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21-8

제목: 사랑하니 깨뜨립니다.

 

1.

요즘 계절의 변화를 실감합니다. 며칠 새 대낮의 기온이 32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어떤 분에게 곧 봄이 오겠다고 말했더니 봄이 온 것이라 하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봄이 이미 온 것이 맞습니다. 옥수수 밭과 잔디를 덮고 있던 하얀 눈이 이제 거의 다 녹아갑니다. 꽃이 피어야 봄인 줄로만 알았는데 얼어붙었던 대지가 녹기 시작했으니 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가장 은혜 받았던 노래가 김명식 씨의 이라는 노래였습니다. “내가 염려했던 지난 날들과 영원히 계속 될 것 만 같았던 추운 겨울이 주님의 약속대로 흔적도 없고, 내 하나님 행하신 일 영원히 찬양하누나.” 이 가사의 노래를 들으며 고된 군생활을 달래던 기억이 봄과 함께 살아나네요. 인생의 겨울을 통과하시느라 몸도 맘도 지치셨던 모든 분들 위에 주님의 따스한 은총이 함께 하길 빕니다.

 

 예수님의 활동 근거지였던 팔레스틴 땅도 이 맘 때가 되면 새로운 계절을 맞습니다. 10월 말부터 우기가 시작되는데 이 때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합니다. 이 때부터 흐린 날이 많고, 일년의 강수량의 대부분이 10월 말부터 3월 초까지 몰아서 내립니다. 3월 초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하는데 이 때부터 건기가 시작됩니다. 3월의 늦은 비가 그치면 본격적인 추수의 때가 시작됩니다. 올리브와 보리, 포도의 추수가 시작됩니다. 이 시즌에 유대인들은 가장 중요한 명절을 맞게 되는데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그들이 이집트의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게 만든 출애굽을 기념하는 매우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어린 양을 희생시킨 하나님의 구원을 이야기하며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큰 명절인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돌아선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야 하는데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예수님이 들르신 곳이 베다니였습니다. 다음 주가 종려주일인데요, 종려주일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들어가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일어난 사건이 베다니에서의 만찬이니 이번주는 이 말씀을 통해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베다니를 들르시기 전에 어디에 계셨고 왜 그곳에 계셨어야 하는지 먼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039절을 보면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서 피하셨다.” 하며 예수님이 피신하며 다니신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는 나사로를 살리신 후 그때부터 예수의 대적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마음먹었다고 말해줍니다. 그들은 그 날로부터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대 사람들 가운데로 더 이상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에서 떠나, 광야에서 가까운 지방 에브라임이라는 마을로 가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다(11:53-54).”

 

예수님께서는 이적과 기사를 행하심으로 병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셨지만, 그의 대적들에게는 미움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심으로 대적들의 미움이 극에 달할 때 주님은 대적들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Hit and run 작전과 같아 보입니다. 베다니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적을 행하셨지만 그 소식이 예수님의 대적들에게 들어가자 예수를 죽이려 달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일을 하시며 많은 사람들을 자유케하시는 일을 했을 뿐인데 대적들의 미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치고 빠지신 것을 숨고르기를 하신 걸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 전에 한 숨 돌리시면서 마음을 새롭게 하셔야만 했을 겁니다.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버거운 그 고난의 잔을 마시기 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셨던 겁니다. 예루살렘에서 3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베다니를 들렀다 예루살렘으로 향하실 겁니다. 예수님이 다시 베다니 마을을 방문하실 때, 주님은 각오를 단단히 하신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결연한 각오로 베다니를 방문하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베다니 사람들은 기적을 행하신 예수가 그들의 마을을 재방문하자 잔치를 벌인 것입니다..

 

2.

감사와 기쁨의 축제의 열기 속에서 예수님의 감정의 흐름을 민감하게 캐취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마리아였습니다. 모두가 잔치 분위기에 들떠 있을 때 마리아만은 예수님의 마음을 읽어냈습니다. 예수께서 결연함으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당하실 고난을 생각하자 마리아는 가슴이 미어졌을 겁니다. 마리아는 무엇인가 주님에게 위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자의 흐릿한 직감이 남자의 또렷한 이성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제가 한 말입니다=). 흥에 한껏 취한 남성들 틈으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이 잔치가 예수님의 장례식 잔치의 리허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던 겁니다.

 

그녀가 이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읽어냈던 이유는 그녀가 예수님의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누가복음 1039절에 보면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고 묘사합니다. 사도행전 223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가말리엘의 발아래서 배웠다는 표현을 합니다.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제자였다는 관용적인 표현(idiom)이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간파했던 충실한 제자였다는 겁니다. 흥에 취한 남성들 사이로 갑자기 등장한 마리아는 자신이 준비한 퍼포먼스를 시작합니다. 마리아는 노동자의 1년치 품삯에 해당하는 고가의 나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나드는 식물에서 채취한 고급 향수인데 클레오파트라의 장례에 발랐다는 장례식용 향수이기도 했습니다. 왜 향유를 발에다 붓습니까? 예수님은 이곳 저곳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돌아다니셨습니다. 게다가 대적들을 피하여 빈들로 내 달리시기도 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발은 부르트고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마리아의 시선은 예수님의 발에 고정되었고 그 발에 향유를 붓습니다.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향수를 부었으면 어떤 감각이 먼저 자극되겠습니까? 후각이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이 집이 문둥병자 시몬의 집이었다고 부연 설명되어 있습니다. 문둥병자란 피부병에 걸린 사람이죠. 그러면 기본적으로 향기가 좋지 않았을 것 같아요. 성경은 문둥병자 시몬의 집에 갑자기 향유냄새가 가득찼다라고 말해줍니다. 마리아는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으면서 향유를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그의 스승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고 시뮬레이션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마리아와 대조를 이루는 캐릭터로 가룟(Iscariot) 출신의 유다라는 예수님의 제자가 나옵니다. 그는 이 여자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향유가 담긴 옥합(vessel)을 깨뜨린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깨뜨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저 비싼 향유를 왜 낭비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300데나리온이면 도대체 얼마나 큰 돈이냐 말입니까? 유다는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더 낫겠다고 말은 했지만 실은 그 돈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같은 제자인데 가룟 유다와 마리아의 온도차이는 사뭇 다릅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스승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있고, 또 다른 이는 너무나 차가운 이성으로 분석하고 따지려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7-8)." 마리아를 지지하고 계십니다. 마리아의 행위를 통해 예수님은 적잖은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큰 힘과 용기를 얻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이신지라 그 따뜻한 마음의 흐름을 감지했고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동안 도망다니는 삶이 고달프기도 하시고 배고프기도 하고 피로도가 극에 달해 계셨을겁니다.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사랑을 예수님은 읽을 수 있었습니다. 300데나리온을 가지고 구제활동을 하는 것은 절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유다의 한계는 예수님을 향해 가진 마리아의 사랑의 진실성을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따르고 사랑했다면 마리아의 이 거룩한 낭비는 전혀 불편한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돈주머니를 관리하는 자였고, 그 돈주머니에서 돈을 훔치던 도둑이었기에 그런 사랑을 읽어내기란 매우 어려웠고 그 자리가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3.

