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 1:1-8절
제목: Way maker
1.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비텐베르크 성당의 문 앞에 라틴어로 된 “95개조 반박문”을 붙입니다. 논쟁이라는 뜻의 “Disputatio”라는 이 문서는 기독교 역사에 가장 강력하고도 폭발적인 저항 운동이된 “종교개혁”을 촉발시킵니다. 루터는 무엇 때문에 ‘95개조 반박문’으로 불리는 ‘Disputatio’를 써야만 했을까요? 그는 이 문서를 통해 무엇을 주장하고자 했나요? 반박문의 주요 내용은 ‘면벌부(免罰符)’에 반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면벌부’란 말 그대로 벌을 면하게 해주는 부적이었습니다. 당시 카톨릭 교인들은 연옥(煉獄, Purgatory)을 믿었습니다. 연옥은 천국과 지옥의 사이에 있는 곳으로 믿어졌습니다. 살아 있는 자들의 헌금을 통해 죽은 자들의 연옥에 있는 시기를 줄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기 보다 먼저 죽은 이를 위해 헌금함에 동전을 넣으면, 그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죽은 영혼이 연혹에서 천국으로 옮겨간다라고 믿었죠. 그런데 문제는 이 면벌부가 사제들의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제들 중에는 자신의 빚을 면벌부 판매로 메꾸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성당을 짓는다는 명분 하에 교황의 주도로 면벌부가 판매되기도 했죠. 마틴 루터는 이러한 면벌부 판매가 성경에 반대되는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저항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 없이 따라가는 길이 아닌 정반대의 바른 길을 가고자 저항했습니다.
마틴 루터의 이 저항운동은 쯔빙글리(Ulich Zwingli), 쟝 깔뱅(Jean Cavin)같은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전 유럽으로 퍼져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큰 개혁의 뜻을 세웠습니다. 그 구호는 사제들의 사리사욕에 의해 왜곡된 기독교가 아닌 성경의 원래의 뜻과 목적을 따르는 참 기독교로 돌아가기 원하는 간절한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물 근원(根源)을 향하여’ 또는 ‘물 근원으로 돌아가자’ 라는 뜻을 가진 “Ad Fontes(back to the sources)”라는 라틴 말은 종교개혁자들이 만들 새로운 길의 지향점을 알려주었죠. ‘이것이 종교냐?’라는 강한 의구심에서 시작된 거짓 종교에 대한 반발심은 종교개혁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Protestant’는 그들을 비꼬는 말이었지만 그들의 삶의 방식을 정확히 나타내 주는 말이기도 했죠. 지향점이 다른 삶 말입니다. 프로테스탄트는 세상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거슬러 반대 방향으로 가는 자들이라는 뜻이잖아요. 종교개혁의 뜻을 기리는 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개혁자들의 뜻을 받들어 살아가는 것일까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의 지향점을 재 조정해 보고자 합니다.
2.
지난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한 날입니다. 소설가 김훈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빚진 마음으로 소설 “하얼빈”을 올 여름에 출간하였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안중근 의사의 삶을 추적해오며 자료를 모았고 그의 삶을 ‘하얼빈’이라는 소설을 통해 조명했습니다. 저도 몇 주 전에 드디어 소설 ‘하얼빈’을 손에 넣었고 단숨에 읽었습니다. 소설을 읽어 내려가며 저는 이런 질문을 계속 되내었습니다. “내가 만약 안중근이었다면…과연 나는 그처럼 할 수 있었을까?”, “안중근이 자신의 신념을 실행해 낼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서른 두 살의 나이에 순국했습니다. 그가 죽을 당시 셋째는 아빠 얼굴도 못 본 갓난 아이였습니다. 제가 만약 안중근이었다면 처자식을 버리고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안중근은 천주교인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있는 사람이었죠. 그의 가문은 천주교 신앙을 가진 황해도 해주의 권세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그는 가문의 권세를 입고 그냥 편하게 살아도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굳이 험한 길을 택했습니다. 그의 슬하에는 큰 딸 밑에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그는 막내 아들이 아내의 뱃속에 있을 때 혼자서 러시아 연해주로 독립운동을 위해 떠납니다. 그는 마치 물 맷돌 다섯개를 들고 골리앗 앞으로 달려간 다윗처럼, 권총에 실탄 일곱 알을 채워 들고 하얼빈 역으로 향합니다. 안중근은 이토를 사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토 한 사람의 광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내 몰리고 불행해졌다고 믿었습니다. 이토를 없애는 것은 동양의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라고 그는 확신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총알 일곱 발 중 여섯 발을 쐈고 그 중 세발이 이토의 급소를 관통합니다. 황해도의 시골청년이 쏘아 올린 이 혁명적인 시도는 큰 파장을 일으키며 독립 운동에 불을 지핍니다.
