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내가 있는 이곳에 왜 위치해 있나를 알아가는 인생은 참으로 복된 인생입니다. 이민자들의 삶과 그들의 자녀들의 삶에있어 정체성이란 호흡과 같은 것인 듯합니다. 왜냐면 주변의 주류 사회의 문화와 조건들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익숙한 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정체성이 바르게 서 있지 않으면 혼란스럽고 어지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사회나 이민자들은 주류 사회로부터 주변화(marginalized)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지는 이민자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문제인 것이죠.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를 읽어 보면 ‘노아’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이 소설 자체가 재일 조선인들(在日朝鮮人, 자이니치 조센진)에 대한 이야기죠. 재일 조선인들이 일본 사회에서 마주한 신분적 한계와 차별은 소설의 주요 주제입니다. TV 드라마 ‘파친코’에서는 부각된 인물이 아니지만 소설에서 ‘노아’라는 인물은 매우 중요하게 부각됩니다. 노아는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수재 청년으로서 조선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인으로서 자신의 한계를 직시합니다. 조선인으로 자신이 당하는 차별을 받아들이면서도 신분상승의 높은 벽에 괴로워합니다. 게다가 자신을 키워주셨던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해주었던 야쿠자 조직의 한 남자가 실제 자기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노아는 그 버거운 진실을 감내하지 못하고 아무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는 곳으로 도망쳐 버리죠. 16년 동안 그렇게 자신을 감추고 살아온 노아에게 엄마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겨누고 생을 마감합니다.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숨기고 일본인으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그의 삶을 흔들어 놓은 것은 그의 정체성의 뿌리였습니다.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 소설은 우리에게말해 주려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민 세대들이 겪는 차별과 냉대 그리고 이질감 가운데 바른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노아는 조선인이라는 뿌리로부터 억지로 뽑혀 나와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한계를 인식하고 끝내 뿌리가 뽑힌 채 시들어 버린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 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정체성이 바르게 서 있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 세상 주류 사회와 성경의 가치 사이에서 혼란을 겪으며 표류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왜 나와 내 가정을 미국 땅에 보내셨고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확실한 목적의식과 정체성이 우리 삶을 이끌어 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뿌리둘 땅을 알고 깊게 뿌리내린 나무만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