사랑하는 사람에게 낭비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퍼주고도 더 줄 것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여러분들이 연애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도 돈 없는 신학생 시절에 아내를 만났지만, 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물량공세를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돈 모아서 VIPS, Out Back 같은 레스토랑도 가고 에버랜드 같은 곳의 티켓도 아까워하지 않고 예약하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사귀자고 말할 때 광화문 교보문고 1층의 파스타 집에서 만났었습니다. 너무 기뻐 지하 1층에 있는 교보문고 hot tracks에 가서 아내에게 시계를 하나 사주었습니다. “너와 나의 사랑은 시간을 넘어선 영원에 속한 것이다.” 뭐 그런 의미였던 것 같아요. 사랑할 때는 더 주고 싶은 마음 뿐이지 절대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에는 낭비란 없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에는 이 사랑이 없었던 겁니다. 여러분 선행이 절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하지 않는 선행은 자기만족이나 자기 권력을 구축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선행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마음과 잇대어 있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300데나리온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어야지 했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선전도구일 뿐이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어떻게 이 세계 가운데 퍼져나갔다 사그러졌는지 한 번 보십시오. 그들의 구호는 너무나 훌륭했고 아름다웠습니다.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모두 다 같이 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리고 그들이 외친 구호는 이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죠지 오웰(George Orwell)동물농장(Animal Farm)은 스탈린 체제의 공산주의를 비판한 소설입니다. 동물 농장을 인간 주인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을 내 쫓고 동물 농장에 새 시대를 열겠다고 했던 돼지들이 어떻게 망가져가는지 소설은 자세히 묘사합니다. 권력을 잡은 돼지들은 인간들과 똑같이 동물들의 노동을 착취했고 모든 부를 자기들만 누렸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시작했지만 그 가난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자기 권력을 구축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예수님을 통과하지 않았을 때 자기 권력을 위해 오용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줍니다.

 

4.

마태복음 2613절에서는 온 세상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여인의 행위는 예수님이 죽으신 의미를 이해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자신의 가장 귀한 생명을 깨뜨리는 그 큰 사랑의 본질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나드를 깨뜨리고 발에 부은 것이 낭비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전부를 우리를 위해 깨뜨리실 사건에 대한 rehearsal이자 simulation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이 여인의 공통점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깨뜨릴 때 향기가 납니다.  향기는 가장 소중한 것을 깨뜨릴 때에만 발생합니다. 내 안에 온통 나(ego)로 가득한 사람이 깨뜨린 삶은 향기가 아니라 악취만 있을 뿐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자기 권력을 위해 깨뜨린 거짓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나를 부수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헌신과 다짐 없이 깨어진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와 희생의 의미를 이해하고 따르겠다는 사람은 자기를 온전히 부숩니다. 온전한 자기 부인과 함께 예수를 자신의 삶의 중심에 모십니다. 그는 예수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깨뜨린 삶을 이해하기에 예수를 따라 자신의 삶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은 예수를 그들의 삶의 중심에 모셔드리기는 커녕 그를 저 빈들로 내 몰았습니다. 왜냐면 예수는 그들의 삶의 기반을 무너뜨릴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을 그대로 두면 모두 그를 믿게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로마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땅과 민족을 약탈할 것입니다(11:48)." 로마 사람들은 이미 그들의 민족을 약탈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기득권을 누리고 사람들의 돈을 갈취할 수 있는 성전체제가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을 염려한 것입니다. 예수가 그들에게 방해꾼이자 눈에 가시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어떻게든 감추려하고 먼 들로 내어 쫓아버리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겁니다.

유다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유다 또한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를 따른다고 했으나 자기 명분을 위한 따름이었습니다. 예수 앞에 온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깨뜨리지 않았기에 여전히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권력자들과 손을 잡고 예수를 팔아버린 것이겠죠.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따르긴 했으나 그것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으니 예수를 폐기 처분해 버린 겁니다.

 

예루살렘의 종교당국자들과 예수의 관계, 그리고 유다와 예수의 관계를 옛날 이야기로만 봐서는 안됩니다. 우리 양심에 진동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예수님의 거룩한 시선으로 우리 양심을 비추는 일을 멈춘다면 우리 또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양심을 비추는 성경 읽기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기도의 삶에서 멀어져 있다면, 우리는 예수를 은닉하고 예수를 저 먼 들로 내쫓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따름의 핵심은 나를 온전히 부인하고 깨뜨리는 삶입니다. 자기 부인으로 비워진 내 삶의 중심에 예수로 가득 채워지는 감격을 누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처럼 주님께 항복할 의사가 전혀 없이 어떻게 주님을 따르겠습니까? 주님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마세요. 저는 너무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적당히 즐기면서 내 유익을 위해 그렇게 살고 싶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며 사는 삶은 좀 부담스러워요.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저 빈들로 몰아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께 내 삶의 우선권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 거짓된 양심을 비추는 사람만이 예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로 채워진 사람들이 자기 삶을 깨뜨릴 때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5.