안중근에게 세례를 주었던 천주교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안중근 사건과 선을 긋습니다. 당시 조선의 천주교 책임자였던 프랑스 신부 뮈텔은 안중근을 살인자로 정죄합니다. 안중근에게 세례를 주었던 고향 성당의 빌렘 신부가 여순 감옥에 가서 그의 고해성사를 행하고자 요청했을 때도 뮈텔 신부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같은 프랑스인이었던 빌렘 신부는 뮈텔의 뜻을 저버리고 개인적으로 안중근을 찾아 가 그의 고해성사를 행했습니다. 안중근이 죽기 3일전의 일이었죠. 천주교는 1993년이 될 때까지 안중근의 의로운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993년 8월이 되어서야 김수환 추기경은 “그분의 의거는 일제의 무력침략 앞에서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행위였고 정당방위이며 의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라며 안중근 의사의 행동이 더 큰 평화를 위한 노력이었음을 인정합니다. 안중근의 행위는 한 명을 죽인 살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평화를 해친 원흉을 없앤 의로운 행위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제가 소설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안중근이 스스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마음을 먹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상부의 어떤 지시도 없이 스스로 계획하여 실행에 옮겼다는 거죠. 그의 마음 속에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동양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도 좋다는 강한 의지였습니다.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그의 가문이 겪게 될 어떤 핍박도 그를 꺽지는 못했던 겁니다. 마틴 루터 한 사람이 불지핀 개혁의 불이 전 유럽으로 번져갔듯, 안중근의 의로운 행동은 이후의 많은 독립 운동의 불씨가 됩니다. 시골뜨기였고 포수에 불과했던 한 사람의 결심과 행동은 그렇게 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르게 만들었죠.
3.
마가복음도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을 소개하며 그가 만든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가 걸어간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갈 그 길이 될 것이라고 마가복음은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걸어갈 길의 방향과 그의 길의 방향이 일치했다는 겁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제사장 가문인 레위지파였습니다. 그 또한 제사장으로 앞 날이 보장된 삶이었습니다. 그가 제사장이 되었다면 사람들의 존경도 받고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었겠죠. 하지만 그는 출생의 비밀이 있던 자였습니다. 그의 부모는 백발에 그를 낳았습니다. 그를 잉태할 당시 하나님의 천사로부터 예언을 받았죠. 그 예언을 간단히 말하면 그가 메시아가 올 길을 예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길을 예비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것이라고 천사는 일러줬죠(눅 1:15-18). 그는 평범한 제사장의 삶은 못 살 운명이었던 겁니다. 성인이 되자 그는 예루살렘의 자신의 집을 떠나 길을 만들기 위해 유대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존경받는 자리에 앉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죠. 그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메시아의 올 길을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길을 닦는 Way maker였던 겁니다.
