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11:27-12:4

제목: 만민을 위한 선민

 

1.

제 군대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주임원사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은 그 부대의 어머니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부대의 모든 분야에 간섭하고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끔 못된 시어머니처럼 병사들을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무슨 일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제가 주임 원사실에서 무릎을 꿇은 채 벌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저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교회 다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교회 관련된 주제로 시비를 걸고 싶었나 봅니다. “~ 기독교는 이스라엘에서 시작됐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만 다루는 종교인데 그걸 왜 한국 사람이 믿어야 하냐?”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못해 드렸습니다. 덕분에 얼차려 시간이 늘어나긴 했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이스라엘의 종교이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룬 성경을 왜 우리는 믿고 있는 걸까요?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선택된 민족을 부르셔야만 한 것일까요? 이스라엘보다 앞서 왜 아브람이란 늙으신 할아버지를 선택하셔야만 했을까요?

 

그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창세기 1-11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창세기 11장까지의 내용은 인류의 원역사(原歷史, primeval history)에 관한 내용입니다. 원역사라함은 인류 문명의 모든 시기에 경험된 보편적인 역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인류 문명이 시작될 때부터 역사 속에서 반복적이고 보편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을 기록한 역사라는 겁니다. 이 원역사에서 인간의 역사는 선하게 창조하여 시작합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진행되면서 더 나빠지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죠. 이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과 인류를 창조하실 때 의도하지 않은 방향이었습니다. 창세기의 시작과 함께 영적 세계의 반역과 천사적인 존재의 반역에 동조하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나오죠.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뱀과 함께한 인간의 반역은 초동 진압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에 종말에 진압될 것이라는 암시를 우리에게 남겨주기만 했죠.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 뱀의 머리를 밟지만 그 뒷꿈치는 상하게 될 것이다. 뱀과 인간의 하나님을 대항한 구테타는 초동에 진압되지 않고 종말에 진압됩니다. 요한계시록 19-20장에 가서야 옛 뱀이라는 이름으로 이 쿠테타 세력들은 무저갱(Abyss, 深淵)으로 집어 던져지게 됩니다. 이 인류의 시점과 종점을 관통하는 주제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악의 세력과 동조하면서부터 인간의 역사는 순환적인 역사(Cyclical history)가 되어버립니다. 즉 아무런 목적(telos, eschaton)도 없이 순환하기만 하는 역사인 거죠.  자세히 말해서 죄와 그에 대한 심판이 순환합니다. 이러한 순환적인 역사의 과정에서 여러 유형(type)의 인류가 출현하죠. 아담형, 가인형, 네피림(Nephilim), 바벨탑형 인류입니다. 아담형 인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욕망을 좇아간 인류입니다. 가인형 인류는 자신의 가족을 죽일만큼 인내하지 못하고 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인류입니다. 노아시대의 네피림형 인류는 자기 가족을 넘어 다른 민족들을 죽이고 학살하는 인류로 음란하고 폭력적인 인류였습니다. 창세기 11장에 가서 인류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는 교만을 보여주죠. 하나님은 이런 과정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것은 죄와 심판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기존 인류에 대한 대안으로서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원 계획(redemption plan)의 시작이었습니다. 죄와 악의 순환적인 역사 가운데 구속적인 역사(redemptive history)를 시작하고자 하신 겁니다. 이제 보편적인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개입하시는데, 선택된 사람과 선택된 민족에 의해 이끌어져 갈 역사인 겁니다. 보편적인 역사는 선택된 민족의 역사에 의해서 견인되어 나아갈 것입니다.

 

2.

창세기 10장과 11장에는 족보가 나옵니다. 족보가 나오는 이유는 인류의 구세주가 여자의 후손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창세기 315).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 중에서 뱀의 머리를 칠 구세주를 보낼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나온 족보는 구속사적인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구속사적인 의미란 뜻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직접 이끌어 가시는데 모든 인류를 구속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창세기 11장 후반부에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셈족의 족보가 등장합니다. 셈의 후손이었던 데라의 아들 아브람이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명령하시죠. “너는 복이 될찌라(You will be a blessing)”. 그런데 왜 하필 아브람입니까? 왜 하나님은 이미 출산의 가능성을 완전히 상실한 75세의 늙은이인 아브람을 불러서 이 거대한 구속의 역사를 시작하시려는 것인가요?

20세의 팔팔한 청년이면 훨씬 수월했을텐데 말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이 인류에게 허락하신 축복의 절정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창조의 축복은 모든 생물 세계와 인류를 지탱시키는 근본적인 동력이었습니다.  이러한 창조의 축복으로 끊임 없이 이어져 내려오던 족보가 아브람에의해 멈출 위기를 맞습니다. 창조의 축복의 관점으로 보면 아브람과 사래는 저주받은 자입니다. 낳고 낳음의 수 없는 반복 속에서 사래의 불임은 갑작스런 불협화음과 같습니다.

아브람의 본토 친척 아비집의 족보가 이어지지 못할 위기에 처해져 있는 상황을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아브람은 자연적인 방식에 의해서 본토 친척 아비집의 족보를 잇는 데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은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로 세워진 견고한 문화를 상징합니다. 이러한 고대 근동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자 후계자를 낳지 못하는 부부는 신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되어졌습니다. 게다가 아브람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는 달의 신을 섬기는 이방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부르심을 받기 전에 아브람은 달의 신의 저주를 받아 불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자신을 한탄했을 겁니다. 그의 삶은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임하기전의 아브람을 상상해 보면 그의 암울한 현실이 느껴집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목적 바깥에 방치된 삶을 살고 있었을 겁니다. 그는 운명주의에 주저앉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아브람을 저주로부터 부르고 계십니다.

 

3.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살고 있는 땅과 태어난 곳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여러분 갑자기 이런 명령을 여러분이 받는다면 어떤 느낌이시겠어요? 당황스럽지 않겠습니까? 익숙한 곳을 떠나 전혀 낯선 땅으로 옮겨 가라는 겁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가부장적인 권위 하에서 세워진 엄격한 사회 체계를 말합니다. 이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은 너무나 과격한 요구였습니다. 나의 모든 안전망을 떠나야 하는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혈연적이고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모든 연결고리를 끊으라는 요구는 정말 쉽지 않은 명령이었을 겁니다.

 

아브람은 그러한 모든 연대와 연결고리를 끊고 떠나는 창조적인 분리를 감행해야만 했습니다. 출애굽기에 앞선 탈출의 이야기가 바로 아브람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작정 그를 불러내고 있지 않습니다. 그에게 떠나는 대신 약속을 주십니다. 아브람은 이 약속을 붙들고 믿음의 탈출을 감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네 가지였습니다. , 큰 민족, 이름, 임재와 보호가 그것입니다. 이 네 가지 약속 중에 가장 놀라운 약속은 자기 세대에 대물림도 못하는 아브람을 큰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브람은 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야 합니까? 그것은 그가 세계 만민의 복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세계 만민의 복이 되기 위해 아브람은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의 결속에서 분리되어 탈출해야만 했습니다. 한 개인을 지탱해주고 보호해줄 수 있는 생명과 같은 씨족 사회를 떠나라는 명령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제 아브람으로부터 시작될 하나님의 나라는 기존의 방식에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blood)과 육(body)의 유대로 무의미하게 순환되어 온 인류의 원역사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초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혈과 육의 유대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위에 건설된 나라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야만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지연과 인종 그리고 이념 등에 의해 만들어지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에 의해 믿음 위에 새워진 새로운 나라입니다.

 

우리 말 성경은 우리의 어순에 따라 해석이 되어 있지만, 3절의 목적절을 정확하게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수 있도록,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할 것이다.” 이 목적절에서는 아브람을 복과 저주의 기준점으로 삼는 하나님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이유는 만민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입니다. 타락한 인류 전체를 한꺼번에 돌아오게 할 수 없다면, 한 사람을 통해 이뤄지는 선택된 민족을 통해 모든 민족을 돌아오게 하는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제 하나님은 전 인류와 교섭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사람, 선택된 민족을 상대로 교섭을 시작하시는 겁니다. 이들과 교섭하시는 이유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그러니까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생학적인(eugenics) 실험을 시작하고 있는 겁니다. 좋은 씨앗 하나로 시작하여 온 세상에 좋은 열매를 퍼뜨리는 실험을 하고 계신 겁니다.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선택된 아브람이라는 씨앗 하나를 하나님은 집어 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씨앗은 사람들이 볼 때 싹을 띄울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보잘 것 없는 씨앗인 겁니다.

 

4.

하나님은 온 세상을 망가뜨려 놓은 아담형 인류의 대안으로 아브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아브람을 축복한다는 말은 아브람과 같은 믿음의 길을 따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아브람과 같이 믿음의 결단을 하고 약속을 따라 가기로 결정하는 자들의 삶은 하나님이 축복하시겠다는 겁니다. 반대로 그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할 것이다라는 뜻은 아브람이 따라간 믿음과 순종의 길을 반대하는 자들은 적대시하겠다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37절에서는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길을 걷는 모든 이방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에서 난 사람들이야 말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여러분은 아십시오.”

 

저번에 칼럼에도 제가 한 번 쓴 적이 있는데요. 제가 이해하는 구약성경의 한 줄 요약은 출애굽에 실패한 이스라엘의 이야기입니다. 출애굽은 몸과 정신이 이집트로부터 분리되고 탈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존의 가치관이 아닌 새로운 가치관을 선택하는 겁니다. 이집트의 파라오 체제 아래서 어느 정도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박차고 탈출하는 결단이 출애굽입니다. 왜냐면 이집트의 파라오 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거스르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출애굽의 원형적인 모습이 아브람에게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75세로 늙어가는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가능성을 믿고 떠나는 결단입니다.

 

이러한 결단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기로 결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결단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거룩한 분리와 탈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를 보호해주고 내가 의지해왔던 가치들 대신 하나님의 약속인 말씀을 붙드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민자로 살아가기 때문에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다는 의미를 다른 이들보다 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고국으로부터 떠나 있고 가족들로부터 분리된 느낌 아니까요. 공교롭게 오늘이 한국에서 설날 연휴입니다. 이런 명절이 되면 본토 친척 아비집이 더욱 생각나잖습니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복이 되라고 우리를 이곳에 두신 것이 아닐까요? 이민 생활이 30년이 넘으신 분에게 여쭤보았습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냐구요. 그랬더니 내 가족이 여기에 살고 있으니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그러시더군요. 한국에 있는 가족도 가족이지만 그들과의 유대는 희미해졌고 오히려 이곳에서의 삶이 익숙해진 것이죠. 저는 우리 믿음의 여정이 딱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우리가 익숙했던 가치관에서 떠날 때는 하나님의 가치관이 너무나 낯설고 자꾸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듭니다. 하지만 한 번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이 성취되고 순종의 기쁨을 누리기 시작하면 이 기쁨에서 떠나 갈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설날에 본토 친척 아버지 집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약속한 복을 약속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복의 근원으로 만들었듯이, 우리를 복의 근원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5.

하나님의 부르심은 저주받은 인생 마저도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오히려 그 저주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주시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셨습니다. 75세의 불임 부부였던 아브람과 사래는 저주 받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불임 가운데 슬픔의 세월을 살아온 이 부부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모험스러운 여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약속에 힘 입지 않고는 우리는 옛 삶에서 탈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전환점을 줄 만한 충분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 가득한 저주와 불협화음들 속에서 우리는 괴로워 합니다. 그때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조우할 때 우리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운명주의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들을 불러내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닉 부이지치 같은 사람들은 팔다리가 없는 너무나 좋지 않은 조건에 살아갑니다. 그가 운명주의에 빠져 살더라도 어떤 이도 그를 비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밝은 얼굴과 삶의 태도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죠. 헬렌 켈러는 태어난지 19개월만에 시력과 청력과 말을 잃어버리는 3중 장애를 겪습니다. 하지만 설리반 선생님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대학에 가게 되었죠. 87세의 나이에 돌아가실 때까지 많은 장애우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었습니다.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말씀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은 것은 영원하다는 고린도후서 4:16-17절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운명주의를 극복하게 만듭니다. 우리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새로운 미래로 안내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자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도 닉 부이지치나, 헬렌 켈러처럼 우리 삶에 드리운 저주스러운 것들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일어서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이 세상의 무질서를 하나님이 수습해 가시는 시작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노아의 홍수를 통해 하나님은 무질서한 창조 이전의 세계로 회귀하시면서까지 이 세상을 새롭게 하기를 바라셨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노아 이후, 인류는 하나님을 향해 더 강한 적대감과 반항을 통해 이 세상을 무질서 속으로 몰아가고 있었죠. 그 것을 수습하기 위해 하나님은 히든 카드를 꺼내 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한 노 부부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들을 통해 새롭고 대안적인 삶의 방식이 인류에 소개될 것입니다. 이들을 통해 막혀버렸던 복의 댐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소망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도 선택하셔서 사용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시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되는데 왜 나는 안 됩니까?이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약속인 말씀을 신뢰하고 믿고 따라가느냐 입니다.

아브람처럼 나의 예전의 가치관과 세계관 가운데서 분리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아직 목적 없이 반복되는 창세기 3장에서 11장 사이 어디매서 헤매고 계신 겁니다. 인생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아브람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대안적인 인생의 목적은 복이 되는 인생입니다. 나를 통해 다른 이들이 복을 누리는 인생이죠.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의 씨앗으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을 통해 좋은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많은 이들이 따 먹으라고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고 복을 주시는 이유는 그 복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의 근원이요 복의 유통자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 주변과 여러분의 이웃들의 삶에 많은 열매들이 맺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서 복이 되는 인생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저주의 그늘을 박차고 일어나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 젖히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Microsoft Word - Sermon script_translation_1222023.docx

1/22/2023 One Heart Church
Text: Genesis 11:27-12:4
Title: The Man Chosen for All Peoples / Translated by Wi Chungil

1.
This is the story of my military days. The person with the title of chief sergeant is the person who acts as the mother of the unit. Think of him as someone who interferes and nags all areas of the unit. Sometimes he even gives his soldiers a hard time, like a mean mother-in-law. I don't remember what happened, but I was being punished on my knees in the chief's office. But then, this person started arguing with me. Since he knew I went to church, he must have wanted to argue with a church-related topic. “Hey~ Christianity started in Israel and only deals with the history of Israelis, so why should Koreans believe in it?” At the time, I couldn't clearly answer that question. Thanks to that, my punishment got longer. Why do we believe in the Bible, which is the religion of Israel in the eyes of the world and deals with the history of Israel? Why did God have to call the chosen nation of Israel? Why did he have to choose an old grandfather named Abram before Israel?

To understand the story, you need to understand the story in Genesis 1-11. The content up to Genesis 11 is about the primeval history of mankind. Primeval history refers to the universal history experienced in all periods of human civilization. In other words, it is a history that records phenomena that have repeatedly and universally appeared in history since the beginning of human civilization. In this primeval history, human history begins with good creation. But as time went on and history progressed, things took a turn for the worse. This was an unintended direction when God created the world and mankind. With the beginning of Genesis, there is a story of Adam and Eve who sympathize with the rebellion of the spiritual world and the rebellion of angelic beings. The rebellion of man with the serpent in Genesis 3 was not suppressed in the first place. It has only left us with a hint that it will be subdued in the apocalypse in the last days. The seed of the woman will appear and step on the serpent's head, but it will bruise its heel. The coup d'etat of the snake and men against the God is not suppressed at the beginning, but is suppressed at the end. In Revelation 19-20, these coup d'état forces are thrown into the abyss under the name of 'the old serpent'. The theme that penetrates the beginning and end of this human race is the Kingdom of God. In Genesis 3, human history has become a cyclical history since humans sympathized with the forces of evil. In other words, it is a history that just cycles without any purpose (telos, eschaton). In detail, sin and judgment for it cycle. In the course of this cyclical history, many types of mankind emerged. They are the Adam type, the Cain type, the Nephilim type, and the Tower of Babel type. Adam-type mankind is a mankind that has disobeyed God's command and pursued its own desires. The Cain-type mankind is a human being who has not endured enough to kill his own family and has not overcome the temptation of sin. The Nephilim type of Noah's era was a lewd and violent mankind who killed and slaughtered other peoples beyond their own family. In Genesis 11, mankind shows arrogance over the position of the one and only God. God decides to choose one person in this process. It was the beginning of God's redemption plan as an alternative to the existing mankind repeating the vicious cycle of sin and judgment. He wanted to begin a redemptive history in the midst of a cyclical history of sin and evil. Now, God intervenes in universal history, and it is a history that will be led by the chosen person and the chosen people. Universal history will be driven by the history of the chosen people.

2.

1

Genesis 10 and 11 contain genealogies. The reason for the genealogy is that the savior of mankind will come from the woman's descendant (Genesis 3:15). Since God will send a savior from among the woman's descendants to strike the serpent's head, the genealogy here has a redemptive-historical meaning. The redemptive-historical meaning means that God directly leads history, leading it in the direction of redeeming all mankind. In particular, in the second half of Genesis 11, the genealogy of the Semites who were chosen by God appears. Abram, the son of Terah, a descendant of Shem, was chosen. And God commands Abram. “You will be a blessing”. But why Abram? Why is God calling Abram, a 75-year-old man who has already completely lost the possibility of childbirth, to begin this great work of redemption?

It would have been much easier for a 20-year-old spunky young man.

The culmination of God's blessing to mankind in Genesis 1 was,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earth." This blessing of creation was the fundamental driving force that sustained all living things and mankind. With this blessing of creation, the genealogy that has been continuously passed down is in danger of being stopped by Abram.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blessings of creation, Abram and Sarai are cursed. Sarai's infertility in the countless repetitions of giving birth is like a sudden dissonance. We need to pay attention to the situation in which the genealogy of Abram's relatives father's house is in danger of not being continued. Abram was a man who, by natural means, failed to carry on the genealogy of his native father's family. The ‘your father’s household” symbolizes a solid culture built on patriarchal ideology. In these patriarchal societies of the ancient Near East, couples who failed to produce male heirs were thought to be cursed by the gods. In addition, Ur of the Chaldeans, Abram's hometown, was the center of a pagan religion that worshiped the moon god. Before he was called, Abram must have lamented himself that he was cursed by the moon god and was infertile. His life would have been lethargic and unmotivated. If you imagine Abram before God's call came, you can feel his gloomy reality. He must have been living a life neglected outside of God's purpose. He was in perfect condition to sink into fatalism. God is calling such Abram from the curse

3.
God commands Abram to “Leave your country and your relatives and your father’s house.” He commands Abram to leave the land where you live, the place where you were born, and the house of your father. How would you feel if you suddenly received an order like this? Wouldn't it be embarrassing? It means leaving a familiar place and moving to a completely unfamiliar land. The mainland relative father's house, again, refers to a strict social system established under patriarchal authority. Breaking free from this social system was too radical a demand. Because it is a demand to leave all my safety nets. Demanding the severing of all kinship, cultural and religious ties would have been a very difficult order.
Abram had to go through a creative separation, to sever all such solidarity and ties. The story of escape prior to Exodus begins with Abram. God is not calling him out at random. He gives him a promise in exchange for leaving. Abram held on to this promise and ventured to escape by faith. God's promises were fourfold. It is the land, the great nation, the name, the presence and protection. Among these four promises, the most amazing promise is that Abram, who cannot be passed on to his own generation, will be made the ancestor of a great nation.

Why did Abram have to leave his native land, his relatives and his father's house, and go to the land indicated by God? It is so that he can become a blessing to all peoples of the world. In order to become a blessing to all peoples of the world, Abram had to escape, separated from the mainland and the bonds of his kinsmen and father's house. What is the meaning of the order to leave the clan society, which is like a life that can support and protect an individual?

2

Now, it means that the kingdom of God that will begin with Abram is not a nation established in the existing way. In order to renew the original history of mankind, which had been meaninglessly circulated by the bond of blood and body, it was necessary to start the kingdom of God on a new foundation. This is because the kingdom of God was not to be established through the ties of blood and flesh, but had to be built solely on faith in God. That's why Abram had to leave his native land, his relative's father's house. That is 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not a nation created by regionalism, race, or ideology. It is a new nation built on faith by those who believe in and obey the Word of God.

The Korean Bible is interpreted according to Korean order, but if we interpret the purpose clause (“so that~”) of verse 3 correctly, it is as follows. “I will bless those who bless you, and whoever curses you I will curse, so that all peoples of the earth may be blessed through you.” In this purpose clause, God's intention to make Abram the reference point for blessings and curses is clearly revealed. The reason is to bless all people. If it was not possible to bring back all of the fallen mankind at once, then there was no choice but to bring all peoples back through one chosen person. Now, God is not negotiating with all mankind, but with the chosen person and the chosen people. The reason He is negotiating with them is very clear. “To bless all nations,” that is, to save all nations. God is starting a eugenics experiment right now. He's experimenting with starting with one good seed and spreading the good fruit all over the world. God picked up one seed, Abram, who was chosen to save all mankind. However, the seed is an insignificant seed that seems to have no possibility of sprouting when people see it.

4.
God is calling Abram as an alternative to the Adamic mankind who destroyed the whole world. To bless Abram means to follow the same path of faith as Abram. God will bless the lives of those who, like Abram, make a decision of faith and decide to follow the promise. Conversely, ‘he who curses him will be cursed’ means that those who oppose the path of faith and obedience followed by Abram will be hostile. Galatians 3:7 says that all Gentiles who walk the path of faith like Abraham can become Abraham's descendants. “Know, therefore, that those who are born of the faith are the descendants of Abraham.”
I wrote about it once in a column the other day. The one-line summary of the Old Testament that I understand is “the story of Israel’s failed exodus.” Exodus means the separation and escape of body and spirit from Egypt. It is choosing a new value system, not an existing value system. The Exodus is the decision to escape from the life of being satisfied to some extent under the Egyptian pharaoh system. Because the Egyptian pharaonic system is a way of life that goes against the kingdom of God. The archetype of this Exodus is appearing in Abram. It is a decision to leave by believing in God's new possibilities, not in one's ability and potential to grow old at the age of 75.

This decision is required of all those who decide to become descendants of Abraham. Being a Christian, being a disciple of Jesus Christ, begins with a holy separation and exodus. It starts with holding on to the word of God, the promise of God, instead of the values that protect me and that I have relied on.

Thankfully, because we live as immigrants, we may feel more sensitively than others what it means to leave the ‘mainland relatives and father’s house’. You know the feeling of being away from home and separated from family. Coincidentally, today is the Lunar New Year holiday in Korea. When it's a holiday like this, don't you think of the mainland relative's father's house? I believe that there will be God's plan towards us who left the mainland relatives and father's house. Isn't God putting us here to be a blessing in this place? I asked a person who has lived an immigrant life for over 30 years. Don't you feel like going back to Korea? Then he said that my family lives here, so I can't leave. My family in Korea is also a family, but the bond with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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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 faded, and I have become accustomed to life here. I think our journey of faith is exactly like this. At first, when we leave the values we are used to, God's values are very unfamiliar and we are tempted to return to the previous ones. However, once the promise given by God is fulfilled and you begin to enjoy the joy of obedience, you cannot leave this joy.

We believe that God is promising the blessings promised to Abram to us who are away from our relatives and father's house on New Year's Day. Just as God made Abram a source of blessing, God is calling us to make us a source of blessing.

5.
God's call turns even the cursed life into a source of blessing. Rather, through the curse, God gave the promise and opened a new future. Abram and Sarai, a 75-year-old infertile couple, had a cursed life. However, God is preparing a new future for this couple who have lived through years of sorrow in the midst of infertility. Encouraged by God's Word, they decide to embark on an adventurous journey. Without the power of God's Word and God's promises, we cannot escape from our old life. God's Word has enough power to give you a turning point in your life. We suffer in the curses and dissonances that fill our lives. What we must hold on to at that time is the Word of God. When we encounter God's Word, a new page in our lives opens. The word of God calls out those who have fallen into fatalism and nihilism and leads them to the promised land. People like Nick Vujicic live in very bad conditions without limbs. No one can blame him if he lives in fatalism. However, he impresses many with his bright face and attitude towards life. Helen Keller suffered a triple disability losing her sight, hearing and speech when she was 19 months old. But she went to college because of Miss Sullivan's devoted love. Until he passed away at the age of 87, he gave a light of hope to many people with disabilities. It is said that the word she loved the most was 2 Corinthians 4:18, “What is seen is temporary, but what is unseen is eternal.” God's Word makes us overcome fatalism. It is God's Word and God's promise that opens up new possibilities in our lives and guides us to a new future. I hope that we too, like Nick Vujicic and Helen Keller, will hold on to God's promise and stand up from the cursed things in our lives.

Today's message looked at the starting point of God's rectification of the world's disorder that began with Adam and Eve. Through Noah's flood, God wanted to renew this world even by returning to the world before the disorderly creation, but it did not work according to God's will. After Noah, mankind was driving this world into disorder through stronger hostility and rebellion toward God. To rectify that, God took out a hidden card. God chose an insignificant elderly couple. Through them, a new and alternative way of life will be introduced to mankind. Through them, the dam of blessing that was blocked will break down. What gives us hope at this point is that God chooses and uses even insignificant people like us. You have enough conditions to become a channel of God's blessing. Because you have been invited by God. Abram can do it, but why can't I? The important thing now is whether you accept the new values presented by God and trust, believe, and follow God's word, the promise.

If you, like Abram, have not been separated from your old values and worldview, you are still wandering between chapters 3 and 11 of Genesis, which are repeated aimlessly. Life has a clear purpose. The alternative purpose of life that God presents to us through Abram is a life of blessing. It is a life that others enjoy blessings through me.

God has called you as a seed. He has called you to bear good fruit through you and to have many people pick and eat the fruit. The reason God gives us promises and blessings is that blessings flow to all nations through those blessings. You are the source of blessings and the distributors of blessings. I hope that many fruits will be borne in the lives of those around you and your neighbors through you. I wish you a blessed life in your place of life. I sincerely pray that you will rise above the shadow of the curse and open up a new future opened b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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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eramus

본문: 누가복음 161-8

제목: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use worldly wealth to gain friends)

 

1.

