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2장 묵상 - 꿈과 비전이 견인하는 삶인가?>
요셉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어릴적 꾸었던 두 번의 선명한 꿈을 이루는 것이었을까요?
형들과 부모님 앞에 보란듯이 성공하여 그들로 그의 앞에 굴복시키는 것이었을까요?
요셉은 정신 없는 일과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총리로서 너무나 바쁜 일상이었습니다.
7년의 풍년기에는 전국을 돌며 각 고을마다 곡식창고를 짓는 것을 관장했고 또 거기에 곡식을 들여 놓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었죠.
그동안 결혼도 하여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저처럼 말이죠^^
이제 7년의 풍년은 지나고 본격적인 흉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흉년과 기근은 이집트 전국을 넘어 가나안 땅에까지 찾아온 재앙잉었습니다.
요셉은 분명 이 난국을 헤쳐가며 많은 이들을 도와가며 삶의 보람을 찾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마음 한켠에는 삶의 보람으로는 만족되지 않는 어떤 허전함이 존재하고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총리로서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그의 삶의 목적은 되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런 그의 앞에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의 10명의 형들과 이집트 땅에서 대면하게 되다니요.
20년의 세월이 지난 이역만리 이집트 땅에서 맞게 되는 형들과의 조우, 그것은 요셉의 삶에 가해진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형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준비되었다 판단하신 듯합니다.
요셉은 42장 본문에서 두 번 우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입니다(형들에게는 아직…).
요셉의 눈물은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20여년만에 가족을 다시 보게된 기쁨의 눈물이었을 것이고, 이집트에서 겪었던 녹녹치 않았던 인생에 대한 보상의 눈물이었을 것이며, 그와 가족 앞에 펼쳐진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감격의 눈물이었을 것이기도 하겠죠.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9절)”
이 말씀을 대하며 요셉의 삶의 목적이 어린 시절 꾸었던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 꾸었던 꿈이 그의 삶의 목적이었다면 그는 형들 앞에서 그렇게 유하게 반응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을 굴복시키고 자신이 그들에게 당했던 대로 되갚아 주어야 합니다.
그돌로 말미암아 겪었던 이집트에서의 힘겨운 삶을 토로하며 그들의 양심에 고문을 가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방법을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지혜롭고 차분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어린 시절 꾸었던 그 꿈만을 바라보며 그 꿈을 이루기에 혈안이 되었다면 그는 아마도 이집트에서 정신병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9절 말씀을 통해 볼 때, 요셉은 그 꿈을 까마득하니 잊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형들을 보고서야 그가 어린 시절 꾸었던 꿈이 생각난 것이지요.
요셉의 삶에 어릴 적 꿈이 그의 목적과 방향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그를 지탱해주고 견인해 주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생각을 하며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저의 관심은 늘 ‘무엇을 하며 살지?’ ‘나는 어떤 사역자가 되어야 하지?’에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내 꿈과 비전은 무엇인가? 그 꿈과 비전을 이루려면 나는 지금 우엇을 해야 하나? 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이지요.
요셉의 삶은 이런 저의 삶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요셉을 견인해주고 지탱해 주었던 힘은 꿈도 아니고 비전도 아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그리 많이 등장하는 말이 있잖습니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니 그가 형통하였더라”
바로 이것입니다.
내 삶의 목적과 비전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을 이 아침에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자연스럽게 그분의 꿈으로 우리 삶을 견인해 갑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로 그분의 성품에 참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현실을 디딤돌로 사용하여 미래를 열게 하십니다.
지금 여기, 현실에 충실하게 하며 그 성실함을 기반으로 하나님의 꿈에 한걸음 다가서게 만드는 것이지요.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어느새 새 사람으로 변해 있었고, 꿈은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현실로 이뤄지고 있었던 겁니다.
무엇을 이룰까, 어딜 향해 가야 하나,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 내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와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걸음 한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
아멘!!!