아마도 그의 어린 시절부터 책상머리에는 이사야서 40장 3절 말씀이 붙여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세례자 요한의 비전과 사명은 분명했습니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똑바르고 곧게 만드는 것이죠. 세례자 요한은 마틴 루터처럼 한 시대의 획을 그은 사람이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가르는 선구자 역할을 요한이 했습니다. 요한의 활동을 통해 예수님이 오실 길이 만들어 졌으니 그렇습니다. 루터 또한 중세와 근대를 가른 혁명적 인물이었죠. 안중근의 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조선인들은 평화의 세상을 다시 꿈꿀 수 있었습니다. 요한과 루터 그리고 안중근은 그런 의미에서 시대를 바꿔 놓은 혁명가들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혁명은 사람들이 붐비는 광장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텅비고 황량한 들녘에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된 외진 곳이 광야입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광야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분리되고 단절된 공간입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그곳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입니까? 그의 외침은 단순했습니다. “회개하라. 그리고 세례를 받아라.” 그런데 그의 단순한 외침에 도대체 무슨 힘이 있었길래 사람들이 그에게 그렇게 많이 몰려든 것일까요?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 불과한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권위를 느끼고 그에게로 와서 침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 가문 마저 초라한 광야의 예언자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항상 신비롭습니다. 도대체 세례자 요한의 이런 권위는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
세례자 요한은 성전을 중심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제사장 무리들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특권을 박차고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말씀으로 돌아가고자 했고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모든 의지하는 것으로부터 스스로 단절되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샘 근원을 찾아 광야로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조상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인도하심을 받은 삶을 기억하며 그도 광야의 삶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광야에서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작동하는지 안 하는지 그는 직접 실험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 광야에서 그는 하나님의 강한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선배였던 엘리야 또한 광야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인도하심을 받은 적이 있었죠. 그는 엘리야의 심장을 가진 거친 혁명가였습니다.
4.
그렇다면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광야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요? 세례자 요한은 말합니다. “회개하고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으라.” 주님이 오실 길을 만드는 도구와 연장은 회개와 회개의 열매였습니다. 그런데 간단한 이 요구는 우리 전 존재를 흔들어 놓는 매우 강력한 요구이기에 결코 쉽지 않은 무거운 요구입니다. 회개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혁명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혁명(革命)의 한자는 가죽 혁(革)에 목숨 명(命)자입니다. 회개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는 것이 혁명과 같다고 한 이유는 목숨을 내 걸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피부를 벗겨 가죽을 만들어 새사람이 되고, 목숨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혁명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회개와 함께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전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그리스말 ‘메타노이아(Metanoia)’는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삶의 목표, 삶의 타겟, 삶의 과녁을 완전히 다르게 설정하는 삶입니다. 그냥 적당히 교회 발만 딛어 놓고 모양만 신자로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껍대기를 완전히 벗어 던지고 알맹이를 취하는 삶입니다. 나의 욕망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나의 욕망을 새롭게 하는 삶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따라가는 삶의 방식과 반대의 방향으로 protest하며 가야할 지도 모릅니다. 굶어 죽더라도 삶의 근원이 되는 말씀으로 돌아가고자 발버둥치는 삶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찌 적당히 믿어서 될 일입니까? 완전히 나의 가죽을 벗겨서 새사람을 만들고 온전히 뜯어 고치는 혁명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러기에 회개 후에 새롭게 태어난 의식으로 세례를 행한 것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알았습니다. 자신의 삶은 너무 미약하지만 그가 걸어간 그 발자국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모인다면, 거기에 길이 만들어지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은 광야에서 참된 삶의 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의 삶의 방식은 길이 되어 많은 이들을 진리이신 예수께로 안내했습니다.
5.
세례 요한의 혁명은 광야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를 강타하였습니다. 요한이 요구한 회개의 삶은 누가복음 3장에 구체적으로 소개됩니다. 삶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회개하였다면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삶의 변화는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했다는 것을 주목해 봐야 합니다. 속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잉여의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이웃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옷장에 2년 넘게 입지 않고 있는 고가의 옷, 그리고 여러분의 냉동실에 반 년 넘게 먹지 않고 있는 음식물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이웃의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셨나요? 여러분에게 잉여의 급여가 있습니까? 혹시 그것은 이웃과 함께 나누라고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은 아닐까요? 여러분의 삶에 이웃과의 나눔과 공유가 없다면 여러분의 회개는 껍대기에 불과합니다. 다시 회개하시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셔야 합니다. 세리와 군인들에게 요한은 요구합니다. 너희 직업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뺏어내지 말라고 합니다. 높아진 지위로 이웃들의 존엄성을 짓밟지 말라는 겁니다. 요즘 말로 하면 갑질하지 말라는 것이죠. 모두가 동등한 이웃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바로 요한이 걷고자 했던 길이었습니다.