오늘은 주현 후 둘째 주일입니다. 교회 전통에서는 성탄절이 지나고 12일째 되는 날 그러니까 16일을 주현절로 지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자신을 나타냈고 현현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죠. 교회 전통에 따라 주현절의 의미를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동박 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함으로 예수님이 세상 앞에 자신을 드러냈다고 이해하여 지키는 전통이 있습니다. 또 다른 전통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이 땅에 자신을 드러냈다고 이해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지난 주 주현 후 첫 주에 우리는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추구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고민했습니다. 형식과 본질의 싸움에서 율법의 본질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예수님보다 미리 와서 예수님이 걸어가실 그 길을 먼저 걷게 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요한이 대항하여 싸웠던 실체가 무엇이라고 이야기 했었나요? 바로 대제사장들을 필두로 한 성전체제(temple system)이었습니다. 그 성전시스템은 결국 종교의 본질이 아니라 무엇을 좇아 간 것이라고 말씀드렸었죠? 결국 대제사장들은 돈을 따라 갔고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채우는 삶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복잡해 보이지만 성경에서는 두 가지 길 중에 택일하는 것으로 우리 삶을 단순화 합니다. 재물을 섬기든 아니면 하나님을 섬기든 이 둘 중에 하나를 우리는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복잡한 삶을 그렇게 단순화 할 수 있느냐고 불만을 가지실 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어쩔 수 없을 듯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주인은 돈 아니면 하나님, 이 둘 중 하나입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돈을 따라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따라 살 것인가 그 길은 확연히 갈리지만 선택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돈의 위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돈은 신적인 위력을 가진 무시무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이야기 드리는 것이지만 돈이 가진 신적 위력이라는 것은 신이 가지고 있는 전능성을 돈이 유사하게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돈의 유사전능성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해 보입니다. 돈만 있으면 신처럼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만져지면서 하나님처럼 작동하는 돈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그 씀씀이가 어떠한 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의 성숙과 깊이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제가 왜 설교 초반부터 돈 이야기를 꺼내냐면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돈과 관련된 이야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한 목장에서 본문의 이야기에 대해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나 봅니다. 저에게 설명을 요청해 오시더군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로 알려진 본문은 성경 안에서 이해하기 힘든 난해(難解) 본문 중 하나로 꼽힙니다. 불의한 청지기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전하신 목적과 이유를 이해하고 우리 삶에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2.

자 그럼 본문의 내용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볼까요?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하신 이야기이자 비유입니다. 늘 예수님은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가지고 제자들에게 진리를 설명하시곤 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크게 두 사람입니다. 청지기와 그의 주인이죠. 청지기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는 오이코노모스 (οκονμος)”입니다. ‘을 가리키는 오이코스을 가리키는 노모스의 합성어입니다. 집을 관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 관리자(금융계)이면서 전답을 관리하는 마름(농업)a tenant farm agent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 주인의 재산을 이용하여 농사짓는 사람들을 불러서 계약서를 다시 쓰는 것으로 보아 농촌 배경하에서 주인의 전답을 관리해 주는 마름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회계장부를 맡아서 관리하는 주인의 자산 관리인을 겸하고 있습니다.  

 

청지기는 갑자기 주인의 호출을 받습니다. 주인은 그를 부른 후 따져 묻지도 않고 그를 해고 합니다. “자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들리는데, 어찌 된 일인가? 자네는 오늘부로 해고네. 자네가 맡아서 정리하고 있던 회계장부를 나에게 가져오고 일을 그만 두게나.” 주인이 청지기에게 한 말입니다. 개역개정에서는 내가 보던 일을 샘하라.” NIV에서는 “Give an account of your management”로 번역되는데 헬라 성경에서는 자네가 오이코노모스로서 관리하던 장부를 나에게 제출하게이렇게 해석됩니다. 그러니까 청지기에게는 회계 장부를 정리할 몇 시간이 주어진 상태에서 해고 통지가 된 겁니다.

우리를 당황시키고 어렵게 하는 부분이 이 다음 부분부터 시작됩니다.

 

청지기는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영악한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악한 방법이 오히려 주인에게 칭찬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것입니다. 분명 처음에는 자신의 재산을 낭비했다고 꾸지람을 듣던 청지기의 행동이 이제는 칭찬을 받고 있잖습니까? 그것도 주인에게 손해를 끼쳐가면서 자신의 살 길을 마련한 청지기의 행동이 분명히 나쁜 행동 같은데 바른 행동이고 지혜로운 행동으로까지 여겨지고 있습니다. 왜 불의한 청지기는 불의한 사람으로 벌을 받는 것이 아니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 해석의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방법들을 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3.

본문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 먼저 사용할 방법은 주변 본문들과의 연관 관계를 살펴 보는 것입니다. 본문 앞 뒤에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는지를 살펴 봄으로 본문의 의도를 파악하자는 거죠. 원래 성경은 장과 절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AD 1200년 경에 장이 확정이 되었고 AD 1500년 경에 절이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장과 절이 확정되기 전에 누가복음을 읽었던 사람들은 누가복음 한 권을 통째로 읽었던 겁니다. 오늘 날처럼 끊어서 읽지 않았던 거죠. 그렇게 따지면 청지기 비유 앞 뒤에 놓인 이야기들은 이 이야기와 이어지는 이야기들인 거죠.

본문의 바로 앞에 놓인 이야기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본문 바로 뒤는 재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연이어 등장합니다. 그리고 16장 마지막 부분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탕자의 비유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유사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 두 이야기 모두 제멋대로 구는 아랫 사람에게 윗사람이 은혜와 호의를 나타낸다는 겁니다. 탕자의 아버지도 그랬고 청지기의 주인도 호의를 베풀었죠. 둘째, 자산을 낭비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셋째, 제멋대로 굴던 사람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손실과 행동에 대한 반성이 있습니다. 넷째, 아랫 사람들은 윗 사람의 자비와 선한 성품에 자신을 맡깁니다. 다섯째, 마지막에는 깨어진 신뢰에 대한 회복이 이뤄집니다. 이것을 단순화 시키면 잘못을 저지른 아랫 사람에 대한 윗 사람의 호의와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윗 사람의 호의는 아랫 사람의 태도의 변화로부터 시작됐다는 점도 중요하구요.

본문 뒤에 놓인 단락들과 본문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으니 주인을 잘 선택하여 살아갈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그에 실패한 케이스로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야기 가 연이어 나오는 것이구요. 하나님을 따르는 듯 하지만 실상은 돈을 따르는 바리새인들로서 실패한 케이스를 언급하는 겁니다. 이어지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도 자신의 이웃인 거지 나사로에게 돈을 쓰지 않고 인색하게 굴다 지옥이라 불리는 하데스(Hades)로 떨어진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가 만약 자신의 생의 끝을 알았다면 자신의 재물을 그렇게 인색하게 사용하지 않았겠죠.

 

이런 맥락들을 통해 볼 때, 본문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는 돈의 사용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종말론적인 감각을 가지고 돈을 사용해야 함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회계장부의 제출을 요구 받은 청지기가 자신의 끝을 인식하고 수습에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끝을 인식하고 그 끝나는 시간에 자신이 어떤 판단을 받게 될 것인지를 인식하고 돈을 사용하게 되는 이야기 인 겁니다.

특별히 본문과 바로 이어진 9-13절의 말씀은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는 주제로 본문의 주제를 완벽하게 뒷받침해 줍니다. 그러니까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는 뜻을 자세히 이해하면 본문의 비유가 의도하는 바를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잘 이해해야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4.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 가지 도구를 더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틴의 사회적, 문화적인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팔레스틴의 사회 속에서 공유되어 오던 공통적인 가치와 문화를 이해해야만 본문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첫번째 개념은 평판과 영예 그리고 수치 개념입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의 평판에 의해서 한 사람의 영예(dignity)와 수치(shame)가 매겨졌습니다. 좋은 평판을 듣는 사람에게는 영예가 따라 왔고 나쁜 평판을 듣는 사람에게는 수치가 따라왔습니다. 오늘 날에도 마찬 가지지만 당시에는 오늘날 보다 훨씬 다른 이들의 평판이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두번째 개념은 호의(favor) 또는 호혜(reciprocity)의 개념입니다. 호의를 받은 자는 그것을 베푼 자에 뭔가를 주어야 하는 것이 호혜이지요. 원래는 부족 사회에서 물물 교환하는 개념이 호혜의 개념이었습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어 주는 부한 사람의 호의는 충성(loyalty)이나 영예로 갚아지곤 했죠. 동가(同價)의 재물이나 동등한 가치로 갚을 형편이 안 될 때, 사람들은 경의(respect)나 영예(honor)를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충성까지 덤으로 돌려주었죠.

 

그렇다면 평판과 호혜의 사회/문화적 개념이 본문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먼저 평판에 의한 영예의 개념으로 본문을 살펴보죠. 주인의 해고 통지를 듣고 청지기는 회계장부를 들고 소작 농들을 한 명씩 찾아 방문합니다. 그리고 소작 농들이 진 빚을 반 값으로 깍아 주며 장부에 친필로 서명하라고 합니다. 나중에 주인 앞에서 혹시나 대조할 일이 있을 때 친필로 싸인했기에 변명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겠죠. 빚을 깍아 주겠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요? 빚을 절반으로 탕감 받은 소작농들은 청지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인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겠죠. 청지기는 자신의 불의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내려준다면 자신은 종국에 가서 지위가 회복될 것을 예상하고 기대했습니다. 결국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소작농들의 평판에 의해 그의 영예가 결정되었습니다.

또한 주인은 그의 영리한 행동에 대해 칭찬으로 갚아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좋은 평판으로 그 동네에서 영예를 얻게 된 청지기에 대해서 주인은 다른 평가를 할 수 없게 된 겁니다. 결국 소작농들의 좋은 평판의 결과로 주인의 마음까지 움직여지고 주인은 그의 행동에 대해 영예로 되갚아 주게 된 겁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사회문화적 개념 중에 다른 하나는 호혜와 수혜의 개념이라했죠. 먼저 주인과 청지기 사이의 호혜와 수혜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주인은 그의 부당한 행동을 알고도 즉결 처분하지 않고, 오히려 청지기에게 계산하고 샘하여 만회할 수 있있는 말미를 제공했습니다. 주인의 호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성품을 잘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호의가 풍성한 사람인 줄 알았고 지혜로운 주인임을 알았기에 그가 지혜롭고 영리하게 처신한다면 그의 수치가 만회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겁니다. 실제로 주인은 그의 영리한 행동에 호의적으로 반응하며 그의 모든 불의한 행동들을 눈감아 주죠.

두번째로 청지기와 소작농 사이에서 일어나는 호혜와 수혜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청지기는 자기의 재물이 아님에도 소작농들이 주인에게 빚진 것을 정리한 문서를 수정함으로 소작농들의 빚을 경감해주고 어느 정도 탕감해 줍니다. 주인의 재물을 이용한 호혜 행위였습니다. 이에 대해 수혜자인 소작농들은 그에게 영예를 선사합니다. 소작농들은 그가 만약 청지기 직에서 물러날 경우 그를 돌봐주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불경기에는 주인들이 부채의 일부를 탕감해 줌으로써 인정이 많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고 합니다.  주인이 청지기에게 베푼 호의는 청지기의 행동을 자극했고 청지기는 주인의 호의와 자비의 성품을 신뢰하여 불의하지만 주인을 영예롭게 할 일을 진행해 가기로 한 겁니다. 결국 불의해 보이지만 청지기의 행동을 통해 소작농들도 이득을 얻고, 결국에 주인까지 영예를 누리게 되는 일석이조의 일로 결말 납니다. 자신의 처우가 개선되고 끝에 가서는 자신의 삶에도 영예와 이익을 얻게 되니 결국 일석삼조로 모두가 잘 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는 이야기가 본문의 이야기 인거죠.

평판과 영예의 개념 그리고 호의와 호혜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본문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5.

이제 우리가 살펴 본 여러 요소들을 종합하여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알아봐야겠죠. 본문은 불의한 재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청지기란 남의 재물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이 청지기의 이야기는 우리를 향한 이야기입니다. 주인이 우리에게 재물을 맡겨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모든 재산은 따로 주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재산을 맡아서 사용하는 청지기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청지기 비유는 기독교 종말론의 관점으로 재정을 사용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종말론적인 틀을 가지고 본문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우리가 가진 재산은 하나님이 맡겨 놓은 위탁재산일 뿐 이라는 거죠.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이 논지를 뒷받침 하면서 종말론적인 재정 사용에 실패한 예입니다. 청지기는 비록 자신의 소유는 아니지만 재물을 가지고 자신의 마지막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끝이 있음을 인식하고, 모든 것이 끝날 때를 대비하여 처신 한 것이지요.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끝이 있음을 인식하고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재물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일까요? 불의한 재물의 사용설명서를 본문은 제시합니다. 한 마리도 말하면 주인의 영광과 영예를 위해 사용하라는 겁니다. 주인이 영광 받으시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오늘날의 개념으로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에만 촛점을 맞추고 그의 행동이 비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의 문화에서 주인의 재물에 손해를 끼치는 것보다 주인에게 영예를 선사하는 것이 훨씬 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청지기의 영악스런 행동은 윤리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오히려 지혜로운 행동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는 타인을 위해 장부를 변경하여 빚을 탕감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행위로 인해 결국엔 주인의 영예를 드높였습니다. 어차피 주인의 재물임으로 주인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빚을 탕감하는 경제적 손실도 주인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결국 주인에게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이익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것이고 사람들로부터 영예를 얻는 것이라는 것을 청지기는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우리의 재정 사용이 바로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재정 사용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들에 대한 사랑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웃들에 대한 사랑의 목적으로 우리가 가진 소유가 쓰여질 때 이웃들은 우리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웃들로부터 얻는 좋은 평판은 결국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구요. 나아가 이런 재정 사용은 결국 끝날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당당해 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본문과 곧바로 이어지는 9절 말씀은 이 비유를 이렇게 총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맘몬(재물)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맘몬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장막tent, tebernacle(처소)으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본문의 한 줄 요약이 바로 9절 말씀입니다. 불의한 맘몬이 사라질 때가 온다. 종말이 있다는 거죠. 그때 너희가 불의한 맘몬을 잘 사용하여 얻게 된 친구로 말미암아 영원한 장막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재정이 나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면 사용설명서대로 하고 있지 않는 겁니다. 나의 욕망이 아닌 이웃을 위해 친구를 위해 우리의 재정이 사용되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할 때 주인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 영광에 대한 보답으로 영원한 장막으로 초대된다는 것이지요.

 

6.

지난 주 울타리 몰 본사인 LA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울타리 몰 회원도 아니고 울타리 몰에서 주문해 본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저에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김경헌씨 주소 좀 불러주세요.” 직원은 다짜고짜 저의 주소를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놀라지 마십시오. 그 직원은 저의 군대시절 같은 교회에서 성가대를 봉사했던 옆 중대 아저씨였습니다. 그 형님은 유학 온 부인을 따라 20년 전에 LA로 이민 온 형님입니다. 그런데 울타리몰 사장님께서 그 형에게 갑자기 아는 사람 있냐고 묻더랍니다. 그 사람에게 공짜로 음식을 부쳐주고 싶다고 하면서 아는 사람을 말하라고 재촉했다 합니다. 형님은 제가 생각났고 그 자리에서 저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울타리 몰 정말 좋더군요. 그 다음날 큰 상자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항공 배송의 위용을 처음 느꼈습니다. 고기를 포함한 다양한 한국 음식들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저희 가족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형을 통해 들었는데 울타리몰 사장님이 신실한 기독교인이시라고 합니다. 사장님은 분명 본문의 재정사용 설명서를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공급을 통해 저희 가정도 하나님의 배려를 느꼈고 진한 이웃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사장님의 선행에 보답하고자 저는 손편지를 써서 사장님께 영예를 돌려드렸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우리도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십시오. 어쩌면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께 영광 돌리는 가장 기본이 되는 길일지 모릅니다. 13절 말씀처럼,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습니다. 불의한 재물을 다스리는 사용설명서가 오늘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재물을 통해 주인을 영화롭게 할 것인가? 아니면 재물의 노예가 되어 참 주인이신 하나님을 저버릴 것인가? 여러분은 어떤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주인이 인자하고 인내심이 많은 것을 이해한 청지기처럼 주인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성품을 따라 우리의 삶이 디자인 되어야 합니다. 주인이 호의가 많으신 분이기에 우리 재정 사용도 호의를 나타내야 하는 것이죠. 주인의 성품을 더 잘 알고 이해함으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얻고 하나님을 얻으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Scripture: Luke 16:1-8

 

Title: Use worldly wealth to gain friends

 

 Translated by Min-Jun Hur

 

1.

 

Today is the second Sunday after Epiphany. In church tradition, the twelfth day after Christmas, which is January 6th, is observed as Epiphany. On this day, the Lord revealed Himself to this world and manifested Himself. According to church tradition, the meaning of Epiphany is interpreted in two ways. First, Jesus revealed Himself by being worshipped by the Wise Men. Second, Jesus revealed Himself by being baptized by John the Baptist. Last week, we talked about John the Baptist and what he pursued. We learned that John the Baptist had to fight fiercely to find the essence of the law in the battle between form and essence. He came before Jesus and walked the path that Jesus would walk. What was the entity that John the Baptist was fighting against? It was the temple system led by the high priests. The temple system was not centered on the essence, but it pursued money and fulfilled the high priests’ interests and desires.

 

Even though our lives seem complicated, the Bible tells us life is about choosing between the two paths: serve money or serve God. The master of our life is either money or God. There is no middle ground. The path is clearly divided, but the choice is not easy. The reason is that the power of money is so great. Money is a terrifying being with semi-divine power. I'll tell you from time to time, but what I mean by the divine power of money is that money has similar omnipotence as God. Simply put, everything seems possible if you have money. It seems like as long as you have money, you can be like God. That is why people follow the money that works like God, rather than following invisible God. How we use money tells us about our maturity and depth of our faith. Today's scripture is related to money.

 

It seems like one of the small groups had a heated discussion about today’s Scripture, and I was asked for an explanation. This text, known as the parable of the dishonest steward, is considered one of the most difficult texts to understand. Today, we want to understand the purpose and reason why Jesus gave this parable and learn how to apply its lesson to our lives.

 

2.

 

Now, let's dive into the content of the main text. This is a parable Jesus told His disciples. Jesus always explained the truth to the disciples with stories. The main characters of the text are two people, the steward and his master. The steward in Greek is “oikonomos” (οἰκονόμος),” a combination word containing ‘oikos’ meaning ‘house’ and ‘nomos’ meaning ‘law.’ You could think of him like a financial manager (in the financial world), who manages the house and the property, and as a tenant farm agent who manages the field (in the agriculture world). He calls upon the tenant farmers to rewrite the contracts, so he manages the fields in a rural setting, but he doubles as the property manager, in charge of accounting.

 

The steward is suddenly called in by his master. The master says, “What is this I hear about you? Give an account of your management, because you cannot be manager any longer” (Verse 2). In the NIV version, it is translated as “Give an account of your management,” but in the Greek Bible, it is translated as “You submit to me the ledgers you managed as Oikonomos.” So the steward was given a notice of dismissal with only a few hours to organize the ledgers. The part that baffles us begins with this next part.

 

The steward is using a cunning method to settle this situation. But this method is rather praised by the master, so it is difficult for us to understand this. First, the behavior of the steward is scolded for wasting his fortune, but it is praised later. It seems like the steward caused financial loss to his master and prepared his own way, which seems like a bad action clearly, but it is considered a right action and even a wise action. It's hard to understand why the steward is not punished as an unjust man. In order to understand this parable, we need to use several methods.

 

3.

 

In order to correctly interpret today’s text, first we need to examine its relationship with the surrounding texts. By examining what stories come before and after the text, we can understand the intention of this text. Originally, the Bible did not have chapters and verses. It is said that around AD 1200, that the chapters were fixed, and around AD 1500, the verses were fixed. Those who read the Gospel of Luke before the verses were finalized read the entire Gospel of Luke. It did not get cut off like we read today. Today’s scripture is related to the stories that come before and after. The story immediately preceding the text is the parable of the prodigal son. And right after the text, there is a story about the money-loving Pharisees. And at the end of chapter 16, there is a story about the rich man and the beggar Lazarus.

 

There are many similarities between the parable of the prodigal son and the parable of the dishonest steward. First, in both stories, the superiors show grace and favor to the subordinates. The father of the prodigal son and the master of the steward are both kind. Second, a wasteful person appears in both stories. Thirdly, the unruly people become aware of the losses they have caused and repent on that action. Fourth, subordinates trust themselves to their superiors' benevolence and good character. Fifth, in the end, the broken trust is restored. Simplified, the similarity between the two stories is the favor and grace of the superior to the inferior. It is also important to note that superiors’ favors begin with a change in the attitude of the subordinates.

 

What about the stories that come after today’s Scripture? Verses that follow today’s text tell us that one servant cannot serve two masters and that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 so choose your master well. The Bible points out the Pharisees as people who seemed to follow God but indeed followed money. Even in the story of the rich man and Lazarus, the rich man acts stingily towards his neighbor, the beggar Lazarus, and the rich man falls into Hades. If the rich man had known about God’s judgment, he would not have used his wealth so sparingly.

 

Looking at these contexts, we can see that all the stories are related to the use of money. In particular, the story of the rich man and Lazarus has an apocalyptic sense and teaches us to use money with the end of life in mind. In today’s text, we can also see the steward recognizing his end and trying to mend his behavior after being asked to give an account of his management. The story is about how he uses money after he recognizes the end and the judgment he will face.

 

Verses 9-13 immediately following the main text say, “use worldly wealth to gain friends for yourselves” and they fully support the main text. So, when we understand this phrase, we can understand today’s text, and vice versa.

 

4.

 

There is one more tool to use in order to understand today’s Scripture. We need to understand the Palestine social and cultural concepts in the era of Jesus. The common cultural values in the Palestinian society culture at that time are crucial in understanding today’s text.

 

The first concept is the concept of reputation, honor, and shame. At that time, by reputation, a person's dignity and shame was decided. Those who had a good reputation had dignity, and those who had a bad reputation had shame. Even today, some of this holds true, but back then, the reputation of others mattered much more.

 

The second concept is favor or reciprocity. Reciprocity is when the one who receives a favor returns the favor. Originally, bartering was the concept of reciprocity in tribal societies. This developed into wealth often being repaid with loyalty or honor. When people could not afford to repay with the goods of equivalent value, they showed respect or honor to the people who gave favors. Even loyalty was given back as a bonus.

 

How does the social/cultural concept of reciprocity apply to today’s text? First, let's consider the concept of honor by reputation. Upon hearing the master's notice of dismissal, the steward visits the tenant farmers one by one with the account book. And by relieving the debt owed by the tenant farmers, he asks them to sign with their own handwritings. This is to make sure there are no excuses later. With a significant portion of their debts forgiven, the tenant farmers must have praised the steward and the master as well. The steward knew that if he has a good reputation, he will eventually regain his status despite his unrighteous behavior. In the end, his prediction was correct, and he gained honor from reputation among the tenant farmers. The owner also rewards the steward for his clever behavior. The master could not have a different opinion of a steward whose good reputation has earned him honor in the town. As a result of the good reputation, even the master's heart is moved, and the master repays him with honor for his actions.

 

The second concept we discussed was favor or reciprocity. We see this between the master and the steward. The master gave the steward an opportunity to make up even though he could have immediately taken away the books. This is seen as the favor of the owner. The steward knew the character of his master well. He knew that his master was a man of great kindness and a wise man. He expected that his shame could be redeemed if he acted wisely and cleverly. In fact, the master responds favorably to his clever actions, and in the end the owner turned a blind eye to all his unrighteous actions.

 

Another place we see the relationship of reciprocity is between the steward and the tenant farmers. The steward relieves the debts of the tenant farmers, even though it is not his own money. In response, the beneficiaries, the tenant farmers, honor him. They are ready to take care of him and help him if he steps down from the stewardship. At the time, in times of recession, masters gained reputation by forgiving parts of the tenant farmers’ debts. The favor given by the master to the steward made the steward forgive the tenants’ debts, and in the end, through the steward’s actions, the tenant farmers benefited, and the master enjoyed honor. Also, the steward himself also gains honor and gets to keep his job as well, so this is a happy ending story. It is a story of killing three birds with one stone.

 

 

 

5.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today’s Scripture unless we understand the concepts of reputation and honor, as well as favor and reciprocity. Today’s text is about unrighteous or worldly wealth. A steward is someone who manages someone else's property. This steward's story is about us. We must remember that our owner has entrusted us with wealth. All our possessions are not owned by us. We must not forget that we are only stewards of God's wealth.

 

The parable of the steward urges us to use our finances with a Christian eschatological perspective (eschatological = relating to death, judgment, and the final destiny of the soul). We must understand the text with an eschatological framework. The story of the rich man and the beggar Lazarus is also understandable under this setting. From an eschatological point of view, the wealth we have is entrusted to us by God. The story of the rich man and the beggar Lazarus supports this thesis, as well as an example showing unwise use of wealth. The steward recognized that there is an end and used money for his end, although the money was not his.

 

Then, how do we use our wealth wisely? Today’s text gives us guidance on how to use worldly wealth. In one word, we must use it for the glory and honor of the master. It is to be used in a way that the owner is glorified. When we focus only on the damage done to the master by the dishonest steward, his actions should be condemned. However, his actions should be praised instead, since at that time, it was a far greater action to bring honor to the master than to cause financial loss.

 

The steward's clever behavior is ethically reprehensible but considered wise. By forgiving the tenant farmers’ debt, he ultimately raised his master's honor. He understood that the monetary loss from debt forgiveness brings reputation and honor to the owner. He understood that after all, what is important to the owner is gaining people, not profit, and gaining honor from people. He knew this better than anyone.

 

How we use our wealth should be similar. The purpose of our worldly wealth should be the glory of God and love for our neighbors. When our possessions are used for loving our neighbors, they cannot help but praise us. The good reputation we get from our neighbors eventually goes back to God, our owner. Verse 9, which immediately follows the main text, is the one-line summary of the parable. “I tell you, use worldly wealth to gain friends for yourselves, so that when it is gone, you will be welcomed into eternal dwellings (tent, tabernacle).” There is a time that wealth is gone. There is an end. At that time, we will enter the eternal dwellings because we have friends we gained by using worldly wealth. If our finances are used to meet our own desires, we are not doing it according to the instructions. It is desirable that our finances be used for friends and neighbors. In doing so, the master will be glorified, and in return for the glory, we will be invited to the eternal tabernacle.

 

6.

 

Last week I got a call from the Wooltari mall headquarter located in Los Angeles. I'm not a member and I have never ordered from the company. “Kim Kyung-heon, please give me your address.” The employee asked for my address. That employee is a friend of mine, and we served in the same choir during my military days. He immigrated to LA 20 years ago with his wife who came to study abroad. He said the owner of the company suddenly asked him if he knew anyone. The owner wanted to send some free food to some people, so he urged him to name someone. My friend remembered me and called me on the spot. A large box arrived at our front door by air delivery the next day. It was full of various Korean foods including meat, so our family couldn't help but be thrilled. I heard through my friend that the owner of the company is a faithful Christian man. I thought to myself, he must be aware of God’s financial manual, as written in today’s text. Through this kindness, our family felt God's compassion and deep love from our neighbors. To repay the owner for his good deeds, I gave him honor by sending a handwritten letter.

