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21장 15-19절
제목: 내 양떼를 먹여라
1.
앞으로 7주 동안 우리는 부활절을 기념하게 될 겁니다. 오늘은 부활절 제 2주 주일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예수님의 부활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부활신앙이란 생명이 승리하고 사랑이 승리한다 선이 승리한다는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세상에서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선이 승리하고 주님이 회복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신앙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의 여러 문제들과 씨름하다보면 부활의 신앙이고 뭐고 정신없이 살아갈 때가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제자들은 어땠을까요? 예수님의 부활 후에 제자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죽었던 스승의 부활은 분명 놀라운 사건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예수님의 부활 후에도 제자들의 삶은 여전히 혼란 속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엠마오로 돌아가던 제자들도 그렇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또 다른 일곱 명의 제자들도 동일합니다. 이미 그들에게 예수님은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자신이 부활하셔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시기도 했죠. 그런데 요한복음 21장 전반부의 분위기를 보면 제자들이 약간 쳐져 있는 인상을 줍니다. 21장 2절 말씀에 일곱명의 제자이름이 나옵니다. 시몬 베드로, 도마, 가나사람 나다나엘,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이름 없는 제자 둘입니다. 모두 갈릴리 출신들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이미 갈릴리 호수에 와 있는 것을 보면 예루살렘을 피해서 도망왔다는 인상을 줍니다. 베드로가 동료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그러자 나머지 제자들도 함께 가겠다고 나섭니다.
이후의 장면의 분위기는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첫 부르심을 받았던 때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비슷한 상황이 이어집니다. 그들은 밤새 물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뭍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그들을 향해 오른 쪽으로 그물을 던져 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물이 터질 정도로 많은 양의 물고기가 잡혔죠. 베드로보다 눈치가 조금 빠른 요한이 땅에 서 계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챕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말해주자 성질 급한 베드로는 물로 뛰어들어 헤엄쳐서 그의 스승에게로 갑니다. 베드로가 뭍에 올라오자 그의 스승인 예수님께서 이미 아침 식사를 세팅해 놓셨습니다.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그 숯불에 구운 생선과 떡이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그들의 기억을 자극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갈릴리 호수에서 벌어졌던 첫 부르심의 장면을 떠올렸겠죠. 또한 물고기와 떡이 그들을 위해 마련 되었을 때 그들은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사람들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 부분을 보며 저는 예수님이 요즘 시대에 사역자(pastor)를 하셨어도 참 잘 하셨을 거 같단 생각이 들어요. 왜요? 은혜 받을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만들고 계시잖아요. 제자들의 갱생을 위한 수련회 장소로 갈릴리만한 곳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밤새 물고기를 못 잡고 허탕친 후 마련된 아침 식사를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할 수 밖에 없었겠죠.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에서 그들이 경험했던 감격과 환희를 떠올리게 됐을 겁니다. 이렇게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신 후 주님은 본격적인 미니스트리를 시작하고 계십니다.
2.
“아침을 먹은 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라고 하는데 사역의 중요한 원리가 여기서 나옵니다. 교회에서 은혜 받으려면 일단 잘 먹어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하더라도 시작 전에 배불리 먹고 시작하면 은혜가 더 커지는 법입니다. 주님은 본격적으로 베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미니스트리를 시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 사건 이전에 베드로의 마음이 어떠했을 지 우리는 헤아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도망친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였습니다.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은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거라 자신있게 주님께 말한 상태였죠.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당당한 그에게 말씀하셨었죠.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하게 될 것이다.” 라구요. 닭은 유전적으로 새벽이 되면 울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닭이 두 번 운다는 것은 그 일이 확실히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죠. 예수님의 말대로 베드로는 가야바 제사장의 집 뜰에서 예수님을 세번 연속 부인하고 도망칩니다. 그리고 그는 펑펑 울며 자신이 스승에게 무슨 일을 한 것인지 후회하게 되죠.