다른 이를 존중하고 그의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자주 말하지만 제가 이해하는 이웃 사랑은 “나를 통해 상대방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귀함과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음식과 옷 그리고 돈을 나누는 것이 별것 아닐 지 모르지만 받는 그 사람은 그 섬김을 통해 존귀함을 느낍니다. 이런 나눔과 베풂의 삶의 방식이야 말로 세상 사람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입니다.
이 시대에 일어나야 할 종교 개혁과 진정한 혁명은 우리의 삶의 태도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지향하는 삶은 자연스레 이웃을 지향하는 삶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웃을 사랑하는 길을 함께 걸어가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 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따라가는 Rival Gospel이 아니라 참 복음을 따른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공을 향한 Rival story가 아닌 예수님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삶입니다.
세상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십시오. 오로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노동자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SPC 평택 공장의 사고는 이 시대 라이벌 복음의 단면입니다. SPC는 직원들의 팔이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여러 번 발생했는데도 기계 점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20대 비계약직 직원이 빵 소스 배합작업 중 앞치마가 기계에 빨려 들어가며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사건 현장의 기계를 흰 천으로 가린 채 공장을 재가동했다고 합니다. 동료 직원의 생명과 존귀함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이윤만을 위해 돌아가는 기계인듯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라이벌 복음입니다. 돈과 이윤을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도 짓밟을 수 있다는 무서운 악마적인 발상입니다. 돈이 우상이 돼 버린 소비주의 자본사회의 민낯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샘 근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성경 전체를 요약한 우리의 샘 근원입니다. 이웃을 사람답게 대하고 존중하는 삶의 태도야 말로 소비시대의 거짓 복음을 거스르는 삶의 방식입니다. 혁명은 매우 작고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개혁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조정하고 지향점을 조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의 삶과 말씀이 진리라면 그의 삶의 방식에 나를 던지는 것이 마땅한 삶 아닐까요? 엘리야의 심정으로 세례자 요한은 지금도 우리에게 외칩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맘몬)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왕상18:21).”
그 작은 혁명과 작은 개혁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세례 요한과 함께, 좁고 낮지만 바른 길을 향해 걸어가 보지 않으시렵니까? 내 옆의 이웃들에게 손 내밀고 함께 나누고 베푸는 그런 삶의 방식으로 함께 걸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산다고 세상이 변하겠어?’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여러분 주변 만이라도 밝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틴 루터나 안중근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행동의 변화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로 인해 그 길은 더 또렷해 지고 분명해질 것입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작은 삶의 변화가 길이 되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여러분이야 말로 way maker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삶의 지향점의 변화야 말로 이 시대 우리가 이뤄내야할 작은 종교개혁일 것입니다.
Text: Mark 1:1-8
Title: Way maker
translated by Wi Chun-il
1.
On October 31, 1517, Martin Luther affixed the "95 Theses" in Latin on the door of the Wittenberg Cathedral. The document, “Disputatio,” which means “dispute,” sparks the “Reformation,” which became the most powerful and explosive resistance movement in Christian history. Why did Luther have to write ‘Disputatio’, which is called ‘95 Theses’? What was he trying to argue with this document? The main content of the rebuttal was against the ‘Plenary indulgence (免罰符)’. The word “indulgences” was literally an amulet to avoid punishment. At that time, Catholics believed in Purgatory. Purgatory was believed to be somewhere between heaven and hell. It was believed that the giving of the living could reduce the time of the dead in purgatory. It was believed that if someone puts a coin in the treasury for somebody who died before, the soul of the dead will be transferred from purgatory to heaven with the sound of the coin falling. The problem, however, was that this pardon became a means of making money for the priests. Many of the priests tried to pay off their debts with the sale of indulgences. In addition, under the pretext of building St. Peter's Basilica, indulgences were sold at the initiative of the Pope. Martin Luther resisted through the ‘95 Theses’ that this sale of indulgences was wrong, contrary to the Bible. He resisted to follow the right path, the opposite of the path that everyone at the time followed without thinking.