 

I hope we can be part of these stories too. Use worldly wealth to gain friends. Perhaps that is the most basic way to glorify God. As verse 13 says, one servant cannot serve two masters. We cannot serve God and Mammon at the same time. God’s financial manual for governing worldly wealth is available to us today. Shall we glorify our master through our wealth? Or will we become slaves to money and forsake God, the true master? Which life will you choose? Just like the steward who knew his master was benevolent and patient, we also must know our master well. Our lives are to be designed according to the character of the Lord. Because He is a kind person, we need to be kind with our use of finances. I hope that our lives become richer by better knowing and understanding the master's character. I pray that we use worldly wealth to gain friends and gain God also.

 

Posted by speramus

본문: 마가복음 11-8

제목: 회개의 세례

 

1.례요한의 배경

마가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 요한이라는 세례자로(John the Baptist)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1).” Good News라고 번역되는 헬라어 유앙겔리온(Euangelion)’을 우리는 복된 소식이란 뜻의 복음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야이신 예수가 전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는 매우 기쁜 소식입니다. Good News를 먼저 전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세례자 요한이라 소개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살아낸 이야기와 그가 만들어낸 삶의 스토리는 그리스도(메시아)가 앞으로 펼쳐 갈 복음의 내용과 같은 방향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태어나기 200여년 전의 이스라엘 역사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헬라하면 떠오르는 왕이 있죠? 누구인가요? 미국인들이 지금도 좋아해서 이 왕의 이름을 자기 아들과 딸에게 붙여주기도 합니다. 바로 알렉산더(Alexander the Great)대왕입니다. 알렉산더가 갑자기 죽자 헬라는 네 개의 나라로 갈라지게 되죠. 그 중에 한 왕조가 셀루커스 왕조(Seleucid Empire)인데 시리아(Syria)일대를 다스리게 되죠. 셀루커스 왕조 전까지 유대인들이 살던 지역은 제사장들이 자율적으로 통치하였습니다. 왜냐면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같은 제국들은 세금만 받아가고 자율적인 통치를 하도록 내버려 뒀기 때문이죠. 하지만 헬라제국 그중에서도 알렉산더가 죽은 후 등장한 셀루커스 왕조부터 팔레스틴을 직접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Antiochus VI Epiphanes)라는 왕은 이스라엘의 종교성을 완전히 박살내 버리기로 마음먹죠.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야웨(Yahwhe)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 헬라의 신들을 섬기게 강요합니다. 이스라엘의 신전에 헬라의 신상들을 들여 놓게 하고, 할례를 금지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지낼 때 돼지를 잡아 드리게 하고 돼지 고기를 먹도록 강요하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혐오하는 동물이 돼지 아니겠습니까? 이 때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저항 운동이 일어나는데 대표적인 저항 운동이 마카베우스 항쟁(Maccabeus Revolt)입니다. BC 167년에 벌어진 사건이었죠. 마카비(Machabee)는 망치(hammer)라는 뜻인데 맛디디아(Mattathias)의 아들 유다(Judah)의 별명이었죠. 이 항쟁(revolt)은 성공을 거두고 이스라엘은 셀루커스 왕조 대신 마카비의 후손들이 다스리게 되죠. 마카비의 후손들을 하스몬 왕조(Hasmonean dynaty)라고 부릅니다. 이 마카비 항쟁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세력이 핫시딤(Hasidim)”이란 집단이었죠. 핫시딤이라는 말은 자비나 사랑을 뜻하는 Hesed에서 파생된 말로 경건한 자란 뜻입니다. 그런데 하스몬 왕조가 제사장 권력과 정치 권력을 모두 장악하는 것을 보고 핫시딤들이 매우 실망합니다. 하스몬 왕조가 타락함을 직감한 거죠. 이 경건한 무리였던 핫시딤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지방으로 흩어집니다. 이 핫시딤들이 두 분류로 갈라집니다. 핫시딤의 제사장 무리들은 쿰란(Qumran)같은 사해 주변의 광야에서 금욕적인(Ascetic) 공동체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 제사장 무리들을 일컬어 에세네(Essenes people) 파라고 하죠. 그리고 핫시딤의 다른 한 부류들은 지방의 회당을 중심으로 율법을 실천하고 가르치는 일을 담당한 바리새파 (Pharisees people)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제사장이 아니라 평신도 그룹이었죠.

 

이렇게 길게 역사를 짚은 것은 요한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요한이 Essene 파로서 광야에서 수도적(monastic) 금욕생활을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에세네파는 광야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세상과 단절하여 금욕적인(ascetic)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사유재산도 소유하지 않고 수도원적인(monastic) 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에세네파는 결혼이나 성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사장 출신의 아이들을 입양하여 그들의 운동을 지속시키고자 했다고 합니다.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Zechariah)와 엘리사벳(Elizabeth)은 노년에 요한을 가졌기 때문에 요한이 어린 시절 죽었을 거라 추측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에세네파 공동체에 맡겨지고 길러졌다고 추측하는 거죠.

 

2.세례를 행하는 요한

요한이 에세네파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이스라엘 역사에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운 운동(movements)을 일으키고 있다는 겁니다. 그 운동이 에세네파가 보여준 형태와 매우 비슷했구요. 요한이 이스라엘에 시작한 운동은 바로 세례Baptism” 였습니다. 그렇다면 세례가 에세네파와 무슨 상관있냐는 질문이 들죠? 고고학자들은 쿰란이라는 지역에서 에세네파가 공동체 생활한 흔적들을 발견합니다. 그곳에는 물에 몸을 담그고 정결하게 씻는 정결 예식(ritual)를 행하는 ritual bath도 발견되었습니다. 에세네 사람들은 자신을 죄로부터 씻어내고 정결을 유지하기 위해 배쓰에 들어가 몸을 담그는 정결예식을 행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침례(baptism)가 에세네파의 정결예식과 많이 닮아있는 거죠.

요한을 세례자라고 칭하는 이유는 요한이 회개의 침례라는 새로운 예식을 유대인들에게 행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 어디에도 침례를 행하라는 율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침례는 구약성경을 거스르는 예식입니다. 모세의 율법에서는 죄를 씻고 정결케 하기 위해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회개의 유일한 길은 짐승을 죽여 제사 드리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이 율법을 거슬러 새로운 회개의 예식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는 이방인들을 유대인 공동체에 받아들이기 위해 행한 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세례라는 것을 행한 것일까요? 그리고 이 세례는 기쁜 소식인 복음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3. 회개의 형식과 본질

우리는 매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하고 말씀도 듣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종교에는 의식이나 예식이 있는데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고 그 형식(form, style)은 어떤 본질(Substance,essence)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형식과 본질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본질을 선택하겠죠.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에도 형식과 본질이 있죠. 회개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세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첫째, 내가 저지른 잘못된 행동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뉘우치는 마음입니다. 둘째, 나의 잘못된 행동으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질 뿐만 아니라 피해를 보상해주는 것이 회개의 본질입니다. 셋째,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다짐과 결단을 통해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회개의 본질입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이런 회개의 본질을 감싸 안는 형식이 바로 대속 제사(redemptive sacrifice) 였습니다. 대속 제사라는 형식을 행하면서 회개의 본질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형식만 남고 본질은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남는 종교가 되어 버린 겁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죠. 회개할 마음이 있고 회개의 본질은 갖추었는데 제물을 살 경제력이 안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회개할 줄도 모르는 나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당하기도 했죠. 이런 것을 이용해 먹은 사람들이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하스몬 왕조 말기에 에돔 사람이었던 헤롯 안티파스가 하스몬 왕조의 고위직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이 에돔 사람이 로마에 딱 달라 붙으면서, 헤롯 집안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헤롯 가문이 이스라엘을 100년 동안 다스리면서 대제사장의 평균 임기가 5년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대제사장은 종신직이죠. 이전 대제사장이 죽어야 다음 대제사장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보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대적했다고 나오죠. 대제사장이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헤롯 가문에 뇌물을 많이 갖다 바치는 사람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며 많은 사람을 세웠기 때문이죠. 이들이 받친 뇌물은 지금돈으로 100만불 200만불 정도되는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100-200만불의 뇌물을 바쳐서 대제사장이 되었다고 한다면 내가 대제사장으로 봉직하는 기간 동안 모든 관심이 어디에 집중되겠습니까? 갖다 바친 뇌물 이상을 회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대제사장들이 그때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돈벌이에 혈안이 된 겁니다. 돈벌이의 수단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이 냈던 헌금이나 십일조를 가지고 고리대금업을 한 것입니다. 그들의 두번째 돈벌이 수단은 제물을 비싼 값에 파는 것이었죠. 일반 시장에 가면 10만원에 살 수 있는 양 한 마리를 성전에서는30만원에 파는 겁니다. 그런데 안 살 수 있습니까? 시장에서 양을 사오면 부정하다고 합니다. 율법에서는 제사장에 의해서 정결하다고 인정받는 것들만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집에서 기르는 짐승이나 일반 시장에서 산 짐승을 가져오면 제사장들이 다 부정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물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 성전이 한 마디로 종교 사업을 한 겁니다.

 

누가복음 32절에는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내렸다(Annas and Caiaphas were the Jewish high priests. At that time God spoke to Zechariah's son John)”고 합니다. 안나스와 가야바는 장인과 사위 사이죠. 한 집안에서 대제사장직을 독차지 하고 있는 겁니다. 누가가 아무 의미 없이 안나스와 가야바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대항 세력이 바로 이들 대제사장 세력으로 대표되는 성전체제(temple system)였던 겁니다. 이들을 대항해서 회개의 본질, 나아가 종교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거룩한 운동이 바로 세례 운동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싸움은 형식에 대한 본질의 싸움이었습니다. 본질을 잃고 껍대기만 남은 성전체제와의 싸움이 이 복음의 시작이죠.

대제사장들의 종교 장사가 악한 이유가 무엇이냐면 사람을 수단화 한다는 겁니다. 사람을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자기의 이익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람을 이용해 먹는 것은 매우 악한 행위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세례 요한은 형식화 된 종교와 싸웠습니다. 형식화 된 종교는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악한 종교였기 때문이죠. 이 형식과 본질의 싸움이 우리 주 예수님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마가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율법의 형식을 깨뜨리면서까지 복음을 살아내려고 노력했던 겁니다. 이것이 세례 운동에 숨어 있는 복음입니다. 종교 장사에 희생되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열어준 것이 세례 운동이었던 겁니다

 

4.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복음

오늘날은 예수님 당시와 다를까요? 오늘날 기독교는 종교 장사를 하고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매주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고 그 형식은 본질을 담아내고자 만들어진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배의 형식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계십니까? 예배를 통해 여러분의 심령은 새로워지고 계신가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행하며 살아갈 마음이 여러분에게는 있으신가요?

 

본질을 찾기 위한 형식과의 싸움은 요한이 보여준 복음의 시작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께서 앞으로 만들어 가실 좋은 소식(Good News)의 이야기가 본질을 찾기 위한 끊임 없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과 요한은 같은 도상(on the same road)에 서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본질을 찾고 율법을 완성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시곤 했죠. 예수님은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본질인 자비와 사랑으로 행하는 실천이 중요함을 강조하셨죠. 그리고 예수님은 그 자비와 사랑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체제(temple system)로 작동하는 유대교가 종교장사를 하는 것을 가장 못 마땅해 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려야 할 성전이 사람을 죽이고 있으니 답답하실 수 밖에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사람이 회복되고 새롭게 만들어야 할 성전에서 사람이 이용당하고 수단으로 전락되어 버린 것이죠.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사람들은 대제사장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근대에 와서 기독교는 자본주의 종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이고 효율이죠. 자본주의에서 생산성이 뛰어나고 효율성이 뛰어난 것이 선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 이를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숫자를 사용합니다. 숫자를 통해 선과 악을 가늠하곤 합니다. 교인 수가 많은 큰 교회는 좋은 교회, 교인 수가 적은 교회는 나쁜 교회라고 생각하죠. 헌금을 많이 드리는 성도는 좋은 성도, 적게 드리면 나쁘다생각합니다. 과연 숫자 안에 종교의 본질을 담을 수 있을까요?

 

독일의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책 투명사회에서 디지털 사회를 비판합니다. 그는 디지털 사회가 놓치기 쉬운 서사(narrative), 즉 이야기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그는 Digital 이라는 말이 손가락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digitus”에서 나왔다고 말합니다. 손가락은 숫자를 새기 위한 손가락입니다. 그래서 디지털이란 새는 손가락, 즉 숫자를 바탕으로 합니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 인스타그람의 스토리라는 항목마저 샘을 위한 도구로 쓰여집니다. 몇 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하트 표시를 했는지에 의해 그의 인간됨이 판가름되기도 합니다. 친구도 숫자로 새지고, 애착도 호감도 숫자를 통해 표현됩니다. 오늘날 모든 것은 셀 수 있게 가공됩니다. 숫자로 나타내야만 성과와 효율성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 안에서 우리의 삶의 이야기는 의미를 잃어가게 됩니다. 숫자 안에서 인간은 도구화 되고 수단화 되어버립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절대 도구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성전으로 와서 자신들에게 이득을 남겨줘야 사람들이 요한에게 몰려가자 요한을 이단으로 취급합니다. 성전 제사를 통해 수입을 올려주어야 할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가자 그들은 예수를 신성모독(blasphemy) 한다고 없애려 하였죠. 요한이 예비한 주님 오실 길은 본질로 돌아가기 위한 사투(desperate struggle)였습니다.

우리들의 복음의 시작도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합니다. 무슨 계명을 지켰고 안 지켰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계명 안에 숨겨 있는 본질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만의 자비와 사랑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우리 교회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죠. 교회는 헌금이나 사람으로 채워지는 곳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복음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일 주일 동안 각자 삶의 자리에서 만들어낸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지고 교회에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모여서 주님의 복음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매 주일 예배를 통해 우리들의 신앙의 본질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숫자를 통해 표현되는 효율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본질이 회복되면 좋겠습니다. 내가 소중하듯 다른 이들의 삶이 소중함을 아는 믿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머리로만 아는 신앙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여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거룩한 사투에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우리를 지금도 초청하고 있습니다.

 

 

Scripture: Mark 1:1-8
Sermon: Baptism of Repentance / translated by Ji-Han Park

1. Background of John the Baptist
Mark says that 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begins with John the Baptist. “This is 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the Son of God (v. 1).” We interpret the Greek word ‘Euangelion’, which is translated as good news, as the gospel. There is a story that Jesus, the Son of God and the Messiah, tells, and that story is very good news. There is a person who preached the Good News first, and he introduces himself as John the Baptist. The story of John the Baptist's life and the story of the life he created are in the same direction as the contents of the gospel that Christ (Messiah) will unfold in the future. In order for us to understand the story of John the Baptist, we must first look at the history of Israel.

When you think of Greek Empero, is there a king that comes to mind? Who is it? Americans still like it so much that they give the king's name to their sons and daughters. That's Alexander the Great. After Alexander's sudden death, Greece splits into four kingdoms. One of them was the Seleucid Empire, which ruled over Syria. Prior to the Seleucid dynasty, the areas inhabited by Jews were governed autonomously by priests. Because empires like Assyria, Babylon, and Persia only received taxes and left them to rule autonomously. However, among them, the Seleucid dynasty, which appeared after Alexander's death, began to directly rule Palestine. In particular, Antiochus VI Epiphanes decides to completely destroy the religion of Israel. Antiochus Epiphanes IV forced the Israelites to serve the Greek gods in order to stop serving the God Yahweh. In the temple of Israel, the gods of Hella are put in, and circumcision is prohibited. And when the Israelites hold a sacrifice, they force them to slaughter a pig and eat pork. Isn't the pig the most hated animal by the Israelites? At this time, there is a resistance movement centered on the priests, and the representative resistance movement is the Maccabeus Revolt. It happened in 167 BC. Maccabee means a hammer, and it was the nickname of Judah, the son of Mattathias. This revolt succeeds, and Israel is ruled by the descendants of the Maccabees instead of the Seleucids. The descendants of the Maccabees are called the Hasmonean dynasty. The forces that actively helped the Maccabi Rebellion was a group called “Hassidim”. The word Hassidim is derived from ‘Hesed’, which means mercy or love, and means “the godly one.” However, the Hassidim are very disappointed to see that the Hasmonean dynasty seizes both priestly and political power. He felt that the Hasmonean dynasty had fallen. This godly group, the Hassidim, leave the temple in Jerusalem and scatter to the provinces. These Hassidim are divided into two categories. The group of priests of Hassidim begins an ascetic community life in the wilderness around the Dead Sea, such as Qumran. This group of priests is called the Essene people. And the other type of Hassidim were the Pharisees people who were in charge of practicing and teaching the law centered on local synagogues. The Pharisees were a group of laymen, not priests.

The reason why I pointed out such a long history is to understand John's background. Many people think that John may have lived a monastic ascetic life in the wilderness as an Essene. The Essenes people lived a community life in this kind of wilderness and lived an ascetic life cut off from the world. They were people who never married, did not own private property, and lived a monastic life. It is said that the Essenes wanted to continue their movement by adopting children from priests because they did not have marriage or sex life. John's parents, Zechariah and Elizabeth, had John in their old age, so they may have died while he was a child. So it is assumed that John was entrusted and raised by the Essene community.

2. John the Baptist
It doesn't matter whether John is an Essene or not. His life is only similar to that of the Essenes. The important thing is that John is creating new movements unheard of in Israel's history. That the movement has its roots in the Essenes. The movement that John started in Israel was “Baptism”. Then you ask what does baptism have to do with the Essenes? Archaeologists find traces of Essenes living as a community in the Qumran area. Ritual baths were also found there, where rituals of purification were performed by dipping and washing the body in water. Essene people went into a bath to cleanse themselves from sin and to keep themselves clean. The baptism of John the Baptist is very similar to the purification ceremony of the Essenes.

The reason why John is called the Baptist is because John performed a new rite called the baptism of repentance to the Jews. Even in the Old Testament, there is no law requiring baptism anywhere. Rather, baptism is a ceremony that goes against the Old Testament. In the Mosaic Law, we are told to offer sacrifices to wash away sins and purify them. The only way to repent was to kill an animal and offer it as a sacrifice. By the way, John the Baptist is doing a new ceremony of repentance against this law. Baptism was a ceremony performed to receive Gentiles into the Jewish community. But Jews are receiving that baptism. For what reason did John the Baptist perform baptism to the Jews? And what does this baptism have to do with the gospel, the good news?

3. The Form and Nature of Repentance
We have worship services every Sunday. Pray to God, praise God, and listen to His Word. There are rituals or ceremonies in the religion we practice, but they have a certain form, and the form (style) is a means to pursue a certain essence. If I had to choose between form and essence, I would choose essence. The same goes for repentance. Repentance also has a form and an essence. What is the nature of repentance? I could say three things. First, I am heartbroken and remorseful for my wrongdoing. Second, the essence of repentance is not only to feel sorry for the person who has suffered damage due to my wrong actions, but also to compensate for the damage. Third, the essence of repentance is to move in the opposite direction through a resolution and determination not to commit such a sin again.

In the law of Moses, the form that embraced the essence of repentance was the redemptive sacrifice. It is to pursue the essence of repentance while performing the form of the ransom sacrifice. However, as time passes, only the form remains and the essence disappears. It has become a religion with no substance and only a shell. There are also the opposite cases. There were also people who had a heart to repent and possessed the essence of repentance, but did not have the financial power to buy sacrifices. People like this were pointed at as bad people who did not even know how to repent. Religious leaders often used tactics like these.

After the Hasmonean dynasty, the Herod family began to rule Israel. It is said that the average term of office for the high priest was 5 years while the Herod family ruled Israel for 100 years. Originally, the high priest served for life. The previous high priest must die before the next high priest can be established. But in the Gospels, it says that “the elders,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resisted Jesus. The high priest is in the plural. Because he appointed a person who brought a lot of bribes to the Herod family as the high priest and appointed many people. The bribes they paid were enormous amounts of money, about $1 million to $2 million in today's money.

If I became the high priest by paying a bribe of one to two million dollars, where would all the attention be focused during my service as high priest? Shouldn't we recover more than the bribe paid? That is why, from that time on, these high priests put up the name of God and became frantic about making money. One of the means of making money was usury with the offerings or tithes that people paid. Their second means of earning money was selling sacrifices at high prices. If you go to the general market, you can buy a sheep for 100 dollars, but the temple sells it for 300 daollars. But is there any choice not to buy it ? Buying a sheep from the market is considered unclean. Under the law, only those things recognized as clean by the priests could be sacrificed. If people bring animals they raise at home or animals bought in the general market, the priests say that they are all unclean. People have no choice but to buy sacrifices at the temple. In a way, the temple was doing religious business.

Luke 3:2 says, "Annas and Caiaphas were the Jewish high priests. At that time God spoke to Zechariah's son John." Annas and Caiaphas are father-in-law and son-in-law. He is holding the position of high priest in one family. Luke does not mention Annas and Caiaphas without meaning. The opposing forces of John the Baptist were the temple system represented by the forces of the high priests. The baptism movement was a holy movement to counter them and restore the essence of repentance and, furthermore, the essence of religion. John the Baptist's battle was a battle of substance against form. The fight against the temple system that has lost its essence and remains only a shell is the beginning of this gospel.

The reason why the religious business of the chief priests is evil is that they use people as means. It is to think of people as a means to satisfy one's own desires. It is a very evil act to use people to satisfy one's own interests. Because man is a being made in the image of God. John the Baptist, on the other hand, fought against formalized religion. This is because the formalized religion was an evil religion that used people as its means. Mark says that this battle between form and essence is 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our Lord Jesus. John the Baptist tried to live out the gospel even by breaking the formality of the law. This is the gospel hidden in the baptism movement. It was the baptism movement that opened the way to meet God to those who were sacrificed in the religious business and could not meet God.

4. The gospel of restoring the image of God
Is today different from the time of Jesus? Can we confidently say that Christianity today is not in the business of religion? We worship every week. There is a certain format in worship, and the format was created to contain the essence. The essence of worship is to meet God. Are you meeting God through the form of worship? Is your spirit being renewed through worship? Do you have the heart to discern God's will through preaching and to live by doing that will?

The fight against form to find the essence was the beginning of the gospel that John showed. In other words, it tells us that the story of the Good News that Jesus will create in the future will be a constant battle to find the essence. In that sense, Jesus and John are standing on the same road. Jesus used to say that he came to this earth to find the essence of the law and fulfill the law. Jesus emphasized that the form of worship offered in the temple is not important, but the importance of faith in mercy and love, which is the essence of the law. And Jesus showed that mercy and love directly. Jesus was most displeased with Judaism, which operates as a temple system, doing religious business. It can only be frustrating because the temple that should have saved people is killing people. A person who owes the form of God is restored and a person is used and used as a means in the temple that needs to be made anew. People made in the image of God became tools to satisfy the desires of the high priests.

In modern times, Christianity seems to have become a species of capitalism. The most important thing in capitalism is profit and efficiency. In capitalism, being productive and being efficient is considered good. So capitalism uses numbers to make it easy to recognize. We often judge good and evil through numbers. A big church with a lot of members is a good church, and a church with a small number of members is a bad church. It's good when a lot of offerings are collected, and bad when little is collected. Can the essence of religion be contained in numbers?

German philosopher Byung-Chul Han criticizes digital society in his book “Transparent Society”. He talks about the importance of narrative, that is, the story, which is easy to miss in the digital society. He said that the word digital comes from the Latin word “digitus” which means finger. Fingers are for counting numbers. So digital society is based on numbers. Even the Facebook Timeline and Instagram Stories items are based on numbers. Someone’s humanity is judged by the number of likes and hearts. Friends are counted in numbers, and attachment and liking are expressed through numbers. Today everything is countable. This is because performance and efficiency can only be expressed in numbers. In numbers, the story of our lives loses its meaning. In numbers, human beings are used and objectified.

Jesus never looked at people as tools. It was His purpose to restore the image of God in man. The high priests came to the temple and treated John as a heretic when people flocked to him because they had to give them a profit. When the people who had to raise their income through the temple sacrifices flocked to Jesus, they tried to get rid of

Jesus for blasphemy. The way John prepared for the coming of the Lord was a desperate struggle to return to the essence. The beginning of our gospel should be like this. It doesn't matter what commandments you kept or didn't keep. It must be a life of pursuing and practicing the essence hidden in the commandments. Now we have to create our own story of mercy and love. We have to create a beautiful story unique to our church. The church is not a place filled with offerings or people.The church is a place filled with beautiful gospel stories. We must gather at church with the beautiful stories we have created in our lives for a week. And we must gather here to hear the story of the gospel of the Lord and return to our place of life with a new imagination.

I hope that the essence of our faith will be restored through worship every Sunday. I hope the essence of valuing and loving a person is restored, not efficiency expressed through numbers. I hope it is a faith that knows that the lives of others are as precious as I am. We must move forward with a faith that makes love of God and love of neighbors into stories by practicing them with our lives, not faith that we only know in our heads. John the Baptist and Jesus are still inviting us to this holy struggle.

 

Posted by speramus

본문: 마태복음 13:33 

제목: 세상 속의 작은 누룩

 

1.

해가 밝았습니다. 2022년은 가고 2023년이 백지처럼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새로운 해를 우리는 어떻게 채워가야 할까요? 어떻게 사는 것이 사는 삶일까요? 한국에서 새해 인사로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소유를 갖고 부족함 없이 사는 삶이 사는 삶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나라도 살고 부자도 되어가는데 한국 사회는 병들어 갔습니다. 자살하거나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가 되어버렸어요.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진거죠.  가진 것이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죠. 어떻게 사는 삶이 사는 삶일까요? 우리 어린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어떻게 살아야 살았다고 칭찬을 들을 있을까요?

제가 자주 이야기 하지만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사는 삶입니다. 사람은 언제 보람이 생기고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씀드렸죠? 맞아요. 다른 이와 연결되고 다른 이들을 도와주면서 보람을 느끼고 의미를 발견하게 되죠. 2023년을 살고 12월이 되었을 우리 모두가 정말 살았다.”라는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보람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해요.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누룩(a little yeast)처럼 살아라 말씀하셨어요.

 

오늘 말씀은 지난 달에 말씀 드렸던 겨자씨 비유와 통으로 읽을 있는 비유입니다. 겨자씨 비유에도 말씀 드렸지만 비유는 적은 양으로 시작해서 엄청나게 열매를 맺는 것을 핵심적으로 나타낸다고 말씀 드렸었죠.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 그렇다는 거죠. 하나님 나라는 작게 시작하지만 성장의 속도도 빠르고 결과도 엄청나게 큽니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가루 속에 살짝 섞어 넣으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올랐다(마태복음 13:33)."