‘유구무언’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바로 베드로의 상황이었을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번이나 그들에게 나타나셨었지만 베드로는 마음이 심난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을 것 같아요. 그냥 죄스러울 뿐인 거죠.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세 번째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세 번 연속해서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의 대답은 세 번 다 같았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베드로의 세 번 똑같은 대답에 대한 주님의 반응도 같았습니다. “내 양떼를 먹여라.”라는 명령이 세 번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이란 숫자는 가장 완전하고 안정된 숫자입니다. 카메라 받침대도 사각다리를 쓰지 않고 삼각다리를 쓰지요. 가위 바위 보도 삼 세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존재하시죠. 상한 감정의 치유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세 번은 다뤄져야 하고 세 번은 만져져야 응어리들이 치유되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도 세 번이었으니 그에 대한 치료도 세번이어야 했을 겁니다. 그가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는 감정은 죄스러운 마음일 겁니다. 스승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겠죠. 부활하신 주님이 두 번째 나타나실 때까지 그는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세번째 주님이 갈릴리 호수에 나타나시자 그는 주님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 주님께서 나를 포기한 것이 아니구나.” 그것이 이해되자 그는 배에서 바다로 바로 뛰어 내려 그 스승에게로 달려가게 된 것이구요.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져 있었던 주님을 향한 그의 열정과 사랑을 끄집어 내십니다.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어요. 베드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요. 하지만 그의 입을 통해 고백하게 함으로 그의 상한 감정을 치유하고,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싶으셨던 것이죠.
베드로는 이런 세번 연속된 질문에 반응하며 자신의 마음을 깊이 살피고 돌아보게 되었을 거라는 것이죠. 베드로는 마침내 자신의 과거의 쓰디쓴 감정을 훌훌 털어낼 수 있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 겁니다.
3.
이 본문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베드로의 마음의 회복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신 삶입니다. 베드로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는 답을 했을 때, 주님은 한결 같은 요구를 하셨죠. 무엇입니까? “내 양떼를 쳐라.” 또는 “내 양떼를 먹이라.”였습니다. 갱생하여 다시 일어선 베드로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목표가 새롭게 주어진 것이죠. 그것은 양떼를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사명을 일깨우시기 위해 그의 마음을 먼저 어루만진 것이구요. 그런데“양떼를 먹이는 것이 무엇인가?”를 현대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양은 무엇이고 양떼를 먹이는 것은 무엇이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겠죠.
우선 특별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양의 문” 또는 “선한 목자”라고 묘사합니다. 요한복음 10장을 기본적으로 떠올려야 하는 것이죠. 7절에서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1절을 헬라어 표현으로 하면 “에고 에이미 호 포이멘 호 칼로스(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ός.)”입니다.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라는 말은 “나는 ~이다(I am).”라는 뜻입니다. 영어에서도 Ego는 나 또는 자아라는 뜻이죠. 그런데 고전 언어에서는 굳이 ego 같은 인칭대명사를 쓰지 않고 동사로만 표현합니다. 에이미라는 be 동사의 형태만 바꿔줘도 이것이 나인지 그인지 너인지 다 구분이 된다는 거죠. 그런데도 필요없는 ego를 굳이 쓴 것은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선한 목자이다(I am a good shepherd).” 라는 번역보다 “내가 바로 그 선한 목자이다(I am the good shepherd).”라고 하여 정관사 the를 넣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선한 목자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구약성경 에스겔서 34장을 생각하시며 말씀하신 겁니다. 당시 사람들은 선한 목자라고 말했을 때 자연스럽게 에스겔 말씀을 떠올렸을 겁니다.
에스겔서 34장은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묘사하는 유명한 장입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며 그들을 저주합니다. 목자란 양떼를 먹이는 사람인데, 오히려 목자들이 양들을 잡아먹고 양들을 괴롭힙니다. 양떼들이 온갖 들짐승에게 공격을 당하고 살육을 당하는데도 그들에게 목자가 없어서 비참한 상황이 되었다고 하나님은 한탄합니다. 목자들은 양떼를 돌보지 않고 자기 배만 채우고 있다고 책망을 받죠. 에스겔서 34장 11절부터는 하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어서 흩어진 양떼를 찾아 나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위험한 상황 가운데 처해진 양떼를 친히 구해 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양은 돌봄을 받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양들을 돌볼 지도자가 목자인 것이죠. 에스겔 34장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들 위에 목자를 세워 그들을 먹이도록 하겠다. 그 목자는 내 종 다윗이다. 그가 친히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다윗이야 말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선한 목자였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다윗의 대를 이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참 목자로 임하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선한 목자로 이 땅에서 살아가신 것이구요.
