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9장 묵상 - 마이동풍(馬耳東風)>
사자성어를 보면 귀와 관련된 성어들이 종종 보입니다.
우이독경(牛耳讀經)은 소 귀에 경읽기인데,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을 때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뜻의 성어로 마이동풍도 있죠.
따뜻한 봄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기뻐하는데 말의 귀는 봄바람이 불어도 전혀 느끼는 낌새가 없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남의 의견이나 충고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흘려버리는 태도를 말하죠.
바로의 태도가 바로 마이동풍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출애굽기 9장은 다섯째부터 일곱째 재앙까지 하나님이 애굽땅에 내린 재앙들입니다.
애굽사람들의 가축만 죽어져 나가고, 애굽 사람들에게 악성종기(피부병)가 붙고, 애굽 지역에만 무시무시한 우박이 쏟아져 농작물과 산림들의 피해가 속출합니다.
바로의 태도는 한 가지입니다.
재앙이 임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같지만 재앙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완강하게 듣지 않습니다.
소나 개도 이렇게 두들겨 맞으면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짐작할 것 같은데 바로는 그렇지 않네요.
그러니 이 상황이 마이동풍인 것이죠.
추석 동안에 속된 말로 멍 때리고 며칠 지내본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묵상만 했지 영성생활에 신경 안쓰고 노는 것과 여러 사람 만나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었죠.
한마디로 하나님 말씀에 크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거죠.
그랬더니 마음의 정원에 잡초가 자라고 삶이 무기력해지더니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게 되더군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는 것은 내 주위의 사건과 사고들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바라시는지 그 뜻을 분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당하는 애매한 고난과 재앙(?)을 통해 하나님이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지 못한다면
고난과 어려움은 소귀에 읽는 경(經)이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음성은 세미한 음성일 때도 있고 거센풍랑과 같은 강력한 메시지일 때도 있습니다.
귀를 닫고 살면 바로처럼 완고하게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먼저 열려야할 신체 기관은 다름 아닌 귀(耳)일 것입니다
한편으로 이집트에 내린 당시의 재앙이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런 재앙들 뒤에 하나님의 음성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고 떨림으로 상황을 직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류독감이니 구제역이니 요 몇년 새 우리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소식이죠.
가축들까지 살처분에 폐사에 온 나라가 지금도 홍역을 앓고 있죠.
올 6월에는 서울에서 처음 우박을 보기도 했습니다.
근래에 에볼라라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인류에 또 다른 공포를 안겨다 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집트에 내렸던 재앙과 흡사합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 인류와 기독인들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요?
우리는 귀를 기울여 봐야 합니다.
이 재앙들은 우리 인류를 향한 경고이며 자연의 울부짖음은 아닐지요.
오늘 이 아침에 막혀 있는 내 귀를 열어 봅니다.
하나님을 향해 내 귀를 활짝 열어졎혀 봅니다.
순종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들은대로 따르는 것이지요.
먼저 듣는 것입니다. 듣기 위해 귀를 열어야 하며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봄바람처럼 내 귀에 속삭이는데 나는 말처럼 그 바람을 흘러보내서는 안되겠지요.
오늘 설교를 통해, 상황을 통해, 자연을 통해 말씀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들은만큼 변할 것을 믿기에 잠잠히 나아가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