives comes from admiration. The poet seems to be advising us that we can find again in Mother Nature the power of gratitude and excitement that is easy to lose in hardships, tribulations and tests. In trials and tribulations, everything is annoying and our senses are likely to be dulled. We get tired easily, and everything bothers me. At such times, we need to revive the sense that our lives are full of mysteries.

 

It seems that the poet in the text is also standing in the middle of a war when he sees enemies, avengers, and fortresses. His enemies are after him, and he must be a fugitive. From the fact that he sings the moon and stars in the sky and doesn't mention the sun, we can guess that his reality is covered in darkness and bleak. But even in such a reality, he never loses his romance. He is in the midst of a new imagination, reading the hand of God who made him and protects him in Mother Nature. The things that awaken his new imagination are birds flying in the air, small wild grasses, and wild flowers. Without such leisure and romance in the midst of war, we can easily become exhausted in this harsh world. Without assurance of our connection to a greater being and the greater world over which he rules, we are easily frustrated. Have you ever heard of the episode that connects the luck of the four-leaf clover with Napoleon? In the middle of a battlefield where bullets rained down, the bullets flew over Napoleon, who bowed down, touched by a four-leaf clover. I think this is the leisure and romance enjoyed in the middle of a battlefield.

 

However, there is a technique and a secret to connect with Mother Nature, the scriptures of God, and that is to stop or walk slowly. The poet of Psalm 8 must not have looked at the sky while running, right? When you stop and stare at the sky, you must have thought of this thrilling award. I like going to art galleries, but I enjoy standing in front of a piece of art for a long time and looking at it. This is because the greater masterpieces are, the longer you have to stay in order to hear what the work has to say. Instead of being confined to your home or office, go for a walk in nature. Walk slowly and stop. God's masterpieces are also the best when you stop and appreciate them. Jesus has advised us to do so. “Look at the birds on the air.” “See how the lilies of the field grow.” It's a contextual statement, but why don't you simply obey? Go outside and do some bird watching. And look carefully at the grass of the field. Then you will experience the opening of your senses.

 

There is a poem called "Flower of Grass" by Na Tae-joo.

"It's pretty when looking closely

It's lovely when seeing it for a long time

So are you.”

 

If you look at any insignificant creature for a long time, it will start talking to you. And that little thing connects us to God, our Creator. But these things only happen when you walk slowly. In a car traveling 70 miles, 3 feet’s flower road is just a point. This week, as usual, I walked slowly along the new road around the church. I was passing under a big tree, and I heard a little unknown bird chirping. I watched the bird carefully for a long time. It seemed to move from branch to branch and peck at the seeds that had grown during the fall while still hanging on the tree. I thought that God would lead and protect the lives of our church members as well, given that the bird is given food and a nest like that. On the side of the road, there were three or four stumps whose trunks were recently cut off. I went closer and observed the tree rings carefully. Seeing that there are fifty-five dark colored borders, I guessed that this tree must be at least 50 years old. However, the light colored part is much thicker, while the dark colored part is much thinner. The dark-colored border is a trace of a tree that has endured the winter well. The thought went a step further and said, “Even in winter, trees grew like this. And the part that grew in winter is much harder.”, “The inside of our saints who pass through winter must also grow hard.” The consolation of that was filled in my heart.

 

5.

Life that walks slowly in the great outdoors awakens the lost sense of wonder within us. And it makes us rethink who we are. Hard trials like winter tend to keep our lives locked inside us. The more times like this, the more I need to connect with God who is drawing the big picture of my life. This is because He is guiding and taking care of our lives with more detail and precision than GPS satellites. ‘Those who can marvel at nature can sense God’s rule even in the midst of war and gain the strength to overcome it.’ This is the theme of Psalm 8, I think.

 

In Genesis 2, God planted the Garden of Eden and put people in it (v. 8). And he puts a man in charge of it (v. 15). What does God do when he sees that it is not good for a man to be alone? People think He made a woman, but no. Before that, God brings all the beasts of the field and all the birds of the air to man. And what does Adam do for them? He gave it a name. Giving a name is to give meaning to all those beings. It means that Adam and the animals were connected by a relationship. I can't help but talk about 'Flower', a poem by poet Kim Chun-Soo. “Before I called him by name, he was just a gesture. When I called his name, he came to me and became a flower.” Adam marvels at the natural world before him and gives it meaning. British Jewish rabbi and theologian Jonathan Sacks interprets this part of his commentary on Genesis this way: “The reason God brought animals to humans is to admire them together.” That's such a cool expression. He invited Adam to a place where he could marvel at the created world he had created. And God invites us to that place too.

 

God has unfolded this Mother Nature so that we can marvel together at a person made in his own image who is piled up in loneliness, lack and lethargy. This spring, when all things are restored, seems to be the best season to feel the majesty and beauty of our Creator, our Lord God. God is now speaking to you in nature.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You have set your glory

in the heavens.” I hope this amazing confession of praise will be a confession for all of us.

Posted by speramus

본문: 시편 31-8

제목: 주님! 일어나소서!

 

1.

요즘 로체스터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영원히 계속 될 것만 같았던 추운 겨울이 서서히 물러가고 봄 기운이 기지개를 켜는 것 같습니다. 봄이 되어 저의 기쁨 중에 하나는 교회 주변을 산책하며 새싹들을 관찰하고 인사를 나누는 겁니다. 지난 주 80도까지 올라갈 때, 하루가 다르게 연녹색 입사귀들이 자라는 게 눈에 띄더라구요. 이번 주에는 보라색 제비꽃과 들꽃들 그리고 노란 수선화도 길가에 피어 있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날씨가 오락가락 하여 봄기운이 다시 수그러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들꽃들과 새싹들은 다시 겨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 봄이 되면 모든 만물들은 자신의 위치로 돌아오고 원래 모습을 회복해 가는 것을 보면 자연의 이치가 놀랍기만 합니다. 부활을 살아간다는 것은 생명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원래의 생명의 자리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부활의 모습입니다. 겨울이 혹독하고 길었기에 다시 찾아온 생명들의 봄잔치는 흥겹기만 합니다. 우리 인생도 기나긴 겨울을 통과해 갈 때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반복되는 시련과 실패의 경험은 우리를 낙심시키고 주저 앉게 합니다. 다시 봄은 오는 것인지, 다시 나는 재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그런 시련 한 가운데 계신 분들이 분명 여러분 가운데 계실 겁니다. 우리들의 이 혹독한 시련의 계절은 지나가고 부활의 계절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저녁에 잠이 들 때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 책을 많이 봐서 그런지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가는 내용보다 빠져 나가는 내용이 많은 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죠. 그런 날 저녁은 머리가 띵해져 탈진이 된 듯한 느낌으로 잠자리에 듭니다. 잠자리에 들며 내일 잘 일어날 수 있겟지? 내일 아침 일어날 때는 모든 것이 리셋되고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겠지?’하며 잠이 듭니다. 잠이 보약이라는 옛말이 정말 틀리지 않습니다. 잘 자고 난 아침에는 어제의 그 긴장감과 피로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죠. 그야말로 아침마다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봄을 맞은 만물처럼 밤이 되고 아침이 되니 우리는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죠. 저는 이것이 우리 삶에 경험하는 작은 부활의 경험이라 생각이 듭니다. 시련과 환란 가운데 계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찾아올 봄을 기대하며 오늘 다윗의 시편에 귀를 기울이기 원합니다.

 

2.

한글 성경에 보면 시편 3절에는 이른 아침 기도’, 시편 4편에는 저녁 기도라는 타이틀이 달려 있습니다. 이 두 시편 모두 침상에서 읽는 시입니다. 저녁에 잠이 안 오시는 분들은 이 시들을 읽고 주무셔야 합니다. 원래 시편 3편의 부제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에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좀 있다 자세히 보도록 합니다. 일단 누구에게든 쫓기는 상태라는 것은 긴박하고 심각한 상황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쉽게 말해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인 거죠. 이대로 잠이 들었을 때 원수가 나를 급습하여 죽겠구나 생각이 드는 매우 긴박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 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님,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 나를 치려고 일어서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 일어섰다는 것은 확고한 의지와 적극적인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죠. 시의 저자인 다윗을 향해 일어선 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수들이 그에게 덤벼드며 하는 말이 하나님도 너를 구해주지 않을거야.” 넌 버림 받았다는 거죠. 요즘 어린 아이들 말로 하자면 루저~” 이런 뉘앙스인 겁니다.

 

도대체 다윗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그의 아들 압살롬은 왜 아버지를 쫓아오고 있는 것인가요? 본문의 배경은 사무엘하 13장에서 18장까지의 에피소드들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에 앞서 사무엘하 11장에서 다윗은 두 가지 큰 범죄를 저지릅니다. 성범죄와 살인죄였습니다. 우리야라는 장군이 전쟁에 나간 사이 우리야의 아내와 성관계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무마시키려고 우리야를 전쟁에서 돌아오게 하여 그의 아내와 잠자리를 갖게 하려고 하죠. 그러나 우리야는 다윗의 생각보다 의로운 사람이었고, 전쟁 중에 자신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고 우깁니다. 어쩔 수 없이 다윗은 군대의 장군 요압을 시켜 우리야를 전쟁 중에 죽이도록 합니다. 다윗은 나단이라는 선지자를 통해 자신의 이런 중범죄가 드러나자 회개하며 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사무엘하 13장부터 그의 집안에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죠.

 

그에게는 많은 아내들이 있었고 배다른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암논이 큰 아들이었는데 암논이 배다른 동생인 압살롬의 여동생 다말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문제는 다윗과 압살롬이 이 사건을 그냥 덮어버리려고 했지 제대로 처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2년 동안 기회를 보았고 2년이 지난 후 자신의 친동생을 성폭행한 암논을 죽이고 그술(Geshur)이라는 곳으로 도망하여 3년을 피신해 있었습니다. 다윗의 화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불렀지만 다윗은 그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그때부터 아버지에게 반역할 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성공하게 됩니다. 압살롬이 절반이나 되는 백성들과 함께 구테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적이 온 이스라엘 인구의 절반이나 되었다는 거죠. 다윗은 머리를 풀고 맨발로 궁을 빠져 나왔습니다. 원래 왕은 머리를 단정히 하고 왕관을 쓰는 것이 통례이지만 그는 머리를 풀고 재를 뿌리고 맨발로 예루살렘 성을 빠져 나왔던 겁니다. 예루살렘의 가파른 언덕을 내려와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올리브 산을 넘어 유대광야로 도망가는 다윗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유대광야를 지나 동쪽의 요단강을 건너 북쪽으로 피신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욕을 그는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의 원수들은 그를 더이상 왕으로 대하지 않고 도망자이자 범죄자로 밖에 보지 않았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이렇게 자기 아들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시입니다.

 

3.

다윗은 다시 그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그는 재기할 수 있을까요? 그는 어떻게 이 난국을 해쳐 가야 했을까요?

다윗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책하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왜냐면 이 모든 일이 자신의 과오를 통해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야의 집에 행했던 중범죄인 성범죄와 살인죄가 그대로 그의 아들들에게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암논은 다말을 성폭행하고도 다말을 돌보지 않고 내팽개쳐 버리죠. 그리고 그런 암논을 동생인 압살롬이 살인합니다. 정확히 그의 죄가 그대로 후대에 물려지고 있으니 다윗은 환장할 노릇이었을 겁니다. 이유 없는 고난이라면 떳떳하고 견뎌낼 용기와 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죄와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이런 결과를 견디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어집니다. (대머리 유전)

다윗의 마음이 무너지는 부분은 바로 나의 실수와 범죄로 자기의 집안이 이렇게 무너져버리는구나하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일 겁니다. 그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재를 뒤집어 쓰고 고개를 숙이며 피난길을 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좌절하고 낙담하여 주저 앉아 버리나요? 아니요. 그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3-4절 말씀입니다. 주님은 나를 에워싸주는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나의 영광이라고 번역된 카보드(כָּבוֹד)라는 말은 무게라는 뜻인데 영광(Glory)’이라는 뜻으로 훨씬 많이 쓰이는 말입니다. 그런데 군사력(military strength)’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영광보다 군사력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 옳은 번역일 것 같아요. 주님은 나의 방패, 나의 군사력이시며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는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어느 누가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어떤 나라에게 구조 요청을 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도움과 나의 군사력은 오로지 하나님 밖에 없다는 믿음을 새롭게 함으로 그의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잠언 2416절 입니다. “의인은 일곱 번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지만, 악인은 재앙을 만나면 망한다.” 다윗에게는 이런 칠전팔기의 신앙이 있었던 겁니다. 의인이 달리 의인이 아니라 내가 범죄했을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의인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붙드는 인생이 의로운 인생인 겁니다. 다윗처럼 나의 군사력은 오로지 하나님 뿐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빕니다.

 

요즘 어린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게임 중에 ‘Fortnite’이라는 게임이 있더라구요. 자신이 가진 무기로 상대방을 아웃 시키는 전쟁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그런 게임을 보면 어떤 무기나 아이템을 갖고 있느냐가 승패를 좌우합니다.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유리하겠죠? 우리 인생을 승리하기 위한 핵심 군사력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나의 방패로 여기고 나의 군사력으로 여기는 인생들이 승리할 수 있다고 다윗은 말합니다.

 

4.

다윗은 쫓겨가는 피난길에서 제대로 잠이 들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5절 말씀에는 그가 이 와중에 곤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그가 이렇게 꿀잠을 잘 수 있는 이유는 주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단 잠을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그의 기도는 한층 더 공격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를 대적하여 사방에 진을 친 자들이 천만 대군이라 하여도, 나는 두려워 하지 않으렵니다. “ 그리고 그는 더 당당하고 공격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주님, 일어나십시오. 나의 하나님, 이 몸을 구원해 주십시오. , 주님께서 내 모든 원수들의 뺨을 치시고, 악인들의 이를 부러뜨리셨습니다. 구원은 주님께만 있습니다(7-8).”

 

저는 6-8절을 근거로 숙면과 믿음이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자야 하나님도 잘 믿을 수 있다는 거죠. 다윗의 믿음이 이렇게 공격적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잘 잤기 때문이다고 하면 여러분 비웃으시겠습니까? 아니요. 다윗은 자고 깨어남이 모두 주님의 도움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밤새 붙들어 주지 않으면 내가 곤하게 잠들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잖습니까? 여러분 중에 불면증 때문에 고민하시거나 숙면을 취하지 못해 삶에 활기가 없으신 분들을 더 많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자고 일어남을 주관하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침마다 일어나며 이런 다급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시구나를 실존적으로 느꼈습니다. 내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때에도 일하고 계시구나를 깨닫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는 자기가 아침에 다시 활기차게 일어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실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재기와 부활을 침상에서 확인한 겁니다.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리 부르짖고 기도할지라도 확신이 없으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확신과 응답을 받는 사람만이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일한다. 내가 겨울과 같은 환란과 시련의 계절을 통과할지라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다시 생명의 자리로 나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일이 있길 빕니다. 여려분이 염려하신다고 키를 1인치 자라게 할 수 있습니까? 걱정한다고 해서 안되는 상황이 좋게 돌아갈 수 있습니까? 불안감과 염려가운데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이 시편을 읽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세요. 하나님만이 나의 방패시고 나의 군사력이시며 나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십니다. 이 간절한 고백과 부르짖음을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 간절한 기도와 부르짖음에 확신을 주실 때 여러분은 깊은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5.

펜데믹 이후에 사람들은 엄청난 고립감(isolation)과 불안함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 외로움과 디프레션이 너무나 커서 잠을 못 이루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방법으로 이런 위기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 무거운 짐을 덜어내기 위해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에 깊이 의지하는 중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존재에 갈증만을 더해 주게 되죠. 중독이란 것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까이 하다 오히려 그 치료책에 발목이 잡히고 더 깊은 수렁에 빠져 버리게 만들죠. 어떤 이들은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해결할 해답으로 막연한 열심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열심히 하면 다 잘 될거야 생각하며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삽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소진되는지도 모른 채 성과를 이뤄내기 위해 자기를 착취하며 탈진되어가죠. 잠 잘 시간도 없이 열심히 삽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사는지 목적이나 지향점은 불분명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살아야하나 보다 하며 무작정 다른 사람들을 따라할 때가 많습니다. 나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그렇게 살지만 정작 현재(present)라는 선물(present)은 놓쳐버리곤 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미래에 유보한 채 현재를 불태우는 불행한 삶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전쟁터와 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어쩌면 전선의 후방에 머물며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이야 말로 전선의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십니다. 이 치열한 경쟁사회 안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좋은 조건을 갖추려고 사람들은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다툼의 이면에는 가치관과 세계관의 충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조롱하는 세상의 문화와 대립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죄악 된 문화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답고 참된 이야기를 만들어 가려고 할 때, 우리에게 방해세력들이 많습니다. 우리를 조롱하는 시선들과 가치관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불행과 고통을 운명 탓으로 돌려버리는 세상에 맞서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시련과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으며 묵묵히 인내하며 믿음으로 반응하고자 하는 이들의 삶을 하나님은 책임지십니다.

 

이런 세상 한 복판에 살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서 들려오는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의 한 가운데를 걸어가는 대상(trader)들과도 같을 겁니다. 천만인이 우리를 둘러 진치고 인해전술(human sea tactic)로 맞서는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기도로 어려움을 뚫고 가야만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고 건져주신다는 확신 가운데 이 험난한 인생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구원할 성 싶으냐?”고 비웃는 대적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다윗은 그들이 자신을 대항하여 일어난 것을 보고, “여호와여 일어나소서!”라고 부탁하잖습니까? 대적이 일어날 때 우리 편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일어나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실 때 우리는 참 안식과 평안을 얻게 됩니다.

 

딱 작년 이맘 때네요. 다하나교회의 청빙공고를 보고 작년 424일에 지원서를 냈었습니다. 몇 번을 말씀드린 듯하지만 당시 저는 완전히 벼랑끝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죠. 학생신분은 이제 곧 끝나가고, 경력은 수년 간 단절된 상황에서 목회지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떠나 선교지와 해외를 떠돌다 인생이 이렇게 꼬이는 건가 라는 불안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입니다.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기도라도 할 수 있는 마음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제 마음에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하나님께서 나를 미국 신학교에서 준비시키신 것은 사명이 있어서 일거야. 사명이 있는 자에게 부르신 곳이 없을라구? 분명 나에게 깨달음을 주신 교회를 향한 새로운 비전과 청사진들을 펼칠 곳을 주실 거야.”라는 확신이 들더라구요. 상황은 긴박했지만 두 다리 뻗고 잘 잤습니다. 그리고 다하나 교회에서 최종 결정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기숙사 사무실에30일 노티스를 제출했습니다. 30일 후에 기숙사를 나가겠다는 노티스죠. 그냥 벼랑 밑으로 뛰어내려 날개가 돋아나는지 한 번 보자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30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하나교회로부터 연락이 왔고 저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작년의 저와 같은 심정으로 몇 년 동안 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부르짖고 계신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이 거룩한 산에서 여러분에게 친히 응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따라가는 그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순종하며 따라가는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복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마지막 구절처럼 주님 당신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옵소서.” 이것이 여러분을 향한 저의 간절한 기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곧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겁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붙들어 주시길 소망합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좋은 것으로 선물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방패이시요 우리의 군사력이신 주님께 다같이 기도합시다.

 

Scripture: Psalms 3:1-8

Sermon Title: Arise, O Lord!

Translated by: Melody Ouk (이예슬)

 

1.

It seems spring has arrived in Rochester these days. The cold, never-ending winter is slowly receding and the spirit of spring seems to be appearing. In spring, I find pleasure in observing and greeting the plants as I walk around the church. When the temperature rose to 80 degrees last week, the growth of the light green buds was noticeable day by day. This week I was very charmed by the purple violets, wild flowers, and yellow daffodils blooming along the roadside. The weather seems to be going back and forth and the spring energy seems to be waning again, but the wild flowers and buds seem to be resisting the return to winter. When spring arrives, all things return to their state of being and restore their original appearance. It is amazing the logic of nature. Living a life of resurrection is like participating in the feast of life. Resurrection is observed as life returns to its original appearance and state of being. Because winter is harsh and long, there is delight in the feast of spring. There are times when our lives go through a long winter. The long silence of our unanswered prayers wear us down. The experience of repeated trials and failures discourages us and makes us give up. There are times when we wonder if we’ll experience spring again, if we’ll see the outcome of our endeavors bare fruit. There are those among us who are currently experiencing this ordeal. Will we be able to pass this season of severe trials and welcome the season of resurrection?

 

When I go to sleep at night, I sometimes have similar thoughts. Maybe it’s because I’ve been reading a lot of books lately, but there are times when my mind feels sluggish. Sometimes, when I’m reading, it feels like more of the content is leaving than entering into my head. On an evening like that, I go to bed with a headache and feeling exhausted. In bed, I wonder, “Can I wake up tomorrow? When I wake up tomorrow morning, will everything be reset, and will I be able to start the day refreshed?” The old saying that sleep is the best medicine is not really wrong. In the morning after a good night's sleep, the tension and fatigue from yesterday are gone. Truly, we experience this resurrection every morning. Like all things in the spring, when night falls and morning comes, we are greeted with a new life. I think this is a small resurrection that we experience in our lives. People who are in the midst of trials and tribulations, I would like for you to listen to David’s psalm today with anticipation of the spring that will come to your lives.

 

2.

In the Korean Bible, Psalm 3 has the title ‘early morning prayer’ and Psalm 4 has the title ‘evening prayer’. Both of these psalms are to be read in bed. If you can't sleep at night, read this Psalm and go to sleep. Originally, the subtitle of Psalm 3 reads “A Psalm of David, when he fled from Absalom his son.” We will take a closer look at what happened to David later. First, fleeing from anyone makes us infer that this is an urgent and serious situation. The fleer would be concerned that the enemy could attack at any time, and they could die in their sleep. Simply put, it's a situation where one can't sleep. The Psalm begins like this. “O Lord, how many are my foes! Many are rising against me”. Rising up indicates a firm will and aggressive movement, so from this verse we can presume there were many enemies who stood against David, the author of this Psalm. But the words of those enemies as they attacked him were, "There is no salvation for him in God."  They’re saying, “You've been abandoned.” To put it in the language of kids these days, they called him a “loser”.

 

What happened to David? Why is his son Absalom chasing his father? The background of the text is based on the episodes from 2 Samuel 13 to 18. Prior to that, in 2 Samuel 11, David commits two great crimes: a sexual crime and a murder. While a general named Uriah was at war, he had sex with Uriah's wife. Then, to cover up his sins, he tried to call Uriah back from the war so Uriah could sleep with his wife. But Uriah was more righteous than David thought, and he insisted that he cannot enter his house during the war. Inevitably, David has his army general Joab kill Uriah in battle. David repented and was punished when his serious crime was revealed through the prophet Nathan. But after that, from 2 Samuel 13, problems begin to occur in his family.

 

He had many wives and sons. Among them, Amnon was the eldest son, and Amnon raped his half-brother Absalom’s sister, Tamar. The problem is that David and Absalom tried to cover up the incident and did not handle it properly. Absalom waited for opportunity for two years, and after two years, he killed Amnon, who raped his sister, and fled to a place called Geshur, where he hid for three years. When David's anger subsided, he called Absalom to Jerusalem, but David did not treat him kindly. So, Absalom made plans to rebel against his father, and finally succeeded. Absalom staged a coup d'état with half the people of Israel. So David's enemies were half of the entire population of Israel. David untied his hair and walked out of the palace barefoot. Originally, it was customary for a king to have his hair neat and wear a crown, but he untied his hair, sprinkled ashes, and walked out of Jerusalem barefoot. Imagine David fleeing down the steep hills of Jerusalem, through the Kidron Valley, over the Mount of Olives, and into the Judean Desert. He passed through the Judean wilderness, crossed the Jordan River in the east, and began to flee north. Everywhere he went, he had to endure the insults of those who hated him. His enemies no longer treated him as a king, but as a fugitive and criminal. This Psalm was created during this situation when David was being chased by his son.

 

3.

Would David be able to return home? Could he return to his throne? How did he get through this crisis?

The most painful thing for David must have been his heart of self-reproach because all of this happened due to his own mistake: the serious crimes of sex and murder that he committed against General Uriah were now being repeated by his sons. Amnon raped Tamar and abandoned her without caring for her. Amnon was killed by his brother, Absalom. David must have been stunned because his sins were passed on to the next generation exactly. If the hardship was without reason, he may have the courage and strength to endure it proudly. However, it would not be easy to endure the consequences of his sins and his wrong choices. He would have no choice but to keep his head down. The part that breaks David's heart is probably the irreversible regret that his family was falling apart like this because of his own mistakes and crimes. He could only untie his hair, cover himself in ashes, and leave with his head bowed.

 

Still, does David get frustrated and discouraged and sit down? No. Rather, he cries out to God. In verse 3 and 4 he says. “But you, O Lord, are a shield about me, my glory, and the lifter of my head. I cried aloud to the Lord, and he answered me from his holy hill.” The word kabod (כָּבוֹד), translated as my glory, means weight, but it is much more commonly used to mean 'glory'. But it also means ‘military strength’. I think the correct translation here is to use it to mean military power rather than glory. “The Lord is my shield and my might, and the one who lifts up my head.” He didn’t think, “Can anyone help me in such a serious situation? Which country should I ask for help?” He stayed calm in his heart by renewing his belief that his help and his military force comes from only God. This is Proverbs 24:16. “For the righteous falls seven times and rises again, but the wicked stumble in times of calamity.” David had this kind of faith in seven battles (fall seven times, get up eight times). The righteous are not otherwise righteous, but the righteous are those who have the faith that God will not forsake them even if they have sinned. For him, a life of relying only on God and holding on to God is a righteous life. I hope we all, like David, confess that our military strength is only God.

 

A popular game among children these days is ‘Fortnite’. It is a war simulation game in which you take out your opponent with your own weapon. If you look at such a game, what kind of weapon or item you have determines whether you win or lose. Of course, having a good weapon is an advantage, right? What is the key military force to win our life? David says that those who regard God as their shield and their military strength can be victorious.

 

4.

David must have been in a situation where he couldn't sleep properly as he fled. However, in verse 5, he confesses that he can sleep soundly in the midst of this. In the middle of this, he confesses that the reason he is able to sleep like this is because the Lord holds me up. Perhaps because he woke up after such sound sleep, his prayers are becoming more aggressive. “I will not be afraid of many thousands of people who have set themselves against me all around”. And he is more confidently and aggressively seeking God's help. “Arise, O Lord! Save me, O my God! For you strike all my enemies on the cheek; you break the teeth of the wicked. Salvation belongs to the Lord” (verses 7-8).

 

Based on verses 6-8, I think there is a deep correlation between a sound sleep and faith. When you sleep well, you can believe in God well. Would you laugh at me if I said that David's faith was able to change so aggressively because he slept well? No. David knew that sleeping and waking were all done with the help of the Lord. He confesses that he cannot sleep soundly unless the Lord sustains him through the night. Those of you who struggle with insomnia or are not getting a good night’s sleep, I ask you to find more time for prayer. This is because God is in control of your waking up. David woke up every morning and knew that God was holding on to him even in this dire situation. Even though it seems like we’re not doing anything in our sleep, he realized that God was working even then. Just as he would wake up each morning refreshed and ready to face the day, he knew that God would return him to his original place. He witnessed his own recovery and resurrection from his bed. I think this point is very important. No matter how much you cry and pray, you cannot sleep if you are not sure. Only those who receive assurance and answers can sleep soundly.

 

I hope everyone experiences this as well. Can you grow an inch taller just because you fret over it? Can worrying make poor situations better? At least at bedtime, let go of all your anxieties and worries. Then, read this Psalm and go to sleep. God alone is my shield, my military strength, and the one who lifts my head. God will never turn away from our desperate confessions and cries. And when you confidently receive a response to that earnest prayer, you will fall into a deep sleep.

 

5.

After the pandemic, people are living in great isolation and anxiety. Sometimes the loneliness and depression is so great that many people cannot sleep. People try to overcome these crises in many ways. Some even indulge in addictions to relieve the burden. However, an addiction that is deeply dependent on something cannot be a radical solution. Rather, it only adds thirst to our existence. Addiction is approached as a means to solve the problem, but rather, the cure gets further away as you fall further into addition. Some choose “vague (unconditional) zeal” as the answer to their uncertain future. They reduce their sleep and live thinking that if I work hard, everything will be fine. People exhaust themselves by exploiting themselves in order to achieve results without even knowing that they are exhausted. They live hard without having time to sleep. However, there are many times when the purpose or direction of their zealous living is unclear. Some may wonder if they should live like this, and there are many times when people blindly follow others. They live like this for their happiness, but they often miss the gift of the present. It is an unfortunate life that burns the present while reserving one's happiness for the future.

