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에 눈이 제법 왔습니다. 눈 온 아침 교육국에서 오는 이메일을 기다린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제 아이들도 일어나자 마자 “오늘 학교 간대?”라고 묻더군요. 어릴 적 계산법으론 분명 12월 1일부터 겨울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이곳에선 이미 겨울인가 봅니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눈 위에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 잊혀져 가는 친구들의 이름을 써보자던 옛 시인의 노래가 생각납니다.옛 시인도 눈오는 날에는 센티해지기는 오늘의 우리와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그나 바깥에 놓아 두었던 화분들의 눈을 털고 집안에 옮겨 놓아야겠습니다. 아직 실파가 자라고 있고 고추 열매는 푸르르며 토마토는 붉게 수줍어 하며 익어가고 있는데 그냥 추위에 떨며 죽게 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올해는 이곳 저곳에서 조그만 화분들을 얻기도 하고 수납용 플라스틱 박스에 구멍을 뚫어 흙을 채우고 작물들을 심어 보았습니다. 지난 여름, 랄리 목사님께서 토마토 모종을 두 개 주셔서 하나는 조그만 화분에 심고 다른 하나는 큰 플라스틱 컨테이너에 다른 작물들과 함께 심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둘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조그만 화분에 심었던 토마토는 어느 정도 자라더니 성장을 멈췄고, 큰 컨테이너에 심긴 토마토 나무는 작은 화분에 심긴 토마토에게 보란 듯이 쑥쑥 자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뿌리가 뻗을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인 작은 화분의 토마토는 뿌리를 쭉쭉 뻗을 수가 없어 그 스트레스 때문에 성장을 멈춘 듯 합니다. 대신 넓게 자신의 뿌리를 뻗어 갈 수 있었던 컨테이너의 토마토는 자기가 자라고 싶은 만큼 맘껏 커 갈 수 있었나 봅니다. 

  그릇이 넓어야 한다는 말을 이런 때 쓰는 것일까요? 식물도 자신을 받아 주는 넓은 공간에서 맘 껏 크듯이, 사람도 넓은 마음을 가진 이들을 만날 때 쉼을 얻고 커갈 수 있나 봅니다. “해납백천(海納百川)”이란 말이 있습니다. “바다는 온갖 시내를 다 받아 들이니 그 너그러움이 있어 거대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바다는 큰 그릇이어서 온갖 종류의 시내들을 다 품고 포용하나 봅니다. 바다 같이 넓은 마음에 사람들은 모여들며 쉼을 얻고 성장합니다. 부모로서 바다 같아지려고 노력하고 노력하지만 잘 안될 때 좌절하기 일수 입니다. 나 자신을 향한 실망도 있지만 아비 잘 못 만나 아이들이 넉넉한 사람으로 커가는 것이 제한 될까 미안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그 너그러움에 있는 듯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 주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사랑이 넘치어서 죄와 허물을 용서한다(민수기 14장 18절).” 예수님도 수고하고 무거운 자들을 자기에게로 초청하시면서, 자신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서 어떤 사람도 예수님 안에서 쉼을 누리고 안식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죠(마11장 29절). 작은 화분에 심겨 성장을 멈춘 토마토 한 그루를 바라보며, 다른 이들을 나의 좁디 좁은 틀에 가두고 제한하며 너그럽지 못했던 내 마음을 돌아봅니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