Martin Luther's resistance movement spread throughout Europe through Reformers such as Ulich Zwingli and Jean Cavin. The Reformers set the will of great reform, “Let's go back to the Bible.” The slogan contained the earnest desire to return to true Christianity that follows the original will and purpose of the Bible, rather than Christianity distorted by the self-interest of the priests. The Latin word “Ad Fontes (back to the sources),” which means “toward the water source” or “let’s return to the water source,” indicated the direction of the new path the Reformers were going to make. The resentment against false religion, which began with a strong doubt, ‘Is this religion?’ ignite the Reformation. At that time, the Reformers risked their lives to carry out their will. ‘Protestant’ was a sarcastic term for them, but it was also an accurate description of their way of life. It means that their life had a different direction from others. Protestant means those who go in the opposite direction against the direction of the world. How do you live on the anniversary of the Reformation, which commemorates the will of the Reformation, to live up to the will of the reformers? We would like to re-adjust the direction of our lives through the stories of these two people.
2.
October 26th is the day that Ahn Jung-geun killed Ito Hirobumi at Harbin Station. Novelist Kim Hoon published his novel “Harbin” this summer with a heart in debt to Ahn Jung-geun. He has been tracking the life of Ahn Jung-geun for many years, collecting data, and illuminating his life through a novel called 'Harbin'. A few weeks ago, I finally got a book ‘Harbin’ and read it right away. As I read the novel, I kept asking these questions. “If I were Ahn Jung-geun… Would I have been able to do that?”, “What was the power that Ahn Jung-geun had to carry out his beliefs?” He passed away at the age of thirty-two. At the time of his death, his third child was an infant who had never even seen his father's face. If I had been Ahn Jung-geun, I would not have been able to make such a decision by abandoning his wife and children.
Ahn Jung-geun was a Catholic believer. He was a man of faith in Christ. His family was a powerful family in Haeju, Hwanghae-do, with Catholic beliefs. He was able to live comfortably under the authority of his family. But he dared to choose the rough road. He had two sons under his eldest daughter. He goes on his own to the Russian Primorsky Territory to fight for independence when his youngest son is in the womb of his wife. Like David running to Goliath with five water millstones, he heads to Harbin Station with seven bullets in his pistol. Ahn Jung-geun understood that it was God's will to kill Ito. He believed that one man's madness drove many people to death and made them unhappy. He was convinced that getting rid of Ito was the way to peace in the East. According to his belief, he fired six of his seven bullets, three of which pierced Ito's vital points. This revolutionary attempt, launched by a rural youth in Hwanghae Province, caused a great stir and ignited the independence movement.
The Catholic Church, which baptized Ahn Jung-geun, draws a line with the incident by Ahn Jung-geun for political reasons. The French priest Mutel, who was in charge of Catholicism in Joseon (Korea) at the time, condemned Ahn Jung-geun as a murderer. Even when priest Willem of the hometown church who baptized Ahn Jung-geun requested to go to Yeosun Jail to perform the sacrament of confession, priest Mutel did not allow it. Priest Willem, who was also a Frenchman, abandoned Mutel's will and personally went to Ahn Jung-geun to pefrom the sacrament of his confession. It was three days before Ahn Jung-geun died. The Catholic Church did not recognize Ahn Jung-geun's righteous deeds until 1993. It wasn't until August 1993 that Cardinal Kim Su-hwan said, "His action was an act in the process of carrying out the war of independence in the face of Japanese imperial aggression, and it is self-defense and deserves to be viewed as a righteous action" admitting it was an effort for greater peace. Ahn Jung-geun's act was not recognized as a murder that killed one person, but as a righteous one that removed the culprit that harmed the peace of many people.
What surprised me while reading the novel was that Ahn Jung-geun decided to shoot Ito Hirobumi himself. That is, it was planned and carried out on its own without any direction from the superior. A fire was burning in his heart. He had a strong will to sacrifice his life for the sake of peace in the East. None of the persecutions that his wife, children, and his family would endure could not stop him. Just as the fire of reform ignited by Martin Luther spread throughout Europe, Ahn Jung-geun's righteous action becomes the sparks of many subsequent independence movements. The determination and action of one man, just a country man and a catcher, became a way, and many people followed it.