 

The reason why we are so exhausted is because the world we live in is like a battlefield. As a pastor, I may be staying at the rear of the front line and telling people to do this and that. You are the ones fighting on the front lines. In this fiercely competitive society, people strive to have good conditions in order to preoccupy an advantageous position. But behind all those quarrels, there is a conflict of values and worldviews. Living as Christians in this world means living in opposition to the culture of the world that resists and ridicules God. When we live in a world dominated by a sinful culture, there are many obstacles to us trying to create a good, beautiful, and true story of God. It is true that there are views and values that mock us. If we live in the middle of this world without receiving answers to our prayers from God, we will be like traders walking in the middle of a desert without an oasis. In the midst of a situation where ten million people encamped around us and we’re confronted on all sides with attacks, we must overcome difficulties with prayer to receive answers from God. We will have to walk this rugged path of life with the conviction that God will save and rescue us under any circumstances. There are countless adversaries who ridicule and say, “Is it likely that God will save you?” Didn't David see that his adversaries had risen against him and beseeched to God, "Arise, O Lord!"? When the Lord rises and fights for you, the game is over. Do not forget that if we try to hold on to the Lord, the Lord will hold on to us instead.

 

It was just around this time last year. I applied on April 24 of last year after seeing the One Heart Church pastor  position posting. As I have said a few times, I was completely at the edge of a cliff at the time. It was because it was not easy to find a pastoral position in a situation where my student status was about to end and my career had been cut off for several years. It would be a lie if I said I hadn't been anxious about my life decisions to leave Korea and live overseas doing missionary work and to study. There was nothing I could do but pray. Rather, I was grateful that I could even pray. But while I was praying, I felt that way in my heart. “God prepared me at an American seminary because I had a mission. For those with a mission, there must be a place for that mission to take place. I was sure that He would give me a new vision and a place to unfold the blueprints for the church that He enlightened me with.” The situation was tense, but I stretched my legs and slept well for the next two months. And before I had heard the final decision from One Heart Church, I submitted a 30-day notice to the dormitory office. It was a notice that we would vacate in 30 days. I just wanted to jump off the cliff and see if it sprouted wings. However, before 30 days had passed, Dahana Church contacted me and I am here now.

 

Some of you who have been crying out with one prayer topic for several years with the same feelings that I had last year. May God answer your prayers. May God answer you personally from His holy place. May God bless your life as you obey and follow God's way and not the way of the world that others follow. Like the last verse today, “Your blessing be on your people.” May this be my earnest prayer for you. The Lord will soon answer your prayers. May the Lord hold you. May the Lord give you good gifts. Let's all pray to the Lord who is our shield and our military strength.

 

Posted by speramus

본문: 요한복음 2115-19

제목: 내 양떼를 먹여라

 

1.

앞으로 7주 동안 우리는 부활절을 기념하게 될 겁니다. 오늘은 부활절 제 2주 주일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예수님의 부활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부활신앙이란 생명이 승리하고 사랑이 승리한다 선이 승리한다는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세상에서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선이 승리하고 주님이 회복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신앙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의 여러 문제들과 씨름하다보면 부활의 신앙이고 뭐고 정신없이 살아갈 때가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제자들은 어땠을까요? 예수님의 부활 후에 제자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죽었던 스승의 부활은 분명 놀라운 사건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예수님의 부활 후에도 제자들의 삶은 여전히 혼란 속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엠마오로 돌아가던 제자들도 그렇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또 다른 일곱 명의 제자들도 동일합니다. 이미 그들에게 예수님은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자신이 부활하셔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시기도 했죠. 그런데 요한복음 21장 전반부의 분위기를 보면 제자들이 약간 쳐져 있는 인상을 줍니다. 212절 말씀에 일곱명의 제자이름이 나옵니다. 시몬 베드로, 도마, 가나사람 나다나엘,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이름 없는 제자 둘입니다. 모두 갈릴리 출신들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이미 갈릴리 호수에 와 있는 것을 보면 예루살렘을 피해서 도망왔다는 인상을 줍니다. 베드로가 동료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그러자 나머지 제자들도 함께 가겠다고 나섭니다.

 

이후의 장면의 분위기는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첫 부르심을 받았던 때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비슷한 상황이 이어집니다. 그들은 밤새 물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뭍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그들을 향해 오른 쪽으로 그물을 던져 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물이 터질 정도로 많은 양의 물고기가 잡혔죠. 베드로보다 눈치가 조금 빠른 요한이 땅에 서 계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챕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말해주자 성질 급한 베드로는 물로 뛰어들어 헤엄쳐서 그의 스승에게로 갑니다. 베드로가 뭍에 올라오자 그의 스승인 예수님께서 이미 아침 식사를 세팅해 놓셨습니다.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그 숯불에 구운 생선과 떡이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그들의 기억을 자극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갈릴리 호수에서 벌어졌던 첫 부르심의 장면을 떠올렸겠죠. 또한 물고기와 떡이 그들을 위해 마련 되었을 때 그들은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사람들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 부분을 보며 저는 예수님이 요즘 시대에 사역자(pastor)를 하셨어도 참 잘 하셨을 거 같단 생각이 들어요. 왜요? 은혜 받을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만들고 계시잖아요. 제자들의 갱생을 위한 수련회 장소로 갈릴리만한 곳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밤새 물고기를 못 잡고 허탕친 후 마련된 아침 식사를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할 수 밖에 없었겠죠.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에서 그들이 경험했던 감격과 환희를 떠올리게 됐을 겁니다. 이렇게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신 후 주님은 본격적인 미니스트리를 시작하고 계십니다.

 

2.

아침을 먹은 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라고 하는데 사역의 중요한 원리가 여기서 나옵니다. 교회에서 은혜 받으려면 일단 잘 먹어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하더라도 시작 전에 배불리 먹고 시작하면 은혜가 더 커지는 법입니다. 주님은 본격적으로 베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미니스트리를 시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 사건 이전에 베드로의 마음이 어떠했을 지 우리는 헤아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도망친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였습니다.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은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거라 자신있게 주님께 말한 상태였죠.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당당한 그에게 말씀하셨었죠.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하게 될 것이다.” 라구요. 닭은 유전적으로 새벽이 되면 울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닭이 두 번 운다는 것은 그 일이 확실히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죠. 예수님의 말대로 베드로는 가야바 제사장의 집 뜰에서 예수님을 세번 연속 부인하고 도망칩니다. 그리고 그는 펑펑 울며 자신이 스승에게 무슨 일을 한 것인지 후회하게 되죠.

 

유구무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바로 베드로의 상황이었을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번이나 그들에게 나타나셨었지만 베드로는 마음이 심난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을 것 같아요. 그냥 죄스러울 뿐인 거죠.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세 번째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세 번 연속해서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의 대답은 세 번 다 같았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베드로의 세 번 똑같은 대답에 대한 주님의 반응도 같았습니다. “내 양떼를 먹여라.”라는 명령이 세 번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이란 숫자는 가장 완전하고 안정된 숫자입니다. 카메라 받침대도 사각다리를 쓰지 않고 삼각다리를 쓰지요. 가위 바위 보도 삼 세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존재하시죠. 상한 감정의 치유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세 번은 다뤄져야 하고 세 번은 만져져야 응어리들이 치유되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도 세 번이었으니 그에 대한 치료도 세번이어야 했을 겁니다. 그가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는 감정은 죄스러운 마음일 겁니다. 스승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겠죠. 부활하신 주님이 두 번째 나타나실 때까지 그는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세번째 주님이 갈릴리 호수에 나타나시자 그는 주님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주님께서 나를 포기한 것이 아니구나.” 그것이 이해되자 그는 배에서 바다로 바로 뛰어 내려 그 스승에게로 달려가게 된 것이구요.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져 있었던 주님을 향한 그의 열정과 사랑을 끄집어 내십니다.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어요. 베드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요. 하지만 그의 입을 통해 고백하게 함으로 그의 상한 감정을 치유하고,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싶으셨던 것이죠.

베드로는 이런 세번 연속된 질문에 반응하며 자신의 마음을 깊이 살피고 돌아보게 되었을 거라는 것이죠. 베드로는 마침내 자신의 과거의 쓰디쓴 감정을 훌훌 털어낼 수 있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 겁니다.

 

3.

이 본문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베드로의 마음의 회복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신 삶입니다. 베드로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는 답을 했을 때, 주님은 한결 같은 요구를 하셨죠. 무엇입니까? “내 양떼를 쳐라.” 또는 내 양떼를 먹이라.”였습니다. 갱생하여 다시 일어선 베드로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목표가 새롭게 주어진 것이죠. 그것은 양떼를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사명을 일깨우시기 위해 그의 마음을 먼저 어루만진 것이구요. 그런데양떼를 먹이는 것이 무엇인가?”를 현대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양은 무엇이고 양떼를 먹이는 것은 무엇이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겠죠.

 

우선 특별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양의 문또는 선한 목자라고 묘사합니다. 요한복음 10장을 기본적으로 떠올려야 하는 것이죠. 7절에서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1절을 헬라어 표현으로 하면 에고 에이미 호 포이멘 호 칼로스(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ός.)”입니다. 에고 에이미(γώ εἰμι)라는 말은 나는 ~이다(I am).”라는 뜻입니다. 영어에서도 Ego 또는 자아라는 뜻이죠. 그런데 고전 언어에서는 굳이 ego 같은 인칭대명사를 쓰지 않고 동사로만 표현합니다. 에이미라는 be 동사의 형태만 바꿔줘도 이것이 나인지 그인지 너인지 구분이 된다는 거죠. 그런데도 필요없는  ego 굳이  것은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선한 목자이다(I am a good shepherd).” 라는 번역보다 내가 바로 그 선한 목자이다(I am the good shepherd).”라고 하여 정관사 the를 넣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선한 목자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구약성경 에스겔서 34장을 생각하시며 말씀하신 겁니다. 당시 사람들은 선한 목자라고 말했을 때 자연스럽게 에스겔 말씀을 떠올렸을 겁니다.

 

에스겔서 34장은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묘사하는 유명한 장입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며 그들을 저주합니다. 목자란 양떼를 먹이는 사람인데, 오히려 목자들이 양들을 잡아먹고 양들을 괴롭힙니다. 양떼들이 온갖 들짐승에게 공격을 당하고 살육을 당하는데도 그들에게 목자가 없어서 비참한 상황이 되었다고 하나님은 한탄합니다. 목자들은 양떼를 돌보지 않고 자기 배만 채우고 있다고 책망을 받죠. 에스겔서 3411절부터는 하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어서 흩어진 양떼를 찾아 나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위험한 상황 가운데 처해진 양떼를 친히 구해 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양은 돌봄을 받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양들을 돌볼 지도자가 목자인 것이죠. 에스겔 34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들 위에 목자를 세워 그들을 먹이도록 하겠다. 그 목자는 내 종 다윗이다. 그가 친히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다윗이야 말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선한 목자였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다윗의 대를 이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참 목자로 임하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선한 목자로 이 땅에서 살아가신 것이구요.

 

에스겔 선지자가 다윗을 선한 목자로 언급할 때 그는 사무엘상 1734-35절 말씀을 떠올렸을 겁니다.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은 골리앗을 치러가기 전에 사울 앞에서 자기가 어떻게 양을 돌본 선한 목자였는지 말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가면, 저는 곧바로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 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덤벼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 죽였습니다.(34-35)” 이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선한 목자로서 어떻게 사셨는지를 묘사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다른 복음들과 달리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죽임 당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스스로 나의 목숨을 내어 놓는다(As I lay down my life)’고 표현하죠.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어린 양 떼들을 삯꾼과 이리 떼와 강도 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시죠. 요한복음 10장에서 너무나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삯꾼과 이리 떼와 강도 떼에게 시달리는 양들을 건져내시기 위해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리 떼와 강도 떼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아시면서 자신의 삶을 드렸습니다. 이리 떼에 물려 있는 양떼를 꺼내기 위해 나는 그들의 이빨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4.

삯꾼과 이리 떼, 강도 떼로 묘사되는 실체는 로마의 폭정이기도 하고 성전 종교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어떤 특정한 정치 시스템이나 종교 시스템을 가지고 자기들의 배만 불리는 사람들이 바로 이리떼 이며 강도 떼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자신의 생명을 살찌우는 드라큐라적인 악한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을 향한 사랑이나 연민 그리고 자비가 거세된 탐욕스런 종교 시스템입니다. 이런 종교시스템에서는 배제와 배타와 배척이 기본적인 작동 원리입니다. “문둥병자 안돼~ 소경들 안돼~ 혈루병자 안돼~ 이들은 자기가 죄를 지었거나 부모의 죄로 이런 거니 성전에 얼씬도 못하게 해. 이런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 내야 메시야가 빨리 오실 수 있어.” 실제로 바리새인들은 아주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 때 메시야가 임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정한 병자들과 죄인들을 배척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받아 들이면 그들이 덜 깨끗해지는 걸로 이해했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착취적이고 배타적인 종교시스템 아래서 소외된 자들을 찾아 다니셨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한 번 못박히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기 전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힐 마음으로 이리 떼의 입에서 어린 양 떼들을 건져 내시는 것을 반복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그런 선한 목자로서 어린 양들을 건져낸 행위의 연장선이었고 극적인 사건 이었던 것이구요.

 

마가복음 634절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묘사하며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님은 3일 동안 빈들을 돌며 자기를 따라다니는 5천명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먹을 것도 없는 데 주린 배를 부여 잡고 왜 5천명의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 다닙니까? 돌봐 줄 목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그 광야에서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잔치를 벌이신 겁니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은 광야에서 펼치신 성만찬(Eucharist)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이미 오병이어를 통해 자신의 몸과 피를 어린 양들을 위해 찢기실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죠.

요한복음 21장의 배경이 오병이어 기적과 세팅이 닮아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목자 없는 불쌍한 양떼를 먹이신 예수님처럼 이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사명으로서 선한 목자의 임무가 부여됩니다. 예수님의 빈자리를 이제 베드로와 제자들이 물려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걸어오신 선한 목자로서의 그 좁은 길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5.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양떼를 먹여라.” 이 말의 무게와 깊이를 우리는 한 번 헤아려 보았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까요?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일까요? 우리가 양떼를 돌보고 선한 목자가 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폭압적인 정치 시스템과 배타적이고 착취적인 종교시스템 가운데 소외된 너희의 이웃들을 이제 너희가 돌봐주어야 한다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부탁하신다고 믿습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분의 삶의 태도를 본 받는 것일 겁니다. 돌봄을 받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연민과 함께 함은 선한 목자의 삶을 살아가신 주님을 본받는 삶의 기본 자세입니다.

로마서 138-10절에서는 이러한 삶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8절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이어서 10절 말씀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로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람들은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 받기 위해 어느 정도 자유를 제한하여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국가는 사람들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하여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집행하죠. 그런데 그런 법집행이 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폭력에 고통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사랑의 법 하나로 다 해결된다고 말씀합니다. 사랑이 있으면 국가도 필요 없어집니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은 사랑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이 바로 이런 것이었죠. 소외되고 돌봄이 필요한 자들에게 사랑이 흘러가서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나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그의 생명과 안전을 빼앗지 않는 삶의 방식입니다. 착취적이지 않고 배타적이지 않는 삶의 태도입니다. 이것의 다른 표현이 이웃 사랑이며 선한 목자의 삶입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 각박해져서 사람들의 마음이 야수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물고 물어 뜯으려는 이리 떼와 강도 떼가 가득해 보이는 세상입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 Beef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것 같던데요. 처음 시작이 그렇더라구요. 마트의 주차장에서 한 남자가 후진을 하는데 그걸 보고 자기가 먼저 가려던 여자가 경적을 울리며 남자를 자극합니다. 둘은 남의 집의 화단까지 망가뜨리며 쫓고 쫓기는 분노의 질주를 합니다. 만약 처음에 한 사람이라도 기다려 주고 참아 넘어갔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스토리인 거 같더라구요. 우리는 그런 야수적인 마음을 선한 목자의 마음으로 리포메이션을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나를 위하는 야수적인 마음을 죽여야 합니다. 반대로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주교로부터 받습니다. 분명히 자기가 훔친 은촛대와 은접시를 주교는 오히려 자기가 준 걸 왜 다 안 가져 갔냐고 남겨진 촛대를 챙겨주기까지 합니다. 장발장이 경험한 지금까지의 야수적인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주교의 사랑으로 장발장은 완전히 다시 태어났죠. 그는 한 도시의 시장이 되어 수공업을 일으켜 번성시킵니다. 그로 이해 그 도시의 수많은 빈민자들을 구제해 냅니다. 이후에 그는 줄기차게 선을 행하며 레 미제라블들에게 선을 베풉니다. 소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런 것이 바로 선한 목자의 삶이라 생각됩니다.

 

의사 선생님들 많이 계시는데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의사선생님들 때문에 살맛나는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분은 너무 비현실적인 병원과 의사의 삶이라고 말씀하시긴 하더라구요. 그래도 사람들이 그런 드라마에 감동하는 것은 의사들 안에서 인간미를 발견하고 따뜻한 돌봄을 받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을 겁니다. “낙태한 산모에게 그것 병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아무에게나 찾아 올 수 있는 거예요. 산모님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의사가 얘기해주자 환자가 펑펑 우는 장면을 보면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선한 목자로 살아가는 삶은 예수님처럼 사랑에 의해 움직이는 삶입니다. 사랑이 작동하게 하는 삶이죠. 이웃을 해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이웃을 해치지 않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는 삶, 그것이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목자의 삶이자 목자의 마음입니다. 다른 이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누리도록 돕는 삶이 바로 목자의 삶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누리게 되길 축복합니다. 여러분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기 인생을 예찬하는 그런 일들이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그 거룩한 목자로의 부르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그 주님의 부름에 초대하시는 주님 앞에 함께 기도합시다.  

 

Main text: John 21:15-19

Title: Feed My Sheep / Translated by Myung-Ha Kim

 

1.

We will have 7 weeks of Easter. Today is the second Sunday of Easter. What does the resurrection of Jesus that happened in the past mean to us living in the present? Resurrection faith is the faith that believes that life wins, love wins, and goodness wins. Evil seems to triumph in the world, but the faith that ultimately believes that good will triumph and the Lord will restore is the faith of resurrection. It is also true that after dealing with problems that life brings, sometimes we simply don’t have room to think about Jesus’ resurrection. What were the disciples like? How did the lives of the disciples change after the resurrection of Jesus? For the disciples of Jesus,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eacher must have been an amazing event. However, when you read the Bible, you get the impression that the disciples' lives are still in chaos even after Jesus' resurrection. The disciples returning to Emmaus are the same as the other seven disciples in today's text. Jesus had already appeared to them twice and explained why he had to be resurrected. However, if you look at the atmosphere in the first half of John 21, there is a little melancholy. In 21:2, the names of the seven disciples appear. Simon Peter, Thomas, Nathanael of Cana, John and James, and two unnamed disciples. They are all from Galilee. The fact that they have left Jerusalem and are already on the Sea of Galilee gives the impression that they have fled from Jerusalem. Peter tells his friends, “I’m going out to fish.” Then the rest of the disciples set out to go with them.

 

The atmosphere of the later scenes is similar to the time when they were first called by Jesus. They tried to catch fish all night, but they caught nothing. Someone tells them to cast their nets to the right of them, about 100 meters from the shore, and so many fish were caught that the net burst. John, who is a little quicker than Peter, realizes that the one standing on the ground is Jesus. And when he tells Peter, Peter, who is impatient, jumps into the water and swims to his master. When Peter came up to the shore Jesus had already set breakfast. There was a charcoal fire with fish and bread grilled prepared for them. These series of circumstances must have stimulated their memories. Most of all, he probably remembered the scene of the first call that took place there on the Sea of Galilee. Also, seeing the fish and bread all prepared, they were likely to be reminded of the miracle of five loaves and fish that fed thousands. Reading this part, I think that Jesus would be a great pastor today. why? He knows how to prepare the atmosphere for people to receive grace in a staggering way. There would have been no place like Galilee as a place for a retreat for discipleship. And coming to a fully prepared breakfast after wasting away all night without catching a single fish, the disciples must have had no choice but to remember the times they had with Jesus. And it would have reminded them of the thrill and joy they experienced at the site of the miracle of five loaves and two fish. After setting the atmosphere like this, Jesus starts a full-fledged ministry.

 

2.

“When they had finished eating, Jesus asked Simon Peter.” An important principle of ministry comes out here. To receive grace at church, you must eat well. Even in bible studies, isn’t it more graceful if there is an abundance of delicious Korean food before the study begins? It seems that the Lord is starting a ministry that touches Peter's heart in earnest. One may ask. “Why does he only ask Peter?” I am not certain, but I think Jesus believed that if Peter was properly rehabilitated, Peter would lead the rest of the disciples on his own. Here we need to consider how Peter's heart must have been before this incident. It was in the Garden of Gethsemane that Peter fled from Jesus. He was confident in telling the Lord that no matter what, he would not betray the Lord. But Jesus said to him with confidence, “Before the rooster crows twice, you will deny me three times.” Roosters are genetically engineered to crow at dawn. But if the rooster crows twice, it means that it will definitely happen. Then, as Jesus said, Peter denied Jesus three times in a row in the courtyard of the high priest and ran away. And he wept and he regretted what he has done to his master.

 

There is a Korean idiom called ‘Yoo Goo Moo Uhn’ which means you have a mouth, but have nothing to say. It must have been Peter's situation where he had nothing to say because of what he had done. The resurrected Jesus appeared to them twice, but Peter seemed to be still trouble-hearted. I don't think he had the courage to face Jesus. He was filled with the feeling of guilt. Here, Jesus appears for the third time and asks Peter the same question three times.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Peter answers with the same answer three times, “Lord, yes. You know that I love you.” Jesus responds to Peter three times with the same answer. It is worth noting that the command “Feed my sheep” is repeated three times over and over.

 

The number three is the most complete and stable number. The camera stand uses a tripod instead of a four-legged stand. There is a saying that rock-paper-scissors is three rounds. God also exists in the form of a trinity. I think the same goes for the healing of scarred feelings. It seems to take at least three times of restoration processes to heal the lumps. Since Peter denied Jesus three times, he probably needed to be healed three times. Naturally, Peter most likely had feeling full of guilt and shame. He would not have been able to see his master's face. He probably wanted to avoid Jesus throughout the two appearances after the resurrection. The third time the Lord appeared on the Sea of Galilee, he was able to fully understand the heart of the Lord. “Ah~ The Lord did not give up on me.” When that was understood, he jumped right out of the boat into the sea and ran to the master. The Lord brings out Peter's passion and love for the Lord that were hidden deep in his heart. Jesus already knew how much Peter loves him. But by making Peter confess through his mouth, Jesus wanted to heal his hurt feelings and raise him up again.

In response to these three consecutive questions, Peter would have looked deeply into his heart, look back, and finally shake off the bitter feelings of his past and stand up again.

 

3.

What is really important in this text is not the restoration of Peter's heart. What matters is the life Jesus asked of him. When Peter replied, “Lord, you know all things; you know that I love you,” the Lord made the same request over and over again which was? “Shepherd my sheep.” Or “Feed my sheep.” The mission and goal given to Peter, who was reborn and stood up again, was given anew. It was to feed the sheep. The Lord touched his heart first to awaken this passion. However,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what it means to ‘feed the sheep’ in modern understanding. We must understand what sheep represent and what it means to feed the sheep in the context of Jesus’ time.

 

First, especially in the Gospel of John, Jesus is described as “the gate of the sheep” or “the good shepherd.” It basically reminds us of John 10. In verse 7, “I am the gate for the sheep.” In verse 11, “I am the good shepherd. The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The Greek expression for verse 11 is “ego eimi ho poimen ho kalos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ός.)”. The word ‘ego eimi (Ἐγώ εἰμι)’ means “I am.” In English, ‘ego’ also means me or self. However, in classical language, personal pronouns such as ‘ego’ are not used and are expressed only as verbs. Even if you change the form of the verb be(eimi) you can distinguish whether it is me, him, or you. Although unnecessary, the word ego is used here for the element of emphasis. Instead of “I am a good shepherd,” it can be translated as, “I am the good shepherd.” It is better understood with the addition of the definite article “the.” When Jesus said he is the good shepherd, he was referring to Ezekiel 34 in the Old Testament. At the time, people would have naturally thought of the words of Ezekiel when they spoke of the good shepherd.

 

Ezekiel 34 is a famous chapter describing the shepherds of Israel. Ezekiel prophesies to the shepherds of Israel and curses them. A shepherd is a person who feeds the sheep, but here the shepherds rather eat and harass the sheep. God laments that the sheep are attacked and slaughtered by all kinds of wild beasts, but they have no shepherd. Shepherds are rebuked for not caring for the sheep and only filling their own stomachs. Ezekiel 34:11 “‘For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I myself will search for my sheep and look after them…” He says that he will personally rescue the sheep in the midst of danger. So, the sheep symbolizes God's people who are not cared for. And the leader who will take care of the sheep who are not being cared for is the shepherd. Ezekiel 34:23 says: “I will place over them one shepherd, my servant David, and he will tend them; he will tend them and be their shepherd.” In other words, David was a good shepherd in the history of Israel. And it prophesied that Jesus Christ, the successor to David, would come to this earth and come as the true shepherd. Then, Jesus did live on this earth as the good shepherd fulfilling the Old Testament prophecies.

 

When the prophet Ezekiel mentioned David as the good shepherd, he must have thought of 1 Samuel 17:34-35. In 1 Samuel 17, David tells how he was a good shepherd, taking care of his sheep before Saul on his way to battle Goliath. 1 Samuel 17:34 But David said to Saul, “Your servant has been keeping his father’s sheep. When a lion or a bear came and carried off a sheep from the flock, 35 I went after it, struck it and rescued the sheep from its mouth. When it turned on me, I seized it by its hair, struck it and killed it. 36 Your servant has killed both the lion and the bear; this uncircumcised Philistine will be like one of them, because he has defied the armies of the living God.” These scriptures are also a description of how Jesus lived as the Good Shepherd on Earth. Unlike the other gospels, the Gospel of John does not say that Jesus was killed. Instead, it is expressed as ‘As I lay down my life’. For what? It is to protect the lambs from wolves and robbers. He speaks in great detail in John 10. The Lord came to this earth to rescue the sheep from the wolves and robbers. And he gave his life knowing that he would go into the mouths of wolves and robbers. He said that in order to take out the sheep from the mouths of the wolves, I will instead come within the range of their teeth.

4.

The entities described as wolves, and robbers are both Roman tyranny (violent politics) and the temple religious system. A group of wolves and robbers are people who only increase their stomachs with a certain political system or religious system. It is a Dracula-like, blood-sucking, evil religion that uses the lives of others to nourish one's own. It is a greedy religious system in which love, compassion, and mercy toward people made in the image of God have been castrated. In this religious system, exclusion, discrimination, and marginalization are the basic operating principles. “No lepers, blinds, and other sick people because of their own sins or their parents’ sins! Don’t let them come to the temple. Only when these people are driven out can the Messiah come quickly.” In fact, the Pharisees believed that the Messiah would come when they lived a very pure and holy life. In order to do this, it was believed that the unclean sick and sinners should be rejected. They understood that accepting such people would make them unclean.

But Jesus went looking for those who were marginalized under this exploitative religious system. Before being nailed to the cross, Jesus repeatedly rescued the lambs from the mouths of wolves with the intention of being crucified. The cross was a dramatic event and an extension of the act of saving the lambs as the good shepherd.

 

Mark 6:34, describing the miracle of five loaves and two fish, is recorded as follows. “When Jesus landed and saw a large crowd,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So he began teaching them many things.” Jesus took pity on the 5,000 people who followed him around the desert for three days. They had nothing to eat and starved yet why did these 5,000 people follow Jesus? Because there was no shepherd to take care of them. Jesus had a banquet with five loaves and two fish in the wilderness for them. The five loaves and fish miracle of Jesus was the Eucharist in the wilderness. Jesus showed that he would tear his body and blood for the lambs before he was crucified.

It is for this reason that the background of John 21 resembles the context of the miracle of five loaves and two fish. Like Jesus who fed the poor sheep without a shepherd, now Peter is given a new mission to be a good shepard. Jesus' vacancy must be inherited by Peter and his disciples. When the Lord said to Peter and his disciples, “Follow me,” he is inviting them to the narrow path Jesus walked as the good shepherd.

 

5.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Then feed my sheep.” We just deciphered the weight and depth of these words. How should this word be understood by us today? Do you love the Lord? If you love the Lord, what is the right way to live life? What kind of life would correlate to the life of taking care of the flock and being a good shepherd?

I believe the Lord is asking us today that you must now take care of your neighbors who are marginalized in the midst of a tyrannical political system and an exclusive and exploitative religious system. To follow Jesus who said “follow me” would be to imitate his attitude in life. Being compassionate toward those who are neglected and marginalized is the basic attitude of living a Christian life and the example that Jesus set for us by living the life of the Good Shepherd.

 

Romans 13:8-10 expresses this kind of life like this. This is verse 8. “Let no debt remain outstanding, except the continuing debt to love one another, for whoever loves others has fulfilled the law.” Verse 10 follows. “Love does no harm to a neighbor. Therefore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People have created nations or states with some restrictions on their freedom to ensure a safe and stable life. The state creates and enforces laws to maintain order by restricting people's freedom to some extent. However, there are many times when such enforcement is excessive and results in many people suffering from state violence. However, the Bible says that everything can be solved with one law of love. When there is love, there is no need for a nation. The fact that love is the completion of the law also means that this world in which we live can operate properly with love and without any other laws, states, or nations. This is the life Jesus showed us. Love flows to those who are marginalized and in need of care so that they can feel God's love. This is the way of life that does no harm to my neighbor and does not take away their life and safety for my own benefit and safety. This is the attitude of life that is not exploitative and not exclusive. This is what God means by ‘loving your neighbor.’