교회는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깨뜨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예수의 향기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의 교회에서 악취가 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온전한 예수 따름 없이 내 이름을 내고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드리기 위해 보여주기식으로 나를 깨뜨리니 악취가 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여러 선행과 자비 프로그램은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 따름이 먼저 있고 예수의 마음과 잇대어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마음이 그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물이 아래로 흘러내려 가듯 예수님의 마음은 가난한 자들과 인간성의 모멸을 겪고 있는 비참한 인생들을 향해 흘러갑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과한 사랑과 선행만이 자기 권력을 구축하는 도구로 오용되지 않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아는 것, 예수의 마음을 읽는 것, 예수의 마음에 잇대어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베다니 마을 잔치에서 예수의 마음을 읽어낸 사람은 마리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녀가 깨뜨린 삶을 받으시고 큰 위로를 얻으신 것이죠.

 

저는 커피를 참 좋아합니다. 이곳에 와서 여러 이유로 커피를 끊을까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면서 갖는 행복이 커피를 안 마시면서 갖는 박탈감보다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향기 때문입니다. 좋은 커피를 들이킬 때 내 전 존재를 덮는 그 향내가 참 좋습니다. 커피가 자신의 몸의 수분을 없애 가며 자신을 태우고, 자신의 몸을 그라인더에 부수는 그 헌신이 있을 때 그는 향기를 발하게 됩니다. 삶을 깨뜨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삶을 깨뜨린다고 하면 너무 추상적입니다. 저는 삶의 향기는 인격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우리 삶이 향기롭다는 것은 우리의 인격이 흠모할만 하다는 것이겠죠. 우리가 깨뜨리는 삶은 우리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격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고농도의 추출물을 식물에서 짜낸 것이 향수가 되듯이, 인격도 부단한 노력과 훈련으로 장기간에 걸쳐 습득하는 것입니다. 인격은 훈련으로 습득된 삶이 농축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성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을 깨뜨린다는 것은 우리의 인격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각처에 그리스도의 인격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도 교회로 모인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바쳐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얘기했죠(고후 2:15). 향기가 가득찬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인격을 통해 공공연하게 표현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니 자연스럽게 삶에 향기가 나게 되는 것이구요. 예수 안에서 각처에 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니 교회는 얼마나 대단한 곳입니까.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향기로워지고, 여러분 때문에 직장이 향기로워지고, 동네가 향기로워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깨뜨리는 삶의 열매들로 온누리에 아름다운 주님의 사랑의 향기가 가득 채워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옛적 베다니 마을처럼 말입니다.

 

John 12:1-8

Title: I love you, so break it  / translated by Chungil Wi

 

1.

I feel the change of the seasons these days. Daytime temperatures have not dropped below 32 degrees for the past few days. When I told someone that spring would come soon, he said that spring had come. Come to think of it, it is true that spring has already arrived. The white snow covering the cornfields and grass is now mostly melting. I thought it was spring only when the flowers bloomed, but as the frozen ground began to melt, spring began. When I was in the military, the song I liked the most was Kim Myung-Sik's song 'Spring'. “The past days I was worried about and the cold winter that seemed to last forever, there is no trace as the Lord promised, and I praise what my God has done forever.” The memory of comforting the arduous military life by listening to the song with these lyrics comes back to life with spring. May the warm grace of the Lord be with all those who have been exhausted physically and mentally from going through the winter of life.

 

The land of Palestine, the base of Jesus' activities, also welcomes a new season at this time of year. The rainy season begins at the end of October, and the rain that falls during this time is called early rain. From this time on, there are many cloudy days, and most of the year's precipitation is concentrated from the end of October to the beginning of March. The rain that falls in early March is called the latter rain, and this is when the dry season begins. When the late rains in March stop, the harvest season begins in earnest. The harvest of olives, barley, and grapes begins. During this season, Jews celebrate the most important holiday, the Passover. The Passover was a very important feast to commemorate the Exodus, which made them free from slavery in Egypt. They remember and celebrate God's salvation by sacrificing a lamb to liberate them. It is significant that Jesus died on the cross on Passover, a major Jewish holiday. As the Lamb of God, Jesus had to bear the cross to save people who rebelled against God and turned away. To do so, Jesus had to go up to Jerusalem, and the place where Jesus stopped right before entering Jerusalem was Bethany. Next week is Palm Sunday, which commemorates Jesus riding a donkey into Jerusalem. Since the event that happened right before Jesus entered Jerusalem was the supper in Bethany, I want you to receive grace through this message today.

Before Jesus stopped by Bethany, we need to pay attention to where he was and why he should have been there. In John 10:39, “Again they tried to seize him, but he escaped their grasp.” And it says that Jesus went and fled. John 11 tells us that after raising Lazarus, Jesus' enemies from then on were determined to kill him. “So from that day on they plotted to take his life. Therefore Jesus no longer moved about publicly among the people of Judea. Instead, he withdrew to a region near the wilderness, to a village called Ephraim, where he stayed with his disciples. (John 11:53-54).”

Jesus gifted new life to the sick by performing signs and wonders, but he was hated by his enemies. When the hatred of the enemies reached its peak as Jesus performed miracles, the Lord went to a lonely place to avoid the enemies. It looks like a hit-and-run operation. He performed the miracle of raising Lazarus from the dead in Bethany, but when the news reached Jesus' enemies, he rushed to kill Jesus. Jesus did good and set many people free, but the hatred of the enemies grew like a snowball. It would be good to understand that Jesus hit and run like this as he took a breather. Now, before going up to Jerusalem in earnest, he would have had to take a breath and refresh his mind. He needed to prepare his mind before drinking the cup of suffering that was too heavy for him to handle. After stopping at Bethany, which was only three kilometers away from Jerusalem, he will be heading to Jerusalem. When Jesus visited the village of Bethany again, the Lord was determined. Jesus must have visited Bethany with determination. But, unaware of this, the people of Bethany held a feast when Jesus, who performed miracles, returned to their village.

 

2.

There was a woman who sensitively caught the flow of Jesus' emotions in the heat of the festival of gratitude and joy. She was Mary. While everyone was excited about the party, only Mary read Jesus' mind. She had a hunch that Jesus was accepting his own death with his resoluteness. When she thought of His hardships when He went to Jerusalem, Mary must have lost her heart. She wanted to comfort the Lord with what Mary had. There was a saying, “A woman's hazy intuition is better than a man's clear reasoning.” (This is what I said). A woman appears in the gap between the men who are drunk to the fullest. She had a hunch that this feast should be a rehearsal for Jesus' funeral banquet.