에스겔 선지자가 다윗을 선한 목자로 언급할 때 그는 사무엘상 17장 34-35절 말씀을 떠올렸을 겁니다.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은 골리앗을 치러가기 전에 사울 앞에서 자기가 어떻게 양을 돌본 선한 목자였는지 말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가면, 저는 곧바로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 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덤벼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 죽였습니다.(34-35)” 이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선한 목자로서 어떻게 사셨는지를 묘사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다른 복음들과 달리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죽임 당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스스로 나의 목숨을 내어 놓는다(As I lay down my life)’고 표현하죠.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어린 양 떼들을 삯꾼과 이리 떼와 강도 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시죠. 요한복음 10장에서 너무나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삯꾼과 이리 떼와 강도 떼에게 시달리는 양들을 건져내시기 위해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리 떼와 강도 떼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아시면서 자신의 삶을 드렸습니다. 이리 떼에 물려 있는 양떼를 꺼내기 위해 나는 그들의 이빨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4.
삯꾼과 이리 떼, 강도 떼로 묘사되는 실체는 로마의 폭정이기도 하고 성전 종교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어떤 특정한 정치 시스템이나 종교 시스템을 가지고 자기들의 배만 불리는 사람들이 바로 이리떼 이며 강도 떼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자신의 생명을 살찌우는 드라큐라적인 악한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을 향한 사랑이나 연민 그리고 자비가 거세된 탐욕스런 종교 시스템입니다. 이런 종교시스템에서는 배제와 배타와 배척이 기본적인 작동 원리입니다. “문둥병자 안돼~ 소경들 안돼~ 혈루병자 안돼~ 이들은 자기가 죄를 지었거나 부모의 죄로 이런 거니 성전에 얼씬도 못하게 해. 이런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 내야 메시야가 빨리 오실 수 있어.” 실제로 바리새인들은 아주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 때 메시야가 임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정한 병자들과 죄인들을 배척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받아 들이면 그들이 덜 깨끗해지는 걸로 이해했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착취적이고 배타적인 종교시스템 아래서 소외된 자들을 찾아 다니셨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한 번 못박히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기 전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힐 마음으로 이리 떼의 입에서 어린 양 떼들을 건져 내시는 것을 반복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그런 선한 목자로서 어린 양들을 건져낸 행위의 연장선이었고 극적인 사건 이었던 것이구요.
마가복음 6장 34절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묘사하며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님은 3일 동안 빈들을 돌며 자기를 따라다니는 5천명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먹을 것도 없는 데 주린 배를 부여 잡고 왜 5천명의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 다닙니까? 돌봐 줄 목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그 광야에서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잔치를 벌이신 겁니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은 광야에서 펼치신 성만찬(Eucharist)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이미 오병이어를 통해 자신의 몸과 피를 어린 양들을 위해 찢기실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죠.
요한복음 21장의 배경이 오병이어 기적과 세팅이 닮아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목자 없는 불쌍한 양떼를 먹이신 예수님처럼 이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사명으로서 선한 목자의 임무가 부여됩니다. 예수님의 빈자리를 이제 베드로와 제자들이 물려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걸어오신 선한 목자로서의 그 좁은 길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5.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양떼를 먹여라.” 이 말의 무게와 깊이를 우리는 한 번 헤아려 보았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까요?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일까요? 우리가 양떼를 돌보고 선한 목자가 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폭압적인 정치 시스템과 배타적이고 착취적인 종교시스템 가운데 소외된 너희의 이웃들을 이제 너희가 돌봐주어야 한다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부탁하신다고 믿습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분의 삶의 태도를 본 받는 것일 겁니다. 돌봄을 받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연민과 함께 함은 선한 목자의 삶을 살아가신 주님을 본받는 삶의 기본 자세입니다.