 

This world has become so hard that people's hearts seem to be turning into beasts. It's a world that seems to be full of beasts that bite and try to bite other people. Recently, a drama called Beef seems to be popular on Netflix. This is how the drama starts. A man backs up in the parking lot of a store, and the woman who was trying to go first sees it and stimulates the man by honking her horn. The two chase furiously even destroying flowerbeds in other people's houses. It seemed like a story where nothing would have happened if one of the persons waited patiently. We must reform such a beastly heart into the heart of a good shepherd. We must kill the beastly heart within us that goes on its way of even harming others for our own benefit. Conversely, in the novel Les Misérables, Jean Valjean receives a love so incomprehensible from the bishop. The candlesticks and plates were obviously stolen yet, the bishop asks why he didn’t take all the other ones that he gave to Jean Valjean. This was incomprehensible in the beastly world Jean Valjean lived. However, because of the bishop's love, Jean Valjean was completely reborn. He becomes the mayor of a city and develops and prospers the handicraft industry. As a result, he relieves many of the city's poor. It's the story of a novel, but I think this is the life of the good shepherd.

 

There are a lot of doctors here which reminds me of the K-drama “Hospital Playlist.” In the drama, you can see a world where you can live better because of the doctors. Of course, some people say that the life of doctors displayed in the drama is too unrealistic. Still, people are moved by such drama because they want to find humanity in doctors and receive warm care. “Miscarriage is neither a disease nor anything. It can just come to anyone. It's not the mother's fault,” the doctor said, and I remember being very moved when I saw the patient crying out loud.

 

A life lived as a good shepherd is a life in which love moves. It's a life that makes love work. It is a way of life that loves our neighbors without harming them.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A life of loving and caring for the underprivileged without harming them is the life and heart of a shepherd that our Lord wants. The life of helping others to gain life and enjoy it more abundantly is the life of a shepherd. I am blessed that many people will enjoy life through you. I bless you that many people discover the beauty within themselves and praise their lives through you. I invite you to the calling of being a good shepherd. Let's pray to the Lord who invites us to follow him.

Posted by speramus

본문: 요한복음 121-8

제목: 사랑하니 깨뜨립니다.

 

1.

요즘 계절의 변화를 실감합니다. 며칠 새 대낮의 기온이 32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어떤 분에게 곧 봄이 오겠다고 말했더니 봄이 온 것이라 하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봄이 이미 온 것이 맞습니다. 옥수수 밭과 잔디를 덮고 있던 하얀 눈이 이제 거의 다 녹아갑니다. 꽃이 피어야 봄인 줄로만 알았는데 얼어붙었던 대지가 녹기 시작했으니 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가장 은혜 받았던 노래가 김명식 씨의 이라는 노래였습니다. “내가 염려했던 지난 날들과 영원히 계속 될 것 만 같았던 추운 겨울이 주님의 약속대로 흔적도 없고, 내 하나님 행하신 일 영원히 찬양하누나.” 이 가사의 노래를 들으며 고된 군생활을 달래던 기억이 봄과 함께 살아나네요. 인생의 겨울을 통과하시느라 몸도 맘도 지치셨던 모든 분들 위에 주님의 따스한 은총이 함께 하길 빕니다.

 

 예수님의 활동 근거지였던 팔레스틴 땅도 이 맘 때가 되면 새로운 계절을 맞습니다. 10월 말부터 우기가 시작되는데 이 때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합니다. 이 때부터 흐린 날이 많고, 일년의 강수량의 대부분이 10월 말부터 3월 초까지 몰아서 내립니다. 3월 초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하는데 이 때부터 건기가 시작됩니다. 3월의 늦은 비가 그치면 본격적인 추수의 때가 시작됩니다. 올리브와 보리, 포도의 추수가 시작됩니다. 이 시즌에 유대인들은 가장 중요한 명절을 맞게 되는데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그들이 이집트의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게 만든 출애굽을 기념하는 매우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어린 양을 희생시킨 하나님의 구원을 이야기하며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큰 명절인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돌아선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야 하는데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예수님이 들르신 곳이 베다니였습니다. 다음 주가 종려주일인데요, 종려주일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들어가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일어난 사건이 베다니에서의 만찬이니 이번주는 이 말씀을 통해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베다니를 들르시기 전에 어디에 계셨고 왜 그곳에 계셨어야 하는지 먼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039절을 보면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서 피하셨다.” 하며 예수님이 피신하며 다니신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는 나사로를 살리신 후 그때부터 예수의 대적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마음먹었다고 말해줍니다. 그들은 그 날로부터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대 사람들 가운데로 더 이상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에서 떠나, 광야에서 가까운 지방 에브라임이라는 마을로 가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다(11:53-54).”

 

예수님께서는 이적과 기사를 행하심으로 병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셨지만, 그의 대적들에게는 미움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심으로 대적들의 미움이 극에 달할 때 주님은 대적들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Hit and run 작전과 같아 보입니다. 베다니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적을 행하셨지만 그 소식이 예수님의 대적들에게 들어가자 예수를 죽이려 달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일을 하시며 많은 사람들을 자유케하시는 일을 했을 뿐인데 대적들의 미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치고 빠지신 것을 숨고르기를 하신 걸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 전에 한 숨 돌리시면서 마음을 새롭게 하셔야만 했을 겁니다.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버거운 그 고난의 잔을 마시기 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셨던 겁니다. 예루살렘에서 3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베다니를 들렀다 예루살렘으로 향하실 겁니다. 예수님이 다시 베다니 마을을 방문하실 때, 주님은 각오를 단단히 하신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결연한 각오로 베다니를 방문하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베다니 사람들은 기적을 행하신 예수가 그들의 마을을 재방문하자 잔치를 벌인 것입니다..

 

2.

감사와 기쁨의 축제의 열기 속에서 예수님의 감정의 흐름을 민감하게 캐취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마리아였습니다. 모두가 잔치 분위기에 들떠 있을 때 마리아만은 예수님의 마음을 읽어냈습니다. 예수께서 결연함으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당하실 고난을 생각하자 마리아는 가슴이 미어졌을 겁니다. 마리아는 무엇인가 주님에게 위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자의 흐릿한 직감이 남자의 또렷한 이성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제가 한 말입니다=). 흥에 한껏 취한 남성들 틈으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이 잔치가 예수님의 장례식 잔치의 리허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던 겁니다.

 

그녀가 이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읽어냈던 이유는 그녀가 예수님의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누가복음 1039절에 보면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고 묘사합니다. 사도행전 223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가말리엘의 발아래서 배웠다는 표현을 합니다.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제자였다는 관용적인 표현(idiom)이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간파했던 충실한 제자였다는 겁니다. 흥에 취한 남성들 사이로 갑자기 등장한 마리아는 자신이 준비한 퍼포먼스를 시작합니다. 마리아는 노동자의 1년치 품삯에 해당하는 고가의 나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나드는 식물에서 채취한 고급 향수인데 클레오파트라의 장례에 발랐다는 장례식용 향수이기도 했습니다. 왜 향유를 발에다 붓습니까? 예수님은 이곳 저곳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돌아다니셨습니다. 게다가 대적들을 피하여 빈들로 내 달리시기도 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발은 부르트고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마리아의 시선은 예수님의 발에 고정되었고 그 발에 향유를 붓습니다.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향수를 부었으면 어떤 감각이 먼저 자극되겠습니까? 후각이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이 집이 문둥병자 시몬의 집이었다고 부연 설명되어 있습니다. 문둥병자란 피부병에 걸린 사람이죠. 그러면 기본적으로 향기가 좋지 않았을 것 같아요. 성경은 문둥병자 시몬의 집에 갑자기 향유냄새가 가득찼다라고 말해줍니다. 마리아는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으면서 향유를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그의 스승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고 시뮬레이션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마리아와 대조를 이루는 캐릭터로 가룟(Iscariot) 출신의 유다라는 예수님의 제자가 나옵니다. 그는 이 여자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향유가 담긴 옥합(vessel)을 깨뜨린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깨뜨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저 비싼 향유를 왜 낭비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300데나리온이면 도대체 얼마나 큰 돈이냐 말입니까? 유다는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더 낫겠다고 말은 했지만 실은 그 돈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같은 제자인데 가룟 유다와 마리아의 온도차이는 사뭇 다릅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스승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있고, 또 다른 이는 너무나 차가운 이성으로 분석하고 따지려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7-8)." 마리아를 지지하고 계십니다. 마리아의 행위를 통해 예수님은 적잖은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큰 힘과 용기를 얻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이신지라 그 따뜻한 마음의 흐름을 감지했고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동안 도망다니는 삶이 고달프기도 하시고 배고프기도 하고 피로도가 극에 달해 계셨을겁니다.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사랑을 예수님은 읽을 수 있었습니다. 300데나리온을 가지고 구제활동을 하는 것은 절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유다의 한계는 예수님을 향해 가진 마리아의 사랑의 진실성을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따르고 사랑했다면 마리아의 이 거룩한 낭비는 전혀 불편한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돈주머니를 관리하는 자였고, 그 돈주머니에서 돈을 훔치던 도둑이었기에 그런 사랑을 읽어내기란 매우 어려웠고 그 자리가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3.

사랑하는 사람에게 낭비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퍼주고도 더 줄 것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여러분들이 연애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도 돈 없는 신학생 시절에 아내를 만났지만, 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물량공세를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돈 모아서 VIPS, Out Back 같은 레스토랑도 가고 에버랜드 같은 곳의 티켓도 아까워하지 않고 예약하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사귀자고 말할 때 광화문 교보문고 1층의 파스타 집에서 만났었습니다. 너무 기뻐 지하 1층에 있는 교보문고 hot tracks에 가서 아내에게 시계를 하나 사주었습니다. “너와 나의 사랑은 시간을 넘어선 영원에 속한 것이다.” 뭐 그런 의미였던 것 같아요. 사랑할 때는 더 주고 싶은 마음 뿐이지 절대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에는 낭비란 없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에는 이 사랑이 없었던 겁니다. 여러분 선행이 절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하지 않는 선행은 자기만족이나 자기 권력을 구축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선행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마음과 잇대어 있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300데나리온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어야지 했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선전도구일 뿐이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어떻게 이 세계 가운데 퍼져나갔다 사그러졌는지 한 번 보십시오. 그들의 구호는 너무나 훌륭했고 아름다웠습니다.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모두 다 같이 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리고 그들이 외친 구호는 이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죠지 오웰(George Orwell)동물농장(Animal Farm)은 스탈린 체제의 공산주의를 비판한 소설입니다. 동물 농장을 인간 주인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을 내 쫓고 동물 농장에 새 시대를 열겠다고 했던 돼지들이 어떻게 망가져가는지 소설은 자세히 묘사합니다. 권력을 잡은 돼지들은 인간들과 똑같이 동물들의 노동을 착취했고 모든 부를 자기들만 누렸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시작했지만 그 가난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자기 권력을 구축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예수님을 통과하지 않았을 때 자기 권력을 위해 오용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줍니다.

 

4.

마태복음 2613절에서는 온 세상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여인의 행위는 예수님이 죽으신 의미를 이해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자신의 가장 귀한 생명을 깨뜨리는 그 큰 사랑의 본질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나드를 깨뜨리고 발에 부은 것이 낭비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전부를 우리를 위해 깨뜨리실 사건에 대한 rehearsal이자 simulation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이 여인의 공통점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깨뜨릴 때 향기가 납니다.  향기는 가장 소중한 것을 깨뜨릴 때에만 발생합니다. 내 안에 온통 나(ego)로 가득한 사람이 깨뜨린 삶은 향기가 아니라 악취만 있을 뿐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자기 권력을 위해 깨뜨린 거짓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나를 부수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헌신과 다짐 없이 깨어진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와 희생의 의미를 이해하고 따르겠다는 사람은 자기를 온전히 부숩니다. 온전한 자기 부인과 함께 예수를 자신의 삶의 중심에 모십니다. 그는 예수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깨뜨린 삶을 이해하기에 예수를 따라 자신의 삶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은 예수를 그들의 삶의 중심에 모셔드리기는 커녕 그를 저 빈들로 내 몰았습니다. 왜냐면 예수는 그들의 삶의 기반을 무너뜨릴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을 그대로 두면 모두 그를 믿게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로마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땅과 민족을 약탈할 것입니다(11:48)." 로마 사람들은 이미 그들의 민족을 약탈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기득권을 누리고 사람들의 돈을 갈취할 수 있는 성전체제가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을 염려한 것입니다. 예수가 그들에게 방해꾼이자 눈에 가시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어떻게든 감추려하고 먼 들로 내어 쫓아버리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겁니다.

유다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유다 또한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를 따른다고 했으나 자기 명분을 위한 따름이었습니다. 예수 앞에 온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깨뜨리지 않았기에 여전히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권력자들과 손을 잡고 예수를 팔아버린 것이겠죠.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따르긴 했으나 그것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으니 예수를 폐기 처분해 버린 겁니다.

 

예루살렘의 종교당국자들과 예수의 관계, 그리고 유다와 예수의 관계를 옛날 이야기로만 봐서는 안됩니다. 우리 양심에 진동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예수님의 거룩한 시선으로 우리 양심을 비추는 일을 멈춘다면 우리 또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양심을 비추는 성경 읽기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기도의 삶에서 멀어져 있다면, 우리는 예수를 은닉하고 예수를 저 먼 들로 내쫓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따름의 핵심은 나를 온전히 부인하고 깨뜨리는 삶입니다. 자기 부인으로 비워진 내 삶의 중심에 예수로 가득 채워지는 감격을 누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처럼 주님께 항복할 의사가 전혀 없이 어떻게 주님을 따르겠습니까? 주님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마세요. 저는 너무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적당히 즐기면서 내 유익을 위해 그렇게 살고 싶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며 사는 삶은 좀 부담스러워요.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저 빈들로 몰아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께 내 삶의 우선권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 거짓된 양심을 비추는 사람만이 예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로 채워진 사람들이 자기 삶을 깨뜨릴 때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5.

교회는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깨뜨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예수의 향기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의 교회에서 악취가 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온전한 예수 따름 없이 내 이름을 내고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드리기 위해 보여주기식으로 나를 깨뜨리니 악취가 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여러 선행과 자비 프로그램은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 따름이 먼저 있고 예수의 마음과 잇대어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마음이 그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물이 아래로 흘러내려 가듯 예수님의 마음은 가난한 자들과 인간성의 모멸을 겪고 있는 비참한 인생들을 향해 흘러갑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과한 사랑과 선행만이 자기 권력을 구축하는 도구로 오용되지 않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아는 것, 예수의 마음을 읽는 것, 예수의 마음에 잇대어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베다니 마을 잔치에서 예수의 마음을 읽어낸 사람은 마리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녀가 깨뜨린 삶을 받으시고 큰 위로를 얻으신 것이죠.

 

저는 커피를 참 좋아합니다. 이곳에 와서 여러 이유로 커피를 끊을까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면서 갖는 행복이 커피를 안 마시면서 갖는 박탈감보다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향기 때문입니다. 좋은 커피를 들이킬 때 내 전 존재를 덮는 그 향내가 참 좋습니다. 커피가 자신의 몸의 수분을 없애 가며 자신을 태우고, 자신의 몸을 그라인더에 부수는 그 헌신이 있을 때 그는 향기를 발하게 됩니다. 삶을 깨뜨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삶을 깨뜨린다고 하면 너무 추상적입니다. 저는 삶의 향기는 인격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우리 삶이 향기롭다는 것은 우리의 인격이 흠모할만 하다는 것이겠죠. 우리가 깨뜨리는 삶은 우리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격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고농도의 추출물을 식물에서 짜낸 것이 향수가 되듯이, 인격도 부단한 노력과 훈련으로 장기간에 걸쳐 습득하는 것입니다. 인격은 훈련으로 습득된 삶이 농축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성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을 깨뜨린다는 것은 우리의 인격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각처에 그리스도의 인격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도 교회로 모인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바쳐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얘기했죠(고후 2:15). 향기가 가득찬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인격을 통해 공공연하게 표현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니 자연스럽게 삶에 향기가 나게 되는 것이구요. 예수 안에서 각처에 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니 교회는 얼마나 대단한 곳입니까.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향기로워지고, 여러분 때문에 직장이 향기로워지고, 동네가 향기로워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깨뜨리는 삶의 열매들로 온누리에 아름다운 주님의 사랑의 향기가 가득 채워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옛적 베다니 마을처럼 말입니다.

 

John 12:1-8

Title: I love you, so break it  / translated by Chungil Wi

 

1.

I feel the change of the seasons these days. Daytime temperatures have not dropped below 32 degrees for the past few days. When I told someone that spring would come soon, he said that spring had come. Come to think of it, it is true that spring has already arrived. The white snow covering the cornfields and grass is now mostly melting. I thought it was spring only when the flowers bloomed, but as the frozen ground began to melt, spring began. When I was in the military, the song I liked the most was Kim Myung-Sik's song 'Spring'. “The past days I was worried about and the cold winter that seemed to last forever, there is no trace as the Lord promised, and I praise what my God has done forever.” The memory of comforting the arduous military life by listening to the song with these lyrics comes back to life with spring. May the warm grace of the Lord be with all those who have been exhausted physically and mentally from going through the winter of life.

 

The land of Palestine, the base of Jesus' activities, also welcomes a new season at this time of year. The rainy season begins at the end of October, and the rain that falls during this time is called early rain. From this time on, there are many cloudy days, and most of the year's precipitation is concentrated from the end of October to the beginning of March. The rain that falls in early March is called the latter rain, and this is when the dry season begins. When the late rains in March stop, the harvest season begins in earnest. The harvest of olives, barley, and grapes begins. During this season, Jews celebrate the most important holiday, the Passover. The Passover was a very important feast to commemorate the Exodus, which made them free from slavery in Egypt. They remember and celebrate God's salvation by sacrificing a lamb to liberate them. It is significant that Jesus died on the cross on Passover, a major Jewish holiday. As the Lamb of God, Jesus had to bear the cross to save people who rebelled against God and turned away. To do so, Jesus had to go up to Jerusalem, and the place where Jesus stopped right before entering Jerusalem was Bethany. Next week is Palm Sunday, which commemorates Jesus riding a donkey into Jerusalem. Since the event that happened right before Jesus entered Jerusalem was the supper in Bethany, I want you to receive grace through this message today.

Before Jesus stopped by Bethany, we need to pay attention to where he was and why he should have been there. In John 10:39, “Again they tried to seize him, but he escaped their grasp.” And it says that Jesus went and fled. John 11 tells us that after raising Lazarus, Jesus' enemies from then on were determined to kill him. “So from that day on they plotted to take his life. Therefore Jesus no longer moved about publicly among the people of Judea. Instead, he withdrew to a region near the wilderness, to a village called Ephraim, where he stayed with his disciples. (John 11:53-54).”

Jesus gifted new life to the sick by performing signs and wonders, but he was hated by his enemies. When the hatred of the enemies reached its peak as Jesus performed miracles, the Lord went to a lonely place to avoid the enemies. It looks like a hit-and-run operation. He performed the miracle of raising Lazarus from the dead in Bethany, but when the news reached Jesus' enemies, he rushed to kill Jesus. Jesus did good and set many people free, but the hatred of the enemies grew like a snowball. It would be good to understand that Jesus hit and run like this as he took a breather. Now, before going up to Jerusalem in earnest, he would have had to take a breath and refresh his mind. He needed to prepare his mind before drinking the cup of suffering that was too heavy for him to handle. After stopping at Bethany, which was only three kilometers away from Jerusalem, he will be heading to Jerusalem. When Jesus visited the village of Bethany again, the Lord was determined. Jesus must have visited Bethany with determination. But, unaware of this, the people of Bethany held a feast when Jesus, who performed miracles, returned to their village.

 

2.

There was a woman who sensitively caught the flow of Jesus' emotions in the heat of the festival of gratitude and joy. She was Mary. While everyone was excited about the party, only Mary read Jesus' mind. She had a hunch that Jesus was accepting his own death with his resoluteness. When she thought of His hardships when He went to Jerusalem, Mary must have lost her heart. She wanted to comfort the Lord with what Mary had. There was a saying, “A woman's hazy intuition is better than a man's clear reasoning.” (This is what I said). A woman appears in the gap between the men who are drunk to the fullest. She had a hunch that this feast should be a rehearsal for Jesus' funeral banquet.

The reason she read the heart of Jesus like this is that she was a disciple of Jesus. Because Luke 10:39 describes it as “She had a sister called Mary, who sat at the Lord’s feet listening to what he said.” In Acts 22:3, Paul expresses that he “learned at the feet of Gamaliel.” To sit at one’s feet and listen to one’s words was an idiom for being one’s disciple. In other words, she was a faithful disciple who understood the meaning of Jesus' entry into Jerusalem. Mary, who suddenly appears among the men who are drunk with their excitement, starts a performance she has prepared. Mary pours expensive nard perfume on Jesus' feet, equivalent to a year's wages for a laborer. Nard is a high-quality perfume collected from plants, and it was also a funeral perfume that was used at Cleopatra's funeral. Why does she pour perfume on his feet? Jesus went about preaching the gospel from place to place. Besides, he had to run to empty fields to avoid his enemies. Jesus' feet were swollen and imperfect. Mary's gaze is fixed on her feet of Jesus and she pours perfume on them. She wanted to comfort Jesus.

What senses will be stimulated first when you pour perfume? It's the smell. In the Gospels of Matthew and Mark, it is further explained that this house was the house of Simon the leper. A leper is a person with a skin disease. Then, basically, I think the scent would not have been good. The Bible tells us that Simon the leper's house was suddenly filled with the smell of perfume. Mary did not stop by pouring her perfume on Jesus' feet but began to dry her perfume by wiping it with her own hair. In this way, she is preparing and simulating the funeral of her master.

Here, as a character in contrast to Mary, a disciple of Jesus named Judas from Iscariot appears. He did not understand what this woman was doing. She didn't just break the vessel of perfumed oil, he thought, she was breaking the mood. Above all, he couldn't understand why she was wasting such expensive fragrance oil. How much money are 300 denarii? Judas said that it would be better if he sold it and gave it to the poor, but actually, the money was too precious to him. Although they are the same disciple, the feeling temperature between Judas Iscariot and Mary is quite different. One person has hot love and devotion towards her teacher, and the other person analyzes and argues with too cold a reason.

 

What is Jesus' reaction? “Leave her alone,” Jesus replied. “It was intended that she should save this perfume for the day of my burial. You will always have the poor among you, but you will not always have me. (John 12: 7-8).” he supports Mary. Through Mary's actions, Jesus received considerable comfort. No, he rather gained great strength and courage. Jesus was also a human being, so he sensed the warm flow of his heart and was moved. He must have been tired of running away, hungry, and exhausted. Jesus could read the love that was deep in her heart. It is absolutely not a bad thing to do charity work with 300 denarii. But Judas' limit was that he did not know the sincerity of Mary's love for Jesus. If he had truly followed and loved Jesus, Mary's holy waste would not have been uncomfortable at all. However, he was the person who managed the money bag, and he was a thief who stole money from the money bag, so it was very difficult to read such love and the position was uncomfortable.

 

3.

Nothing is wasted on loved ones. It is a characteristic of people who love to be sorry that they have nothing more to give even after giving everything away. Think about when you were dating. I met my wife when I was a theological student without enough money, but I did not want to stop giving everything the woman I love. I remember saving money, going to restaurants like VIPS and Out Back, and making reservations for tickets to places like Everland. When I first asked her to date, we met at a pasta shop on the 1st floor of Kyobo Book Center in Gwanghwamun. I was so happy that I went to the Hot Tracks of the Kyobo Bookstore on the B1 floor and bought her a watch for her. “My love for you is beyond time and belongs to eternity.” I guess that was my intention. When you love, you just want to give more, but it's never a waste. Because nothing is wasted in a loving heart.

 

Judas Iscariot did not have this love in his heart. Your good deeds are never bad. But good works outside of Jesus are nothing more than a means to build up their self-satisfaction or self-power. Love for the Lord comes first, followed by good deeds. Judas Iscariot was not connected with Jesus' heart, and he did not love Jesus. He should have helped the poor man with 300 denarii, but it was just a political propaganda tool. Just look at how communism has spread and faded in the world. Their reliefs were so wonderful and beautiful. A beautiful world where everyone prospers through fair distribution of wealth was the value they pursued. But we know all too well how they fell and that the slogans they chanted were nothing more than ideals. George Orwell's "Animal Farm" is a novel that criticizes Stalin's communism. Animal farms were run by human owners. The novel describes in detail how the pigs, who said they would kick out humans and open a new era in animal farms, are ruined. The pigs who came to power exploited the labor of animals just like humans and enjoyed all the wealth for themselves. It started for the poor, but the love for the poor was used as a tool to build self-power. Loving the poor is not a bad thing, but history tells us that it can only be misused for self-power if it has not passed through Jesus.

 

4.

In Matthew 26:13, “Truly I tell you, wherever this gospel is preached throughout th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said Jesus. Why? It is because this woman's act was an act of understanding the meaning of Jesus' death. It is because Jesus now went up to Jerusalem and understood the essence of the great love that destroyed his most precious life. This woman breaking her nard and pouring it on her feet seems like a waste, but this is a rehearsal and simulation of an event where Jesus will break all of himself for us. What Jesus and this woman have in common is that they broke what was most precious to them. A person smells when they break something that is most precious to them. The scent comes only when you break the most precious thing. The life broken by a person who is full of me (ego) is not a fragrance, but only a stench. Because it is nothing more than a false performance broken for self-power. A broken life is meaningless without the dedication and resolution to completely break oneself and follow the Lord. Those who understand and follow the meaning of Jesus' death and sacrifice completely destroy themselves. With his total self-denial, they put Jesus at the center of their lives. They can follow Jesus and break their lives because they understand that Jesus broke his life on the cross.

 

However, the powerful in Jerusalem drove Jesus to those empty places instead of bringing him to the center of their lives. Because Jesus is a dangerous existence that will break the foundation of their lives. “If we let him go on like this, everyone will believe in him, and then the Romans will come and take away both our temple and our nation (John 11:48).” The Romans are already plundering their people. What does this mean? They were concerned about a situation in which the temple system, where they could enjoy vested interests and extort people's money, could be seriously shaken. Jesus is only seen as a hindrance to them and a thorn in their eyes. It led to the act of kicking him out.

Judas is not much different from them. Judas, too, was not free from his self-centeredness. He said he was following Jesus, but he was following for his own sake. Because he did not fully deny and break himself in front of Jesus, he still could not escape from his self-centeredness. So he must have sold Jesus by joining hands with the powerful in Jerusalem. He followed Jesus to achieve his purpose, but it seemed that it would not come true, so he discarded Jesus.

The relationship between Jesus and the religious authorities in Jerusalem, and between Judas and Jesus, should not be seen as an old story. If we close our ears to the word of God that causes vibrations in our conscience and stop illuminating our conscience with the holy gaze of Jesus, we are no different from them. If we are far from reading the Bible that illuminates our conscience with the Word of God and praying to hear the voice of God, we are hiding Jesus and driving him out into the distance. The core of following Jesus is a life that completely denies and breaks me. The first priority is to enjoy the thrill of being filled with Jesus at the center of my life, which has been emptied by self-denial. How can you follow the Lord without any intention of surrendering to Him like the powerful men in Jerusalem? Lord don't come close to me, I don't want to live too tired, I want to live for my own benefit while enjoying myself in moderation, The life of listening to and obeying the Lord's words is a bit burdensome…. These people are driving Jesus into those voids. Loving Jesus is giving Jesus a priority in my life. Only those who reflect their false conscience on the word of God can love Jesus. When those who deny themselves and are filled with Jesus break up their lives, the fragrance comes out.

 

5.

The church is a gathering of people who have broken their lives for Jesus. Therefore, it is only natural that the church smells of Jesus. But why does a modern church stink? It stinks because I break myself in a show way to make a name for myself and attract people to the church without following the perfect Jesus. Many good works and mercy programs in the church should not be the goal. Following Jesus comes first, and connecting with the heart of Jesus comes first. If you love Jesus, you cannot help but love the poor. Because the heart of Jesus flows naturally to those poor people. As water flows down, the heart of Jesus flows towards the poor and the wretched human beings who suffer the contempt of humanity. Therefore, those who truly love Jesus have no choice but to love the poor. Only love and good works that have passed through Jesus are not misused as tools for building self-power.

Knowing the heart of Jesus, reading the heart of Jesus, and connecting with the heart of Jesus are the first priority. At the feast in Bethany, Mary was the only one who read Jesus' mind. And Jesus gave her great comfort by accepting her broken life.

