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내가 말씀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다.
말씀을 가까이 하기를 싫어한다. 이건 정말 심각한 상태다.
이사야서 1장부터 39장 장제목을 짚는 시간 있었는데 입시 때 했던 것들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교수님은 장제목을 외우는 것은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무생물적인 반응을 말씀에 보일 수 밖에 없다고 하신다.
무생물적인 반응이란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히 예언서부분은 읽지 않은지 오래 됐다.
다시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말씀의 사람이고 싶다.
두 번째는 너무 중요하지 않는 것에 목숨걸고 싸우는 모습이 반성이 됐다.
수업 중 조선일보를 보지 말라고 하시는 목사님에 대해 잘못하는 것이라 말씀하시면서
토론이 시작됐고 교수님은 우리가 사회의 세세한 하나 하나에 까지 모두 신경쓰고 투사적으로 투쟁하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과 싸울 때 힘이 없을 수 있다고 하신다.
정말 진리와 상관 없는 것이라면 자신은 양보할 수 있다라고 하신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있어도 100프로 맞은 것은 없고
자신이 얼마든 양보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건거 구절은 고전 13:13절이다. 지금은 희미한 것처럼 보이나 ....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논쟁하는 것, 그것은 희미한 것을 보면서 정확한 것인양 그런 척 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정에서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에 목숨걸고 싸웠던 지난 삶이 반성이 됐다.
웬만하면 저주자!!
웬만하면 사랑하며 살자!!
내가 말씀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다.
말씀을 가까이 하기를 싫어한다. 이건 정말 심각한 상태다.
이사야서 1장부터 39장 장제목을 짚는 시간 있었는데 입시 때 했던 것들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교수님은 장제목을 외우는 것은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무생물적인 반응을 말씀에 보일 수 밖에 없다고 하신다.
무생물적인 반응이란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히 예언서부분은 읽지 않은지 오래 됐다.
다시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말씀의 사람이고 싶다.
두 번째는 너무 중요하지 않는 것에 목숨걸고 싸우는 모습이 반성이 됐다.
수업 중 조선일보를 보지 말라고 하시는 목사님에 대해 잘못하는 것이라 말씀하시면서
토론이 시작됐고 교수님은 우리가 사회의 세세한 하나 하나에 까지 모두 신경쓰고 투사적으로 투쟁하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과 싸울 때 힘이 없을 수 있다고 하신다.
정말 진리와 상관 없는 것이라면 자신은 양보할 수 있다라고 하신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있어도 100프로 맞은 것은 없고
자신이 얼마든 양보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건거 구절은 고전 13:13절이다. 지금은 희미한 것처럼 보이나 ....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논쟁하는 것, 그것은 희미한 것을 보면서 정확한 것인양 그런 척 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정에서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에 목숨걸고 싸웠던 지난 삶이 반성이 됐다.
웬만하면 저주자!!
웬만하면 사랑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