누룩이라고 하니까 조금 우리에게 다가 오죠? 이스트를 있으신가요? 이스트가 누룩인데요 누룩은 다른 말로 효모(ferment, enzyme) 가리킵니다. 많은 밀가루에 이런 이스트나 효모를 넣으면 빵이 부풀어 지고 쫄깃쫄깃 해집니다. 누룩이란 것은 쉽게 얘기해서 곰팡이(fungus) 입니다. 곰팡이는 고온 다습한(high temperature and humidity) 환경을 무척 좋아합니다. 물기가 있는 , 온도가 높은 곳에서 급속도로 번식합니다. 한국에 그런 경험 있으시죠? 겨울에 외풍이(draft) 너무 심해서 창문에 비닐을 쳐서 바람을 막잖아요. 그런데 환기를 안시키면  벽에 곰팡이가 새까맣게 끼잖아요. 인류의 3 난치병(an intractable disease)으로 알려진 무좀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곰팡이 균이 얼마나 강력한 압니다. 누룩도 곰팡이라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곰팡이 중에 좋은 곰팡이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누룩이죠. 누룩은 당과 결합하여 발효를 일으킵니다. 발효되면서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을 만든다고 합니다. 바로 발효되면서 생기는 이산화탄소 땜에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거래요. 발효되면서 생기는 에탄올에서 술냄새가 나는 겁니다. 이스트가 얼마나 빵을 감칠맛 나게 해주는지 빵만들어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가루에 누룩을 넣었다고 했는데 분명 여자는 빵을 만들기 위해 가루에 누룩을 넣었던 거겠죠? 말은(three big batch of flour)  60파운드, 36리터 정도의 양입니다. 말의 밀가루로는 예수님 당시 100명의 사람들이 먹을 빵을 만들 있는 양이었습니다. 일반 가정집에서 만들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밀가루입니다. 예수님은 말이라고 말씀하셨던 걸까요? 그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적은 양의 누룩이지만 엄청 많은 양의 가루에 붙어 가루 전체를 발효시키고 부풀리게 하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누룩처럼 적은 양으로 시작하지만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2.

여러분 기독교는 아니 다른 말로 복음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통치 하에 기독교는 곰팡이 취급을 당했어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곰팡이 취급을 당했지만 복음은 로마 안에서 강력하게 퍼져 갔어요. 복음은 세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달라 붙어서 세상을 아름답고 살맛나게 만들어주는 것이 복음이예요. 마치 누룩이 밀가루에 붙어 발효하여 새로운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을 만들 듯이, 복음은 세상에 달라붙어서 세상을 새롭게 만들 있습니다. 복음이 갖고 있는 놀라운 힘입니다.

 

다하나교회는 비록 적은 숫자의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통해 세상이 변화되길 바라십니다. 세상이 비록 가루 말처럼 엄청 클지라도 발효된 적은 누룩만 있으면 가루 전체를 바꿔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얘기해 주고 있어요. 적은 누룩을 가루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있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만들 이상한 이스트를 넣어서 빵이 부풀지 않은 경험 있으신가요? 저희 집에서도 Trader Joe’s 노란 가루로 yeast라고 적힌 것이 있어서 사서 만들 넣어 보았어요. 그런데 빵이 하나도 부풀지 않는 거예요. 그때  밀가루가 부풀지 않는 가지 경우를 알게 됐죠. 언제 밀가루 반죽이 부풀지 않을까요?

첫째, 제대로 누룩이 아니면 부풀지 않습니다.  둘째, 누룩은 온전한데 누룩이 밀가루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부풀지 않습니다.

 

첫째, 누룩이 온전한 누룩이 아니면 밀가루 전체를 부풀게 없습니다. 누룩이 밀가루에 달라 붙어 발효(fermentation)되어야 하는데 제대로 누룩이 아니면 소용없습니다. 겉모양은 누룩인데 밀가루가 썩은 것이라면 누룩의 효과를 없겠죠. 썩은 밀가루는 다른 밀가루도 썩게 만들어 버립니다.

여러분 썩는 , 부패하는 것과 발효는 비슷하면서도 결과는 매우 다릅니다. 발효되면 몸에 좋은 항생(antibiotic)물질이 나와 더욱 맛나게 합니다. 하지만 썩으면 아무 쓸모가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발효와 부패는 보기에는 차이가 없지만 결과는 전혀 판입니다. 우리 나라 음식에는 발효식품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습니다. 김치와 된장이 대표적인 발효식품이죠. 음식들은 썩지 않고 발효되어 우리 입맛을 돋굽니다. 젓갈(salted fish) 보세요. 젓갈은 정말 신기합니다. 분명 생선의 시체인데 썩지 않고 발효되어 독특한 맛과 향내를 냅니다. 누룩을 만드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진짜 누룩에 달라붙어 있으면 자연스레 누룩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달라 붙어 예수님처럼 살기 원할 진짜 누룩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둘째, 누룩이 밀가루에 들어가지 않으면 밀가루는 그대로 있을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들어가지 않으면 세상을 절대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비록 작은 누룩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갈 변화는 일어납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세상 앞에서 두려워 때가 있습니다. 그냥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처럼  튀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유혹이 듭니다. 괜히 예수님처럼 발효됐다가 사람들의 비호감만 사지 않을까 고민이 됩니다. 그냥 세상 사람들처럼 밀가루로 살아가면 안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새롭게 거듭난 삶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내는 것을 세례라고 하죠. 세례 받은 교인이란 밀가루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누룩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된 삶이 맛깔나는(tasty)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세상 속에서 누룩으로 살아갈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변화된 기쁨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변화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누룩이 빵을 맛깔나게 하듯, 우리도 예수님을 통해 다른 이들의 삶을 맛나게 바꿔줄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의 누룩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누룩으로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로마의 통치 하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엄청난 박해와 탄압에 시달렸습니다. Colosseum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 찢겨 가면서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죠. 그들은 누룩이기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어느 누룩의 영향력이 먹혀 들어가게 됐고 300 로마는 기독교 국가로 변화되었죠.

우리는 밀가루가 되어서는 세상을 변화시킬 없습닏다.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은 밀가루의 모습으로는 아무 영향력을 가질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것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갈 이런 변화들이 우리 가운데 생깁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세상 속의 밀가루들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누룩의 정체성을 가지고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겁니다. 너희는 다른 거야? 라는 핀잔을 들어도 좋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기 때문이예요라고 분명하게 얘기해 주어야 합니다. 소심한 누룩이어도 좋습니다. 그냥 여러분의 직장 사무실만이라도 좋습니다. 여러분 바로 옆집만이라도 좋습니다. 그들 속에서 누룩으로 살아가 보십시오. 그들을 도우며 의미와 보람을 가져 보십시오. 안에서 발효되어 보십시오. 이웃들과 컨텍을 시도해 보십시오. 인사도 건내보시고 말도 건내보십시오. 의외로 이웃들도 여러분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들도 학교의 클래스 안에서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살아가 보세요. 하나님의 자녀처럼 힘들어 하는 친구들과 괴롭힘 당하는 친구들을 도와주는 그런 어린이가 되면 좋겠어요. 웃으면서 친구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예요. 항상 주변에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누가 있나 살피고 도와주는 그런 어린이들이 되면 좋겠어요. 여러분 모두가 1 동안 누룩이 되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맛을 잃어버린 우리 이웃들에게 인생은 만한 의미로 가득하다는 알려주는 되었으면 좋겠어요.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의 가운데 가득하길 빕니다.

 

Sermon Title: Little Yeast in the Big World | Scripture: Matthew 13:33 / translated by Melody Lee

1.

The new year has dawned. 2022 has passed and 2023 is presented before us like a blank sheet of paper. How should we fill the new year? How should we live to say we lived a good life? At one time, the phrase “Be rich!” was a popular New Year’s greeting in Korea. It was because they thought that a good life was one full of material wealth. However, while Korea prospered and became rich, Korean society became sick. It has become the country with the most people in the world who commit suicide or want to commit suicide. There are too many people with mental illness. We realize that having a lot of things doesn't mean being happy. Then, how should we live to say we lived a good life? I would like to ask our children. How can I live a good life?

As I often say, living a worthwhile and meaningful life is a good life. When do people's lives become worthwhile and meaningful? I mentioned this previously: When we connect with others and help others our lives become worthwhile and meaningful. When December 2023 arrives, I hope we can all say, “I lived a really good year.” To do that, we have to live worthwhile and meaningful lives. That is why Jesus said, "Live like little yeast" through today's message.

 

Today's message is a parable that can be read in the same way as the parable of the mustard seed I spoke about last month. Similar to the mustard seed parable, the key message of these two parables is how fruitful they become from a tiny beginning. That is the nature of God's kingdom. The kingdom of God starts small, but the speed of growth is fast and the results are enormous.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yeast that a woman took and mixed into about sixty pounds of flour until it worked all through the dough.” (Matthew 13:33)

 

Because the Kingdom of Heaven is compared to yeast, it's hard for us to relate and understand, isn't it? Have you ever seen yeast? Nuruk is yeast (traditional Korean fermentation starter, term used in the Korean translation). Nuruk also indicates fermentation. Adding yeast to flour makes the bread rise and become chewy. Simply put, yeast is a type of fungus. Fungi love high temperature and humidity environments. It reproduces rapidly in places with moisture and high temperatures. Some of you may have had this experience living in Korea. In winter, the draft is so bad that we put vinyl on the windows to block the wind. However, if there is no ventilation, mold forms on the walls. Those who have athlete's foot, known as one of the three intractable diseases of mankind, know how powerful fungi are. Yeast is also a fungus, so it has very strong power.

 

There are good fungi, and the most representative one is yeast. Yeast combines with sugar to cause fermentation. As it ferments, it produces carbon dioxide and ethanol. The dough rises because of the carbon dioxide produced during fermentation. The ethanol produced during fermentation gives off the smell of alcohol.  It is because of yeast that the bread smells like alcohol.

 

Jesus said that the woman put yeast in the flour, but we can safely assume this woman put yeast in the flour to make bread. Sixty pounds of flour are about 36 liters. Sixty pounds of flour was enough to make bread for 100 people during the time of Jesus.

 

Sixty pounds of flour was an enormous amount of flour to make at home. Why did Jesus tell us sixty pounds of flour? It is to emphasize a much larger quantity than is commonly thought. Even though it is a small amount of yeast, it attaches to an enormous amount of flour to ferment and swell into bread. It is to emphasize that the propagation speed and ripple effect are massive for a small amount of yeast. The kingdom of God has these characteristics. The kingdom of God begins with a small amount, but has a mighty power.

 

2.

Everyone, Christianity, or in other words, the gospel, is just like this. Christianity was treated like fungi under Roman rule. Although they were treated as useless fungi, the gospel spread powerfully in Rome. The gospel is not far from the world. The gospel clings to the world and changes it anew. Just as yeast attaches itself to flour and ferments to create new carbon dioxide and ethanol, the gospel clings to the world and renews it. This is the amazing power of the gospel.

 

One Heart Church is a small community. But the Lord wants the world to change through us. Even though the world is as big as sixty pounds of flour, if you have a little yeast that has been fermented well, you can transform all the flour. Today's text clearly tells us. He said that a little yeast put into sixty pounds of flour could make it all rise.

 

Have you ever experienced bread that doesn't rise because you used strange yeast when making bread? At my house we have yeast from Trader Joe’s that I bought. When I tried adding it to make bread my bread didn’t rise. At that time, I discovered two cases where flour does not rise. When will the dough fail to rise? First, if it is not proper yeast, it will not rise. Second, the yeast is not incorporated into the flour, it will not rise.

 

First, if it’s not proper yeast, your bread will not rise. Yeast sticks to the flour and needs to be fermented, but if it is not proper yeast, it is useless. It looks like yeast, but if the flour is rotten, it won't have the effect of yeast. Rotten flour causes other flour to become rotten as well.

 

Everyone, rotting and fermentation are similar, but the results are very different. When fermented, antibiotic substances that are good for the body come out and make it more delicious. But when it rots, it becomes useless. This fermentation and rotting doesn't look much different from the outside, but the results are completely different. There are more fermented foods in our national cuisine than in any other country. Kimchi and doenjang (soybean paste) are representative fermented foods. These foods are fermented without spoiling and stimulate our taste buds. Look at salted fish. Salted fish is really amazing. It is obviously the carcass of a fish, but it is not rotten. It is fermented, giving it a unique taste and smell. We too through our faith in Jesus become new people who can bring beautiful change to this world.

 

Second, if yeast is not incorporated into the flour, the flour has no choice but to remain unchanged. If we do not enter the world, we can never change the world. Although we may be just small yeasts, changes happen when we live our different lifestyle in the world with others. But sometimes we are afraid in front of the world. It's tempting to just live a quiet, unobtrusive life like everyone else does. We worry that we won’t be able to handle people’s disdain like Jesus. We wonder if we could just live like flour, like other people in the world.

 

Do not be afraid to crucify yourself with Christ and live a new born again life. It is called baptism to show that we died on the cross with Christ and were resurrected with Christ in front of many people. Baptized church members are those who have decided to live a life of yeast, not a life of flour. Those who acknowledge that a life transformed into a person of Jesus Christ is a tasty life have no choice but to live as yeast in the world. Because they are so happy that they have changed, they want others to change like them.

 

The purpose of our being born on this earth is to display the glory of God in this world. We are the yeast of this world. We all must create God's kingdom in the world with God's yeast. Under Roman rule, the Early Church saints suffered tremendous persecution and oppression. They did not deny God even though they were eaten by lions in the Colosseum and were torn to pieces. They did not give up being yeast. At some point, the influence of this yeast worked, and 300 years later, Rome was transformed into a Christian country.

 

We cannot change this world and expand the kingdom of God by becoming flour. We must be yeast. We cannot have any influence on  the people of the world by being the same flour as them. These changes occur among us when we live a life of giving ours for others like Jesus did. Jesus even described it as a life of bearing the cross. It is not as flour in the world, but with the identity of yeast and living with different thoughts and values. It’s good to hear others tell you off and ask, “Why are you different?” You have to tell them clearly, "It's because we live a life that follows Jesus." It's good even if you're timid. Even just your work office is fine. Even just next door to you is fine. Live as yeast among them. Have meaning and reward by helping them. Try to ferment among them. Try contacting your neighbors. Talk to them and say hello. Surprisingly, your neighbors may have been waiting for you to come too.

 

Children try to live differently from other friends in the class of school. I hope you become children who help their friends who are having a hard time and who are being bullied like God's children. It is good to greet your friends with a smile. I hope you become children who always look out for those who need your help and help those around you. I hope all of you will become yeast during the upcoming year and create a world worth living in. I hope it will be a year that tells our neighbors who have lost the taste to live that life is full of meaning to live. May the grace and blessings of the Lord be filled in your year.

Posted by speramus

본문: 누가복음 236-38

제목: 주님 마중

 

1.

<엄마 마중>이라는 어린이 책을 아이들에게 자주 읽혀 줍니다. 네 살 정도의 어린 꼬마 아이가 어느 겨울 날 엄마를 마중하러 전차가 다니는 큰 길로 나갑니다. 전차 정거장에 서서 기사님에게 우리 엄마 언제 와요?”하고 묻습니다. 기사님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아이는 그냥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기로 하죠. 동화책은 마지막 페이지에 눈이 쏟아지는 골목길에 한 손에 한 짐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엄마를 그리며 끝이 나죠.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을 우리 모두는 이해할 겁니다. 어린 시절 엄마는 모든 것이죠. 여기 엄마를 향한 기다림을 표현한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기형도라는 시인이 쓴 <엄마 걱정>이라는 시이고 1985년에 쓰여진 시입니다.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우리 엄마

오시네, 해는 시든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옛날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시절, 유년의 윗목

 

시를 들어 보시니, 쓸쓸하고 적막한 기다림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엄마는 열무(radish) 30단을 지고 시장에 가셨습니다. 열무 30단이라도 팔아야 아이들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엄마가 언제나 오실지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해는 서산에 지고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것을 해가 시들었다.”라는 표현을 썼죠. 엄마가 이고 간 열무와 연결되는 시적인 표현이죠. 방 안에 갇혀 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표현을 찬 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깨어진 창문 틈으로 엄마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고 빗소리만 처량하게 들리고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아궁이로 불을 피우는 온돌방을 경험하신 분들은 윗목 아랫목의 느낌을 아실 겁니다. 아랫목은 따뜻한 곳이지만 윗목은 차갑습니다. 어머니를 위해 아랫 목을 비워 두고 윗목에서 기다리는 시인입니다.

 

어린 시절 어지럽고 심란한 우리들의 현실을 수습해 줄 사람은 엄마였습니다. 엄마는 만능이셨죠. 엄마 없는 삶이란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란 딱 이 찬 밥과 같은 처지였습니다. 그들은 자그마치 700년 동안 다 섯개의 거대한 제국에 의해 점령을 당해 왔습니다. 앗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이 바로 5대 제국이었습니다. 로마의 점령이 시작되면서부터 그들의 처지는 더 비참하게 변해갔습니다. 로마 이전의 제국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율권을 주었습니다. 그들의 종교도 인정해 주었었죠. 하지만 로마는 이스라엘을 직접 통치하는 방식으로 바꿨고 황제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이에 견디기 힘든 군중들은 로마에 대항하기도 했습니다. 갈릴리의 중심지였던 세포리스에서는 열심당의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로마는 군대를 보냈고 세포리스로 들어가는 길의 양 쪽에 2000개의 십자가를 세웠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지 상상하기 힘듭니다.

 

에돔 지역을 다스리던 이방인었던 헤롯의 가문은 로마편에 들러 붙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명분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잔혹하게 유대인들의 피를 빨아 먹기 시작했죠. 헤롯 가문의 통치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참한 현실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엄마 잃은 아이들처럼 이제나 저제나 그들을 구원해 줄 메시야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그들의 비참한 현실은 역전 될 것이라 확신했죠. 메시야는 정치적인 왕으로 오셔서 로마를 물리치고 그들에게 자유를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 힘들수록 메시야를 더 간절히 기다렸죠.

 

2.

아셀 지파 사람 안나(Hannah)와 같은 여인은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렸던 대표적인 사람이었죠. 그녀는 결혼 한지 칠 년이 지나 과부가 되었습니다. 당시 여인들이12살이면 결혼을 했다고 하니 안나는 20살 즈음에 벌써 과부가 되었던 겁니다. 성경에서 가장 보살핌이 필요한 비참한 사람들이 바로 고아와 과부입니다. 안나의 삶이 순탄하지만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과부라는 그녀의 신분에서 우리는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특이하게 그녀를 소개하면서 누가는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시절 아셀 지파가 분배 받은 땅은 서북쪽 끝 지중해 연안의 땅이었습니다. 미국으로 치면 시에틀이 있는 워싱턴 주의 위치인 거죠. 아셀 지파의 땅에는 두로(tyre)와 시돈(sidon)이라는 항구 도시가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푀니키아(Phoenicia) 민족이 살았던 무역이 활발했던 지역이죠. 로마 말로 포에니(Poeni, Punica)라고 불리우던 푀니키아 사람들이 지배하던 땅을 아셀 지파가 배분 받은 것입니다. 이 지역은 무역으로 먹고 사는 동네이기에 매우 풍요롭고 잘 사는 지역이었죠. 열왕기에 나오는 아합의 부인이었던 이세벨이라는 여왕이 바로 이 지역 출신입니다. 아주 악독한 여왕이었죠. 중요한 것은 이런 지역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안나의 집안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겨왔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안나의 아버지 바누엘은 브니엘과 같은 뜻인데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참고로 아셀지파의 아셀은 히브리 말 “Asher-행복한 자라는 뜻입니다. 안나는 헬라식 표현이고 히브리어로는 한나(Hanan)로서 은총, 은혜라는 뜻입니다. 안나는 비록 과부였지만 그녀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면 그녀는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그녀는 간절히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원했습니다. 20살부터 84세가 될 때까지 그녀는 메시아의 얼굴을 보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누가는 그녀를 헬라어로 프로페티스(προφητις)’ 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언자의 여성형입니다. 예언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을 깨우는 자였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죠. 안나는 60년 넘는 기간 동안 성전에 머물면서 그곳에 오는 자들의 삶을 깨웠습니다. 지금은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머지않아 메시아가 오실 것이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가라고 사람들에게 선포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실제로 예수를 대면하고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이 아기가 그 구원을 이룰 분이라는 것을 전해 주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쓰인 구원은 헬라어에서 일반적으로 구원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소테르(Soter)’가 아닙니다. 여기서 쓰인 헬라어 단어는 뤼트로시스ύτρωσις)”인데요 값을 치른다는 표현인 속량(ransom)’ 해당되는 말이지요. 아기 예수가 앞으로 십자가를 통해 그들의 죄값을 대신 치르고 속량할 구세주가 것이라는 것을 단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겁니다.

 

3.

안나의 60년이 넘는 메시야를 향한 간절한 기다림이 그냥 존경스럽습니다. 안나는 알았습니다. ‘찬 밥신세와 같은 그들의 현실을 타개해줄(solve, redeem) 분은 메시야 한 분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랜 기다림으로 지쳐 갔습니다. 하지만 메시야는 그들 마음의 간절한 기다림을 도로 삼아 그들에게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기다림을 하나님이 오실 길로 이해합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다림은 그분이 우리의 현실 가운데로 오게 만드는 도로와 같은 것이죠.

 

우리 또한 심란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혼란스럽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소견대로 살아갑니다. 자본은 이런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가장 위세를 떨치는 힘있는 존재로 여겨지죠. 우리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있습니다. 때론 무엇이 옳은 지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엄마가 오시면 집안의 모든 혼란이 끝이 나듯, 다시 오시겠다던 메시야 주님께서 어서 오셔서 이 땅을 구속하시기만을 바랄 뿐이죠. 안나는 메시야 예수의 얼굴을 보고 만족하였습니다. 그분이 그들의 민족을 속량하시고 구원해 내실 것이라 확신했죠. 그녀의 간절한 기다림은 아기 예수의 얼굴로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이 거룩한 성탄절에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을 갈망하시나요? 여러분의 삶에 질서를 주시고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실 분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분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메시야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그분은 한 없이 자기를 비우셨고 낮추시어 우리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안나처럼 우리도 그분을 기쁨으로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불안정하고 어지러운 현실 가운데로 그분을 초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오시어 윗목에 버려진 찬 밥과 같은 우리네 현실 가운데 구원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4.

엄마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우리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비록 어둡고 혼란스러운 현실 가운데 살아갈지라도 주님을 향한 기다림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이 땅의 삶이 전부인 양 그렇게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은 각성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앙은 이 땅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취제가 아닙니다. 신앙은 또한 이 땅의 현실을 외면한 체 나 몰라라 즐기는 환각제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은 우리를 깨워 이 땅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이 땅을 구원할 참 구원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인식하게 만들어주죠. 나아가 우리가 어떤 삶의 태도로 그 구원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우리를 깨워주는 각성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나처럼 예언자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며 우리 삶을 통해 그분의 오실 길을 예비해야 하는 것이죠.

 

저는 밥을 매우 잘 짓습니다. 특히 냄비에 밥 짓는 것을 매우 잘 합니다. 제가 밥을 잘 짓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 들에 나가 일하시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집에 밥이 없으면 어머님이 돌아오셔서 밥 하시느라 또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미리 밥을 해 놓게 된 겁니다. 어머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과 함께 어머님이 돌아오자 마자 밥을 드시게 하고픈 마음이 합쳐진 거라 할 수 있겠죠.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지만 주님 오실 길을 우리가 예비해 놓는 것입니다. 밥을 지어 엄마를 기다리듯이 우리 삶을 통해 주님의 다시 오심을 표현해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만드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가 미리 만들어 놓기 위해 노력하는 삶입니다. 멍 때리고 잠자고 있다가 주님 오실 때 당황하는 삶이 아니길 빕니다. 우리의 신앙이 우리를 각성시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나는 성전을 지키며 밤과 낮으로 금식하며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메시야가 오실 때 그녀는 깨어 있었고 그분의 얼굴을 뵙고 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우리도 깨어 주님을 맞기를 간절히 갈망하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 눈길에 앞이 보이지 않아 교회 앞 또랑에 차가 빠진 적이 있습니다. 토잉 차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우리 삶도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는 그런 비참한 삶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곧 오셔서 우리를 건져내 주실 겁니다.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그분이 오셔서 여러분의 삶을 친히 건져 주실 겁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신 어린 예수를 기념하는 이 성탄에 그 구원의 놀라운 기쁨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길 빕니다.

 

Main text: Luke 2:36-38

Title: Coming to meet Lord,      Translated by Myung-Ha Kim

1.

I often read a children's book called <Meet Mom> to my children. A little child of about

four goes out one winter day to meet her mother on the main road where her streetcar

drives. He stands at the train stop and asks the driver, "When will my mother come?" At

the sullen reaction of the drivers, the child decides to wait for the mother patiently. The

storybook ends on the last page with a picture of a mother holding her child's hand and

walking down a snowy alley with something on her head. We all understand the heart of

a child waiting for her mother. During childhood, mom is everything. Here is a poem

expressing the longing for mother. This poem is called <Worry about Mother> written by

a poet named Ki Hyeong-do and was written in 1985.

<Worry about Mother> - Ki Hyeong-do

Carrying thirty sheaves of radishes

My mom went to the market

She’s not here yet, the sun has long since withered

Left in the room like cold rice

No matter how slowly I do my homework

She’s not here yet, her footsteps like the sounds of cabbage leaves

I don’t hear them, it's dark and scary

The sound of rain quietly through the cracked window

Sobbing alone laying down in the empty room

A long time ago

Even now, it warms my eyes

Those days, the cold bitterness of my childhood

Listening to the poem, don't you feel the lonely and desolate wait? Mom carried 30

sheaves of radishes and she went to the market. This is because she had to sell even

30 bundles of young radishes in order for her children to be fed. The child waits and

waits to see if the mother will eventually come. The sun is setting in and it is getting

dark. The poet used the expression “the sun has withered.” It's a poetic expression that

connects to the hard work with radishes that my mother left with. He uses “cold rice” to

describe how long it’s been since he’s been locked up in the room. Through the cracks

of the broken window, her mother's footsteps cannot be heard, only the quiet sound of

rain. “A long time ago, those days that still make my eyes warm and teary, the cold

 

bitterness of my childhood.” Those who have experienced an ondol room where a fire is

lit with a fireplace will know the feeling of the upper and lower necks. The lower part is a

warm place, but the upper part is cold (thus compares to cold bitterness). He is a poet

who leaves his lower part empty for his mother and waits on the upper neck.

As a child, the person who could help us deal with our dizzy and distraught reality was

our mother. Mom was an all-rounder. It would be hard to imagine life without mothers.