3.
The Gospel of Mark also introduces a humble man and guides the path he made. The Gospel of Mark introduces that the path he walked will be the path that Jesus Christ will follow. This means that the direction of the path Jesus was walking in coincided with the direction of his path. Both his father and mother were of the tribe of Levi, a priestly family. He also had a life with a guaranteed future as a priest. If he had become a priest, he would have been respected by the people and would have been able to live well. But he was the one with the secret of birth. His parents gave birth to him at old age. When she conceived him, he received a prophecy from an angel of God. Simply put, the prophecy was that he would prepare the way for the Messiah to come. The angel told me that preparing the way would convert many people (Luke 1:15-18). He was not doomed to live the life of an ordinary priest. Upon reaching his adulthood, he left his home in Jerusalem and went into the wilderness of Judea to make his way. He refused to take a seat of respect. And he did not really care about eating well and living well. His only concern was to do God's will. God's will for him was to prepare the way of the Messiah. He was a way maker paving a new path.
Perhaps from his childhood, the words of Isaiah 40:3 were attached to the head of his desk. “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wilderness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in the desert a highway for our God.’” John the Baptist’s vision and mission were clear. It is to prepare the way for the Messiah and to make his way straight. John the Baptist, like Martin Luther, marked an era. John played the role of a forerunner between the Old and New Testaments. It is because the way for Jesus to come was made through John's activity. Luther was also a revolutionary figure that separated the medieval and modern times. Through Ahn Jung-geun's righteous actions, Koreans were able to dream of a world of peace again. John, Luther, and Ahn Jung-geun were revolutionaries who changed the times in that sense.
John the Baptist's revolution did not begin in a crowded square. He was but a cry in the wilderness. The wilderness is a remote place, isolated from everything, in an empty and desolate field. As I said before, the wilderness is a separate and isolated space where no one can help. But what in the world was John the Baptist doing there? His cry was simple. “Repent. And be baptized.” But what was the power behind his simple cry that so many people flocked to him? Isn't it amazing? He is but a cry in the wilderness, yet many are listening to him. People felt the authority of his words, and they came to him and began to be baptized. Even the Herod family who ruled Palestine could not ignore the voice of a poor prophet in the wilderness. I always find this part mysterious. Where did John the Baptist's authority come from?
John the Baptist was wary of the Pharisees and priests who were enjoying privileges centered on the temple. He left the priestly privilege and went into the wilderness. He wanted to return to the Word to live by the Word, and cut himself off from all he relied on. Rather, he went into the wilderness to find the source of the spring. He, too, chose to live in the wilderness, remembering the life in which their ancestors experienced God's presence and were led in the wilderness. In the wilderness, where he could depend on nothing, he wanted to test whether God's word really works or not. In that wilderness he received strong guidance from God. Elijah, who was his predecessor, also had God's powerful guidance in the wilderness. He was a tough revolutionary with the heart of Elijah.
4.
Then, should we also go into the wilderness like John the Baptist? John the Baptist says: “Repent and bring forth fruit befitting repentance.” The tools that made the way for the Lord to come were repentance and the fruits of repentance. However, this simple request is a heavy demand that is not easy because it is a very powerful request that shakes our entire existence. Because repenting and bearing the fruits of repentance is like a revolution. The Chinese characters for revolution (革命) mean leather (革) and life (命). The reason I said that repenting and bearing the fruits of repentance is like a revolution is because it is something you risk your life for. Wouldn't it be a revolution to peel off skin to make leather, to become a new person, and to be born anew?
Becoming Christians begins with repentance. To be a disciple of Christ is to choose a way of life that is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way you used to live. The Greek word for repentance is “Metanoia”, which means to completely change the direction of your life. It is a life that sets a life goal, and a life target completely differently. It is not just a life of living as a believer only by the appearance of the church, just in moderation. It is a life of throwing off the shell completely and taking the kernel. It is not using God for my own desires, but a life that renews my desires for God. You may have to protest in the opposite direction to the way of life that everyone in the world follows. Even if you die of starvation, you struggle to return to the Word that is the source of your life. How can you believe this in moderation? It is impossible without a revolution that completely peels off my skin to create a new person and completely revive it. Therefore, after repentance, baptism was performed as a new born ordinance.