 

I really like coffee. I came here and thought about giving up coffee for various reasons. However, I felt that the happiness of drinking coffee is greater than the deprivation of not drinking coffee. The reason I like coffee is because of its aroma. I love the scent that covers my entire being when I drink good coffee. When coffee burns him as it drains his body of moisture, and when he has that dedication to crushing his body into the grinder, he gives off a scent. What does it mean to break a life? If you say you break life, it's too abstract. I believe that the fragrance of life comes from character. If our lives are fragrant, it means that our characters are worthy of admiration. The life we break must become our character. But character is not just created. Just as high-concentration extracts squeezed from plants become perfume, the character is acquired over a long period of time through constant effort and training. Good character can be said to be the character of Christ in which the life acquired through training is concentrated. In that sense, to break life is to break our character. Christians are people who spread the fragrance of the character of Christ everywhere.

Paul also said that all of us who have gathered in the church are the fragrance of Christ offered to God (2 Corinthians 2:15). Being full of fragrance means that love for the Lord is openly expressed through character. If you love Christ, you will become like Christ. As you become like Christ, you will naturally have a fragrance in your life. What a wonderful place the church is when people who give off the fragrance of Jesus gather in the church! I hope that the home becomes fragrant because of you, the workplace becomes fragrant because of you, and the neighborhood becomes fragrant because of you. It would be great if the fruit of life we break would fill the whole world with the beautiful fragrance of the Lord's love. Like the old town of Bethany.

 

 

 

 

Posted by speramus

본문: 마태복음 201-16

제목: 불편한 포도원

 

1.

예전에 농촌에서는 농번기가 되면 일할 사람을 구하려고 이 집 저 집 찾아가 물어 봐야 했습니다. 누구네 집이 모 심는다고 하면 동네에서 일 좀 하는 사람들이 일을 도와주죠. 그리고 도움을 받은 농부는 일을 도와준 사람이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집 일을 도우며 자신이 진 빚을 갚습니다. 이것을 품앗이라고 부르죠. 우리 조상들은 품앗이로 서로서로 도와가며 일손이 모자란 것을 메꿨습니다.  지금도 어린 시절 모내기를 할 때 열 명 정도 되는 어른들이 큰 논에서 허리를 숙이고 모를 심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라 붙지 않으면 1.5에이커 넘는 논에 모를 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저야 뭐 모내기 할 때 줄만 잡는 역할이었지만 그 넓은 논이 몇 시간 만에 푸른 벼 모종으로 심겨지는 것을 보면 신기했습니다. 품앗이는 노동으로 갚아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일한 일꾼들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보상은 맛있는 새참과 막걸리였습니다. 아침과 점심 중간에 10시쯤 되면 주인 집 아주머니는 큰 대야나 바구니 한 가득 맛있는 밥과 반찬을 머리에 이고 옵니다. 그리고 논두렁에 비닐 포장을 깔고 다같이 참을 먹습니다. 일꾼들은 ~’ 소리를 연발하며 막걸리를 들이킵니다. 주인이 일꾼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호의가 바로 맛있는 새참이었던 거죠.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에는 품앗이라는 것이 없었나 봅니다. 포도원에 포도 수확철이 되어 일손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일꾼을 찾기 위해 이른 아침 집을 나섰습니다. 몇 사람을 만나 한 데나리온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포도원으로 보냅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이니 적당한 가격이었던 거죠. 그리고 몇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침 9시가 되자 주인은 일꾼이 더 필요했는지 시장으로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시장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아고라’(γορά)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고라는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넓은 광장였습니다. 이곳에서 장도 열리고 정치적인 모임도 가졌습니다.  9시는 지금 우리 시간으로 아침 9시이구요. 어떤 성경에는 헬라어 성경 그대로 3시로   표시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시간 계산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해가 지는 시간인 6시를 0시로 여겼고 하루의 시작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시간을 지금의 시간으로 바꾸려면 6시간을 더해주어야 합니다. 아무튼 주인은 오전 9시에 아고라에 나가 빈둥거리며 있는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며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합니다. 주인은 12시와 오후 3시에도 나가서 빈둥거리는 사람들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죠. 있으면 해가 지는 오후 5시가 되어서 주인은 아고라로 나갑니다. 주인이 서있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종일 이렇게 하는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 일꾼들이 대답합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예전에 인력시장이란 곳이 있었죠. 아침 5 30분경에 나가서 대기하고 있으면 사람들을 골라서 건설현장으로 보내는 곳이었습니다. 하루 하루 막노동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몰려들었죠. 그런데 어떤 날은 일이 없어서 헛탕치고 집에 그냥 돌아가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정말 허무하고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가족들의 생계가 달린 가장이라도 된다면 그런 상황이 정말 난감하죠. 아마도 5시에 아고라에 있던 사람들은 하루 종일 그런 기분으로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시간 후면 해가 지는데 시간에 그들이 일을 찾고 돈을 버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시간에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그들에게 일을 시킨단 말입니까? 그런데 포도원 주인은 그들을 고용했고 저녁까지 시간 됐지만 일할 기회를 것이죠.

 

본문에서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가 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후에 일과를 마치고 품삯을 계산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주인은 청지기에게 시켜서 나중에 사람, 그러니까 오후 5시에 사람부터 아침 일찍 사람 순서로 품삯을 치르게 합니다. 청지기는 오후 5시에 사람들에게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아침 일찍 처음 사람들은 은근히 기대했습니다. ‘우리는 일을 훨씬 많이 했으니 훨씬 많은 돈을 받겠지?’ 그런데 결과는 어땠습니까? 그들에게도 똑같이 데나리온이 주어진 겁니다. 아침 일찍 사람들이 주인에게 투덜거리기 시작합니다. “ 사람들은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하루 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너무 부당한 아닙니까?” 그러자 주인이 사람에게 말합니다. “이보시오, 나는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사람에게 똑같은 돈을 주는 것은 뜻이오. 당신 것이나 챙겨서 돌아가시오.”

 

2.

오늘 날의 상식으로도 주인의 이런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본문은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먼저 본문은 마치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비유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늘 나라는 마치 포도원 주인의 사정과 같다 하면서 포도원 주인의 마음과 사정을 이해할 하늘 나라를 이해할 있다는 암시를 우리에게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절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것이다.”라는 문장은 비유를 마디로 정리해 주는 역할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인의 마음을 먼저 이해해야 하고, 다음에 꼴찌된 자들과 첫째된 자들의 순서가 바뀌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첫째 이들 헬라어로 프로토이Protoi’(those who are ahead) 하고 있구요꼴찌 이들 에스카토이Escatoi’(those who are last)입니다. 그런데 프로토이와 에스카토이가 20장의 바로 앞장 마지막 절인 19 30절에도 나옵니다. “그러나 첫째된 사람들이 꼴찌가 되고, 꼴찌가 사람들이 첫째가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v. 30).” Protoi Escatoi 되고,  Escatoi  Protoi 된다는 순서를 보십시오. 본문 20 16절은 순서가 반대로 도치가 되어 있습니다. 문장의 순서를 바꿔주는 문학장치를 통해 비유의 주제인 순서의 뒤바뀜 표현하는 것입니다. 또한 수미상관(inclusio)라는 샌드위치 기법을 통해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문학적인 장치들을 통해 주제를 나타내곤 합니다. 중요한 것은 본문의 이야기들이 본문과 잇대어 있음을 있다는 거죠.

 

18장에는 하늘 나라에서 누가 큰지에 관한 주제가 먼저 등장합니다. 18 10절에서는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것에 대해 말씀하는데 본문과 이어지는 주제라 있죠. 19장으로 넘어오면서 예수님이 요단강을 건너 유대 지방으로 가셨다는 내용이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여정을 시작하신 것이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는 올라가시는 거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 올라가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대적인 바리새파 사람들이 여러 가지 곤란한 질문으로 예수님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바리새파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부자 청년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부자 청년은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재산 뿐만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것에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죠.

 

본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예수님이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을 언급합니다. 길에서 세배대의 어머니가 자신들의 아들들을 달라고 청탁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자신의 아들들을 으뜸이(프로토이) 되는 자리에 앉게 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에 이은 이야기도 첫째 자리와 자라는 모티브를 사용하여 본문과 일치한 주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부자 청년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신분과 조건 그리고 행실로 하늘 나라에 가장 우선으로 들어갈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었죠. 첫째 자들이란 뜻의 프로토이들은 사회 계급 상으로, 지위로, 권력으로, 경제적으로 모두 앞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태가 복음서를 유대인들 대상으로 것을 이해한다면 프로토이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프로토이들은 자신들이 하늘 나라의 상석에 앉아야만 하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이 뒤집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프로토이와 에스카토이는 언제든 뒤집어질 있다는 거죠. 그러면 뒤집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3.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가지 도구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프로토이와 에스카토이가 어떻게 뒤집어질 있는지 근거를 찾기 위해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첫째는 당시 사회 문화적인 가치와 개념입니다. 예전에 불의한 청지기비유에서 말씀드린 있는 호혜(reciprocity)’ 가치입니다. 호혜란 부족 사회에서 행해지는 물물교환을 배경으로 생긴 것이라 했죠.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경제적인 혜택(favor) 주었을 가난한 자들은 그에게 영예(honor) 돌려주는 방식으로 호혜는 행해졌습니다. 본문에서는 포도원 주인이 찾아간 사람들은 일용직 노동자(toiler)였습니다.

당시에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루 벌이 일이라도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일을 주면서 한 데나리온을 약속한 주인의 행위는 매우 자비가 넘치는 행위였던 거죠. 이 주인의 행위에 대한 일꾼들의 반응은 그에게 감사하고 영예를 돌려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이 주인에게 투덜거렸다는 것은 선을 넘는 몰상식한 행위였습니다.

 

두번째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모티브는 포도원 주인의 계산법입니다. 이 계산 법은 세상의 계산법과는 너무 다르고 이상합니다. 많이 일한 사람이 많이 받고 먼저 온 사람이 더 많이 받는 세상의 계산법이 완전히 무시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계산 법에서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가 2절과 13절에 쓰인 합의하다라는 단어입니다. 헬라어로는 쉼포네오(symponeo)’인데 함께라는 뜻의 (syn)’소리(voice)’라는 뜻의 포네(phone)’가 합쳐진 말입니다. 주인의 계산법은 약속한대로 주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주인의 뜻에 따라 결정된 것입니다. 이 계산법을 통해 우리는 언약(covenant)관계라는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갖고 있는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과 은혜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적인 신실함을 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언약적인 관계에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이 언약관계는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언약적으로 신실하게 행하지 못할 때 나중 된 사람들에 의해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이 언약관계 였습니다.

 

그런데 이 언약관계를 이해하는 핵심 포인트는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의 깊은 이해를 위해 15절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 하였다.” 후하다는 말은 선하다, 착하다라는 뜻을 가진 아가또스 (agathos)’라는 단어입니다. 주인이 베푸는 은혜와 favor를 말합니다. 먼저 된 자들의 마음에는 주인이 후한 것이 걸림돌입니다. 주인이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왜 나중 온 사람들에게 그렇게 잘 해주냐는 겁니다. 그들은 한 데나리온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들인데 왜 잘 해주냐는 거죠. 이런 프로토이들에게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눈에 거슬리오?” 헬라어 성경에서는 너의 눈이 아픈 거(hurtful) 아닌가? 너의 눈이 악하구나(evil).”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제대로 된 눈이 있다면 주인의 마음을 읽을텐데, 그것을 못 읽어 내고 있으니 눈이 악하다는 겁니다. 주인은 자신의 선함에 반하는 프로토이들의 무례함이 불편합니다. 그들의 시선은 주인의 마음에 향해 있지 않고 온통 자기에게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이곳은 불편한 포도원이 되어 버렸습니다. 먼저 된 자들이 다른 이들이 얼마 받았는지에 관심을 끄고 자기가 받아야 할 돈만 받았다면 불평이란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4.

이제 이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 지 우리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늘 나라는 포도원 주인의 마음과 그의 사정과 같습니다. 포도원 주인의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후하고 너그럽고 은혜로운 마음입니다. 가장으로서 자신의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자들을 향해 안타까워 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아고라에서 빈둥빈둥 서 있으면서 신세 한탄만 하는 이들을 안타까이 여겨 자신의 포도원에서 일할 기회를 주고 싶어하는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죠.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늘 나라라고 표현되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마음입니다.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그 나라의 통치 가운데로 들어와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길 바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어떤 사람도 소외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은 태초에 만들어진 포도원이었던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누렸던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누리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이 세상에 이 하나님의 너그러운 마음에서 제외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포도원 주인의 마음이 아고라를 향해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세상을 향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소외되고 난처한 상황에 빠진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는 살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 주님의 마음이 그런 사람들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부자 청년 그리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한 마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지만 그 언약은 주인의 뜻에 의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언제든 그 은혜의 언약 관계에서 소외될 수도 있었던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미 나의 구원은 흔들림 없으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마음과 잇대어질 때에만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자 청년처럼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에만 모든 관심을 쏟는다면 언제든 우리의 구원은 뒤집어질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처럼 종교적인 우월감과 종교적인 실천에서 오는 비교의식이 가득하다면 하나님의 마음과 잇대어지기 너무나 힘들어집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누리고 받고 있는 것들은 당연한 것들인가요? 교회에서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더 많은 헌금을 내는 사람들이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할까요? 나와 함께 포도원에 들어와 있는 이들이 받는 은혜와 내 것을 비교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포도원 바깥에서 신음하고 괴로워 하는 이들을 향해 눈을 돌리십시오. 오늘 본문은 먼저 되고 첫째 된 우리 프로토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일 수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의 너그럽고 후한 마음을 사모하십시오. 그 마음을 나도 갖기를 갈망하십시오. 온통 내가 받아야 할 것이 얼마인지에만 마음이 쏠려 있던 먼저 된 자들이 되지 마십시오. 내가 얼마를 받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충분할만큼 이미 주셨습니다. 최근에 어떤 책을 읽었는데 비교 암, 염려 독이라는 말을 하더라구요. 비교는 우리 내면에 암과 같은 것이고 염려는 독과 같은 것이라는 뜻이죠. 남의 인생과 비교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사십시오. 누가 연봉이 얼마고, 어떤 차를 타고, 몇 스퀘어핏의 집에 살고, 그의 자식들이 어떻게 된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보다 앞서가는 이들과 나를 비교하면 불행해 집니다. 오히려 나보다 뒤쳐져 있는 이들, 나보다 나중 된 사람들에게 마음을 쏟고 그들을 돌보는 것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입니다. 하늘 나라는 그렇습니다. 먼저 된 이들이 아니라 나중 된 이들을 돌보면서 행복해지는 나라입니다. 포도원 주인의 마음은 먼저 된 이들이 아니라 나중 된 이들에게 온통 쏠려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5.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소설이 한국에서 매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작은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그 소설의 주인공 염영숙 여사는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으로 은퇴를 한 70대 초반의 노파입니다. 그녀는 동네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오고 있는 기독교인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전반부에 그녀는 부산으로 가는 KTX 열차 안에서 자신의 지갑과 중요한 물품이 들어 있는 파우치를 분실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잠시 후 02로 시작되는 서울 지역번호의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옵니다. 말을 더듬는 수상한 상대로부터 염영숙씨냐는 질문을 받게 되고 그가 서울역에서 자신의 파우치를 습득한 것을 알게 됩니다. 독고(Dokgo)라는 50대 초반의 곰처럼 큰 체구의 노숙자를 통해 지갑을 되찾게 된 영숙씨는 그에게 보답하고 싶어합니다.  배고픈 그를 위해 청파동에 운영하는 자신의 작은 편의점으로 그를 데리고 가 도시락세트를 먹입니다. 그리고 언제든 배고프면 와서 도시락을 먹으라고 호의를 베풉니다. 이야기는 흘러 흘러 독고라는 남자가 영숙씨의 편의점 야간 알바로 취업하게 됩니다. 이후에 독고씨를 거둬들인 영숙씨의 호의가 어떻게 나비효과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지게 됩니다.

 

약간 스포일러 같아 조심스럽긴 하지만 독고는 실은 압구정역에서 꾀나 큰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담당하던 페이 닥터였습니다. 의사의 삶도 망가지면 노숙자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소설에서 자세히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의 특성상 의사분들이 많이 있기에 전직의사로서 독고의 행동에 주목해 보았습니다. 그는 어떤 충격적인 일로 인해 알콜 중독에 빠집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들을 몽땅 잃어버리죠. 편의점 알바를 통해 그는 조금식 기억을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편의점에 드나드는 많은 이들의 삶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하죠. 그의 선행을 통해 그가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았던 영숙의 호의에서 시작된 나비효과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습니다. 사회에서 아웃사이드로 몰린 이들이 이 불편한 편의점을 통해 새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큰 감동을 줍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염영숙 집사님인지 권사님인지 그분이 마치 포도원 주인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그녀는 교사 연금만으로도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굳이 편의점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기로 합니다. 그 일자리에 기대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매출이 적자인 편의점을 굳이 끌고 온 것이었죠. 그러나 그 불편한 편의점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새 힘을 얻게 됩니다. 독고는 또 다른 포도원 주인이 되어 편의점을 들락날락하는 소외된 인생들을 어루만지기 시작합니다. 실재로 독고의 관심을 통해 많은 이들이 그들의 삶에 답을 찾게 되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된다는 따뜻한 소설입니다.

 

저는 교회가 이런 불편한 편의점 같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희망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이들에게 교회는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아직 그대들의 인생은 살만하고 가치 있다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자기 인생이 오후 세 시나, 다섯 시라도 된 것처럼 다 끝났구나!’라고 포기해버린 이들에게 아직 포도원 문은 열려 있고 희망은 있다는 포도원 주인의 마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다하나 교회는 불편한 편의점처럼 없는 것이 많습니다. 교육부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조직도 엉성합니다. 여러 모로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많은 불편한 편의점 같을지라도 이곳에 와서 사람들이 쉼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된다면 그것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포도원 주인의 마음으로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회에서 뒷쳐져 힘겨워 하는 이들이 누군지 살피며 그들을 따뜻하게 돌봐주는 여러분 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과 직장은 주님이 주신 아고라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을 하나님의 포도원으로 인도하는 포도원 주인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예수님은 그의 수난이 시작되기 직전 어떤 이들에게는 좀 불편할 수도 있는 포도원 비유를 드시며 그가 걸어갈 길을 미리 제시해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라 나중 된 이들을 위해 우리 삶을 드리는 귀한 삶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Sermon Title: Inconvenient Vineyard                                                                               

Scripture: Matthew 20:1-16

Translated by Melody Lee

 

1.

In the past, in rural areas, during the farmers’ busiest season, people had to go door to door and ask for workers. If a farmer was planting rice seedlings, some people in the neighborhood would help with the work. In exchange, the farmer paid off his debt to them by helping them around the house or with other needs they may have. This was called an exchange of labor; ‘pumasi’. Our ancestors made up for the lack of resources by helping each other through pumasi. Even now, I vividly recall watching the sight of about 10 adults bending down and planting rice in a large field. It would be a difficult task to plant rice over 1.5 acres without the teamwork of so many people. As a child, my only task was to hold rope while the others planted the rice, but it was amazing to see that vast rice field planted with green rice seedlings in a few hours. To make up for this hard labor, the farmer would provide a midmorning snack and makgeolli to the workers. Midmorning, between breakfast and lunch around 10, the farmer’s wife would bring a large basin filled with delicious food and side dishes atop of her head. She’d lay a plastic mat on the edge of the rice field and the workers would eat and rest together. Workers would sip makgeolli while shouting “Kyaa~” in satisfaction. The greatest favor the farmer could provide the workers was a delicious midmorning meal.

 

Looking at the scripture, it seems that there was no such thing as ‘pumasi’ in Palestine during the time of Jesus. It seems that there was a lack of hands in the vineyard during the grape harvest season. The owner of the vineyard left early in the morning to find workers. He met some people and sent them to the vineyard with a promise to give them a denarius. One denarius was a day's wages for workers at the time, so it was a reasonable price. And hours passed. At 9 o'clock in the morning, the owner decided to go to the market to see if there were more workers. The Greek word translated market here is 'agora' (γορά). In ancient Greece, the agora was a large square located in the center of a city. Markets were held here and political meetings were held. 9 o'clock in the scripture is 9 o'clock in the morning our time. In some Bibles, such as the Greek bible, it is translated as three o'clock. This is because it followed the Jewish reckoning of time. Jews considered the time when the sun went down, 6 o'clock(pm), as 0 o'clock and the beginning of the day. So, to change the Jewish time to the current time, we need to add 6 hours. Anyway, the owner goes out to the agora at 9:00 am and finds people standing idle. The owner tells them he would pay them a fair wage, and he sent them to work in the vineyard. The owner went out at 12:00 and 3:00 p.m. and found idle people to work. That wasn’t his last time though. Soon after, the owner goes out to the agora again at 5:00 PM, right before the sun is about to set. He asks the people standing around. “Are you sitting around all day doing nothing?” The workers respond. “We’re doing this because no one is hiring us for work.”

 

In Korea, there used to be a place called the “labor market”. People would head over there around 5:30 in the morning, and they would wait around to pick up jobs at construction sites. Hard working people flocked there every day. But there were also days when there was no work, and those people had to go home empty handed. Those days would be disappointing and crushing. If you are the breadwinner of your family, that situation is really embarrassing and may feel hopeless. Perhaps the people standing in the agora at 5 o'clock were lamenting their lives in such a mood all day long. The sun was setting in an hour, and it was impossible for them to find work and make money at that time. What kind of stupid person would hire them to work at that hour? But the owner of the vineyard hired them and gave them a chance to work, even though there were only a few hours remaining until evening.

 

Up to this point in the scripture, it is a reasonable story. However, soon after that, the story turns unreasonable  when calculating the wages of the workers at the end of the workday. The owner instructs the steward to pay the wages in the order of those who came last, that is, those who arrived at 5:00 PM and those who arrived early in the morning last. The steward gave a denarius to those who came at 5:00 PM. The first people who came early in the morning secretly looked forward to their wages. ‘We did a lot more work, so we should get paid a lot more.’ But what was the result? The same denarius was given to them. The workers who arrived early in the morning started complaining to the owner. “How can you treat us the same as those who only worked an hour? Isn’t that too unfair when we’ve been working all day?” Then the master said to one of them. “Look, I am not treating you unfairly. Didn't you agree with me to work for a denarius? It is my will to give this man the same money. Take yours and go home.”

 

2.

Even using today's common sense, we cannot explain the owner's behavior. What is the scripture trying to tell us? First, the scripture begins with the word 'is like(Greek-Homoia)' and tells us that it is a parable.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landowner who went out early in the morning to hire workers for his vineyard,” hinting to us that we can understand the kingdom of heaven once we understand the heart and circumstances of the owner of the vineyard. And the last sentence, “So the last will be first, and the first will be last” serves to summarize this parable in one sentence. Therefore, in order to understand the text, we must first understand the mind of the owner, and then we must know what it means to change the order of those who were last and those who were first.

 

In the main text, ‘the first’ is called ‘Protoi’ (those who are ahead) in Greek, and ‘those who came last’ is ‘Escatoi’ (those who are last). However, ‘Protoi’ and ‘Escatoi’ also appear in chapter 19 verse 30, the last verse before chapter 20. “But many who are first will be last, and many who are last will be first” (Matthew 19:30). Look at the order in which ‘Protoi’ become ‘Escatoi’ and ‘Escatoi’ become ‘Protoi’. In Matthew 20:16, this order is reversed. Through a literary device that changes the order of sentences, it is to express the theme of this parable, the ‘reversal of the order’. In the Bible, the theme is often expressed through these literary devices. The important thing to know is that the stories in front of today’s scripture are connected to the main text.

 

In Matthew chapter 18, the subject of who is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comes up first. In Matthew 18:10, it talks about not despising the little ones, which is a theme that continues with the main text. Moving on to Matthew chapter 19, the story of Jesus crossing the Jordan River and going to Judea begins. Thus, Jesus started his journey to Jerusalem in earnest. Why was Jesus going to Jerusalem? He is heading there to suffer and bear the cross. At this time, Jesus' enemies, the Pharisees, begin to harass Jesus with many difficult questions. The character that appears with the Pharisees is a rich young man. As we well know, a rich young man lacks nothing. He is a person who believes that he lacks nothing in his personal wealth and his ability to keep the law.

 

What follows after today’s scripture refers to the way Jesus went up to Jerusalem in earnest. On the road, the mother of Zebedae asks him to take good care of her sons. She asked that her sons be placed in the chief (Protoi) position. So, you can see that the story following today’s scripture carries the motif of ‘first place’.

 

The Pharisees and the rich young man appeared to understand the kingdom of God well. They were mistaken as if they could enter the kingdom of heaven first with their status, conditions, and conduct. ‘Protoi’, which means first-born, were people who thought they were superior in terms of social class, status, power, and economy. The ‘Protoi’ were the ones who thought it was their right to sit on the throne of heaven. But Jesus is saying that it can be reversed. ‘Protoi’ and ‘Escatoi’ can be reversed at any time. So what is the basis for reversing ‘Protoi’ and ‘Escatoi’?

 

3.

To understand today's scripture and the rationale of how ‘Protoi’ and ‘Escatoi’ can be reversed, we need to understand a few concepts.

 

First, is the social and cultural values ​​and concepts of the time. This is the value of ‘reciprocity’ that I have mentioned before in the parable of the ‘unjust steward’. Reciprocity was said to have arisen against the backdrop of barter in tribal societies. If there is something to give, there must be something to receive. Reciprocity was done in such a way that when socially and economically wealthy people gave economic favors to the poor, the poor returned honor to them. In today’s scripture, the workers in the vineyard were daily laborers.

 

They were people at the bottom of society at the time. Even a day's work was something they were grateful for. The owner who promised ‘one denarius’ while giving them work was a very merciful act. The reaction of the workers to this vineyard owner's conduct should be to thank and honor him. However, instead these workers complained to the owner, and those actions crossed the line and made no sense.

 

Second, to understand today’s scripture we need to understand the reasoning of the vineyard owner’s method of payment. This payment calculation completely ignores our common knowledge, that those who work the most or those who arrive to work earliest get paid the most. The important word we see used in this payment is the word “agree” written in verse 2 and 13. The Greek word is ‘Symphoneo,’ which is a combination of “syn,” meaning “together,” and “phone,” meaning “voice.” It means the owner’s payment will be given as promised and that promise is determined according to the will of the owner. Through this promise of payment, we can think of the concept of 'covenant relationship'. The Jews were a nation that had a covenant relationship with God. For God's one-sided love and grace, the Israelites had to reveal covenantal faithfulness through their lives. The Jews were the first to enter into a covenant relationship with God. However, this covenant relationship could be overturned at any time. It was the covenant relationship that could be overturned by those who came later when they did not act faithfully in a covenantal way.

 

However, the key point to understanding this covenant relationship is to understand the heart of the owner. It is very important to grasp the meaning of verse 15 for a deep understanding of the scripture. “Don’t I have the right to do what I want with my own money? Or are you envious because I am generous?” The word generous comes from the word “Agathos(γαθς),” which means “good.” It refers to the grace and favor bestowed by the vineyard owner. In the minds of those workers who came first, the owner's generosity is unreasonable. They cannot understand why the owner would be so generous to those who came later. These workers thought those late arrivals don’t deserve a denarius, so why is the vineyard owner so generous? To these ‘Protoi’, the master says: “Are you envious because I am generous?” The Greek Bible says, “Don’t your eyes hurt?” which is a way to say, “Your eyes are evil”.  So, if these workers had good intentions, they would be able to understand the owner's intention, but since they cannot read it, they have evil intentions. The master is uncomfortable with the rudeness of the ‘Protoi’ against his goodness. Because their intentions could not see their owner’s intentions and could only focus on themselves. If those who came first had paid no attention to how much others received and only received what they deserved, there would have been no complaints.

 

4.

Now we can begin to understand today’s scripture.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mindset and circumstances of the vineyard owner. What is the mindset of the vineyard owner? His mindset is generous and full of grace. The owner is aware of those workers in need who are the head of their household and who take on the responsibility for providing for their families. He feels pity for those workers who are standing idle in the ‘agora’ lamenting their lack of work, and through his generous intentions provides them an opportunity to work in his vineyard. This is the mindset of God. It is the intention that every person in the world lives in the kingdom of God, which is expressed as the kingdom of heaven. We must understand the mindset of our Heavenly Father who wants no one to be left behind and for all to experience God’s grace in his kingdom. God, the owner of the vineyard, longs for all people in the world to enjoy the peaceful and beautiful life that Adam and Eve enjoyed in Eden, the vineyard that was created in the beginning. There is no one in this world who is excluded from this generous heart of God.

 

Just like the vineyard owner's mindset toward the ‘agora’, our minds must also look toward the world. We must look for those who are marginalized and are struggling in the world. Because the heart of our Lord opens towards such people. The Pharisees, the rich young man, and the Jewish people did not deeply understand God's good intentions. They believed that the covenant with God would not change, but the covenant could be changed at any time by the will of the owner. They did not know that those who did not understand the owner’s heart could always be removed from the covenant relationship of grace.