The reason she read the heart of Jesus like this is that she was a disciple of Jesus. Because Luke 10:39 describes it as “She had a sister called Mary, who sat at the Lord’s feet listening to what he said.” In Acts 22:3, Paul expresses that he “learned at the feet of Gamaliel.” To sit at one’s feet and listen to one’s words was an idiom for being one’s disciple. In other words, she was a faithful disciple who understood the meaning of Jesus' entry into Jerusalem. Mary, who suddenly appears among the men who are drunk with their excitement, starts a performance she has prepared. Mary pours expensive nard perfume on Jesus' feet, equivalent to a year's wages for a laborer. Nard is a high-quality perfume collected from plants, and it was also a funeral perfume that was used at Cleopatra's funeral. Why does she pour perfume on his feet? Jesus went about preaching the gospel from place to place. Besides, he had to run to empty fields to avoid his enemies. Jesus' feet were swollen and imperfect. Mary's gaze is fixed on her feet of Jesus and she pours perfume on them. She wanted to comfort Jesus.

What senses will be stimulated first when you pour perfume? It's the smell. In the Gospels of Matthew and Mark, it is further explained that this house was the house of Simon the leper. A leper is a person with a skin disease. Then, basically, I think the scent would not have been good. The Bible tells us that Simon the leper's house was suddenly filled with the smell of perfume. Mary did not stop by pouring her perfume on Jesus' feet but began to dry her perfume by wiping it with her own hair. In this way, she is preparing and simulating the funeral of her master.

Here, as a character in contrast to Mary, a disciple of Jesus named Judas from Iscariot appears. He did not understand what this woman was doing. She didn't just break the vessel of perfumed oil, he thought, she was breaking the mood. Above all, he couldn't understand why she was wasting such expensive fragrance oil. How much money are 300 denarii? Judas said that it would be better if he sold it and gave it to the poor, but actually, the money was too precious to him. Although they are the same disciple, the feeling temperature between Judas Iscariot and Mary is quite different. One person has hot love and devotion towards her teacher, and the other person analyzes and argues with too cold a reason.

 

What is Jesus' reaction? “Leave her alone,” Jesus replied. “It was intended that she should save this perfume for the day of my burial. You will always have the poor among you, but you will not always have me. (John 12: 7-8).” he supports Mary. Through Mary's actions, Jesus received considerable comfort. No, he rather gained great strength and courage. Jesus was also a human being, so he sensed the warm flow of his heart and was moved. He must have been tired of running away, hungry, and exhausted. Jesus could read the love that was deep in her heart. It is absolutely not a bad thing to do charity work with 300 denarii. But Judas' limit was that he did not know the sincerity of Mary's love for Jesus. If he had truly followed and loved Jesus, Mary's holy waste would not have been uncomfortable at all. However, he was the person who managed the money bag, and he was a thief who stole money from the money bag, so it was very difficult to read such love and the position was uncomfortable.

 

3.

Nothing is wasted on loved ones. It is a characteristic of people who love to be sorry that they have nothing more to give even after giving everything away. Think about when you were dating. I met my wife when I was a theological student without enough money, but I did not want to stop giving everything the woman I love. I remember saving money, going to restaurants like VIPS and Out Back, and making reservations for tickets to places like Everland. When I first asked her to date, we met at a pasta shop on the 1st floor of Kyobo Book Center in Gwanghwamun. I was so happy that I went to the Hot Tracks of the Kyobo Bookstore on the B1 floor and bought her a watch for her. “My love for you is beyond time and belongs to eternity.” I guess that was my intention. When you love, you just want to give more, but it's never a waste. Because nothing is wasted in a loving heart.

 

Judas Iscariot did not have this love in his heart. Your good deeds are never bad. But good works outside of Jesus are nothing more than a means to build up their self-satisfaction or self-power. Love for the Lord comes first, followed by good deeds. Judas Iscariot was not connected with Jesus' heart, and he did not love Jesus. He should have helped the poor man with 300 denarii, but it was just a political propaganda tool. Just look at how communism has spread and faded in the world. Their reliefs were so wonderful and beautiful. A beautiful world where everyone prospers through fair distribution of wealth was the value they pursued. But we know all too well how they fell and that the slogans they chanted were nothing more than ideals. George Orwell's "Animal Farm" is a novel that criticizes Stalin's communism. Animal farms were run by human owners. The novel describes in detail how the pigs, who said they would kick out humans and open a new era in animal farms, are ruined. The pigs who came to power exploited the labor of animals just like humans and enjoyed all the wealth for themselves. It started for the poor, but the love for the poor was used as a tool to build self-power. Loving the poor is not a bad thing, but history tells us that it can only be misused for self-power if it has not passed through Jesus.

 

4.

In Matthew 26:13, “Truly I tell you, wherever this gospel is preached throughout th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said Jesus. Why? It is because this woman's act was an act of understanding the meaning of Jesus' death. It is because Jesus now went up to Jerusalem and understood the essence of the great love that destroyed his most precious life. This woman breaking her nard and pouring it on her feet seems like a waste, but this is a rehearsal and simulation of an event where Jesus will break all of himself for us. What Jesus and this woman have in common is that they broke what was most precious to them. A person smells when they break something that is most precious to them. The scent comes only when you break the most precious thing. The life broken by a person who is full of me (ego) is not a fragrance, but only a stench. Because it is nothing more than a false performance broken for self-power. A broken life is meaningless without the dedication and resolution to completely break oneself and follow the Lord. Those who understand and follow the meaning of Jesus' death and sacrifice completely destroy themselves. With his total self-denial, they put Jesus at the center of their lives. They can follow Jesus and break their lives because they understand that Jesus broke his life on the cross.

 

However, the powerful in Jerusalem drove Jesus to those empty places instead of bringing him to the center of their lives. Because Jesus is a dangerous existence that will break the foundation of their lives. “If we let him go on like this, everyone will believe in him, and then the Romans will come and take away both our temple and our nation (John 11:48).” The Romans are already plundering their people. What does this mean? They were concerned about a situation in which the temple system, where they could enjoy vested interests and extort people's money, could be seriously shaken. Jesus is only seen as a hindrance to them and a thorn in their eyes. It led to the act of kicking him out.