로마서 13장 8-10절에서는 이러한 삶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8절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이어서 10절 말씀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로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람들은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 받기 위해 어느 정도 자유를 제한하여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국가는 사람들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하여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집행하죠. 그런데 그런 법집행이 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폭력에 고통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사랑의 법 하나로 다 해결된다고 말씀합니다. 사랑이 있으면 국가도 필요 없어집니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은 사랑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이 바로 이런 것이었죠. 소외되고 돌봄이 필요한 자들에게 사랑이 흘러가서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나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그의 생명과 안전을 빼앗지 않는 삶의 방식입니다. 착취적이지 않고 배타적이지 않는 삶의 태도입니다. 이것의 다른 표현이 이웃 사랑이며 선한 목자의 삶입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 각박해져서 사람들의 마음이 야수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물고 물어 뜯으려는 이리 떼와 강도 떼가 가득해 보이는 세상입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 Beef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것 같던데요. 처음 시작이 그렇더라구요. 마트의 주차장에서 한 남자가 후진을 하는데 그걸 보고 자기가 먼저 가려던 여자가 경적을 울리며 남자를 자극합니다. 둘은 남의 집의 화단까지 망가뜨리며 쫓고 쫓기는 분노의 질주를 합니다. 만약 처음에 한 사람이라도 기다려 주고 참아 넘어갔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스토리인 거 같더라구요. 우리는 그런 야수적인 마음을 선한 목자의 마음으로 리포메이션을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나를 위하는 야수적인 마음을 죽여야 합니다. 반대로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주교로부터 받습니다. 분명히 자기가 훔친 은촛대와 은접시를 주교는 오히려 자기가 준 걸 왜 다 안 가져 갔냐고 남겨진 촛대를 챙겨주기까지 합니다. 장발장이 경험한 지금까지의 야수적인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주교의 사랑으로 장발장은 완전히 다시 태어났죠. 그는 한 도시의 시장이 되어 수공업을 일으켜 번성시킵니다. 그로 이해 그 도시의 수많은 빈민자들을 구제해 냅니다. 이후에 그는 줄기차게 선을 행하며 레 미제라블들에게 선을 베풉니다. 소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런 것이 바로 선한 목자의 삶이라 생각됩니다.
의사 선생님들 많이 계시는데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의사선생님들 때문에 살맛나는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분은 너무 비현실적인 병원과 의사의 삶이라고 말씀하시긴 하더라구요. 그래도 사람들이 그런 드라마에 감동하는 것은 의사들 안에서 인간미를 발견하고 따뜻한 돌봄을 받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을 겁니다. “낙태한 산모에게 그것 병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아무에게나 찾아 올 수 있는 거예요. 산모님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의사가 얘기해주자 환자가 펑펑 우는 장면을 보면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선한 목자로 살아가는 삶은 예수님처럼 사랑에 의해 움직이는 삶입니다. 사랑이 작동하게 하는 삶이죠. 이웃을 해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이웃을 해치지 않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는 삶, 그것이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목자의 삶이자 목자의 마음입니다. 다른 이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누리도록 돕는 삶이 바로 목자의 삶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누리게 되길 축복합니다. 여러분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기 인생을 예찬하는 그런 일들이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그 거룩한 목자로의 부르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그 주님의 부름에 초대하시는 주님 앞에 함께 기도합시다.
Main text: John 21:15-19
Title: Feed My Sheep / Translated by Myung-Ha Kim
1.
We will have 7 weeks of Easter. Today is the second Sunday of Easter. What does the resurrection of Jesus that happened in the past mean to us living in the present? Resurrection faith is the faith that believes that life wins, love wins, and goodness wins. Evil seems to triumph in the world, but the faith that ultimately believes that good will triumph and the Lord will restore is the faith of resurrection. It is also true that after dealing with problems that life brings, sometimes we simply don’t have room to think about Jesus’ resurrection. What were the disciples like? How did the lives of the disciples change after the resurrection of Jesus? For the disciples of Jesus,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eacher must have been an amazing event. However, when you read the Bible, you get the impression that the disciples' lives are still in chaos even after Jesus' resurrection. The disciples returning to Emmaus are the same as the other seven disciples in today's text. Jesus had already appeared to them twice and explained why he had to be resurrected. However, if you look at the atmosphere in the first half of John 21, there is a little melancholy. In 21:2, the names of the seven disciples appear. Simon Peter, Thomas, Nathanael of Cana, John and James, and two unnamed disciples. They are all from Galilee. The fact that they have left Jerusalem and are already on the Sea of Galilee gives the impression that they have fled from Jerusalem. Peter tells his friends, “I’m going out to fish.” Then the rest of the disciples set out to go with them.