 

Reflect upon yourself. Is your salvation already unshakable, such that you have nothing to worry about? Only when we connect with God's good intentions can we gain true peace. If, like the rich young man, we focus all our attention on fulfilling our own desires, our salvation can be overturned at any time. If you are filled with a sense of religious superiority and a sense of comparison that comes from religious practice like the Pharisees, it will be very difficult to get in touch with God's good intentions. What made me good enough to become a pastor? What made me stand out from other people to become an official? There is nothing to compare. Do not pay attention to those who have entered the vineyard with you. Rather, turn your eyes to those who groan and suffer outside the vineyard. Today's text can be God's word of warning to our ‘Protoi’, who are first and foremost. Adore the generosity of the owner of the vineyard and long to have that mindset. Don't be the ones who came first, whose mindset is focused only on how much they deserve. No matter how much you get, God has already given you enough. I read a book recently and it used the terms ‘comparison cancer’ or ‘anxiety poison’. Comparison is like cancer inside us, and worry is like poison. There is no reason to compare your life to anyone else's. Live your life. Who cares what salary they have, what car they drive, how many square feet they live in, and how their children have grown up? Comparing ourselves to those who are ahead of us makes us unhappy. Rather, committing our mindset to those who are behind us, who come later than us, and taking care of them is the shortcut to happiness.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at. It is a kingdom where people become happy by taking care of those who come later, not those who come first. We must remember that the heart of the owner of the vineyard is not for those who come first, but for those who come last.

 

5.

A novel called <Inconvenient Convenience Store> became very popular in Korea. This novel is set in a small convenience store in Cheongpa-dong, Yongsan-gu, Seoul. Yeom Yeongsook, the main character of the novel, is an old woman in her early 70s who retired as a high school history teacher. She is also a Christian who has been working hard in her faith life in her local church. In the first half of her novel, she realizes that she has lost her wallet and pouch containing important items on the KTX train to Busan. And after a while, a call comes from an unfamiliar number in Seoul area code starting with 02. She is asked if she is Yeom Youngsook by her suspicious counterpart, who stutters, and she learns that he acquired her pouch at her Seoul station. She gets her wallet back through a homeless man in his early 50s named Dokgo, and Youngsook wants to repay him. She takes him to her own small convenience store, which she runs in Cheongpa-dong, to feed him with her lunch box. She then tells him to come have a lunch box whenever he’s hungry. As the story flows, the man named Dokgo gets a night part-time job at Youngsook's convenience store. Afterwards, interesting stories unfold about how Youngsook's generosity, who helped out Dokgo, becomes a butterfly effect and has a good influence on many people.

 

It's a little bit of a spoiler, but Dokgo is actually a doctor in charge of surgery at a big plastic surgery clinic in Apgujeong Station. He describes in detail in the novel how a doctor can become homeless if his life is also ruined. Due to the nature of our church, there are many doctors, so I paid attention to Dokgo's behavior as a former doctor. He becomes alcoholic due to some traumatic event. And he loses all his memories. Through his part-time job at a convenience store, he begins to regain some memories. And he starts to have a good influence on the lives of many people who come and go to the convenience store. The butterfly effect that began with the goodwill of Youngsook, who knew that he was a good person through his good deeds, was truly enormous. The story of people who have been pushed to the outside in society and find new hope through this uncomfortable convenience store is very moving.

 

While reading this novel, Yeom Yeongsook seemed like the owner of a vineyard. She was someone who could live well on her teacher's pension, but decided to make her job through her convenience store. She dared to run a convenience store with poor sales for people who are struggling to live on the job. However, many people gain new strength through that uncomfortable convenience store. Dokgo becomes another owner of a vineyard and begins to take care of the marginalized people who walk in and out of the convenience store. In fact, it is a heartwarming novel where many people find answers to their lives through Dokgo's interest and gain the courage to stand up again.

 

I wondered if the church should be like this inconvenient convenience store. The church must reach out to those who have lost all hope and are at risk of falling into hell. We need to tell them that they are valued and  that their lives are worth living. We must convey the mindset of the vineyard owner to those outside who have given up at three or five in the afternoon, letting them know the vineyard door is still open and there is still hope. Like the inconvenient convenience store, there are many things that One Heart Church does not have. The education department is not properly equipped and the organization is sloppy. Even if our church is like an inconvenient convenience store with many shortcomings, if people come here to rest and have hope, what could be more precious than that? I hope you all live with the heart of the owner of the vineyard in your own place of life. I hope you will look out for those who are left behind in this society and take care of them warmly. Right before his Passion began, Jesus told the parable of the vineyard, which was a little uncomfortable for some, and showed them the way they should walk. May we also walk in the steps of our Lord and find a meaningful life in serving those who are the ‘Escatoi’ of the vineyard.

 

 

Posted by speramus

Main text: Philippians 2:6-11

Title: Self-denial and the kingdom of God / translated by Myung-Ha Kim

 

1. 

Recently, a documentary called “In the name of God” was uploaded on Netflix and became a hot topic. This is a story about the big heresies in Korea's modern history. It is a documentary that reports on Jung Myeong-Seok of JMS, Sun-Ja Park of Five Oceans, and Jae-Rok Lee of Manmin Central Church. People like Jung Myeong-Seok, Park Soon-ja, and Lee Jae-rok each claimed they were the messiah, and that people could gain salvation through their name. They used the offerings and property assets, and even the lives of the followers to fill their stomachs. Rather than being a group, they were an interest group created to satisfy their own desires. Why did these people appear? There may be many reasons, but I personally think the biggest factor is having the wrong view of salvation. The characteristics of these pseudo-cult leaders spoke sweetly as if they had received salvation as a monopoly. ‘If you believe in me, you are guaranteed to go to heaven. If you give all your possessions to me, you can go straight to heaven.’ This was the logic. But that sweet lie made people fall for it.

 

Do established churches in Korea not have this problem? Korean Christians yearn for the kingdom of heaven where they die, and they are very interested in personal salvation. Korean Christians sometimes thought of pastors as people who could secure their tickets to heaven. Therefore, it has been true that even if the pastor has moral flaws to some extent, followers had no problem covering up for the pastor. Even if the pastor's son embezzled church money or the pastor had some scandals with women, people turned a blind eye to it, saying that it wasn’t that significant. Pastors have used this to pretend that they have received the monopoly of salvation. The temple system in the days of Jesus is like that of the high priests who said the forgiveness of sins and salvation is accomplished only in the temple. Jesus said to those who were paralyzed or with withered hands, “I have forgiven your sins. Live freely now.” He has released the forgiveness of sins and salvation that were locked up in the temple. Monopoly is a word that is fitting to be used for commodities and crops such as tobacco or ginseng, but it is not appropriate to use it for salvation. Some pastors showed a tendency to distort and interpret the Bible to secure their vested interests as special occupational groups with the monopoly of salvation. Of course, I know it's hard to generalize about all pastors. There are many pastors who live such pure and beautiful lives. However, we cannot deny the fact that there is a problem with the Korean church's view of salvation. In the Korean church, ordinary believers still understand salvation as an escape from this world. We understand salvation by escaping with Jesus to the world of the other side, somewhere in Andromeda. With the mindset of, “This sinful world is not my home,” believers often dream of the vague kingdom of God that we all go to someday, and heresy and pseudo-science are digging into this point.

 

However, the expressions describing the world after death in the Bible are less than 1%. Rather, the Bible says that salvation is to renew the earth. Heaven is not going but coming and arriving. This is the content of the gospel that Jesus cried out in Mark 1:15. "The time is fulfilled.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It expresses that the kingdom of God has come close to us (Greek-γγζωEnggizo, come near). Jesus himself proclaimed that it was the gospel that came to establish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The state of salvation is when all things become new, and God's reign prevails over the earth. Salvation is the state of true shalom, in which all creatures are reconciled with God, and greed and sin disappear. Salvation is not about getting a ticket to heaven where you don't know where you are. I think the misunderstanding that led to this wrong view of salvation began with a misunderstanding of justification by faith. “Justification by faith” means that salvation is obtained through faith. However, there is a wrong tendency in Korean churches to understand that the subject of this 'faith' is obtained with my faith. When we say that we are justified by faith, the subject of faith is not me, but Jesus Christ. Righteousness is given to me through the atonement of Jesus Christ. When we accept Jesus as our savior, we are clothed with the righteousness of Christ. It is not that we are justified by our faith, but that we rest on the righteousness of Christ. The door of salvation opens in our lives as we lean on the faithfulness of Jesus Christ. It is not a one-time event that you will go to heaven by accepting Jesus as your Savior. The door to salvation has only been opened by accepting Jesus, but after that, salvation must be completed.

2.

In that sense, I understand salvation as “coming into the reign of God.” In this world, two forces are sharply opposed. It is the power of God and the power of darkness. Receiving salvation is a change of status. It is a change of citizenship moving from a kingdom ruled by Satan to a kingdom ruled by God. What makes this change of status possible is the atonement of Jesus Christ on the cross. We become children of God by putting on the righteousness accomplished by Jesus Christ. This is the beginning, not the ending. Being a child of God means accepting God's reign and coming into God's reign.

 

In a place invisible to our eyes, the reigns of God and Satan are sharply opposed. Ephesians 6:12 describes Satan's rulers as "rulers, authorities, the power of this dark world." In the old Bible, it was expressed as “principalities, powers, the rulers of the darkness of this world.” These are terms taken from the feudal order. Feudal society refers to a system in which lords govern their lands autonomously under a king. The land governed by a feudal lord is sometimes referred to as a feudal tenure or a duchy. The person in charge of the dukedom was called a duke. Understanding Satan's reign as principality, authority, and ruler came from the worldview that understood the kingdom of God as an extension of the feudal system.

 

By such a worldview, Jude 6 records how the rulers of darkness were born. “And I remind you of the angels who did not stay within the limits of authority God gave them but left the place where they belonged. God has kept them securely chained in prisons of darkness, waiting for the great day of judgment.” This verse is based on the contents of the book of Enoch, which is an apocryphal book. God gives Michael, Rafael, and Lucifer each a third of the kingdom of God. So, God's created world was divided into the feudal territory of these three angels. However, one-third of the angels led by Lucifer rebelled and rejected God's rule. The angels who rebelled with Lucifer are called principalities, authorities, and rulers of the world.

 

The forces that are within the territory of God the King, but not under God's rule, are called principalities, authorities, and rulers. They have ruled the world very systematically. One of the purposes of Jesus' coming to this earth is to subdue these groups who reject God's reign. Satan, the devil, ghosts, principalities, and authorities, these expressions are spiritual realities that exist. Just looking at the work of Jesus, Satan, and demons appear a lot. Jesus was tested by Satan in the wilderness. Mark 1:34 ‘Jesus healed many people who were sick with various diseases, and he cast out many demons. But because the demons knew who he was, he did not allow them to speak.’ The Bible tells us that the demons knew who Jesus was. “Go away! Why are you interfering with us, Jesus of Nazareth? Have you come to destroy us? I know who you are—the Holy One of God!” (Luke 4:34)." Jesus did not destroy them, but only drove them out. They are doomed to annihilation on the last day. The process of restoring God's territory that was taken away by the forces of darkness is the construction and expansion of heaven. Jesus came to this earth to start a fierce battle to restore God's territory that had been taken away by Satan.

 

3.

A question arises then, how will the kingdom of God expand? This text is an important word that tells us the principle of how Jesus' reign is expanding on this earth. Today’s main text shows Jesus' self-emptying and lowliness. Jesus is God who shares the same essence as God. However, Jesus, who shared the essence of God, left the heavenly throne, and came to put on a human body. He had to put on a human body to save humans. Jesus obeyed Heavenly Father to the point of death, and death on the cross was the result. The death on the cross revealed the extreme self-denying and humbleness of Jesus.

 

Verses 8 and 9 teach us a very important principle. “He humbled himself in obedience to God and died a criminal’s death on a cross. Therefore, God elevated him to the place of highest honor and gave him the name above all other names.” God speaks of the principle that He will exalt those who obey Him even unto death on the cross. In other words, it is the principle of exalting those who have lowered themselves a lot. The kingdom of darkness, that is, the kingdom of Satan, is the opposite of this. It is a nation that seeks to expand in a way that exalts itself, disobeys, and rebels, revealing its own name, not the glory of God. Jesus humbles himself endlessly and empties himself endlessly. By doing so, God rather puts Jesus in the highest place in the world. He exalted Jesus by placing him at the right hand of God's throne. Jesus did not exalt himself. He was raised by God. But Satan's method is self-exaltation. It's a way to elevate yourself. It's the opposite of God's principle.

 

Adam's failure began with trying to become like God himself. Like God, he tried to judge good and evil for himself. Furthermore, Adam and Eve crossed the line to have divine immortality. A slightly more advanced way of this is the way of the Tower of Babel in Genesis 11. Then they said, “Come, let’s build a great city for ourselves with a tower that reaches into the sky. This will make us famous and keep us from being scattered all over the world.” (v. 4). It is to expand in a way that raises oneself and raises one's own name. It is completely contrary to the way of God's kingdom. What did God promise to Abraham, who was chosen as an alternative to the Tower of Babel? “I will make you a great nation. I will make your name big”. Abraham had to give up even deciding where to go and follow God in obedience. In the sermon last week, he had to show even the extreme obedience of giving up his own son. His way of emptying himself and following God is a characteristic of God's kingdom compared to Satan's. This principle of lowering oneself and exalting those who obey is a very important principle in the kingdom of God. Jesus is the representative model of this principle.

 

Look at verses 10-11 of the text.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v. 10). All beings in these three realms will kneel before the name of Jesus. First, heaven is the realm where the “principalities, powers, and rulers of this world of darkness,” are located. The kingdom of Satan, which holds the power of death and rules this world, will eventually perish and kneel before Jesus. Colossians 2:15 describes this part like this: “
In this way, he disarmed the spiritual rulers and authorities. He shamed them publicly by his victory over them on the cross.”

 

The people on earth represent all the nations of the world. Those under the earth mean the souls of the people who have already died. In 1 Peter 3, it is said that after Jesus died on the cross and was resurrected, he went to the underworld (Sheol, Hades). He descended to proclaim the gospel to dead souls. There is a deleted part in the Korean language Apostles' Creed, but it is the contents of Jesus going down to Sheol after being buried. Those under the earth mean the dead. What do all beings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kneel before the name of Jesus and confess? They confess, “Christ is Lord,” and glorify God. The Lord is 'Kurios', which was the title of the emperor of Rome. So, all confess that the Lord is the Ruler. It is an acknowledgment of the sovereignty of the Lord. It expresses the state in which all the realms are under God's rule by restoring the territory God had given away to Satan.

 

4.

I have explained the way God's reign expands. It is a way of nailing yourself to the cross and denying yourself. The kingdom of God expands in such a way as to increase the number of people who submit to the name of Jesus by lowering oneself, humility, and destroying the Tower of Babel of vain desires in the name of Jesus. The church is the body of Christ that extends God's reign on earth. To do so, what the church needs to secure is potential energy. Falling from above has energy. Because of the law of universal gravitation, the formula for the potential energy of gravity is MgH. A falling object develops a force as it falls at 9.8 m/S2. The way to subdue evil spirits is to have high potential energy.

 

Colossians 3:1-2 explains this principle this way: “Since you have been raised to new life with Christ, set your sights on the realities of heaven, where Christ sits in the place of honor at God’s right hand. Think about the things of heaven, not the things of earth (Colossians 3:1-2).” What does it mean to seek the things above? It means to pay all attention to the expansion of Jesus’s reign in this world. The way we subdue Satan is to secure high spiritual potential energy. The way to subdue the spirits that work among the sons of disobedience is to follow the way of Jesus, the son of obedience. Jesus' method, as explained earlier, is the method of completely denying myself and obeying God's will. This is because God exalts those who obey and humble themselves even to the point of carrying the cross. As Jesus Christ showed us, we must have the high spiritual energy to overcome Satan. We must raise the altitude of holiness, love, and righteousness. The prayers you pray without securing a spiritual height are powerless. Would Satan be alerted by a person who prays yet lives a life indulged in sin? When you long for a more holy life, your prayers will have power and your words will have power. We must practice the extreme love shown to us in the Sermon on the Mount. You must give your right cheek to the one who strikes you on the left cheek, go 10 miles with the one who asked to go 5 miles with, and you must practice a high degree of love by giving even your coat to those who ask for your shirt. The words of a person with high spiritual heights have power, and their actions bear fruit.

For our life to be meaningful life, use it to further the reign of Christ to the whole world. Again, to seek the things above means to give all your attention to extending the dominion of Christ. When we are buried in our busy lives, we often forget the reality we are in. We are living in the middle of a spiritual battlefield right now. We must struggle to regain the territory of God that has been taken away by principalities, powers, and rulers of this world of darkness. Jesus taught us the art of that fight. We gain strength when we secure a high degree of obedience, high purity of love, extreme righteousness, and, thus, a pure and holy life.

4.

To summarize, today's message can be said to be about Christian metaphysics. On the third Sunday of Lent, we need to draw a bigger picture of why Jesus Christ came to this earth. Jesus did not carry the cross simply to save each of us and take us to heaven. God does not stop at saving us, making us citizens of God's kingdom, and changing our status as God's children. Expanding the kingdom of God through us is His big picture. We are in the midst of a spiritual battleground. We must fight against the trend of the world that does not give glory to God. To do so, you must pursue the things above. Thinking of the expansion of God's reign, we must maintain a higher spiritual altitude. We must live more holily, live more lovingly, and live more righteously. The only way to secure spiritual altitude is to go low even further. Because God exalts those who are humbled. Lent is a period to look back on ourselves and reflect on the lives we have lived without finding the things above. It is time to reflect on the life I have lived following my desires like the children of darkness and to reorient my life in God's great vision. I hope you realize this amazing secret of God's kingdom that exalts the lowly. I hope that the fruits of humility will be borne in your daily life. Lastly, I pray in the name of the Lord that through our lives, God would expand his beautiful kingdom wherever we may be.

Posted by speramus

본문: 창세기 1816-19

제목: 의와 공도의 하나님 나라

 

1.

오늘은 교회 켈린더로는 산상변모주일(Transfiguration of Jesus)인데 사순절 직전에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산상 변모(Transfiguration on the mountain)란 예수님께서 수난을 받으시기 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기도를 하러 산에 가셨을 때 변화된 사건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그의 얼굴의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하얗게 빛이 났었죠(9:29). 베드로와 두 제자는 기도 안하고 졸고 있다가 깨어나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유난히 빛난 모습으로 구약의 유명한 인물 두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죠. 그 두 사람은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교회력에서 산상변모 주일이 사순절 바로 앞에 있는 이유는 변화산 사건을 기점으로 예수님이 수난 받으실 거라는 걸 말하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 앞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을까요? 모세와 엘리야는 당시에 구약 성경으로 이해되던 모세오경과 예언서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주 말씀 드렸던 모세오경인 토라(Torah), 그리고 예언서인 느비임(Neviim) 을 대표하는 사람 둘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성경 속에서 모세나 엘리야 같은 사람에 의해 그렇게 에코잉 되던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모세가 이끌었던 출애굽과 예언자들이 노력했던 출애굽 사건의 재현이 이제 예수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죠.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되기 전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음성이 들려진 겁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할 때 이미 하늘에서 이와 동일한 음성이 들렸었죠. 이제 예수님이 모세와 예언자들이 예언한 그 구원의 사건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시기 직전에 하나님은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계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가복음 931절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31절은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나눈 대화의 주제가 나옵니다.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개역성경에서는 떠나가심별세로 번역했고, 영어성경에서도departure 또는 decease’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Exodus’에 대해 말하였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완성해야 할 일이 exodus, 그러니까 출애굽이라는 말입니다. 모세 시절 출애굽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누구의 희생 덕이었습니까? 출애굽 당시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지고 저주가 넘어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를 면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집트로부터 이끌림을 받아 새로운 언약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이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완성하실 일이 십자가 희생인데 그것은 그의 언약백성들을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희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9절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고백했죠.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구요. 예수님은 십자가 희생을 통해 빛의 자녀들을 세계 만민을 위한 제사장 역할을 위하여 이끌어 낼 것임을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많은 이들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게 되는 겁니다. 이 놀라운 진실을 구약성경의 대표적인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증명해 주고 있는 겁니다.

 

2.

여러분 예수님은 뜬금없이 이 세상에 등장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여러 이야기들 속에서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진행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계속 반복되어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의지가 마침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것입니다.

구약에서 계속 echoing 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를 도려 내버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큰 산봉우리에서 아브라함이 소리를 지르니까 저 멀리 있는 모세에게서 똑같은 소리가 울렸습니다(Echoing). 그 모세의 소리가 이스라엘에게 울리고 세례 요한에게 울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모든 에코를 합하여 그분의 소리를 내십니다. 쉽게 말해서 구약성경에서 누적되어 왔던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와 이야기들에 대한 이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을 읽어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구원과 복음을 이해하는 깊이가 달라지니까요. 예를 들어, 소설 레 미제라블이총 다섯 권인데, 4권부터 읽는다 하면 장발장이란 인물이 원래 이렇게 착한 인물이었던 걸로 착각할 수 있겠죠? 은촛대와 은접시들을 훔친 장발장을 미리엘 주교가 무한한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안은 이야기를 빼 먹으면 안됩니다. 장발장이 어떻게 사랑의 힘으로 극적으로 회심했는지를 1권에서 읽어야만 나머지 책에서 펼쳐지는 그의 선행의 의미들이 이해 되어지는 겁니다.

 

3.

아브라함에게 울려 퍼졌던 구원의 메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오늘 본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이야기 중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앞으로 구약 성경에서 반복되어 에코잉될 하나님이 만들어 가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통해 만들어 가실 하나님 나라의 실체와 본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이 외침이 예수님에게서 동일하게 에코잉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어떤 세 명의 사람의 방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세 사람은 실은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소돔이라는 도시에서 들려지는 부르짖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실사하기 위해 왔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들을 정성스럽게 대접합니다. 대접을 잘 받은 그들은 사라가 내년 이맘 때 남자 아이를 출산하게 될 것이라고 축복해 줍니다. 24년 동안 약속을 받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터러 사라는 그 말을 듣고 비웃어 버립니다. 이미 그들은 자신들의 종으로부터 사내아이를 낳아 대를 잇고자 노력했지만, 하나님은 사라의 태로부터 후손이 나올 것을 거듭 확인해 주셨었죠.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번 약속을 확인 받았지만 그들에겐 세월이 하나님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사라의 잉태에 대한 기쁜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세 사람을 배웅합니다. 그들을 배웅하는 길에 하나님의 음성이 그들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전달되는데 그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18절의 말씀은 창세기 121-3절의 반복처럼 보입니다. 핵심은 아브라함을 선택하고 그의 후손을 선택하신 이유는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전제되는 복이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순종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개역개정 성경의 번역을 인용하겠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명령을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신다는 겁니다. 그 명령을 여호와의 도라고 표현하고 있구요. ‘라고 번역된 히브리말 데레크derek’는 길을 뜻하는 말입니다. 지난 주 설교했던 인생의 두 가지 길 중에 의인의 길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아브라함과 그들의 후손이 지켜야할 길을 두 가지 단어로 압축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의와 공도로 번역했죠. 새번역에서는 옳고 바른 일’, NIV에서는 ‘right and justice’ KJV에서는 ‘justice and judgement’라고 번역합니다.

 

이 두 단어는 히브리 말로 쯔다카(צְדָקָה)’미쉬파트(מִשְׁפָּט)’입니다. 의로 번역된 쯔다카는 회복적 정의’를 일컫는 말로 자선 혹은 구제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어떤 사회든 사람들의 공동생활에서 발생한 잉여를 분배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이는 부유해지고 또 어떤 이는 가난해집니다. 성경은 형편이 좋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함으로써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자들의 의무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옳은 삶이란 거죠.

공도나 정의로 번역된 미쉬파트는 사법적인(juridical) 정의입니다. 재판관이 법에 따라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정의는 힘이 있는 사람들을 편들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라 하여 불법을 묵인하거나 두둔하지 않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연루되었다 하여 있는 죄를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없는 죄를 만들어 벌을 주지도 않습니다. 사법적 정의가 바로 설 때 사람들은 공권력을 신뢰하게 되죠. 그러니까 사람의 신분이나 빈부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전제하는 겁니다.

쯔다카와 미쉬파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에 대한 존귀함으로부터 시작되는 개념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동등하게 부를 나누고 소유하는 그런 자율 시민적인 가치가 바로 쯔다카와 미쉬파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두 가지 큰 기둥입니다.

 

시편 971-2절은 이 말씀을 에코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온 땅아, 뛰듯이 기뻐하여라. 많은 섬들아, 즐거워하여라.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러쌌다. 정의와 공평이 그 왕좌의 기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나라의 왕좌에 두 개의 큰 기둥이 있는데 그것이 정의와 공평이라는 겁니다. 창세기 1819절에서 쓰인 쯔다카미쉬파트가 똑같이 쌍으로 쓰이고 있는데 한글 성경에서는 정의와 공평으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죠.

 

중요한 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다스림의 핵심에는 이 두 가지 본질이 담겨 있다는 겁니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해 앞으로 실험되고 실천될 나라는 쯔다카미쉬파트가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정의와 공평이 실현되는 나라를 아브라함은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의 조카 롯이 추구한 도시 문화의 본질은 이와 정 반대로 나아가는 나라였습니다. 성 안에 머물며 안전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의 이웃을 물어 뜯는 야수들의 사회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천사들은 아브라함의 나라와 소돔을 대조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내가 너에게 숨길 것이 뭐가 있겠어? 너의 나라는 저 소돔처럼 되면 안돼? 알지?”이런 뉘앙스인 겁니다. 소돔과는 대조되는 대안적인 나라를 만들어갈 숙제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4.

소돔은 미쉬파트와 쯔다카를 행하는 사람인 의인 10명이 없어 망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다음 장인 19장에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두 명의 메신저가 롯의 집에 들어갔는데 그 도시의 남자들이 롯의 집으로 쳐들어 오려고 합니다. 남자 손님 둘을 겁탈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도시의 도덕적인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말해 줍니다.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죄악을 저지르는 겁니까? 왜냐면 상대방이 나랑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귀하게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죠. 사람을 자기의 욕망을 위한 물건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인격체로 존중하거나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필요대로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이죠. 구약 성경은 이런 의롭지 않기 때문에 죄라고 말합니다. 쯔다카와 미쉬파트가 결여된 상태입니다.  

 

중국에 살며 경헌한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거리에서 누가 맞고 있어도 관여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랑 상관 없는 사람이고 괜히 관여했다가 나만 골치아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중국에 아직도 문이 없는 화장실들이 많습니다. 그 합리적인 이유 중 하나가 사람이 하도 많아서 화장실에서 마주친 사람을 다시 볼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로 생각하면 우리는 타인에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아니 함부로 하기까지 하죠. 반대로 내 이웃이 하나님의 지극한 관심을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 생각되면 그에게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왜 가난하고 병들고 죄인 취급 당하는 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거친 대우로 말미암아 일그러져 있는 그들 안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다가가신 겁니다. 쯔다카와 미쉬파트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내 이웃을 향한 존중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연결된 존재이고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는 눈이 열리게 되면 우리의 태도가 바뀌게 됩니다. 상대방이 나의 이웃이요 나의 형제 자매라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존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죠.

 

지구 저 반대편에서 일어난 튀르키에와 시리아의 지진이 나와는 아무 상관 없어 보이지만 그들을 돕고 싶어지죠. 왜냐면 그들이 우리의 형제 자매요 우리의 이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주고자 우리의 지갑을 여는 것이 아깝지 않게 됩니다.

 

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꿈꾸셨던 나라는 의롭고 공정한 나라였습니다.  정의와 공평은 하나님의 통치 방식인데 사랑에 뿌리를 둡니다. 로마서 1310절에서는 사랑은 이웃들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로 결정하면 예수님은 그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그를 자유케 합니다. 이제 그의 삶의 주도권을 성령님이 쥐고 다스리게 되죠. 그런데 성령의 법은 사랑을 따라 움직이고 다스리는 법입니다. 성령님에게 온전한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중앙집권적인 국가는 필요 없어지게 됩니다. 왜냐면 정의와 공평이 온전하게 행해짐으로 말미암아 국가가 필요 없을 정도의 자율 통치가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민(文民)통치란 직업군인이 아닌 일반 국민이 다스리는 나라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에 의한 문민 통치가 이뤄집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가 자율적으로 사랑에 의해 움직이니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것이죠. 그 성령의 문민통치를 맛보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천국을 미리 맛보는(foretaste) 곳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예수 믿고 성령의 다스림에 들어온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사랑을 공유하는 공동체입니다. 세금 거두는 사람이 없는데도 좋은 옷 입고 와서 자발적으로 세금을 냅니다. 그리고 그 재정으로 주변의 불우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돕고자 합니다. 모든 교회가 자기가 속한 동네나 커뮤니티의 복지를 교회 스스로 책임진다면 국가는 필요 없어지게 될 겁니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이렇게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을 더 많아지는 세상입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율적인 사람들이 많아질 때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위에 더 힘있게 세워져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말씀을 정리해 볼까요?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시기 전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확인합니다. 구약의 길고 긴 역사와 서사 속에서 실현하려 했던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희생은 언약 백성을 만민에게 복을 주기 위해 새로운 출애굽을 만들어 가실 겁니다. 그 출애굽은 어린양의 희생으로 열리게 되는 데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참 길과 생명을 열어주실 겁니다. 예수님이 가실 길은 구약의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이미 제시된 길이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계속 반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코잉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만들어가실 나라는 정의와 공평이 기반이 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통치되어질 사랑의 나라인 것이죠.