Judas is not much different from them. Judas, too, was not free from his self-centeredness. He said he was following Jesus, but he was following for his own sake. Because he did not fully deny and break himself in front of Jesus, he still could not escape from his self-centeredness. So he must have sold Jesus by joining hands with the powerful in Jerusalem. He followed Jesus to achieve his purpose, but it seemed that it would not come true, so he discarded Jesus.

The relationship between Jesus and the religious authorities in Jerusalem, and between Judas and Jesus, should not be seen as an old story. If we close our ears to the word of God that causes vibrations in our conscience and stop illuminating our conscience with the holy gaze of Jesus, we are no different from them. If we are far from reading the Bible that illuminates our conscience with the Word of God and praying to hear the voice of God, we are hiding Jesus and driving him out into the distance. The core of following Jesus is a life that completely denies and breaks me. The first priority is to enjoy the thrill of being filled with Jesus at the center of my life, which has been emptied by self-denial. How can you follow the Lord without any intention of surrendering to Him like the powerful men in Jerusalem? Lord don't come close to me, I don't want to live too tired, I want to live for my own benefit while enjoying myself in moderation, The life of listening to and obeying the Lord's words is a bit burdensome…. These people are driving Jesus into those voids. Loving Jesus is giving Jesus a priority in my life. Only those who reflect their false conscience on the word of God can love Jesus. When those who deny themselves and are filled with Jesus break up their lives, the fragrance comes out.

 

5.

The church is a gathering of people who have broken their lives for Jesus. Therefore, it is only natural that the church smells of Jesus. But why does a modern church stink? It stinks because I break myself in a show way to make a name for myself and attract people to the church without following the perfect Jesus. Many good works and mercy programs in the church should not be the goal. Following Jesus comes first, and connecting with the heart of Jesus comes first. If you love Jesus, you cannot help but love the poor. Because the heart of Jesus flows naturally to those poor people. As water flows down, the heart of Jesus flows towards the poor and the wretched human beings who suffer the contempt of humanity. Therefore, those who truly love Jesus have no choice but to love the poor. Only love and good works that have passed through Jesus are not misused as tools for building self-power.

Knowing the heart of Jesus, reading the heart of Jesus, and connecting with the heart of Jesus are the first priority. At the feast in Bethany, Mary was the only one who read Jesus' mind. And Jesus gave her great comfort by accepting her broken life.

 

I really like coffee. I came here and thought about giving up coffee for various reasons. However, I felt that the happiness of drinking coffee is greater than the deprivation of not drinking coffee. The reason I like coffee is because of its aroma. I love the scent that covers my entire being when I drink good coffee. When coffee burns him as it drains his body of moisture, and when he has that dedication to crushing his body into the grinder, he gives off a scent. What does it mean to break a life? If you say you break life, it's too abstract. I believe that the fragrance of life comes from character. If our lives are fragrant, it means that our characters are worthy of admiration. The life we break must become our character. But character is not just created. Just as high-concentration extracts squeezed from plants become perfume, the character is acquired over a long period of time through constant effort and training. Good character can be said to be the character of Christ in which the life acquired through training is concentrated. In that sense, to break life is to break our character. Christians are people who spread the fragrance of the character of Christ everywhere.

Paul also said that all of us who have gathered in the church are the fragrance of Christ offered to God (2 Corinthians 2:15). Being full of fragrance means that love for the Lord is openly expressed through character. If you love Christ, you will become like Christ. As you become like Christ, you will naturally have a fragrance in your life. What a wonderful place the church is when people who give off the fragrance of Jesus gather in the church! I hope that the home becomes fragrant because of you, the workplace becomes fragrant because of you, and the neighborhood becomes fragrant because of you. It would be great if the fruit of life we break would fill the whole world with the beautiful fragrance of the Lord's love. Like the old town of Bethany.

 

 

 

 

Posted by speramus

본문: 누가복음 139-56

제목: 예수 탄생의 서곡, The Overture of Nativity of Jesus

 

1.     누가복음의 서곡

여러분은 오페라나 뮤지컬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오페라에는 보통 서곡(overture)이라는 것이 연주됩니다. 서곡은 오페라 전체 내용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맛보기(맛을 보도록 조금 내 놓는 음식)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롯시니의 뮤지컬 서곡들 중 좋은 곡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빌헤름 텔(William Tell)’의 이야기를 극화한 <빌헤름 텔 서곡>의 경우 12분 런닝 타임의 대곡입니다. 마지막330초 정도 서곡의 피날레가 시작되는데 트럼펫과 트롬본 소리와 함께 음악은 웅장하게 변해갑니다. 빌헤름이 폭군 게슬러(Gessler)를 죽이고 도시에 참 자유를 회복시켜 주는 것을 경쾌한 행진곡 풍의 음악으로 표현을 하였죠. 서곡이란 바로 이야기 전체의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미리 맛보기를 준다는 면에서 매력이 넘칩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의 시작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누가복음의 서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펼쳐갈 이야기가 무엇인지 맛보기로 보여주는 서막 또는 서곡과 같은 역할을 탄생 이야기가 맡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다른 복음서와 달리 누가복음의 탄생의 이야기에는 메시야를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 온 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유대사회에서 힘 없이 소외 받는 계층들이었습니다. 엘리사벳(Elizabeth), 시므온(Simeon), 안나(Anna)같은 이들은 노인들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 목동들은 갈릴리의 촌사람들이자 베들레헴의 부랑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를 통해 누가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떤 이야기가 앞으로 펼쳐질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어린 아이와 여자 그리고 노인으로 대표되는 그 당시 힘 없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구원의 이야기가 누가가 들려 주고 싶어했던 서곡에 담겨 있습니다. 그 힘 없는 이들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만나게 되자 어떤 엄청나고 놀라운 일들이 펼쳐질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누가는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2.     고장난명(孤掌難鳴- It takes two to tango.)

