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장 묵상 - 아름다운 구속>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나비 애벌레들의 이야기입니다.
뜻도 목적도 모른 채 모든 애벌레들이 보이지 않는 저 높은 곳을 향해 기어 올라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올라가기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즈려 밟아야만이 오를 수 있는 수 많은 높은 탑들이 애벌레들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높은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그 곳에 오른 애벌레들은 허무하게 저 아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도 ‘저 위에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주인공 애벌레는 목적도 없는 정상으로의 허무한 경쟁을 내려 놓고 번데기의 과정을 통해 나비로 거듭나게 되죠.
그 번데기의 구속을 거친 후 참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나비가 된 후 애벌레들이 그렇게도 오르고 싶은 정상을 훨훨 비상해 오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의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이 애벌레들의 탑쌓기를 방불케 합니다.
오직 다른 이를 짖누르고 밟아서 오르고 또 오르려는 인간들의 시퍼런 욕망들로 가득찬 세상이었습니다.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탐욕의 바다를 하나님이 물로 덮어 버립니다.
그런 시대에 노아는 독야청청하게 의인으로 살아갔습니다.
노아에 대한 짧은 설명은 이렇습니다.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1절)”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5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대로(9,16절)”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헛된 욕망의 탑에 오르는 것을 거절했고 기꺼이 하나님의 명령의 거푸집 안으로 들어가기를 자처했습니다.
방주에로의 아름다운 구속을 자처한 것입니다.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19-20절)”
방주에로의 아름다운 구속은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오를 수 없는 곳으로 그를 끌어 올려 주었습니다.
오로지 물 위에 있는 방주만이 오를 수 있는 그곳으로 노아는 올라 서게 된 것입니다.
그는 단지 방주에 구속되었을 뿐인데 하나님은 그를 올려 세우고 계신 것이죠.
이것은 놀라운 순종의 원리라 생각됩니다.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삶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참 자유이며 우리를 높이는 비결임을 깨닫게 됩니다.
애벌레가 번데기의 구속의 시간을 통해 아름다운 나비로 참 자유를 얻듯이, 우리네 삶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과 하나님의 명령에 구속됨을 통해 참 자유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감미로운 순종을 하는 자들은 물이 차오름과 동시에 그의 삶도 부상하게 될 것이며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 감미로운 순종을 드리는 하루 되길 원합니다.
세상 헛된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귀한 말씀과 명령에 결박당하기 원하며 구속당하기 원합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구속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