 

하나님의 나라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 어디에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하나님은 이 땅 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지는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기를 바라십니다. 그 나라를 만들어 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초가 바로 쯔다카와 미쉬파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두 기둥 위에 세워지는 것이죠. 이런 정의와 공평은 성령의 온전한 통치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통치를 받는 이들은 나의 이웃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로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그를 사랑하는 삶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바라시는 삶이라는 것을 너무나 깊이 이해하기에 이웃을 아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 땅에 사법적인 정의가 실천되지 않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사법적인 정의가 무너져 있고 부의 공정한 분배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세상에 가득하면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어지게 됩니다(이사야11:9). 우리를 통해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지기 소망합니다. 인간미 없는 소돔과 같은 세상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서로 책임지는 정의와 공평이로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 위에서 미리 맛보기를 소망합니다.  

Text: Genesis 18:16-19

Title: A Kingdom built on the foundation of righteousness and justice

Translated by Wi Chung-Il

 

1.

Today is the Transfiguration of Jesus on the Mountain by a church calendar, which is celebrated just before Lent. The Transfiguration on the Mountain refers to the transfiguration of Jesus when he went to the mountain to pray with Peter, James, and John before he suffered. When Jesus prayed, the appearance of his face transformed, and his clothes shone dazzlingly white (Luke 9:29). Peter and the two disciples dozed off without praying and woke up to see an amazing scene. Jesus' face changed and his clothes were exceptionally shining. They also found Jesus talking with two famous Old Testament figures. Those two were Moses and Elijah. After talking with them, Jesus heard his Father's voice from heaven. The reason why the Transfiguration on the Mountain Sunday is right before Lent in the church calendar is because Jesus began to say that He would suffer from the Transfiguration on the Mountain.

 

Why did Moses and Elijah appear before Jesus? Moses and Elijah represent the Pentateuch and the Prophets, which were understood as the Old Testament at the time. These are the two people who represent the Torah, the Pentateuch of Moses, and the Neviim, the prophetic book, which I mentioned last week. In other words, the promise of God echoed in the Bible by people like Moses and Elijah is Jesus. It means that the Exodus led by Moses and the reenactment of the Exodus event that the prophets worked hard for will now be accomplished through Jesus. So now, before the Passion of Jesus began in earnest, a voice was heard from heaven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At the beginning of Jesus' public ministry, the same voice had already been heard from heaven. Now, right before Jesus begins the event of salvation prophesied by Moses and the prophets in Jerusalem, God is expressing his sincere thanks to Jesus.

 

In that sense, Luke 9:31 is very important. Verse 31 is the subject of a conversation Jesus had with Moses and Elijah. “(Two men, Moses and Elijah, appeared in glorious splendor, talking with Jesus.) They spoke about his departure, which he was about to bring to fulfillment at Jerusalem.” In the Revised Bible, ‘departure’ is translated as ‘death’, and in the English Bible, it is translated as ‘departure’ or ‘decease’. By the way, the Greek Bible says, “The Exodus of Jesus was spoken of in glory.” The work Jesus had to complete in Jerusalem was Exodus. Whose sacrifice was it that made the Exodus possible in the days of Moses? At the time of the Exodus, the blood of the lamb was applied to the doorposts, and the curse passed over, so the Israelites escaped the curse. And they were led from Egypt and were reborn as a new covenant people. What Jesus will complete in Jerusalem is the sacrifice of the cross, which will be a sacrifice to lead his covenant people to the new land of promise. So, in John 1:29, John saw Jesus and confessed like this. “Behold,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Jesus is saying that through the sacrifice of the cross, he will lead the children of light to serve as priests for all peoples of the world. Jesus died in Jerusalem in order to bring many people out of Egypt. Moses and Elijah, the representative figures of the Old Testament, appear and prove this amazing truth.

 

2.

Jesus did not appear in this world out of the blue. In many stories of the Old Testament, God has been working on the history of salvation. And God's will to save, which has been repeatedly revealed, will finally be completed through Jesus Christ.

You can't understand the cross of Jesus with cutting out the story of God's salvation that keeps echoing in the Old Testament. When Abraham shouted at the great mountain peak, the same voice echoed from Moses far away (Echoing). The voice of Moses echoed through Israel and echoed through John the Baptist. And Jesus puts all those echoes together to make His voice. Simply put, it is impossible to understand the salvation and gospel of Jesus Christ more deeply without understanding the will and stories of God's salvation that have been accumulated in the Old Testament. That's why you have to read the Old Testament. It is because the depth of understanding of the salvation of Jesus and the gospel is different. For example, if you read the novel “Les Misérables” in total of five volumes, starting with the fourth volume, you might mistakenly think that Jean Valjean was originally such a kind person, right? We must not miss the story of how Bishop Myriel embraced Jean Valjean, who stole the silver candlesticks and silver plates, with infinite forgiveness and love. Only when we read how Jean Valjean was dramatically converted by the power of love in volume 1 can we understand the meaning of his good deeds in the rest of the book.

 

3.

Let's take a look at today's text to find out what the echo of salvation resounded to Abraham. The text occupies a very important part of the story of Abraham. This is because the blueprint for the kingdom of God that God would create will be repeated and echoed in the Old Testament in the future. So, the reality and essence of the kingdom of God, which will be created through Abraham and his descendants, is being presented. This is important because this message will echo in the same way in Jesus. The main text begins with the visit of some three people. These three people were actually angels sent by God. They received God's command and came to investigate the reality of the cry being heard in the city of Sodom. Abraham and Sarah treat them with great hospitality. Well received, they bless Sarah that she will give birth to a baby boy this time next year. After receiving the promise and nothing happened for 24 years, Sarah laughed at the words. They had already tried to give birth to a male child from their servant to succeed the generation, but God repeatedly confirmed that descendants would come from Sarah's womb. They had been confirmed by God many times, but it seemed to them that time had more impact than God. Anyway, after hearing the good news of Sarah's pregnancy, Abraham sees the three of them off. On the way to see them off, God's voice was delivered to Abraham through them, and that is today's text.

 

” Verse 18 seems like a repetition of Genesis 12:1-3. The point is that the reason Abraham and his descendants were chosen was to bless all nations. However, this promise is a blessing premised on Abraham's obedience. What was the content of obedience given to Abraham? “For I have chosen him, so that he will direct his children and his household after him to keep the way of the Lord by doing what is right and just, so that the Lord will bring about for Abraham what he has promised him.”

To put it simply, God gives certain commands to Abraham and his descendants. The command is expressed as ‘the way of the Lord’. The Hebrew word 'derek' means the way. Of the two paths of life that I preached last week, it must mean the path of the righteous. The path that Abraham and his descendants must keep is compressed into two words. It was translated as righteousness and justice in the Revised Version of the Bible. In the New Translation, it translates as ‘right and just thing’, ‘right and justice’ in NIV, and ‘justice and judgment’ in KJV.

 

These two words are 'Tsudaka (צְדָקָה)' and 'Mishpat (מִשְׁפָּט)' in Hebrew. Tsudaka, translated as righteousness, is a word that refers to 'restorative justice' and implies charity or relief. In any society, some become rich and others poor through the process of distributing the surplus of people's common lives. The Bible teaches that it is the obligation of the rich to care for those less fortunate so that they can enjoy a decent life. That is the right life.

Mishpat, translated as justice, is juridical justice. I think it would be better to translate it as righteousness. It refers to the fairness of judges in accordance with the law. Justice does not take sides with the powerful, and it does not condone lawlessness because of the poor. Just because a large number of people are involved doesn't mean they're not guilty. There is no punishment for making a crime that is not there. When judicial justice is right, people trust public authority. That is, it assumes that a person's status or wealth cannot affect the judgment.

Tsudaka and Mishpat are concepts that begin with the respect for human beings, who are made in the image of God. Tsudaka and Mishpat are autonomous civic values in which everyone is equal in the community and everyone equally shares and owns wealth. These are the two great pillars of the kingdom of God.

 

Psalm 97:1-2 echoes these words. “The Lord reigns, let the earth be glad; let the distant shores rejoice. Clouds and thick darkness surround him; righteousness and justice are the foundation of his throne.” It describes a country ruled by God. However, there are two big pillars on the throne of the kingdom of God, and they are righteousness and justice. ‘Tsudaka’ and ‘Mishpat’ in Genesis 18:19 are used as a pair, but the Korean Bible translates them differently as ‘justice and fairness’.

 

What's important? The kingdom of God, that is, the core of God's reign contains these two essences. The country that will be experimented and practiced in the future through Abraham and his descendants is the country where ‘Tsudaka’ and ‘Mishpat’ are realized. Abraham must create a country where righteousness and justice are realized. However, the essence of the city culture pursued by his nephew Lot was a country that went in the opposite direction. It seems safe to stay in the castle, but in reality it is like a society of beasts that bite their neighbors. So these angels are telling Abraham to contrast his country with Sodom. “What can I hide from you? Your country can’t become like that Sodom, you know?” This is the nuance. Abraham was given the task of creating an alternative country that contrasted with Sodom.

 

4.

Sodom was destroyed because there were no 10 righteous people who practiced Mishpat and Tsudaka. In chapter 19, the next chapter of the main text, two messengers sent by God entered Lot's house, and the men of the city tried to invade Lot's house. It was to rape two male guests. It tells how dire the moral situation of the city was. Why do people commit sins to the detriment of others? Because they think the other person has nothing to do with themselves. It's because they don't look at the other person in the image of God. It is because they treat people as objects for their own desires. Because they don't respect or acknowledge it as a person, they use the other person for my needs. The Old Testament says that these are sins and unrighteousness. Tsudaka and Mishpat are missing.

 

This is what I experience while living in China. The Chinese tend not to get involved when someone is being beaten on the street. It's because he's a person who has nothing to do with me, and I can only get into trouble if I get involved. It may be a different story, but there are still many doorless toilets in China. One of the rationale for this is that there are so many people that you are unlikely to see the person you bumped into in the bathroom again. We don't care about others if we think of them as people who have nothing to do with us. They even do it recklessly. On the contrary, if you think that your neighbor is a person who receives God's utmost attention and is a person made in God's image, you can show greater interest and love to him.

 

Why did Jesus reach out to those who were poor, sick, and treated as sinners? Because Jesus acknowledged them as person. He came to restore the image of God in people who have been distorted by their rough treatment. Tsudaka and Mishpat are based on the premise of respect for my neighbors who are created in the image of God. Our attitude changes when we open our eyes that everyone around us is connected to us and has meaning to us. If you think of the other person as your neighbor or your brother or sister, you will respect and value them.

 

Earthquakes in Turkey and Syria on the other side of the world don't seem to have anything to do with us, but we want to help them. Because we see them as our brothers and sisters and as our neighbors. It is not a waste to open our wallets to help them live a minimum human life by being created in the image of God.

 

5.

The country that God dreamed of through Abraham was a kingdom with right and justice. Righteousness and justice, God's way of ruling, are rooted in love. In Romans 13:10, it says “Love does no harm to a neighbor. Therefore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When we accept Jesus Christ as Lord and choose to live according to His teachings, Jesus gives them the gift of the Holy Spirit. Then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sets them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Now, the Holy Spirit takes the initiative in their lives and rules them. However, the law of the Holy Spirit is the law that moves and governs according to love. When there are many people who are fully ruled by the Holy Spirit, there is no need for a centralized state. This is because righteousness and justice can be fully exercised so that self-government can be achieved to the extent that the state is not needed.

Republic refers to a country governed by ordinary citizens, not professional soldiers. However, the kingdom of God is governed by the people by the Holy Spirit. People who have been moved by the Holy Spirit are all autonomous and move by love, so it becomes a beautiful world. The church is the place where you can taste the reign of the people by the Holy Spirit. The church is said to be a foretaste of heaven. The church is a community where people who believe in Jesus and come under the rule of the Holy Spirit autonomously share love. Even though no one collects taxes, they come dressed in nice clothes and pay their taxes voluntarily. And with that finance, we want to help the underprivileged and marginalized around us. If every church took responsibility for the welfare of its neighborhood or community, the state would become unnecessary. What we dream of is a world where more people are ruled by the Holy Spirit. It is because when there are many autonomous people who are ruled by the Holy Spirit, the kingdom of God can be established more powerfully on this earth.

 

6.

Shall we summarize the message? Before Jesus suffers, he confirms the path he is walking through Moses and Elijah. Jesus came to this earth to practice God's will of salvation, which was to be realized in the long history and narrative of the Old Testament. And the sacrifice of Jesus will make a new exodus to bless the covenant people to all peoples. The Exodus will be opened by the sacrifice of the lamb, and Jesus himself will become the Lamb of God and open the true way and life to many people. The way Jesus would go was also the way already presented through many stories in the Old Testament. It has been echoed by the Israelites over and over again since the time of Abraham. The country that God will create through the people of Israel is a country based on righteousness and justice. It is a nation of love that will be autonomously governed by God's covenant people.

 

The kingdom of God is not that far off in Andromeda. God wants to create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on this earth. God wants the will of God to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Tsudaka and Mishpat are the most necessary foundations to build that country. The kingdom of God is built upon these two pillars. This kind of justice and fairness is naturally given to those who obey the whole reign of the Holy Spirit. It is because those who are ruled by the Holy Spirit open their eyes to see their neighbors as noble beings created in the image of God. They are people who care for their neighbors because they understand so deeply that a life that does not harm them and loves them is what God wants them to be. Such a person feels sad to see that judicial justice is not practiced on this land. We live in a world where judicial justice is still broken and there are still many people who do not want a fair distribution of wealth. In the midst of such a world, we must create a nation that God desires. When the knowledge of the Lord fills the earth as the waters cover the sea, there will be no harm or damage (Isaiah 11:9). We hope that such a beautiful world will be created through us. It is not a world like Sodom without humanity, but I hope to taste the kingdom of God built on righteousness and justice in which we love each other and take responsibility for each other in advance on this world.

 

Posted by speramus

본문: 시편 1:1-6

제목: 의로운 사람들의 상록수숲 (A Forest of people who are righteous)

1.

제가 20058월에 지리산을 종주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와 그의 동생과 함께 셋이서 지리산을 23일로 종주하는 계획이었습니다. 노고단(Nogodan)에서 출발하여 천왕봉(Cheonwangbong)까지 갔다 내려오는 코스였습니다. 그런데 이틀 째 산행을 하며 저희 일행은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한참을 헤매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2시간 넘게 걸렸죠. 산길에도 이정표가 자주 나오는데 이정표가 아니라 ‘OOO 산악회라고 적힌 리본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은 거였어요. 그 산악회를 믿으면 안됐던 거죠. 국립공원 사무실에서 설치한 이정표를 보고 따라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인생을 제대로 살려면 바른 길을 선택해야 하고 올바른 이정표를 따라가야 하겠구나라는 깨달음이 오더라구요. 우리는 인생을 길로 비유하곤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길은 명확한 방향과 명확한 이정표를 따라가는 길인가요? 여러분의 삶이 혼란스럽고 심란할 때 여러분에게 지혜를 주고 영감을 주는 리소스는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해주고 의미와 지향점을 주는 이정표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서두에 결론을 미리 말해 죄송하지만 성경만한 인생의 이정표가 있을까요? 저는 삶이 힘들다 싶으면 시편을 펼칩니다. 왜냐면 시편은 나와 같은 고민과 번뇌를 겪은 신앙의 선배들이 기록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대부분의 시가 신앙적인 고민을 가진 사람들의 노래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읽으면 대단히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먼저 시편이 구약성경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잠깐만 살펴보고 본문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모세 오경이라 불리는 토라(Torah), 예언자들의 책들인 네비임(Neviim), 그리고 거룩한 기록이라는 뜻을 가진 성문서(Holy Writings), 케투빔(Ketuvim)입니다. 시편 욥기 잠언 외에 룻기 아가서 역대기 등의 책들이 케투빔에 속해 있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모세가 쓴 토라를 가장 거룩한 책으로 보았고 그 다음 예언서 그리고 가장 등급이 낮은 책을 케투빔으로 여겼습니다. 오늘 날로 따지면 케투빔은 간증문 같은 겁니다. 이건 모세나 예언자들이 영감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삶 가운데 고민하고 씨름하는 문제들 안에서 부르짖은 탄식과 간구가 시편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새롭게 하소서같은 간증 방송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강의하는 바이블 에센스”, “성서학당등과는 좀 다르죠. 그냥 맘이 지치고 힘들 때 새롭게 하소서를 보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느껴지잖아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되죠. 시편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기독교 예배에서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직접적인 방식이라면 대표기도는 성도들에게 임한 감동을 통해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토라가 설교라면 시편은 대표기도인 거죠. 고난과 혼돈으로 가득한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시편과 같은 케투빔을 통해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2.

시편 1편은 150편이나 되는 시편 전체의 주제와 같은 말씀입니다. 150편의 시들의 여섯 줄 요약이 시편 1편인 거죠. 시편 1편은 어떻게 사는 것이 복된 인생인지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합니다. 인생의 여러 길 중에 어떤 길을 선택하고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복되고 행복한 삶인지를 말해주고자 합니다. 여러 이정표들을 제시하고 당신은 어떤 이정표를 따라 살겠습니까? 선택지를 내미는 것과 같습니다. 150편의 시편의 대부분이 그렇듯 시편 1편은 거룩한 흑백논리를 말합니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는 이정표가 많아 보이지만 딱 두 종류 밖에 없다는 거죠. 의인의 길 아니면 악인의 길 뿐입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나는 의인도 아닌 것 같고 악인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뭐지? 여러분들 중에도 이런 혼란이 오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 겁니다. 흑백 논리라는 것이 흑 아니면 백입니다. 회색이 있잖습니까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시편 1편에서 회색은 모두 흑으로 분류됩니다.

 

1절에는 악인의 종류세 등급으로 분류하는데 각각 사용된 히브리 말도 다 다릅니다.

이 등급을 분류하는 데 있어 각각의 악인들에게 사용되는 동사를 보면 재미있습니다. 따르다, 서다, 앉다가 순서대로 나오는데 어떤 동작이 가장 안정돼 보입니까? 갈팡질팡 하며 악인의 꾀를 따라볼까 고민하다 결국 그 길에 들어 서게 되죠. 서 있다가 이제는 눌러 앉아 버리는 것까지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만한 자들은 악인들과 죄인들에 비해 상당히 확신에 차 있는 자입니다. 자기가 가는 그 악한 길에 대한 확신과 안정감을 가진 최고수의 악인이라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 말에도 오만한 자라는 뜻은 비웃는(mock)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비웃는 사람이라는 거죠. 그에 비해 죄인이라고 번역된 로쉬의 복수형(plural) ‘르샤임은 악한(Weak) 사람, 틀린(wrong) 사람, 나쁜 사람 정도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악인의 꾀라고 번역된 아짜트‘advise, counsel, prudence’ 같은 말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나쁜 꾀에 귀가 열려 있으면서 유혹을 받지만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입니다. 순진한 죄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쁜 충고에 귀를 개방해 놓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입니다. 신문 보면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욕하면서도 속으로는 자기도 기회가 오면 그렇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C. S. Lewis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라는 책이 있는데요. 악마 세계의 고참급인 삼촌 악마 Uncle이 자기의 조카인 졸개 악마 Wormwood에게 보낸 편지 형태의 글입니다. Uncle 악마는 신참 영업사원인 조카에게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들을 유혹하고 파멸시킬 것인가에 대해 자상한 지침과 충고들이 가득한 편지를 보냅니다. 거기에서 마귀들의 가장 큰 전략이 소개됩니다. “세상사람들을 전형적인 악인들로 만들지 말아라. 그러면 의인들이 그것을 보고 일어나게 된다. 어떤 악인을 만드는 것이 가장 유리한가? 그것은 선인처럼 보이는 악인을 많이 생산해내서 사회 곳곳에 심어 놓아야 한다.”라고 웜우드에게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의인인 것처럼 의로운 것에 대해 고민은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귀는 악인의 충고에 열어 놓는 악인을 만들어 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보적인 미디어를 보더라도 적극적으로 의인의 삶을 즐거워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이 첫번째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두번째 단계의 죄인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죄인의 길에 들어 선 사람들입니다. 이 죄인들은 꾀를 좇는 악인들보다 한 단계 진전된 죄인들입니다. 길에 섰다는 말은 더이상 방황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로 방향을 정한 죄인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좁은 길, 협착한 가시밭길은 딱 질색입니다. 자신의 길이 생명의 길이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길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니 자기도 따라가 보겠다고 아예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꾀에 빠져 있는 악인보다 이런 사람들을 돌이키게 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이 죄인들보다 한 단계 더 진전된 죄인이 바로 오만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버린 죄인입니다. 갱단으로 치면 보스에 해당되는 죄인입니다. 보스는 서서 일하지 않고 앉아서 조직을 지배합니다. 보좌에 앉아서 왕적인 통치를 하는 두목인 것이죠. 오만한 자들의 파괴력은 어마무시합니다. 푸틴이라는 대통령 한 사람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으면 미사일을 선량한 시민들에게 발사하는 겁니다. 너무나 악마적인 것이죠.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제 시대의 이토히로부미, 히틀러 같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양민들을 학살하면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남의 나라를 통째로 도둑질 해가면서도 양심의 거리낌이 눈꼽만치도 없는 오만한 자들이죠. 악의 세계는 완전한 위계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죄인과 악인들을 지배하며 왕적인 통치를 행하는 정사와 권세와 하늘의 주관자들이 존재합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신앙생활하지 않으면 우리도 악의 세력들에 동조하며 살아가기 십상입니다. 성경에서 악의 위계질서와 싸우며 충돌하는 것을 영적전쟁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612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악과의 전쟁이 얼마나 치열하며 고도의 영적인 에너지를 필요로하는 싸움인지를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이 싸움이 이렇게 치열한 이유는 악의 세력들이 철두철미한 위계질서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

에베소서 6장의 말씀에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비유적으로 무장 도구들 잘 갖추고 나서 악의 세력들과 맞서 싸우라고 충고해줍니다. 헬멧, 갑옷, 신발, 허리띠, 방패 등이 도구들은 모두 방어수단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공격 무기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데 그것은 성령의 양날 검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악의 세력들에게 엄청난 데미지를 입히는 공격 무기입니다. 악의 위계질서는 작은 진실의 음성에 허약할 정도로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 위계질서는 거짓으로 쌓아진 위계질서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진리의 음성이 악의 세력들에게 전달될 때 그들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의 기자는 진리의 말씀인 야웨의 토라를 밤과 낮으로 묵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들에게는 악한 자들의 충고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즐거워하다라는 말과 묵상하다라는 말은 시적인 댓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묵상하다는 말은 히브리 말로 하까’(Hagah)라는 말입니다. 하까는 세 종류의 용례가 있습니다. 먼저는 묵상하다는 뜻이구요. 두번째 뜻은 시편 636절 등에서  읊조린다(recite read aloud)라는 말로 번역됩니다. 하까는 소리를 내서 계속 반복해서 읊는 행위입니다. 말씀에 머물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는 말인 거죠. 세번째 뜻은 이사야서 314절의 예인데요 힘센 사자가 자기 먹이를 잡고 으르렁거릴 때에(the young lion roaring on his prey)”라는 말씀에서 으르렁거리다라는 말이 바로 하까입니다. 사자와 마찬가지로 고양이도 먹잇감을 물고 있는데 다가가면 무슨 소리를 냅니다. 먹이를 즐거워하여 놓칠 수 없는 기쁨을 그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말씀을 기뻐하며 즐기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바로 하까인 거죠.

 

결국 묵상한다는 것은 끙끙거리고 신음하면서 하나님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그렇고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진리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의 현실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는데 그것이 성취되기까지 너무나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다고 말씀드렸죠. 약속과 응답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그 간극 가운데 많은 이들이 괴로워해 왔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이 세상 가운데 작동하는지 의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토라를 묵상한다는 것은 진리대로 되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의 을 구하며 씨름하적극적인 행동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토라를 즐거워 한다는 말은 말씀대로 되어지는 현실 앞에서 아멘으로 반응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즐거워하는 것과 묵상하는 것은 시적인 댓구를 이루고 있는 것이죠. 의문 투성이인 현실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해답을 주시고 말씀을 성취시켜 주심으로 큰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할 뿐 아니라 밤낮으로 묵상해야 합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의심하는 순간, 우리는 악의 잠재적 동맹세력으로 전락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가 의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다스림이 나의 내면에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고 싶다면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야기가 기록된 책인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려가는 원리를 읽고 내면화 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내면화시킨다는 말은 내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지 않기로 작정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 치고 도망하면서 감옥에 갇히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이 그의 삶을 어떻게 드라이브해 가시는 지 우리는 보게 됩니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에게  여전히 현실은 어둡지만 하나님이 그의 삶을 어떤 식으로 형통하게 만들어주시는지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통해 의로운 인생에 대한 잃어버렸던 상상력을 되찾게 되는 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맛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삶에도 적용해 보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겠다는 사람은 내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겠다는 뜻과 같습니다. 

 

4.

3절 말씀은 야웨의 토라를 즐거워하며 신음하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인데 악인은 바람에 흩날리는 쭉정이와 같다며 둘을 비교합니다. 어떤 이미지가 사용되고 있는지 보세요. 의인은 뿌리를 내려 흔들림이 없는데 악인은 이리 저리 바람이 부는대로 날아가버리는 쭉정이라는 겁니다. 의인은 열매를 실하게 맺고 알맹이로 가득한데 악인의 삶은 알맹이는 없고 겉만 뻔지르르한 쭉정이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시내는 히브리말에서 강이나 하천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나하르Nahar’가 아닙니다. ‘펠레그Peleg’라는 단어인데 사막이나 광야를 지나며 흐르는 물길을 가리킵니다. 숲이나 초원으로 우거진 곳에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사막이나 광야를 관통하는 시내인 거죠. 광야같이 거칠고 메마른 우리 인생길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풍성하게 해준다는 겁니다. 인생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문제 투성이인데 그 한가운데를 하나님의 강이 관통하며 나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제가 2007년에 혼자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신장의 수도인 우루무치에서 서쪽 끝의 국경 도시인 카쉬카르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한 적이 있습니다. 기차가 타클라마하칸 사막을 관통하여 지나가는데 그 사막 한 가운데로 시냇물이 흐러더라구요. 설산의 눈이 녹아서 흐르는 시냇물이었습니다. 다른 곳은 다 황량하고 삭막한데, 시내가 흐르는 물가에만 나무가 푸르르게 크고 있더라구요. 딱 그 시냇가에만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펠레그입니다. 요셉처럼 하는 일마다 꼬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잖습니까? 야웨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의 삶이 이렇다는 겁니다.

 

6절 말씀을 우리가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의인들의 길은 주님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이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가짜입니다. 의롭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결국에 승리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많은 신앙의 선진들이 암울한 현실을 보며 과연 말씀이 작동하는가 괴로워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믿고 끝까지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시냇가에 심겨진 것이 의인이 아니라 악인들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악인들은 번성하기만 하고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만 같아 속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갔죠. 하나님의 율법이 작동하는가 라는 의심이 들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신음하며 묵상하는 것입니다.

 

5.

시편 1편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처음 1절에 사용된 복있는 사람  숫자가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은 모두 복수로 표현되어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그런데 마지막 6절에는 의인들이라고 복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의로운 길이 좁고 협착하기에 다니는 사람이 드물고 의인 혼자 인 듯하죠. 하지만 시냇가에 외롭게 심겨진 나무가 이제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상록수숲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숲의 나무들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과실수들입니다. 척박한 이 땅에서 나 혼자 남았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의로운 길을 인정하신다면 분명히 동역자들을 붙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 맺게 하실 겁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 삶에 의미하는 바를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세상에는 여러 길들이 있어 보이지만 두 종류의 길 뿐입니다. 의로운 길 아니면 악한 길입니다. 의로워 보이지만 악한 이의 꾀와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잠재적인 악인입니다. 잠재적인 악의 동조자일 뿐입니다. 중간지대 회색지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정말 레디컬한 결단이 요구되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좇아가는 방식대로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여러분은 결단하셔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나를 포기하는 삶입니다. 나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예수의 생명과 함께 부활한 새 생명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시편 1편은 너무나 확신 있게 말합니다. 예수께 굴복한 삶, 예수께 나의 삶을 내어드린 삶이 너무나 행복한 삶이라구요. 이 결단과 commitment가 의인의 길로 들어서는 첫 관문입니다. 이 관문을 아직 통과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들은 불행하게도 악인의 길에 아직 머물고 계신 겁니다.