그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등장하는 씬(scene)은 누가복음 탄생 이야기 중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탄생 일화(episode)중에 마리아 이야기는 계란으로 치면 노른자와 같은 부분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처녀들의 평균 결혼 연령이 12-13세였다고 합니다. 남자는 18세에서 22세 사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초경이 시작되면 결혼 적령기가 되었던 겁니다. 야이로의 딸이 12살이 되어 죽게 되었다고 했을 때 초등학생의 어린이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결혼 적령기의 여자가 죽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겨우 12살에서 13살의 정혼을 한 여인이 마리아입니다. 참고로 마리아라는 이름은 모세의 누나의 이름 미리암의 다른 표현이었죠.  마리아는 나사렛(Nazareth)이라는 갈릴리 호수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성장한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어느 날 천사가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는 천사 중에서 가장 높은 천사장 가브리엘이었습니다. 가브리엘은 중요한 임무를 갖고 마리아에게 보내졌습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었죠.

 

여러분 이 부분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굵은 현악기를 통해 고뇌를 표현해야 어울릴 듯합니다. 왜냐면 마리아에게 이 소식은 청천벽력(a bolt from the blue) 같은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에도 처녀가 임신을 한 것은 작은 이슈가 아닌데 당시에는 어떠 했을까요? 게다가 마리아에게는 정혼한 미래의 남편인 요셉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마리아의 임신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마리아는 율법에 의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를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리아는 두려운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30절에 보면 천사가 나타난 것에 놀라워 하는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말합니다. “두려워 말아라.” 라고 합니다. 마리아는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이 늙은 나이에도 임신한 사실을 알려주면서 예수님을 잉태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일러줍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37)”고 못 박아 버립니다.

 

이에 대한 마리아의 반응은 38절 말씀입니다. “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I am the Lord's servant," Mary answered. "May it be to me as you have said.)"  마리아는 천사가 일러준 놀라운 사실이 자신에게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자신이 그렇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영광스러워 하며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 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아무리 놀랍고 위대하더라도 그 계획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가 없다면 이뤄지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묵묵히 억누르고 하나님이 뻗으신 손에 하이파이브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장단에 탱고를 추기로 한 것입니다.

 

3.     엘리사벳의 환대

그런데 마리아의 믿음과 결단에도 그녀를 사로 잡는 불안함은 떨쳐낼 길이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뭔가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언급한 친척 엘리사벳이 떠올랐고 그녀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보다 앞서 6개월 전에 임신한 상태의 여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녀를 찾아가고 예상치 못한 환대에 깜짝 놀랐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현현이 긴가민가하며 심란한 마음으로 유대산골까지 이동해 왔을 겁니다. 참고로 나사렛에서 예루살렘 근처의 유대 산골까지는 여인의 걸음으로 사흘길은 족히 걸어야 도착할 꾀나 먼 길이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을 마리아를 향한 엘리사벳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엘리사벳은 큰 소리로 샤우팅합니다. 실제로 헬라어 성경에서도 mega로 소리쳤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엘리사벳은 온 힘과 마음을 다 실어서 마리아를 응원하고 있는 겁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큰 소리로 전하는 메시지는 마리아의 마음을 한결 위로해 주었을 겁니다. “당신은 정말 복이 많은 여인이군요. 당신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어떻고요. 저는 이 사실이 믿겨지지 않아요.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이렇게 저에게 왕림하여 주시다니요?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여러분 이런 환대를 받고 격려를 받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리아가 한껏 고무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을 겁니다.  참고로 주라고 표현한 헬라어 퀴리오스(Kyrios)”는 로마의 황제에게 붙여진 호칭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내가 퀴리오스의 어머니를 보다니…”라는 찬사를 통해 마리아를 추켜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놀라운 찬송이 마리아의 입에서 나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로 시작하는 마리아의 찬송시는 지금도 성탄절 오라토리오로 많이 불리우는 “Magnificat”라는 찬송시 입니다. 라틴어로 “Magnificat anima mea Dominum(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합니다)”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 찬송시를 Magnificat라고 부릅니다. 마리아는 강한 확신에 차서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그녀의 찬송시에는 그동안의 모든 고뇌와 번민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의 뱃속에서 잉태된 아이가 펼쳐 나갈 세상이 어떤 세상이 될 것인지 마리아는 노래합니다. 자신과 같이 비천한 인생들이 돌봄을 받고 오히려 높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부자들과 높은 곳에 앉아 있는 고관대작들은 비천한 곳으로 끌어 내림을 당할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며 예수가 가져올 새 세상을 향한 희망을 노래합니다. 놀라운 역전이 그의 아들 예수로부터 이뤄질 것을 마리아는 예언자처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 아름다운 마그니파카트를 이끌어 낸 것은 다름아닌 엘리사벳의 응원이었습니다. 의기소침하게 자신에게 하이파이브 하자고 손을 내밀고 다가오는 마리아를 향해 크게 손을 맞대며 응답해주는 엘리사벳의 센스가 돋보입니다. 마리아의 쳐진 어깨를 보고 큰 소리로 마리아를 격려해 주고 있죠. 그녀가 지금 감당하는 이 일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해석해 줍니다. 한 사람의 격려와 지지만으로 우리는 힘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은 천군만마(千軍萬馬)와도 같았을 겁니다. 그녀의 거칠고 험난할 믿음의 앞길에 등불처럼 비쳐진 희망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이야기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의 백미가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 여인은 이제 초경이 막 시작된 약해 보이는 여인이었고 한 여인은 폐경이 한참 지난 초라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의 연합과 동행은 새로운 시대를 열 서막을 활짝 열어젖히고도 남는 행동이었습니다. 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연합, 한 길 가는 이들의 동행, 그리고 환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의 초미를 장식하는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4.     나 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어?