The lives of the Israelites at the time of Jesus were exactly like this “cold rice.” They

have been occupied by five great empires for no less than 700 years. Assyria, Babylon,

Persia, Greece, and the Roman Empire were the five great empires. From the

beginning of the Roman occupation, their situation became more miserable. The other

empires before the Romans gave the Israelites some degree of autonomy. They also

recognized their religion. However, the Roman empire changed the way Israel was

governed directly and enforced emperor worship. The crowds who could not stand this

even rebelled against Rome. In Sepphoris, the center of Galilee, a Zellot party revolt

broke out. To quell the rebellion in the region, Rome sent troops and is said to have

erected 2000 crosses on either side of the road into Sepphoris. It is hard to imagine how

severe the suffering of the Jews must have been.

The family of Herod, who was a Gentile who ruled the Edom region, stuck to the Roman

side and gained a justification for ruling Israel. They began to brutally suck the blood of

the Jews. The miserable reality of the Israelites reached its peak under the rule of the

Herod family. Like children who lost their mothers, the people had no choice but to wait

for the Messiah to save them. They believed that when the Messiah came, their

miserable reality would be reversed since it was believed that the Messiah would come

as a political king, defeat Rome, and give them freedom. Many people waited more

earnestly for the Messiah the more difficult their lives were.

A woman like Anna of the tribe of Asher was a typical person who eagerly awaited the

Messiah. She was widowed after just seven years of marriage. She said women at the

time got married when they were 12, so Anna said she was already a widow by the time

she was 20. In the Old Testament, the neediest, miserable people are orphans and

widows. We can guess from her status as a 'widow' that Anna's life would not have

been smooth. In introducing her peculiarly, Luke introduces her as the daughter of

Penuel of the tribe of Asher. In the days of Joshua, the land that the tribe of Asher was

allotted was the land of the Mediterranean coast at the northwest end. In the United

States, it is the location of Washington State, where Seattle is located. In the land of the

tribe of Asher were the port cities of Tyre and Sidon. This area was an active trade area

where the Phoenicia people lived. The land that was ruled by the Phoenicia people, who

were called Poeni (Punica) in Roman words, was distributed to the tribe of Asher. This

 

area was a very prosperous area because it was a town that made a living through

trade. Queen Jezebel, the wife of Ahab in the Book of Kings, was from this area. She

was a very vicious queen. The important thing is that it's not easy to keep the faith and

live in such an area.

Nevertheless, Anna's family seems to have served God faithfully. You can tell just by

looking at their names. Anna's father, Penuel, has the same meaning as Peniel, but it

means 'the face of God'. For reference, Asher of the tribe of Asher means “happy one”

in Hebrew. Anna is a Greek expression, and in Hebrew, it means 'grace' as Hannah.

Although Anna was a widow, she was a happy person. Because she was a person who

knew grace. She longed to see the face of God. From the age of 20 until she was 84,

she longed to see the face of the Messiah. Luke introduces her as ‘prophetis’

(προφητις) in Greek. It is the feminine form of the word prophet. A prophet is one who

awakens people with the word of God. These are the people who played a role in

turning people's lives back to God. For more than 60 years, Anna has been in the

temple, awakening the lives of those who went there. Although she is living in a dark

era, she must have proclaimed to people to live uprightly because the Messiah will

come soon. She actually comes face-to-face with Jesus and proclaims the Word of God

to the people of Jerusalem. She tells those who are waiting for the salvation of

Jerusalem that this baby is the one who will accomplish that salvation. Salvation used

here is not 'Soter', which is generally used in Greek to mean salvation. The Greek word

used here is “lytrōsis, λύτρωσις,” which is equivalent to “ransom,” which means paying a

price. Through this word, she is letting people know that this baby Jesus will become

the Savior who will pay for their sins and redeem them through the cross.

Anna's desperate waiting for the Messiah for over 60 years is just admirable. Anna

knew. The fact that there is only one Messiah who can solve (redeem) their reality that

is like 'cold rice'. The Israelites were exhausted from the long wait. However, the

Messiah was able to come to them by turning their heart's earnest waiting into a road. I

understand waiting is the way God will come. Our desperate waiting is like a road that

makes him come into our reality.

We too are facing a disturbing reality. The world is still dark and confusing. People live

according to what they think is right. Capitalism is considered the most powerful being in

this chaotic reality. We are still frustrated in an unstable and opaque reality. Sometimes,

you can't figure out what's right and wander. Just as all the chaos in the family will end

when the mother comes, we only hope that the Messiah, the Lord, who was said to

come again, will come soon and redeem this world. Anna was satisfied to see the face

of Jesus, the Messiah. He was confident that He would redeem and deliver their people.

Her eager waiting was rewarded with the face of baby Jesus.

 

This Christmas morning, what are you waiting for and what are you longing for? Are you

waiting for someone to order and guide your life? Are you yearning for Him? Messiah

Jesus came to us as the most vulnerable baby in the world. He emptied and humbled

himself to no end and came to us. Like Anna, we want to welcome him with joy. Invite

him into our unstable and confusing reality. I hope that Jesus will come and give us

salvation in our ‘cold rice’ situations and lives.

I hope you will wait for the return of our Lord with the heart of waiting for your mother.

Even though we live in the midst of a dark and confusing reality, I hope we don't forget

to wait for the Lord. I hope you don't live as if life on this earth is everything. I have

heard that faith is a stimulant. Faith is not an anesthetic that makes you forget the pain

of this earth. It is also not a hallucinogen that is enjoyed while ignoring the reality of this

world. Faith in Jesus Christ wakes us up and makes us face the reality of this broken

world. And it makes us recognize that the true savior who will save us is Jesus Christ.

Furthermore, it makes us realize what kind of life attitude we must prepare to meet the

Savior. In that sense, faith is a stimulant that wakes us up. So we must live a prophetic

life like Anna. Waiting for the Messiah, we must prepare the way for His coming through

our lives.

I cook rice very well. I am particularly good at cooking rice in a pot. There is a reason

why I am good at cooking rice well. When I was young, I spent a lot of time waiting for

my parents to come home after their work in the fields. If there is no food at home, I

have to wait for my mother to come back and cook. That's why I started to cook rice in

advance. It can be said that the heart of eagerly waiting for mother and the desire to

have her eat as soon as she returns are combined here. It is the same with the life we

live on this earth. We do not know when the Lord will come again, but we are preparing

the way for the Lord to come. Just as we prepare the rice and wait for our mother, we

must express and proclaim the coming of the Lord through our lives. It is a life in which

we strive to create in advance the beautiful world that the Lord will return to create. I

hope you don't live a life of embarrassment when the Lord comes. I hope that our faith

will awaken us and become a life of eagerly waiting for the Lord's return. Anna kept the

temple and fasted day and night, waiting for the coming of the Messiah. She was awake

when the Messiah came and saw Him face to face and experienced God’s great grace.

I hope we too wake up and earnestly yearn to meet the Lord. Last week, I couldn't see

through my front windshield in the snow, so I ended up in a ditch near the church. I

eagerly waited for the towing car. Similarly, our life is such a miserable life that we can't

get out of ourselves. But the Lord will come soon and deliver us. Wait on the Lord, he

will come and personally save your life. May the wonderful joy of salvation be with all of

you this Christmas commemorating Jesus who has come to us.

 

Posted by speramus

본문: 마태복음 118-25

제목: 함께 하면 험한 길도 즐겁다

 

1.

어렸을 적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아버지는 항상 장롱 위에 보자기로 곱게 싸져 있는 족보를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식들을 모두 불러 모아 족보를 설명하기 시작했죠. 너희는 광산 김가 38대손 용()자 항렬이다. 아들, 손자, 증손자까지 돌림자가 어찌될지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슨 파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리 가문이 어떤 파에 속하고, 어떤 파에서 갈라졌는지 설명하기 시작하셨죠. 어린 마음에 그 시간이 매우 지겨웠지만 아버지의 논지는 간단했습니다. “우리 집안은 뼈대 있는 집안이다.”

마태가 자신의 복음서의 서두에 족보 이야기를 배치한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마태의 복음서를 읽는 대상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정통성 있는 왕가의 계보를 이은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다윗 왕의 계보를 이은 왕의 자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죠. 베들레헴 사람 요셉이 비록 별 볼일 없는 사람 같이 보이지만 실은 다윗의 혈통을 물려 받은 귀한 집 자손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요셉의 가문에 편입되게 되었음을 마태복음의 서두에서 밝히려고 한 겁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는 아직까지 주인공이 아닙니다. 예수를 다윗 왕의 족보에 편입시킨 요셉에게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는 겁니다.

 

누가가 그의 복음서의 시작에 마리아에게 포커스를 맞춘 것과 대조적으로 마태는 요셉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어떤 행위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연결되는지를 마태는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요셉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 보는 것이 우선이겠죠?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남자들의 평균 결혼 연령이 18세에서 20세 정도였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와 약혼했다고 하니 그의 나이는 17세에서 20세 사이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나무를 다루는 목수라기 보다 집을 만드는 건축가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요셉은 베들레헴 사람처럼 소개되지만 누가복음에서는 그가 나사렛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중요한 것은 요셉이 나사렛 여인 마리아와 약혼을 했다는 겁니다.

제 경험을 돌이켜 보면 상견례를 5월 말에 하고 8월 말에 결혼을 했습니다. 어찌 보면 3개월의 약혼 기간과 같은 시간이 있었던 거죠. 그 기간에는 뭔가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습니다. 장신대 근처 중곡동 일대의 복덕방을 돌며 집도 같이 알아보았습니다. 집이 구해지자 같이 세간 살이를 장만하러 다니고 결혼 준비를 했죠. 3개월이 얼마나 빨리 지나간지 모릅니다.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요셉도 그랬겠죠. 마리아라는 여인을 알고 그와 결혼을 약속한 요셉은 무척 설레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겠죠.

 

2.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요셉에게 시험이 찾아 듭니다. 18세 청년이 감당하기엔 조금 버거워 보이는 시험이었죠. 그의 약혼녀 마리아에게 임신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마리아가 유대 산골에 엘리사벳의 집에 3개월을 머물고 와서부터 였겠죠? 요셉은 아마도 마리아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들었을 겁니다. 마리아가 입덧을 하며 초췌해진 모습으로 요셉을 찾아 왔겠죠. 그리고 천사가 일러 준대로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요셉에게 알렸겠죠. 요셉은 견딜 수 없이 괴로웠을 겁니다. 자신에게 찾아 든 이 시험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겁니다. 문득문득 약혼녀 마리아에 대한 배신감이 올라왔을 겁니다. 마리아에 대한 의심을 갖는 것은 남자로서 당연한 반응이었을 거구요. 사람들의 구설수에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싫었을 겁니다. 그냥 조용히 끝나기만 바랐겠죠.

 

율법대로라면 요셉은 자신의 약혼자를 고발하고 그녀를 심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밝히죠. 의롭다는 것은 율법을 잘 지키며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보다 율법의 정신을 잘 이해한 사람이었다고 보는 게 낫습니다. 왜냐면 요셉은 약혼자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기 위해 조용히 파혼하려하고 있잖습니까? 이 정도만 해도 정말 율법의 정신을 잘 실천한 사람이 틀림 없습니다.

율법의 근본 정신인 자비가 그의 마음에서 작동하고 있잖습니까. 그래서 마리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 하고 싶었던 겁니다.

 

이러한 요셉의 마음의 번뇌를 종결시킨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시어 자신의 뜻을 확실하게 요셉에게 전합니다. 천사의 메시지는 마리아 때와 마찬가지로 두려워 말라로 시작합니다. 요셉의 번뇌와 갈등의 근본적인 감정이 두려움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어린 새신랑 요셉이 겪어야 했을 두려움, 그 두려움을 걷어낸 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해석이었습니다. 마라이가 임신한 아기가 성령님에 의해 잉태된 아이임을 확신시켜줍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그렇게도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렸던 메시아이자 구원자인 예슈아Joshua(히브리말 구원자)임을 알려줍니다. 이 아이의 이름을 통해 이 아이가 어떤 삶을 살 게 될 것인지 의미를 해석해 주고 계신 것이죠. 나아가 이 아이의 탄생이 성경의 예언서에서 이미 예언된 사실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십니다.

 

그 꿈이 얼마나 생생했고, 그 해석이 얼마나 확실했으면 요셉은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천사의 말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기로 합니다. 그가 마음을 고쳐 먹은 것이죠. 하나님의 해석을 믿기로 했고 그 해석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가 전하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마태는 도대체 의로운 남자 요셉을 통해 무엇을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깨달음과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3.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천사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가 하나님의 손을 잡고 결단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뤄지지 못했을 겁니다. 인간의 순종이 하나님의 구원을 만들어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우리는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작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은 지금도 이 땅 위에서 이뤄져 가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런데 마리아의 순종은 요셉의 순종이 곁들어지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파혼이라도 하고 마리아를 내치기라도 했다면 예수 탄생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리 성령으로 잉태하셨을지라도 요셉이 그를 아들로 받아들이는 결단이 없이 다윗의 가문에 예수가 편입될 수 없었던 것이죠.

 

저는 요셉의 이 행위를 율법의 본질인 의로운 행위에서 발로했다고 이해합니다. 그것은 요셉의 의로운 행위가 예수가 지신 십자가와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말 그대로 Cross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십자가 위에서 크로스 되고 있습니다. 의로우셔서 사람들의 죄를 심판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그럼에도 인간을 사랑하셔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야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교차합니다. 공의롭게 심판해야 하지만 자비와 사랑으로 조용히 끊고자 한 요셉의 마음 속에서 율법의 본질이 교차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율법이 예언한 예수의 탄생을 읽어낼 안목이 없었습니다. 그 눈을 열어 준 것이 천사와의 만남이었던 것이구요.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엄청난 사건이 하나님이 계획한 것이고 하나님에 의해 이뤄져 가는 놀라운 사실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요셉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지자 요셉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 것이구요.

 

요셉의 순종은 예수 탄생의 놀라운 역사를 이뤄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더라도 우리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그 계획은 차질을 빚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늦어지고 더뎌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순종이 너무나 귀하고 값진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고 그 뜻을 따르기로 합니다.

 

4.

요셉의 순종의 핵심은 마리아와 함께 하기였습니다. 마리아가 헤치고 갈 그 험난한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 주기로 한 겁니다. 그녀가 하나님과 잡은 손을 그도 반대편에서 잡고, 하나님을 가운데 모시고 손잡고 함께 걸어가기로 한 겁니다. 마리아가 앞으로 겪게 될 모진 풍파를 함께 겪기로 마음 먹은 것입니다. 마리아가 비를 맞는다면 그도 함께 비를 맞고 걸어가기로 마음 먹은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비를 맞기로 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품은 그 큰 꿈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지 그녀의 손을 잡고 걸으며 확인시켜 주고 싶었던 겁니다. 더이상 율법의 잣대로 마리아를 판단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지지하고 응원해주기로 한 겁니다. 사랑하기로만 마음 먹은 것입니다. 요셉이 품은 이 사랑의 마음이 예수 탄생 이야기의 정수입니다. 요셉이 이런 사랑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이해하고부터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자 사랑을 실천한 것이죠.

 

여러분 사랑은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는 것이 다른 이들 보기에 바보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를 맞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함께 그 아픔에 동참하기로 마음 먹은 이의 결단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요셉의 이야기는 이 아름다운 동행을 웅변해주고 있습니다.

 

5.

우리들도 이런 아름다운 동행을 우리 삶 가운데 만들어내면 좋겠습니다. 진리를 찾고 진리대로 살고자 씨름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그들을 비난하지 말고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고자 발버둥 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이들의 삶이 아름답습니다. “처음처럼이란 책에 이런 글귀도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험한 길도 즐겁다.” 마리아가 주의 뜻을 이루는 그 험난한 길에 요셉이 동행함으로 그들은 예수 탄생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제 얘기를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저는 결혼 전까지 중국 선교사가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를 만났는데 아내가 중국을 별로 안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가고 싶은데 다른 선교지들을 물색하기 시작했죠. 중국의 이슬람 지역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에 대안으로 중동 국가인 요르단으로 정했습니다. 처음엔 요르단 선교사 파송이 순조롭게 일이 잘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IS라는 이슬람 무장 단체가 요르단 전투기를 피격시킴으로 요르단 현지가 긴장 속으로 들어가게 됐죠. 교회에서는 저를 요르단으로 보낼 수 없다며 다른 선교지를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꿈에 첫 선교지인 중국이 떠오르더라구요. 아내에게 중국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는지 기도원에 같이 가자고 그러더라구요. 가평의 필그림 하우스라는 곳에서 둘이 기도하면서 아내는 저와 함께 중국에 가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죠. 저는 아내가 중국에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하겠다고 따라와 준 아내에게 지금도 감사합니다. “함께 가면 험한 길도 즐겁다라는 것을 중국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다하나 교회와 인터뷰할 때부터 로체스터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지 겁을 주시더군요. 제가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로체스터의 겨울이 혹독한 이유는 뭘까? 진짜 기온이 낮아서 그럴까? 우리가 겨울이 힘든 이유는 단절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겨울에는 다른 이들과 접촉이 어려워집니다. 눈 때문에 바깥 출입도 뜸하고 더더욱 고립 되어지기 쉽죠. 그럴 때일수록 우리가 연결고리들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의 시골에는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동네에 이집 저집  그냥 인사만 하며 돌아다니시는 분들이 한 분씩 꼭 계십니다. 이 분들이 하는 임무는 밤새 어르신들에게 별 일 없는 지 살피는 것입니다. 저희 고향 마을에도 그런 어르신이 계시는데 진짜 인사만 하고 가십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 때문에 혼자 쓸쓸하게 죽어가는 어르신들이 없어집니다. 우리 로체스터에서는 집집 마다 돌아가며 안부를 묻기는 힘들지만 서로 서로가 문자로라도 안부하며 챙겨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눈 쌓인 곳에서 어떤 영화 대사처럼 잘 지내시죠?”라며 안부라도 묻는다면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지난 주에 화수목 세 분과 점심 약속을 했는데 세 분이 모두 저에게 점심을 사주시더라구요. 그런데 제 마음이 너무나 따뜻해지더군요. 그 분이 나를 생각하고 배려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결들이 우리 안에 많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내 목장 사람들 뿐만아니라 주변에 외로운 사람이 누가 있는지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 누가 있는지 살피고 함께 해주는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한 듯합니다. 여성들 커피 모임처럼 남성들 커피 모임도  간간히 가지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이 함께 라면이라는 라면 모임을 가지면 어떻겠냐 제안을 하시더군요. 라면 먹으며 교제하는 모임 정말 멋지잖습니까? 함께 라면 이 겨울도 외롭지 않습니다. 함께 라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십시오. 자녀들에게 여러분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십시오. 좋은 선물과 좋은 말들로 자녀들을 격려해 주세요. 어제 중등부 아이들과 “Avatar 2”영화를 봤는데 그런 대사가 나오더라구요. “Family would be a fortress wherever you go”. “Solid stick together” 서로 끈끈히 연대하면 우리는 두려울 게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름다운 동행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로체스터에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그 아름다운 이야기도 여기 모인 우리들이 함께 할 때 만들어져 가게 됩니다. 함께 라면 두렵지 않습니다. 함께 라면 외롭지 않습니다. 함께 라면 험한 길도 즐겁기만 합니다. 이러한 함께함을 즐길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질 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이해했을 때 의로운 요셉은 더욱 사랑이 가득한 사람으로 마리아와 동행했듯이 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주신 사랑과 은혜로 이웃들과 함께 동행하는 따뜻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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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1:18-25
Title: Even the rough journey is pleasant if together Translated by Wi Chung-il

1.
When I was young, on New Year's Day or Chuseok, my father always put down a genealogy wrapped in a cloth on top of a chest of drawers. Then he called all my siblings together and began to explain our genealogy. He said that we are the 38th generation descendant of the Gwangsan Kim family. He told us what should be a Hanglyul (shared first name, like rhyme in first name; translator) of sons, grandchildren, and even great-grandchildren. And I don't remember the exact name of faction, but he started explaining which faction my family belonged to and from which faction it split. The time was very boring to my young mind, but my father's point was simple. “My family is a well-built family”. Matthew's reason for placing the genealogy story at the beginning of his Gospel is similar to this. The audience for reading Matthew's Gospel was the Jews. Matthew wanted to emphasize to the Jews that Jesus, the Son of God, who came to this earth as a savior, was a descendant of an orthodox royal family. More specifically, he wanted to say that Joseph, the father of Jesus, was a descendant of a king who continued the lineage of King David. Even though Joseph of Bethlehem looks like an insignificant person, he is actually a descendant of a noble family who inherited the lineage of David. And he tried to reveal at 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Matthew that Jesus, the Son of God, was incorporated into Joseph's family. In Matthew 1, Jesus is not yet the main character. The focus is on Joseph, who incorporated Jesus into the genealogy of King David.

In contrast to Luke's focus on Mary at the beginning of his Gospel, Matthew focuses his attention on Joseph. Matthew wants to talk about how certain acts of Joseph are connected to the birth of Jesus Christ. In order to understand the story of Joseph, the first thing to do is to look at what kind of person Joseph is, right? As I mentioned last week, the average age of marriage for Israeli men at the time of Jesus was 18 to 20 years old. Since Joseph is engaged to Mary, we can assume that he is between 17 and 20 years old. His occupation was a carpenter. He is better understood as an architect making houses rather than a carpenter handling wood. In Matthew's Gospel Joseph is introduced as a Bethlehemite, but in Luke's Gospel he is described as a Nazarene. The important thing is that Joseph was betrothed to Mary, a Nazarene woman.

Looking back on my experience, we had a meeting with parents at the end of May and got married at the end of August. In a way, it was like a three-month engagement period. During that time, I was very excited and felt so happy. We looked for houses together around Junggok-dong near Jangsin University. When we found a house, we went together to buy furniture and prepare for marriage. You don't know how quickly 3 months have passed. The couple, who are about to get married, are happier than ever.
Joseph must have been too. Joseph, who knew a woman named Mary and promised her marriage, must have been having very exciting days.

2.
But one day, a test suddenly finds Joseph. It was a test that seemed a bit daunting for an 18- year-old to handle. His fiancée Mary was starting to show signs of pregnancy. Perhaps it was after Mary came to stay at Elizabeth's house in the hills of Judea for three months. Joseph must have heard about it from Mary. She must have come looking for Joseph as Mary was haggard with her morning sickness. And she must have told Joseph that she was pregnant, just as the

 

angel had told her. Joseph must have suffered unbearably. He must have had a hard time accepting this test that found it for him. Suddenly, he must have felt betrayed by his fiancée Mary. It would have been a man's natural reaction to have doubts about Mary. He probably didn't want his name to go up and down in people's gossip. He just wanted it to end quietly.

According to the law, Joseph could accuse his betrothed and judge her. But the Bible reveals that Joseph was a righteous man. By being righteous, it is better to say that he was a man who understood the spirit of the law, rather than that he lived according to the law. Because Joseph was trying to break off the marriage quietly so as not to embarrass his fiancé. With this, it would be pretty reasonable to believe he must be a person who really practiced the spirit of the law well. Mercy, the fundamental spirit of the law, is working in his heart. So he wanted to finish the job in a way that wouldn't harm Mary.

It was God who put an end to Joseph's heartache. God sends his angel to clearly convey his will to Joseph. The angel's message begins with "Do not be afraid," just like Mary's. We can see that the underlying emotion of Joseph's agony and conflict was fear. It was God's interpretation that removed the fear that Joseph, the young bridegroom, had to go through. The angel assured him that the baby Mary conceived is conceived by the Holy Spirit. And the angel tells him that the son is Joshua (Hebrew word for savior), the Messiah and savior that the Israelites have been waiting for. Through this child's name, the angel is interpreting the meaning of what kind of life this child will live. Furthermore, the angel explains that the birth of this child is a fact that has already been prophesied in the prophecies of the Bible.

How vivid the dream was, and how certain the interpretation was, as soon as Joseph woke up, he decided to take Mary as his wife, just as the angel said. He changed his mind. He chose to believe God's interpretation and to accept it as it was. This is the beginning of the story of Jesus' birth as told by Matthew. What on earth did Matthew want to tell his readers through the righteous man Joseph? And what insights and lessons can we learn from this story today?

3.
As I said last week, if Mary, who heard the angel's words, did not hold God's hand and make a decision, God's work of salvation would not have been accomplished. We often overlook the vital role human obedience plays in creating God's salvation. Do not forget that God's salvation is still being accomplished on this earth through our little obedience. However, Mary's obedience could not be achieved without Joseph's obedience. The beautiful story of the birth of Jesus could not have come true if Joseph had broken off his marriage and dumped Mary. Even if Jesus Christ was conceived by the Holy Spirit, Jesus could not be incorporated into David's family without Joseph's decision to accept him as his son.

I understand that Joseph's act came from the righteous act, which is the essence of the law. It is because Joseph's righteous deeds are very similar to the cross Jesus carried. The cross of Jesus is literally the cross. God's love and justice are being crossed on the cross. The justice of God, who is righteous and has to judge people's sins, and the love of God, who loves people and has to forgive their sins, intersect at the cross. The essence of the law intersected in the heart of Joseph, who was supposed to judge righteously, but wanted to quit quietly with mercy and love. However, Joseph did not have the discernment to read the birth of Jesus foretold by the law. It was an encounter with an angel that opened his eyes. It was only then that he realized that this tremendous event that was happening to him was planned by God and was an amazing fact that

 

was being accomplished by God. Joseph realized the heart of Heavenly Father. When this was understood and accepted, Joseph made a new choice by obeying God's will.

Joseph's obedience accomplishes the amazing history of the birth of Jesus. No matter how wonderful God has a plan, if we don't obey it, the plan will be disrupted. God's plan is delayed. That is why our obedience is so precious and valuable. Joseph knew God's heart and decided to follow His will.

4.
The core of Joseph's obedience was 'to be with Mary'. He decided to walk together on the rugged path of faith that Mary would go through. He decided to hold the hand of God she held with on the other side of her, with her God in the middle, and walk together. He decided to go through all the hardships that Mary was about to go through. He decided that if Mary got into her rain, she would walk in the rain with her too.

There is a line like this in Shin Young-bok's book “Like the first time”. “Helping is not holding an umbrella, it is raining together. The consolation of not being in the rain together is not warm. This is because consolation reaffirms the fact that the person being comforted is the object of consolation.”

Joseph decided to face the rain with Mary. He wanted to confirm how beautiful and great Mary's big dream was by walking and holding her hand. He no longer judged Mary with the standard of law, but decided to silently support her. It's just that he made up his mind to love. This heart of love that Joseph embraced is the essence of the story of the birth of Jesus.

Everyone, love is to welcome the rain together. Getting out in the rain together might look silly to others. However, the decision of the person who decided to stand in the position of the person who was caught in the rain and participate in their suffering is so beautiful. For those of us who are waiting for the birth of Jesus, the story of Joseph speaks for this beautiful journey.