The atmosphere of the later scenes is similar to the time when they were first called by Jesus. They tried to catch fish all night, but they caught nothing. Someone tells them to cast their nets to the right of them, about 100 meters from the shore, and so many fish were caught that the net burst. John, who is a little quicker than Peter, realizes that the one standing on the ground is Jesus. And when he tells Peter, Peter, who is impatient, jumps into the water and swims to his master. When Peter came up to the shore Jesus had already set breakfast. There was a charcoal fire with fish and bread grilled prepared for them. These series of circumstances must have stimulated their memories. Most of all, he probably remembered the scene of the first call that took place there on the Sea of Galilee. Also, seeing the fish and bread all prepared, they were likely to be reminded of the miracle of five loaves and fish that fed thousands. Reading this part, I think that Jesus would be a great pastor today. why? He knows how to prepare the atmosphere for people to receive grace in a staggering way. There would have been no place like Galilee as a place for a retreat for discipleship. And coming to a fully prepared breakfast after wasting away all night without catching a single fish, the disciples must have had no choice but to remember the times they had with Jesus. And it would have reminded them of the thrill and joy they experienced at the site of the miracle of five loaves and two fish. After setting the atmosphere like this, Jesus starts a full-fledged ministry.
2.
“When they had finished eating, Jesus asked Simon Peter.” An important principle of ministry comes out here. To receive grace at church, you must eat well. Even in bible studies, isn’t it more graceful if there is an abundance of delicious Korean food before the study begins? It seems that the Lord is starting a ministry that touches Peter's heart in earnest. One may ask. “Why does he only ask Peter?” I am not certain, but I think Jesus believed that if Peter was properly rehabilitated, Peter would lead the rest of the disciples on his own. Here we need to consider how Peter's heart must have been before this incident. It was in the Garden of Gethsemane that Peter fled from Jesus. He was confident in telling the Lord that no matter what, he would not betray the Lord. But Jesus said to him with confidence, “Before the rooster crows twice, you will deny me three times.” Roosters are genetically engineered to crow at dawn. But if the rooster crows twice, it means that it will definitely happen. Then, as Jesus said, Peter denied Jesus three times in a row in the courtyard of the high priest and ran away. And he wept and he regretted what he has done to his master.
There is a Korean idiom called ‘Yoo Goo Moo Uhn’ which means you have a mouth, but have nothing to say. It must have been Peter's situation where he had nothing to say because of what he had done. The resurrected Jesus appeared to them twice, but Peter seemed to be still trouble-hearted. I don't think he had the courage to face Jesus. He was filled with the feeling of guilt. Here, Jesus appears for the third time and asks Peter the same question three times.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Peter answers with the same answer three times, “Lord, yes. You know that I love you.” Jesus responds to Peter three times with the same answer. It is worth noting that the command “Feed my sheep” is repeated three times over and over.
The number three is the most complete and stable number. The camera stand uses a tripod instead of a four-legged stand. There is a saying that rock-paper-scissors is three rounds. God also exists in the form of a trinity. I think the same goes for the healing of scarred feelings. It seems to take at least three times of restoration processes to heal the lumps. Since Peter denied Jesus three times, he probably needed to be healed three times. Naturally, Peter most likely had feeling full of guilt and shame. He would not have been able to see his master's face. He probably wanted to avoid Jesus throughout the two appearances after the resurrection. The third time the Lord appeared on the Sea of Galilee, he was able to fully understand the heart of the Lord. “Ah~ The Lord did not give up on me.” When that was understood, he jumped right out of the boat into the sea and ran to the master. The Lord brings out Peter's passion and love for the Lord that were hidden deep in his heart. Jesus already knew how much Peter loves him. But by making Peter confess through his mouth, Jesus wanted to heal his hurt feelings and raise him up again.
In response to these three consecutive questions, Peter would have looked deeply into his heart, look back, and finally shake off the bitter feelings of his past and stand up again.
3.
What is really important in this text is not the restoration of Peter's heart. What matters is the life Jesus asked of him. When Peter replied, “Lord, you know all things; you know that I love you,” the Lord made the same request over and over again which was? “Shepherd my sheep.” Or “Feed my sheep.” The mission and goal given to Peter, who was reborn and stood up again, was given anew. It was to feed the sheep. The Lord touched his heart first to awaken this passion. However,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what it means to ‘feed the sheep’ in modern understanding. We must understand what sheep represent and what it means to feed the sheep in the context of Jesus’ time.