우리는 가끔 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나 한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 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세상에 타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온 우주를 향한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의 이야기는 나사렛이라는 매우 작은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마리아라는 너무나 미약한 12세 남짓의 소녀로부터 이 구원의 이야기는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리아와 같은 길 위에 서 있는 많은 이들의 응원과 격려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이 땅 위에 현실화 되어가게 된 것입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요? 지금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작은 이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는 이 땅 위에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이 매우 미약한 존재들로 부터 시작하여 커져가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으로 이 큰 세상에서 뭘 바꿔갈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 한 사람에서 시작된 순종이 모아져서 이 세상은 하나님이 꿈꾸는 세상으로 변해갈 수 있습니다. 또한 나 혼자는 스스로 설 수 없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당신이 가는 그 길이 옳아요.”, “당신의 그 순종이 너무 아름다워요. 당신의 그 나눔이 너무나 거룩합니다.” 라고 우리를 격려해주는 공동체가 너무나 절실한 겁니다.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온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한 나의 순종이 너무나 값지고 귀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빌헤름텔 서곡의 피날레를 들어 보면 빰빠라밤빰 트럼펫이 웅장하게 울려퍼집니다. 그러면 호른이 묵직한 소리로 트럼펫의 연주를 받쳐주지요. 노래가 더 웅장해지면 이제 심벌즈가 박수라도 쳐주듯 곁들죠. 이런 악기들 간의 서로 서로의 조화와 연합으로 아름다운 서곡이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행하고,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면서 힘을 얻어 가는 것입니다. ‘나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라는 그런 비관적인 생각은 떨쳐내십시오. 나부터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나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순종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들에게 엘리사벳과 같은 이들을 붙여 주실 겁니다. 함께 손잡고 일어설 수 있는 동역자이자 동반자들을 붙여 주시는 것이죠. 작은 점들이 모여져 선이 되는 것이고 선이 모여져 역사의 한 면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순종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십대 소녀 마리아의 순종이 인류의 역사를 이렇게 바꿔 놓았지 않습니까?

 

5.     엘리사벳의 환대를 생각하며

엘리사벳의 환대는 마리아가 주님의 뜻을 순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함께 연주해가는 예수님 탄생 이야기의 서곡에서는 환대가 만들어갈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창녀, 그리고 세리와 같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이들에게 보여주신 환대를 맛보기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뤄갈 세상이 이런 세상이란 것을 우리는 미리보기로 볼 수 있는 것이고요. 환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워 나가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와 목장 안에서 이뤄지는 환대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구체화 됩니다. 또한 우리가 직장 안에서 그리고 우리 로컬 안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베푸는 환대 또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와 함께 오늘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어쩔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벽을 오른다

방울 없고,
씨앗 살아남을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뼘이라도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덮을 때까지
바로 절망을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담쟁이 하나는
담쟁이 개를 이끌고
결국 벽을 넘는

 

나 한 명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라는 탄식 대신 우리 서로 손을 잡고 저 세상의 절망과 마주 섭시다. 우리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처럼 보 잘 것 없는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손을 잡는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꿈꾸신 사랑과 환대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함께 손 잡고 저 절망의 벽을 넘어 봅시다. 주님께서 우리의 길을 격려하시고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Sermon Scripture: Luke 1:39-56

Title: The Overture of Nativity of Jesus

Translated by Ji-Yun Kang

1.    Overture from the Gospel of Luke

Have you ever seen an opera or a musical? An opera usually has something called an overture. The overture can also be called a taster (a small sample of food to taste) that condenses the entire contents of the opera. Many of Rossini's musical overtures are quite magnificent. In the case of <William Tell Overture>, which dramatizes the story of 'William Tell', it is a great piece with a running time of 12 minutes. The finale of the overture begins at the last 3 minutes and 30 seconds, and the music changes majestically with the sounds of trumpets and trombones. William kills the tyrant Gessler and restores the city with true freedom. The overture is full of charm in that it gives a preview of how the entire storyline will flow.

Today's text, Luke's Gospel, begins with the story of the birth of Jesus. The story of Jesus' birth can be seen as a prelude to the Gospel of Luke. The story of the birth plays the role of a prelude or prelude to give a taste of the story that Jesus will unfold in the future. Unlike the other gospels, the story of the birth in Luke's gospel features many people who have been waiting for the Messiah for a long time. They were consistently marginalized and powerless in Jewish society. Elizabeth, Simeon, and Anna were old people. Mary, Joseph, and the shepherds were villagers in Galilee and outcasts in Bethlehem. Through the story of the birth of Jesus these people are creating, Luke wanted to show us what kind of story will unfold in the future through Jesus Christ. The story of salvation made by the powerless at the time, represented by young children, women, and the elderly, is contained in the overture that Luke wanted to tell. Luke wanted to show the possibility of what great and amazing things could happen when those powerless people are met with God's work of salvation.

2.    It takes two to tango.

The text we read today shows the scene where Elizabeth and Mary appear. This scene can be described as the highlight of Luke's birth story. Out of all the birth episodes, the story of Mary is comparable to the yolk of an egg. It is said that the average age of marriage for girls at the time of Jesus was 12 to 13. Men got married between the ages of 18 and 22. When a woman starts menarche, it was considered that they reached the right age to marry. When Jairus' daughter was told that she was about to die at the age of 12, you should not be thinking of an elementary school child. A woman who reached the age to marry has died. So was Mary. Mary was a betrothed woman who was only 12 or 13 years old. For reference, the name Mary was another expression of Miriam, the name of Moses' sister. Mary was a woman who grew up in a small country village on the Sea of ​​Galilee called Nazareth. One day an angel came to this woman. The angel God sent was Gabriel, the highest archangel among the angels. Gabriel was sent to Mary on an important mission. It was the news that Mary would conceive the Son of God.

If we were to express this part with music, it would be appropriate to express the anguish through a thick stringed instrument. To Mary, this news was like a bolt from the blue. Even today, it is not a small issue that a virgin gets pregnant, but what would it have been like back then? Besides, Mary had a betrothed future husband, Joseph. If Mary's pregnancy were to be known, Mary could have reached the point where she had to be stoned to death according to the law.

In this situation, Mary would have had no choice but to have fearful feelings. In verse 30, Gabriel says to Mary, who was astonished at the appearance of an angel. Do not be afraid.. Mary was in a situation where she couldn't help but be afraid. The angel informs her that Elizabeth, Mary's relative, is pregnant even at an old age, and tells her that conceiving Jesus is actually possible. The angel firmly proclaims that Nothing is impossible with God (v. 37).

 Mary's response to this is in verse 38. I am the Lord's servant. May it be to me as you have said" Mary is praying that the wonderful truth the angel had told her would come true. She feels honored that she can be used in God’s work of salvation, and she accepts it with faith. There is an old idiom, “the palms of your hands must come together to make a sound. God sent his son to this earth. No matter how amazing and great the plan, to send and save mankind in sin would have been difficult if there were no people who accepted and obeyed the plan. But Mary silently suppressed all fear and anxiety and decided to give a high five to God's outstretched hand. She decided to tango with God to his rhythm.