John the Baptist knew this. His own life was so feeble, but he knew that if people gathered to follow in the footsteps he had walked, a path would be made there. That is why John walked and walked the path of true life in the wilderness. His way of life became a way, leading many to the Truth, Jesus.
5.
John the Baptist's revolution began in the wilderness and struck all Judea. The life of repentance that John demanded is specifically introduced in Luke 3. It was to bear the fruit of life. If you repent, you must change your life. However, it should be noted that the change in life had to be concretely revealed in the attitude toward neighbors. Whoever has two sets of underwear should give it to the one who doesn't have it, and whoever has surplus food should share it with his neighbor. Have you ever wondered if expensive clothes that you haven't worn in your closet for over two years and food that you haven't eaten in your freezer for over half a year aren't yours, but your neighbor's? Do you have a surplus salary? Could it be that it is a gift from God to share with our neighbors? Without sharing and sharing with your neighbors in your life, your repentance is just a shell. You must repent again and bear fruit worthy of repentance. John demands to tax collectors and soldiers; Don't use your job to take more from others. Don't trample on the dignity of your neighbors with your elevated status. In other words, don't be rude. The way of life where everyone lived as equal neighbors was the path that John wanted to walk.
It was a way of life that respected others and reminded us of the preciousness of his life. As I say often, loving neighbor that I understand is “to make the other person realize their dignity and preciousness as a human being through me.” It may not be a big deal for me to share my food, clothes, and money, but the recipient feels honored through his service. This way of life of sharing and giving is the way of life of Christians, different from the world. This way of life is the path Jesus walked.
The Reformation and real revolution that must take place in this age must occur in our attitudes in life. A life oriented toward God naturally leads to a life oriented toward neighbors. Because Jesus wants his followers to walk together on the path to love their neighbors. This is not the Rival Gospel that all the people of the world follow, but the life that follows the true Gospel. It is a life that follows the story of Jesus, not the Rival story of success that the world seeks.
Look at what is happening in the world right now. The accident at the SPC Pyeongtaek factory, which does not care about the safety of workers only to make a profit, is a cross-section of the rival gospel of this age. SPC did not inspect the machine despite several accidents in which employees' arms were caught in the machine. As a result, a non-contract worker in her 20s died when her apron got sucked into the machine while mixing bread sauce. But the next day, it is said that they restarted the factory with the machine at the scene of the incident covered with a white cloth. He offered condolences by giving various kinds of bread to the bereaved families of the deceased, which gave them misery. Beloved One Heart Church congregation, this is the rival gospel that is dominating the world. It is a terrifying and demonic idea that even human dignity can be trampled on for profit. This is the bare face of a consumerist capitalist society where profit has become an idol.
The source of the spring that the Bible speaks of is this; “Love God a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is is our fountain source, which summarizes the entire Bible. An attitude of life that treats and respects neighbors like human beings is a way of life that goes against the false gospel of the age of consumption. A revolution must start with something very small and mundane. Reform begins with reorienting our lives and adjusting our direction. If the life and words of Jesus are the truth, wouldn't it be the right life to throw me into his way of life? With the heart of Elijah, John the Baptist still calls us today. “How long are you going to sit on the fence? If God is the real God, follow him; if it’s Baal (Mammon), follow him. Make up your minds! (1 Kings 18:21). We invite you to that small revolution and small reform. With Jesus and John the Baptist, why don't you walk towards the narrow and low but upright path? Why don't we walk together in such a way of life of reaching out, sharing and giving to the neighbors next to me? Instead of thinking, ‘Will the world change if I live like that?’, how about making a bright and warm world just around you? You don't have to be as grandiose as Martin Luther or Ahn Jung-geun. A small change in your actions will make a difference. And the path will become clearer and clearer for those who want to follow it. We believe that small changes in our lives together with our neighbors will become the way and make this world beautiful. You are a way maker if you are living like that, aren’t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