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해하는 구약 성경의 한 줄 요약은 출애굽에 실패한 이스라엘입 니다. 출애굽(Exodus)이란 애굽, 즉 이집트(Egypt)를 탈출한다는 일차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나가다는 뜻의 ‘ex’이라는 뜻의 ‘hodus’가 합쳐진 말입니다. 길이란 삶의 방식을 의미하죠. 출애굽의 2차적 인뜻,그러니까속뜻은기존의삶의방식에서벗어나새로운삶의방식으 로 들어가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파라오의 체제에서 순응하며 살던 방식 을 박차고 나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는 결단이지요. 이 스라엘은 몸의 탈출과 함께 정신의 탈출을 이뤄내야 했는데 실패했습니 다. 몸의 탈출은 이집트를 벗어나는 것이었겠죠. 정신의 탈출은 파라오의 가치간과 세계관과 문화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히브리인들 은 몸은 이집트를 나왔지만 정신과 가치관과 문화는 이집트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 시대에 출애굽을 살아가는 것이라 이해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출애굽적인 삶은 성경적인 가치관과 세계관, 그 리고 문화를 장착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세계관과 가치를 과 감히 버리고 대안(代案)적이고 대항(對抗)적인 성경의 가치관을 갖는 것이 야말로진정한출애굽이라할수있습니다.기독교인들은어느시대나그 시대의 주류 문화와 지배세력들에 대항하는 가치관을 추구하며 살아왔습 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가나안의 문화, 그 후손들 세대에는 이집트, 앗시 리아, 바빌론, 헬라, 로마라는 주류 문화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갈망 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 날의 주류 문화는 무엇일까요?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자본주의 (capitalism)라 생각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돈이고 다른 말로 이윤의 창출입니다. 자본주의는 이를 위해 효율성이라는 중요 한 가치 판단을 기준으로 활용합니다. 나아가 효율성을 표현하기 위해 숫 자, 다른 말로 샘을 사용합니다. 재독(在獨)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책 투명 사회에서 디지털사회의 탈역사성과 탈서사성에 대해 비판합니다. 디지털 은 숫자를 새기 위한 손가락이란 뜻의 라틴어 ‘digitus’에서 유래합니다. 우정, 사랑, 관계와 같은 가치들은 원래 이야기이며 서사적(narrative)인데 디지털 사회는 이런 가치들을 숫자로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페이스북 이나 인스타 같은 곳에서 친구도 애정도 호감도 모두 숫자로 표현됩니다. 모든것이셀수있게가공되어버리죠.디지털사회에서서사적인것은급 격히 의미를 상실해 버립니다. 그러나 구원은 이야기입니다. 출애굽도 이 야기이죠. 교회의 건강성을 숫자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이야기 여야 합니다. 진리를 숫자에 가둘 수는 없습니까? 교회는 지진리를 라가기 위해 이 숫자와 우고 있는지도 모니다.

Posted by speramus

한병철 선생님의 투명사회 164페이지의 내용을 복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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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라는 단어는 본래 손가락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digitus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는(Zaehlen) 손가락이다. 디지털 문화는 세는 손가락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역사는 이야기Erzaehlung이다. 역사는 세지 않는다. 셈은 포스트역사적 범주다.

트윗도 정보도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지 않는다. 타임라인도 삶의 역사 또는 전기를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타임라인은 서사적이기보다 가산적이다. 티지털 인간은 끊임없이 세고 계산한다는 의미에서도 손가락질하는 인간이다.

디지털은 수와 셈을 절대화 한다. 페이수북 친구들도 무엇보다 숫자로 세어진다.

하지만 우정은 이야기다. 디지털 시대에는 가산적인 것, 셈하기, 셀 수 있는 것이 전부가 된다.

심지어 애착과 호감도 '좋아요'의 형식으로 세어진다. 서사적인 것은 급격히 의미를 상실한다.

오늘날 모든 것이 셀 수 있게 가공된다. 그래야만 성과와 효율성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셀 수 없는 것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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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의 갯수로 인기가 가늠되고 그 인기가 인격인 것 마냥 살아가는 사람들, 디지털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허상이다.

한병철 선생님의 투명사회 26쪽에서는 '좋아요'에 대한 철학적 비평을 이렇게 늘어 놓고 있다.

"긍정사회에서 일반화된 판정의 형식은 '좋아요'이다. 페이스북이 '싫어요'버튼을 도입하는 데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것은 주보할 만하다.

긍정사회는 모든 종류의 부정성을 피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부정성은 커뮤니케이션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대량화는 경제적 가치의 증가로도 이어진다. 

그런데 부정적인 판정은 커뮤니케이션을 손상시킨다. '좋아요'가 '싫어요'보다 더 빠르게 후속 커뮤니케이션을 유발하는 것이다.

거부에 담긴 부정성은 무엇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효용성이 없다. 

투명성과 진리는 같은 것이 아니다. 진리는 다른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립하고 관철한다. 그점에서 진리는 부정성이다. "

 

5년전부터 페이스북을 하고 있지 않지만, 페이스북을 하더라도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 이유를 이글에서 발견한다.

모든 것을 샘과 계산으로 바꿔버리는 디지털화된 소비주의 사회를 거스르는 삶의 방식이라 할까??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