3.    Elizabeth's hospitality

Despite Mary’s faith and determination, there was no way to shake off the anxiety that gripped her. She needed some reassurance. Mary remembered Elizabeth, the relative mentioned by the angel, and decided to visit her. Elizabeth became pregnant six months before Mary was. Mary visits her and is taken aback by her unexpected hospitality. It is likely that Mary traveled all the way to the mountains of Judea with a distraught mind, wondering about the appearance of the angel. For your reference, it was a long way from Nazareth to the hills of Judea near Jerusalem, and it took a woman to walk three days. Elizabeth's reaction to Mary, who must have been exhausted physically and mentally, was extraordinary.

 Elizabeth shouts loudly. In fact, even in the Greek Bible, it is expressed as shouting with “mega”. Elizabeth is supporting Mary with all her strength and heart. Elizabeth's loud message to Mary would have comforted Mary's heart. You are a very blessed woman. How is the baby in your belly? I can't believe this fact. Is the mother of my Lord visiting me like this? Is it a dream or is it real?

My beloved congregation! Is there anybody who would not be encouraged with this level of hospitality? It would be odd if Mary were not encouraged to the fullest. For reference, the Greek word Kyrios, expressed as Lord, was a title given to the Roman emperor. What Elizabeth did was to honor Mary by saying, "I see the mother of Kyrios”

 As a result, amazing praise comes from Mary's mouth. Mary's hymn, which begins with My soul praises the Lord, is a hymn called Magnificat, which is still often sang as a Christmas oratorio. This hymn is called the Magnificat because it begins in Latin with Magnificat anima mea Dominum (My soul praises the Lord). Mary sings praise to God with strong conviction. There is no sign of anguish from the past in her hymns. Mary sings what kind of world will unfold by the child conceived in her. She sings that lowly people like herself will be taken care of and exalted. The rich and the great dignitaries who sit on high places will be brought down to a lowly place. She sings of hope for the new world that Jesus will bring, saying that the poor and the marginalized will be satisfied with good things. Mary is singing like a prophet that an amazing reversal will come from her son Jesus.

It was none other than Elizabeth's support that brought out this beautiful Magnificat of Mary. Elizabeth's sensibility stands out when she responded with a big hand-to-hand response towards Mary who was dispiritedly reaching out to give herself a high-five. Seeing Mary's drooping shoulders, she encourages her with a loud voice. It explains how she is taking on an amazing role. One person's encouragement and support is enough to give us strength. To Mary, Elizabeth must have been like an army of ten thousand horses. It was a hope that shone like a lamp on what would be the rough and rugged future path of her faith.

 

This is why the story of Mary and Elizabeth is the highlight of the birth story of Jesus. One was a weak-looking woman who had just begun menarche, and one woman was a poor woman well past menopause. The union and companionship of these two opened wide the prelude to a new era. The unity of those who have received the same calling, the companionship of those who walk the same path, and their hospitality are beautiful stories that decorate the beginning of the story of the birth of Jesus Christ.

 4.    What can one person like me do?

We often think about what one person can do in this huge world. Sometimes it feels like hitting a rock with an egg. Then, before you know it, you will live in compromise with the world. We must pay attention that God's great story of salvation for the entire universe started from a very small location called Nazareth. This story of salvation is being created from a very weak 12-year-old girl named Mary. And with the support and encouragement of many who stand on the same path, God's plan of salvation has become a reality on this earth.

Would it be any different now? Even now, the story of God's salvation can bear fruit on this earth because of the little ones who obey God's will. As I said last week, the kingdom of God begins with very small beings like mustard seeds that grow big. Don't think, 'What can I change in this big world as a single person?' When there is a collection of obedience that was started by one individual, this world can change into the world God dreams of.  God gave us a community because we cannot stand on our own. We desperately need a community that encourages us with You are on the right path., Your obedience is so beautiful. Your sharing is so sacred.. One person is enough. It is enough for one person to tell me that my obedience with all my heart, mind, and strength is so valuable and precious.

 If you listen to the finale of the William Tell Overture, you will hear the trumpet resounding magnificently. Then the horn supports the performance of the trumpet with a heavy sound. As the song gets grander, the cymbals accompany it like a round of applause. A beautiful prelude is created by the harmony and union of these instruments with each other. The story of God's salvation is the same. It is what an individual does, which gains strength by cheering from the side and pushing from behind. Shake off the pessimistic thought of 'What can I do alone?'. You must start with yourself first. You must do God's will and walk in obedience to what God wants. God will surely give you people like Elizabeth. God gives you partners and companions who can stand together hand in hand. Small dots collectively create lines, and lines gather to create a side of history. So our obedience is never small. Didn't the obedience of the teenage girl Mary change the course of human history like this?

5.    Thinking of Elizabeth's hospitality

Elizabeth's hospitality played a decisive role in helping Mary obey the will of the Lord. The prelude to the story of the birth of Jesus played by Mary and Elizabeth shows us the beautiful world that hospitality will create. It is to give a taste of the hospitality that Jesus showed to sinners, prostitutes, and those who are treated as less than human, such as tax collectors. We can see in advance that the world that Jesus establishes is this kind of world. Hospitality is an important factor in establishing God's kingdom on earth. The kingdom of God is embodied through hospitality within our church community and our small groups. Also, the hospitality we give to those we meet at work and in our local community also plays an important role in building God's kingdom on earth.

I will end today's sermon with a poem called Ivy by poet Do Jong-hwan.

 <Ivy>              Do Jong-hwan

At times when we feel that

it is a wall, just a wall,

then

without a word ivy goes climbing up the wall.

 

At times when we say that

it is a wall of despair

with no drop of water, where not one seed can survive,

unhurrying, the ivy advances.

 

Hand in hand, several together, it climbs on, a span’s breadth at least.

Until the despair is all covered in green

it grasps the despair and will not let go.

 

At times when we lower our heads, saying that

the wall cannot be climbed,

one ivy leaf at the head of thousands of ivy leaves

finally climbs over the wall.

 

What can I do as one person? Instead of lamenting, let us hold hands and face the despair of the world. We may be insignificant people like Mary and Elizabeth. But if we hold each other's hands, we can make God's wonderful works. Let us join hands and overcome that wall of despair to create a beautiful world of love and hospitality that Jesus dreamed of. I believe that the Lord will encourage and strengthen our paths.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