5.
I wish we could create such a beautiful companion in our lives. Please hold the hands of those who struggle to find the truth and live by it. Don't criticize them, support them and encourage them. The lives of those who are with those who struggle to live according to God's will are beautiful. There is also this phrase in the book “Like the first time”. “Even the rough journey is pleasant if together.” With Joseph accompanying Mary on the arduous road of fulfilling the Lord's will, they were able to create a beautiful story of Jesus' birth together.

Sorry for sharing my story. My dream was to become a Chinese missionary until I got married. But I met my wife, and she didn’t like China very much. While I wanted to go to China, I started looking for other missionary fields. I wanted to go to the Islamic region of China, so I chose Jordan, a Middle Eastern country, as an alternative. At first, the dispatch of missionaries to Jordan went smoothly. Then, suddenly, a big incident happened. An Islamic militant group called IS shot down a Jordanian fighter jet, putting Jordan into tension. The church said they couldn't send us to Jordan and told me to find another mission field. At that time, China, my first dream of mission field, came to my mind. I asked my wife what it would be like to go to China. Then, as if my wife couldn't decide easily, she asked me to go to the prayer house with her. While praying together at a place called Pilgrim House in Gapyeong, my wife changed her mind to go to China with me. I knew that my wife would rather die than go to China. I am still grateful to her for

 

coming along, saying that if it was God's will, she would obey. I learned in China that “even the rough journey is pleasant if together”.

When I interviewed for One Heart Church, they scared us how harsh Rochester's winter is. I thought hard about it. Why are Rochester's winters so harsh? Is it because the temperature is really low? I thought that the reason why we have a hard winter is because of the disconnection. In winter, contact with others becomes difficult. Because of the snow, going outside is rare and it is easy to become isolated. The more times like that, the more we need to make connections. In the countryside of Korea, there live many elderly people. There is always one person in the neighborhood who just walks around saying hello from house to house. Their job is to keep an eye on the elderly to make sure nothing wrong happened throughout the night. There is an old man like that in my hometown village, but he just really greets and leaves. However, because of these people, there will be no elderly who die alone. In Rochester, it's hard to go door to door and ask how we're doing, but it would be nice if we could say hello and take care of each other, even through text messages. In a snowy place like this, it would be a great comfort to each other if we could say, “How are you?” like a movie line.

Last week, I had lunch with three people on Tuesdays, Wednesdays, and Thursdays, and all three of them bought me lunch. It warmed my heart so much. I could feel that they thought of me and cared for me. I hope many of these connections are made within us. It seems that we need love to look out for those around us who are lonely and who need love, not just the people in my small group. I wish we could have a men's coffee meeting like women's coffee meeting. If we are together, we will not be lonely even this winter. Together, it is not difficult to obey God's will. Married couples help each other. Express to your children that you are with them. Encourage your children with nice gifts and nice words.

The story of the birth of Jesus began with the beautiful journey of Joseph and Mary. The beautiful story of God's kingdom being realized in Rochester is also created when we are together. We are not afraid if we are together. If we are together, we will never be lonely. If we are together, the rough road is only fun and pleasant. The secret to enjoying this togetherness is possible only when we are filled with God's love. Just as the righteous Joseph walked with Mary as a man full of love when he understood God's love and grace. I hope that we too will become warm people who accompany our neighbors with God-given love and grace.

 

Posted by speramus

본문: 누가복음 139-56

제목: 예수 탄생의 서곡, The Overture of Nativity of Jesus

 

1.     누가복음의 서곡

여러분은 오페라나 뮤지컬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오페라에는 보통 서곡(overture)이라는 것이 연주됩니다. 서곡은 오페라 전체 내용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맛보기(맛을 보도록 조금 내 놓는 음식)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롯시니의 뮤지컬 서곡들 중 좋은 곡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빌헤름 텔(William Tell)’의 이야기를 극화한 <빌헤름 텔 서곡>의 경우 12분 런닝 타임의 대곡입니다. 마지막330초 정도 서곡의 피날레가 시작되는데 트럼펫과 트롬본 소리와 함께 음악은 웅장하게 변해갑니다. 빌헤름이 폭군 게슬러(Gessler)를 죽이고 도시에 참 자유를 회복시켜 주는 것을 경쾌한 행진곡 풍의 음악으로 표현을 하였죠. 서곡이란 바로 이야기 전체의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미리 맛보기를 준다는 면에서 매력이 넘칩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의 시작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누가복음의 서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펼쳐갈 이야기가 무엇인지 맛보기로 보여주는 서막 또는 서곡과 같은 역할을 탄생 이야기가 맡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다른 복음서와 달리 누가복음의 탄생의 이야기에는 메시야를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 온 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유대사회에서 힘 없이 소외 받는 계층들이었습니다. 엘리사벳(Elizabeth), 시므온(Simeon), 안나(Anna)같은 이들은 노인들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 목동들은 갈릴리의 촌사람들이자 베들레헴의 부랑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를 통해 누가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떤 이야기가 앞으로 펼쳐질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어린 아이와 여자 그리고 노인으로 대표되는 그 당시 힘 없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구원의 이야기가 누가가 들려 주고 싶어했던 서곡에 담겨 있습니다. 그 힘 없는 이들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만나게 되자 어떤 엄청나고 놀라운 일들이 펼쳐질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누가는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2.     고장난명(孤掌難鳴- It takes two to tango.)

그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등장하는 씬(scene)은 누가복음 탄생 이야기 중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탄생 일화(episode)중에 마리아 이야기는 계란으로 치면 노른자와 같은 부분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처녀들의 평균 결혼 연령이 12-13세였다고 합니다. 남자는 18세에서 22세 사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초경이 시작되면 결혼 적령기가 되었던 겁니다. 야이로의 딸이 12살이 되어 죽게 되었다고 했을 때 초등학생의 어린이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결혼 적령기의 여자가 죽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겨우 12살에서 13살의 정혼을 한 여인이 마리아입니다. 참고로 마리아라는 이름은 모세의 누나의 이름 미리암의 다른 표현이었죠.  마리아는 나사렛(Nazareth)이라는 갈릴리 호수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성장한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어느 날 천사가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는 천사 중에서 가장 높은 천사장 가브리엘이었습니다. 가브리엘은 중요한 임무를 갖고 마리아에게 보내졌습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었죠.

 

여러분 이 부분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굵은 현악기를 통해 고뇌를 표현해야 어울릴 듯합니다. 왜냐면 마리아에게 이 소식은 청천벽력(a bolt from the blue) 같은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에도 처녀가 임신을 한 것은 작은 이슈가 아닌데 당시에는 어떠 했을까요? 게다가 마리아에게는 정혼한 미래의 남편인 요셉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마리아의 임신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마리아는 율법에 의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를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리아는 두려운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30절에 보면 천사가 나타난 것에 놀라워 하는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말합니다. “두려워 말아라.” 라고 합니다. 마리아는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이 늙은 나이에도 임신한 사실을 알려주면서 예수님을 잉태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일러줍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37)”고 못 박아 버립니다.

 

이에 대한 마리아의 반응은 38절 말씀입니다. “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I am the Lord's servant," Mary answered. "May it be to me as you have said.)"  마리아는 천사가 일러준 놀라운 사실이 자신에게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자신이 그렇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영광스러워 하며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 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아무리 놀랍고 위대하더라도 그 계획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가 없다면 이뤄지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묵묵히 억누르고 하나님이 뻗으신 손에 하이파이브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장단에 탱고를 추기로 한 것입니다.

 

3.     엘리사벳의 환대

그런데 마리아의 믿음과 결단에도 그녀를 사로 잡는 불안함은 떨쳐낼 길이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뭔가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언급한 친척 엘리사벳이 떠올랐고 그녀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보다 앞서 6개월 전에 임신한 상태의 여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녀를 찾아가고 예상치 못한 환대에 깜짝 놀랐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현현이 긴가민가하며 심란한 마음으로 유대산골까지 이동해 왔을 겁니다. 참고로 나사렛에서 예루살렘 근처의 유대 산골까지는 여인의 걸음으로 사흘길은 족히 걸어야 도착할 꾀나 먼 길이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을 마리아를 향한 엘리사벳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엘리사벳은 큰 소리로 샤우팅합니다. 실제로 헬라어 성경에서도 mega로 소리쳤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엘리사벳은 온 힘과 마음을 다 실어서 마리아를 응원하고 있는 겁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큰 소리로 전하는 메시지는 마리아의 마음을 한결 위로해 주었을 겁니다. “당신은 정말 복이 많은 여인이군요. 당신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어떻고요. 저는 이 사실이 믿겨지지 않아요.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이렇게 저에게 왕림하여 주시다니요?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여러분 이런 환대를 받고 격려를 받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리아가 한껏 고무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을 겁니다.  참고로 주라고 표현한 헬라어 퀴리오스(Kyrios)”는 로마의 황제에게 붙여진 호칭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내가 퀴리오스의 어머니를 보다니…”라는 찬사를 통해 마리아를 추켜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놀라운 찬송이 마리아의 입에서 나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로 시작하는 마리아의 찬송시는 지금도 성탄절 오라토리오로 많이 불리우는 “Magnificat”라는 찬송시 입니다. 라틴어로 “Magnificat anima mea Dominum(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합니다)”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 찬송시를 Magnificat라고 부릅니다. 마리아는 강한 확신에 차서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그녀의 찬송시에는 그동안의 모든 고뇌와 번민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의 뱃속에서 잉태된 아이가 펼쳐 나갈 세상이 어떤 세상이 될 것인지 마리아는 노래합니다. 자신과 같이 비천한 인생들이 돌봄을 받고 오히려 높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부자들과 높은 곳에 앉아 있는 고관대작들은 비천한 곳으로 끌어 내림을 당할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며 예수가 가져올 새 세상을 향한 희망을 노래합니다. 놀라운 역전이 그의 아들 예수로부터 이뤄질 것을 마리아는 예언자처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 아름다운 마그니파카트를 이끌어 낸 것은 다름아닌 엘리사벳의 응원이었습니다. 의기소침하게 자신에게 하이파이브 하자고 손을 내밀고 다가오는 마리아를 향해 크게 손을 맞대며 응답해주는 엘리사벳의 센스가 돋보입니다. 마리아의 쳐진 어깨를 보고 큰 소리로 마리아를 격려해 주고 있죠. 그녀가 지금 감당하는 이 일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해석해 줍니다. 한 사람의 격려와 지지만으로 우리는 힘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은 천군만마(千軍萬馬)와도 같았을 겁니다. 그녀의 거칠고 험난할 믿음의 앞길에 등불처럼 비쳐진 희망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이야기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의 백미가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 여인은 이제 초경이 막 시작된 약해 보이는 여인이었고 한 여인은 폐경이 한참 지난 초라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의 연합과 동행은 새로운 시대를 열 서막을 활짝 열어젖히고도 남는 행동이었습니다. 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연합, 한 길 가는 이들의 동행, 그리고 환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의 초미를 장식하는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4.     나 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어?

우리는 가끔 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나 한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 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세상에 타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온 우주를 향한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의 이야기는 나사렛이라는 매우 작은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마리아라는 너무나 미약한 12세 남짓의 소녀로부터 이 구원의 이야기는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리아와 같은 길 위에 서 있는 많은 이들의 응원과 격려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이 땅 위에 현실화 되어가게 된 것입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요? 지금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작은 이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는 이 땅 위에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이 매우 미약한 존재들로 부터 시작하여 커져가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으로 이 큰 세상에서 뭘 바꿔갈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 한 사람에서 시작된 순종이 모아져서 이 세상은 하나님이 꿈꾸는 세상으로 변해갈 수 있습니다. 또한 나 혼자는 스스로 설 수 없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당신이 가는 그 길이 옳아요.”, “당신의 그 순종이 너무 아름다워요. 당신의 그 나눔이 너무나 거룩합니다.” 라고 우리를 격려해주는 공동체가 너무나 절실한 겁니다.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온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한 나의 순종이 너무나 값지고 귀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빌헤름텔 서곡의 피날레를 들어 보면 빰빠라밤빰 트럼펫이 웅장하게 울려퍼집니다. 그러면 호른이 묵직한 소리로 트럼펫의 연주를 받쳐주지요. 노래가 더 웅장해지면 이제 심벌즈가 박수라도 쳐주듯 곁들죠. 이런 악기들 간의 서로 서로의 조화와 연합으로 아름다운 서곡이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행하고,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면서 힘을 얻어 가는 것입니다. ‘나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라는 그런 비관적인 생각은 떨쳐내십시오. 나부터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나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순종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들에게 엘리사벳과 같은 이들을 붙여 주실 겁니다. 함께 손잡고 일어설 수 있는 동역자이자 동반자들을 붙여 주시는 것이죠. 작은 점들이 모여져 선이 되는 것이고 선이 모여져 역사의 한 면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순종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십대 소녀 마리아의 순종이 인류의 역사를 이렇게 바꿔 놓았지 않습니까?

 

5.     엘리사벳의 환대를 생각하며

엘리사벳의 환대는 마리아가 주님의 뜻을 순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함께 연주해가는 예수님 탄생 이야기의 서곡에서는 환대가 만들어갈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창녀, 그리고 세리와 같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이들에게 보여주신 환대를 맛보기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뤄갈 세상이 이런 세상이란 것을 우리는 미리보기로 볼 수 있는 것이고요. 환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워 나가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와 목장 안에서 이뤄지는 환대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구체화 됩니다. 또한 우리가 직장 안에서 그리고 우리 로컬 안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베푸는 환대 또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와 함께 오늘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어쩔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벽을 오른다

방울 없고,
씨앗 살아남을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뼘이라도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덮을 때까지
바로 절망을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담쟁이 하나는
담쟁이 개를 이끌고
결국 벽을 넘는

 

나 한 명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라는 탄식 대신 우리 서로 손을 잡고 저 세상의 절망과 마주 섭시다. 우리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처럼 보 잘 것 없는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손을 잡는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꿈꾸신 사랑과 환대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함께 손 잡고 저 절망의 벽을 넘어 봅시다. 주님께서 우리의 길을 격려하시고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Sermon Scripture: Luke 1:39-56

Title: The Overture of Nativity of Jesus

Translated by Ji-Yun Kang

1.    Overture from the Gospel of Luke

Have you ever seen an opera or a musical? An opera usually has something called an overture. The overture can also be called a taster (a small sample of food to taste) that condenses the entire contents of the opera. Many of Rossini's musical overtures are quite magnificent. In the case of <William Tell Overture>, which dramatizes the story of 'William Tell', it is a great piece with a running time of 12 minutes. The finale of the overture begins at the last 3 minutes and 30 seconds, and the music changes majestically with the sounds of trumpets and trombones. William kills the tyrant Gessler and restores the city with true freedom. The overture is full of charm in that it gives a preview of how the entire storyline will flow.

Today's text, Luke's Gospel, begins with the story of the birth of Jesus. The story of Jesus' birth can be seen as a prelude to the Gospel of Luke. The story of the birth plays the role of a prelude or prelude to give a taste of the story that Jesus will unfold in the future. Unlike the other gospels, the story of the birth in Luke's gospel features many people who have been waiting for the Messiah for a long time. They were consistently marginalized and powerless in Jewish society. Elizabeth, Simeon, and Anna were old people. Mary, Joseph, and the shepherds were villagers in Galilee and outcasts in Bethlehem. Through the story of the birth of Jesus these people are creating, Luke wanted to show us what kind of story will unfold in the future through Jesus Christ. The story of salvation made by the powerless at the time, represented by young children, women, and the elderly, is contained in the overture that Luke wanted to tell. Luke wanted to show the possibility of what great and amazing things could happen when those powerless people are met with God's work of salvation.

2.    It takes two to tango.

The text we read today shows the scene where Elizabeth and Mary appear. This scene can be described as the highlight of Luke's birth story. Out of all the birth episodes, the story of Mary is comparable to the yolk of an egg. It is said that the average age of marriage for girls at the time of Jesus was 12 to 13. Men got married between the ages of 18 and 22. When a woman starts menarche, it was considered that they reached the right age to marry. When Jairus' daughter was told that she was about to die at the age of 12, you should not be thinking of an elementary school child. A woman who reached the age to marry has died. So was Mary. Mary was a betrothed woman who was only 12 or 13 years old. For reference, the name Mary was another expression of Miriam, the name of Moses' sister. Mary was a woman who grew up in a small country village on the Sea of ​​Galilee called Nazareth. One day an angel came to this woman. The angel God sent was Gabriel, the highest archangel among the angels. Gabriel was sent to Mary on an important mission. It was the news that Mary would conceive the Son of God.

If we were to express this part with music, it would be appropriate to express the anguish through a thick stringed instrument. To Mary, this news was like a bolt from the blue. Even today, it is not a small issue that a virgin gets pregnant, but what would it have been like back then? Besides, Mary had a betrothed future husband, Joseph. If Mary's pregnancy were to be known, Mary could have reached the point where she had to be stoned to death according to the law.

In this situation, Mary would have had no choice but to have fearful feelings. In verse 30, Gabriel says to Mary, who was astonished at the appearance of an angel. Do not be afraid.. Mary was in a situation where she couldn't help but be afraid. The angel informs her that Elizabeth, Mary's relative, is pregnant even at an old age, and tells her that conceiving Jesus is actually possible. The angel firmly proclaims that Nothing is impossible with God (v. 37).

 Mary's response to this is in verse 38. I am the Lord's servant. May it be to me as you have said" Mary is praying that the wonderful truth the angel had told her would come true. She feels honored that she can be used in God’s work of salvation, and she accepts it with faith. There is an old idiom, “the palms of your hands must come together to make a sound. God sent his son to this earth. No matter how amazing and great the plan, to send and save mankind in sin would have been difficult if there were no people who accepted and obeyed the plan. But Mary silently suppressed all fear and anxiety and decided to give a high five to God's outstretched hand. She decided to tango with God to his rhythm.

3.    Elizabeth's hospitality

Despite Mary’s faith and determination, there was no way to shake off the anxiety that gripped her. She needed some reassurance. Mary remembered Elizabeth, the relative mentioned by the angel, and decided to visit her. Elizabeth became pregnant six months before Mary was. Mary visits her and is taken aback by her unexpected hospitality. It is likely that Mary traveled all the way to the mountains of Judea with a distraught mind, wondering about the appearance of the angel. For your reference, it was a long way from Nazareth to the hills of Judea near Jerusalem, and it took a woman to walk three days. Elizabeth's reaction to Mary, who must have been exhausted physically and mentally, was extraordinary.

 Elizabeth shouts loudly. In fact, even in the Greek Bible, it is expressed as shouting with “mega”. Elizabeth is supporting Mary with all her strength and heart. Elizabeth's loud message to Mary would have comforted Mary's heart. You are a very blessed woman. How is the baby in your belly? I can't believe this fact. Is the mother of my Lord visiting me like this? Is it a dream or is it real?

My beloved congregation! Is there anybody who would not be encouraged with this level of hospitality? It would be odd if Mary were not encouraged to the fullest. For reference, the Greek word Kyrios, expressed as Lord, was a title given to the Roman emperor. What Elizabeth did was to honor Mary by saying, "I see the mother of Kyrios”

 As a result, amazing praise comes from Mary's mouth. Mary's hymn, which begins with My soul praises the Lord, is a hymn called Magnificat, which is still often sang as a Christmas oratorio. This hymn is called the Magnificat because it begins in Latin with Magnificat anima mea Dominum (My soul praises the Lord). Mary sings praise to God with strong conviction. There is no sign of anguish from the past in her hymns. Mary sings what kind of world will unfold by the child conceived in her. She sings that lowly people like herself will be taken care of and exalted. The rich and the great dignitaries who sit on high places will be brought down to a lowly place. She sings of hope for the new world that Jesus will bring, saying that the poor and the marginalized will be satisfied with good things. Mary is singing like a prophet that an amazing reversal will come from her son Jesus.

It was none other than Elizabeth's support that brought out this beautiful Magnificat of Mary. Elizabeth's sensibility stands out when she responded with a big hand-to-hand response towards Mary who was dispiritedly reaching out to give herself a high-five. Seeing Mary's drooping shoulders, she encourages her with a loud voice. It explains how she is taking on an amazing role. One person's encouragement and support is enough to give us strength. To Mary, Elizabeth must have been like an army of ten thousand horses. It was a hope that shone like a lamp on what would be the rough and rugged future path of her faith.

 

This is why the story of Mary and Elizabeth is the highlight of the birth story of Jesus. One was a weak-looking woman who had just begun menarche, and one woman was a poor woman well past menopause. The union and companionship of these two opened wide the prelude to a new era. The unity of those who have received the same calling, the companionship of those who walk the same path, and their hospitality are beautiful stories that decorate the beginning of the story of the birth of Jesus Christ.

 4.    What can one person like me do?

We often think about what one person can do in this huge world. Sometimes it feels like hitting a rock with an egg. Then, before you know it, you will live in compromise with the world. We must pay attention that God's great story of salvation for the entire universe started from a very small location called Nazareth. This story of salvation is being created from a very weak 12-year-old girl named Mary. And with the support and encouragement of many who stand on the same path, God's plan of salvation has become a reality on this earth.

Would it be any different now? Even now, the story of God's salvation can bear fruit on this earth because of the little ones who obey God's will. As I said last week, the kingdom of God begins with very small beings like mustard seeds that grow big. Don't think, 'What can I change in this big world as a single person?' When there is a collection of obedience that was started by one individual, this world can change into the world God dreams of.  God gave us a community because we cannot stand on our own. We desperately need a community that encourages us with You are on the right path., Your obedience is so beautiful. Your sharing is so sacred.. One person is enough. It is enough for one person to tell me that my obedience with all my heart, mind, and strength is so valuable and precious.

 If you listen to the finale of the William Tell Overture, you will hear the trumpet resounding magnificently. Then the horn supports the performance of the trumpet with a heavy sound. As the song gets grander, the cymbals accompany it like a round of applause. A beautiful prelude is created by the harmony and union of these instruments with each other. The story of God's salvation is the same. It is what an individual does, which gains strength by cheering from the side and pushing from behind. Shake off the pessimistic thought of 'What can I do alone?'. You must start with yourself first. You must do God's will and walk in obedience to what God wants. God will surely give you people like Elizabeth. God gives you partners and companions who can stand together hand in hand. Small dots collectively create lines, and lines gather to create a side of history. So our obedience is never small. Didn't the obedience of the teenage girl Mary change the course of human history like this?

5.    Thinking of Elizabeth's hospitality

Elizabeth's hospitality played a decisive role in helping Mary obey the will of the Lord. The prelude to the story of the birth of Jesus played by Mary and Elizabeth shows us the beautiful world that hospitality will create. It is to give a taste of the hospitality that Jesus showed to sinners, prostitutes, and those who are treated as less than human, such as tax collectors. We can see in advance that the world that Jesus establishes is this kind of world. Hospitality is an important factor in establishing God's kingdom on earth. The kingdom of God is embodied through hospitality within our church community and our small groups. Also, the hospitality we give to those we meet at work and in our local community also plays an important role in building God's kingdom on earth.

I will end today's sermon with a poem called Ivy by poet Do Jong-hwan.

 <Ivy>              Do Jong-hwan

At times when we feel that

it is a wall, just a wall,

then

without a word ivy goes climbing up the wall.

 

At times when we say that

it is a wall of despair

with no drop of water, where not one seed can survive,

unhurrying, the ivy advances.

 

Hand in hand, several together, it climbs on, a span’s breadth at least.

Until the despair is all covered in green

it grasps the despair and will not let go.

 

At times when we lower our heads, saying that

the wall cannot be climbed,

one ivy leaf at the head of thousands of ivy leaves

finally climbs over the wall.

 

What can I do as one person? Instead of lamenting, let us hold hands and face the despair of the world. We may be insignificant people like Mary and Elizabeth. But if we hold each other's hands, we can make God's wonderful works. Let us join hands and overcome that wall of despair to create a beautiful world of love and hospitality that Jesus dreamed of. I believe that the Lord will encourage and strengthen our paths.

 

Posted by speramus

본문: 마태복음 13 31-32

제목: 작게 은밀하게 하지만 강력하게

 

1.     작아서 좋은 것들.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간절히 바라던 기적과 같은 일들을 접하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응급실에서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던 유주현 형제님이 의식을 찾아 병상에서 일어난 후 우리에게 연락했죠. 그리고 고국 대한민국이 월드컵 예선에서 정말 기적적으로 16강에 진출하며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무언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을 우리는 기다리게 됩니다. 대림절은 기다림의 시즌입니다. 우리는 그리움 때문에 기다리기도 하지만 간절함 때문에 기다리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계시나요? 그 간절한 바람이 대림절 기간에 부디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큰 것을 좋아합니다. 키도 작은 것보다 컸으면 하구요. 눈도 작지 않고 저처럼 크길 바라죠^^ 보유 자산도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도 배기량이 아주 큰 차를 타고 싶어 하죠. 집도 매우 큰 스퀘어 핏에서 살면 좋아 보입니다. 제가 신혼 때8(22제곱미터) 집에서 살다가 2년 만에 12(39제곱미터) 임대 아파트에 당첨되었습니다.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 간 것 뿐인데 첫 느낌에 거실이 운동장처럼 느껴지더라구요. 일단 긍정적이고 좋은 것들은 크면 좋습니다. 용기, 자신감, 믿음, 소망, 사랑…. 이런 보이지 않은 것들도 긍정적인 것들이기에 크면 좋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작거나 적으면 좋은 것들은 뭐가 있나요? 나이? 나이가 작으면 좋나요? 머리숱이 적으면 좋습니다. 저처럼 빛이 나거든요^^;; 일단 부정적인 것들은 적거나 작으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 미움, 다툼, 불평, 불만, 욕심, 피해의식, 상처, 오해 기타 등등 좋지 않은 것들은 작거나 적으면 좋은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매우 작고 적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겸손함을 기억하는 시즌입니다. 예수님은 우주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신데 마리아의 자궁 속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시기 위해 극단적으로 작아지셨던 겁니다. 대림절은 바로 작아지고 낮아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즌인 거죠. 자신을 낮추고 인간의 모습으로 작아진 주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렇게 작게 시작될 수 있고 작아진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 천국은 마치 작은 겨자씨와 같이 보잘 것 없이 시작된다.

마태복음13장 전체가 예수님의 비유로 가득합니다. 그 중에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매우 비슷한 비유로 앞 뒤에 놓여 있습니다. 두 비유의 공통점은 아주 작은 시작이 그리고 아주 작은 원인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매우 큰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천국을 가리킵니다. 천국은 마치 이와 같다는 것이죠. 31~32절 말씀을 함께 읽어 봅시다. “31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심었다. 32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된다. 그리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 줄 아시나요? 너무 작아서 이 씨앗에서 새순이 나올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새 순이 막 터올 때까지 이것이 유채씨인지 무우씨인지 겨자씨인지 구분이 안 갑니다. 어릴 적 저희 집에도 여러 가지 씨앗들이 많았는데 어떤 씨앗들은 겉으로 구분이 안됩니다. 하지만 싹이 나고 점점 커져갈수록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씨앗은 작지만 그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고 그 나무에서 수없이 많은 열매들을 거둬 드리게 되죠.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매우 작아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는 일단 심겨지기만 하면 자라기 시작합니다. 점점 자라나 결국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본문의 나무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이 연약한 우리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들은 작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들처럼 작은 이들로부터 시작됩니다.