 

악의 위계질서는 끊임 없이 여러분들을 속일 겁니다. 적당히 의롭게 그리고 적당히 이기적으로 살아가도 아무 문제 없다구요. 그것이 악마가 사용한 가장 강력한 전략이라는 것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신앙 생활은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겨진 나무는 이리 저리 옮겨 다니지 못합니다. 바람에 나는 쭉정이처럼 이길 저길 왔다 갔다 방황하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 심겨진 인생이 되십시오. 흔들림 없이 말씀 속으로 뿌리를 내리십시오. 말씀의 양분을 빨아 먹으며 이제 자라가십시오. 의인들의 숲인 교회는 적당한 사교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곳은 영적 전쟁의 전우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악의 세력에게 빼앗겨 버린 이 세상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드리기 위해 이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영적인 전우들의 전우회가 바로 교회입니다. 진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절대 손해 보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교회에 모일 때마다 확인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상에 돌아가셔서 여전히 여러 문제들과 씨름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신음하며 해답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줄 모르신다면 그냥 읽기라도 하십시오. ‘나니아 연대기를 보면 옷장을 열어 그리 들어가니까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을 보잖습니까? 말씀을 읽고 묵상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세계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 우리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공세적인(offensive) 의인이 되시고 공세적인(aggressive) 복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악인들-죄인들- 오만한 자들이 만들어내는 카르텔을 붕괴시키는 영적 전사들이 되십시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 내 인생 전부를 걸고 악의 세력에 맞서는 사람들의 삶은 형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요리 조리 피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오히려 악의 강력한 진영을 파하는 공세적인 의인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야웨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며 즐거워하는 삶입니다. 여러분이 걸어가는 그 의로운 길 가운데 울창한 의인들의 상록수 숲이 만들어질 그 날을 소망하며 늘 진리에 머물기를 기뻐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Scripture: Psalms 1:1-6

Sermon Title: A Forest of People who are Righteous / Translated by Melody Lee

 

1.

I once climbed Mt. Jiri in August 2005. The plan was to hike Jirisan for three days and two nights with a friend and his younger brother. We were going to start from Nogodan and head to Cheonwangbong. However, on the second day of hiking, our group got lost. After wandering around for a while, it took us over 2 hours to get back on the correct trail. There are often signposts on mountain trails, but I got lost while following a ribbon that read ‘OOO Mountaineering Club’ rather than a signpost. I should have followed the signposts installed by the National Parks Office instead of the signs of the mountaineering club. It was then that I came to the realization that ‘to live life properly, I must choose the right path and follow the right signposts. We often liken life to a road. Is your life path a path with clear directions and clear signposts? What resources will give you wisdom and inspiration when your life is messed up and chaotic? What is the signpost that sets the direction of your life and gives you meaning and direction? I'm sorry to say the conclusion in advance, there is no signpost in life like the Bible. When life is difficult, I open Psalms. This is because the Psalms are written by seniors of faith who have gone through the same troubles and anguish as me. Since most of the psalms are songs of people with religious concerns, it is a very comforting word for those who are struggling.

 

First, let's take a quick look at the place Psalms occupy in the Old Testament and then go into today’s scripture. The Hebrew Bible is divided into three main parts. These are the Torah, called the 5 Books of Moses, the Neviim, the books of the prophets, and Ketuvim, the Holy Writings. In addition to Psalms, Job, and Proverbs, books such as Ruth, Song of Songs, and Chronicles are found in the Ketuvim. However, the Jews considered the Torah written by Moses to be the most holy book, followed by Neviim, the books of the prophets, and regard the Ketuvim as the lowest grade book. In today’s terms, Ketuvim is like a testimony. It is not like the other books where Moses or the prophets prophesied the Word of God. The Psalms are the sighs and supplications uttered in the midst of the problems that they are struggling with in their lives. In today’s terms, you can think of it as similar to a testimony broadcast like “Let it be Renewed.” It is a bit different from “Bible Essence” and “Bible School,” which directly lecture on the Word of God. If you just watch “Let it be Renewed” when your heart is tired, you can feel that God is alive. You will find new hope. The Psalms are just like this. If the sermon in Christian worship is a direct way to hear the word of God, the representative prayer is the word of God heard through the inspiration of the saints. So, if the Torah is a sermon, the Psalms are a representative prayer. Through Ketuvim, such as the Psalms, we can learn how to live wisely in a life full of hardships and chaos.

 

2.

The theme in Psalm 1 is the same theme as all 150 psalms. Psalm 1 is a six-line summary of the 150 psalms. Psalm 1 wants to tell us how to live a blessed life. It tells us which path to choose among the many paths in life and with what attitude we should live to have a blessed and happy life. Among the many signposts, which signposts will you live by? It's like giving you a choice. Like most of the 150 psalms, Psalm 1 presents the choice with black and white logic. There are many signposts to live like this or live like that, but there are only two types. It is either the path of the righteous or the path of the wicked. There is no middle ground. Most people then have an identity confusion. I don't think I'm a righteous person, and I don't think I'm a wicked person either. Then what is it? I'm sure there are some of you who have this kind of confusion. Black and white logic is either black or white. You may say that there is gray, but in Psalm 1, all gray is classified as black.

 

In verse 1, the Hebrew words used to classify the wicked into three classes are different. It is interesting to look at the verbs used for each of the wicked ones in this classification. Walk, stand, sit, are in a specific order. Which movement seems the most stable? At a loss, one wonders whether to follow the tricks of the wicked, but in the end they end up on that path. They progress step by step from standing up to sitting down. Arrogant people are quite confident compared to the wicked and sinners. It can be seen as the greatest villain with confidence and stability in the evil path he is taking. Even in Hebrew, the meaning of arrogant has the meaning of 'one who mocks'. It means that you are laughing at God. In contrast, ‘losh’  or the plural form ‘lesheim’ translates as sinner and means a weak person, a wrong person, and a bad person. Hebrew word ‘Azat’, translated as ‘the cunning of the wicked’, is translated into words such as ‘advise, counsel, and prudence’. These people are tempted, but confused, with ears open to evil schemes. It can be seen as an innocent sinner. These are people who have an open ear to bad advice and are ready to receive it. They are people who read the newspaper and curse those who commit evil deeds, but in their hearts they think that it would not be bad for them to live like that when the opportunity comes. There is a book called 'The Screwtape Letters' by C. S. Lewis. This is a letter in the form of a letter from Uncle, a senior in the demon world, to his nephew, the demon Wormwood. The Uncle Devil sends his nephew, a new salesman, a letter full of tender instructions and advice on how to seduce and destroy Christians. There, the biggest strategy of the devils is introduced. “Don't make the people of the world typical evil people. Then the righteous will see it and rise up. Which villain is best to create? Make a lot of bad guys who look like good people and plant them all over society,” kindly explains to Wormwood. It means to create wicked people who worry about being righteous as if they were righteous but actually keep their ears open to the advice of the wicked. No matter how progressive media you read, such as the New York Times, all those who do not actively enjoy the life of the righteous are classified as this first person.

 

The second stage of sinners are those who have gone one step further and entered the sinner's way. These sinners are one step ahead of the wicked who follow their cunning. Standing on the road means no more wandering. They are sinners who have orientated themselves on the path of their own choosing. For such people, the narrow road, the thorny road, is just disgusting. Even if their own path is not the path of life but the path to hell, many people are on it, so they are the ones who are determined to follow it. It is much more difficult to bring these people back than to devious wicked people.

 

The sinners who go one step further than these sinners are the arrogant ones. They are sinners who have been sitting in their seats. If you compare it to a gang, this type of sinner would be the boss. Bosses do not stand and work, but sit and rule the organization. He is the leader who sits on the throne and rules like a king. The destructive power of the arrogant is huge. When President Putin sits in the seat of the arrogant, he fires missiles at good citizens. That's so demonic. People like Hideyoshi Toyotomi in the Joseon Dynasty and Hirobumi Ito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are such people. They have no qualms about slaughtering peaceful people. They are arrogant people who don't have a twinge of conscience even though they rob an entire country. The world of evil consists of a complete hierarchy. There are principalities, powers, and heavenly rulers who rule over sinners and wicked people and exercise royal rule. If we do not keep our minds upright and lead a life of faith, it is easy for us to live in sympathy with the forces of evil. Fighting and colliding with the hierarchy of evil in the Bible is called spiritual warfare. This is Ephesians 6:12. “For our struggle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the rulers, against the authorities, against the powers of this dark world and against the spiritual forces of evil in the heavenly realms”. The apostle Paul tells us how fierce the war against evil is and requires a high degree of spiritual energy. The reason this fight is so fierce is that the forces of evil are organized in a thoroughly hierarchical order.

 

3.

In the words of Ephesians 6, in order to win the spiritual war, it advises us to fight against the forces of evil after equipping ourselves with armed tools. Helmets, armor, boots, belts, and shields are all defensive tools. However, the only offensive weapon given to Christians is the Word, the double-edged sword of the Holy Spirit. The Word of God is an offensive weapon that inflicts great damage on the forces of evil. The hierarchy of evil can be weakened so easily by a small voice of truth. Because the hierarchy is a false hierarchy. We must know how great a blow the voice of truth is to the forces of evil when it is delivered to them. So, the author of Psalm 1 tells us to meditate on Yahweh's Torah, the word of truth, night and day.

 

No matter how strong the advice of the wicked is, it is of no power to those who meditate on the Word of God day and night. The words rejoice and meditate form a poetic couplet. The word to meditate is ‘Hagah’ in Hebrew. There are three types of examples of Hagah. First, it means to meditate. The second meaning is translated as recite read aloud in Psalm 63:6, Hagah is the act of reading aloud and reciting over and over again. It is a word that expresses the will to stay in the Word. The third meaning is an example from Isaiah 31:4. In the words “the young lion roaring on his prey,” the word ‘roaring’ is Hagah. Like lions, cats bite their prey and make a noise when approached. That's how they express the joy that can't be missed because they enjoy feeding. Hagah is a word that expresses the meaning of enjoying and rejoicing in the Word.

 

To meditate refers to the act of trying to remember God while grunting and groaning. Like the prophet Habakkuk, many prophets of the Old Testament lamented the reality of a world that did not return to God's truth. Abraham also received God's promise, but he said that he needed to wait for a very long time for it to be fulfilled. In the midst of the gap between promises and answers and ideals and reality, many people have suffered. Similar to us. There are many times when we doubt whether God's truth is working in this world. What we need at such times is the Word of God. Meditating on God's Word and God's Torah can be said to be an active action to seek God's will and wrestle with questions about the reality that does not turn out according to the truth.

 

To enjoy the Torah of God is to say the attitude of responding with “Amen” in front of the reality that comes true according to the Word.  In that sense, rejoicing and meditating form a poetic dialogue.  To those who meditate on the Word to discover God's will in a reality full of questions, God gives great joy by giving answers and fulfilling the Word.

 

Why should Christians not only rejoice in the Word of God but also meditate on it day and night? Because the moment we doubt the truth of God's Word, we become potential allies of evil. In other words, the moment you don't meditate on the word of God, you begin to doubt whether the word of God is the truth. That is why Christians must keep close to the Word of God. When I read the Bible, I begin to feel the reign of God within me. If you want to feel that God is alive, you must read and meditate on the Bible. In the Bible, the book of God's story, we can read and internalize the principles by which God governs the world. Internalizing God's rule also means that I choose not to be God myself.

 

For example, we read the story of Joseph being imprisoned after fleeing from Potiphar's wife. In his story, we see how God drives his life. To him who struggles to live a righteous life to the point of stupidity, the reality is still dark, but we see how God makes his life prosperous. Through such stories, we can regain our lost imagination of a righteous life. As we read the stories of people who have tasted the care of Almighty God and live, we apply them to our lives. A person who refuses to read the word of God is the same as saying that he wants to become God himself.

 

4.

Verse 3 compares a person who rejoices in Yahweh's Torah to a tree planted by streams of water. The righteous are like trees planted by streams, but the wicked are like chaff blown away by the wind. See which images are being used. The righteous are rooted and unshakable, but the wicked are chaff that blows away as the wind blows. The righteous bear fruit abundantly and are full of fruit, but the life of the wicked has no grain and is nothing more than chaff.

 

The 'stream' used here is not the 'nahar' used in the meaning of a river in Hebrew. The word 'Peleg' refers to a waterway that flows through a desert or wilderness. It is not a river flowing through forests or grasslands, but a stream running through a desert or wilderness. It means that the word of God enriches us in our life, which is as rough and dry as the wilderness. Life is still chaotic and full of problems, but the river of God penetrates the middle and enriches my life. I went on a trip to Xinjiang Uyghur in China alone in 2007. At that time, I took a train from Urumqi, the capital of Xinjiang, to Kashkar, a border city in the far west. A train runs through the Taklamakan desert, and a stream flows in the middle of the desert. It was a stream that melted and flowed from the mountains. All other places are desolate, but trees are growing green only at the waterside where the stream flows. This is Peleg. Like Joseph, everything he does seems to be twisted, but in the end, don't you see God who makes it prosperous? This is the life of those who meditate on Yahweh's law day and night.

 

We must believe the words of verse 6 with our hearts. “For the Lord watches over the way of the righteous, but the way of the wicked leads to destruction.” If we do not believe this word, our faith is fake. We must believe that the lives of those who live righteously will win in the end. Many forefathers of faith looked at the depressing reality and struggled with whether the Word is working. Even so, they believed that the Word of God was the truth and did not lose their faith until the end. Sometimes it seems that it is not the righteous but the wicked who are planted by the stream. They were disappointed when it seemed only the wicked prosper. However, they meditated on God's Word and overcame the difficulty. Because we have doubts as to whether God's law is working, we meditate on the Word of God.

 

5.

There is one interesting fact in Psalm 1, which is that the number of 'blessed people' used in the first verse is singular. The wicked, the sinners, and the arrogant all stand in contrast to being expressed in the plural. However, in the last verse 6, the plural is used as righteous. At first, the righteous path is narrow and narrow, so few people walk it, and it seems like the righteous are alone. However, the lonely tree planted by the stream is now forming an evergreen forest that does not lose its leaves. The trees of the forest are fruit-bearing trees that bear fruit according to the season. Don't complain that I'm left alone in this barren land. If God acknowledges your righteous path, he will surely attach and add co-workers to you.

 

Meditate deeply on what today's words mean for our lives. It seems that there are many roads in the world, but there are only two kinds of roads. It is either the righteous way or the evil way. If you look righteous but listen to the tricks and advice of the wicked, that person is a potential wicked person. He's just a potential sympathizer for evil. The middle ground, the gray area, doesn't exist. A really radical decision is required here. You must decide whether to live according to the Word of God or to live a life in which you are the owner, following the way the people of the world follow. Living according to the Word is a life of acknowledging that my master is not me but God. It is a life that gives up on me in front of Jesus Christ. I die on the cross with Jesus and live a new life resurrected with Jesus' life. Psalm 1 speaks so confidently. The life of surrendering to Jesus, the life of surrendering my life to Jesus, is a very happy life. This determination and commitment is the first gateway to entering the path of the righteous. If you have not yet passed this gateway, you are unfortunately still on the path of the wicked.

 

The hierarchy of evil will continue to deceive you. There is nothing wrong with living moderately righteously and moderately selfishly. I have already said that it is the most powerful strategy the devil has ever used. Living a life of faith is not moderate. Planted trees cannot move around. The wind does not wander from one road to another like chaff. Become a life planted in Jesus Christ. Be rooted in the Word without wavering. Grow now by sucking in the nourishment of the Word. The church, the forest of the righteous, is more than an appropriate social space. This is where the comrades in spiritual warfare gather. The church is a fellowship of spiritual comrades who live fiercely in this world in order to return this world, which has been taken away by the forces of evil, to God. We must be confirmed every time we gather in church that living by the truth is never a life of loss.

 

And when you return to your daily life, you will still struggle with many problems, but call out and find answers in the Word of God. If you don't know how to meditate on God's Word, just read it. If you watch 'The Chronicles of Narnia', you open the closet and then you see another world open, don't you? Reading and meditating on the Word is connecting with the world of God. When we meditate on the Word, we are included in God's story. I ask you all. Be an offensive righteous person and an aggressively blessed person. Become spiritual warriors to bring down the cartel created by the wicked - the sinners - the arrogant. Those who live like that are bound to bear fruit. In this way, the lives of those who risk their entire lives for God and stand up against the forces of evil are destined to prosper. Go beyond the stage of avoiding the tricks of the wicked, and rather live the life of an aggressive righteous man who destroys the powerful camp of evil. I hope for the day when a dense evergreen forest of righteous people will be created in the midst of the righteous path you are walking.

Posted by speramus

본문: 요한147-11

제목: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What men live by)

 

 

1.     시몬과 미하일의 만남

 

  구두장이(shoemaker) 시몬은 어느 농부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어요. 시몬(Semyon)은 구두를 만들 양피를 사러 갔다 오는 길에 그동안 구두를 수선해준 농부에게 외상값을 받으러 갔어요. 하지만 한 푼도 받지 못하자 홧김에 술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한 채 집에 가던 길이었어요. 그런데 길 모퉁이 교회 앞에서 벌거벗은 채 길가에 쓰러져 있는 한 남자를 보았어요. 너그러운 시몬은 얼어 죽을 것이 분명한 남자를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외투를 입히고 집으로 같이 돌아갔어요. 시몬의 아내 마트료나(Matryona)는 그런 시몬에게 화가 나서 온갖 욕설을 퍼부었어요. 그러다 시몬이 '마트료나, 당신의 마음에는 하나님도 없소?"하는 말을 하자, 그녀는 마음이 누그러져 잠자리를 제공하고 입을 옷도 내주었어요.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그 남자의 이름은 미하일(Mikhail)이었어요.

 

2.     신사와의 만남

 

  시몬은 미하일에게 "자네가 우리와 같이 살려면 일을 해야 하네."라고 말했어요. 미하일은 ". 어떤 일이든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구두 수선일을 배웠답니다.  놀랍게도 초보자 미하일이 숙련된 시몬보다 더 일을 잘했어요. 머리가 영리해서 시범을 보이기만 했는데도 따라하는 것이었어요. 미하일의 소문이 퍼지자 시몬은 많은 돈을 벌게 되고 형편은 나아졌죠. 어느 날 신사 한 명이 비싼 가죽을 건내며 오만한 말투로 일년을 신어도 터지지 않는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명령했어요. 시몬이 비싼 가죽을 보면서 혹시 일이 잘못 되면 어쩌나 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미하일은 그 주문을 받았어요. 그런데 미하일은 주문대로 구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슬리퍼를 만들었어요. 시몬이 화가 나서 “왜 구두 대신 슬리퍼를 만들어?” 라며 따지려는데 신사의 하인이 들어왔어요. 주인 어른이 집에 가던 중 마차에서 죽었다며 장례식을 위해 슬리퍼를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시몬은 그걸 알기라도 한 듯이 슬리퍼를 이미 만든 거예요.

 

3.     두 아이와의 만남

 

  세월이 흘러 6년의 시간이 흐르고 미하일은 변함없이 시몬의 가게에서 일을 했죠. 어느 날 한 부인이 쌍둥이 여자아이들의 구두를 주문했어요. 시몬이 부인에게 이 아이들은 어떤 아이냐고 묻자 여인이 대답했어요. 6년전 두 아이의 부모가 죽었어요.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죽고 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답니다. 나는 이 아이들의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태어난 지 8개월 된 아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임시로 그 두 아이들을 맡아 길렀답니다. 그런데 내 아들이 일찍 죽고 말았어요. 다행히 저의 방앗간 사업이 잘 되어 나는 이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사랑하며 소중히 지금까지 키워오고 있답니다.” 이 말을 들은 마트료나는 "부모 없이는 살아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라고 말했죠.

 

4.     천사 미하일

 

그 순간 방 안이 밝아지며 미하일이 천사로 변했어요. 그 모습을 본 시몬은 두려워 하며 물었어요. "자네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세 번 웃었는데 왜 웃었는지, 하나님이 왜 자네에게 벌을 주셨는지 말해주게"라고 했어요. 미하일이 말했어요. 6년전 하나님이 한 영혼을 데려 오라고 명령하셔서 세상에 내려왔어요. 이제 태어난 쌍둥이 아이들이 죽게 될 거라는 명령을 가지고 아이 엄마에게 갔죠. 그런데 아이 엄마가 애원하자 저는 마음이 약해졌어요. 저는 그냥 하나님께 돌아갔고 명령을 지킬 수 없다고 했죠. 그러자 하나님은 저에게 "아기 엄마의 영혼을 데려오면, 세 가지 질문을 알 수 있을 거라 하셨어요.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나님은 이 세가지의 질문의 뜻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답을 찾을 때 까지 사람들에게 가 있으라 명령하셨지요. 그래서 땅으로 내려온 저는 알몸뚱이로 차가운 길바닥에서 웅크리고 있었지요. 시몬, 당신이 죽어가던  나를 발견했지요. 시몬과 마트료나가 저를 대접하는 것을 보고,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깨달았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그때 얻게 된 거예요. 그리고 멋진 신사가 일년을 신어도 끄떡없는 구두를 주문했지만 그가 곧 죽을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었죠. 그렇게 해서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되었어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엄마를 잃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사람을 보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세 번째 질문의 답을 알게 되었어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모든 사람은 그들 자신의 행복을 위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사람에게 존재하는 사랑때문에 사는 거예요. 비록 그들이 자신을 위한 걱정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이 사랑에 의해서만 산다는 것을 이제 이해했어요. 사랑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그 사람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지요.

그 말을 마치고 미하일은 하늘로 돌아갔어요.

 

5.     자신의 아들을 화목제물(fellowship offering)로 드린 하나님의 사랑

  이 이야기는 러시아의 작가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1884년에 쓴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What men live by?)”라는 제목의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산다구요? 사랑으로 삽니다. 요한 1 4 7-8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분명하게 얘기해 주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구요. 왜 사랑하는 사람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0절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하나님을 보신 분 있으신가요? 손 한 번 들어보세요. 하나님은 숨어 계신 분이예요. 하나님이 인간하고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계신 거예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인간에게 맡기셨어요. 인간에게 자유를 무한대로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 속에 숨어 계시기로 한 거예요. 하나님의 성품이 창조물 안에 새겨져 있습니다. 세상은 그분의 성품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고등종교(High Religions)들이 하나님은 이런 분이라고 더듬어 찾았는데 그 진리들이 거의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찾아낸 보편적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우리 기독교가 찾아낸 하나님의 대한 지식과 거의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보편적 지식이란 바로 사랑입니다. 세상의 많은 고등종교가 하나님을 인자와 사랑이 많은 분으로 이해했어요. 불교에서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쓰지 않지만 우주의 궁극적인 진리가 자비라고 이해하고 있어요. 유교에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케릭터가 사랑인데 그것을 인()이라고 불렀죠. 우주의 궁극적인 진리가 폭력이나 악이라고 이해하는 고등종교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성품인 사랑이 세상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죠.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도 사랑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에는 얘기해 줍니다.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왜 사랑이 사라지지 않습니까? 사랑은 이 우주의 핵심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핵심 진리는 바로 하나님이시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사라지시지 않기 때문에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추구하며 산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지식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사랑 많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재산을 많이 소유하는 사람보다 사랑을 많이 소유한 자녀들로 자라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사랑 안에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이 사랑이 무엇인지를 나타내기 위해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하고 있죠. 화목제사가 어떤 제사길래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감사나 서원할 제목이 있으면 소나 양같은 짐승을 잡아 제사장에게 갑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짐승의 일부만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고 나서 나머지 고기를 제물을 바친 사람에게 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동네 사람들과 고기를 나눠 먹어야 했습니다. 화목제로 드린 소나 양의 고기는 그날 다 먹어 치워야 하는 게 법이었어요. 소 한 마리를 한 가정이 하루에 다 먹어치우는 게 가능할까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걸 하루에 다 먹으려면 이웃 사람들을 초청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화목제 제사가 드려지는 날에는 동네 잔치가 벌여지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자기 이웃들을 초청하여 제사를 드린 고기를 서로 나눠 먹는 제사방법입니다. 이웃들과 고기를 먹고 나눔으로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라는 목적이 화목제의 첫째 목적입니다. 화목제의 다른 목적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 먹고 살기 힘든 이웃들이 화목제를 통해 고기맛을 보기를 원하시는 가난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가 의도된 제사방법이었어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드린 것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희생당하신 것은 사람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할 뿐아니라 사람들끼리도 화목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처럼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삶의 태도로 살아간다면 화목한 세상이 만들어질 것을 하나님은 아신 거예요.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세상이 바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세상이라는 겁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다른 사람의 죄를 지신 것처럼 나도 남의 짐을 대신 지는 삶의 태도로 살아가는 삶을 주님은 원하세요. 저 사람이 나에게 해준 것이 하나도 없더라도 나에게 소중한 고기를 나눠주는 따뜻한 마음이예요. 내 것을 나누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이 따뜻한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마지막 남은 희망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요? 이 질문의 정답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들로 인해 세상이 하나님을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우리가 서로 사랑합시다. 왜냐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처럼 자신의 가장 귀한 것들을 이웃들과 나누는 그런 아름다운 어린이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시몬처럼 마트료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나의 공간을 내어줄 줄 아는 그런 사랑의 사람들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Scripture: 1 John 4:7-11

Sermon: What Men Lives By? / Translated by Ji-Han Park

 

1.     Meeting of Semyon and Mikhail

 

Semyon the shoemaker lived in a farmer’s house whom he rented a room from. He

went to the store to buy sheepskin, and on the way home, went to collect money from

the farmer, whom he often repaired shoes for. But Semyon did not receive even a penny

from the farmer, and became drunk and filled with rage. On his way home, he saw a

naked man lying on the corner of the street, in front of the church, freezing. Generous

Semyon could not pass a man who was freezing to death, so he put his coat on him and

took him to his home. Semyon’s wife Matryona became angry and cursed at him. But

Semyon replied, “Matryona, is there no God in your heart?” She relented and offered

the freezing man a bed and clothes. The name of the freezing man was Mikhail, and he

was being punished by God outside the church.

 

2. Encounter with the Gentleman

Semyon said to Mikhail, "You have to work if you want to live with us." Mikhail said,

"Yes, I'll do anything,” and learned to mend shoes. Surprisingly, the beginner Mikhail

was a better worker than the skillful Semyon. Mikhail was smart, and was able to copy

Semyon’s techniques even from basic demonstrations. The rumor spread of Mikhail’s

talent, and Semyon was able to make a lot of money and improve his living situation.

One day, a gentleman ordered him to make shoes that would not burst even after a year

of wearing them. While Semyon was looking at the expensive leather and wondering

what would happen if he messed up, Mikhail began working on that order. But Mikhail

messed up the order and made sandals instead of shoes. Semyon angrily asked him,

“Why did you make sandals instead of shoes?” While he was yelling the gentleman’s

servant came in, saying that the gentleman had died in his carriage on the way home,

and to make sandals instead of shoes.

 

3. Meeting with two children

Six years passed, and Mikhail continued to work at Semyon's shop. One day a woman

ordered shoes for her twin girls. Semyon When I asked what kind of children they were,

the woman answered. “Six years ago, the parents of the children died. The father died

 

before the children were born and the mother died while giving birth. I was their

neighbor and had an 8 month old son of my own, so I adopted these children.

Unfortunately, my son died early, but my mill business grew successful, and I was able

to love and cherish these girls as if they were my own. Upon hearing this, Matryona

said, “Even if you can live without parents, you can’t live without God.”

 

4. Angel Mikhail

At that moment, the room lit up and Mikhail became an angel. Seeing this, Semyon

asked in fear, “You laughed three times when you came to my house, why did you

laugh?

Tell me why God punished you.” Mikhail said, “Six years ago God commanded me to

bring a soul to him. I went to the mother of the child who I was supposed to bring to

Him. But she begged me not to take him, and my heart weakened. I returned to God

saying that I couldn’t keep his command. God told me, ‘If you bring the child’s mother

instead, you will know 3 questions.’”

‘What is in a person’s heart? What is not given to people? What do people live for? You

will know the meaning behind these questions.” God said. Until then, Mikhail was told to

live among the people. “That is why he was curled up naked on the cold street,” he said.

“Semyon, you found me while I was dying. Under Matryona’s and your hospitality, I

learned that inside people is God’s love. That’s when I got my first question answered.

Next, a nice gentleman ordered a pair of shoes that could last a year but I knew he was

going to die soon. And so I knew the answer to the second question of what is not given

to man. What is not given to people is that they themselves do not know what they

need. The third answer of ‘what do people live for’ was answered by the mother who

lost her son. People live to love.

Everyone seems to live with thoughts of their own happiness, but in reality people live

because of the love that exists. Despite people seeming to live as if worrying about

themselves, they are in fact living out of love. People that love are living within God, and

God is living within them, because God is love.

With that, Mikhail returned to the heavens.

 

5. God's love for us by giving his Son as a fellowship offering

This story is based on the Russian writer Leo Tolstoy, who wrote the novel “what men

live by” in 1884. What do people live by? Love. 1 John 4:7-8 says, “Dear friends,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comes from God. Everyone who loves has been born of God

and knows God.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These verses tell us clearly. Only those who love can know God’s love. Why is this?

Because God is love. So only those who practice love can seek God’s heart and find it.

Romans 1:20 says, “For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God’s invisible qualities—his

eternal power and divine nature—have been clearly seen, being understood from what

has been made, so that people are without excuse.”

God is invisible. Has anyone ever seen God? God is hidden. God plays hide and seek

with humans. God created this world and entrusted it to man. He chose to hide in a

world he created with his own hands, in order to give complete and unrestricted

freedom to humans. God’s character is engraved into creation because he created it.