First, especially in the Gospel of John, Jesus is described as “the gate of the sheep” or “the good shepherd.” It basically reminds us of John 10. In verse 7, “I am the gate for the sheep.” In verse 11, “I am the good shepherd. The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The Greek expression for verse 11 is “ego eimi ho poimen ho kalos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ός.)”. The word ‘ego eimi (Ἐγώ εἰμι)’ means “I am.” In English, ‘ego’ also means me or self. However, in classical language, personal pronouns such as ‘ego’ are not used and are expressed only as verbs. Even if you change the form of the verb be(eimi) you can distinguish whether it is me, him, or you. Although unnecessary, the word ego is used here for the element of emphasis. Instead of “I am a good shepherd,” it can be translated as, “I am the good shepherd.” It is better understood with the addition of the definite article “the.” When Jesus said he is the good shepherd, he was referring to Ezekiel 34 in the Old Testament. At the time, people would have naturally thought of the words of Ezekiel when they spoke of the good shepherd.
Ezekiel 34 is a famous chapter describing the shepherds of Israel. Ezekiel prophesies to the shepherds of Israel and curses them. A shepherd is a person who feeds the sheep, but here the shepherds rather eat and harass the sheep. God laments that the sheep are attacked and slaughtered by all kinds of wild beasts, but they have no shepherd. Shepherds are rebuked for not caring for the sheep and only filling their own stomachs. Ezekiel 34:11 “‘For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I myself will search for my sheep and look after them…” He says that he will personally rescue the sheep in the midst of danger. So, the sheep symbolizes God's people who are not cared for. And the leader who will take care of the sheep who are not being cared for is the shepherd. Ezekiel 34:23 says: “I will place over them one shepherd, my servant David, and he will tend them; he will tend them and be their shepherd.” In other words, David was a good shepherd in the history of Israel. And it prophesied that Jesus Christ, the successor to David, would come to this earth and come as the true shepherd. Then, Jesus did live on this earth as the good shepherd fulfilling the Old Testament prophecies.
When the prophet Ezekiel mentioned David as the good shepherd, he must have thought of 1 Samuel 17:34-35. In 1 Samuel 17, David tells how he was a good shepherd, taking care of his sheep before Saul on his way to battle Goliath. 1 Samuel 17:34 But David said to Saul, “Your servant has been keeping his father’s sheep. When a lion or a bear came and carried off a sheep from the flock, 35 I went after it, struck it and rescued the sheep from its mouth. When it turned on me, I seized it by its hair, struck it and killed it. 36 Your servant has killed both the lion and the bear; this uncircumcised Philistine will be like one of them, because he has defied the armies of the living God.” These scriptures are also a description of how Jesus lived as the Good Shepherd on Earth. Unlike the other gospels, the Gospel of John does not say that Jesus was killed. Instead, it is expressed as ‘As I lay down my life’. For what? It is to protect the lambs from wolves and robbers. He speaks in great detail in John 10. The Lord came to this earth to rescue the sheep from the wolves and robbers. And he gave his life knowing that he would go into the mouths of wolves and robbers. He said that in order to take out the sheep from the mouths of the wolves, I will instead come within the range of their teeth.
4.
The entities described as wolves, and robbers are both Roman tyranny (violent politics) and the temple religious system. A group of wolves and robbers are people who only increase their stomachs with a certain political system or religious system. It is a Dracula-like, blood-sucking, evil religion that uses the lives of others to nourish one's own. It is a greedy religious system in which love, compassion, and mercy toward people made in the image of God have been castrated. In this religious system, exclusion, discrimination, and marginalization are the basic operating principles. “No lepers, blinds, and other sick people because of their own sins or their parents’ sins! Don’t let them come to the temple. Only when these people are driven out can the Messiah come quickly.” In fact, the Pharisees believed that the Messiah would come when they lived a very pure and holy life. In order to do this, it was believed that the unclean sick and sinners should be rejected. They understood that accepting such people would make them unclean.
But Jesus went looking for those who were marginalized under this exploitative religious system. Before being nailed to the cross, Jesus repeatedly rescued the lambs from the mouths of wolves with the intention of being crucified. The cross was a dramatic event and an extension of the act of saving the lambs as the good shepherd.