 

3.  자기를 응축시킨 작은 이들을 통해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의 운동력은(movement)  강력한 정당 조직이나 우렁차고 당당한 군대 행진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작은 겨자씨같이 극도로 작아진 인격들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처럼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축소시킨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극도로 응축시킨(condense) 자 속에 하나님 나라의 변혁력이 꿈틀대며 진행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대림절은 바로 예수님의 낮아지심, 겸손, 자기 부인을 배워가야 하는 절기입니다.

 

나 한 사람, 그리고 우리는 아주 적은 자, 작은 자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부정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축소시키고 응축시킬 때에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자라기 시작합니다.

비록 우리는 작고 적더라도 놀라운 파급 효과를 내며 하나님 나라의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기씨 크기로 작아지셔서 여자의 뱃속에서 자라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작은 마을에서 숨은 듯이 성장하셨습니다. 그는 가문도 초라했고 가진 것도 없는 목수에 불과 했습니다. 그는 매우 초라한 삶을 살다 갔고, 삶보다 더 초라한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길러낸 제자들도 정말 초라한 사람들이었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한 명의 배신한 제자를 제외하면 11명의 제자만을 남겨두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도대체 11명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그냥 가신 것일까요? 그러나 성경은 그 11명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급속도로 퍼져 나간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커져간 하나님의 나라는 300년 만에 로마를 지배하게 되죠. 그리고 2000년이 지난 지금 세계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4.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

겨자씨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나라는 매우 작게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구원은 개인 구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 구원 없이 사회 구원이나 사회 변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겨자씨가 되어 자라갈 때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 위에서 커 나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변화된 한 사람 한 사람이 씨앗으로 성장하여 사회를 변혁시켜 나가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만큼 놀라운 일도 없는 겁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마음에 하나님 나라를 맛본 사건은, 세속적인 역사 속에서 눈에 띌 만큼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 알의 겨자씨가 땅에 떨어진 사건입니다.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 감춰져 있을지 모르지만 때가 되면 성장하고 부풀어 올라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두번째 특징은 눈에 보이지 않게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커 가고 있는가,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 성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씨앗의 성장이 그렇잖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격의 속도로 자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주 느리지만 천천히 계속해서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급진적인 혁명이나 정치적 권력 또는 무력으로 변화되어가지 않습니다.

인격적인 변화로 감화시키며 천천히 세계를 잠식해 가고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삶을 보십시오. 그는 30년간 거의 눈에 띄지 않게 갈릴리 황무지에 뿌려진 한알의 겨자씨였습니다. 그분은 감춰진 누룩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분 속에 있는 사랑이 싹을 틔우고 자라, 때가 이르자 그는 드러났고 폭발적인 사랑과 에너지로 온 이스라엘을 변혁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습니다.  땅에 떨어져 감춰진 것 같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씨앗은 자라고 있습니다. 때가 이르면 그 성장은 놀랍게 이뤄지며, 거기서 뿜어지며 방출되는 선한 에너지와 열매들로 말미암아 세상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비록 작지만 실은 작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겉 보기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우리 속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고, 변화된 인격이 있습니다. 그 사랑과 인격이 이 세상 속에서 아름답게 열매 맺을 것입니다. 그러한 인격의 열매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천천히 보이지 않게 이 세상을 변화시켜가고 있습니다. 뭔가 대단한 인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뭔가 고급진 인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초라할지라도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있다면 여러분을 통해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혀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그늘 아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쉬어 갈 것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안식과 평화를 주는 인생이지요. 우리는 겨자씨처럼 우리 자신을 더욱 겸손하게 낮추고 우리 거친 자아를 은밀하게 감춘다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열매 가득한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강력하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작지만 숨겨져 있는 듯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귀한 씨앗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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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ure: Matthew 13
Sermon: Things That Are Good Because They Are Small

Translated by Ji-Han Park

1.
It's the second week of Advent. Last week, we encountered many miraculously delightful things. Brother Yoo Joo-hyun, who was surviving on a ventilator in the emergency room, regained consciousness. After waking up from the hospital bed, he contacted us. It was like a miracle. Also, The Republic of Korea miraculously qualified for the World Cup round of 16, bringing joy to the nation. We eagerly wait for something we deeply want and expect. Advent is a season of waiting. We wait because of longing, but also because of earnestness. What are you longing for? I hope that your earnest wish becomes true during the Advent season.

People generally like big things. Being tall rather than short. Having big eyes rather than small eyes (like me). Big assets are also nice. Driving an expensive car more than a cheap one. A big fancy house. As a newlywed, I used to live in a 22 square meter house, then moved to a 39 square meter house in 2 years. Moving into a house with almost double the square footage, I felt like the living room was a gymnasium. Generally speaking, good and positive things are better when they are big. Even things that are concepts, such as courage, confidence, faith, hope, love... are better when they are big.

On the contrary then, what are things that are good when they are smaller or fewer? Age? Is it better to be younger? Hair thickness is better when thinner. Otherwise, you will have a shining head like me. In general, negative things are better in smaller quantities. For example: stress, hatred, quarrel, complaint, dissatisfaction, greed, victim mentality, hurt, misunderstandings, etc. But the Bible says that the kingdom of God started with something very small.

Advent is a season to remember the lowliness and humility of Jesus. He is bigger and mightier than the universe itself but he entered the womb of Mary. Jesus became much smaller so that he could come to us. Advent is the season of looking at the much smaller and lowly Jesus.

2.
Heaven begins insignificantly small, like a mustard seed.
Matthew 13 is full of parables of Jesus. Among them, the parables of the mustard seed and the yeast are very similar. Both parables tell of a very small cause or start and end with that cause becoming significantly bigger, producing unimaginable results. Heaven is just like this. Let’s read verses 31-32 together. “
31 He told them another parable: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mustard seed, which a man took and planted in his field. 32 Though it is the smallest of all seeds, yet when it grows, it is the largest of garden plants and becomes a tree, so that the birds come and perch in its branches.”

1

Do you know how small a mustard seed is? It is small enough that sprouting new shoots from the seed seems kind of questionable. Until new shoots are emerging, it is hard to tell whether it is a rapeseed, radish seed, or mustard seed. When I was young, we also grew many seeds, but it was impossible to tell them apart. However, as the seeds sprout and grow, the different seeds become distinguishable. The seed is small, but through that seed, a tree of enormous size is born, and from that tree you can reap a countless amount of fruits.

Jesus says that the kingdom of God works like. God's kingdom is very small, seemingly unnoticeable. And not many people follow it. But once that country is planted it begins to grow. It grows and grows and eventually exerts a huge influence. The tree in the parable symbolizes the kingdom of God. The kingdom of God is like a mustard seed - it starts with us being small. And although we seem small, the kingdom of God starts within people like us.

3.
The kingdom of God begins through the small people who have condensed themselves. The movement of the kingdom of God is neither like a strong political party organization nor a loud and imposing military march. Rather, it starts small, like a mustard seed. The kingdom of God begins with an individual who, like a mustard seed, denies and humbles himself. Just as Jesus condensed himself, individuals who follow in his footsteps will feel the transformative power of God’s kingdom wriggling and progressing within. So Advent is the season to learn about lowness, humility, and self-denial, like Jesus.

We don’t know if we are small, humble. But only when we deny ourselves and reduce and condense ourselves in Jesus Chirst can the kingdom of God begin to grow. And even though we are small, we create an amazing ripple effect that becomes the driving force in the growth of the kingdom of God.

Jesus was reduced to the size of a baby seed (sperm) and grew up in a woman's belly. He grew up in a small hidden village in Galilee. His family wasn’t very wealthy or influential as his father was a carpenter. He lived a very poor life, and had an even worse death before leaving this world. The disciples he raised were also not very special people - people with not much to see. Excluding the disciple who betrayed Jesus, Jesus left 11 disciples behind, ascending into heaven. What in the world wer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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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e 11 people supposed to do? However, the Bible tells us that the kingdom of God spread rapidly through those 11 people. The kingdom of God eventually grows so much that in 300 years it dominates Rome. And now, 2000 years, followers of Jesus Christ are all over the world, in innumerable amounts.

4. Characteristics of God's Kingdom
What a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kingdom of God that can be known through the parable of the mustard seed? The first characteristic is that the kingdom of God begins very small. Transformation for the salvation of the world begins with individual salvation. There can be no community salvation or community transformation without individual salvation. When each of us becomes a mustard seed and grows, the kingdom of God too grows on this earth. The community is transformed by individuals who receive and are transformed by the love of Jesus Christ. In that sense, there is nothing more amazing than accepting Christ as Lord and becoming a Chrsitian. One person receiving Jesus and getting a glimpse of the kingdom of God may not stand out in history as an amazing feat, but it is like a mustard seed falling to the ground. The seed may be hidden in the ground, but when the time comes it will grow and swell and make a big impact.

The second characteristic of the kingdom of God is that it grows noticeably. It is sometimes to the point where we ask ourselves, is it really growing? But isn’t that like a seed? The growth of a seed is not visible. But it is growin. There is a saying that God’s kingdom grows at the speed of character. It grows very slowly but continuously. The kingdom of God is not transformed by a radical revolution in the world or by a strong political power or force.

The growth is not visible enough to raise doubts about whether it is really growing. That's it. Seed growth is like that, right? It is unnoticeable. But it's growing.
There is a saying that the kingdom of God grows at the speed of character.
The kingdom of God is very slow, but it continues to progress slowly. It will not be transformed by a radical revolution in the world or by some major political power or force. His kingdom will be changed through individual character changes that slowly but surely encroach and transform the world.

Look at the life of Jesus. He spent 30 years in the Galilee wastelands unnoticed, like a grain of mustard seed. He was like hidden yeast. But the love within him sprouted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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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w, and eventually that love burst and exploded out, driving all of Israel into a crucible of change. The seed may not be hidden in the ground, and not look like it is growing. But when the time comes, the seed will grow exponentially and radiate good energy into the world, bringing about positive change.

Although you may seem small, you are not small. That is because Jesus Christ is within you. On the outside, we seem no different from the secular people of the world, but inside, the change of personality because of Jesus’s love is evident. That love and personality will bear fruit beautifully in this world. Through the fruits of such character, the kingdom is slowly and surprisingly growing. You don’t have to be amazing. You don’t have to live a luxurious life. Even if you are shy, Jesus Chrsit is within you, bearing beautiful fruit through you. Many people will come to rest under your shade. You will give rest and peace to many. I hope you all live beautiful lives like this. A life that bears wonderful fruit and transforms the lives of 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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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eramus

본문: 마태복음6:24-34

제목: 몸이 중한가, 옷이 중한가?

 

1.

오늘은 교회력으로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이라고도 하고 대강절이라고도 하는 절기는 교회력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달력으로 오늘은 한 해를 여는 시간입니다. 대림이란 말은 기다릴 대()와 임할 임()자가 합해져 만들어졌습니다. 이 절기를 시작하며 우리는 아기 예수로 이 땅에 오신 예수를 기다리고,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를 간절히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우리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삶을 산다는 것은 예수님이 꿈꿔 왔던 세상을 우리도 함께 꿈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기도(the Lod’s Parayer)에서 우리가 고백하듯이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삶을 꿈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이야기를 써가고 있는 저자(authors)들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어떤 이야기의 일부로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의 일부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말은 또한 내 인생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삼고 살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고 내가 욕망하는(desire)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욕망하는 이야기를 살고자 결심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두 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길 아니면 돈을 섬기는 길 이 두가지 뿐입니다. 세상의 어떤 대단해 보이는 명분도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돈을 섬길 것인가?” 하는 이 양단(兩端))의 갈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돈을 주인으로 섬기는 이야기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을 최고로 여깁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그렇듯이 이윤을 창출하고 이익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집니다. 돈을 주인으로 섬기는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입니다.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차를 타고 어떤 백을 매고 다니느냐가 그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됩니다. 실용적이지 않아 보이는 인간성이나 품성의 개발 같은 것은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소비가 미덕이 된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많이 구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많이 닮아 간다고 세상에 무슨 쓸모가 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소비사회는 인품이나 성품이 미덕이 되기 힘듭니다.

 

2.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는 정 반대의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그 이야기를 따라 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몸이 중요할까요 아니면 그 몸 위에 걸치는 옷이 중요할까요? 몸은 목숨이자 생명을 의미합니다. 생명이 중요합니까, 생명을 위해 필요한 음식이나 옷이 중요합니까?  몸이 중요하고 생명이 중요합니다. 몸이 없고 생명이 없으면 음식이 무슨 소용이며 옷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졌다구요. 우리는 하나님의 이미지대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을 구현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좀 더 보편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인간성, 성품, 품성 등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조금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옷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옷을 입은 사람의 인간성이 일그러져 있으면 전혀 아름답지 않을 것입니다. 옷을 입은 사람의 삶이 귀신처럼, 좀비처럼 엉망이라면 그 사람 위에 아무리 아름다운 옷을 입혀 놓은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연봉의 차이는 옷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연봉이 많은 사람은 좋은 옷을 살 수 있겠죠. 그렇지만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옷에 있지 않고 그 사람의 인간성에 있습니다. 인간성이 일그러져 야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찌를 입혀 무엇하며 루이비통을 걸쳐 무엇 하겠습니까?  

옷이 중요합니까? 몸이 중요합니까? 옷을 입을 몸과 목숨이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삶의 길이 정해져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 삶을 디자인할 이야기가 정해져야 하는 것이죠. 기독교는 목숨에 관한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간다는 것은 몸과 생명에 관심을 기울이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몸과 생명을 돌보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는 삶이 몸과 목숨을 아름답게 가꾸는 삶이라고 말해주고 있나요?

 

3.

몸과 목숨을 돌보는 삶을 위해서 먼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존재임을 믿는 것입니다. 시편 13913-14절에서는 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빚어진 것이 오묘하고 주님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나를 바라보며 신묘막측하게 지어진(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것을 느껴보신 적 있습니까? 신묘막측이란 표현은 하나님께서 내 존재를 지으신 것을 느끼며 두려울 정도로 놀라워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말로는 경탄(驚歎)하다는 표현을 쓰지요. 경탄은 몹시 놀라 감탄하다(feel wonder and admiration)’라는 뜻입니다. 내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사실에 놀라는 겁니다. 자주 거울에 비친 여러분의 모습에 경탄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아름다웠어?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멋지게 만드셨다고? 이런 걸작품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이런 말들을 해가시면서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기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아름답게 창조되었음을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압니다.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작은 들풀을 보면서까지 경탄할 줄 압니다. 왜냐면 그러한 미물들도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주변의 모든 사물을 귀하게 여기고 모든 생명체들을 감격하며 바라보게 됩니다. 나를 아름답게 바라볼 줄 알고,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경탄의 능력이 주어집니다.

 

이러한 경탄은 정말 느릿느릿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서두르고 재촉하는 삶 가운데서는 경탄할 여유가 없습니다. 제가 훈련해 온 수년 간의 새벽기도는 천천히 해찰하며 걷기였습니다. 해찰한다는 것은 일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한다(do something else while one is at work)’는 뜻이죠. 우리는 일에서 좀 떠나서 천천히 걷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말 느린 걸음으로 주변의 만물들의 소리를 들으며 걸어야 합니다. 정말 천천히 걷다 보면 새 소리는 물론이고 꽃들의 소리도 들리기 시작합니다. 켈리포니아의 1월의 정원들을 해찰하며 걸으며 그 겨울에도 피어 있는 장미들과도 인사하고 새싹들과도 인사하며 그들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서 경탄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그 모든 만물들의 소리 가운데서 제게 말을 걸어오시는 것을 느낍니다. 하찮은 들꽃도 이름을 불러줄 때 나에게 의미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나머지 해찰할 여유 없이 살아갑니다. 시속 55마일의 속도에 길들여지다 보니 천천히 걷는 속도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곳 로체스터에 와서 차에 치어서 길 위에 널부러져 있는 생명체들을 많이 봅니다. 누군가 길 가로 치워주지도 않고 차에 밟혀 비참해지는 생명채들을 보며 참 안타깝습니다. 자동차는 인간에게 속도를 선물로 주었지만 그 속도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속도는 우리에게서 해찰과 경탄의 감각을 빼앗아 가버렸는데 이것이 속도가 주는 가장 큰 손실일 겁니다. 천천히 걸으며 내 주변을 응시하고 귀기울일 때에야 비로소 경탄할 감각들이 개발되리라 믿습니다.

 

4.

아담이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 동산에서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그에게 다가오는 동물들과 식물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아마도 그 동물들과 식물들에 경탄하며 자연스레 그들의 이름을 불러준 것 같습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를 의미 있는 존재로 여긴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인간이 가장 먼저 뱉었던 말은 다른 피조물에 대한 경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담은 자신의 뼈와 살로 채워진 여자를 처음 바라보며 경탄합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어떤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인간의 입에서 가장 먼저 뱉어진 문장은 싯귀였다구요. 여자를 바라보며 내 뱉은 아담의 첫 문장은 여자의 존재를 경탄하며 감격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또한 자신이 만들어 놓으신 만물을 바라보시며 경탄하셨습니다. “~ 보기에 심히 좋구나.”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만든 우리를 너무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그의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 아닐까요?

 

경탄할 줄 아는 사람들만이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큰 복입니다. 창조하다는 히브리 단어는 바라라는 말입니다. 축복을 뜻하는 히브리 말 바라크는 이 바라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창조가 복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축복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내가 오늘 숨을 쉬고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복이자 신비입니다. 어찌 어찌 하다 로체스터라는 작은 도시에 흘러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곳에 우리를 두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로체스터에서 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복된 일입니까? 한인 교회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주일마다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로운 것이구요. 모두가 경탄에 마지 할 일입니다.

 

5.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고백을 할 때 그 창조 속에는 내가 포함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내 존재가 하나님의 걸작품이듯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집니다. 내 목숨이 소중하 듯 다른 이들의 목숨과 생명이 소중합니다. 내 목숨이 소중하듯 들풀 하나도 소중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옷보다 들풀 하나가 더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왜냐면 그 들풀은 하나님의 작품이고 하나님이 지금도 돌보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는 그냥 목적 없이 저 창공을 날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보살핌 가운데 비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사람들은 공중의 새와 들의 핀 꽃을 보며 영감을 얻습니다. 공중의 새와 들꽃은 우리에게 있는 염려를 덜어줍니다. ‘저 새와 들꽃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이 하물며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둘까?’ 하는 감각이 생기는 겁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결국 우리를 염려로 몰아 넣습니다. 우리의 목숨과 생명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합니다. 오히려 옷이나 음식과 같은 몸과 목숨의 부속물들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만들죠.

 

오늘은 한 해의 감사 제목들을 돌아보며 온전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감사 예배이기도 합니다. 올 한 해 내가 거둬들인 한 해 농사는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 없이 되어진 것이 없습니다.  내가 여기 지금 숨 쉬고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창조되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큰 복입니다.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는 복을 누리면서 우리가 무엇을 더 바라고 무엇을 더 욕망해야 할까요?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몸과 목숨에 관한 것을 따르는 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인생을 온전하게 만들어줍니다. 목숨을 성하게 만들고 온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대림절과 추수감사절을 동시에 지나는 오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이야기의 일부로 살아왔습니까? 여러분은 앞으로 어떤 이야기의 일부로 살아가고 싶습니까? 몸과 목숨이 아닌 그것을 위한 옷과 음식을 갈망하는 이야기의 일부로 살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몸과 목숨을 온전히 돌보고 성하게 하는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나가길 원하십니까? 이것은 근본적인 우리 삶의 갈등인 동시에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결단을 요구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옷을 통해 발현되지 않습니다. 몸과 목숨 속에 담겨 있는 인간성과 성품을 통해 다른 이들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삶입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무엇을 중하게 여기는 이야기인가요? 여러분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목숨과 의복 중에 무엇이 소중합니까? 무엇을 좇으며 추구하는 이야기의 일부가 되시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따르기 원하신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다. 돈을 따라 맘몬이 주인 되는 이야기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주인되어 이웃들과 주변의 만물들과 함께 경탄하며 감사하는 삶을 따를 것인가? 두 길의 중간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Text: Matthew 6:24-34
Title: What is more important, the body or the clothes?

Translated by Hur Min-Jun

1.
Today is the first Sunday of Advent according to the church calendar. Advent (Daerim-jul in Korean) is the season that begins the year. So, according to the church calendar, we open the year today. The word Daerim is made up of two characters: waiting (Dae, 待) and coming (Rim, 臨). As we begin this season, we wait for Jesus who came to this earth as the baby Jesus, and we also eagerly anticipate His Second Coming. Waiting for the Lord to come again means that we too dream of the world that Jesus dreamed of. As we confess in the Lord's Prayer, we earnestly hope that the Father's kingdom will come to this earth and that Heaven's Will be done on this earth. 

We are all authors, each writing our own story. As we go through life, we hear countless stories and think about what kind of story we will live as a part of. When we believe in God as our Creator and Jesus Christ as our Savior, it means we are determined to live as part of God's story of salvation. It also means that we will make Him as the owner of our lives. We decide to write the story of God’s desire, not my desire. Today’s Scripture says that one cannot serve two masters. The world has only two paths: to serve God or to serve money. Even a great-looking cause in the world comes down to “Will you serve God? Will you serve money?” 

The story of serving money as the master considers efficiency and making profits the most important value. In this story, consumption is the best value. What kind of clothes you wear, what kind of car you ride, what kind of bag you wear becomes the standard in determining a person’s value. Humanity and development of character, which seem impractical, are considered worthless. In a society where consumption has become a virtue, you think about what use it is to the world if you embody the image of God and become a lot like Jesus Christ. In this consumer and capitalist society, it is difficult for character or dignity to be a virtue.

2. 
But God teaches us the opposite way and tells us to live the story of life. Does your body matter or do the clothes on top of the body matter? The body means life. Is life important, or is food or clothing that we consume for life important? The body and life is what is really important. What good is food and what good are clothes if there is no body or life? The Bible says our bodies are made in the image of God. We are beings made in the image of God. Therefore, our life was created for the purpose of embodying the image of God, or in more general terms, humanity, character, and personality of God. 

Being made in the image of God also means that we have to be a little warmer and more humane. No matter how beautiful the clothes are, they will not be beautiful at all if the wearer is cruel and coldhearted. If the life of the person is messed up like a ghost or a zombie, what is the use of wearing beautiful clothes? The difference in salary makes a difference in clothes. A person with a higher salary will be able to buy better quality clothes. However, it is not the clothes, but the person’s personality, that ultimately determines a person's worth. What would Gucci or Louis Vuitton be good for if we are living like beasts?  

Are clothes important? Or is the body important? A body and life are far more important than clothes. Here, we need to determine the path of our lives and decide on the design of our lives. Christianity is a religion about life. Walking the way of God means living a life paying a special attention to one's body and life. Then, what kind of life is a life that takes care of the body and life? What kind of life does today’s Scripture teach us about?

3. 
In order to lead a life that takes care of your body and life, you must first believe in God as the Creator. To believe in God as the Creator is to believe that we are beautiful beings created in the image of God. Psalm 139:13-14 says, “For you created my inmost being; you knit me together in my mother’s womb. I praise you because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your works are wonderful, I know that full well.” Have you ever looked at yourself and felt that you were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This means that we are so amazed to the extent that we are afraid. We use the Korean word kyung-tan, which means “wonder and admiration.” This means we are amazed at the fact that we were created by God. I hope you often marvel at your reflection in the mirror. “Am I this beautiful? Did God make me this cool? Can a masterpiece like this come out again?” As you say these words, I hope you will rejoice in God's creation.

Those who believe that they are created beautiful in God's image naturally know that other people are also made beautiful. They know how to marvel not only at people, but also at the little grasses of the field. It is because they know that even such insignificant creatures are the works of God. These people value all things around them and look at all living things with admiration. This ability to kyungtan, or to admire, is given to those who realize the mystery of God's creation and know how to look at themselves beautifully. 

Admiration is also a gift to those who enjoy their life really slowly. There is no room for amazement when you rush from one thing to the next. During my morning prayers, for many years, I have been trying to walk slowly and practice Haechal. Haechal is a Korean word which means “do something else while one is at work.” We all need some time away from work so that we can walk slowly. Also, while we are walking slowly, we have to listen to the sounds of all things around us. When we walk really slowly, we start to hear the sounds of flowers and birds. 

I walk through the gardens of California in January, said hello to the roses still blooming in the winter, and listened to the little buds’ voices. And then I admire, or kyungtan. I feel God speaking to me in the midst of all the voices of creation. Even insignificant wild flowers come to me with meaning when I call them by name. We live such a busy life that we don't have time to haechal, or to reflect. When we are used to the speed of 55 miles per hour, the walking pace is frustrating. After coming to Rochester, I see a lot of creatures on the road that have been hit by cars. It's really sad to see the creatures being left on the road and trampled on. Cars have given humans speed as a gift, but too many things have been sacrificed for that speed. The speed has robbed us of our sense of wonder and admiration. This is probably the biggest loss because of the speed. Only when we walk slowly, stare at things, and listen to the surroundings, we will be able to develop our sense of wonder and admiration.

4.
What did Adam do in the Garden of Eden? He called the names of animals and plants that approached him. It was not what God commanded. Adam was probably amazed at the animals and plants and naturally called them by name. Doesn't calling someone by name mean you consider that person a significant being? So, we can see that the first words a human uttered were admiration for other creatures. 

Also, Adam marveled at the woman filled with his own flesh and bones. “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Genesis 2:23). One pastor said that the first sentence that was spit out of a human mouth was a poetic verse. Adam’s first word was a word of admiration and thrill at the woman's existence. God also marveled at the things He had created. "Hmm~ It's very nice to see." Could it be that God sent His only begotten Son to this earth because He so much valued us, who were made in His image?

Only those who know how to marvel at and admire things can truly give thanks to God. It is a great blessing to realize that God created us. The Hebrew word for creation is “bara.” The Hebrew word “barak,” which means blessing, comes from this word “bara.” Creation is a blessing. It is a blessing to realize that we are created by God. It is a blessing that we exist in this world. The very fact that we are breathing and being here today is a blessing and a mystery. We didn't somehow end up in this small city called Rochester, but God placed us here. How mysterious and blessed it is that you and I can meet each other in Rochester? It is surprising and thankful that there is a Korean church here. It is marvelous that we can worship together every Sunday. 