People cannot find God through only things in this world. But many high religions look

for a God and find almost identical beings. The universal being is based around love.

Many of the world’s higher religions believe that God is loving and merciful. For

example, Buddhism does not use the word God, but the ultimate truth is mercy. In

Confucianism, the most basic human character is love, but it is called benevolence.

There is no higher religion in which the ultimate truth is violence or evil. That is because

the greatest part of God is love, and it is embedded into his creation, the world.

1 Corinthians 13 says that even if everything in this world disappears, “love” does not

disappear. “Love never fades. But the prophecies are gone, the tongues have ceased,

Knowledge also disappears.” Why doesn't love go away? Love is the substantial truth of the

universe. The substantial truth of the universe is God. So God is love. Love never fades

because God never fades away. When people live in love, it means we live in the

pursuit of God. Only those who love can know God. Only those who love can know

God’s heart. I would rather have my children turning out to be loving people than

successful and knowledgeable people. All the ultimate truths in the world are within

love.

 

John said that God sent his one and only son to the earth to show his love for us, as a

sacrifice for the fellowship offering for our sins. There is no greater love than this. What

is a fellowship offering? Is it because the sacrifice has God’s love hidden within? People

used to make sacrifices by slaughtering an animal so that the priest could burn part of

the animal and offer it to God. The rest of the animal (the meat) was given back to the

people so that they could share with their neighbors. It was a law to eat all the meat that

was offered as a fellowship offering that day. Was it possible for one family to eat a

whole cow in one day? No. That’s why they shared it with their neighbors. So on the day

of the fellowship offering, a neighborhood feast is held. The person who held the fellowship

offering invites his neighbors, sharing the meat and joy. The main purpose of the fellowship

offering is to maintain a harmonious relationship with the neighbors. Another purpose is

to pray and let the poor and underprivileged neighbors - those who struggled to make

ends meet - can taste the meat through the offering. The fellowship offering was a sacrifice

method intended to show God’s mercy toward the poor.

What does it mean that God sent his son as a fellowsip offering? It means that the

sacrifice of Jesus Christ was a peace offering for many people. God knew that if people

lived their life like Jesus with an attitude of willingness and sharing with others then it

would become a harmonious world. God wants a world where not just I eat well and live

well, but where we share our successes and fortunes. Just as the sinless Jesus bore

the sins of others, I also live with the attitude of bearing the burdens of others. Even if

my neighbors have done nothing for me, I will treat them as if they have shared the

meat of their offering with me. God’s final hope that he has given to us is that we will

treat and share with others, even the unfortunate, our love and fortunes.

What do people live for? The answer is love. I hope the world will get to know God

through our actions, as we love God and also love our neighbors. Loving Friends, let us

love each other. Because love first came from God. God wishes for us to share our

success and fortunes with those around us. Like Semyon and Matryona, I hope we

become sharing, caring, and loving people.

 

Posted by speramus

본문: 창세기 124-10

제목: 눈을 감고 떠나라

 

1.믿음과 순종의 여정

지난 주에 우리는 아브람의 이야기를 통해 믿음의 본질이 떠나는 것에 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은 우리를 지탱해주는 익숙한 가치들과 사고 체계라고 했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옴으로 우리의 믿음의 여정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세상은 참되고(truth) 선하고(good) 아름다운(beauty) 세상이었어요. 하나님은 이 선한 세상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에게 맡기며 대신 다스려 달라고 부탁하셨죠. 하나님은 그분의 나라를 인간에게 위임하신 겁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획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세상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기까지 하셨다고 창세기 6장에서는 말씀하세요. 얼마나 이 세상이 엉망이 되었는지 하나님의 후회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의심과 불순종으로 시작된 죄와 심판의 악순환은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해 내려갔습니다. 이 악순환을 하나님은 끊기를 원하셨어요. 새로운 선순환이 일어나기를 바라셨죠. 헝클어진 실타래를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려 놓으려면 실마리를 찾아야 하겠죠? 인류가 하나님을 떠나고 타락하게 된 그 시작점으로 돌아가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실수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제가 작년에 예배의 실패, 소명의 실패라는 설교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실패는 예배와 부르심의 자리에서 이탈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왜냐면 에덴은 온 우주의 성전이었고 아담은 그곳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 아담이 악의 세력과 손을 잡고 하나님이 아닌 것에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자기가 있었죠. 자기가 보고 느껴지는 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순종하지 않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원상태로 돌려 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브람과 사래가 아담과 하와의 반대로 해야 하는 겁니다. 아담이 말씀을 믿지 않았기에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했구요. 아담은 순종하지 않았기에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믿음과 순종이야말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요구하시는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들을 중심에 놓았기에 아브람을 부를 때 하나님 자신을 강조합니다. “내가 보여주는 땅으로 가.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줄게. 내가 복을 배풀거야. 내가 저주할거야.” 계속해서 나, , , , , 하나님 자신을 강조합니다. 아담처럼 너 자신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을 따르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따라가는 순종의 여정이 우리들의 신앙의 여정의 핵심이라는 것을 아브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2. 약속과 응답의 불연속성

아브람의 네러티브는 약속과 응답이라는 큰 틀에서 보아야 합니다.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어가는 지의 과정과 여정을 살펴 보면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 함을 우리는 배우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브람에게 주신 약속은 명령의 형태로 주어졌습니다. “너의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 너는 복이 되라는 것은 명령이기도 했지만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명령인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누리던 모든 안전한 기반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잃는 엄청난 상실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떠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기존 틀 위에서는 세워질 수 없고 새 판에서 시작해야 했기에 떠나야했습니다.

 

문제는 떠나는 약속에 순종했음에도 하나님의 약속이 곧바로 성취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우리 믿음 생활의 딜레마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 생활은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죠. 내가 믿고 따라왔던 나 중심의 가치관에서 과감히 떠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탈출해서 떠나는 것이 신앙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함으로 새로운 가치관을 향해 과감히 옮겨 가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만 믿고 떠났는데 여전히 인생에 시험이 가득하고 약속의 성취는 커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약속과 응답 사이의 불연속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약속을 했으면 그 약속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데 그 약속이 응답되기까지 너무나 긴 시간이 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이 생긴다는 거죠.

 

아브람의 이야기를 하나님의 약속과 그 응답의 큰 틀로 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브람이 정작 겪고 있는 현실을 한 번 봐보십시오. 4절 말씀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진짜로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혼자서 떠난 것이 아닙니다. 아내 사래는 65살 할머니고 조카 롯도 함께 떠납니다. 그리고 그의 집안에 많은 식솔(members)들이 있었습니다. 재산도 많았는데 아마도 가축떼였을 겁니다.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내 한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만도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드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저도 아내가 중국 선교에 동의하는데 7년이 걸렸습니다. 아무리 가부장 사회라지만 사래를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렇다면 뭔가 약속의 성취가 진행되는 것이 눈에 보여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6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아브람 일행이 가나안 땅에 도착한 후 줄곧 이동한 이야기만 나오고 있습니다. 처음에 세겜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은 신령한 참나무에서 제사가 드려지는 지방의 산당(High Place, shrine)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와 아브람이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는 이야기를 연이어서 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가나안 사람들이 그 나무 밑에서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는데 아브람은 그곳에 하나님을 위해 제단을 쌓았다는 겁니다. 비교대조를 하고 있는 거죠.

 

7절을 읽으면서 저는 피식 웃었습니다. “내가 너의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 지금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그 약속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아브람에게 하는 말이잖습니까? “내가 너에게 이 땅 줄게.”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는 것은 더 큰 약속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긴 합니다. 자손이 있어야 땅이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자손이 없으면 아브람에게 그 땅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 의미로 따져 보면 네 자손에게 이 땅 줄게라는 말이 더 타당하긴 하죠. 문제는 다시 약속을 상기시켜 주는데도 아브람이 계속 남쪽으로 이동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벧엘과 아이성 사이의 산악지대로 갔다가 아예 이스라엘의 최남단인 네게브까지 이동해 갔다고 성경은 말해 줍니다.

 

왜 이동해 갔겠습니까? 그땅에서 정착하기가 녹녹치 않았던 겁니다. 아브람 혼자가 아니라 많은 식속들과 가축들을 거닐고 이동해야 했던 아브람을 그 땅 사람들은 반길 리가 없었겠죠. 아브람은 세겜 땅에서 점점 남쪽으로 내려가 결국 헤브론(Hebron)과 브엘세바(Beersheba)가 있는 네게브까지 이른 겁니다. 이스라엘 지형을 보면 세겜 북쪽으로 므깃도 평야가 형성되어 있어 농사짓기 좋은 땅입니다. 그런데 세겜에서 남쪽으로 산악지대가 나오고 그 산악지대보다 더 남쪽으로 가면 척박한 황무지가 나옵니다. 네게브는 농사도 짓기 힘들고 가축떼를 돌보기도 힘든 그런 황량한 땅입니다. 아브람이 세겜 남쪽으로 계속 이동해 갔다는 것은 남쪽으로 밀려났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10절 말씀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 땅에 기근이 듦으로 인해 아브람 가족이 약속의 땅에서 이탈해 갔다고 이야기 합니다. 가나안 땅이 아니라 이집트 땅으로 피해갈 수 밖에 없는 처량한 나그네 신세가 아브람의 신세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 맞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곳으로 왔는데 왜 이 모양인 겁니까? 왜 계속 이동해야 하고 왜 계속 삶은 지쳐만 가고 불투명해지기만 하는 겁니까?

 

3. 불투명한 삶, 그리고 신비

아브람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저주받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을 믿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따르기로 선택한 것이죠.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자기에게서 큰 민족이 나올 확률이 0%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로 합니다. 자신을 통해 큰 민족이 탄생하고 그 민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고 세계 모든 민족의 본이 된다는 그 높은 뜻을 따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여전히 안갯 속입니다. 불투명하기만 한 그 길을 계속 걸어야 하는 아브람의 심정은 어떨까요?

 

방을 정리 어지럽히는 것이 어렵습니까 아니면 치우고 정리하는 것은 어렵습니까? 아담의 길을 따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죄든 한 번 짓기 전에 갈등하고 고뇌하고 몸부림 칠지 모르지만 일단 한 번 선을 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 그 죄는 쉬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바늘 도둑이 되는 건 어려울지 모르지만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브람의 길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담이 망가뜨려 놓은 길을 다시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수고스럽고 긴 싸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수고스러운 일입니다. 은혜라는 연료가 없이는 애당초 움직일 수 없는 길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도저히 시작되지 못할 기적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는 믿음의 삶입니다. 

 

저도 20년을 계획하고 준비한 중국 선교사의 삶이 4년만에 추방으로 마무리 되는 것을 보면서 적잖게 당황했습니다. 아니 황당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따라 온 것이 맞는 걸까라는 그런 의심이 생기더라구요. 이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 내가 그려온 나의 비전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분명히 20년 넘는 시간 동안 검증의 과정을 거치고 여러 기적들을 맛보며 선택해 온 여정이었는데도 그런 의심이 들더라구요.  종잡을 수 없는 방황이 시작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여정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돌아보니 하나님의 구체적인 인도하심이 있었더라구요. 중국에서 추방 되기 전에 하나님은 1년 동안 중국 사람들이 아니라 한인교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인 교회를 하면서 생기게 된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풀러 신학교 온라인에 등록해 놓았는데 추방 후 한 주만에 합격 통지서가 날아오더라구요. 그 계기로 추방과 함께 미국에 건너올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어떤 영화 대사처럼 ~ 하나님에게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불투명한 인생인데 정말 신비로 가득한 인생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 삶이 오늘 내일만 불투명한 것이 아닙니다. 인생 자체가 불투명한 것입니다. 믿음의 여정은 불투명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라가는 삶 자체가 불투명한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며 그분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구요. 히브리서 11장은 이런 믿음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는 유명한 장이죠. 거기서 아브람의 삶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히브리서 118-9절 말씀입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 그는, 약속하신 땅에서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거류하였으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

아브라함의 인생이 한 마디로 장막 인생, 텐트 인생이었다고 합니다. 약속하신 땅에 갔는데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이리 저리 떠돌아 다녔다.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는 유목민들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텐트죠. 39절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도착했는데도 야 여기가 아닌가봐~ 딴 데로 가자.” 베델과 아이 사이에 텐트를 쳤는데도 가나안 사람들에게 밀려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는 서러움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랑처럼 보이는 불투명 속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발견하게 됩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는 약속의 지연과 유보를 믿음의 선진들이 경험했다는 겁니다. 이 것은 우리 삶에도 시사하는 바는 믿음이라는 여정이 본디 그렇다는 겁니다. 뻔하다면 절대 신비롭지 못할 것입니다. 불투명하기에 우리 삶에 신비로운 일이 일어날 때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선물을 갖고 계시는 분을 향한 신뢰

그런데 본문 가운데서 주목해 보아야 하는 내용은 아브람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은 것과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부르다는 히브리 동사 카라는 큰 소리로 외쳐 부르는 동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듣고 있습니까? 내가 이 길을 제대로 가고 있긴 한 겁니까? 대답해 보세요.” 아브람은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찾은 겁니다. 그리고 제단을 쌓은 것은 아담이 에덴에서 실패했던 그 행위였습니다. 제사장은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민족과 하나님을 연결할 다리 역할을 위해 아브람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한 겁니다. 예배는 정체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아브람은 약속의 땅에 왔는데도 여전히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자신의 삶 한가운데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로 한 것입니다. 예배는 그의 삶에 드리운 안개를 거둬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겁니다.

 

지금은 자신의 손바닥 안에 없는 선물 목록들만 잔뜩 받아 들고 떠나 온 아브람은 그 선물을 줄 수 있고 주겠다고 약속한 당사자를 부르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부른다는 것은 선물을 주실 분을 기억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면서 선물을 주실 분을 압박하는 거죠. 아이들이 그러잖아요. 생일이 반 년 넘게 남았는데 그때부터 엄마 아빠를 압박합니다. “내 생일 때 이거 이거 사줘야 해요. 엄마 아빠 알지?” 이 아이들은 선물이 누구로부터 오는 지 압니다. 아직 자기 손에 선물이 들어와 있진 않지만 그 약속을 계속 상기시키는 겁니다.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삶 가운데 우리가 취할 태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선물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5.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

여러분 중에 미국 시티즌십을 따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여러분이 대한민국 국민이었다가 미국 국민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구요 적잖은 문화충격을 극복하고 문화적응의 노력이 필요하셨을 겁니다. 여러분들 안에 한국 사람으로 가지고 계셨던 문화나 습관들이 있으시겠지만 그러나 미국화된 문화와 습관에 이제 익숙해 지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것은 이것보다 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끊임 없이 나를 쳐서 복종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를 따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지난한(difficult) 여정입니다. 믿음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졌음을 믿는다면,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우리를 적응시켜 가는 기나긴 여정이 필요합니다. 아브람의 믿음의 여정은 바로 그것을 말해 주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끝이 아니라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거죠. 그런 면에서 믿음은 점이 아니라 선이자 면입니다.

 

칼뱅은 이 믿음의 여정을 이렇게 말한 적 있습니다. “눈을 감고 떠나라너희 나라를 포기할 때까지 온전히 너희를 나에게 맡기라하나님께서 선물을 잔뜩 쥐고 계십니다. 그 선물은 나를 위한 선물인 줄 알았더니 내 손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전해져야 하는 선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선물이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는 그 기쁨이 얼마나 큰 줄 알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가고 있습니다. 부디 그 약속을 붙들며 가는 길이 험하고 고되고 지칠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계속 견지(유지)하십시오. 그리고 그 믿음의 삶을 견지하게(유지)해주는 힘은 선물을 쥐고 계신 하나님을 붙드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부르짖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갑작스레 찾아오는 불협화음들이 많아지고 혼란스런 상황에 처하시더라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선배들이 이미 거쳐 왔던 과정입니다. 아브람은 계속 장막을 이동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많은 이동을 경험하신 분들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아실 겁니다. 저도 결혼 후에 9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그 중에 1000Km 이상을 이동하여 이사를 한 것은 다섯 번이었습니다. 이동할 때마다 고백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내 인생의 주도권은 하나님 당신에게 있습니다. 내가 어딜 가든 당신이 나의 주인이시고 내 인생은 당신의 손 안에 있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불투명한 삶을 즐기십시오. 하나님께 여러분의 인생을 맡겨드리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그 모든 여정이 끝나면 선물 꾸러미들로 여러분의 텐드가 가득 채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착한 것 같지만 진짜 정착한 건지 의구심이 드시는 분들이 여기에는 상당히 많으실 겁니다. 그러한 불투명한 인생 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부르시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찾으시는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선물을 주시고 우리 삶에 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알아가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Main text: Genesis 12:4-10

Title: Close your eyes and leave   / Translated by Myung-Ha Kim

 

1. The Journey of Faith and Obedience

Last week we talked about the essence of faith in letting go, through the story of Abram. “Mainland relatives and father’s house” are typical values and thought systems that support us. Our journey of faith begins when we leave our native land, our relatives, and our father's house, and enter the world of God. In the beginning, God made the world a true, good, and beautiful one. God entrusted this good world to humans made in his image and asked them to rule it instead. God has entrusted his kingdom to man. However, because of Adam and Eve's disobedience, God's plan began to go awry. Genesis 6 tells us that God even regretted creating such a world. You can guess how messed up this world is through God's regret.

 

The history of rebellion that began with Adam's doubt and disobedience continued to repeat itself. God wanted to break this vicious cycle. He hoped that a new virtuous cycle would take place. To untangle a ball of thread back to its original form, you must find the thread head, right? It was necessary to go back to the starting point, where mankind fell away from God, and go in the opposite direction to the mistake Adam and Eve made. This is the part where we can know what God requires of Abram. Last year, I gave a sermon titled “Failure of Worship, Failure of Call”. I have said that Adam and Eve's failure was deviating from the position of worship and calling. This is because Eden was the temple of the entire universe and Adam was the person God established as the priest there. However, Adam, the priest, joined hands with the forces of evil and began to worship things that were not God. At the center was himself. He did what he saw and felt.

 

Their fall began from doubting and disobeying the Word of God. How can I get this back to its original state? Abram and Sarai had to do the opposite of Adam and Eve. Since Adam did not believe the Word, Abram had to believe the Word of God. Adam did not obey, so Abram had to obey the word of God. Faith and obedience were the core content that God required of Abram. Because Adam and Eve put themselves at the center, God emphasizes Himself when calling Abram. “Go to the land I show you. I will make you a great nation. I'll make a fortune. I will curse.” Continue to emphasize me, me, me, me, me, God Himself. Like Adam, do not follow yourself, but follow God. Through Abram, we can see that the core of our journey of faith is the journey of obedience, believing in the promises God has spoken and following those promises.

 

2. Discontinuity between promise and response

Abram's narrative must be viewed in the broad framework of promise and response. We can learn and realize what our faith should be by looking at the process and journey of how the promise to Abram was being fulfilled. The promise to Abram was given in the form of a command. “Leave your country, your relatives, and your father’s house. “Be a blessing” was both a command and a promise. We can only guess how difficult it is to follow such a command. It was not easy for him to give up and leave all the safe grounds he pleased. This is because not only is there a threat to life, but it is premised on the consequence of losing everything you could depend on. It's not easy to leave. However, the Kingdom of God could not be built on the existing framework and had to start from a new one, so they had to leave.

 

The problem is that even though they obeyed the promise to leave, God's promise was not immediately fulfilled. The dilemma of our faith life is right here. A life of faith begins with leaving. It starts with boldly leaving the self-centered values that I believed in and followed. The point where faith begins is the transition point from self-centered to God-centered. By believing in God's Word and trusting in God's promises, we boldly move toward new values. However, there are many times when life is still full of tests and it seems like nothing has happened, let alone the fulfillment of the promise. You could call it the discontinuity between promise and response. This is an illusion that nothing is happening even when God gave us a promise and you realize that it will be fulfilled, but it takes too long for the promise to be answered.

 

I said that we should look at Abram's story as a frame of God's promise and its response, but take a look at the reality that Abram is actually experiencing. Verse 4 says that Abram believed God's promise and left. But he didn't leave alone. His wife, Sarai, a 65-year-old grandmother, and their nephew Lot also left with Abram. And there were many members in his family. Because he was a wealthy man, they probably had a herd of cattle. You should know that leaving Haran and going to Canaan is not an easy decision. We know that just convincing your wife can take a lot of energy and time. It took me 7 years for my wife to agree to go to be a missionary in China. Even in a patriarchal society, it would not have been easy to convince Sarai. After a long difficult journey, they finally arrive at the land of Canaan. Since they have obeyed and arrived, one would expect to see some kind of fulfillment in the promise of God. However, if you look at verses 6 through 10, the bible tells us only the story of their journey and moving from place to place, not anything about promises. At first, they arrived in the land of Shechem. People there had a local high place (shrine) where sacrifices were offered at the sacred oak tree. Why is it that the Canaanites lived there and that Abram built an altar there? The Canaanites were in idolatry under that tree, and Abram built an altar to worship God. The Bible is making a comparison.

 

As I read verse 7, I chuckled. “I will give this land to your offspring.” Eh? God is talking to Abram who left everything and obeyed to receive the promises of God. Shouldn't it be "I'll give you this land"? Of course, giving this land to his descendants is a reminder of a greater promise. The land has meaning only when there are descendants. What would the land mean to Abram if he had no offspring? In that sense, “I will give this land to your offspring” makes more sense. Despite the recent reminder of God’s promise, we do not see anything but the continuous migration of Abram and his companions. The Bible tells us that they went to the mountainous area between Bethel and Ai, and then moved all the way to the Negev, the southernmost point of Israel.

 

Why did they move? Because it was not easy to settle in the land. The people of the land couldn't have welcomed Abram, who had to walk and move around with many food and livestock, using the land’s resources and space. From the land of Shechem, Abram gradually went south and eventually reached the Negev where Hebron and Beersheba are. Looking at the terrain of Israel, the plains of Megiddo are formed to the north of Shechem, making it a good land for farming. However, a mountainous area emerges south of Shechem, and a barren wasteland emerges further south of the mountainous area. The Negev is such a barren land that it is difficult to farm and take care of livestock. The fact that Abram continued to move south of Shechem tells us that he was pushed south.

 

Verse 10 tells us that that was not the end, but that Abram's family departed from the promised land due to a famine in the land. Abram's life became that of a miserable stranger who has no choice but to escape to the land of Egypt, not the land of Canaan. Is this what God promised? Abram believed in God's promise and came to the place God showed him. Then, why is it like this? Why does Abram’s life keep getting exhausting and unclear?

 

3. An unclear life and mystery

Abram decided to believe in God who called him. He was unable to bear children. However, He chose to follow God. He chooses to believe God's Word, even though from a biological point of view he has a 0% chance of a great nation coming out of him. He chose to follow God’s promise and will that a great nation would be born through him, that nation would occupy the land of Canaan, and become an example for all nations in the world. Even so, his life is still in a fog. What about Abram's feelings as he has to continue walking down the unclear path?

 

Is it more difficult to clutter up your room or to clean and organize it? It is not difficult to follow Adam's path. You may struggle, agonize, and struggle before committing any sin, but once you cross the line, that sin becomes easy from then on. “It may be difficult to become a needle thief, but it is not difficult for a needle thief to become a cow thief.” Conversely, following Abram's path is not an easy task. It is because it takes a long and laborious battle to restore the path Adam destroyed. In a way, following God's will and being a Christian is hard work. It is a path you can’t go down in the first place without the fuel of grace. A miracle that cannot begin without the inspiration of the Holy Spirit is a life of faith that follows God's promises.

 

I was quite taken aback when I saw that my life as a missionary in China, which I planned and prepared for 20 years, ended in expulsion after only 4 years. It almost felt like a joke. I began to doubt whether it was right that I had followed God. I also thought that this might not be my vision, that maybe I have drawn the path based on my preferences. It was definitely a journey that I had chosen through the process of verification for over 20 years and tasted many miracles of God, but I had such doubts. A wild wandering could have begun. However, in the midst of this journey, I came to think that there must be God's will.

Looking back later, I realized that there was specific guidance from God. Before I was expelled from China, God made me serve the Korean church, not the Chinese, for a year. And to solve the questions that arose while attending the Korean church, I registered online at Fuller Theological Seminary. Who would have known that I would come to the United States after a recent deportation from another foreign country? Like a line from a movie, I couldn't help confessing, "Oh, God had a plan." At that time, I came to think that it is an unclear life, but it is really a life full of mysteries.

 

Our lives are not only unclear today and tomorrow. Life itself is unclear. The journey of faith is unclear. The life itself that believes in and follows God's promises is choosing an unclear life. That is why we must rely only on God, discern God's voice, and follow Him. Hebrews 11 is a famous chapter that introduces us to the lives of those who lived such a life of faith. There, the life of Abram is evaluated like this. This is Hebrews 11:8-9. “8 By faith Abraham, when called to go to a place he would later receive as his inheritance, obeyed and went, even though he did not know where he was going. 9 By faith he made his home in the promised land like a stranger in a foreign country; he lived in tents, as did Isaac and Jacob, who were heirs with him of the same promise. “

It is said that Abraham's life was, in one word, “a life in a tent.” He went to the promised land but wandered here and there like a stranger living in a foreign country. A tent symbolizes nomadic people wandering here and there. This is verse 39. “These were all commended for their faith, yet none of them received what had been promised.”

Even after arriving in Canaan, the land of promise, he had to move somewhere else. Even though he pitched a tent between Bethel and Ai, he had to endure the sorrow of being pushed southward by the Canaanites. However, you will discover the mystery of God in the unclarities. It is said that the forefathers of faith experienced the delay and reservation of the promise of not receiving what was promised. What this also implies in our lives is that the journey of faith is inherently like that. If it is obvious, it will never be mysterious. Because it is unclear, we are thrilled when something mysterious happens in our lives.

 

4. Trusting in the Gift Holder

However, what we should pay attention to in the text is that Abram built altars wherever he went and called on the name of God. What does it mean to call on God's name? The Hebrew verb to call, ‘Kara’, means the action of calling out loud.

“God, are you listening? Am I on the right track? Please answer.” Abram desperately sought and found God. And building an altar was the act that Adam failed in Eden. Priests are those who build bridges between people and God. Abram built an altar and worshiped God in order to serve as a bridge to connect all nations with God. Worship is identity. Worshiping God is an act of confirming our identity as God's priests. Having come to his promised land, Abram has built an altar in the midst of his still unstable and uncertain life. He decided to call on the name of God. Worship was a struggle to reap the fog in his life.

 

Abram, who has left with a list of presents that are not yet in the palm of his hand, is calling to the one who can and promise to give them to him. Calling on God is an act of remembering the Giver of gifts, and putting pressure on God to give the gift. Children are like that. Their birthdays are over half a year away and yet they start to put the mom and dad under pressure. “I want this and that for my birthday, okay?” These kids know where gifts come from. They don’t have it yet, but they continue to remind them of it. This is the attitude we need to take in the midst of an unclear and unstable life. It is remembering God who promised gifts and calling on His name.

 

5. Being a People of the New Kingdom of God

Some of you have obtained US citizenship. Think about the process from being a citizen of the Republic of Korea to become a citizen of the United States. It wouldn't have been easy. It probably took quite a bit of time, and it would have taken a lot of effort to overcome cultural differences and adapt. You may have some of the cultures and habits that you had as Koreans, but you are now accustomed to the Americanized culture and habits.

 

Building God's kingdom with God may require longer time and effort than this. It is because it requires an effort to constantly self-discipline in order to obey God's will. Being a Christian, being a disciple of Christ, and following Christ is a difficult journey. Faith is not a one-time event. If we believe that by accepting Jesus we have been accepted as children of God, we need a long journey to continue transforming us into citizens of God's kingdom. Abram's journey of faith tells just that. It tells us that receiving God's promise and becoming God's people is not the end, but just the beginning. In that respect, faith is not a point, but a line and aspect.

 

Calvin once described the journey of faith like this. “Close your eyes and leave… Entrust you completely to me until you give up your country.” God holds a bunch of gifts. I thought it was a gift for myself, but it was a gift that had to be passed on to others through my own hands. Nevertheless, we hold on to God's promise because we know how great the joy is when that gift is passed on to others through us. Please hold on to that promise and do not give up even if the road is rough, arduous, and exhausting. Continue to persevere. And remember that the only way to sustain that life of faith is to hold on to God who holds the gift. Never cease to cry out and worship to meet God.

If you find yourself in a chaotic situation with many sudden dissonances in your life, do not panic. This is the process that our ancestors of faith have already gone through. As Abram continued to move from tent to tent, he learned to obey God. Those of you who have traveled a lot know how difficult this can be. I also moved 9 times after getting married. Five of them moved more than 1000km. Do you know what you confess every time you move? “God, you are in control of my life. Wherever I go, you are my master and my life is in your hands.” Enjoy the unclear life of following God. Don't be afraid to surrender your life to God. Because at the end of the whole journey, your tent will be full of gift packages. There are probably quite a few people here who seem to have settled but have doubts about whether or not they are really settled. In the midst of such an unclarity, I hope you will call God, worship God, and find God. And through that journey, I bless you to deeply know the heart of God who wants to give gifts and bless our lives.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