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11: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1. 두 여인의 죽음
1997년 8월 말 그리고 9월 초에 세상의 주목을 받던 두 여인이 6일 차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여인의 장례식은 모두 전 세계로 생중계가 되었죠. 한 여인은 35살의 꽃다운 여인였고, 다른 여인은 86세의 쭈굴탱이 할머니였습니다. 누군지 아시겠어요? 35살의 미모의 여인은 바로 영국의 윌리엄 왕자의 왕세비였던 다이애나 였구요. 86세의 할머니는 가난한 하고, 배고프고, 벌거 벗고 집없는 사람들의 친구이자 엄마였던 마더 테레사 수녀였습니다. 다이애나는 윌리엄 왕자와 이혼 후 여러 남자들과의 복잡한 관계로 구설수로 오르다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게 되었죠. 그의 외모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많았을 줄 모르나 그의 삶을 흠모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마더 테레사는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여인을 뽑으라 하면 아마 세 손 가락 안에 들 여인이죠. 그의 삶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녀가 1979년 노벨 평화상 수상 소감으로 한 말입니다. “저는 우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청빈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배고프고 벌거벗고 집이 없으며 신체에 장애가 있고 눈이 멀고 병에 걸려서,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며 사랑 받지 못하며 사회에 짐이 되고 모든 이들이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기쁘게 받습니다.”
그녀는 바로 고아와 과부들 장애인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였습니다. 위대한 친구를 잃은 슬픔에 세계는 함께 울고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녀의 삶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거부하고 사랑하지 않고 돌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별명
여기서 문제 하나 나갑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대적자들에게 불리웠던 예수님의 별명은 무엇이었을까요? 힌트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합니다. 정답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 주를 즐기는 사람” 그리고 하나가 더 있죠. “세리와 죄인들의 칭구” 여러분 그 고귀하고 순결하신 이미지의 예수님의 별명을 한 번 봐보십시오. “먹기를 탐하는 사람” “식탐”이죠. 헐 예수님이 식탐?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 “주정뱅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친하게 지낸다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라는데 그들하고 뭐하면서 놀아야겠어요?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그들의 관심을 끌어 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먹는 음식과 포도주를 먹어주고 즐겨주어야 했던 것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서였죠.
마더 테레사도 다이애나 같은 화려한 삶, 품격있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청빈한 삶을 선택했었쬬.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였죠. 예수님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셨어요. 누가 그러더군요. 신이 인간이 된 것은 인간이 지렁이 아니 바나나가 된 거 보다 훨씬 어마어마 한 거라구요.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죄인된 인간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서죠.
예수님이 이 시대의 고등학교로 오신다면 누구의 친구가 되실까요? 여러분들이 손가락질 하는 양아들, 날날이, 밥맛들, 일진, 왕따 뭐 이런 애들에게 가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 뭔가 모자란 사람들의 친구, 병든 사람들의 친구이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있는 친구들 중에 나는 문제가 너무 많은 사람이야, 나는 죄가 가득하고 생각도 너무 지저분해.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실수 투성이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그런 친구들 기뻐하십시오. 예수님의 친구 목록 1순위 후보로 올라 있으십니다.
세리와 죄인들 처럼 문제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은 친구로 다가가 주셨어요. 오늘 이 시대에도 주님은 마찬 가지입니다. 문제많은 나, 문제많은 여러분을 위해 친히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위대한 이유죠. 아무 매력이 없고, 함께 하기에 부담스럽기까지 한 여러분과 저를 위해 친히 친구가 되어 주신 것이죠. 이제 예수님이 내민 손을 잡아 보시겠습니까? 예수님 보다 위대한 친구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위대한 친구 예수님을 여러분의 친구로 모실 때 삶의 참 기쁨과 만족이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