5. 
When you confess that God created the world, do not forget that you were included in that creation. Just as my existence is God's masterpiece, everyone in the world is God's masterpiece. Through faith in God's creation, we are connected to everything in the world. Just as my life is precious, so are the lives of others. Just as my life is precious, every wild grass is precious. Wild grass is more precious and beautiful than Solomon's clothing, because the grass is God's work and God is still taking care of it. The birds of the air don't just fly aimlessly across the sky. They are under the care of God the Creator. 

Those who believe in God's creation find inspiration in the birds of the air and the flowers of the fields. They relieve our anxiety because they make us wonder, “God feeds and clothes even them, how would He leave us alone?” The love of money eventually drives us to worry. It shifts the focus away from our lives to the accessories of life, such as clothes and food. 

Today is also a Thanksgiving service. We look back on our year with gratitude and give our full thanks to God. None of the crops we harvested this year were possible without God's protection. It is God’s grace that we are breathing here and now. It is a great blessing that we were created to be here now. While enjoying these blessings, what more should we hope for and what more should we desire? There is nothing more precious than life. Faith in God is following the story of the body and life. Faith in God the Creator completes our life. It is this faith that makes our lives thrive and flourish. 

Through today's service, which is both Advent and Thanksgiving service, God is asking you. What stories have you been a part of? What kind of story do you want to live as a part of? Do you want to live as part of a story where you crave clothes and food, not your life? Or do you want to go out with faith toward God the Creator who fully takes care of your body and life? This is a fundamental conflict in our lives, and at the same time, it is also a question that requires the determination of those who want to live by faith. The image of God is not expressed through clothes. It is manifested by the humanity and character embodied in life that makes other lives beautiful.

What values do we pursue in our stories? Ask yourself. What is more important, life or clothing? What are you chasing? If you want to follow Christ, you must answer this question. Will you follow money and make mammon the owner of your life? Or will you follow God, let Him become your master, and lead a life of wonder and gratitude with your neighbors and all things around you? There is no middle ground between the two paths. What would you choose?

Posted by speramus

본문: 시편 34:1-22

제목: 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

 

1.     고난이 갖는 역설 (The paradox of suffering)

     지난 한 주 로체스터에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겨울 왕국에 와 있구나 실감이 나더군요. 여러분은 겨울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많은 문학 작품들은 겨울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혹독한 겨울에 비유하곤 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떠 한가요? 실제로 우리에게도 겨울과 같은 시즌이 옵니다. 겨울과 같은 춥고 고통스러운 시즌을 통과해 보지 않고 우리는 성장하기 힘듭니다. 이런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맛본 사람만이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에 감격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란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고난 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고난은 우리 삶을 더욱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과 연결해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찾게 되니, 고난은 반길 수도 없으면서 감사한 손님인 것 같습니다.

     다윗이 왜 훌륭한 시인이 되었고 훌륭한 음악가가 되었을까요? 그의 인생을 통해 끊임 없이 경험한 고난과 시련 때문이었습니다.  시편 34편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을 높이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다윗은 그의 삶에 경험했던 고난과 곤경 가운데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간증합니다. 그는 고난과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8).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아 아는 대부분의 경우는 고난과 곤경을 통해서 입니다. 1절부터 10절 말씀이 다윗이 고난과 곤경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간증입니다. 11절부터 22절까지의 말씀은 자신이 경험한 신앙의 경험을 자신의 후대에 전하는 내용입니다. 후대에 신앙이 전수되는 결정적인 고리를 고난을 통한 구원에서 찾고 있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다윗이 그의 삶에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맛보고 알았다면, 우리의 삶에 찾아온 고난을 통해서 우리도 하나님을 맛보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2.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척하는 다윗

     다윗은 도대체 무슨 고난을 겪었길래 우리에게 함께 주님을 끊임 없이 찬양하고 그분을 높이자고 하는 것입니까? 본문의 표제(head line title)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다윗의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서 아비멜렉이란 사람 앞에서 미친 척하여 살아남은 것일까요? 미친 척 하여 살아남았다는 것은 굴욕감을 감수하면서 살아남았다는 뜻이죠. 이스라엘의 왕 사울은 자신의 왕위를 넘보는 것처럼 보이는 다윗을 평생 쫓아다녔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이곳 저곳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였던 블레셋까지 도망가야 할 신세였습니다. 블레셋의 시글락 성에 들어간 것은 그가 블레셋 왕이었던 아비멜렉의 용병으로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되어야 할 다윗이 도대체 무엇때문에 라이벌 나라의 식객이 되어야 했던 걸까요? 그는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수 백명의 사람과 떼를 지어 몰려 다녔습니다.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무리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였겠죠. 약탈을 하며 살든지 다른 나라의 용병이 되어 몸을 파는 것입니다. 다윗은 용병이 되어 몸을 팔기로 한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용병이 되어 몸을 팔려고 하다 발각이 되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거죠. 자신 뿐만 아니라 수 백명의 목숨이 날아갈 위기 앞에서 리더였던 다윗은 미친 척하며 굴욕감을 감수하기로 한 것입니다. 침을 질질 흘리며 헛소리를 해대며 그 위기를 모면하려는 지도자 다윗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도 직장이 전쟁터와 같을 때도 있을 겁니다. 직장에서 여러 모멸감을 참아가며 마지 못해 일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가족들을 위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굴욕감과 모욕감을 꾹꾹 눌러가며 일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인간의 존엄성의 일부가 훼손을 받으면서도 구원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아 알았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고난과 곤경 가운데 처했을 때 제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아이고 죽겠네~”입니다. 그렇게 안 해도 죽게 될 판에 굳이 죽겠다고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하십시오. 주님 제 고난을 통해 실감은 안 나지만 시편에 있는 대로 주님께 고백하고자 합니다. 여호와께서 높아지시길 바랍니다. 내가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을 자랑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건져 내시고 나에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내가 완전히 바닥에 떨어졌고 더이상 떨어질 곳도 없이 쓰러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님을 높이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셔야 합니다. 나의 고난의 상황이 좋아지든 좋아지지 않든 이 고백을 하기로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고백이 힘이 있는 줄 아십니까? 이 고백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미 경험한 살아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구원의 공명(resound)

     다윗은 그의 삶에 실제로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을 그의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젊은이들아 와서 내 말을 들어라. 주님을 경외하는 길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겠다.” 다윗은 자신의 삶에서 실존적으로 경험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간증합니다. 그 간증은 살아 있는 이야기이니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피아노로 미(Mi) 음을 치면 기타의 첫번째 줄과 여섯 번째 줄이 덜덜 떨립니다. 우리는 이걸 공명(共鳴)이라 하죠. 같은 주파수가 왔을 때 같은 음을 가진 현이 떨리는 겁니다. 간증이 갖는 힘은 바로 공명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안 구원의 경험은 비슷한 고난과 곤경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삶에 울림을 줍니다.

 

     우리가 시편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겠다면 시편을 읽으십시오. 시편은 거의 대부분이 기도문입니다. 인생의 쓴 맛과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 시편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을 기록한 저자들은 그들의 삶에 찾아온 고난 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때론 탄식하고 때론 한탄하기도 하며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토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죠. 고난 당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어떻게 내가 죽게 생겼는데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내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다 보면 온통 나를 사로잡았던 현실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기도와 찬양은 반드시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줍니다. 현실은 변함 없지만 기도와 찬양은 우리의 시선을 현실로부터 하나님으로 돌려주도록 도와줍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한겨울을 통과하고 계십니까? 혹독한 시련과 고난이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습니까?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나 오직 주님만을 자랑할 것이니, 비천한 사람들아, 듣고서 기뻐하여라.

나와 함께 주님을 높이자, 모두 함께 그 이름을 기리자

내가 주님을 간절히 찾았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내셨다(2-4).”

비천한 사람2절과 6절에서 반복됩니다. 이는 히브리 말로 아니(עָנִי)’라는 말인데 Poor, humble, lowly, weak 라는 뜻입니다. 6절에 이 비천한 몸도 부르짖었더니…” 이 말의 뉘앙스는 이렇습니다. “아니 나같이 부족한 사람도 되는데 당신이라고 안 되겠어?” 다윗의 비천한 경험은 우리를 포함한 이후의 세대들에게 많은 공명을 주고 있습니다. 비천에 처했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7절의 표현을 보십시오. 주님의 천사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둘러 진을 치고, 그들을 건져 주신다.”

둘러 진친다라는 히브리 말은 군대가 둘러 싸서 빠져 나갈 곳이 없이 완전히 포위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고난이 사방으로 우겨 싸서 움츠러들게 할지라도(고후4:8), 주님의 천사가 오히려 그 고난을 포위 시켜 버리고 해체 시켜 버린다는 거죠.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높이는 자들의 삶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시고, 그의 비천한 삶을 들어 올리신다는 겁니다.

 

4.     두려움과의 싸움

     여러분의 삶에 찾아 온 고난은 오히려 간증이 되어 많은 비천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두려움에 정복당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며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 바로 이 두려움입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갈 때 두려움을 가지고 그들을 의심가운데로 빠지게 했죠. 사탄이 우리를 미혹케 하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무기가 바로 이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게 하고 의심 가운데로 빠져들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지만, 온전한 두려움은 사랑을 내어쫓습니다.” 그러니까 두려움이 우리 마음 속에 계신 사랑이신 하나님을 내어쫓게 만든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삶에 짙은 안개가 끼어 계신 분이 계시다면 오늘 다윗의 노래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혹독한 시련으로 점철되어(series of hardship) 있다면 다윗과 함께 이런 노래를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노래를 들어 보십시오. 나는 내 노래에 여러분을 동참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 내 개인적인 스토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나는 곤고한 자였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국경에서 망명하여 쫓기는 개와도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국경 남단을 슬피 울며 방황했습니다. 저는 국제 난민이었습니다. 나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내가 피할 곳은 주님 밖에 없었죠. 나는 광야에서 한 없이 주님을 찾고 찾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아 알았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다윗처럼 고난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길 기도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미각을 사용한 것은 정말 놀랍다 생각됩니다. 맛은 우리 삶에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식욕을 해결하게 도와줍니다. 맛을 통해 우리는 에너지를 공급받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되죠. 우리 인생 인생을 견인해 가는 근본적인 힘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양식으로 먹는 것을 통해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고난을 이길 힘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는 것을 통해서 입니다. 젊은 사자들이 굶주릴 가능성은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세요. 젊은 사자들은 힘이 있기에 절대 굶주리지 않습니다. 젊은 사자들이 굶주릴 정도라면 기근이 너무나 심한 상황이겠죠. “젊은 사자들은 먹이를 잃고 굶주릴 수 있으나, 주님을 찾는 사람은 복이 있어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10).”

 

5.     공동체에서 나눠져야 할 이야기

     다윗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의 고난에 공명을 줄 수 있다면 우리들의 이야기 또한 서로에게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공동체의 힘입니다. 우리가 공동체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로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것이지요. 11절 말씀처럼 특별히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힘과 자극을 줍니다. 젊은이들아, 와서 내 말을 들어라. 주님을 경외하는 길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겠다.” 여러분의 친구와 이웃들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여러분이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찾은 이야기를 들려 주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의 혹독한 겨울을 통과하며 직접 맛보고 경험했던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그것이 신앙의 전수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이들을 교회 교육부서에 맡기는 것만으로 신앙의 전수가 됐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직접 들려주십시오. “아이들아 내 말을 들어라!” 여러분의 가정에서 식탁 앞에서 믿음의 이야기가 나눠지게 하십시오.

 

     그런 면에서 오늘은 저의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대학시절,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사는 소명자가 되겠다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선교사로, 목회자로 헌신하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하나님 앞에서 저 자신을 훈련해 온 것은 “Faith Mission”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셨으면 하나님이 모든 삶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는 삶이 페이스 미션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통로를 통해 필요를 채우시고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하지(염려하지) 말고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의 사역을 하라고 의도된 삶인 것이죠. 성경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다윗, 엘리야, 바울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으며 믿음으로 살아갔죠. 물론 예수님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저도 이들의 삶처럼 믿음 선교로(페이스 미션) 살기로 용기를 냈고, 정말 그런 믿음의 삶이 작동하는 것을(working) 경험했습니다.

 

     제가 중국선교를 나갈 당시, 의지적으로 선교편지에 후원계좌를 명시하지(showing) 않았습니다. 선교지에서도 믿음의 삶이 작동하는지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주님은 일하셨습니다.

     최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6월에 사역하던 교회를 사임했고 9월 초 이곳에서 사역을 시작하기까지 약 3개월 정도 무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동안 정말 놀랍게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놀라웠습니다. 말 그대로(literally)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통장계좌가 거의 0으로 되면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몇 달 전에 신청해 놓은 어느 교회의 장학금에 선발됐다고 메일이 오고 곧이어 체크 우편물이 날아왔습니다. 한국에 있는 아내의 친구가 퇴직금의 일부라며 입금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기숙사 디파짓이 입금되기도 하고, 여러 손길들을 통해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그 시간 속에서 그분을 찬양할 일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아 알았습니다.

  최근에 눈길에 두 번 정도 미끌어졌는데 주변 분들이 스노우 타이어를 해야 한다고 정보를 주셨어요. 사실 스노우 타이어를 살 형편이 안됐는데, 몇일 전 한국에서 지인이 필요한 것에 사용하라고 송금을 해주셨는데 그것을 확인하고 웃음이 났습니다. 마치 저의 상황을 안 것처럼 스노우 타이어의 비용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주님은 저에게 이렇게 유머러스 하게 다가오시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은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가져다 줍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라는 찬송처럼 하나님은 그분을 의지하고 끝까지 신뢰하는 사람들의 삶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제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눈 이유는 하나님이 부르짖는 자들의 삶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함입니다. 모두 다 저와 같은 극적인 경험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의 형편에 맞게 맞춤형 써비스로 하나님은 응답하실 겁니다. 다윗의 삶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은 시련과 고난 가운데 우리의 의지할 바는 오직 하나님 뿐이라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를 두려움 속에서, 환난 속에서도 건져 주십니다. 추운 겨울의 눈보라 속을 걷는 것과 같은 시련 가운데 계신 분들의 삶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이 혹한의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따뜻한 봄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진로나 이직, 질병, 인간관계, 출산과 양육 등 어느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시련이자 고난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가운데 서 계십니까? 여러분은 그 고난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만약 고난 가운데에 있다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여러분이 되시길 빕니다.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만나주시고 건져 주시고 그분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 나의 구원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직접 맛보아 아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더 나아가 그 구원의 스토리를 여러분의 자녀에게, 친구, 이웃들에게 증거하십시오. 특별히 비천함에 처한 이웃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피고 그에게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 주십시오. 여러분이 경험한 구원의 이야기를 들려 주십시오. 그래야만 우리 삶에 찾아온 불청객 같았던 고난이 축복으로 변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가 우리 다하나 교회와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더욱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17-19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되새기며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Scripture: Psalms 34:1-22

Sermon: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Translated by Melody Lee

 

  1. The paradox of suffering

It snowed a lot in Rochester this last week. I felt like I was in a frozen kingdom. What images come to mind when you think of winter? Many literary works have expressed the trials and tribulations of life through the topic of winter. We liken life's difficult times to a harsh winter. How was your life? In fact, a season like winter is coming to us too. It's hard for us to grow without going through a cold and painful season like winter. Only those who have tasted the bitter cold of winter can be thrilled with the warm sunlight of spring. Suffering is ironic indeed. No one likes to suffer. However, suffering can also become a tool that makes our lives more humble and connects us with God. Through hardships, we find God more. Thus, while we cannot welcome suffering, we are thankful for it.

 

Why did David become a great poet and a great musician? It was because of the hardships and trials he constantly experienced throughout his life. His 34th Psalm tells us how precious it is to praise God and exalt Him in the midst of suffering. David testifies to the experience of meeting God in the midst of hardships and difficulties he experienced in his life. He confesses that he has tasted and known God's goodness and mercy through hardships and trials (v. 8). Most of the time we taste and know God's goodness and lovingkindness through hardships and difficulties. Verses 1 through 10 are David's testimony of God's salvation in the midst of hardships and difficulties. The words from verses 11 to 22 are the content of conveying the experience of faith that he himself experienced to his future generations. We must pay attention to the fact that salvation through suffering is the decisive link through which faith is handed down to future generations. If David tasted and knew God through the hardships in his life, shouldn't we also taste and know God through the hardships that came to our lives?

 

  1. David when he pretended to be insane before Abimelech

What on earth did David go through so he asks us to constantly praise the Lord and exalt him? The head line title of the main text reads, “Of David. When he pretended to be insane before Abimelech, who drove him away, and he left.” What did David endure that he had to pretend to be insane in front of a man named Abimelech to survive? Surviving by pretending to be crazy means surviving by enduring humiliation. King Saul of Israel pursued David, who seemed to be trying to overthrow his throne, all his life. David lived a wandering life from place to place, avoiding Saul. He had to flee to the Philistines, Israel's enemy country. The reason he entered the Philistine castle of Ziklag was because he offered himself as a mercenary to Abimelech, the Philistine king. Why did David, who was supposed to be the king of a country, have to become a guest of a rival country? Because he wasn't alone. David went around in groups with hundreds of people. There must have been two ways for the people to survive. Either live by plundering or sell yourself as a mercenary in another country. David became a mercenary and decided to sell his body. But the problem is that he was caught trying to sell himself as a mercenary and was in danger of dying. In the face of the risk of losing not only himself but also hundreds of lives, David, the leader, decided to pretend to be crazy and accept the humiliation. Imagine for a moment the leader David, drooling and talking nonsense to escape the crisis.

 

There will be times when our workplace is like a battlefield. Some work reluctantly while enduring various humiliations at work. Some have to work for the sake of their families while suppressing their sense of pride and enduring humiliation. However, David proudly tells the story of salvation even though it’s humiliating to people. Because through that process he tasted and experienced God's goodness and lovingkindness. When you are in the midst of hardship and trouble, the first thing you should not say is “Oh, I’m going to die.” There is no reason to say that you will die if you do not do so. Instead say, “Lord, though I cannot comprehend it through my suffering, I want to confess to you as in the psalms. May the Lord be exalted. I will exalt your name and praise you. Lord, you will deliver and answer me. Lord, I have fallen completely and can fall no further, but I will exalt the Lord.” We must confess this. We must voluntarily make this confession whether or not the circumstances of our suffering improve. Do you know why this confession is so powerful? Because this confession is a living story that those of faith have already experienced.

 

  1. The Resonance of God's Salvation

David wanted to pass on the salvation of God that he truly experienced in his life to his descendants. Look at verse 11. “Come, my children, listen to me; I will teach you the fear of the Lord.” David testifies to God's lovingkindness and goodness as he has experienced existentially in his own life. Because that testimony is a living story, it touches others. When you play “e” (mi) on the piano, the first and sixth strings of the guitar vibrate. We call this resonance. Strings with the same pitch vibrate when the same frequency comes. The power of testimony is resonance. The experience of salvation through tasting God's goodness resonates in the lives of people in similar hardships and predicaments.

 

This is why we must read the Psalms. If you don't know how to pray, read the psalms. The psalms are almost always prayers. Because the psalms are the cry to God of people who are going through the bitterness and severe trials of life. The authors of the psalms cry out to God in the midst of the hardships that have come into their lives. Sometimes they sigh, sometimes lament, and express their feelings honestly. But in the end, they always praise God. It is very difficult for those who are suffering to praise God. How can we praise God when we are about to die? When we tell God honestly about our situation, we turn our eyes away from the reality that has caught us and look to God. Prayer and praise must make us like this. Reality doesn't change, but prayer and praise help us turn our gaze from our circumstances to God.

 

Is your life in the middle of winter? Are severe trials and tribulations surrounding you? Praise God whenever that is the case. “I will glory in the Lord; let the afflicted hear and rejoice. Glorify the Lord with me; let us exalt his name together. I sought the Lord, and he answered me; he delivered me from all my fears.” (verse 2-4). “The afflicted / this poor man” is repeated in verses 2 and 6. This is the Hebrew word 'no (עָנִי)', which means poor, humble, lowly, weak. In verse 6, “This poor man called,” The nuance of these words is as follows. “No, even a person like me is lacking, but can’t it be you?” David's humble experience resonates a lot with us and later generations.

 

Even if you are in low places, don't be discouraged and praise God. See the expression in verse 7. “The angel of the Lord encamps around those who fear him, and he delivers them.” The Hebrew word for “encamps around” refers to a state in which the army is completely surrounded and has nowhere to escape. Even if hardships come in all directions and we are hard pressed on every side (2 Cor. 4:8), the angel of the Lord surrounds our hardships and dissolves them. God sends angels to the lives of those who exalt God in the midst of suffering, and lifts up their lowly lives.

 

  1. The fight against fear

The hardship that came into your life will instead become a testimony and a story that gives strength to those suffering. Don't be overcome by fear. It is fear that we must be most vigilant of as we follow God. When Satan approached Adam and Eve, he pulled them into doubt using fear. Fear is the weapon Satan most often uses to deceive us. Fear has the power to prevent us from fully trusting God and lead us into doubt. “Perfect love casts out fear, but perfect fear casts out love.” So fear drives God, the love in our hearts.

 

The hardship that came into your life will rather become a testimony and a story that gives strength to many lowly people. Don't be overcome by fear. It is this fear that we must be most vigilant of as we follow God. When Satan approached Adam and Eve, he brought them into doubt with fear. Fear is the weapon Satan most often uses to deceive us. Fear has the power to prevent us from fully trusting God and lead us into doubt. “Perfect love casts out fear, but perfect fear casts out love.” So fear drives God, the love in our hearts.

 

Those who feel as though there is a thick fog in your life, please listen to David's song today. If your life is marked by a series of hardships, try singing this song with David. Listen to his song “I want to get you to join me in my song. Listen to my personal story. I was a wretched man. I was like a dog being chased in exile on the borders of Israel. I wandered weeping along the southern tip of the Israeli border. I was an international refugee. I had nowhere to go. My only refuge was the Lord. I searched endlessly in the wilderness for the Lord. But there I tasted and knew God’s goodness and lovingkindness.

 

            I pray that you, like David, will taste God's goodness and mercy in the midst of suffering. It's amazing how David used his taste for God's goodness. Taste helps us solve the most primal instinct in our lives, our appetite. Through taste, we are supplied with energy and gain the strength to live. The fundamental power that drives our life comes through eating God's goodness as food. The strength we have to overcome hardships is through tasting God's goodness and lovingkindness. Think of the percentage chance that the lions will starve. The lions are strong and never go hungry. If the lions are starving, the famine must be too severe. “The lions may grow weak and hungry, but those who seek the Lord lack no good thing.” (v. 10)

 

  1. Stories to share with the community

If David's story can resonate with our hardships today, our stories can also resonate with each other. This is the power of community. It is also the reason why we worship in front of God as a community. Our stories inspire each other. As in verse 11, especially the stories of seniors in the faith give us great strength and stimulation. “Come, my children, listen to me; I will teach you the fear of the Lord.” Tell your friends, neighbors, and children the story of how you found God in trouble. Please tell us the story of God's goodness and faithfulness that you tasted and experienced firsthand through the harsh winter of your life. Because it will make the link of the transmission of faith. In particular, we should not think that simply entrusting children to the church Sunday School will pass on the faith. Tell the story of your faith directly to your children. “Children, listen to me!” Let the story of faith be shared at the table in your home.

 

In that respect, I would like to share my story for a moment today. When I was in college, I made a resolution to become a vocational person who lives according to God's mission. That's how I devoted myself as a missionary and a pastor, and I've lived until now. It was the “Faith Mission” that I have been training myself in front of God since I was young. The faith mission is to believe that God is in charge of every life if God has sent it. God fills and supplies needs through various channels. That's why it's a life intended to do the ministry of God according to the call without worrying (do not worry). Many people in the Bible lived like that. People like David, Elijah, and Paul believed in God's provision and lived by faith. Of course, the life of Jesus was like that too. I mustered up the courage to live as a faith mission like their lives, and I really experienced that kind of life of faith working.

 

When I went on missionary work in China, I voluntarily did not look at the support account in the mission letter. I wanted to experience how the life of faith works in the mission field. I wanted to experience the goodness of God. But really, the Lord worked.

 

Even recently I experienced this. I resigned from the church I was ministering at last June, and I was unemployed for about 3 months until I started ministering here in early September. But during that period, it was amazing how surprisingly God filled it in various ways. I literally tasted the goodness and mercy of God. Miracles happened when bank accounts nearly zeroed. A few months ago, I received an email saying that I had been selected for a church scholarship that I had applied for, and soon after I received a check mail. My wife's friend in Korea said that it was part of her severance pay and deposited it. The dormitory deposit was deposited, and through various hands, they provided daily bread. Rather, the Lord created things to praise Him in that time. I tasted and knew God's goodness and mercy.

 

I recently slipped on the snow twice, and people around me informed me that I needed snow tires. Actually, I couldn't afford to buy snow tires, but a few days ago, an acquaintance in Korea sent me money to use for something I needed, and I laughed when I checked it out. It was because the amount sent was the cost of the snow tires, as if they knew of my situation. Sometimes the Lord comes to me in a humorous way. A life lived by faith brings us joy, hope and courage. Just like in the hymn, “Those who live by faith will receive it from above,” God never turns away from the lives of those who rely on Him and trust Him to the end.

 

The reason I share my story honestly is to tell you that God answers the lives of those who call upon Him. Not everyone has to have the same dramatic experience as I did. God will respond with services tailored to the circumstances of your life. What we learn from David's life is that in the midst of trials and tribulations, the only thing we can rely on is God. The Lord delivers us from fear and from tribulation. I want to encourage the lives of those who are in the midst of trials like walking through a snowstorm in a cold winter. After this harsh time, warm spring days will soon arrive.

 

            Hardship can find any of us, such as economic difficulties, career or job change, illness, interpersonal relationships, childbirth and parenting. Are you standing in the middle of hardship now? How are you facing it? God is speaking to you today. If you are in the midst of hardship, I hope you will praise God and exalt God. Even in the hardship, God will meet me and deliver me, and I will experience his work. I hope each of you will create your own story of salvation. I bless you to know God's lovingkindness and goodness through hardships.

 

Furthermore, testify the story of salvation to your children, friends, and neighbors. Watch out for a neighbor who is particularly struggling, and tell them your story. Please tell us the story of salvation you have experienced. It is because only then can the hardships that seemed like uninvited guests in our lives turn into blessings. I hope that the story of God's salvation will overflow even more in the lives of our church and believers. Finally, I would like to wrap up today's message by reflecting on God's heart through verses 17-19.

The righteous cry out, and the Lord hears them; he delivers them from all their troubles. The Lord is close to the brokenhearted and saves those who are crushed in spirit. The righteous person may have many troubles, but the Lord delivers him from them all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