Mark 6:34, describing the miracle of five loaves and two fish, is recorded as follows. “When Jesus landed and saw a large crowd,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So he began teaching them many things.” Jesus took pity on the 5,000 people who followed him around the desert for three days. They had nothing to eat and starved yet why did these 5,000 people follow Jesus? Because there was no shepherd to take care of them. Jesus had a banquet with five loaves and two fish in the wilderness for them. The five loaves and fish miracle of Jesus was the Eucharist in the wilderness. Jesus showed that he would tear his body and blood for the lambs before he was crucified.
It is for this reason that the background of John 21 resembles the context of the miracle of five loaves and two fish. Like Jesus who fed the poor sheep without a shepherd, now Peter is given a new mission to be a good shepard. Jesus' vacancy must be inherited by Peter and his disciples. When the Lord said to Peter and his disciples, “Follow me,” he is inviting them to the narrow path Jesus walked as the good shepherd.
5.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Then feed my sheep.” We just deciphered the weight and depth of these words. How should this word be understood by us today? Do you love the Lord? If you love the Lord, what is the right way to live life? What kind of life would correlate to the life of taking care of the flock and being a good shepherd?
I believe the Lord is asking us today that you must now take care of your neighbors who are marginalized in the midst of a tyrannical political system and an exclusive and exploitative religious system. To follow Jesus who said “follow me” would be to imitate his attitude in life. Being compassionate toward those who are neglected and marginalized is the basic attitude of living a Christian life and the example that Jesus set for us by living the life of the Good Shepherd.
Romans 13:8-10 expresses this kind of life like this. This is verse 8. “Let no debt remain outstanding, except the continuing debt to love one another, for whoever loves others has fulfilled the law.” Verse 10 follows. “Love does no harm to a neighbor. Therefore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People have created nations or states with some restrictions on their freedom to ensure a safe and stable life. The state creates and enforces laws to maintain order by restricting people's freedom to some extent. However, there are many times when such enforcement is excessive and results in many people suffering from state violence. However, the Bible says that everything can be solved with one law of love. When there is love, there is no need for a nation. The fact that love is the completion of the law also means that this world in which we live can operate properly with love and without any other laws, states, or nations. This is the life Jesus showed us. Love flows to those who are marginalized and in need of care so that they can feel God's love. This is the way of life that does no harm to my neighbor and does not take away their life and safety for my own benefit and safety. This is the attitude of life that is not exploitative and not exclusive. This is what God means by ‘loving your neighbor.’
This world has become so hard that people's hearts seem to be turning into beasts. It's a world that seems to be full of beasts that bite and try to bite other people. Recently, a drama called Beef seems to be popular on Netflix. This is how the drama starts. A man backs up in the parking lot of a store, and the woman who was trying to go first sees it and stimulates the man by honking her horn. The two chase furiously even destroying flowerbeds in other people's houses. It seemed like a story where nothing would have happened if one of the persons waited patiently. We must reform such a beastly heart into the heart of a good shepherd. We must kill the beastly heart within us that goes on its way of even harming others for our own benefit. Conversely, in the novel Les Misérables, Jean Valjean receives a love so incomprehensible from the bishop. The candlesticks and plates were obviously stolen yet, the bishop asks why he didn’t take all the other ones that he gave to Jean Valjean. This was incomprehensible in the beastly world Jean Valjean lived. However, because of the bishop's love, Jean Valjean was completely reborn. He becomes the mayor of a city and develops and prospers the handicraft industry. As a result, he relieves many of the city's poor. It's the story of a novel, but I think this is the life of the good shepherd.
There are a lot of doctors here which reminds me of the K-drama “Hospital Playlist.” In the drama, you can see a world where you can live better because of the doctors. Of course, some people say that the life of doctors displayed in the drama is too unrealistic. Still, people are moved by such drama because they want to find humanity in doctors and receive warm care. “Miscarriage is neither a disease nor anything. It can just come to anyone. It's not the mother's fault,” the doctor said, and I remember being very moved when I saw the patient crying out loud.
A life lived as a good shepherd is a life in which love moves. It's a life that makes love work. It is a way of life that loves our neighbors without harming them.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A life of loving and caring for the underprivileged without harming them is the life and heart of a shepherd that our Lord wants. The life of helping others to gain life and enjoy it more abundantly is the life of a shepherd. I am blessed that many people will enjoy life through you. I bless you that many people discover the beauty within themselves and praise their lives through you. I invite you to the calling of being a good shepherd. Let's pray to the Lord who invites us to follow 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